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지방직 한국사] 20년 1회차
9급 지방직 한국사 기출문제

20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9급 지방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0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밑줄 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이찬 이사부가 왕에게 “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들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고 나쁜 것을 만대 후손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를 책으로 편찬해 놓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고 알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왕이 깊이 동감하고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선비들을 널리 모아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1정전 지급
2국학 설치
3첨성대 건립
4북한산 순수비 건립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신라 진흥왕이며, 그의 재위 기간에 북한산 순수비가 세워졌다.

‘이사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왕은 진흥왕이다.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북한산 등에 순수비를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하였다.

  • 관료전 지급에 이어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은 성덕왕 때의 일이다.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한 왕은 신문왕이다.
  • 천문 관측대인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건립되었다.
문제 2
다음 정책을 시행한 국왕 대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 광덕, 준풍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 개경을 고쳐 황도라 하고 서경을 서도라고 하였다.
1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2전시과 제도를 시행하였다.
3개경에 국자감을 설립하였다.
4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정책을 시행한 국왕은 고려 광종으로, 그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광덕’, ‘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쓰고 개경을 ‘황도’로 높여 부른 것은 광종의 칭제 건원 정책이다. 광종은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으로 호족 세력을 약화시켰다.

  • 전시과 제도는 경종 때 처음 시행되었다.
  • 개경에 국자감을 설립한 왕은 성종이다.
  •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처음 파견한 것도 성종 때의 일이다.
문제 3
다음과 같은 활동을 펼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대한매일신보에 애국적인 논설을 썼다.
• 유교 개혁의 뜻을 담은 「유교구신론」을 집필하였다.
1적극적인 의열 활동을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었다.
2일본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3실증사학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4김원봉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박은식으로, 일본의 침략 과정을 폭로한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쓰고 유교 개혁을 주장한 ‘「유교구신론」’을 집필한 인물은 박은식이다. 그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도 저술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냈다.

  • 의열 활동을 위해 한인애국단을 조직한 인물은 김구이다.
  • 실증사학 연구 단체인 진단학회는 이병도·손진태 등이 조직하였다.
  • 김원봉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인물은 신채호이다.
문제 4
(가) 단체로 옳은 것은?
(가) 발기취지(發起趣旨)
인간 사회는 많은 불합리를 산출한 동시에 그 해결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여성 문제는 그중의 하나이다. …… 과거의 조선 여성운동은 분산되어 있었다. 그것에는 통일된 조직이 없었고 통일된 지도 정신도 없었고 통일된 항쟁이 없었다. …… 우리는 우선 조선 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동아일보』, 1927. 5. 11.-
1근우회
2신간회
3신민회
4정우회
정답 및 해설

(가) 단체는 1927년에 조직된 여성 운동 단체인 근우회이다.

‘여성 문제’를 내세우고 분산된 ‘조선 여성운동’을 통일된 조직으로 단결시키자는 취지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결성된 근우회의 발기 취지이다. 근우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여성이 함께 참여한 민족 협동 전선 성격의 단체였다.

  • 신간회는 같은 해 결성되었으나 여성 단체가 아닌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이다.
  • 신민회는 1907년 결성된 비밀 결사로 여성 운동과 관계가 없다.
  • 정우회는 사회주의 사상 단체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다.
문제 5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곳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 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뒤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었고, 광해군 때는 경운궁이라 하였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다. 주요 건물로는 중화전, 함녕전, 석조전 등이 있다.
1경복궁
2경희궁
3창덕궁
4덕수궁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문화유산은 덕수궁이다.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 ‘경운궁’이 되었고, 아관파천 후 고종이 환궁한 곳이 덕수궁이다. 정전인 ‘중화전’과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대표 건물이다.

  • 경복궁은 조선 건국 직후 세운 법궁으로, 정전은 근정전이다.
  • 경희궁은 광해군 때 경덕궁으로 지어진 이궁으로, 정전은 숭정전이다.
  • 창덕궁은 태종 때 세운 이궁으로, 정전은 인정전이다.
문제 6
밑줄 친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이 나라는 대군왕이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장수(長帥)가 있다. …… 이 나라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전(步戰)을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 예절은 고구려와 흡사하다. 그들은 장사를 지낼 적에는 큰 나무 곽(槨)을 만드는데 길이가 십여 장(丈)이나 되며 한쪽 머리를 열어 놓아 문을 만든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1민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읍군
2위만에게 한나라의 침입을 알리는 장군
35월에 씨를 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군
4국가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있는 마가와 우가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옥저이며, 민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읍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군왕이 없’고 읍락마다 우두머리가 있으며, 길이 십여 장의 큰 나무 ‘곽’을 만들어 장사 지내는 가족 공동묘 풍속은 옥저의 특징이다. 옥저는 읍군·삼로 같은 군장이 다스렸고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다.

  • 위만에게 한나라의 침입을 알리는 장면은 고조선의 모습이다.
  • 5월에 씨를 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천군이 제사를 주관한 나라는 삼한이다.
  • 마가와 우가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논의한 나라는 부여이다.
문제 7
다음 사건이 일어난 왕의 재위 기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임꺽정은 양주 백정으로, 성품이 교활하고 날래고 용맹스러웠다. 그 무리 수십 명이 함께 다 날래고 빨랐는데, 도적이 되어 민가를 불사르고 소와 말을 빼앗고, 만약 항거하면 몹시 잔혹하게 사람을 죽였다. 경기도와 황해도의 아전과 백성들이 임꺽정 무리와 은밀히 결탁하여, 관에서 잡으려 하면 번번이 먼저 알려주었다.
1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형성되었다.
2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옹호하였다.
3삼포에서 4~5천 명의 일본인이 난을 일으켰다.
4조광조가 내수사 장리의 폐지,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임꺽정이 활동한 시기는 조선 명종 때이며, 이 시기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옹호하였다.

‘임꺽정’은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도적이다.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고, 보우를 중용하고 승과를 부활시키는 등 불교를 보호하였다.

  •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나뉜 것은 선조 때의 일이다.
  • 삼포에서 일본인이 난을 일으킨 삼포왜란은 중종 때 일어났다.
  • 조광조가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한 것은 중종 때이다.
문제 8
밑줄 친 ‘이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윤관이 아뢰기를, “신이 적의 기세를 보건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굳세니, 마땅히 군사를 쉬게 하고 군관을 길러서 후일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또 신이 싸움에서 진 것은 적은 기병(騎兵)인데 우리는 보병(步兵)이라 대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그가 건의하여 처음으로 이 부대를 만들었다.
1정종 2년에 설치되었다.
2귀주대첩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3여진족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4응양군, 용호군, 신호위 등의 2군과 6위로 편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부대’는 별무반으로, 여진족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윤관’이 기병 중심의 적에 보병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며 건의해 만든 부대가 별무반이다. 별무반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편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 9성을 쌓았다.

  •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된 부대는 광군이다.
  • 귀주대첩은 강감찬이 거란의 3차 침입을 물리친 싸움으로, 별무반과 관계가 없다.
  • 2군 6위는 고려의 중앙군 조직으로, 별무반과는 다르다.
문제 9
밑줄 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 나라는 삼한의 종족이며, 지금의 고령에 있었다. 건원 원년(479)에 그 국왕 하지(荷知)는 사신을 보내 남제에 공물을 바쳤다. 남제에서는 국왕 하지에게 “보국장군 본국왕”을 제수하였다.
1관산성 전투에서 국왕이 전사하였다.
2울릉도를 정복해서 영토로 편입하였다.
3호남 동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4신라를 도와 낙동강 유역에 진출한 왜를 격파하였다.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이며, 호남 동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령’에 있었고 국왕 ‘하지’가 남제에 사신을 보낸 나라는 대가야이다. 대가야는 5세기 후반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며 섬진강 유역 등 호남 동부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국왕은 백제 성왕이다.
  •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복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이다.
  • 신라를 도와 낙동강 유역의 왜를 격파한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이다.
문제 10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발해 왕의 재위 기간에 통일 신라에서 일어난 상황으로 옳은 것은?
• 대흥이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 수도를 중경 → 상경 → 동경으로 옮겼다.
•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 천손(하늘의 자손)이라 표현하였다.
•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며 당의 문물을 도입하여 체제를 정비하였다.
1녹읍 폐지
2청해진 설치
3「삼대목」 편찬
4독서삼품과 설치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발해 왕은 문왕이며, 그의 재위 기간에 신라에서는 독서삼품과가 설치되었다.

‘대흥’ 연호를 쓰고 수도를 상경·동경으로 옮기며 당과 친선 관계를 맺은 왕은 문왕이다. 문왕의 재위 기간(737~793)은 신라 효성왕 때부터 원성왕 때까지에 걸치며, 원성왕은 788년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였다.

  • 녹읍 폐지는 신문왕 때로, 발해 건국 이전의 일이다.
  •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는 흥덕왕 때로, 문왕 사후의 일이다.
  • 향가집 「삼대목」은 진성여왕 때 편찬되어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1
밑줄 친 ‘그’의 저술로 옳은 것은?
서울의 노론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양반전」을 지어 양반사회의 허위를 고발하였다. 그는 또한 한전론을 주장하였으며, 상공업 진흥에도 관심을 기울여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1「북학의」
2「과농소초」
3「의산문답」
4「지봉유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그’는 박지원이며, 그의 저술은 「과농소초」이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위를 풍자하고 ‘한전론’을 주장하며 수레·선박의 이용을 강조한 북학파 실학자는 박지원이다. 그는 농업 기술 개량을 다룬 「과농소초」와 청 기행문인 「열하일기」를 남겼다.

  • 「북학의」는 같은 북학파인 박제가의 저술이다.
  • 「의산문답」은 지전설을 주장한 홍대용의 저술이다.
  • 「지봉유설」은 이수광이 지은 백과사전식 저술이다.
문제 12
(가)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가)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 시행
1과전법 공포
2이시애의 반란
3「농사직설」 편찬
4정도전의 요동정벌 추진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있었던 일은 「농사직설」 편찬이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세종 즉위 직후인 1419년이고,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의 공법은 1444년에 시행되었다.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은 1429년에 편찬되어 이 사이에 해당한다.

  • 과전법 공포는 조선 건국 전인 1391년의 일이다.
  • 이시애의 반란은 세조 때인 1467년에 일어났다.
  •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은 태조 때의 일이다.
문제 13
(가)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
(가)
↓
청에 영선사를 파견하였다.
1군국기무처를 두고 여러 건의 개혁안을 처리하였다.
2개화 정책을 추진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3국정 개혁의 기본 방향을 담은 홍범 14조를 공포하였다.
4구본신참의 개혁 원칙을 정하고 대한국국제를 선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있었던 일은 통리기무아문 설치이다.

강화도 조약은 1876년, 김윤식을 대표로 한 영선사 파견은 1881년이다. 개화 정책을 총괄할 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설치되어 이 사이에 해당한다.

  • 군국기무처를 두고 개혁안을 처리한 것은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이다.
  • 홍범 14조 공포는 1895년 초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 대한국국제 선포는 1899년 광무개혁 때의 일이다.
문제 14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아닌 것은? (2019년 12월 31일 기준)
1종묘
2화성
3한양도성
4남한산성
정답 및 해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은 것은 한양도성이다.

한양도성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등재를 추진했으나, 2017년 자문기구의 등재 불가 권고를 받고 신청을 철회하여 2019년 말 기준 세계유산이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종묘: 조선 왕실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등재되었다.
  • 화성: 정조 때 축조된 수원의 성곽으로, 1997년 창덕궁과 함께 등재되었다.
  • 남한산성: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전한 산성으로, 2014년 등재되었다.
문제 15
다음과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일자주제
1897. 8. 29.조선에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
1897. 9. 5.도로 수정하는 것이 위생에 제일 방책
⋮⋮
1897. 12. 26.인민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을 개명케 하려면 우리나라 신문지며 다른 나라 신문지들을 널리 반포하는 것이 제일 긴요함
1헌정연구회의 활동을 계승하여 월보를 간행하고 지회를 설치하였다.
2국민 계몽을 위해 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3보부상 중심의 단체로 황권 강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행동지침으로 삼았다.
4일본이 황무지 개간을 구실로 토지를 약탈하려 하자 대중적 반대 운동을 벌였다.
정답 및 해설

토론회를 개최한 단체는 독립협회로, 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1897년 무렵 ‘인민의 교육’, ‘신문지 반포’ 등을 주제로 정기 토론회를 연 단체는 독립협회이다. 독립협회는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과 민권 신장을 주장하였다.

  • 헌정연구회를 계승해 월보를 간행하고 지회를 둔 단체는 대한자강회이다.
  • 보부상 중심으로 황권 강화를 내세운 단체는 황국협회이다.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인 단체는 보안회이다.
문제 16
밑줄 친 ‘그’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경술년(1910)에 여러 형제들이 모여서 같이 만주로 갈 준비를 하였다. …… 그(1867~1932)는 1만여 석의 재산과 가옥을 모두 팔고 큰집, 작은집이 함께 압록강을 건너 떠났다. 그는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2독립운동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였다.
3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다.
4‘삼균주의’에 입각한 한국국민당을 결성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그’는 이회영이며, 독립운동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였다.

1910년 형제들과 함께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 강습소’를 세운 인물은 이회영이다. 그는 서간도 삼원보에서 자치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그 부설로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인물로는 이윤재·최현배 등이 있다.
  • 이회영은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국국민당을 결성한 인물은 김구이다.
문제 17
밑줄 친 ‘새 헌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부에서는 6월 15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헌안을 이송받자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정식으로 이를 공포하였다. 이로써 개정된 새 헌법은 16일 0시를 기해 효력을 발생케 되었다. 새 헌법이 공포됨으로써 16일부터는 실질적인 내각책임체제의 정부를 갖게 되었으며 허정 수석국무위원은 자동으로 국무총리가 된다.
-「경향신문」, 1960. 6. 16.-
1임시수도 부산에서 개정되었다.
2‘사사오입’의 논리로 통과되었다.
3통일주체국민회의 설치를 규정한 조항이 있다.
4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조항이 있다.
정답 및 해설

‘새 헌법’은 4·19 혁명 이후의 제3차 개헌으로,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국회 조항이 있다.

1960년 6월 공포되어 ‘내각책임체제’를 도입하고 ‘허정 수석국무위원’이 국무총리가 된 헌법은 허정 과도 정부 때의 제3차 개헌이다. 이 헌법에 따라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 국회가 구성되어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 임시 수도 부산에서 개정된 것은 1952년 발췌 개헌이다.
  • 사사오입 논리로 통과된 것은 1954년 제2차 개헌이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설치를 규정한 것은 1972년 유신 헌법이다.
문제 18
다음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로 옳은 것은?
개경을 떠나 피난 중인 왕이 안성현을 안성군으로 승격시켰다. 홍건적이 양광도를 침입하자 수원은 항복하였는데, 작은 고을인 안성만이 홀로 싸워 승리함으로써 홍건적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1화약 무기를 사용해 진포해전에서 승리하였다.
2처인성 전투에서 적의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3기철 일파를 제거하고 쌍성총관부의 관할 지역을 수복하였다.
4적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사건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이며, 그 이후의 일은 화약 무기를 사용한 진포해전 승리이다.

‘홍건적’이 침입해 왕이 개경을 떠나 피난한 것은 공민왕 때인 1361년의 일이다.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격퇴한 진포해전은 우왕 때인 1380년에 있었다.

  •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것은 몽골의 2차 침입 때로, 그보다 앞선다.
  • 기철 일파 제거와 쌍성총관부 수복은 1356년의 반원 개혁으로, 홍건적 침입 이전이다.
  • 팔만대장경 조판은 몽골 침입기의 일로, 이보다 앞선다.
문제 19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가) 남인들이 대거 관직에서 쫓겨나고 허적과 윤휴 등이 처형되었다.
(나)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노론과 소론이 정계에 복귀하였다.
1송시열과 김수항 등이 처형당하였다.
2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에 걸쳐 예송을 전개하였다.
3서인 정치에 한계를 느낀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켰다.
4청의 요구에 따라 조총부대를 영고탑으로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기사환국 때 송시열과 김수항 등이 처형당한 것이다.

(가)는 ‘허적과 윤휴’가 처형된 1680년 경신환국, (나)는 ‘인현왕후가 복위’된 1694년 갑술환국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서인의 송시열과 김수항이 사사되었다.

  • 서인과 남인의 두 차례 예송은 현종 때로, (가)보다 앞선다.
  • 정여립 모반 사건은 선조 때의 일로, (가)보다 훨씬 앞선다.
  • 청의 요구로 조총 부대를 파견한 나선 정벌은 효종 때의 일이다.
문제 20
다음의 사건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가) 제헌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하였다.
(나) 여운형과 김규식은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다) 조선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라)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1(가)-(다)-(나)-(라)
2(나)-(다)-(라)-(가)
3(다)-(라)-(나)-(가)
4(라)-(나)-(가)-(다)
정답 및 해설

시기순 배열은 (다)-(라)-(나)-(가)이다.

(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에 조직되었고, (라)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 3월에 열렸다. 그 결렬 이후 (나) 좌우 합작 위원회가 1946년 7월 조직되었고, (가) 제헌 국회는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되어 7월에 헌법을 제정하였다.

  • 제헌 국회의 헌법 제정은 네 사건 중 가장 늦으므로 처음에 올 수 없다.
  • 좌우 합작 위원회는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뒤에 조직되었으므로 그보다 앞설 수 없다.
  •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광복 직후 조직되어 가장 먼저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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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밑줄 친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이찬 이사부가 왕에게 “국사라는 것은 임금과 신하들의 선악을 기록하여, 좋고 나쁜 것을 만대 후손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를 책으로 편찬해 놓지 않는다면 후손들이 무엇을 보고 알겠습니까?”라고 아뢰었다. 왕이 깊이 동감하고 대아찬 거칠부 등에게 명하여 선비들을 널리 모아 그들로 하여금 역사를 편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1정전 지급
2국학 설치
3첨성대 건립
4북한산 순수비 건립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신라 진흥왕이며, 그의 재위 기간에 북한산 순수비가 세워졌다.

‘이사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왕은 진흥왕이다. 진흥왕은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북한산 등에 순수비를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하였다.

  • 관료전 지급에 이어 백성에게 정전을 지급한 것은 성덕왕 때의 일이다.
  •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한 왕은 신문왕이다.
  • 천문 관측대인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건립되었다.
문제 2
다음 정책을 시행한 국왕 대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 광덕, 준풍 등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 개경을 고쳐 황도라 하고 서경을 서도라고 하였다.
1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2전시과 제도를 시행하였다.
3개경에 국자감을 설립하였다.
4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정책을 시행한 국왕은 고려 광종으로, 그는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광덕’, ‘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쓰고 개경을 ‘황도’로 높여 부른 것은 광종의 칭제 건원 정책이다. 광종은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으로 호족 세력을 약화시켰다.

  • 전시과 제도는 경종 때 처음 시행되었다.
  • 개경에 국자감을 설립한 왕은 성종이다.
  •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처음 파견한 것도 성종 때의 일이다.
문제 3
다음과 같은 활동을 펼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대한매일신보에 애국적인 논설을 썼다.
• 유교 개혁의 뜻을 담은 「유교구신론」을 집필하였다.
1적극적인 의열 활동을 위해 한인애국단을 만들었다.
2일본의 침략상을 폭로하는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3실증사학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4김원봉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인물은 박은식으로, 일본의 침략 과정을 폭로한 「한국통사」를 저술하였다.

‘대한매일신보’에 논설을 쓰고 유교 개혁을 주장한 ‘「유교구신론」’을 집필한 인물은 박은식이다. 그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도 저술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을 지냈다.

  • 의열 활동을 위해 한인애국단을 조직한 인물은 김구이다.
  • 실증사학 연구 단체인 진단학회는 이병도·손진태 등이 조직하였다.
  • 김원봉의 요청으로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 인물은 신채호이다.
문제 4
(가) 단체로 옳은 것은?
(가) 발기취지(發起趣旨)
인간 사회는 많은 불합리를 산출한 동시에 그 해결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여성 문제는 그중의 하나이다. …… 과거의 조선 여성운동은 분산되어 있었다. 그것에는 통일된 조직이 없었고 통일된 지도 정신도 없었고 통일된 항쟁이 없었다. …… 우리는 우선 조선 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동아일보』, 1927. 5. 11.-
1근우회
2신간회
3신민회
4정우회
정답 및 해설

(가) 단체는 1927년에 조직된 여성 운동 단체인 근우회이다.

‘여성 문제’를 내세우고 분산된 ‘조선 여성운동’을 통일된 조직으로 단결시키자는 취지는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결성된 근우회의 발기 취지이다. 근우회는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여성이 함께 참여한 민족 협동 전선 성격의 단체였다.

  • 신간회는 같은 해 결성되었으나 여성 단체가 아닌 민족 협동 전선 단체이다.
  • 신민회는 1907년 결성된 비밀 결사로 여성 운동과 관계가 없다.
  • 정우회는 사회주의 사상 단체로,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였다.
문제 5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문화유산은?
이곳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 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뒤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었고, 광해군 때는 경운궁이라 하였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다. 주요 건물로는 중화전, 함녕전, 석조전 등이 있다.
1경복궁
2경희궁
3창덕궁
4덕수궁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문화유산은 덕수궁이다.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 ‘경운궁’이 되었고, 아관파천 후 고종이 환궁한 곳이 덕수궁이다. 정전인 ‘중화전’과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대표 건물이다.

  • 경복궁은 조선 건국 직후 세운 법궁으로, 정전은 근정전이다.
  • 경희궁은 광해군 때 경덕궁으로 지어진 이궁으로, 정전은 숭정전이다.
  • 창덕궁은 태종 때 세운 이궁으로, 정전은 인정전이다.
문제 6
밑줄 친 ‘이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이 나라는 대군왕이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장수(長帥)가 있다. …… 이 나라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전(步戰)을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 예절은 고구려와 흡사하다. 그들은 장사를 지낼 적에는 큰 나무 곽(槨)을 만드는데 길이가 십여 장(丈)이나 되며 한쪽 머리를 열어 놓아 문을 만든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1민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읍군
2위만에게 한나라의 침입을 알리는 장군
35월에 씨를 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군
4국가의 중요한 일을 논의하고 있는 마가와 우가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옥저이며, 민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읍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군왕이 없’고 읍락마다 우두머리가 있으며, 길이 십여 장의 큰 나무 ‘곽’을 만들어 장사 지내는 가족 공동묘 풍속은 옥저의 특징이다. 옥저는 읍군·삼로 같은 군장이 다스렸고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속이 있었다.

  • 위만에게 한나라의 침입을 알리는 장면은 고조선의 모습이다.
  • 5월에 씨를 뿌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천군이 제사를 주관한 나라는 삼한이다.
  • 마가와 우가가 국가의 중요한 일을 논의한 나라는 부여이다.
문제 7
다음 사건이 일어난 왕의 재위 기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임꺽정은 양주 백정으로, 성품이 교활하고 날래고 용맹스러웠다. 그 무리 수십 명이 함께 다 날래고 빨랐는데, 도적이 되어 민가를 불사르고 소와 말을 빼앗고, 만약 항거하면 몹시 잔혹하게 사람을 죽였다. 경기도와 황해도의 아전과 백성들이 임꺽정 무리와 은밀히 결탁하여, 관에서 잡으려 하면 번번이 먼저 알려주었다.
1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형성되었다.
2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옹호하였다.
3삼포에서 4~5천 명의 일본인이 난을 일으켰다.
4조광조가 내수사 장리의 폐지,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임꺽정이 활동한 시기는 조선 명종 때이며, 이 시기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옹호하였다.

‘임꺽정’은 명종 때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한 도적이다.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고, 보우를 중용하고 승과를 부활시키는 등 불교를 보호하였다.

  •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나뉜 것은 선조 때의 일이다.
  • 삼포에서 일본인이 난을 일으킨 삼포왜란은 중종 때 일어났다.
  • 조광조가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한 것은 중종 때이다.
문제 8
밑줄 친 ‘이 부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윤관이 아뢰기를, “신이 적의 기세를 보건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굳세니, 마땅히 군사를 쉬게 하고 군관을 길러서 후일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또 신이 싸움에서 진 것은 적은 기병(騎兵)인데 우리는 보병(步兵)이라 대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라 하였다. 이에 그가 건의하여 처음으로 이 부대를 만들었다.
1정종 2년에 설치되었다.
2귀주대첩에서 큰 활약을 하였다.
3여진족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4응양군, 용호군, 신호위 등의 2군과 6위로 편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이 부대’는 별무반으로, 여진족에 대처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윤관’이 기병 중심의 적에 보병으로는 대적할 수 없다며 건의해 만든 부대가 별무반이다. 별무반은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편성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동북 9성을 쌓았다.

  •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된 부대는 광군이다.
  • 귀주대첩은 강감찬이 거란의 3차 침입을 물리친 싸움으로, 별무반과 관계가 없다.
  • 2군 6위는 고려의 중앙군 조직으로, 별무반과는 다르다.
문제 9
밑줄 친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이 나라는 삼한의 종족이며, 지금의 고령에 있었다. 건원 원년(479)에 그 국왕 하지(荷知)는 사신을 보내 남제에 공물을 바쳤다. 남제에서는 국왕 하지에게 “보국장군 본국왕”을 제수하였다.
1관산성 전투에서 국왕이 전사하였다.
2울릉도를 정복해서 영토로 편입하였다.
3호남 동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4신라를 도와 낙동강 유역에 진출한 왜를 격파하였다.
정답 및 해설

‘이 나라’는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이며, 호남 동부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고령’에 있었고 국왕 ‘하지’가 남제에 사신을 보낸 나라는 대가야이다. 대가야는 5세기 후반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며 섬진강 유역 등 호남 동부까지 영향력을 넓혔다.

  •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국왕은 백제 성왕이다.
  • 울릉도의 우산국을 정복한 것은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이다.
  • 신라를 도와 낙동강 유역의 왜를 격파한 것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군대이다.
문제 10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발해 왕의 재위 기간에 통일 신라에서 일어난 상황으로 옳은 것은?
• 대흥이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 수도를 중경 → 상경 → 동경으로 옮겼다.
•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에 천손(하늘의 자손)이라 표현하였다.
• 당과 친선 관계를 맺으며 당의 문물을 도입하여 체제를 정비하였다.
1녹읍 폐지
2청해진 설치
3「삼대목」 편찬
4독서삼품과 설치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발해 왕은 문왕이며, 그의 재위 기간에 신라에서는 독서삼품과가 설치되었다.

‘대흥’ 연호를 쓰고 수도를 상경·동경으로 옮기며 당과 친선 관계를 맺은 왕은 문왕이다. 문왕의 재위 기간(737~793)은 신라 효성왕 때부터 원성왕 때까지에 걸치며, 원성왕은 788년 독서삼품과를 설치하였다.

  • 녹읍 폐지는 신문왕 때로, 발해 건국 이전의 일이다.
  •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는 흥덕왕 때로, 문왕 사후의 일이다.
  • 향가집 「삼대목」은 진성여왕 때 편찬되어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1
밑줄 친 ‘그’의 저술로 옳은 것은?
서울의 노론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양반전」을 지어 양반사회의 허위를 고발하였다. 그는 또한 한전론을 주장하였으며, 상공업 진흥에도 관심을 기울여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1「북학의」
2「과농소초」
3「의산문답」
4「지봉유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그’는 박지원이며, 그의 저술은 「과농소초」이다.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위를 풍자하고 ‘한전론’을 주장하며 수레·선박의 이용을 강조한 북학파 실학자는 박지원이다. 그는 농업 기술 개량을 다룬 「과농소초」와 청 기행문인 「열하일기」를 남겼다.

  • 「북학의」는 같은 북학파인 박제가의 저술이다.
  • 「의산문답」은 지전설을 주장한 홍대용의 저술이다.
  • 「지봉유설」은 이수광이 지은 백과사전식 저술이다.
문제 12
(가)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가)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 시행
1과전법 공포
2이시애의 반란
3「농사직설」 편찬
4정도전의 요동정벌 추진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있었던 일은 「농사직설」 편찬이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은 세종 즉위 직후인 1419년이고,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의 공법은 1444년에 시행되었다.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은 1429년에 편찬되어 이 사이에 해당한다.

  • 과전법 공포는 조선 건국 전인 1391년의 일이다.
  • 이시애의 반란은 세조 때인 1467년에 일어났다.
  •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은 태조 때의 일이다.
문제 13
(가)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강화도조약을 체결하였다.
↓
(가)
↓
청에 영선사를 파견하였다.
1군국기무처를 두고 여러 건의 개혁안을 처리하였다.
2개화 정책을 추진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3국정 개혁의 기본 방향을 담은 홍범 14조를 공포하였다.
4구본신참의 개혁 원칙을 정하고 대한국국제를 선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있었던 일은 통리기무아문 설치이다.

강화도 조약은 1876년, 김윤식을 대표로 한 영선사 파견은 1881년이다. 개화 정책을 총괄할 기구인 통리기무아문은 1880년에 설치되어 이 사이에 해당한다.

  • 군국기무처를 두고 개혁안을 처리한 것은 1894년 제1차 갑오개혁 때이다.
  • 홍범 14조 공포는 1895년 초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 대한국국제 선포는 1899년 광무개혁 때의 일이다.
문제 14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이 아닌 것은? (2019년 12월 31일 기준)
1종묘
2화성
3한양도성
4남한산성
정답 및 해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은 것은 한양도성이다.

한양도성은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 등재를 추진했으나, 2017년 자문기구의 등재 불가 권고를 받고 신청을 철회하여 2019년 말 기준 세계유산이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 종묘: 조선 왕실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등재되었다.
  • 화성: 정조 때 축조된 수원의 성곽으로, 1997년 창덕궁과 함께 등재되었다.
  • 남한산성: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전한 산성으로, 2014년 등재되었다.
문제 15
다음과 같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일자주제
1897. 8. 29.조선에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
1897. 9. 5.도로 수정하는 것이 위생에 제일 방책
⋮⋮
1897. 12. 26.인민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을 개명케 하려면 우리나라 신문지며 다른 나라 신문지들을 널리 반포하는 것이 제일 긴요함
1헌정연구회의 활동을 계승하여 월보를 간행하고 지회를 설치하였다.
2국민 계몽을 위해 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3보부상 중심의 단체로 황권 강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행동지침으로 삼았다.
4일본이 황무지 개간을 구실로 토지를 약탈하려 하자 대중적 반대 운동을 벌였다.
정답 및 해설

토론회를 개최한 단체는 독립협회로, 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1897년 무렵 ‘인민의 교육’, ‘신문지 반포’ 등을 주제로 정기 토론회를 연 단체는 독립협회이다. 독립협회는 「대조선독립협회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와 관민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과 민권 신장을 주장하였다.

  • 헌정연구회를 계승해 월보를 간행하고 지회를 둔 단체는 대한자강회이다.
  • 보부상 중심으로 황권 강화를 내세운 단체는 황국협회이다.
  •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 운동을 벌인 단체는 보안회이다.
문제 16
밑줄 친 ‘그’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경술년(1910)에 여러 형제들이 모여서 같이 만주로 갈 준비를 하였다. …… 그(1867~1932)는 1만여 석의 재산과 가옥을 모두 팔고 큰집, 작은집이 함께 압록강을 건너 떠났다. 그는 만주에서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1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2독립운동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였다.
3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다.
4‘삼균주의’에 입각한 한국국민당을 결성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그’는 이회영이며, 독립운동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였다.

1910년 형제들과 함께 전 재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건너가 ‘신흥 강습소’를 세운 인물은 이회영이다. 그는 서간도 삼원보에서 자치 단체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그 부설로 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인물로는 이윤재·최현배 등이 있다.
  • 이회영은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국국민당을 결성한 인물은 김구이다.
문제 17
밑줄 친 ‘새 헌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정부에서는 6월 15일 국회에서 통과된 개헌안을 이송받자 이날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정식으로 이를 공포하였다. 이로써 개정된 새 헌법은 16일 0시를 기해 효력을 발생케 되었다. 새 헌법이 공포됨으로써 16일부터는 실질적인 내각책임체제의 정부를 갖게 되었으며 허정 수석국무위원은 자동으로 국무총리가 된다.
-「경향신문」, 1960. 6. 16.-
1임시수도 부산에서 개정되었다.
2‘사사오입’의 논리로 통과되었다.
3통일주체국민회의 설치를 규정한 조항이 있다.
4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국회 조항이 있다.
정답 및 해설

‘새 헌법’은 4·19 혁명 이후의 제3차 개헌으로,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 국회 조항이 있다.

1960년 6월 공포되어 ‘내각책임체제’를 도입하고 ‘허정 수석국무위원’이 국무총리가 된 헌법은 허정 과도 정부 때의 제3차 개헌이다. 이 헌법에 따라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 국회가 구성되어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 임시 수도 부산에서 개정된 것은 1952년 발췌 개헌이다.
  • 사사오입 논리로 통과된 것은 1954년 제2차 개헌이다.
  • 통일주체국민회의 설치를 규정한 것은 1972년 유신 헌법이다.
문제 18
다음 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로 옳은 것은?
개경을 떠나 피난 중인 왕이 안성현을 안성군으로 승격시켰다. 홍건적이 양광도를 침입하자 수원은 항복하였는데, 작은 고을인 안성만이 홀로 싸워 승리함으로써 홍건적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1화약 무기를 사용해 진포해전에서 승리하였다.
2처인성 전투에서 적의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3기철 일파를 제거하고 쌍성총관부의 관할 지역을 수복하였다.
4적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사건은 공민왕 때 홍건적의 침입이며, 그 이후의 일은 화약 무기를 사용한 진포해전 승리이다.

‘홍건적’이 침입해 왕이 개경을 떠나 피난한 것은 공민왕 때인 1361년의 일이다. 최무선이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격퇴한 진포해전은 우왕 때인 1380년에 있었다.

  • 처인성 전투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것은 몽골의 2차 침입 때로, 그보다 앞선다.
  • 기철 일파 제거와 쌍성총관부 수복은 1356년의 반원 개혁으로, 홍건적 침입 이전이다.
  • 팔만대장경 조판은 몽골 침입기의 일로, 이보다 앞선다.
문제 19
(가)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일로 옳은 것은?
(가) 남인들이 대거 관직에서 쫓겨나고 허적과 윤휴 등이 처형되었다.
(나) 인현왕후가 복위되고 노론과 소론이 정계에 복귀하였다.
1송시열과 김수항 등이 처형당하였다.
2서인과 남인이 두 차례에 걸쳐 예송을 전개하였다.
3서인 정치에 한계를 느낀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켰다.
4청의 요구에 따라 조총부대를 영고탑으로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기사환국 때 송시열과 김수항 등이 처형당한 것이다.

(가)는 ‘허적과 윤휴’가 처형된 1680년 경신환국, (나)는 ‘인현왕후가 복위’된 1694년 갑술환국이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서인의 송시열과 김수항이 사사되었다.

  • 서인과 남인의 두 차례 예송은 현종 때로, (가)보다 앞선다.
  • 정여립 모반 사건은 선조 때의 일로, (가)보다 훨씬 앞선다.
  • 청의 요구로 조총 부대를 파견한 나선 정벌은 효종 때의 일이다.
문제 20
다음의 사건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가) 제헌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제정하였다.
(나) 여운형과 김규식은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하였다.
(다) 조선건국동맹을 기반으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라)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1(가)-(다)-(나)-(라)
2(나)-(다)-(라)-(가)
3(다)-(라)-(나)-(가)
4(라)-(나)-(가)-(다)
정답 및 해설

시기순 배열은 (다)-(라)-(나)-(가)이다.

(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에 조직되었고, (라)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 3월에 열렸다. 그 결렬 이후 (나) 좌우 합작 위원회가 1946년 7월 조직되었고, (가) 제헌 국회는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되어 7월에 헌법을 제정하였다.

  • 제헌 국회의 헌법 제정은 네 사건 중 가장 늦으므로 처음에 올 수 없다.
  • 좌우 합작 위원회는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뒤에 조직되었으므로 그보다 앞설 수 없다.
  •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광복 직후 조직되어 가장 먼저 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