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상 혼동의 우려가 있을 때에는 음절 사이에 붙임표(-)를 쓸 수 있다.
발음상 혼동을 막으려고 붙임표를 쓴 예는 '반구대: Ban-gudae'이다.
'반구대'를 붙여 Bangudae 로 쓰면 '방우대'처럼 'Bang-udae'로 끊어 읽힐 수 있으므로, 음절 경계를 밝히기 위해 n 과 g 사이에 붙임표를 넣는다.
- '독도'는 혼동 우려가 없어 Dokdo로 붙여 적으며, 붙임표를 쓸 이유가 없다.
- '독립문'은 비음화가 일어난 발음 [동님문]을 반영해 Dongnimmun 으로 적어야 하며, 음절마다 붙임표를 넣지 않는다.
- '인왕리'의 붙임표는 혼동 방지가 아니라 '리' 같은 행정 구역 단위 앞에 붙임표를 넣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언문'은 실용 범위에 제약이 있었는데, 이런 현실은 '언간'에도 적용된다. '언간' 사용의 제약은 무엇보다 이것을 주고받은 사람의 성별(性別)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15세기 후반 이래로 숱한 언간이 현전하지만 남성 간에 주고받은 언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남성 간에는 한문 간찰이 오간 때문이나 남성이 공적인 영역을 독점했던 당시의 현실을 감안하면 '언문'이 공식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과 상통한다. 결국 조선시대에는 언간의 발신자나 수신자 어느 한쪽으로 반드시 여성이 관여하는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용자의 성별 특징으로 인하여 종래 '언간'은 '내간'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때문에 내간이 부녀자만을 상대로 하거나 부녀자끼리만 주고받은 편지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16, 17세기의 것만 하더라도 수신자는 왕이나 사대부를 비롯하여 한글 해독 능력이 있는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계층의 남성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문 간찰이 사대부 계층 이상 남성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언간은 특정 계층에 관계없이 남녀 모두의 공유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글의 중심 내용은 '언간은 특정 계층과 성별에 관계없이 이용된 의사소통 수단이었다'이다.
글은 '내간'이라는 명칭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바로잡으며, 마지막 문장에서 '언간은 특정 계층에 관계없이 남녀 모두의 공유물이었다'고 결론짓는다.
- 언간의 실용 범위에 제약이 있었다는 것은 첫 문단의 도입일 뿐, 글이 최종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 아니다.
- 성별 특징 때문에 '내간'으로 불렸다는 것은 오해를 경계하기 위한 전제로 제시된 세부 내용이다.
- 발신자·수신자 한쪽에 반드시 여성이 관여한다는 것은 첫 문단의 소결론이며, 둘째 문단에서 전 계층 남성이 수신자가 될 수 있었다는 논의로 확장된다.
(가) 수학 성적은 참 좋군. 국어 성적도 좋고.
(나) 친구가 “난 학교에 안 가겠다.”고 말했다.
(다) 동생은 가던 길을 멈추면서 나에게 달려왔다.
(라) 대통령은 진지한 연설로서 국민을 설득했다.
옳지 않은 방안은 (다)에 대해 '-면서'가 동시성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면서'는 오히려 두 동작이 동시에 일어남을 나타내는 어미이다. (다)는 '멈추는' 동작과 '달려오는' 동작이 동시에 일어날 수 없으므로 '-고'로 고쳐야 하는 것이며, 고치는 방향은 맞지만 그 근거가 틀렸다.
- (가)는 보조사 '은'이 다른 대상과의 대조를 드러내 국어 성적이 좋지 않다는 뜻을 풍기므로, 뒤 문장과 어울리게 주격 조사 '이'로 바꾸는 것이 적절하다.
- (나)는 큰따옴표로 묶은 직접 인용 뒤이므로 간접 인용 조사 '고'가 아니라 직접 인용 조사 '라고'를 써야 한다.
- (라)는 연설이 설득의 수단이므로 자격의 '로서'가 아니라 수단·도구의 '로써'를 써야 한다.
통일성은 글의 내용이 하나의 주제로 긴밀하게 관련되는 특성을 말한다. 초고의 적절성을 평가할 때에는 글의 내용이 하나의 주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선정되었는지, 그리고 중심 내용에 부합하는 하위 내용들로 선정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사람들은 대개 수학 과목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수학 시간이 재미있다. ㉠바로 수업을 재미있게 진행하시는 수학 선생님 덕분이다. 수학 선생님은 유머로 딱딱한 수학 시간을 웃음바다로 만들곤 한다. ㉡졸리는 오후 시간에 뜬금없이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자고 하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후 어려운 수학 문제를 쉽게 설명한 적도 있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수학 선생님의 인기가 시들 줄 모른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의 아들이 수학을 굉장히 잘한다는 소문이 나 있다. ㉣내 수학 성적이 좋아진 것도 수학 선생님의 재미있는 수업 덕택이다.
통일성을 해쳐 적절하지 않은 문장은 '수학 선생님의 아들이 수학을 굉장히 잘한다는 소문'을 다룬 ㉢이다.
이 글의 중심 내용은 '수학 시간이 재미있는 것은 선생님의 재미있는 수업 덕분'이라는 것인데, 선생님 아들의 수학 실력은 이 주제와 관련이 없는 하위 내용이다.
- ㉠은 수학 시간이 재미있는 이유를 밝혀 중심 내용을 직접 드러낸다.
- ㉡은 선생님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뒤 문제를 쉽게 설명한 일화로, 수업이 재미있다는 내용을 뒷받침한다.
- ㉣은 성적 향상도 재미있는 수업 덕택이라고 하여 주제와 긴밀하게 이어진다.
(가) 내 마음 베어 내어 저 달을 만들고져
구만 리 장천(長天)의 번듯이 걸려 있어
고운 님 계신 곳에 가 비추어나 보리라
(나)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가
남부끄러워 이별의 말 못 하고
돌아와 겹겹이 문을 닫고는
배꽃 비친 달 보며 흐느낀다
적절한 이해는 (가)의 '나'는 적극적 태도로, (나)의 '아가씨'는 소극적 태도로 정서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가)의 화자는 '내 마음 베어 내어 저 달을 만들고져', '고운 님 계신 곳에 가 비추어나 보리라'라며 임에게 다가가려는 의지를 보인다. 반면 (나)의 아가씨는 '이별의 말 못 하고', '겹겹이 문을 닫고는' '흐느낀다'며 감정을 안으로 삭인다.
- (나)의 '달'은 아가씨가 바라보며 슬픔을 느끼는 대상일 뿐, 마음을 임에게 전하는 매개체로 쓰이지 않는다.
- (나)의 '아리따운 아가씨'는 이별의 슬픔을 겪는 인물로 그려질 뿐, 화자가 사랑하는 대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 (가)의 '장천'은 달이 걸려 있을 공간이지 임이 머무는 곳이 아니며, (나)의 '문'은 마음을 숨기는 공간이라기보다 이별 후 홀로 슬픔에 잠기는 행위와 관련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
적절한 이해는 ㉣이 화자가 그리워하는 지난 때를 떠올리며 느끼는 정서를 행위에 투영했다는 것이다.
화자는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고 하여, 앞서 톱밥을 던지던 행위를 눈물을 던지는 행위로 바꾸어 그리움과 슬픔을 드러낸다.
- ㉠은 눈 덮인 유리창마다 톱밥난로의 불빛이 비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여러 개의 난로가 지펴진 안온한 상황을 비유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 ㉡의 '청색의 손바닥'은 추위에 언 손을 불빛에 쬐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대조적 색채로 겨울 풍경의 정취를 강조한 것이 아니다.
- ㉢의 기침소리와 입술담배 연기는 대합실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 줄 뿐, 무례한 행동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 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하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 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이 마름이란 욕 잘 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아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에 똑 됐다. 장인께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
- 김유정, 「봄봄」 -
적절하지 않은 이해는 장인과 소작인 사이의 뒷거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뒷거래는 '미리부터 돈도 먹이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처럼 서술자가 요약적으로 전달할 뿐, 구체적 장면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아야 쓰는' 마름에 '장인님은 외양에 똑 됐다'고 하여 마름의 특성을 동물의 외양에 빗대어 낮잡는다.
- '장인님'이라는 존칭과 '이놈의', '이 자식 저 자식' 같은 비속어를 함께 써서 해학적 효과를 낸다.
- 욕을 잘하고 인심을 잃었으며 마름으로서 땅을 떼는 정황 등을 거론하여 장인의 됨됨이가 마땅치 않음을 드러낸다.
____(이)란 이익과 관련된 갈등을 인식한 둘 이상의 주체들이 이를 해결할 의사를 가지고 모여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대안들을 조정하고 구성하는 공동 의사 결정 과정을 말한다.
빈칸에 들어갈 한자어는 協商(협상)이다.
협상은 '어떤 목적에 부합되는 결정을 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함'이라는 뜻으로, 이익 갈등을 해결하려고 모여 합의에 이르기 위해 대안을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설명과 맞는다.
- 協贊(협찬)은 어떤 일 따위에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뜻한다.
- 協奏(협주)는 독주 악기와 관현악이 함께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
- 協助(협조)는 힘을 보태어 돕는 것을 뜻하며, 이해관계를 조정해 합의하는 과정과는 거리가 있다.
밑줄 친 한자어가 문맥에 맞게 쓰인 것은 '초고를 校訂(교정)하여 책을 완성하였다'이다.
校訂은 '출판물의 잘못된 글자나 글귀 따위를 바르게 고침'이라는 뜻이므로, 초고를 다듬어 책을 완성하는 문맥에 맞는다.
- '서로 교차 검토'의 교차는 '서로 엇갈림'을 뜻하는 交叉로 써야 하며, 交差는 맞지 않는다.
- 안건을 승인받는 뜻의 '결재'는 決裁로 써야 하며, 決濟(결제)는 대금을 치러 거래를 끝내는 일이다.
- 계획을 '다시 생각해 달라'는 문맥이므로 再考(재고)가 맞으며, 提高(제고)는 '쳐들어 높임'이라는 뜻이다.
논리학에서 비형식적 오류 유형에는 우연의 오류, 애매어의 오류, 결합의 오류, 분해의 오류 등이 있다.
우선 ㉠우연의 오류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리나 규칙을 우연적인 상황으로 인해 생긴 예외적인 특수한 경우에까지도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때 생기는 오류이다. 그 예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중증 정신 질환자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중증 정신 질환자는 이성적인 동물이다.”를 들 수 있다. ㉡애매어의 오류는 동일한 한 단어가 한 논증에서 맥락마다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사용될 때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김 씨는 성격이 직선적이다. 직선적인 모든 것들은 길이를 지닌다. 고로 김 씨의 성격은 길이를 지닌다.”가 그 예이다. 한편 각각의 원소들이 개별적으로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의 전제로부터 그 원소들을 결합한 집합 전체도 역시 그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가 ㉢결합의 오류이고, 반대로 집합이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내용의 전제로부터 그 집합의 각각의 원소들 역시 개별적으로 그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가 ㉣분해의 오류이다. 전자의 예로는 “그 연극단 단원들 하나하나가 다 훌륭하다. 고로 그 연극단은 훌륭하다.”를, 후자의 예로는 “그 연극단은 일류급이다. 박 씨는 그 연극단 일원이다. 그러므로 박 씨는 일류급이다.”를 들 수 있다.
예를 바르게 추가한 것은 ㉡ 애매어의 오류에 '세상은 부패하기 쉽다. 고로 세상은 냉동 보관해야 한다'를 든 것이다.
첫 전제의 '부패'는 음식이 상한다는 뜻이고, 둘째 전제의 '부패'는 정치·도덕적으로 타락한다는 뜻이다. 동일한 단어가 맥락마다 다른 의미로 쓰였으므로 애매어의 오류에 해당한다.
- 소크라테스 논증은 일반 원리를 예외적 상황에 잘못 적용한 것이 아니라 타당한 삼단 논법이므로 우연의 오류의 예가 될 수 없다.
- 선수단(집합)이 금메달을 땄으니 선수 각자(원소)도 최고라는 추론은 집합에서 원소로 나아간 것이므로 결합의 오류가 아니라 분해의 오류이다.
- 문장 하나하나(원소)가 탁월하니 답안 전체(집합)도 탁월하다는 추론은 원소에서 집합으로 나아간 것이므로 분해의 오류가 아니라 결합의 오류이다.
문학이 구축하는 세계는 실제 생활과 다르다. 즉 실제 생활은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되지만 이 재료들이 일단 한 구조의 구성 분자가 되면 그 본래의 재료로서의 성질과 모습은 확연히 달라진다.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을 떠올려 보자. 건축가는 어떤 완성된 구조를 생각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서 적절하게 집을 짓게 되는데, 이때 건물이라고 하는 하나의 구조를 완성하게 되면 이 완성된 구조의 구성 분자가 된 재료들은 본래의 재료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지문의 주된 설명 방식은 유추이며, 이것이 적용된 것은 마라톤 완주에 빗대어 목적 있는 인생을 설명한 글이다.
지문은 문학이 실제 생활을 재료로 삼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원리를 '건축가가 집을 짓는 것'에 빗대어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해당 선택지는 '목적을 갖고 뛰어야 마라톤에서 완주가 가능한 것처럼' 인생에서도 목표가 필요하다고 하여 친숙한 대상으로 낯선 대상을 설명한다.
- 르네상스 화가와 인상주의자의 사실성 추구를 다룬 글은 유사한 대상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다.
- 소설을 인물·배경·사건으로 나누어 각각을 설명한 글은 대상을 구성 요소로 나누는 분석이다.
- 강수, 설총 등을 들어 육두품 출신 학자를 설명한 글은 구체적 사례를 드는 예시이다.
세잔이, 사라졌다고 느낀 것은 균형과 질서의 감각이다. 인상주의자들은 순간순간의 감각에만 너무 사로잡힌 나머지 자연의 굳건하고 지속적인 형태는 소홀히했다고 느꼈던 것이다. 반 고흐는 인상주의가 시각적 인상에만 집착하여 빛과 색의 광학적 성질만을 탐구한 나머지 미술의 강렬한 정열을 상실하게 될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다. 마지막으로 고갱은 그가 본 인생과 예술 전부에 대해 철저하게 불만을 느꼈다. 그는 더 단순하고 더 솔직한 어떤 것을 열망했고 그것을 원시인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이 세 사람의 화가가 모색했던 제각각의 해법은 세 가지 현대 미술 운동의 이념적 바탕이 되었다. 세잔의 해결 방법은 프랑스에 기원을 둔 입체주의(cubism)를 일으켰고, 반 고흐의 방법은 독일 중심의 표현주의(expressionism)를 일으켰다. 고갱의 해결 방법은 다양한 형태의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을 이끌어 냈다.
글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고갱이 인상주의가 충분히 솔직하고 단순했다고 생각했다는 진술이다.
고갱은 '인생과 예술 전부에 대해 철저하게 불만을 느꼈'고 '더 단순하고 더 솔직한 어떤 것을 열망'했다. 이는 기존 예술이 충분히 단순하고 솔직하지 않다고 보았다는 뜻이다.
- 세잔은 인상주의에서 '균형과 질서의 감각'이 사라졌다고 느꼈다고 나와 있다.
- 고흐는 인상주의가 '미술의 강렬한 정열을 상실하게 될 위험에 처했다고' 느꼈다고 나와 있다.
- 세 화가가 '모색했던 제각각의 해법'이 각기 다른 현대 미술 운동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므로, 각자 새로운 해결 방법을 모색했다는 내용과 맞는다.
띄어쓰기가 옳지 않은 것은 '제 3장의'이다.
'제(第)-'는 차례를 나타내는 접두사이므로 뒤의 수와 붙여 '제3 장' 또는 '제3장'으로 써야 한다.
- '좋은 걸'의 '걸'은 의존 명사 '것'에 목적격 조사 '을'이 붙은 '것을'의 준말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 '진행한 지'의 '지'는 어떤 일이 있은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의존 명사이므로 띄어 쓴다.
- '10년 차'의 '차'는 주기나 경과의 해당 시기를 나타내는 의존 명사로 보아 띄어 쓴다.
- 교체: 한 음운이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현상
- 탈락: 한 음운이 없어지는 현상
- 첨가: 없던 음운이 생기는 현상
- 축약: 두 음운이 합쳐져서 또 다른 음운 하나로 바뀌는 현상
- 도치: 두 음운의 위치가 서로 바뀌는 현상
옳은 설명은 '깎는'이 교체 현상에 의해 [깡는]으로 발음된다는 것이다.
'깎는'은 음절 끝의 ㄲ이 ㄱ으로 바뀌어(음절의 끝소리 규칙) [깍는]이 되고, 다시 ㄱ이 뒤의 ㄴ 앞에서 ㅇ으로 바뀌어(비음화) [깡는]이 된다. 두 과정 모두 한 음운이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교체이다.
- '깎아'가 [까까]로 나는 것은 받침 ㄲ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뒤 음절 첫소리로 옮겨 가는 연음일 뿐, 음운이 없어지는 탈락이 아니다.
- '깎고'가 [깍꼬]로 나는 것은 음절의 끝소리 규칙과 된소리되기, 곧 교체에 따른 것이며 음운의 위치가 바뀌는 도치가 아니다.
- '깎지'가 [깍찌]로 나는 것도 음절의 끝소리 규칙과 된소리되기에 따른 교체이며, 축약이나 첨가는 일어나지 않는다.
'포스트휴먼'은 그 기본적인 능력이 근본적으로 현재의 인간을 넘어서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스웨덴 출신의 철학자 보스트롬은 건강 수명, 인지, 감정이라는, 인간의 세 가지 주요 능력 중 최소한 하나 이상의 능력에서 현재의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계를 엄청나게 넘어설 경우 이를 '포스트휴먼'으로 부르자고 제안하였다.
현재 가장 뛰어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능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며,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노화가 완전히 제거되어서 젊음과 활력을 계속 유지하는 어떤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존재는 스스로의 심리 상태에 대한 조절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피곤함이나 지루함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미움과 같은 감정을 피하고, 즐거움, 사랑, 미적 감수성, 평정 등의 태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존재가 어떤 존재일지 지금은 정확하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현재 인간의 상태로 접근할 수 없는 새로운 신체나 의식 상태에 놓여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은 완전히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수도 있고, 신체를 버리고 슈퍼컴퓨터 안의 정보 패턴으로 살기를 선택한 업로드의 형태일 수도 있으며, 또는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개선들이 축적된 결과일 수도 있다. 만약 생물학적 인간이 포스트휴먼이 되고자 한다면 유전공학, 신경약리학, 항노화술, 컴퓨터-신경 인터페이스, 기억 향상 약물, 웨어러블 컴퓨터, 인지 기술과 같은 다양한 과학 기술을 이용해 우리의 두뇌나 신체에 근본적인 기술적 변형을 가해야만 할 것이다. '포스트휴먼'은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았을 법한 슈퍼 인간의 모습을 기술한 용어이다.
추론할 수 없는 것은 포스트휴먼 개념이 신체적 결함을 보완한 새로운 인간형의 탄생에 귀결될 것이라는 진술이다.
지문은 포스트휴먼이 '인공지능일 수도 있고', '업로드의 형태일 수도 있으며',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개선들이 축적된 결과일 수도 있다'고 하여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둔다. 따라서 생물학적 인간형 하나로 귀결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 생물학적 인간이 포스트휴먼이 되려면 다양한 과학 기술로 '근본적인 기술적 변형을 가해야만' 한다고 했으므로, 과학 기술의 영향을 현재의 인간보다 더 크게 받는다고 추론할 수 있다.
- '어떤 존재일지 지금은 정확하게 상상하기 어렵지만'이라 하고 여러 형태를 제시했으므로, 형태가 다양한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추론은 적절하다.
- 포스트휴먼은 '현재의 기준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이므로, 인간에 대한 개념이 새로 구성될 것이라는 추론도 적절하다.
옳지 않은 설명은 '크다/작다'를 동시에 부정하면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크다/작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는 등급 반의어여서 '크지도 작지도 않다'처럼 두 단어를 동시에 부정해도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동시 긍정만 모순).
- '출발/도착'은 방향 반의어로, '출발하지 않았다'와 '도착하지 않았다'가 함께 성립할 수 있어 한쪽의 부정이 다른 쪽의 부정과 모순되지 않는다.
- '참/거짓'은 중간 영역이 없는 상보 반의어이므로 '참이 아니다'는 '거짓이다'를 함의한다.
- '넓다/좁다'는 등급 반의어로, '넓다'는 '좁지 않다'를 함의한다.

는 이유를 나타내는 연결 어미로 기능한다.적절한 설명은 ㉣ '알외시니'에서 '-외-'가 사동 접미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알외시니'는 '알-'에 사동 접미사 '-외-'가 붙은 '알외다(알게 하다)'에 높임의 '-시-'가 결합한 형태로, 현대어 풀이의 '알리시니'에 대응한다.
- ㉠은 '사뢸 사람이'로 풀이되며, 여기서 '이'는 '사람'을 뜻하는 의존 명사이지 주격 조사가 아니다.
- ㉡ '뵈아시니'는 '재촉하다'를 뜻하는 '뵈아-'에 높임의 선어말 어미 '-시-'가 붙은 것이므로, '-아시-'를 높임의 선어말 어미로 볼 수 없다.
- ㉢은 '많다'를 뜻하는 '하-'에 연결 어미가 붙어 현대어 풀이의 '많지만'에 대응하므로, 이유가 아니라 양보·대조를 나타낸다.
동양의 음식 중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긴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명절 음식 중 하나인 송편은 반달의 모습을 본뜬 음식으로 풍년과 발전을 상징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의자왕 때 궁궐 땅속에서 파낸 거북이 등에 쓰여 있는 ‘백제는 만월(滿月) 신라는 반달’이라는 글귀를 두고 점술사가 백제는 만월이라서 다음 날부터 쇠퇴하고 신라는 앞으로 크게 발전할 징표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점술가의 예언이 적중했다. 이때부터 반달은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뜻으로 쓰이며, 그러한 뜻을 담아 송편도 반달 모양의 떡으로 빚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반달이 아닌 보름달 모양의 월병을 빚어 즐겨 먹었다. 옛날에 월병은 송편과 마찬가지로 제수 용품이었다. 점차 제례 음식으로서 위상을 잃었지만 모든 가족이 모여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눠 먹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보름달 모양의 월병은 둥근 원탁에 온가족이 모인 것을 상징한다. 한국에서 지역의 단합을 위해 수천 명 분의 비빔밥을 만들듯이 중국에서는 수천 명이 먹을 수 있는 월병을 만들 정도로 이는 의미 있는 음식으로 대접 받고 있다.
글의 내용과 부합하는 것은 신라인들이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송편을 빚었다는 진술이다.
지문은 신라가 '앞으로 크게 발전할 징표'라는 해석 이후 '반달은 더 나은 미래를 기원하는 뜻으로 쓰이며, 그러한 뜻을 담아 송편도 반달 모양의 떡으로 빚었다'고 설명한다.
- 월병은 '점차 제례 음식으로서 위상을 잃었'다고 했으므로 제수 음식으로서 명맥을 유지한다는 진술은 맞지 않는다.
- 비빔밥은 수천 명분을 만든다는 점에서 '만들듯이'라고 견준 것일 뿐, 월병이 비빔밥을 본떠 만든 음식이라는 내용은 없다.
- 『삼국사기』의 기록은 점술가의 예언이 적중했다는 것이지, 예언 덕분에 신라가 발전했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