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사람에게 "처음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한 뒤 자기 이름을 밝히는 자기소개가 언어 예절에 맞다.
자신을 소개할 때는 인사말 뒤에 이름을 말하면 되며, 상대를 높이는 '뵙다'를 써서 겸양의 뜻도 갖추었다.
- "회장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계시다'는 사람을 직접 높이는 말이라 '말씀'에 쓸 수 없고, 간접 높임은 "말씀이 있으시겠습니다"로 해야 한다.
- 시누이에게 "고모"라고 부르는 것: 남편의 여동생은 '아가씨' 또는 '아기씨'로 부르는 것이 표준 호칭이다.
- 남에게 자기 아내를 "제 부인"이라 하는 것: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이므로 '아내', '집사람', '안사람' 등으로 가리켜야 한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이 글의 주된 서술 방식은 대상을 눈앞에 보이듯 그려 내는 묘사이다.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처럼 시각·청각 이미지로 달밤의 산길 풍경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 설명: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알기 쉽게 풀어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 글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장면 제시가 중심이다.
- 유추: 익숙한 대상에 빗대어 낯선 대상의 성질을 추리해 밝히는 방식으로, 이 글에는 그런 추리 구조가 없다.
- 분석: 대상을 구성 요소로 나누어 살피는 방식으로, 달밤 풍경을 요소별로 나누어 설명하지 않는다.
연출자가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유효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즉 저작권 보호 가능성이 있는 창작물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창작적인 표현을 도용당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연출자가 주관적으로 창작성이 있다고 느끼는 부분일지라도 객관적인 시각에서는 이미 공연 예술 무대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 기법일 수 있고, 저작권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아이디어의 요소와 보호 가능한 요소인 표현이 얽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쉬운 예로 셰익스피어를 보자. 그의 명작 중에 선대에 있었던 작품에 의거하지 않고 탄생한 작품이 있는가. 대부분의 연출자는 선행 예술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창작에 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따라서 무대연출 작업 중에서 독보적인 창작을 걸러내서 배타적인 권한인 저작권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흔치 않은 경우이고, 후발 창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저작권법은 창작자에게 개인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창작을 장려함과 동시에 일반 공중이 저작물을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목표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독보적인 무대연출에 저작권을 부여해도 후발 창작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진술이다.
지문은 독보적인 창작에 배타적 권한인 저작권을 부여하는 것이 "후발 창작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하여 정반대로 서술한다.
- 창작적 표현의 도용 여부 판단이 어렵다는 진술: "창작적인 표현을 도용당했는지 밝혀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와 일치한다.
- 유효한 저작권 소유가 전제라는 진술: "우선 그가 유효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와 일치한다.
- 저작권법의 목표에 관한 진술: 창작 장려와 일반 공중의 원활한 이용이라는 "두 가지 가치의 균형"을 목표로 한다는 마지막 문장과 일치한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원형 평면의 중심에 감시탑을 설치해 놓고, 주변으로 빙 둘러서 죄수들의 방이 배치된 감시 시스템이다. 감시탑의 내부는 어둡게 되어 있는 반면 죄수들의 방은 밝아 교도관은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교도관을 바라볼 수 없다. 죄수가 잘못했을 때 교도관은 잘 보이는 곳에서 처벌을 가한다. 그렇게 수차례의 처벌이 있게 되면 죄수들은 실제로 교도관이 자리에 ㉠ 있을 때조차도 언제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공포감에 의해서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이렇게 권력자에 의한 정보 독점 아래 ㉡ 다수가 통제된다는 점에서 파놉티콘의 디자인은 과거 사회 구조와 본질적으로 같았다.
현대사회는 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를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시놉티콘(synopticon)의 시대가 되었다. 시놉티콘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인터넷의 ㉢ 동시성이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신변 노출 없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가 오면서 언론과 통신이 발달했고, ㉣ 특정인이 정보를 수용하고 생산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비판적 인식 교류와 부정적 현실 고발 등 네티즌의 활동으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전환이 일어났다.
적절하지 않은 고쳐 쓰기는 ㉡ '다수'를 '소수'로 바꾸는 것이다.
파놉티콘은 소수의 권력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다수의 죄수를 감시·통제하는 구조이므로, "권력자에 의한 정보 독점 아래 다수가 통제된다"는 원문이 맞다.
- ㉠ '있을'을 '없을'로: 교도관이 실제로 없을 때조차 스스로를 감시한다는 맥락이므로 '없을'로 고치는 것이 맞다.
- ㉢ '동시성'을 '익명성'으로: 근거 문장이 "신변 노출 없이" 비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므로 '익명성'이 맞다.
- ㉣ '특정인이'를 '누구나가'로: 다수가 권력자를 감시하는 시놉티콘의 맥락상 정보의 수용·생산 주체는 '누구나'여야 한다.
㉠ 산(山)새도 오리나무
위에서 운다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영(嶺) 넘어가려고 그래서 울지
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
오늘도 하룻길은
㉡ 칠팔십 리(七八十里)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
㉢ 불귀(不歸), 불귀, 다시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
십오 년 정분을 못 잊겠네
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새도 오리나무
㉣ 위에서 운다
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김소월, 「산」 -
가장 적절한 이해는 ㉡ '칠팔십 리'가 화자 앞에 놓인 방랑길을 비유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하룻길은 / 칠팔십 리", "돌아서서 육십 리는 가기도 했소"처럼 하루하루 먼 길을 오가는 모습으로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의 고단함을 드러낸다.
- ㉠ 산새: 영을 넘어가려고 우는 산새는 고개를 넘지 못하는 화자의 처지와 동일시되는 감정 이입 대상이지, 상반되는 처지가 아니다.
- ㉢ 불귀: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와 귀향의 좌절을 강조할 뿐 이국 지향 의식과는 무관하다.
- ㉣ 위에서 운다: 산새의 울음은 화자의 슬픔·애상을 대변하는 것이지 분노의 정서가 아니다.
"같이 가시지. 내 보기엔 좋은 여자 같군."
"그런 거 같아요."
"또 알우? 인연이 닿아서 말뚝 박구 살게 될지. 이런 때 아주 뜨내기 신셀 청산해야지."
영달이는 시무룩해져서 역사 밖을 멍하니 내다보았다. 백화는 뭔가 쑤군대고 있는 두 사내를 불안한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영달이가 말했다.
"어디 능력이 있어야죠."
"삼포엘 같이 가실라우?"
"어쨌든……."
영달이가 뒷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오백 원짜리 두 장을 꺼냈다.
"저 여잘 보냅시다."
영달이는 표를 사고 삼립빵 두 개와 찐 달걀을 샀다. 백화에게 그는 말했다.
"우린 뒤차를 탈 텐데……. 잘 가슈."
영달이가 내민 것들을 받아 쥔 백화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그 여자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무도…… 안 가나요?"
"우린 삼포루 갑니다. 거긴 내 고향이오."
영달이 대신 정 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개찰구로 나가고 있었다. 백화가 보퉁이를 들고 일어섰다.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게요."
백화는 개찰구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백화는 눈이 젖은 채로 웃고 있었다.
"내 이름 백화가 아니에요. 본명은요…… 이점례예요."
여자는 개찰구로 뛰어나갔다. 잠시 후에 기차가 떠났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에서 -
적절하지 않은 감상은 영달이 백화를 신뢰할 수 없어서 같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달은 정 씨의 권유에 "그런 거 같아요"라며 백화를 좋게 보았지만 "어디 능력이 있어야죠"라고 답한다. 함께 떠나지 못한 이유는 불신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와 경제적 능력에 대한 자각이다.
- 정 씨의 권유: "같이 가시지. 내 보기엔 좋은 여자 같군."이라고 영달에게 백화와 함께 떠나기를 권한다.
- 백화의 불안: "뭔가 쑤군대고 있는 두 사내를 불안한 듯이 지켜보고" 있어 영달의 선택을 몰라 불안해함을 알 수 있다.
- 본명을 밝힌 일: 표와 먹을 것을 받고 눈이 충혈된 채 "정말, 잊어버리지…… 않을게요."라고 한 뒤 본명을 밝히므로 고마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가) 과거에는 고통만을 안겨 주었던 지정학적 조건이 이제는 희망의 조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는 사람과 물자가 모여드는 동북아 물류와 금융, 비즈니스의 중심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도해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합니다.
(나) 100년 전 우리는 수난과 비극의 역사를 겪었습니다. 해양으로 나가려는 세력과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세력이 한반도를 가운데 놓고 싸움을 벌였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국권을 상실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다) 지금은 무력이 아니라 경제력이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세계적인 경제 강국을 건설하고 있습니다. 우수한 인력과 세계 선두권의 정보화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다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물류 기반도 손색이 없습니다.
(라) 그 아픔은 분단으로 이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불행한 역사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도 새로운 희망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변방으로 머물러 왔던 동북아시아가 북미·유럽 지역과 함께 세계 경제의 3대 축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순서는 (나)-(라)-(다)-(가)이다.
(나)가 100년 전 국권을 상실한 "아픔"을 제시하고, (라)가 "그 아픔은 분단으로 이어져서"로 받아 과거를 마무리한 뒤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연다.
이어 (다)가 경제력이 국력을 좌우하는 지금 우리가 갖춘 역량을 제시하고, (가)가 지정학적 조건이 "이제는 희망의 조건"이 되었다며 동북아 시대를 주도하자는 결론으로 맺는다.
- (가)로 시작하는 배열: (가)는 과거와 현재를 종합해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는 결론부여서 첫머리에 올 수 없다.
- (나) 뒤에 (가)를 두는 배열: (라)의 지시어 '그 아픔'이 가리킬 대상이 (나)의 '국권을 상실하는 아픔'이므로 (나) 바로 뒤에는 (라)가 와야 한다.
A: 예은 씨, 오늘 회의 내용을 팀원들에게 공유해 주시면 좋겠네요.
B: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오늘 회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서 메일로 공유하면 되겠지요?
A: (고개를 끄덕이며) 맞습니다.
B: 네, 그럼 회의 내용은 개조식으로 요약하고, 팀장님을 포함해서 전체 팀원에게 메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A: 예은 씨, 그런데 개조식으로 회의 내용을 요약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B: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겠네요. 개조식으로 요약할 경우 회의 내용이 과도하게 생략되어 이해가 어려울 수 있겠네요.
가장 적절한 설명은 A와 B가 공감의 표지를 드러내며 상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A와 B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라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상대의 말에 동의·공감함을 나타낸다.
- A가 요약 방식을 제안했다는 설명: 개조식 요약은 B가 제안한 방식이고, A는 그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 B가 A와 다른 입장이라는 설명: B는 "그렇겠네요"라며 A의 문제 제기에 동의한다.
- A가 과도한 생략 문제를 명시했다는 설명: A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라고만 물었고, 과도한 생략으로 이해가 어렵다는 내용은 B가 말했다.
올해 A시는 '청소년 의회 교실' 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표함으로써 청소년들이 지방의회의 역할과 기능을 이해하고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과 자질을 함양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청소년 의회 교실이란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의회 체험 프로그램을 의미한다. 여기에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은 A시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인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이다. 이 조례에 따르면 시의회 의장은 의회 교실의 참가자 선정 및 운영 방안을 결정할 수 있다. 운영 방안에는 지방자치 및 의회의 기능과 역할, 민주 시민의 소양과 자질 등에 관한 교육 내용이 포함된다. 또한 시의회 의장은 고유 권한으로 본회의장 시설 사용이 가능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최근 A시는 '수업 시간 스마트폰 사용 제한에 관한 조례안'을 주제로 본회의장에서 첫 번째 의회 교실을 운영하였다. 참석 학생들은 1일 시의원이 되어 의원 선서를 한 후 주제에 관한 자유 발언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관련 조례안을 상정한 후 찬반 토론을 거쳐 전자 투표로 표결 처리하였다. 학생들이 의회 과정 전반에 대해 체험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진행 순서를 의원 선서, 조례안 상정, 자유 발언 순으로 본 진술이다.
지문은 "의원 선서를 한 후 주제에 관한 자유 발언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관련 조례안을 상정한 후 찬반 토론을 거쳐 전자 투표로"라고 하므로, 실제 순서는 의원 선서 → 자유 발언 → 조례안 상정 → 찬반 토론 → 전자 투표이다.
- 참여 대상: "A시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인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과 일치한다.
- 교육 내용 결정: 시의회 의장은 운영 방안을 결정할 수 있고 운영 방안에 민주 시민의 소양과 자질 등에 관한 교육 내용이 포함되므로 일치한다.
- 본회의장 지원: 시의회 의장은 본회의장 시설 사용을 지원할 수 있고, 실제로 첫 의회 교실이 본회의장에서 운영되었으므로 일치한다.
'점잖다'에 대한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 이 말은 '젊지 아니하다'가 줄어든 '젊잖다'에서 온 말이다.
'젊지 않다'는 뜻이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듬직하다'로 바뀐 것으로, '점잖이'에 '하다'가 붙어 생긴 말이 아니다.
- 가난: 한자어 '간난(艱難)'에서 'ㄴ'이 탈락해 이루어진 말이라는 설명은 옳다.
- 어리다: '어리석다'에서 '나이가 적다'로 뜻이 바뀐 의미 이동의 예라는 설명은 옳다.
- 수탉: 'ㅎ' 종성을 가진 '숳'과 'ᄃᆞᆰ'이 합쳐지며 'ㅎ'과 'ㄷ'이 'ㅌ'으로 축약된 말이라는 설명은 옳다.
예전에 '혐오'는 대중에게 관심을 끄는 말이 아니었지만, 요즘에는 익숙하게 듣는 말이 되었다. 이는 과거에 혐오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문제가 폭발하듯 가시화되었다는 뜻이다. 혐오 현상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괴물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거기엔 자체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이 반드시 선행한다.
이 문제를 바라볼 때 주의 사항이 있다. 혐오나 증오라는 특정 감정에 집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혐오가 주제인데 거기에 집중하지 말라니, 얼핏 이율배반처럼 들리지만 이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왜 혐오가 나쁘냐고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답한다. "나쁜 감정이니까 나쁘다.", "약자와 소수자를 차별하게 만드니까 나쁘다." 이 대답들은 분명 선량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성격을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 혐오나 증오라는 감정에 집중할수록 우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잘못을 범하기 쉬워진다.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곤란하다. 우리가 문제시하고 있는 각종 혐오는 자연 발생한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사회문제의 기원이나 원인이 아니라, 발현이며 결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혐오는 증상이다. 증상을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매몰되면 곤란하다. 우리는 혐오나 증오 그 자체를 사회악으로 지목해 도덕적으로 지탄하는 데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
이 글의 주제는 혐오 현상을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혐오가 "사회문제의 기원이나 원인이 아니라, 발현이며 결과"이고 "혐오는 증상"이라며, 감정 자체를 지탄하는 데서 그치지 말라고 강조한다.
- 인과관계가 없다는 진술: 지문은 "인과관계를 혼동하면 곤란하다"며 혐오를 원인의 결과로 보므로 인과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 선량한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진술: 선량한 마음에서 나온 대답도 "문제의 성격을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계한다.
- 감정에 집중할수록 문제가 잘 보인다는 진술: 감정에 집중할수록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는 지문과 반대이다.
有此茅亭好 이 멋진 ㉠ 초가 정자 있고
綠林細逕通 수풀 사이로 오솔길 나 있네
微吟一杯後 술 한 잔 하고 시를 읊조리면서
高座百花中 온갖 꽃 속에서 ㉡ 높다랗게 앉아 있네
丘壑長看在 산과 계곡은 언제 봐도 그대로건만
樓臺盡覺空 ㉢ 누대는 하나같이 비어 있구나
莫吹紅一點 붉은 꽃잎 하나라도 흔들지 마라
老去惜春風 늙어갈수록 ㉣ 봄바람이 안타깝구나
- 심환지, 「육각지하화원소정염운(六閣之下花園小亭拈韻)」 -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 '초가 정자'가 시간적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를 매개한다는 것이다.
'초가 정자'는 화자가 술 한 잔 하고 시를 읊조리는 공간적 배경을 제시할 뿐,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거나 시상 전개를 매개하지 않는다.
- ㉡ 높다랗게: 온갖 꽃 속에 높이 앉아 시를 읊는 모습에서 세속을 벗어난 초연한 태도가 드러난다.
- ㉢ 누대: 변함없는 산과 계곡과 달리 하나같이 비어 있는 누대는 쇠락한 인간사를 암시한다.
- ㉣ 봄바람: "붉은 꽃잎 하나라도 흔들지 마라"는 당부로 보아 꽃잎을 흔드는 부정적 이미지로 기능한다.
각축(角逐)은 '뿔 각'과 '쫓을 축'으로 이루어져 사람의 몸을 지시하는 글자가 없다.
'각축'은 서로 이기려고 다투며 덤벼드는 것을 뜻하며, 여기서 '角'은 짐승의 뿔이다.
- 슬하(膝下): '膝'은 무릎을 뜻해 사람의 몸을 지시한다.
- 수완(手腕): '手'는 손, '腕'은 팔뚝을 뜻한다.
- 발족(發足): '足'은 발을 뜻한다.
(가) ㉠ 계월이 여자 옷을 벗고 갑옷과 투구를 갖춘 후 용봉황월(龍鳳黃鉞)과 수기를 잡아 행군해 별궁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군사를 시켜 보국에게 명령을 전하니 보국이 전해져 온 명령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러나 보국은 예전에 계월의 위엄을 보았으므로 명령을 거역하지 못해 갑옷과 투구를 갖추고 군문에 대령했다.
이때 계월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보국이 어찌 이다지도 거만한가? 어서 예를 갖추어 보이라."
호령이 추상과 같으니 군졸의 대답 소리로 장안이 울릴 정도였다. 보국이 그 위엄을 보고 겁을 내어 갑옷과 투구를 끌고 몸을 굽히고 들어가니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 작자 미상, 「홍계월전」에서 -
(나) 장끼 고집 끝끝내 굽히지 아니하여 ㉡ 까투리 홀로 경황없이 물러서니, 장끼란 놈 거동 보소. 콩 먹으러 들어갈 제 열두 장목 펼쳐 들고 꾸벅꾸벅 고개 조아 조츰조츰 들어가서 반달 같은 혀뿌리로 들입다 꽉 찍으니, 두 고패 둥그레지며 …(중략)… 까투리 하는 말이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 남자라고 여자의 말 잘 들어도 패가하고, 계집의 말 안 들어도 망신하네."
까투리 거동 볼작시면, 상하평전 자갈밭에 자락머리 풀어 놓고 당굴당굴 뒹굴면서 가슴치고 일어앉아 잔디풀을 쥐어뜯어 애통하며, 두 발로 땅땅 구르면서 붕성지통(崩城之痛) 극진하니, 아홉 아들 열두 딸과 친구 벗님네들도 불쌍타 의논하며 조문 애곡하니 가련 공산 낙망천에 울음소리뿐이로다.
- 작자 미상, 「장끼전」에서 -
가장 적절한 설명은 ㉠ 계월이 갈등 타개에 적극적인 반면, ㉡ 까투리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계월은 군령을 내리고 "어서 예를 갖추어 보이라"고 호령해 보국을 굴복시키지만, 까투리는 장끼가 고집을 굽히지 않자 "홀로 경황없이 물러서"고 일이 벌어진 뒤 애통해할 뿐이다.
- 둘 다 우월한 지위라는 설명: 계월은 보국을 호령하는 우위에 있지만, 까투리는 장끼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물러서므로 우월하다고 보기 어렵다.
- 계월은 비판, 까투리는 옹호라는 설명: 까투리는 "저런 광경 당할 줄 몰랐던가"라며 장끼의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 호의적·적대적 반응의 대비: 까투리는 주변으로부터 "불쌍타 의논하며 조문 애곡"하는 동정적 반응을 얻으므로 적대적 반응이 아니다.
'끼이는'의 쓰임이 올바르다. '끼이다'는 벌어진 사이에 들어가 빠지지 않게 되다는 뜻의 표준어이며, '끼다'는 그 준말이다.
나머지 표현은 불필요하게 '-이-'를 덧붙인 비표준형이다.
- '되뇌이는': 기본형이 '되뇌다'이므로 '되뇌는'으로 써야 한다.
- '헤매이고': 기본형이 '헤매다'이므로 '헤매고'로 써야 한다.
- '메이기': 목이 막히는 뜻의 기본형은 '메다'이므로 '메기'로 써야 한다.
'변호사'의 한자 표기가 옳지 않다. 바른 표기는 辯護士로, '일 사(事)'가 아니라 '선비 사(士)'를 쓴다.
'변호사'는 법률 전문 자격을 가진 사람을 가리키므로 직업인을 나타내는 '士'가 붙는다.
- 소방관(消防官): 사라질 소, 막을 방, 벼슬 관으로 바르게 표기했다.
- 과학자(科學者): 과목 과, 배울 학, 사람 자로 바르게 표기했다.
- 연구원(硏究員): 갈 연, 연구할 구, 인원 원으로 바르게 표기했다.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된 요인으로 많은 것들이 거론되어 왔지만, 의학사의 관점에서 볼 때 흥미롭고 논쟁적인 원인은 페스트이다. 페스트가 유럽의 인구를 격감시킴으로써 사회 경제 구조가 급변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재래의 전통이 지니고 있던 강력한 권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예컨대 사람들은 이 무시무시한 질병을 예측하지 못한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불신하게 되었으며, 페스트로 인해 '사악한 자'들만이 아니라 '선량한 자'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죽는 것을 보고 이전까지 의심하지 않았던 신과 교회의 막강한 권위에 대해서도 회의하게 되었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죽음에 대한 경험은 사람들을 여러 방향에서 변화시켰다. 사람들은 거리에 시체가 널려 있는 광경에 익숙해졌고, 인간의 유해에 대한 두려움 또한 점차 옅어졌다. 교회에서 제시한 세계관 및 사후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삶과 죽음 같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기 시작했다. 중세의 지적 전통에 대한 의구심은 고대의 학문과 예술, 언어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으며, 이에 따라 신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과 복종 대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사유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술사에서 두드러지게 포착된다. 인간에 대한 관심의 증대에 따라 인체의 아름다움이 재발견되었고, 인체를 묘사하는 다양한 화법도 등장했다. 인체에 대한 관심은 보이는 부분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의학적 전통을 여전히 신봉하던 의사들에게 해부학적 지식은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던 반면, 당시의 미술가들은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해부학자이기도 할 만큼 인체의 내부 구조를 탐색하는 데 골몰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함으로써 고대의 학문과 언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는 진술이다.
지문에서 고대의 학문·예술·언어에 대한 재평가는 "중세의 지적 전통에 대한 의구심"에서 비롯되었고, 인체의 아름다움 재발견은 그 뒤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인과 관계가 뒤바뀌었다.
- 전염병이 르네상스 요인 중 하나라는 진술: 많은 요인 가운데 "흥미롭고 논쟁적인 원인은 페스트"라는 서술과 일치한다.
- 무차별적 죽음이 교회 권위를 약화시켰다는 진술: '선량한 자'들까지 죽는 것을 보고 신과 교회의 권위에 회의하게 되었다는 서술과 일치한다.
- 해부학이 의사보다 미술가의 관심을 끌었다는 진술: 의사들은 해부학 지식을 불필요하게 여긴 반면 미술가들은 인체 내부 구조 탐색에 골몰했다는 서술과 일치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는 글씨를 쓰다 남은 먹을 버리기 아까워 그린 듯이 갈필(渴筆)의 거친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서툴러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대가의 덤덤한 듯, 툭 던지는 한마디는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밑줄 친 부분에 어울리는 한자 성어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촌철살인은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짤막한 말로 상대의 급소를 찌르거나 감동시킴을 이른다. 덤덤하게 툭 던지는 한마디가 "예리한 비수가 되어" 의식을 헤집는다는 표현과 맞아떨어진다.
- 巧言令色(교언영색): 아첨하려고 교묘하게 꾸민 말과 얼굴빛을 뜻하므로 덤덤하고 예리한 한마디와 반대이다.
- 言行一致(언행일치): 말과 행동이 일치함을 뜻해 짧은 말의 날카로움과는 무관하다.
- 街談巷說(가담항설): 길거리나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뜻해 맥락과 맞지 않는다.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따르면, 만약 어떤 것이 과학일 경우 거기에서 사용되는 문장은 유의미하다. 그들은 유의미한 문장의 기준으로 소위 '검증 원리'라고 불리는 것을 제안했다. 검증 원리란, 경험을 통해 참이나 거짓을 검증할 수 있는 문장은 유의미하고 그렇지 않은 문장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 두 문장을 예로 생각해 보자.
(가) 달의 다른 쪽 표면에 산이 있다.
(나) 절대자는 진화와 진보에 관계하지만, 그 자체는 진화하거나 진보하지 않는다.
위 두 문장 중 경험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비록 현실적으로 큰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가)는 분명히 경험을 통해 진위를 밝힐 수 있다. 즉 우리는 (가)의 진위를 확정하기 위해서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가)는 검증할 수 있고, 유의미한 문장이라고 판단한다. 그럼 (나)는 어떠한가? 우리는 무엇을 경험해야 (나)의 진위를 확정할 수 있는가?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그런 것은 없다고 주장하고, 이에 (나)는 검증할 수 없고 과학에서 사용될 수 없는 무의미한 문장이라고 말한다.
가장 적절한 추론은 논리실증주의자들에 따르면 무의미한 문장을 사용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전제는 '과학이다 → 사용되는 문장이 유의미하다'이다. 이 명제의 대우인 '사용되는 문장이 무의미하다 → 과학이 아니다'도 반드시 참이다.
- 과학의 문장들만이 유의미하다는 추론: 전제의 역('유의미하다 → 과학이다')에 해당하므로 필연적으로 도출되지 않는다.
- 아직 경험되지 않은 것을 언급한 문장은 무의미하다는 추론: (가)처럼 아직 경험하지 않았어도 무엇을 경험해야 할지 알면 검증 가능하므로 유의미하다.
- 거짓인 문장은 무의미하다는 추론: 검증 원리는 참이나 거짓을 검증할 수 있으면 유의미하다고 하므로, 거짓으로 검증된 문장도 유의미하다.
컴퓨터에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나아가 컴퓨터에 도덕적 의무를 귀속시킬 수 있을까? 컴퓨터는 다양한 전기회로로 구성되어 있고, 물리법칙, 프로그래밍 방식, 하드웨어의 속성 등에 따라 필연적으로 특정한 초기 상태로부터 다음 상태로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상태에서 세 번째 상태로 이동하고, 이러한 과정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즉 컴퓨터는 결정론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시스템에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결정론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스템의 중요한 특징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 결과가 하나로 고정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스템에는 항상 하나의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그런 뜻에서 결정론적 지배를 받는다는 것과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자유의지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정론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시스템은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는 시스템에 도덕적 의무를 귀속시킬 수 없음은 당연하다.
<보 기>
ㄱ. 컴퓨터는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으며 도덕적 의무의 귀속 대상일 수도 없다.
ㄴ. 도덕적 의무를 귀속시킬 수 있는 시스템은 결정론적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ㄷ. 어떤 선택을 할 때 그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시스템은 자유의지를 가지지 않는다.
ㄱ, ㄴ, ㄷ이 모두 추론된다.
지문의 논리는 '컴퓨터는 결정론적 시스템', '결정론적 시스템 → 자유의지 없음', '자유의지 없음 → 도덕적 의무 귀속 불가', '다른 선택 가능성은 자유의지의 필요조건'이다.
- ㄱ: 컴퓨터는 결정론적 시스템이므로 자유의지가 없고, 따라서 도덕적 의무도 귀속시킬 수 없다.
- ㄴ: '결정론적 → 자유의지 없음 → 의무 귀속 불가'를 이은 뒤 대우를 취하면 '의무 귀속 가능 → 결정론적 지배를 받지 않음'이 된다.
- ㄷ: '자유의지가 있다 →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의 대우로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다 → 자유의지가 없다'가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