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므로, 군장이 죽으면 고인돌을 만들었다는 설명은 신석기시대에 해당하지 않는다.
고인돌은 계급이 분화되고 군장(지배자)이 등장한 청동기시대에 그 권력을 보여 주는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신석기시대는 계급이 없는 평등 사회였다.
-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이나 그물을 만든 것은 신석기시대의 원시적 수공업이다.
- 동물 뼈나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팔찌 등 장신구는 신석기시대 예술품으로 출토된다.
- 신석기시대에 일부 지역에서 농경이 시작되어 조·피·수수 등을 재배하였다.
○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 배상한다.
○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집의 노비로 삼는데, 스스로 죄를 면제받고자 하는 자는 50만을 내야 한다.
제시된 법은 고조선의 8조법이며, '동맹'은 고구려의 제천 행사이므로 고조선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사람을 죽이면 사형', '상처를 입히면 곡식으로 배상',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50만을 내면 면제'는 『한서』 지리지에 전하는 8조법의 내용이다. 동맹은 고구려가 10월에 지낸 제천 행사이다.
- 고조선은 왕 아래 상, 대부, 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다.
- 위만은 준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어 위만 조선을 세웠다.
- 위만 조선은 중국 한과 한반도 남부(진)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이익을 얻었다.
-『삼국유사』-
'호암사', '정사암'에서 재상을 뽑았다는 단서로 (가)는 백제이며, 6좌평과 16관등제를 마련한 것이 옳은 설명이다.
정사암 제도는 백제의 귀족들이 모여 재상을 선출하던 회의 관행이다. 백제는 고이왕 때 6좌평과 16관등의 관제를 마련한 것으로 전한다.
-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 '인안'은 발해 무왕이 사용한 독자적 연호이다.
- 골품에 따라 관등·관직 승진을 제한한 것은 신라의 골품제이다.
다섯 천축국을 순례하고 둔황에서 발견된 기행문을 남긴 (가)는 혜초이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여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겼으며, 이 책은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되어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원광은 신라의 승려로 화랑에게 세속 5계를 제시하였다.
- 원효는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을 내세우고 아미타 신앙을 보급하였다.
- 의상은 당에 유학한 뒤 화엄 사상을 정립하고 부석사를 창건하였다.
-『고려사절요』-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된 (가)는 화약과 화포를 만들던 화통도감이다.
고려 말 최무선은 원의 염초 장인에게서 화약 제조 기술을 익혀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하였고, 여기서 만든 화포는 왜구 격퇴(진포 대첩)에 활용되었다.
-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설치한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 기구이다.
- 대장도감은 몽골 침입기에 재조대장경(팔만대장경) 조판을 위해 설치되었다.
- 식목도감은 법제와 격식을 논의하던 고려의 독자적 회의 기구이다.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가)는 『직지심체요절』이며, 현존하는 금속활자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서 금속활자로 간행되었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최윤의 등이 지은 의례서는 『상정고금예문』으로, 기록상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고 전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 몽골 침략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은 것은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이다.
- 우리 풍토에 맞는 처방과 약재를 기록한 것은 『향약구급방』 등 향약 의서이다.
어재연이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한 것은 신미양요(1871) 때의 일이므로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병인양요(1866)는 병인박해로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도가 처형된 것을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 신미양요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국이 침공한 사건이다.
- 프랑스 함대는 강화부를 점령하였다.
-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의궤 등을 약탈하였다.
-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도 처형(병인박해)이 침공의 원인이 되었다.
김구가 주도하고 윤봉길이 폭탄을 던진 '이 의거'는 훙커우 공원 의거이며, 이를 일으킨 한인 애국단에서는 이봉창도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한인 애국단은 김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침체를 타개하려고 조직한 단체로, 이봉창의 일왕 저격 시도와 윤봉길의 훙커우 공원 의거를 일으켰다.
- 고종의 밀명을 받아 결성된 단체는 임병찬의 독립의군부이다.
- 신채호의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은 단체는 의열단이다.
-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와해된 단체는 신민회이다.
1.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마음껏 발표하라.
1. 일체의 행동은 무엇보다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제시된 주장은 「기미 독립 선언서」에 덧붙은 공약 3장이므로, 이를 내세운 민족 운동은 3.1 운동이다.
공약 3장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순간까지' 민족의 의사를 발표하되 질서를 존중하고 배타적 감정에 치닫지 말 것을 강조하였다.
- 6.10 만세 운동은 순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일어난 학생·사회주의 계열 중심의 만세 운동이다.
- 물산 장려 운동은 '조선 사람 조선 것'을 내세운 경제적 자립 운동이다.
-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한민족 1천만이 한 사람 1원씩'을 내세워 대학 설립을 추진한 운동이다.
1. 군기창과 화약고를 점령할 것
1. 군수에게 아첨하여 백성을 침탈한 탐욕스러운 아전을 쳐서 징벌할 것
1. 전주 감영을 함락하고 서울로 곧바로 향할 것
'고부성 격파', '조병갑', '전주 감영 함락' 등의 결의는 동학 농민 운동의 사발통문 내용이며, 이 운동에서 농민군은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시도하였다.
농민군은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해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 혜상공국 폐지 등의 정강을 발표한 것은 갑신정변이다.
- 별기군에 비해 차별받던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것은 임오군란이다.
- 13도 창의군을 조직하고 서울 진공 작전을 추진한 것은 정미의병이다.
불교는 수신의 근본, 유교는 치국의 근원이라는 상소는 최승로의 시무 28조이며, 이를 받아들인 성종 대에 전국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였다.
고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수용하여 유교 정치 이념을 확립하고, 12목을 설치해 지방관을 처음 파견하였다.
- 개경에 나성을 쌓은 것은 거란의 침입 이후인 현종 때이다.
- 전시과 제도를 처음(시정 전시과) 실시한 것은 경종 때이다.
- 노비안검법을 실시해 호족 세력을 약화시킨 것은 광종 때이다.
강홍립에게 비밀 명령을 내려 후금과 통하게 한 '왕'은 광해군이며, 그 재위 기간에 허준이 『동의보감』을 편찬하였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다. 허준은 선조 때부터 편찬하던 『동의보감』을 광해군 때 완성하였다.
- 대동법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고, 전국으로 확대된 것은 숙종 때이다.
-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일어난 것은 현종 때이다.
- 청과 국경을 정하기 위해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것은 숙종 때이다.
(나) 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 유일한 5층 목탑이다.
(가)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나)는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배흘림기둥과 주심포 양식을 갖춘 고려의 대표 목조 건축물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조선 시대 5층 목탑이다.
- 김제 금산사 미륵전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3층 불전으로, 5층 목탑이 아니다.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조선 시대 건축물로, 고려 시대 건축물이 아니다.
(나) 전세를 풍흉에 관계없이 토지 1결당 미곡 4 ~ 6두로 고정시켰다.
(다) 조세는 토지 1결당 수확량 300두의 10분의 1 수취를 원칙으로 삼았다.
(라) 조세를 토지 비옥도와 풍흉의 정도에 따라 1결당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로 하였다.
시기 순서는 (다) 과전법 → (라) 공법 → (나) 영정법 → (가) 균역법이다.
(다) 1결당 수확량 300두의 10분의 1을 거둔 것은 고려 말 과전법이다. (라) 비옥도(전분 6등)와 풍흉(연분 9등)에 따라 20두~4두를 거둔 것은 세종의 공법이다.
(나) 풍흉에 관계없이 4~6두로 고정한 것은 인조 때의 영정법이다. (가) 지주에게 결작 2두를 부담시킨 것은 영조 때 균역법의 보완책이다.
재물을 우물에 비유하여 소비를 통한 생산 촉진을 주장한 인물은 박제가이며, 그는 청과의 통상과 수레의 이용을 주장하였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절약보다 적절한 소비가 생산을 자극한다고 보고, 청과의 통상, 수레·선박 이용을 강조하였다.
-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정제두이다.
-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은 이익 등이 주장하였다.
- 지전설을 주장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한 인물은 홍대용이다.
분산된 여성운동을 통일하고 조선 자매 전체의 역량을 단결하자는 취지문을 발표한 단체는 근우회이며, 봉건적 인습 타파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 등을 주장하였다.
근우회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여성이 함께 결성한 여성 운동 단체이다.
- 호주제 폐지 운동은 광복 이후 현대의 여성 단체들이 전개하였다.
- 「여권통문」은 대한 제국 시기 서울 북촌 양반 부인들이 발표하였다.
- 어린이날 제정과 잡지 『어린이』 창간은 방정환 등 천도교 소년회가 주도하였다.
제2조 대한 제국의 정치는 이전으로부터 500년이 내려왔고 이후로도 만세에 걸쳐 변치 않을 전제정치이다.
제3조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하니 공법에서 말한바 자립 정체이다.
제4조 대한국 신민이 대황제가 향유하는 군권을 침해할 행위가 있으면 신민의 도리를 잃은 자로 인정할 것이다.
| 구간 | 시작 | 끝 |
|---|---|---|
| (가) | 갑신정변 발생 | 갑오개혁 실시 |
| (나) | 갑오개혁 실시 | 독립협회 해산 |
| (다) | 독립협회 해산 | 러·일전쟁 발발 |
| (라) | 러·일전쟁 발발 | 을사늑약 체결 |
제시된 법령은 대한국 국제(1899)로, 반포 시기는 독립협회 해산과 러·일전쟁 발발 사이인 (다)이다.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을 향유', '만세에 걸쳐 변치 않을 전제정치'라는 단서는 광무개혁기 고종이 황제권 강화를 위해 반포한 대한국 국제를 가리킨다. 독립협회가 1898년 해산된 이듬해인 1899년에 반포되었고, 러·일전쟁은 1904년에 발발하였다.
- (가) 갑신정변(1884)~갑오개혁(1894): 아직 대한 제국 수립(1897) 이전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 (나) 갑오개혁(1894)~독립협회 해산(1898): 대한 제국은 수립되었으나 대한국 국제는 독립협회 해산 이후에 반포되었다.
- (라) 러·일전쟁(1904)~을사늑약(1905): 대한국 국제 반포보다 뒤의 시기이다.
(나) 진주의 난민들이 소동을 일으킨 것은 오로지 전 우병사 백낙신이 탐욕을 부려 수탈하였기 때문입니다. … (중략) … 이에 민심이 들끓고 노여움이 일제히 폭발해서 전에 듣지 못하던 변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다) 여러 주ㆍ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보내지 않아 나라의 씀씀이가 궁핍하게 되었으므로 왕이 사자를 보내 독촉하였다. 이로 인해 도적들이 곳곳에서 벌떼처럼 일어났다.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를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다.
(라) 평서 대원수는 급히 격문을 띄우노라. … (중략) … 조정에서는 서쪽 땅을 더러운 흙처럼 버렸다. 심지어 권세 있는 집의 노비들도 서쪽 사람을 보면 반드시 평안도 놈이라 일컫는다. 서쪽 땅에 있는 자로서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겠는가.
시기 순서는 (다) 원종·애노의 난 → (가) 김사미·효심의 난 → (라) 홍경래의 난 → (나) 진주 농민 봉기이다.
(다) '원종과 애노', '사벌주'는 신라 진성여왕 때의 봉기이다. (가) '김사미', '효심'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봉기이다.
(라) '평서 대원수'와 평안도 차별은 순조 때 홍경래의 난이다. (나) '백낙신'의 수탈에 맞선 진주 농민 봉기는 철종 때 임술 농민 봉기의 시작이다.
(나) 제1조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 아울러 조선의 청에 대한 공물 헌납 등은 장래에 완전히 폐지한다.
제4조 청국은 군비 배상금으로 은 2억 냥을 일본국에 지불할 것을 약정한다.
(가)는 1882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나)는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이며, 한·청 통상 조약은 1899년에 체결되어 그 사이의 사실이 아니다.
한·청 통상 조약은 청일 전쟁 이후 대한 제국과 청이 대등한 관계에서 맺은 조약이므로 (나) 이후의 일이다.
-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은 두 시기 사이에 있었다.
- 김옥균 등의 갑신정변(1884)은 두 시기 사이에 있었다.
- 청과 일본 사이의 전쟁(청일 전쟁, 1894)은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이전에 발발하였다.
제12조 농지의 분배는 농지의 종목, 등급 및 농가의 능력 기타에 기준한 점수제에 의거하되 1가당 총경영면적 3정보를 초과하지 못한다.
헌법에 의거해 농지를 농민에게 분배하고 1가당 3정보 상한을 둔 법령은 농지 개혁법이며, 유상 매수·유상 분배 방식으로 시행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농지 개혁법을 제정해 정부가 지주의 농지를 유상 매수하고 농민에게 유상 분배하였다.
- 농지 개혁은 6.25 전쟁 등으로 차질을 겪었으나 중단되지 않고 시행되었다.
- 주택 개량, 도로 및 전기 확충 등을 추진한 것은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이다.
- 농지 개혁의 결과 소작농이 줄고 자작농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