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주무관: AI에 대한 국민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설명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최 주무관: ㉠ 저도 요즘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요.
김 주무관: ㉡ 그런데 어떻게 준비해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에요.
최 주무관: 설명회에 참여할 청중 분석이 먼저 되어야겠지요.
김 주무관: 청중이 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알면 준비할 때 유용하겠네요.
최 주무관: ㉢ 그럼 청중의 관심 분야를 파악하려면 청중의 특성 중에서 어떤 것들을 조사하면 좋을까요?
김 주무관: ㉣ 나이, 성별, 직업 등을 조사할까요?
가장 적절한 것은 ㉠이 상대의 의견에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주무관이 설명회 개최의 필요성을 말하자 최 주무관은 "저도 요즘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어요"라며 같은 생각임을 드러낸다.
- ㉡을 정중하게 직접 질문한다고 본 설명: ㉡은 '고민이에요'로 끝나는 평서문으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뿐 질문하지 않는다.
- ㉢을 우회적 반대로 본 설명: ㉢은 청중의 어떤 특성을 조사할지 의견을 구하는 질문이며 반대 의사가 담겨 있지 않다.
- ㉣을 반박으로 본 설명: ㉣은 나이·성별·직업 조사를 제안하는 의문문으로, 상대 의견을 반박하지 않는다.
독서는 아이들의 전반적인 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가) 그에 따르면 뇌의 전두엽은 상상력을 관장하는데, 책을 읽으면 상상력이 자극되어 전두엽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나) A교수는 책을 읽을 때와 읽지 않을 때의 뇌 변화를 연구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 이처럼 책을 많이 읽으면 전두엽이 훈련되어 전반적인 뇌 발달의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그 결과는 교육 현장에서 실증된 바 있다.
독서를 많이 한 아이는 학교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뿐 아니라 언어 능력도 발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자연스러운 배열은 (나)-(가)-(다)이다.
(나)가 연구자 'A교수'를 처음 소개하고, (가)의 "그에 따르면"이 그 연구 내용을 이어 받으며, (다)의 "이처럼"이 앞 내용을 정리해 교육 현장의 실증으로 넘어간다.
- (가)를 맨 앞에 둘 수 없는 이유: '그'가 가리킬 대상(A교수)이 먼저 나와야 한다.
- (다)를 앞에 두는 배열: '이처럼'은 전두엽 훈련의 근거가 제시된 뒤에야 쓸 수 있다.
- (다)가 마지막인 근거: '교육 현장에서 실증된 바'가 마지막 문장의 학교 성적·언어 능력 이야기와 바로 이어진다.
- ㉠ 지원은 자는 동생을 깨웠다.
- 유선은 도자기를 ㉡ 만들었다.
- 물이 ㉢ 얼음이 되었다.
- ㉣ 어머나, 현지가 언제 이렇게 컸지?
적절하지 않은 것은 ㉢을 부사어로 본 설명이다.
'물이 얼음이 되었다'에서 '얼음이'는 서술어 '되다' 앞에 와서 문장을 완성하는 보어이다.
- ㉠ '지원은': 동생을 깨운 동작의 주체이므로 주어가 맞다.
- ㉡ '만들었다': '유선은(주어)'과 '도자기를(목적어)'을 요구하는 서술어가 맞다.
- ㉣ '어머나': 감탄사로 다른 성분과 직접 관련을 맺지 않는 독립어가 맞다.
- 서구의 문화를 ㉠ 맹종하는 이들이 많다.
- 안일한 생활에서 ㉡ 탈피하여 어려운 일에 도전하고 싶다.
- 회사의 생산성을 ㉢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자.
- 연못 위를 ㉣ 부유하는 연잎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부유하는'을 '헤엄치는'으로 바꾼 것이다.
'부유(浮遊)하다'는 물 위나 물속, 공기 중에 떠다니다라는 뜻으로, 연잎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나타낸다. 스스로 움직여 나아가는 '헤엄치다'와는 뜻이 다르다.
- ㉠ '맹종(盲從)하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턱대고 따르다 → '무분별하게 따르는'이 적절하다.
- ㉡ '탈피(脫皮)하다': 일정한 상태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나다 → '벗어나'가 적절하다.
- ㉢ '제고(提高)하다': 수준이나 정도를 끌어올리다 → '끌어올리기'가 적절하다.
(가) 청산(靑山)은 내 뜻이오 녹수(綠水)ᄂᆞᆫ 님의 정(情)이 녹수(綠水)ㅣ 흘너간들 청산(靑山)이야 변(變)ᄒᆞᆯ손가 녹수(綠水)도 청산(靑山)을 못 니저 우러 녜여 가ᄂᆞᆫ고.
(나) 청산(靑山)ᄂᆞᆫ 엇뎨ᄒᆞ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ᄂᆞᆫ 엇뎨ᄒᆞ야 주야(晝夜)애 긋디 아니ᄂᆞᆫ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ᄒᆞ리라.
적절하지 않은 것은 (나)가 시각적 심상과 청각적 심상을 활용한다는 설명이다.
(나)는 '청산'이 '만고애 프르르며'처럼 시각적 심상은 쓰지만, 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청각적 심상은 드러나지 않는다.
- (가)의 대조: 변하지 않는 '청산(내 뜻)'과 흘러가 버리는 '녹수(님의 정)'를 대조해 임과 이별한 화자의 상황을 제시한다.
- 대구: (가)는 '청산은 내 뜻이오 / 녹수는 님의 정이', (나)는 '청산은 엇뎨하야 … / 유수는 엇뎨하야 …'로 대구를 이룬다.
- 설의적 표현: (가)는 '변할손가', (나)는 '긋디 아니는고'로 묻는 형식을 빌려 화자의 정서를 드러낸다.
교환가치는 거래를 통해 발생하는 가치이며, 사용가치는 어떤 상품을 사용할 때 느끼는 가치이다. 전자가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객관적이라면, 후자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다. 상품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섞여 있는데, 교환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나’에게 사용가치가 없다면 해당 상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백만 원짜리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 공연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등의 댓글들을 보고서 애초에 관심도 없던 이 공연의 티켓을 샀다. 그에게 그 공연의 사용가치는 처음에는 없었으나 많은 댓글로 인해 사용가치가 있을 것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 공연에서 조금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 사례에서 볼 때 건강한 소비를 위해서는 구매하려는 상품의 사용가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가에 대한 고민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어떤 상품의 사용가치가 결정될 때, 그 상품은 ‘나’에게 쓸모없는 골칫덩이가 될 수 있다.
중심 내용은 상품을 살 때 사용가치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결정된 것인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글은 댓글에 휩쓸려 공연 티켓을 산 사례를 든 뒤, "사용가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 교환가치가 큰 상품을 사야 한다는 진술: 글은 교환가치가 높아도 사용가치가 없으면 사지 않는다고 하여 교환가치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 두 가치를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진술: 글의 초점은 두 가치의 균형이 아니라 사용가치가 결정되는 과정에 있다.
- 다른 사람의 평가를 반영해야 한다는 진술: 글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면 상품이 '쓸모없는 골칫덩이'가 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조선 후기에 서학으로 불린 천주학은 ‘학(學)’이라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 종교적인 관점에서보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여졌다. 당시의 유학자 중 서학 수용에 적극적인 이들까지도 서학을 무조건 따르자고 ㉡ 주장하지는 않았는데, 서학은 신봉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조선 사회를 바로잡고 발전시키기 위해 새로운 학문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외부에서 유입된 사유 체계에는 양명학이나 고증학 등도 있어서 서학이 ㉢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학을 검토하며 어떤 부분은 수용했지만, 반대로 어떤 부분은 ㉣ 지향했다.
가장 적절한 수정은 ㉣ '지향했다'를 '지양했다'로 고치는 것이다.
'어떤 부분은 수용했지만, 반대로 어떤 부분은'과 호응하려면 '어떤 것을 하지 않다'는 뜻의 '지양(止揚)'이 와야 한다. '지향(志向)'은 어떤 목표로 뜻이 쏠리는 것이라 문맥과 반대된다.
- ㉠: '학(學)'이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학문으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이므로 지금 표현이 맞고, 순서를 바꾸면 의미가 뒤집힌다.
- ㉡: 서학이 '신봉의 대상이 아니라 분석의 대상'이었다는 이유와 이어지려면 무조건 따르자고 '주장하지는 않았다'가 맞다.
- ㉢: 양명학·고증학 같은 다른 사유 체계도 있었다는 내용이므로 '유일한 대안은 아니었다'가 맞다.
능숙한 필자와 미숙한 필자는 글쓰기 과정 중 ‘계획하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이 과정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이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다. 글쓰기에서 계획하기는 글쓰기의 목적 수립, 주제 선정, 예상 독자 분석 등을 포함한다. 이 중 예상 독자 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 ) 때문이다. 글을 쓸 때 독자의 수준에 비해 너무 어려운 개념과 전문용어를 사용한다면 독자가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 글쓰기는 필자가 글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행위라는 점을 고려하면 계획하기 단계에서 반드시 예상 독자를 분석해야 한다.
빈칸에는 예상 독자 분석이 필자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 들어가야 한다.
빈칸 뒤에서 독자 수준에 맞지 않는 용어는 이해를 어렵게 한다고 하고, "글쓰기는 필자가 글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행위"라고 마무리한다.
- 계획하기가 첫 단계라는 내용: 계획하기의 위치를 말할 뿐, 그중 예상 독자 분석이 중요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 어려운 개념·전문용어를 어느 정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 글은 독자 수준에 비해 어려운 용어를 쓰면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여 방향이 반대이다.
- 독자의 배경지식으로 목적과 주제가 결정된다는 내용: 글에서 목적 수립·주제 선정은 독자 분석과 나란히 놓인 별개 요소로 제시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
적절하지 않은 것은 글 쓰는 행위로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을 열망한다는 해석이다.
화자는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해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로 끝맺으며, 사랑을 되찾기보다 이별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낸다.
- 대상 호명: '밤들아', '안개들아', '촛불들아', '종이들아' 등 사랑의 기억이 담긴 대상들을 부르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다.
- '빈집'의 상징: 사랑을 잃은 뒤 텅 비어 버린 화자의 내면을 나타낸다.
- 영탄형 어조: '잘 있거라'를 되풀이하며 이별의 정서를 부각한다.
반드시 갚는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그는 마치 성경책 위에다 오른손을 얹고 말하듯이 엄숙한 표정을 했다. 하마터면 나는 잊을 뻔했다. 그가 적시에 일깨워 주었기 망정이지 안 그랬더라면 빌려주는 어려움에만 골똘한 나머지 빌려줬다 나중에 돌려받는 어려움이 더 클 거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 할 뻔했다. 그렇다. 끼니조차 감당 못 하는 주제에 막벌이 아니면 어쩌다 간간이 얻어걸리는 출판사 싸구려 번역 일 가지고 어느 해가*에 빚을 갚을 것인가.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그리고 기왕 피할 바엔 저쪽에서 감히 두말을 못 하도록 야멸치게 굴 필요가 있었다.
“병원 이름이 뭐죠?” “원 산부인과입니다.” “지금 내 형편에 현금은 어렵군요. 원장한테 바로 전화 걸어서 내가 보증을 서마고 약속할 테니까 권 선생도 다시 한번 매달려 보세요. 의사도 사람인데 설마 사람을 생으로 죽게야 하겠습니까. 달리 변통할 구멍이 없으시다면 그렇게 해 보세요.”
내 대답이 지나치게 더디 나올 때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도전적이던 기색이 슬그머니 죽으면서 그의 착하디착한 눈에 다시 수줍음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원장이 어리석은 사람이길 바라고 거기다 희망을 걸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그 사람은 나한테서 수술 비용을 받아 내기가 수월치 않다는 걸 입원시키는 그 순간에 벌써 알아차렸어요.”
-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서 -
※ 해가(奚暇): 어느 겨를
가장 적절한 것은 서술자가 등장인물이 되어 다른 인물의 행동을 진술한다는 설명이다.
작중 인물인 '나'가 '그'(권 선생)의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고 전하는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처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진술한다.
- 전지적 위치라는 설명: '나'는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처럼 상대의 속마음을 추측할 뿐 단정하지 못한다.
- 주인공이 유년 시절을 회상한다는 설명: 지문은 현재의 돈 문제를 둘러싼 대화이며 유년 회상이 없다.
- 주관을 배제한 외부 관찰자라는 설명: "책임이 따르는 동정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처럼 '나'의 생각이 직접 드러난다.
은지: 최근 국민 건강 문제와 관련해 ‘설탕세’ 부과 여부가 논란인데, 나는 설탕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면 당 함유 식품의 소비가 감소하게 되고, 비만이나 당뇨병 등의 질병이 예방되니까 국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야.
운용: 설탕세를 부과하면 당 소비가 감소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니?
은지: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보면 당이 포함된 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면 이에 비례해 소비가 감소한다고 나와 있어.
재윤: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설탕세 부과가 질병을 예방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당 섭취와 질병 발생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어.
적절하지 않은 것은 운용이 은지의 주장에 반대한다는 분석이다.
운용은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니?"라고 근거를 확인하는 질문을 했을 뿐, 설탕세 부과에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 은지의 첫 번째 발언: '설탕세' 부과 여부가 논란이라며 화제를 제시한다.
- 은지의 두 번째 발언: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들어 소비 감소라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한다.
- 재윤의 발언: 당 섭취와 질병 발생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며 질병 예방이라는 근거를 부정한다.
- 우리 회사는 올해 최고 수익을 창출해서 전성기를 ( ㉠ )하고 있다.
- 그는 오래 살아온 자기 명의의 집을 ( ㉡ )하려 했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다.
- 그들 사이에 ( ㉢ )이 심해서 중재자가 필요하다.
- 제가 부족하니 앞으로 많은 ( ㉣ )을 부탁드립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에 매수(買受)를 넣는 것이다.
뒤에 "사려는 사람이 없다"가 오므로 집을 파는 상황이며, 물건을 팔아넘긴다는 뜻의 매도(賣渡)가 알맞다. '매수(買受)'는 물건을 사서 넘겨받는다는 뜻이라 반대이다.
- ㉠ 구가(謳歌): 행복한 처지나 기쁜 마음을 거리낌 없이 나타내어 누리다는 뜻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다'가 자연스럽다.
- ㉢ 알력(軋轢):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하는 것으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문맥에 맞다.
- ㉣ 편달(鞭撻): 경계하고 격려한다는 뜻으로, '많은 편달을 부탁드립니다'처럼 겸손한 부탁에 쓴다.
쓰임이 올바르지 않은 것은 '걷잡아서'이다. 이 문맥에는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하여 헤아린다는 뜻의 '겉잡다'를 써서 '겉잡아서 천 명이 넘게'라고 해야 한다.
'걷잡다'는 한쪽으로 치우쳐 흘러가는 형세를 붙들어 잡는다는 뜻으로, 주로 '걷잡을 수 없는 사태'처럼 부정 표현과 어울려 쓴다.
- '힘에 부치는': '부치다'는 모자라거나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므로 '힘에 부치다'가 맞다.
- '알음이 있던': '알음'은 서로 아는 관계라는 뜻이므로 바르게 쓰였다.
- '저절로 닫혔다': '닫다'의 피동사 '닫히다'로, 문이 저절로 닫힌 상황에 맞다.

올바른 조합은 長官·補償·決裁이다.
부처의 우두머리는 '長官', 국유지 편입으로 생긴 손해를 갚아 주는 것은 '補償', 상관에게 안건을 승인받는 것은 '決裁'이다.
- 將官: 장성급 군인을 이르는 말로, 복지부의 우두머리를 가리킬 수 없다.
- 報償: 남에게 진 빚이나 은혜를 갚는 것으로, 피해를 메워 주는 문맥에는 補償을 쓴다.
- 決濟: 대금을 주고받아 거래를 끝맺는 것으로, 팀장에게 서류를 올려 승인받는 문맥에는 決裁가 맞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존재일 수 없다. 사회 속에서 여럿이 모여 ‘복수(複數)’의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복수의 상태로 살아가는 우리는 종(種)적인 차원에서 보면 보편적이고 동등한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각 유일무이성을 지닌 ‘단수(單數)’이기도 하다. 즉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 고유한 인격체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보편적 복수성과 특수한 단수성을 겸비한 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다원적 존재이다. 이러한 존재들로 구성된 다원적 사회에서는 어떠한 획일화도 시도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포용하는 공존의 태도가 필요하다. 공동체 정화 등을 목적으로 개별적 유일무이성을 제거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다원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유일무이성을 보존하는 제도가 보편적 복수성을 침해한다는 추론이다.
지문은 "개별적 유일무이성을 제거하는 것은 … 다원성을 파괴하는 일"이라고 할 뿐, 유일무이성 보존이 복수성을 해친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우리는 두 성질을 '겸비한 채' 살아간다고 한다.
- '단수'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진술: "개별적으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존재일 수 없다"와 일치한다.
- 포용적 공존 진술: "타인을 포용하는 공존의 태도가 필요하다"와 일치한다.
- 단수성 제거가 다원성을 파괴한다는 진술: 마지막 문장과 일치한다.
매우 치라 소리 맞춰, 넓은 골에 벼락치듯 후리쳐 딱 붙이니, 춘향이 정신이 아득하여, “애고 이것이 웬일인가?” 일자(一字)로 운을 달아 우는 말이, “일편단심 춘향이 일정지심 먹은 마음 일부종사 하쟀더니 일신난처 이 몸인들 일각인들 변하리까? 일월 같은 맑은 절개 이리 힘들게 말으시오.”
“매우 치라.” “꽤 때리오.” 또 하나 딱 부치니, “애고.” 이자(二字)로 우는구나. “이부불경 이내 마음 이군불사와 무엇이 다르리까? 이 몸이 죽더라도 이도령은 못 잊겠소. 이 몸이 이러한들 이 소식을 누가 전할까? 이왕 이리 되었으니 이 자리에서 죽여 주오.”
“매우 치라.” “꽤 때리오.” 또 하나 딱 부치니, “애고.” 삼자(三字)로 우는구나. “삼청동 도련님과 삼생연분 맺었는데 삼강을 버리라 하소? 삼척동자 아는 일을 이내 몸이 조각조각 찢겨져도 삼종지도 중한 법을 삼생에 버리리까? 삼월삼일 제비같이 훨훨 날아 삼십삼천 올라가서 삼태성께 하소연할까? 애고애고 서러운지고.”
-「춘향전」에서 -
적절하지 않은 것은 등장인물 간의 대화로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해결된다는 설명이다.
지문은 "매우 치라"는 명령과 매질 속에서 춘향이 절개를 지키겠다는 말을 이어 가는 장면으로, 대화를 통해 갈등이 해소되는 대목은 없다.
- 동일한 글자 반복: '일편단심·일정지심·일부종사', '삼청동·삼생연분·삼강'처럼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말을 반복해 리듬감을 만든다.
- 숫자 활용: '일자', '이자', '삼자'로 우는 모습으로 매를 한 대씩 더 맞는 춘향의 처지를 드러낸다.
- 유교적 가치를 담은 말: '일부종사', '이군불사', '삼강', '삼종지도'로 정절을 지키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고소설의 유통 방식은 ‘구연에 의한 유통’과 ‘문헌에 의한 유통’으로 나눌 수 있다. 구연에 의한 유통은 구연자가 소설을 사람들에게 읽어 주는 방식으로, 글을 모르는 사람들과 글을 읽을 수 있지만 남이 읽어 주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구연자는 ‘전기수’로 불렸으며, 소설 구연을 통해 돈을 벌던 전문적 직업인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문헌에 의한 유통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아서 유통 범위를 넓히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문헌에 의한 유통은 차람, 구매, 상업적 대여로 나눌 수 있다. 차람은 소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빌려서 보는 것으로, 알고 지내던 개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구매는 서적 중개인에게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사는 것인데, 책값이 상당히 비쌌기 때문에 소설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상업적 대여는 세책가에 돈을 지불하고 일정 기간 동안 소설을 빌려 보는 것이다. 세책가에서는 소설을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빌려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사람도 소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 사회에서 세책가가 성행하게 되었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차람을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빌려 보는 방식이라고 한 설명이다.
지문은 차람을 "소설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직접 빌려서 보는 것으로, 알고 지내던 개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뿐 돈을 낸다는 내용이 없다. 돈을 내고 빌리는 것은 상업적 대여이다.
- 전기수의 구연 대상: "글을 모르는 사람들과 … 선호하는 이들을 대상으로"와 일치한다.
- 시간·공간 제약: 구연은 "문헌에 의한 유통에 비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아서"와 일치한다.
- 세책가 성행 원인: "구매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빌려 볼 수 있었기 때문에"와 일치한다.
『삼국사기』는 본기 28권, 지 9권, 표 3권, 열전 10권의 체제로 되어 있다. 이 중 열전은 전체 분량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수록된 인물은 86명으로, 신라인이 가장 많고, 백제인이 가장 적다. 수록 인물의 배치에는 원칙이 있는데, 앞부분에는 명장, 명신, 학자 등을 수록했고, 다음으로 관직에 있지는 않았으나 기릴 만한 사람을 실었다.
반신(叛臣)의 경우 열전의 끝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이들을 수록한 까닭은 왕을 죽인 부정적 행적을 드러내어 반면교사로 삼는 데에 있었으나,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있어 흥미롭다. 가령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반신이지만, 당나라에 당당히 대적한 민족적 영웅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흔히 『삼국사기』에 대해, 신라 정통론에 기반해 있으며, 유교적 사관에 따라 당시의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하고자 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연개소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삼국사기』는 기존 평가와 달리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역사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적절한 것은 반신 가운데 기존 평가를 다르게 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는 진술이다.
지문은 반신인 연개소문에게 "민족적 영웅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며, 이 사례로 『삼국사기』가 "기존 평가와 달리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텍스트라고 한다.
- 고구려인·백제인 수록이 신라 정통론 미계승을 보여 준다는 진술: 지문은 신라인이 가장 많다고 하며, 신라 정통론에 기반한다는 평가를 부정하는 근거로 이를 들지 않는다.
-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은 수록되지 않았다는 진술: "관직에 있지는 않았으나 기릴 만한 사람을 실었다"와 어긋난다.
- 열전이 가장 많은 권수를 차지한다는 진술: 본기가 28권으로 가장 많고 열전은 10권이다.
프랑스에서 의무교육 제도를 실시하면서 정규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아, 학습부진아를 가려내고자 하였다. 이에 기초 학습 능력 평가를 목적으로, 1905년 최초의 IQ 검사가 이루어졌다. 이 검사를 통해 비로소 인간의 지능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하고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IQ가 높으면 똑똑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머리가 좋지 않고 학습에도 부진한 사람으로 판단했다. 물론 IQ가 높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읽기나 계산 등 사고 기능과 관련된 과목에서 높은 성취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IQ 검사가 기초 학습에 필요한 최소 능력인 언어 이해력, 어휘력, 수리력 등을 측정하기 때문이다. 학습의 기초 능력을 측정하는 IQ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아이는 동일한 능력을 측정하는 학업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IQ 검사가 인간의 지능 중 일부만을 측정한다는 점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최초의 IQ 검사가 학습 능력이 우수한 아이를 고르기 위해 시행되었다는 추론이다.
지문에 따르면 최초의 IQ 검사는 "지적장애아, 학습부진아를 가려내고자" 기초 학습 능력 평가를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 IQ 검사 이전에는 지능을 수치로 비교할 수 없었다는 추론: "이 검사를 통해 비로소 … 수치화하고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에서 끌어낼 수 있다.
- IQ가 높아도 전체 지능은 높지 않을 수 있다는 추론: IQ 검사가 "지능 중 일부만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끌어낼 수 있다.
- IQ가 높은 아이가 읽기 능력이 좋을 확률이 높다는 추론: "읽기나 계산 등 … 높은 성취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와 맞는다.
한글은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문자여서 한국어 문장을 읽는 데 학습해야 할 글자가 적지만, 한자는 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여서 한문을 읽는 데 익혀야 할 글자 수가 훨씬 많다. 이러한 번거로움에도 한글과 달리 한자가 갖는 장점이 있다. 한글에서는 동음이의어, 즉 형태와 음이 같은데 뜻이 다른 단어가 많아 글자만으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자는 그렇지 않다. 예컨대, 한글로 ‘사고’라고만 쓰면 ‘뜻밖에 발생한 사건’인지 ‘생각하고 궁리함’인지 구별할 수 없다. 한자로 전자는 ‘事故’, 후자는 ‘思考’로 표기한다. 그런데 한자는 문맥에 따라 같은 글자가 다른 뜻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다른 문장성분으로 사용되기도 해 혼란을 야기한다. 가령 ‘愛人’은 문맥에 따라 ‘愛’가 ‘人’을 수식하는 관형어일 때도, ‘人’을 목적어로 삼는 서술어일 때도 있는 것이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한문이 한국어 문장보다 문장성분이 복잡하다는 추론이다.
지문은 한자가 문맥에 따라 다른 문장성분으로 쓰여 혼란을 준다고 할 뿐, 한문과 한국어 문장의 성분 복잡성을 비교하지 않는다.
- '淨水'에서 '淨'이 '水'를 수식한다는 추론: '愛人'의 '愛'가 '人'을 수식하는 관형어로 쓰이는 경우와 같은 구조이다.
- '愛'가 동음이의어가 아니라는 추론: 한자는 "같은 글자가 다른 뜻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문장성분만 달라진다고 했다.
- '의사'를 구별할 수 없다는 추론: 한글은 동음이의어가 많아 '사고'처럼 "글자만으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