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는 청동기 시대이며, 이 시기에는 청동 방울 등을 의례 도구로 사용하였다.
자료는 화순 고인돌 유적(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소개하며, 고인돌이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시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덮개돌을 캐던 채석장 흔적도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무덤이다.
-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 거주는 구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 오수전·화천 등 중국 화폐를 통한 교역은 철기 시대의 사실이다.
- 가락바퀴로 실을 뽑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이다.
- 호미·쇠스랑 등 철제 농기구 제작은 철기 시대 이후이다.

자료의 나라는 고구려이며,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이 기록은 대로·패자 같은 관직, 왕족과 대가에게 붙인 고추가 칭호, 본래 국주였던 연노부와 왕실과 혼인한 절노부를 언급하므로 고구려에 관한 내용이다.
- 신성 지역인 소도는 삼한에 있었다.
- 10월 무천은 동예의 제천 행사이다.
- 범금 8조는 고조선의 법이다.
- 화백 회의는 신라의 귀족 회의이다.






(가)는 백제이며, 백제의 문화유산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다.
자료는 백제 제25대 왕 무령왕의 무덤에서 출토된 무령왕릉 석수(무덤 수호 상상의 동물)를 소개한다.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 양식을 돌로 옮긴 백제 무왕 때의 석탑이다.
- 불국사 다보탑은 통일 신라의 석탑이다.
- 벽돌로 층층이 쌓은 전탑은 백제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 가늘고 높게 층을 쌓은 다층탑도 백제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은 신라 선덕 여왕 때의 탑이다.

(가)는 신라 지증왕이며, 그의 재위 시기에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자료는 신라 제22대 왕으로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우경을 장려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 지증왕임을 알 수 있다.
- 불국사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 경덕왕 무렵에 건립되었다.
- 원광의 걸사표 작성은 진평왕 때이다.
- 원종과 애노의 봉기는 신라 말 진성 여왕 때이다.
- 집사부 설치는 진덕 여왕 때이다.

자료는 고구려 멸망(668)이며, 그 영향으로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세워 부흥 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의 이적이 평양성을 포위하자 승려 신성이 성문을 열어 내응하였고, 이적이 평양성을 함락하고 보장왕과 남건을 사로잡았다는 내용이다.
- 윤충의 대야성 함락은 백제 의자왕 때로 고구려 멸망 이전이다.
- 흑치상지의 임존성 거병은 백제 부흥 운동이다.
- 계백의 황산벌 항전은 백제 멸망 직전의 일이다.
- 을지문덕의 살수 대첩은 고구려와 수의 전쟁 때이다.

교서를 내린 왕은 신라 신문왕이며, 그는 국학을 설립하여 유학 교육을 진흥하였다.
자료는 즉위 원년에 김흠돌 등의 반역을 알고도 알리지 않은 병부령 김군관을 자결하게 한 교서로, 신문왕이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고 진골 귀족을 숙청한 사실을 보여 준다.
- 대통력 도입은 고려 공민왕 때이다.
- 거칠부의 국사 편찬은 진흥왕 때이다.
- 독서삼품과 실시는 원성왕 때이다.
- 노비안검법 시행은 고려 광종 때이다.

(가)는 신라(통일 신라)이며, 이 시기에는 백성에게 정전이 지급되었다.
자료는 완도 장도에서 발굴된 목책을 통해 장보고가 국왕의 승인을 받아 설치한 청해진의 본거지를 설명한다. 장보고는 당에서 활동하다 신라로 귀국하였다.
-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던 나라는 고구려이다.
- 삼한통보·해동통보 발행은 고려 숙종 때이다.
- 초량 왜관을 통한 대일 교역은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 담배·면화의 상품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가)는 발해이며, 발해는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고 불렸다.
자료는 발해 재상 오소도가 빈공과 합격 서열을 문제 삼은 일과, 왕자 대봉예가 발해를 신라 위에 두어 달라고 당에 청한 일을 다루고 있다.
- 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이다.
- 수덕만세·정개 연호는 궁예의 태봉이 사용하였다.
- 골품제는 신라의 신분제이다.
- 정사암 회의는 백제의 귀족 회의이다.

밑줄 그은 시기는 신라 하대로, 이 시기에는 진골 귀족의 반란을 진압하는 국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료는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을 소개하며, 선종 승려 보조선사 체징이 활동하던 때 보림사가 9산 선문 중 가지산문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선종 확산은 신라 말의 특징이며, 이때 왕위 쟁탈전과 진골 귀족의 반란이 잦았다.
- 농상집요 소개는 고려 후기의 일이다.
- 팔만대장경 조판은 고려 몽골 침입기의 일이다.
-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와 당의 전쟁 때이다.
- 곤여만국전도 열람은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가)는 견훤이며, 그는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외교 활동을 펼쳤다.
자료는 신라 말기 군인이었던 인물이 무진주를 근거로 세력을 형성하고 이후 완산주에서 나라(후백제)를 세웠다고 설명한다.
- 금마저에 미륵사를 창건한 것은 백제 무왕이다.
- 정치도감 설치는 고려 충목왕 때이다.
- 광평성 등 정치 기구를 마련한 것은 궁예이다.
-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은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이 왕은 고려 성종이며, 그의 재위 시기에 흑창이 의창으로 개편되었다.
자료는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한 왕으로, 12목 설치와 지방관 파견, 국자감 설립을 『고려사』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 양현고 설치는 예종 때이다.
- 광덕·준풍 연호 사용은 광종 때이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은 인종 때이다.
- 신돈의 전민변정 사업은 공민왕 때이다.

(가)는 거란이며, 고려는 광군을 조직하여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자료는 강조가 목종을 시해한 죄를 묻겠다며 침입한 거란의 2차 침입과, 이때 개경이 함락되어 서적이 불타자 황주량이 태조부터 목종까지 7대 사적을 다시 편찬한 일을 다루고 있다.
- 강화도 천도 항전은 몽골에 대한 대응이다.
- 한성의 동평관은 조선이 일본 사신을 접대하던 곳이다.
- 철령위 설치 반발과 요동 정벌 추진은 명에 대한 대응이다.
- 반전도감 설치는 원 간섭기의 일이다.






(가)는 고려의 금속 공예품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이다.
자료는 '고려 공예 특별전'의 전시 유물로, 버드나무 등 물가 풍경을 묘사하고 청동 표면을 얇게 파낸 뒤 은실을 박아 넣은 은입사 기법을 썼다고 설명한다. 긴 목에 첨대가 달리고 몸체에 물가 풍경 무늬가 새겨진 청동 정병이 이에 해당한다.
-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은 칼 모양 유물은 백제의 칠지도이다.
- 뚜껑 덮인 둥근 청동 그릇은 신라 고분에서 나온 호우명 그릇이다.
- 봉황 장식이 달린 향로는 백제 금동 대향로이다.

(가) 국가는 고려이며, 이 시기에는 서적점·다점 등 관영 상점이 운영되었다.
자료는 태안 마도 일대의 물살이 심해 송의 사신 서긍이 관련 기록을 남겼고, 침몰선 수중 발굴에서 (가)의 청자·죽찰이 대규모로 출토되었다고 설명한다. 서긍이 방문한 나라이자 청자를 실어 나르던 나라는 고려이다.
- 동시전 설치는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다.
- 당백전 발행은 흥선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시기 일이다.
- 육의전을 제외한 금난전권 폐지는 조선 정조의 신해통공이다.
- 거란도·영주도를 통한 교역은 발해의 일이다.

(가) 경대승의 도방 설치와 (나) 최우의 정방 설치 사이에는 만적의 난 모의(1198)가 있었다.
(가)는 경대승이 결사대를 집에 머물게 하며 도방을 둔 장면(1179년경)이고, (나)는 최우가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해 인사권을 장악한 장면(1225)이다. 그 사이 최충헌 집권기에 노비 만적이 신분 해방을 내걸고 반란을 모의하였다.
-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 주장과 묘청의 서경 난은 무신 정변 이전의 일이다.
- 김방경의 일본 원정 참여는 원 간섭기의 일이다.
- 최영의 홍산 전투 승리는 고려 말 왜구 격퇴 시기의 일이다.

(가) 인물은 요세로, 법화 사상을 바탕으로 참회와 염불 수행을 강조하였다.
자료는 강진 만덕산 백련사에서 고려 무신 정권기 원묘국사 (가)가 절을 크게 확장하고 백련 결사를 조직해 신앙 결사 운동을 전개했다고 설명한다. 원묘국사는 요세의 시호이다.
- 삼국유사 저술은 일연의 업적이다.
- 해동고승전 편찬은 각훈의 업적이다.
- 화엄일승법계도 작성은 신라 의상의 업적이다.
- 보현십원가 창작은 고려 초 균여의 업적이다.

'이 시기'는 원 간섭기이므로 정동행성에서 회의하는 관리를 볼 수 있었다.
자료는 원의 한림학사 장욱이 지은 '궁중사'로, 많은 여성이 원에 공녀로 끌려가던 시기에 고려 양식의 복식(고려양)이 원 궁궐에서 주목받았다고 설명한다. 정동행성은 원이 일본 원정을 위해 설치한 뒤 내정 간섭 기구로 남은 기관이다.
- 주자감은 발해의 교육 기관이다.
- 전환국의 백동화 주조는 개항기의 일이다.
- 척화비 건립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일이다.
- 별무반의 여진 정벌은 고려 숙종·예종 때의 일이다.

(가) 인물은 최무선으로, 진포에서 왜구를 격퇴하였다.
자료는 그가 중국인 이원에게 염초 제조법을 배워 화약을 시험 제조한 뒤 건의하여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고 설명한다. 최무선은 화포를 활용해 진포 싸움에서 왜선을 크게 무찔렀다.
- 비격진천뢰 개발은 임진왜란 때 이장손의 업적이다.
- 조총 부대를 이끈 나선 정벌 참여는 조선 효종 때의 일이다.
- 근왕병을 이끈 광교산 전투 승리는 병자호란 때의 일이다.
-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 설치된 조선의 군영이다.

밑줄 그은 '법'은 과전법으로, 수신전·휼양전 등의 명목으로 과전의 세습이 가능하였다.
자료에서 도평의사사의 청으로 제정되어 현직과 산직 관료를 18과로 나누고, 양전 사업 후 경기 지역에 한정해 토지를 지급한다고 하였다. 이는 고려 말 신진 사대부가 시행한 과전법의 내용이다.
-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고정한 것은 조선 인조 때의 영정법이다.
- 관청이 전세를 거둬 관리에게 지급한 것은 성종 때의 관수 관급제이다.
- 전지와 시지를 등급에 따라 지급한 것은 고려의 전시과이다.
-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한 것은 영조 때의 균역법이다.

'이 기구'는 사헌부로,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을 관장하였다.
자료는 권근의 상대별곡을 소개하며, 상대가 사간원·홍문관과 함께 3사로 불린 기구의 별칭이고 대사헌·집의·장령 등의 관직을 두었다고 설명한다.
- 왕명 출납은 승정원의 업무이다.
-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가 담당하였다.
- 실록 보관·관리는 춘추관과 사고의 업무이다.
- 반역죄·강상죄 등 중죄인 처벌은 의금부가 맡았다.

(가) 왕은 성종으로,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자료는 국조오례의를 반포하는 등 유교 정치 구현에 힘쓴 왕이 예악 질서 확립을 위해 악학궤범을 편찬하였다고 설명한다. 두 책 모두 조선 성종 때 완성되었다.
-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업적이다.
- 무예도보통지 간행은 정조의 업적이다.
- 구황촬요 배포는 명종 때의 일이다.
- 탕평비 건립은 영조의 업적이다.

자료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국교 재개 과정이므로 기유약조 체결의 배경을 파악하는 탐구가 적절하다.
비변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가문을 대신해 정권을 잡고 화친을 청하며 선왕들의 묘를 파헤친 도적을 잡아 바쳤으니 사신을 보내 회답하는 것이 부득이하다고 아뢰었다. 이후 국교가 재개되고 광해군 때 기유약조(1609)로 교역이 다시 허용되었다.
- 삼별초의 이동 경로는 고려 대몽 항쟁기의 일이다.
-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의 일이다.
- 영선사 파견은 개항기 청에 대한 사절 파견이다.
- 삼정이정청 설치는 1862년 임술 농민 봉기가 계기이다.

밑줄 그은 '왕'은 숙종이며, 재위 중 허적과 윤휴 등 남인이 대거 축출되었다(경신환국).
자료에서 왕은 원자(元子)의 명호를 정한 데 반대 상소를 올린 송시열을 처벌하는 문제를 논하고 있다. 이는 숙종 때 원자 책봉을 둘러싸고 서인이 축출된 기사환국 무렵의 일이다.
- 조광조의 사사는 중종 때 기묘사화이다.
- 윤임 제거는 명종 때 을사사화이다.
- 기축옥사는 선조 때의 일이다.
- 신유박해는 순조 때의 일이다.

(가) 궁궐은 창덕궁으로, 태종이 한양으로 다시 도읍을 옮기며 창건하였다.
자료는 동궐도에 그려진 연경당(효명세자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지은 사대부 가옥 형태의 건물)과 주합루(규장각이 있던 곳)를 소개한다. 이 건물들은 창덕궁 후원에 있다.
- 근정전을 정전으로 삼고 정도전이 전각 명칭을 정한 궁궐은 경복궁이다.
-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다.
- 인목 대비가 광해군에 의해 유폐된 곳은 경운궁(덕수궁)이다.

송파장에서 산대놀이가 벌어지고 고추를 사고파는 모습은 조선 후기의 장시 풍경이다. 이 시기에는 물주의 자금으로 광산을 경영하는 덕대가 등장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장시가 발달하여 송파장 같은 큰 장이 서고, 상인들의 후원으로 탈놀이가 성행하였으며, 광업에서는 물주와 덕대에 의한 분업적 경영이 이루어졌다.
- 벽란도에서 송 상인과 교역한 것은 고려 시대의 모습이다.
- 낙랑군과의 덩이쇠 교역은 변한·가야 시기의 모습이다.
- 경시서가 시전을 감독한 것은 고려·조선 초기의 일로, 조선 세조 때 평시서로 바뀌었다.
- 경성·경원에 무역소를 둔 것은 조선 초기 여진과의 교역 정책이다.

자료의 옥계시사는 기술관 등 중인이 결성한 시사로 위항 문학 발달에 기여하였다. 조선 후기 중인들은 관직 진출 제한을 없애 달라는 소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인은 경제력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여, 철종 때 대규모 소청 운동을 벌였다.
- 장례원(장예원)의 관리를 받은 것은 노비이다.
-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한 것은 신라 6두품이다.
- 사자·조의·선인을 거느린 것은 고구려의 대가이다.
- 소(所)에 거주하며 특정 물품을 생산한 것은 고려의 특수 행정 구역 주민이다.

숭정제를 마지막 황제로 하고 조선 후기에 이미 멸망한 왕조이므로 (가)는 명이다. 조선은 명에 하정사·천추사 등 조천사를 보냈다.
조선은 명과 사대 관계를 맺고 정기·부정기 사절을 파견하였으며, 명 멸망 후에도 사대부 사이에 숭명 의식이 이어졌다.
- 백두산정계비는 청과의 경계를 정한 것이다.
- 보빙사는 미국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되었다.
- 회답 겸 쇄환사는 임진왜란 후 일본에 파견되었다.
- 검교태보의 직을 받은 것은 후삼국·고려 초 중국 오대 왕조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은 신미양요이다. 이때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항전하였다.
미군은 초지진·덕진진을 점령한 뒤 광성보를 공격하였고, 이후 흥선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웠다.
- 청군의 개입으로 종결되고 흥선 대원군이 톈진으로 압송된 것은 임오군란이다.
- 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된 것은 병인양요이다.
- 이용태가 안핵사로 파견된 것은 고부 농민 봉기 수습 과정이다.

조선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으로, 이를 계기로 김기수가 수신사로 파견되었으므로 (가)는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이다. 그 결과 부산 외 2곳(원산·인천)이 개항되었다.
- 최혜국 대우를 최초로 규정한 것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다.
- 통감부 설치의 계기는 을사늑약이다.
- 천주교 포교를 허용한 것은 조·프 수호 통상 조약이다.
- 방곡령 선포 근거를 명시한 것은 조·일 통상 장정이다.

정부가 세우고 좌원과 우원을 두어 젊은 관리와 양반 자제에게 영어·지리 등을 가르친 (가)는 육영공원이다. 육영공원은 헐버트, 길모어 등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였다.
- 7재라는 전문 강좌를 둔 것은 고려 국자감이다.
- 최초의 근대적 여성 교육 기관은 이화 학당이다.
- 육영공원은 1886년에 세워져 교육입국 조서(1895) 반포보다 앞선다.
- 사관 양성을 위해 서양식 군사 훈련을 한 것은 연무공원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김홍집 내각이 추진하여 태양력을 채택한 개혁은 을미개혁이다. 을미개혁 때 건양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다.
을미개혁에서는 단발령 실시, 종두법 시행, 소학교 설치 등도 추진되었다.
- 한성 사범 학교 관제 반포는 2차 갑오개혁 때이다.
- 통리기무아문과 12사 설치는 개항 이후 1880년의 일이다.
-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은 광무개혁 때이다.
- 공사 노비법 혁파와 과부 재가 허용은 1차 갑오개혁 때이다.

러시아의 절영도 저탄소 조차 요구에 반대하고 한러 은행 거래에 이의를 제기한 (가)는 독립협회이다. 독립협회는 만민 공동회를 열어 이권 수호를 주장하였다.
독립협회는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하는 등 자주 국권·자유 민권 운동을 펼쳤다.
- 치안 유지법은 1925년 일제가 사회주의 탄압을 위해 제정하였다.
-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의 일로 독립협회 해산 이후이다.
-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 일제의 식민 정책이다.
- 국민 대표 회의는 1923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노선 갈등으로 열렸다.

기사는 인천과 경성(영등포)을 잇는 경인 철도 개통(1899)을 보도하고 있다. 그 이후에 볼 수 있는 모습은 덕수궁 석조전 공사(1900년 착공, 1910년 완공)이다.
- 박문국의 한성순보 인쇄는 1883년의 일이다.
- 군국기무처의 개혁안 논의는 1894년 1차 갑오개혁 때이다.
-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은 1884년 갑신정변 때이다.
- 교련병대(별기군) 훈련은 1881년의 일이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의병이 일어난 시기는 정미의병(1907) 때이다. 이 시기 허위 등이 참여한 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해산 군인의 합류로 의병의 전투력이 강화되었고,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다.
-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은 을사의병(1906) 때이다.
- 활빈당의 대한사민논설 발표는 1900년 무렵이다.
- 이만손의 영남 만인소는 1881년 개화 정책 반대 운동이다.
-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는 1920년 독립군의 활동이다.

헌병 경찰 제도가 실시되고 경복궁에서 조선 물산 공진회(1915)가 열린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다. 이 시기에 회사령이 공포되었다.
회사령은 회사 설립을 총독의 허가제로 하여 민족 기업의 성장을 억제하였다.
- 애국반 편성과 미곡 공출제는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전시 체제의 일이다.
- 미쓰야 협정은 1925년에 체결되었다.
-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 문화 통치기에 설립되었다.

'내 살림 내 것으로'라는 제목 아래 조선 사람이 짠 것을 입고, 만든 것을 먹고, 지은 것을 쓰자고 호소하는 선전지는 물산 장려 운동의 것이다. 이 운동은 조선 관세령 폐지 등으로 일본 상품 유입이 늘 것을 우려하여 확산되었다.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시작하여 전국으로 퍼졌으며, 토산품 애용과 자급자족을 주장하였다.
- 집강소 설치는 동학 농민 운동 때이다.
-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이다.
- 황국 중앙 총상회는 1898년 상권 수호 운동 과정에서 설립되었다.
- 국문 연구소는 1907년 대한 제국 학부에 설치되었다.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은 육군 주만 참의부의 편성이다.
(가)는 북로 군정서가 화룡현·삼도구·청산리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운 청산리 전투(1920)이고, (나)는 총사령 지청천이 이끈 한국 독립군이 쌍성현을 공격한 쌍성보 전투(1932)이다. 참의부는 1920년대 전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직할 무장 부대로 압록강 대안 지역에 조직되어 두 사건 사이에 해당한다.
- 박상진의 대한 광복회 결성, 임병찬의 독립 의군부 조직은 1910년대 국내 비밀 결사로 (가) 이전이다.
-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1909년으로 (가) 이전이다.
- 조선 민족 전선 연맹 산하 조선 의용대 창설은 1938년으로 (나) 이후이다.

'이 운동' 이후에 있었던 사실은 신간회 창립이다.
순종의 국장일에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부른 운동은 6·10 만세 운동(1926)이다. 이 운동을 계기로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 필요성이 커져 이듬해 신간회(1927)가 창립되었다.
- 만세보 창간과 태극 서관 설립은 대한 제국 시기 애국 계몽 운동기의 일이다.
-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은 1910년대 연해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 의열단 조직은 1919년으로 6·10 만세 운동 이전이다.

밑줄 그은 시기의 정책은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통한 독립운동 탄압이다.
자료의 시기는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1938)을 시행해 인력과 물자를 수탈하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으로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구금할 수 있게 하였다.
- 신문지법 제정과 메가타 주도의 화폐 정리 사업은 국권 피탈 이전 통감부·고문 정치 시기의 일이다.
- 조선 광업령 공포와 조선 태형령 시행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의 정책이다.

(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며, 그 활동으로 삼균주의를 기초로 한 건국 강령 발표가 옳다.
중일 전쟁 이후 이동을 거듭해 충칭에 근거지를 두고 산하에 한국광복군을 둔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 임시 정부는 충칭 시기에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 영릉가 전투 승리는 양세봉이 이끈 조선 혁명군의 활동이다.
-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의 활동이다.
- 서전서숙 설립은 이상설 등이 북간도에서 한 일이다.
- 신흥 강습소 설립은 신민회 인사들이 서간도에서 한 일이다.

일제 강점기 사회 문화의 변화 사례로 문화 주택, 개량 한옥 등 새로운 주택 양식의 등장이 적절하다.
교사는 경평 축구 대항전, 모던 걸, 백화점처럼 일제 강점기의 사회 문화 변화를 묻고 있다. 이 시기 도시를 중심으로 서양식 요소를 들인 문화 주택과 개량 한옥이 등장하였다.
- 거짓말이야 등의 노래가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과 새마을 운동 전개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이다.
- 컬러 방송 시작은 1980년대 초의 일이다.
- 경부 고속 철도 개통은 2000년대의 일이다.

(가) 지역은 하와이이며, 이곳의 민족 운동으로 대조선 국민군단 결성이 옳다.
'포와(布哇)'는 하와이의 한자 표기로, 1900년대 초 한인들이 이주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였다. 하와이에서는 박용만이 대조선 국민군단을 결성해 군사 훈련을 실시하였다.
- 경학사 설립은 서간도(삼원보)에서 있었던 일이다.
- 권업회 조직과 권업신문 발간은 연해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 중광단 결성은 북간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 2·8 독립 선언서 발표는 일본 도쿄의 유학생들이 한 일이다.

(가) 인물은 김규식이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 협상을 추진하였다.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 강화 회의에 파견되고, 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으며,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 합작 위원회를 결성한 인물은 김규식이다. 그는 1948년 김구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
- 백산 상회 설립은 안희제의 활동이다.
- 서유견문 집필은 유길준의 활동이다.
-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의 활동이다.
-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장으로서의 활동은 미주 지역 인사의 활동으로 김규식과 관계없다.

'전쟁'은 6·25 전쟁이며, 전쟁 중의 사실이 아닌 것은 애치슨 라인 발표이다.
애치슨 라인은 미국이 한반도를 태평양 방위선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한 것으로, 전쟁 발발 이전(1950년 1월)의 일이다.
- 부산의 임시 수도 지정, 다부동 일대 전투는 전쟁 초기 낙동강 방어선 시기의 일이다.
- 인천 상륙 작전은 전세를 뒤집은 1950년 9월의 작전이다.
- 국민 방위군 설치법 제정은 중국군 참전 이후 병력 확보를 위해 전쟁 중에 이루어졌다.

'정부'는 박정희 정부이며, 이 시기에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베트남 전쟁에 국군을 파병하고 베트남 특수를 누린 것은 1960년대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같은 시기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연속으로 추진되었다.
- 3당 합당으로 민주 자유당이 창당된 것은 노태우 정부 시기이다.
-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는 1980년 신군부의 일이다.
- 호주제 폐지는 2000년대 노무현 정부 시기이다.
- 유상 매수·유상 분배 원칙의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시기이다.

(가)는 5·18 민주화 운동이며, 전개 과정에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19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와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일어났고,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해 시민군을 조직하였다.
- 장면 내각 출범의 배경, 김주열의 사망은 4·19 혁명과 관련된 내용이다.
-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 규명 요구는 6월 민주 항쟁과 관련된 내용이다.
- 3·1 민주 구국 선언은 유신 체제기의 저항 활동이다.

연설문을 발표한 정부는 김영삼 정부이며, 이 시기에 국민학교의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다.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옛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를 추진한 것은 김영삼 정부이다. 같은 정부 시기에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
- 국민 교육 헌장 제정은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 서울 아시안 게임 개최와 삼청 교육대 설치는 전두환 정부(신군부) 시기이다.
-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 출범은 노무현 정부 시기이다.

뉴스가 보도된 정부는 노무현 정부이며, 이 시기의 통일 노력은 10·4 남북 정상 선언 발표이다.
대통령이 남북 정상 회담을 위해 군사 분계선을 도보로 통과한 것은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때이며, 이 회담에서 10·4 남북 정상 선언이 발표되었다.
-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은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은 노태우 정부 시기이다.
-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 최초 성사는 전두환 정부 시기이다.
- 평창 동계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은 문재인 정부 시기이다.

밑줄 그은 '시기'는 외환 위기로 IMF 구제 금융을 받던 시기(김대중 정부)이며, 이때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이 시행되었다.
자료는 IMF에서 구제 금융을 받고 기업이 긴축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노동자가 대기발령 끝에 실직하고, 배우자가 직업 전선에 뛰어든 경험을 구술한 것이다. 대량 실직과 빈곤층 증가에 대응해 김대중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계층에게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제정하여 2000년부터 시행하였다.
- 37년 만의 야간 통행 금지 해제는 전두환 정부 때(1982)이다.
- 귀속 재산 운영을 위한 신한 공사 설립은 미군정기의 일이다.
- 다문화 가족 지원법 제정은 이명박 정부 때(2008)이다.
- 부산 APEC 정상 회의 개최는 노무현 정부 때(2005)이다.

(가) 지역은 진주이며, 진주에서 유계춘이 주도하여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진주 농민 봉기(1862)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 적절하다.
자료에서 '남강을 품은' 지역, 대평리 출토 청동기 시대 유물,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를 이끈 김시민 장군 전공비, 백정 차별 철폐를 내건 형평 운동 기념탑(조선 형평사 창립지)이 모두 진주를 가리킨다.
-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킨 근거지는 웅천주(공주)이다.
- 강주룡이 고공 시위를 벌인 곳은 평양 을밀대이다.
-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 때 피란한 곳은 복주(안동)이다.
- 전태일이 분신한 곳은 서울 평화시장 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