○ 지금 사는 ㉡ 그 집이 싫으면 다른 집을 알아보자.
○ 쟤는 우리가 싫어했던 ㉢ 저것이 마음에 든대.
○ 어르신, 제가 ㉣ 저 건물까지 부축해 드리겠습니다.
㉠ ‘이’는 바로 앞에서 말한 ‘현주가 취직이 되었다’는 앞선 발화 내용을 가리키는 지시어이다.
지시어 ‘이·그·저’는 화자·청자와의 거리나 담화 속 위치에 따라 기능이 나뉜다. ‘그’는 청자에게 가깝거나 청자가 아는 대상, ‘저’는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서 먼 대상을 가리킨다.
- ㉡ ‘그 집’은 청자가 지금 사는 집으로, 청자가 이미 아는 대상을 가리키므로 둘 다 모르는 대상이 아니다.
- ㉢ ‘저것’은 ‘우리가 싫어했던’ 것이므로 화자도 아는 대상이다.
- ㉣ ‘저 건물’은 화자와 청자 모두에게서 떨어져 있는 대상을 가리키므로 가까운 대상이 아니다.
○ 목적: 북촌 한옥 마을, 이화 마을 등의 주거 지역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기존 거주민의 쾌적한 주거 환경이 위협받는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관광 업체의 경영 실태와 매출 실적 분석은 거주민의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보고서의 목적과 관련이 없어 적절하지 않다.
목적은 관광객 증가로 위협받는 ‘기존 거주민의 쾌적한 주거 환경’에 대한 개선 방안 마련이므로, 피해 실태 파악과 해결책 탐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외국의 유사 정책 사례 조사는 개선 방안의 시사점을 얻는 데 유용하다.
- 전문가 자문과 주민 토론회는 개선 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 방법으로 적절하다.
- 주민 면담을 통한 피해 사례 조사·유형화는 문제점 파악에 적절하다.
잘못 쓰인 것은 ㉠, ㉣, ㉤으로, 셋 모두 ‘붙이다’와 ‘부치다’를 바꿔 썼다.
‘숙식을 부치다’(남의 집에서 먹고 자다), ‘우표를 붙이다’(맞닿아 떨어지지 않게 하다), ‘논밭을 부치다’(농사를 짓다)가 바른 표기이다.
- ㉡ ‘힘에 부치다’는 힘이 모자라다는 뜻으로 바르게 쓰였다.
- ㉢ ‘말을 붙이다’는 말을 걸다는 뜻으로 바르게 쓰였다.
- ㉥ ‘정을 붙이다’는 정을 들이다는 뜻으로 바르게 쓰였다.
밑줄 친 부분은 보살과 나한의 차이점을 견주어 설명하므로 주된 설명 방식은 대조이다.
‘나한이 개인적 자각인 데 대하여 보살은 사회적 자각’, ‘개인 본위’와 ‘사회 본위’처럼 두 대상의 상반된 특성을 나란히 제시하고 있다.
- 유추는 익숙한 대상과의 유사성을 빌려 낯선 대상을 설명하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유사성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낸다.
- 묘사는 대상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 보여 주는 방식으로, 개념을 비교하는 이 글과 맞지 않다.
- 예시는 구체적 사례를 드는 방식인데, 밑줄 친 부분에는 사례 제시가 없다.
특히 사회적 비난이 집중된 사건의 경우, 공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사건의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개인 신상 정보부터 무분별하게 유출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그로 인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인격 훼손은 물론, 개인 정보가 범죄에 악용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이용하여 정보를 공유할 때에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인격을 훼손하는 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아닌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글의 결론은 정보 공유 과정에서 개인의 사생활과 인격, 곧 인권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장의 ‘따라서 …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인격을 훼손하는 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아닌지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가 결론에 해당한다.
- 정보 공유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은 첫머리에서 인정한 긍정적 가치일 뿐 결론이 아니다.
- 정보 유출로 공익이 훼손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은 글에 근거가 없다.
- 사실 확인 문제는 신상 정보 유출의 한 양상으로 언급되었을 뿐 결론적 주장은 아니다.
한국 전통 건축물이 왜소하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말하는 경우는 대개 외형적인 크기와 넓이 그리고 장식적 요소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한국 전통 건축은 ‘겸손의 건축’이다.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을 침해하면서까지 건축물을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전통 건축의 기본 철학이다. 더 나아가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해서, 인간이 잠시 그 품에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이 옳다는 철학도 한국 전통 건축에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처음부터 산과 들을 제압하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지 않으려고 했으며, 그 형태 또한 인위적인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계의 곡선을 따르는 것을 즐겼다.
곡선을 즐긴 것은 한국 전통 건축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이를 철학을 잘못 이해한 결과로 본 진술이 글과 부합하지 않는다.
글은 자연을 침해하지 않는 ‘겸손의 건축’ 철학 때문에 ‘인위적인 직선을 배제하고 자연계의 곡선을 따르는 것을 즐겼다’고 설명한다.
- ‘창호를 통해 저 멀리의 들과 강과 산으로 이어진다’는 서술과 일치한다.
- ‘자연을 소유하려는 일본 전통 건축’과 구별된다는 서술과 일치한다.
- ‘건축물도 자연의 일부’라 여겨 거대한 건축물을 짓지 않으려 했다는 서술과 일치한다.
- 『삼국사기』 열전 ‘효녀 지은’에서 -
아침저녁으로 어머니께 문안드린 지은의 행위는 昏定晨省(혼정신성)에 해당한다.
昏定晨省은 ‘저녁에는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아침에는 문안을 드린다’는 뜻으로, 부모를 정성껏 섬기는 효도를 이른다.
- 肝膽相照(간담상조)는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친하게 사귐을 뜻한다.
- 磨斧爲針(마부위침)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끈기 있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음을 이른다.
- 孤掌難鳴(고장난명)은 외손뼉은 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혼자서는 일을 이루기 어려움을 이른다.
‘여쭈다’는 말을 듣는 대상(객체)을 높이는 말인데, 시장님이 ‘저에게’ 물은 상황이므로 객체인 화자 자신을 높인 꼴이 되어 적절하지 않다.
주체인 시장님을 높여 ‘물어보셨던’으로 써야 한다.
- 부장님의 넥타이가 어울린다고 할 때 ‘-시-’를 쓴 것은 높일 대상과 관련된 사물을 통해 높이는 간접 높임으로 허용된다.
- 시어머니께 남편을 ‘아비’라 하고 ‘들어왔습니다’로 낮춘 것은 가정에서의 압존 표현으로 적절하다.
- 선생님 앞에서 자기 어머니를 ‘께서 … 주셨습니다’로 높이는 것은 표준 언어 예절에서 허용된다.
‘남짓’은 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스무 살 남짓’으로 써야 한다.
반면 ‘-쯤’, ‘-어치’, ‘-경’은 접미사이므로 앞말에 붙여 쓴다.
- ‘열 시쯤’은 정도를 나타내는 접미사 ‘-쯤’을 붙여 쓴 바른 표기이다.
- ‘천 원어치’는 그 값에 해당하는 분량을 뜻하는 접미사 ‘-어치’를 붙여 쓴 바른 표기이다.
- ‘이십 세기경’은 ‘그 무렵’을 뜻하는 접미사 ‘-경’을 붙여 쓴 바른 표기이다.
公竟渡河
墮河而死
當奈公何
- 백수광부의 처, 「공무도하가」 -
(나)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大同江) 너븐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내여 아즐가 ᄇᆡ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녈 ᄇᆡ예 아즐가 녈 ᄇᆡ예 연즌다 샤공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大同江) 건너편 고즐여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ᄇᆡ 타들면 아즐가 ᄇᆡ 타들면 것고리이다 나ᄂᆞᆫ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작자 미상, 「서경별곡」에서 -
(가)와 (나)의 화자는 모두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염려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가)는 ‘公無渡河(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로 임이 물을 건너다 화를 입을까 걱정하고, (나)는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라며 사공을 원망하면서 ‘건너편 고즐여 … 것고리이다’로 임이 강 건너 다른 꽃(여인)을 꺾을까 염려한다.
- (가)의 화자는 임과 동행하지 않고 물을 건너는 임을 말리며, (나)의 화자도 이별을 선택하기보다 떠나는 임을 붙잡지 못해 원망한다.
- 두 작품의 강은 재회를 돕는 매개가 아니라 임과의 이별·죽음을 가져오는 장애물이다.
- 두 작품 모두 이별과 죽음의 비애가 중심이어서 희극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임제순: (발끈해서) 아니면 으짤 참이였? 이자를 생각해 봐! 놀랠 것이 뭇이여?
연 철: (비꼬는 투로) 놀랠 것 하나도 없지라우! 이렇게 될 줄 뻔히 알었지라우! (불같은 한숨)
임제순: 뭇이라고? 저놈이 어따 대고 비양질이여?
곰 치: ( ㉠ ) 알았음녀……. (연철에게) 아무 소리 말어! 다들 입을 봉해!
성 삼: 곰치! 입을 봉할 때가 따로 있어! (오기스런 안간힘)
곰 치: ( ㉡ ) 시끄러웠!
임제순: 곰치!
곰 치: ( ㉢ ) 말씀하시게라우…….
임제순: ……자네 섭섭할는지 모르겠네만은……. (강경하게) 남은 이만 원 청산할 때까지 내일부터 배를 묶겠네! 묶겄어!
성삼·연철·도삼: 배를 묶다니?
구포댁: (펄쩍 뛰며) 웠따! 믄 말씀이싱게라우? 아니 해필이면 이럴 때 배를 묶어라우? 예에?
임제순: (단호하게) 나는 두말 않는 사람이여!
곰 치: ( ㉣ ) 영감님! 배만은! 배만은!
- 천승세, 「만선」에서 -
㉡에서 곰치는 선주에게 맞서려는 동료 성삼을 다급하게 제지하는 것이므로 ‘비아냥거리는 투로’는 적절하지 않다.
빚 때문에 배를 빼앗길까 두려운 곰치는 선주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 하므로, ‘시끄러웠!’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동료의 입을 막는 말이다.
- ㉠은 이자를 따지는 선주에게 ‘알았음녀’라고 물러서므로 체념 조가 어울린다.
- ㉢은 동료들과의 실랑이 끝에 선주의 말을 기다리는 장면이므로 지친 듯한 태도가 어울린다.
- ㉣은 배를 묶겠다는 선주에게 ‘배만은!’ 하고 매달리므로 애걸 조가 어울린다.
㉠ ㉡ ㉢ ㉣
문맥에 맞는 말은 차례로 시행, 격차, 기반, 고양이다.
정책은 ‘시행’되는 것이고, 문장어와 방언의 벌어진 정도는 ‘격차’, 모스크바어는 표준어의 ‘기반’, 민주 의식은 북돋워져 높아지는 ‘고양’이 어울린다.
- ‘편차’는 평균이나 기준값에서 벗어난 정도를 뜻하므로 두 대상 사이의 차이를 나타내는 자리에 맞지 않는다.
- ‘지양’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고 어떤 것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민주 의식이 커지는 흐름과 반대된다.
- ‘중단’은 단일화 정책이 추진되었다는 문맥과 맞지 않고, ‘방식’은 모스크바어를 토대로 삼았다는 의미를 담지 못한다.
㉡ - 울산과 부산서 11·12일 별 축제 열려 -
㉢ 11일과 12일 저녁 울산과 부산에서 가을밤 별자리를 관찰할 수 있는 축제가 잇따라 펼쳐진다.
㉣ 울산광역시와 한국천문연구원은 11일 오후 5시부터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울산전파천문대에서 ‘울산전파천문대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별 축제’를 연다. 이 축제는 울산광역시 생활과학교실과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가 주관해 2010년부터 해마다 여는, 청소년을 위한 과학 문화 축제이다.
… (하략)
- ○○신문, 20○○. ○○. ○○. -
신문 기사에서 ‘전문’은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여 제시한 부분으로, 대체로 육하원칙에 의거하여 기사 내용의 뼈대를 제공한다. 이는 본문을 요약하는 전문, 배경을 설명하는 전문, 여론을 환기하는 전문, 결과를 제시하는 전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은 언제(11일과 12일 저녁), 어디서(울산과 부산), 무엇을(별자리 관찰 축제) 등 육하원칙의 몇몇 요소로 기사의 요지를 제시한 전문이다.
<보기>에 따르면 전문은 기사 내용을 요약해 뼈대를 제공하는 부분이며, 본문 첫 문장인 ㉢이 이에 해당한다.
- ㉠은 기사의 제목(표제)일 뿐 내용을 요약한 전문이 아니다.
- ㉡은 표제를 보충하는 부제로, 축제 일정과 장소를 알릴 뿐 결과와 원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 ㉣은 구체적 행사 정보를 전하는 본문으로, 여론이나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전문이 아니다.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
이 시는 봄이 ‘마침내’ 온다는 희망과 믿음을 노래하므로, 미래의 절망적 상황을 단언한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에서 보듯, 화자는 더디게라도 찾아오는 봄을 감격스럽게 맞이한다.
- ‘더디게 더디게’, ‘온다’ 등의 반복으로 기다림 끝에 오는 대상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다.
- ‘마침내 올 것이 온다’처럼 단정적 어조로 대상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 봄을 ‘너’라 부르며 한눈 팔고 싸우고 눈 부비는 사람처럼 인격화해 간절한 기다림을 표현한다.
과학 기술의 진보와 이에 발맞춘 눈부신 문명의 진전 과정에서 인간의 열망과 상상력이 우선하였다. 과연 인간이 욕망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았다면 이 문명 세계의 많은 것들을 창조하고 혁신할 수 있었을까?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었다면 비행기는 발명되지 못했을 것이며, 좀 더 빠른 이동 수단을 원하지 않았다면 자동차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껏 상상력은 인류 문명을 가동시켜 온 원동력이었으며 현재 또한 그러하다.
그런 가운데 21세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 신과학들은 이러한 상상력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이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여겨 공상 수준에 그쳤던 일들이 실로 구현되는 상황이 펼쳐지곤 한다. 3D, 아바타, 사이보그, 가상현실, 인공 생명, 유전 공학, 나노 공학 등 21세기 최첨단 과학 기술에 힘입어 상상력의 지평이 넓어졌다. 과거 시대들이 무엇인가를 상상하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기술을 개발하는 시간들이었다면, 21세기는 상상하는 것을 곧 이루어 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글은 상상력으로 실현된 세계가 시대마다 달라졌고 21세기에는 상상을 곧 이루어 내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므로, 그 모습이 변함없었다는 추론은 적절하지 않다.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첫 문장과 시대별 변화 서술이 근거이다.
- 세계관과 가치관이 ‘다양하게 바뀌었다’고 했으므로 현재의 가치를 불변의 절대적 가치로 볼 수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 ‘변화의 배경에는 늘 인간의 열망과 상상력이 가로놓여 있었다’는 서술과 부합한다.
- 21세기 기술이 ‘상상력의 위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서술과 부합한다.
㉠ ㉡ ㉢ ㉣
바른 한자 표기는 運命, 自敍傳, 厭世的, 誠實이다.
運命(운명)은 ‘옮길 운’을 쓰고, 自敍傳(자서전)은 ‘펼 서(敍)’, 厭世的(염세적)은 ‘싫어할 염’, 誠實(성실)은 ‘정성 성’을 쓴다.
- 殞命(운명)은 ‘죽을 운’을 써서 목숨이 끊어짐을 뜻하므로 타고난 운수를 뜻하는 문맥에 맞지 않다.
- 自書傳은 ‘글 서(書)’를 써서 잘못된 표기이다.
- 鹽稅(염세)는 소금에 매기는 세금이고, 成實은 ‘이룰 성’을 써서 정성스러움을 뜻하는 표기가 아니다.
“강 건넛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사온데 오늘 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라고 간청하매, 북곽 선생은 옷깃을 바로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는 것이 아닌가.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루어 / 저기 저 가마솥 세발솥은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흥야(興也)라.”
다섯 놈들이 서로 소곤대기를
“북곽 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진 데에 여우가 사는 굴이 있다더라.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가 있다더라.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의 신을 신으면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애교를 잘 부려서 남에게 이쁘게 보일 수 있다더라. 우리 저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누어 갖도록 하자.”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갔다.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모가지를 두 다리 사이로 들이박고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외면을 했다.
“어허, 유자(儒者)여! 더럽다.”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가서 세 번 절하고 꿇어 앉아 우러러 아뢴다.
“범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자식 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풍운의 조화를 부리시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죄다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 박지원, 「호질」에서 -
이 글은 인물의 행동과 대화로 위선을 풍자할 뿐, 자연 묘사로 주제를 강화하고 있지는 않다.
‘닭이 울고 … 샛별이 반짝이는데’ 같은 구절은 시간 배경을 알리는 정도이고, 주제는 유학자 북곽 선생의 위선과 이중성 비판에 있다.
- 북곽 선생이 읊은 원앙새·가마솥의 시는 동리자에 대한 음심을 넌지시 드러낸다.
- 범을 의인화해 북곽 선생을 꾸짖게 함으로써 유학자의 이중성을 들추고 있다.
- ‘유(儒)는 유(諛)’라 하여 소리가 같은 ‘선비’와 ‘아첨’을 엮은 언어유희로 대상을 비판하고 있다.
‘요즈음 남자들의 절반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의미가 겹치는 표현이 없는 문장이다.
의미 중복은 한자어에 이미 담긴 뜻을 고유어로 다시 덧붙일 때 주로 생긴다.
- ‘투고(投稿)’에 이미 원고를 보낸다는 뜻이 있어 ‘투고한 원고’는 의미가 겹친다.
- ‘도보(徒步)’가 걸어감을 뜻하므로 ‘도보로 걸었다’는 의미가 겹친다.
- ‘승객’에 ‘탄 사람’이, ‘결연(結緣)’에 ‘맺음’이 들어 있어 ‘안에 탄 승객’, ‘결연을 맺은’ 모두 의미가 겹친다.
안중근 의사는 ‘여러 계급의 인사들’과 ‘일본인도 그러하거늘’이라며 일본인들의 생각까지 끌어와 이등 제거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어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한 것이지 결코 자객으로서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전투 행위로 규정한다.
- 첫머리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니’라고 했으므로 논고를 들은 뒤에 진술하고 있다.
- 이등을 동양 평화를 어지럽힌 장본인으로 보고 제거했다고 밝힐 뿐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 ‘이등의 시정 방침은 결코 완비된 것이 아닐진대’라고 하여 그 방침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언어 자살은 명백한 외부의 강압이 없는 언어 교체이므로, 식민 지배의 언어 말살 정책을 그 대표 사례로 보는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언어 말살 정책은 외부 권력이 강제로 언어 사용을 막는 것으로, 언중이 스스로 모어 전달을 그만두는 언어 자살과 성격이 다르다.
- ‘집단적 자각’이 모어 사용을 그만두게 할 수 있다고 했으므로, 모어를 계승하려는 의지 역시 발생 가능성의 변수가 될 수 있다.
- ‘멕시코 정부가 부추겼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서술과 부합한다.
- ‘나는 부모님들처럼 이렇게 살지는 않겠어.’라는 집단적 자각이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서술과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