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해수모래는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 모래들은 서로 얼마나 다른가? 모래에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포대 해수욕장의 모래는 서로 같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거나, 더 정직하게 말하면 그런 것에 대해 아직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사물에 대해 우리의 분별 개념을 적용할 때에만 서로 다름을 느낀다.
'green과 Blue를 우리말로 모두 푸르다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분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진술은 지문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지문은 '분별 개념을 적용할 때에만 서로 다름을 느낀다'고 하여 말(이름)이 있어야 차이를 인식한다는 입장이다. 단어가 하나여도 구별한다는 진술은 이 주장과 반대된다.
- 소의 부위 이름: 이름을 세분한 언어 사용자가 대상을 세분해 인식한다는 사례이다.
- 에스키모인의 눈 이름: 관심 대상일수록 단어가 나뉘어 있다는 사례이다.
- 모-벼-쌀-밥과 rice: 한국어가 단어를 나누어 대상을 구별한다는 사례이다.
㈀ 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 平安道의 어늬 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 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시간 순서는 ㈁-㈂-㈃-㈀이다.
작품은 여승을 만난 현재 장면을 앞에 두고 과거를 거슬러 서술하는 역순행적 구성이다. 사건만 시간 순으로 놓으면 다음과 같다.
- ㈁: 금덤판에서 옥수수를 팔며 '딸아이를 따리며' 울던 여인을 처음 만난다.
- ㈂: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어린 딸은 '돌무덤으로 갔다'.
- ㈃: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 곧 여인이 머리를 깎고 출가한다.
- ㈀: '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곧 여승이 된 그 여인과 다시 만난다.
'난상토론'의 한자를 爛商(난상)으로 고친 것이 바르다.
'난상(爛商)'은 '충분히 의논함'이라는 뜻으로, 爛(무르익을 란)과 商(헤아릴 상)을 쓴다. 亂床(어지러울 란, 평상 상)으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 역전(驛傳) 경주: 역참에서 전한다는 뜻의 驛傳이 본래 바른 표기이고, 驛前은 '역 앞'이라는 뜻이라 오히려 틀린다.
- 단란(團欒)한 가정: 團欒이 바른 표기이며, 緞欄은 비단 緞과 난간 欄으로 뜻이 맞지 않는다.
- 이모작(二毛作): '한 해에 두 번 농작물을 거둠'으로 毛가 바르며, 耗(소모할 모)로 바꾸면 틀린다.
'공약을 유세'의 유세는 遊世가 아니라 遊說(유세)로 써야 한다.
'유세(遊說)'는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님을 뜻하며, 說은 이때 '달랠 세'로 읽는다. 遊世는 '세상을 떠돎'으로 문맥에 맞지 않는다.
- 누설(漏泄): 비밀이 새어 나감을 뜻하는 바른 표기이다.
- 패배(敗北): 北을 '달아날 배'로 읽는 바른 표기이다.
- 생략(省略): 省을 '덜 생'으로 읽는 바른 표기이다.
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사례를 식혜에서 찾아본다. 식혜는 가공할 만한 콜라를 뛰어넘으면서 예측불허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식혜가 '깡통'을 차용했을 때, 개벽이 일어났다. 식혜라는 '전략'은 깡통이라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고정관념의 '빈틈찌르기'에 성공했다.
그래서 나는 식혜의 성공을 "청말의 변법자강책(變法自強策)이 우리 식(食)문화에 와서야 성공하였다"고 농을 던지곤 한다. 석굴암을 자랑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전세계에 석굴암을 세울 수는 없는 일. 그러나 김치를 전세계 집집마다 냉장고에 들여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고리타분'한 민족문화관을 완전히 바꿀 때, 어떠한 결과가 초래할 것인가를 식혜는 충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제 문화는 전략적 무기이며, 문화는 곧바로 정치요, 경제다.
서풍(西風)에 맞설 동풍(東風)을 불러일으키자! 옛것을 새롭게 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야말로 세계화의 지름길이다! 새로운 문화파동을 준비하자!
'법고창신(法古創新)'과 뜻이 통하는 말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지문은 법고창신을 '옛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 풀이한다. 온고지신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앎'이라는 뜻으로,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이룬다는 점에서 같다.
- 日新又日新(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워짐을 뜻해 옛것을 바탕으로 한다는 의미가 없다.
- 百年河淸(백년하청): 아무리 기다려도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뜻한다.
- 捲土重來(권토중래): 실패한 뒤 힘을 길러 다시 도전함을 뜻한다.
'신천지의 도래'를 노래한 시는 '그 날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처럼 새로운 세상이 오는 날을 기다리며 그날이 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기뻐하겠다는 미래의 도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
- '꽃 한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생명이 깃들 곳조차 없는 황폐한 현실을 그린다.
-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유리창에 비친 슬픔, 곧 상실의 아픔을 그린다.
- '왕거미 줄치기에 분주한 집': 떠나 버린 사람들의 몰락한 집을 그린다.
'저를 선출하여 주신 여러분께'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와 높임법이 모두 바르다.
청자인 국민 앞에서 화자는 자신을 '저'로 낮추고, 상대에게는 부사격 조사 '에게' 대신 높임의 '께'를 쓰는 것이 알맞다.
- '본인을 선출하여 주신 여러분에게': '본인'은 자신을 낮추는 말이 아니며, '에게'도 높임이 아니다.
- '중책의 임무를 맡겨주신 … 여러분에게': '중책'과 '임무'가 뜻이 겹치고 '에게'를 써서 높임이 부족하다.
- '나에게 중책을 맡겨주신': 공식 인사에서 '나'는 자신을 낮추지 않은 표현이다.
㉠ 국어에는 다른 언어에서도 사용되는 음운이 있는가 하면 국어에서만 독특하게 사용되는 음운이 있기도 하다. /ㄱ,ㄲ,ㅋ/, /ㄷ,ㄸ,ㅌ/, /ㅂ, ㅃ,ㅍ/, /ㅈ,ㅉ,ㅊ/처럼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 소리가 셋씩 짝을 이루어 분화되어 있는 것은 국어 자음의 주요한 특징이다. ㉡ 아울러 음절끝 위치에서 자음들이 모두 파열되지 않는 것도 국어 자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 또한 다른 언어에서는 쓰이지만 국어에서는 쓰이지 않는 음운도 있다. 예를 들어, 국어에는 국제 음성기호[f, v]로 표시하는 순치 마찰음과 같은 자음은 없으며 유성음과 무성음이 변별되지 않는다. ㉣ 국어의 음운에는 자음이나 모음뿐만 아니라 말소리의 길이나 높이도 있다.
'콩'과 '공'의 구별은 ㉠, 곧 예사소리·된소리·거센소리의 삼중 대립과 관련된다.
'콩'의 'ㅋ'과 '공'의 'ㄱ'은 거센소리와 예사소리로만 구별된다. 이처럼 '/ㄱ,ㄲ,ㅋ/'가 '셋씩 짝을 이루어 분화'된 체계는 국어에서 독특하므로 외국인이 구별하기 어렵다.
- ㉡: 음절 끝 자음이 파열되지 않는 현상으로, 첫소리의 차이와는 관련이 없다.
- ㉢: 순치 마찰음이 없고 유무성이 변별되지 않는다는 점으로, 'ㅋ/ㄱ'의 대립과는 다르다.
- ㉣: 소리의 길이·높이에 관한 것으로 자음의 차이가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로 시작하는 글이 서사이다.
서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물의 행동과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 글은 돈을 모음 → '사흘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 장돌림을 다시 시작함으로 사건이 시간 순서로 전개된다.
- 귀뚜라미 날개를 다룬 글: 대상의 생김새를 그려 보이는 묘사이다.
- 노처녀의 이마와 머리 꼬리를 다룬 글: 인물의 외양을 그려 보이는 묘사이다.
- 황진이 시가의 특징을 다룬 글: 근거로부터 허난설헌 작품의 주제를 추론하는 논증이다.
자음이 음절 끝에 올 때에 터지지 아니하고 닫힌 상태로 발음되는 현상을 이른다. 따라서, 이들 끝소리는 단독으로 발음되거나 자음과 연결될 때, 또는 모음으로 시작되더라도 자립 형태소가 이어질 때에는 제 음가(音價)대로 발음되지 아니하고 대표음으로 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ㄳ, ㅄ, ㄺ' 등과 같은 두 개의 자음이 음절 끝에 오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넋, 값과, 흙 위'가 '[넉, 갑과, 흐귀]로 발음되는 것이 그것이다.
지문이 설명하는 것은 음절 끝소리 법칙이다.
지문은 음절 끝 자음이 '제 음가대로 발음되지 아니하고 대표음으로 나게 된다'고 하며, 겹받침도 '넋, 값과, 흙 위'가 '[넉, 갑과, 흐귀]'로 발음된다고 예를 든다.
- 두음법칙: 단어 첫머리에 'ㄹ'이나 'ㄴ'이 오기를 꺼리는 현상이다.
- 자음동화: 자음과 자음이 만나 한쪽이나 양쪽이 닮아 바뀌는 현상이다.
- 모음조화: 양성 모음은 양성 모음끼리, 음성 모음은 음성 모음끼리 어울리는 현상이다.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이 글의 목적은 독자의 생각이나 행동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 하고, 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라고 하여 문화의 힘을 기르자는 주장으로 독자를 설득한다.
- 작가 자신의 체험 전달: 체험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주장을 펴는 글이다.
- 독자에게 정서적 감동: 정서보다 논리적 주장이 중심이다.
- 지식과 정보의 전달: 객관적 사실을 알리는 설명문이 아니다.
'미리 담가 놓은 과실주'가 맞춤법에 맞다.
기본형은 '담그다'이며, 어간 끝 'ㅡ'가 어미 '-아/-어' 앞에서 규칙적으로 탈락하는 'ㅡ' 탈락에 따라 '담그- + -아 → 담가'가 된다.
- '잠구고': 기본형이 '잠그다'이므로 '잠그고'로 써야 한다.
- '담았네': 김치를 만드는 뜻은 '담그다'이므로 '담갔네'로 써야 한다.
- '잠그어라': 'ㅡ' 탈락이 일어나 '잠가라'로 써야 한다.
우선 정보 기기는 인간을 잡노동에서 해방시켜 준다. 즉, '편하게'해 준다. 컴퓨터와 전화를 이용하여 쇼핑과 예약을 할 수 있으며, 은행을 직접 찾아가는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한 '해방'은 인간에게,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좀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 좀더 심오한 지적 모험, 좀더 수준 높은 예술적 탐구에 젖어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준다.
편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정보 기기는 우리의 경험 세계를 시간의 제약, 공간의 제약, 사회의 제약에서도 벗어나게 해 준다. 미국에 가 있는 아들에게 거는 장거리 전화는 태평양이라는 공간을 초월 하게 해 주고, 그것은 배 또는 비행기를 타고 건너가야 할 시간을 초월하게 해 준다. 컴퓨터는, 수 년 거릴 계산을 그야말로 전광 석화(電光石火)의 속도로 해치운다.
그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은 사람들을 여러 가지 제약에서 벗어나게 한다 텔레비전은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헤쳐 놓는다. 가난한 사람들도 텔레비전을 통하여 재벌들의 생활을 볼 수 있다 .또, 남자에겐 여자의 신비가 깨지고, 여자에겐 남자의 신비가 허물어진다. 이 모든 정보는 텔레비전 이전에는 여러 사회 집단이 각기의 벽 속에 깊이 감추어 두고 있던 것들이다. 또 하나의 의미에서 개방 사회(開放社會)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정보 기기의 혜택은 해방과 개방으로 요약된다.
첫째·둘째 단락은 정보 기기가 인간을 '잡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시간·공간·사회의 '제약에서도 벗어나게' 해 준다고 한다. 셋째 단락은 감추어 두던 정보가 드러나 '개방 사회(開放社會)가 출현'한다고 한다.
- 편리와 여유: 첫 단락의 내용만 담고 제약 극복과 개방 사회를 빠뜨린다.
- 경험과 문화: 글의 핵심어가 아니다.
- 평등과 개방: 첫 단락의 '해방'을 빠뜨리며, 평등은 글이 내세운 혜택이 아니다.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내재적 비평은 甲의 '3행씩 3연으로 압축되어 시조를 연상'한다는 평이다.
내재적 비평은 작가·현실·독자 같은 작품 바깥 요소를 끌어오지 않고 작품 자체의 형식·구조·표현만으로 해석한다. 시가 세 행씩 세 연으로 이루어진 형식을 짚은 甲이 이에 해당한다.
- 乙: 시인을 독립 운동가로 보아 작가의 생애로 해석하는 표현론적 관점이다.
- 丙: 독자에게 주는 깨달음과 교훈을 말하는 효용론적 관점이다.
- 丁: 일제 치하의 현실과 연결하는 반영론적 관점이다.
황국(黃菊) 단풍이 어느덧 무르녹아 달 맑고 서리 찬밤 울어 예는 기러기도 오늘 내일에 볼 것이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하늘 높고 바람 급한 적에 호마(胡馬)가 길이 소리쳐 장부의 팔이 부르르 떨치면서 넌지시 만리(萬里)의 뜻을 품은 것은 가을의 정감이다. ㉡그러하매 옛사람이 가을밤 벽상(壁上)에 장검을 걸고 홀로 병서(兵書)를 읽었다고 하니 가을의 숙살(肅殺)한 기운이 무한정진(無限征進)의 의도를 충동일 제 그 기(機)와 경(境)이 알맞게 의도를 펼 수 없는 것이 인생의 상사(常事) 인고로 걸린 장검에서 그 의도가 식지 않고 읽어 가는 병서에서는 더욱 천하의 뜻이 굽닐어 나아가는 것이니 독서의 의의와 영감이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을이 아니니 언제나 독서는 자아인 이 생을 객관의 경(境)에서 새로 발견하는 것이요, 고인의 자취에서 ㉣병서(兵書), 오로지 독서자의 경륜의 투합(投合)할 바 아니니 무릇 사회 백가(百家)의 서(書)와 과학 제문(諸門)의 술(述)을 각각 그 취미와 공용(功用)에 따라 자재하게 선택할 것이다.
두 번째 단락은 ㉢ '그러나 반드시'에서 시작한다.
㉢ 앞은 가을의 정감과 옛사람이 가을밤에 병서를 읽은 일을 들어 가을의 독서를 말한다. ㉢부터는 '반드시 가을이 아니니 언제나 독서는'이라며 계절과 무관한 독서의 의미와 책 선택으로 화제가 바뀐다.
- ㉠: 가을의 정감을 이어 말하는 부분으로 화제가 바뀌지 않는다.
- ㉡: '그러하매'로 앞의 가을 정감을 받아 가을 독서로 이어 가는 부분이다.
- ㉣: '언제나 독서는'으로 시작된 문장 안에서 읽을 책의 범위를 말하는 부분이다.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 자기 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에 현명하다. 염결(廉潔)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나 할까. 우리 현대인도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 )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을 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
괄호에 들어갈 말은 의기이다.
글쓴이는 '자기 본위로만 약다',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며 현대인을 비판하고 '딸깍발이'의 정신을 배우자고 한다. 이기주의와 맞서는 덕목으로 옳은 일에 나서는 의기(意氣)가 첫째로 오고, 이어 '강직', '청렴'이 나열된다.
- 절개: 글이 내세우는 이기주의·고식지계 비판과 직접 대응하지 않는다.
- 용기: 딸깍발이 정신으로 제시된 덕목들의 짝이 되기 어렵다.
- 예의: 현대인의 이기적 약음에 맞서는 덕목이 아니다.
말뚝이 : 샌님 말씀 들으시오 시대가 금전이면 그만인데, 하필 이놈을 잡아다 죽이면 뭣 하오? 돈이나 몇백냥 내라고 하야 우리끼리 노나 쓰도록 하면 샌님도 좋고 나도 돈냥이나 벌어 쓰지 않겠소. 그러니 샌님은 못 본체하고 가만히 계시면 내다 잘 처리하고 갈 것이니, 그리 알고 계시오.
말뚝이의 대사는 양반의 부패상을 은근히 풍자한다.
말뚝이는 '시대가 금전이면 그만'이라며 죄인을 벌하는 대신 '돈이나 몇백냥 내라고 하야 우리끼리 노나 쓰'자고 샌님에게 권한다. 양반이 돈에 따라 눈감아 주는 존재로 그려져 그 타락을 꼬집는다.
- 양반의 권위를 빌린 신분 상승: 말뚝이는 신분을 올리려 하지 않고 돈을 나누자고 할 뿐이다.
- 양반 권세를 이용한 한풀이: 한을 푸는 내용은 대사에 드러나지 않는다.
- 양반인 양 행세: 말뚝이는 샌님에게 말을 건넬 뿐 양반 흉내를 내지 않는다.
1905년 —
을사년 겨울,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서 맺어진 '을사 보호 조약'이란 매국 조약을 계기로 소위' 조선 토지 사업'이란 것이 전국적으로서 실시되던 일, 그리고 이태 후인 정미년에 가서는 '한국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수할사'란 치욕적인 조목으로 시작된 '한일 신 협약'에 따라 더욱 그 사업을 강행하고 역둔토(驛屯土)의 대부분과 삼림 원야(森林原野)들을 모조리 국유로 편입시키는 등 교묘한 구실과 방법으로써 농밀들로부터 빼앗은 뒤, 다시 불하하는 형식으로 동척과 일인 수중에 옮겨 놓던 그 해괴 망측한 처사들이 문득 내 머리속에서도 떠올랐다.
"죽일 놈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 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 이런 식으로 소유자가 둔갑되어 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先祖)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룻배 통학생임더' 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이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김정한-모래톱이야기>
<보기>
소설에는 등장 인물이 겪게 되는 대립적 관계인 갈등이 여러 유형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소설에 나타나는 갈등은 대개 ㉠한 개인의 내면적 갈등 ㉡개인대 개인의 갈등 ㉢개인대 사회의 갈등 ㉣인간(개인)대 운명의 갈등 등의 유형으로 나뉜다.
이 소설의 갈등은 개인과 사회의 갈등이다.
건우 할아버지의 분노는 특정 개인이 아니라 조약·'국유로 편입'·'매립 허가' 같은 제도와 권력에 의해 땅을 빼앗겨 온 현실을 향한다.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살아온 주민들이 소유자가 '둔갑되어 간' 사회 구조와 대립한다.
- 개인 내면의 갈등: 인물이 마음속에서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장면이 아니다.
- 개인과 개인의 갈등: 원한의 대상이 특정 인물 하나가 아니라 제도와 권력층 전반이다.
- 개인과 운명의 갈등: 불행의 원인이 숙명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수탈로 제시된다.
Ⅰ. 서론 : 인적 자원은 우리 나라의 최고의 부존 자원
1. 일본 경제 대국화의 원동력은 인적 자원
2. 한국의 높은 교육열
Ⅱ. 본론 : 일본이 크게 발전한 것은 교육과열 때문이다.
1. 교육열은 유지하되,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2. 교육의 체계와 질(質) 개혁
a) 학력 우대의 사회 풍토 개선
b) 입시 위주의 교육 내용 개선
Ⅲ. 결론 : .
결론에는 '교육과열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자 소중한 유산이다'가 들어가야 한다.
제목이 '교육과열의 긍정적 측면'이고, 서론은 인적 자원을 '최고의 부존 자원'이라 하며 본론은 일본의 발전을 교육과열 덕분으로 보고 '교육열은 유지'하자고 한다. 결론은 이를 종합해 교육열을 긍정해야 한다.
- 경쟁심리만 조장한다: 교육과열의 부정적 측면이라 제목과 어긋난다.
- 학벌위주 사회를 만든다: 본론의 개선 대상인 부작용일 뿐 결론이 될 수 없다.
- 성장발전을 저해한다: 교육과열이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본론과 반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