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적으로 이어진문장인 "해진이는 울산에 살고 초희는 광주에 산다."에는 안긴문장이 없다.
두 홑문장이 연결 어미 '-고'로 나란히 이어졌을 뿐,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의 성분으로 들어가 있지 않다. 나머지는 모두 안은문장이다.
- "나는 동생이 시험에 합격하기를 고대한다.": '동생이 시험에 합격하기'가 명사절로 안겨 목적어 구실을 한다.
- "착한 영호는 언제나 친구들을 잘 도와준다.": '(영호가) 착한'이 관형절로 안겨 '영호'를 꾸민다.
-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내일 가족 여행을 가자고 말씀하셨다.": '내일 가족 여행을 가자'가 간접 인용절로 안겨 있다.
'골아떨어졌겠지'는 잘못된 표기로, 곯아떨어지다로 적어야 한다.
'몹시 곤하거나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고 자다'라는 뜻의 표준어는 '곯아떨어지다'이므로 '곯아떨어졌겠지'가 바르다.
- '책깨나': '어느 정도 이상의'를 뜻하는 보조사 '깨나'를 체언에 붙여 쓴 바른 표기이다.
- '곤욕': '심한 모욕, 참기 힘든 일'을 뜻하므로 모멸·박대와 함께 각오하는 대상으로 알맞다.
- '그러고 나서': 동사 '그러다'에 '-고 나서'가 결합한 바른 표현이다('그리고 나서'는 잘못).
"그는 내 생각이 옳지 않다고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였다."는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자연스럽다.
주어 '그는'과 서술어 '말을 하였다'가 맞고, 인용절 '내 생각이 옳지 않다'도 주술 관계가 바르다. 나머지는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는다.
- "내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고유 언어를 가졌다.": '점은'에 맞게 '가졌다는 것이다'로 고쳐야 한다.
- "좋은 사람과 대화하며 함께한 일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은 … 시간이었다'가 어울리지 않으므로 '함께한 시간은 즐거웠다' 등으로 고쳐야 한다.
- "내 생각은 … 좋겠다고 결정했다.": '생각은'이 '결정했다'의 주어가 될 수 없으므로 '나는 … 결정했다'나 '내 생각은 … 좋겠다는 것이다'로 고쳐야 한다.
- ㉠ 공사하는 기간 동안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해 주십시오.
- ㉡ 오늘 오후에 팀 전체가 모여 회의를 갖겠습니다.
- ㉢ 비상문이 열려져 있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었다.
- ㉣ 지난밤 검찰은 그를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의 '구속했다'를 '구속시켰다'로 고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검찰이 직접 구속하는 것이므로 불필요한 사동 표현을 쓰게 된다.
'-시키다'는 남에게 그 행위를 하게 할 때 쓰는데, ㉣은 주어 '검찰'이 스스로 '그'를 구속한 것이므로 '구속했다'가 바른 표현이다.
- ㉠: '기간'과 '동안'은 의미가 겹치므로 '공사하는 동안'으로 고치는 것이 맞다.
- ㉡: '회의를 갖다'는 영어 have를 옮긴 번역 투이므로 '회의하겠습니다'로 고치는 것이 맞다.
- ㉢: '열려져'는 피동 접사 '-리-'와 '-어지다'가 겹친 이중 피동이므로 '열려'로 고치는 것이 맞다.
| ㉠ 곬 | ㉡ 규탄 |
| ㉢ 곳간 | ㉣ 광명 |
사전에 올리는 순서는 ㉠ 곬 → ㉢ 곳간 → ㉣ 광명 → ㉡ 규탄이다.
한글 맞춤법의 자모 순서에 따라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차례로 비교한다. 넷 모두 첫소리는 'ㄱ'이고, 가운뎃소리는 ㅗ → ㅘ → ㅠ 순이므로 '곬·곳간'이 먼저, '광명'이 다음, '규탄'이 마지막이다.
'곬'과 '곳'은 받침으로 가린다. 받침 순서에서 겹받침 'ㄽ'은 'ㄹ' 계열이라 'ㅅ'보다 앞서므로 '곬'이 '곳간'보다 먼저 온다.
- 넌 얼마나 오지랖이 넓기에 남의 일에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캐는 거냐?
- 강쇠네는 입이 재고 무슨 일에나 오지랖이 넓었지만, 무작정 덤벙거리고만 다니는 새줄랑이는 아니었다.
'오지랖이 넓다'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데가 있다는 뜻이므로, 이와 거리가 먼 것은 謁見(알현)이다.
謁見(알현)은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이라는 뜻으로 참견과는 무관하다.
- 干涉(간섭): 직접 관계가 없는 남의 일에 부당하게 참견함.
- 參見(참견):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
- 干與(간여): 어떤 일에 간섭하여 참여함.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아버지가 평생을 통해 해 온 일은 다섯 가지이다.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이다. 이 일들만 해 온 아버지가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다. 서커스단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꼽추 한 사람을 데리고 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그의 조수로 일하면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무대 위에서 해야 할 연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우리들도 아버지를 성토했다. 아버지는 힘없이 물러섰다. 꼽추는 멍하니 앉아 우리를 보았다. 꼽추는 눈물이 핑 돌아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부대를 메고 다시 일을 찾아 나갔다.
…(중략)…
어머니가 울었다. 어머니는 인쇄소 제본 공장에 나가 접지 일을 했다. 고무 골무를 끼고 인쇄물을 접었다. 나는 겁이 났다. 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출발했다. 땀을 흘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을 두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음이 차라리 편해졌다. 우리를 해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고 있었다. 남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들이 일정한 구역 안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도 이질 집단으로서 보호를 받았다. 나는 우리가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조역, 공목, 약물, 해판의 과정을 거쳐 정판에서 일했다. 영호는 인쇄에서 일했다. 나는 우리가 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싫었다. 영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호는 먼저 철공소 조수로 들어가 잔심부름을 했다. 가구 공장에서도 일했다. 그 공장에 가 일하는 영호를 보았다. 뽀얀 톱밥 먼지와 소음 속에 서 있는 작은 영호를 보고 나는 그만두라고 했다. 인쇄 공장의 소음도 무서운 것이었으나 그곳에는 톱밥 먼지가 없었다. 우리는 죽어라 하고 일했다. 우리의 팔목은 공장 안에서 굵어 갔다. 영희는 그때 큰길가 슈퍼마켓 한쪽에 자리 잡은 빵집에서 일했다. 우리가 고맙게 생각한 것은 환경이 깨끗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든 공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공부를 한 자와 못 한 자로 너무나 엄격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였다. 우리가 학교 안에서 배운 것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나는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정판에서 식자로 올라간 다음에는 일을 하다 말고 원고를 읽는 버릇까지 생겼다. 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판을 들고 가 몇 벌씩 교정쇄를 내기도 했다. 영호와 영희는 나의 말을 잘 들었다. 내가 가져다준 교정쇄를 동생들은 열심히 읽었다. 실제로 우리가 이 노력으로 잃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고입 검정고시를 거쳐 방송 통신 고교에 입학했다.
-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아버지'가 가족들의 바람을 수용해 새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는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아버지는 오히려 가족의 반대로 새 일을 포기했다.
아버지가 서커스단 일을 하겠다고 하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우리들도 아버지를 성토했다."라고 하고, 결국 "아버지의 꿈은 깨어졌다. 아버지는 무거운 부대를 메고 다시 일을 찾아 나갔다."라고 서술된다.
- 윤택하지 못한 처지: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날마다 지기만 했다"에서 확인된다.
- '보이지 않는 보호': "이 구역 안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로 보아 벗어날 수 없는 계층적 한계를 뜻한다.
- 공부를 통한 탈출: "공부를 하지 않고는 우리 구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와 맞다.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의 정의로 ‘수십 억 개의 사물이 서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그리 유용하지 않다. 사물 인터넷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이 전 세계의 컴퓨터를 서로 소통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이 실현된 것이라면, 사물 인터넷은 이제 전 세계의 사물들을 ‘컴퓨터로 만들어’ 서로 소통하도록 만든다는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본래 전원이 있고 칩이 있고, 이것이 통신 장치와 프로토콜을 갖게 되어 연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전원이 있었던 전자 기기나 기계 등은 그 자체로, 전원이 없었던 일반 사물들은 새롭게 센서와 배터리, 통신 모듈이 부착되면서 컴퓨터가 되고 이렇게 컴퓨터가 된 사물들이 그들 간에 또는 인간의 스마트 기기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것이다.
현재의 인터넷과 사물 인터넷의 차이를, 혹자는 사람이 개입되는 것은 사물 인터넷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엄격한 M2M(Machine to Machine)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설명한다. 또 혹자는 사물 인터넷이 실현되려면 사람만큼 사물이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물의 지능성을 중요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두 가지 모두 그릇된 것이다. 사물 인터넷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존 인터넷과의 차이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점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컴퓨터를 서로 연결하는 수준에서 출발한 것이 기존의 인터넷이라면, 이제는 사물 각각이 컴퓨터가 되고, 그 사물들이 사람과 손쉽게 닿는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 등과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사물 인터넷을 사람 수준의 지능을 가진 사물들이 인간의 개입 없이 소통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글쓴이의 견해에 부합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 두 관점을 모두 그릇된 것으로 본다.
글쓴이는 사람의 개입을 배제하는 엄격한 M2M 관점과 '사물의 지능성'을 중시하는 관점을 소개한 뒤 "두 가지 모두 그릇된 것이다."라고 밝힌다.
- 기존 인터넷과의 공통점: "차이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점을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와 맞다.
- 센서·배터리·통신 모듈: 일반 사물들이 "센서와 배터리, 통신 모듈이 부착되면서 컴퓨터가 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다고 했다.
- 컴퓨터가 아니었던 사물의 연결: 기존 인터넷이 컴퓨터를 연결한 것이라면 이제는 "사물 각각이 컴퓨터가 되고" 소통한다는 서술과 맞다.
白犬前行黃犬隨 흰둥이가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野田草際塚纍纍 들밭머리 풀섶에는 무덤이 늘어서 있네
老翁祭罷田間道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日暮醉歸扶小兒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아이가 부축하네
- 이달, 「제총요(祭塚謠)」 -
<보 기>
이달(李達, 1561~1618)이 살았던 시기를 고려할 때, 시인은 임진왜란을 겪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이 시는 해질 무렵 두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무덤이 들밭머리에 늘어서 있다는 것은 전란을 겪은 마을에서 많은 이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늙은이와 아이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이들은 아이의 부모이자 할아버지의 자식에 해당하는 이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취한 까닭도 죽은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속상함 때문일 것이다. ㉣이 시는 전반부에서는 그림을 그리듯이 장면을 묘사하고 후반부에서는 정서를 표출하는 선경후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의 감상이 적절하지 않다. 이 시는 전반부와 후반부 모두 장면을 묘사할 뿐 정서를 직접 드러내는 선경후정의 형식이 아니다.
후반부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아이가 부축하네"도 인물의 모습을 그림처럼 보여 줄 뿐,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는 구절이 없다. 슬픔은 장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 ㉠: '해 저물어', '제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서 해질 무렵 두 사람이 제사 뒤 귀가하는 상황임이 드러난다.
- ㉡: '무덤이 늘어서 있네'를 임진왜란을 겪은 시기와 관련지어 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해석한 것은 타당하다.
- ㉢: 아이의 부모이자 할아버지의 자식인 이의 무덤에 다녀온다는 추론에 이어, 취한 까닭을 안타까움과 속상함으로 본 것은 자연스럽다.
과학사를 들춰 보면 기존의 학체계에 ㉠도전했다가 낭패를 본 인물들의 이야기를 자주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이다. 천동설을 ㉡지지하던 당시의 권력층은 그들의 막강한 힘을 이용하여 갈릴레이를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단자로 욕하고 목숨까지 위협했다. 갈릴레이가 영원한 ㉢침묵을 ㉣맹세하지 않고 계속 지동설을 주장했더라면 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자 표기가 옳은 것은 ㉣ '맹세'를 盟誓로 적은 것이다.
盟誓(맹세)는 '맹세할 맹(盟)'과 '맹세할 서(誓)'로, 일정한 약속이나 목표를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는 뜻이다. 나머지는 글자가 잘못되었다.
- ㉠ 도전: '달아날 도(逃)'가 아니라 '돋울 도(挑)'를 쓴 挑戰이 옳다.
- ㉡ 지지: '땅 지(地)'가 아니라 '지탱할 지(支)', '가질 지(持)'를 쓴 支持가 옳다.
- ㉢ 침묵: '잠길 침(浸)'이 아니라 '잠길 침(沈)'을 쓴 沈默이 옳다.
상수: 요즘 짝꿍이랑 사이가 별로야.
정민: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상수: 그 애가 내 일에 자꾸 끼어들어. 사물함 정리부터 내 걸음걸이까지 하나하나 지적하잖아.
정민: 그런 일이 있었구나. 짝꿍한테 그런 말을 해 보지 그랬어.
상수: 해 봤지. 하지만 그때뿐이야. 아마 나를 자기 동생처럼 여기나 봐.
정민: 나도 그런 적이 있어. 작년의 내 짝꿍도 나한테 무척이나 심했거든. 자꾸 끼어들어서 너무 힘들었어. 네 얘기를 들으니 그때가 다시 생각난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보니 그게 관심이다 싶더라고. 그랬더니 마음이 좀 편해졌어. 그리고 짝꿍과 솔직하게 얘기를 해 봤더니, 그 애도 자신의 잘못된 점을 고치더라고.
상수: 너도 그랬구나. 나도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고, 짝꿍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 봐야겠어.
'정민'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상대방이 해결점을 찾도록 돕고 있다.
정민은 "나도 그런 적이 있어."라며 작년 짝꿍과의 일을 꺼내고, 생각을 바꾸고 솔직하게 얘기했더니 짝꿍도 잘못을 고쳤다고 말한다. 이를 듣고 상수는 "나도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 보고, 짝꿍하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 봐야겠어."라며 스스로 해결 방안을 찾는다.
- 용서를 통한 갈등 해결: 정민과 상수 사이에는 갈등이 없고, 정민이 누구를 용서하는 장면도 없다.
- 약점 비판과 장점 부각: 정민은 상수를 비판하지 않고 공감하며 자기 경험을 나눈다.
- 타당성 평가: 정민은 상수의 말을 들어 주지만 그 말이 옳은지 평가하지는 않는다.
‘인과’는 원인과 결과를 서술하는 전개 방식이다. 어떤 현상이나 결과가 나타나게 된 원인이나 힘을 제시하고 그로 말미암아 초래된 결과를 나타내는 서술 방식이다.
인과의 예로 가장 적절한 것은 온실 효과가 해수면 상승을 거쳐 기후 변화와 저지대 침수로 이어진다고 설명한 글이다.
지구 기온 상승이라는 원인이 해수면 상승을 초래하고, 이것이 다시 바다와 육지의 비율 변화, 엄청난 기후 변화, 섬나라·저지대 침수라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서술하므로 원인과 결과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 제로섬 경제를 다룬 글: '제로섬'의 뜻을 풀이하고 운동 경기를 예로 드는 정의와 예시이다.
- 찬호가 학교로 뛰어드는 글: 인물의 행동을 시간 순서에 따라 보여 주는 서사이다.
- 벼랑 아래 소읍을 그린 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려 내는 묘사이다.
A: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 지방 자치 단체가 의료 취약 계층을 위한 의약품 공급 정보망 구축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관계자 한 분을 모시고 말씀을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B: 네, 안녕하세요.
A: 의약품 공급 정보망이라는 말이 다소 생소한데 이게 무슨 말인가요?
B: 네, 약국이나 제약 회사가 의약품을 저희에게 기탁하면, 이 약품을 필요한 사회 복지 시설이나 국내외 의료 봉사 단체에 무상으로 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사이버상의 네트워크입니다.
A: 그렇군요. 그동안 이 사업에 성과가 있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B: 그렇습니다. 약국이나 제약 회사에서는 판매되지 않은 의약품을 기탁하고 세금 혜택을 받습니다. 그리고 복지 시설이나 봉사 단체에서는 필요한 의약품을 무상으로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A: 그렇군요. 혹시 이 사업에 걸림돌은 없나요?
B: 의약품을 의사의 처방에 따라서 주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가 요구하면 주는 방식이어서 전의약품을 제공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처방전 발급을 부탁할 수도 없고…….
A: 그러니까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정비나 의료 전문가의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는 말씀인 것 같군요. 끝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B: 그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저희 홈페이지에 접속하셔서 회원으로 가입하시면 기부하실 때나 받으실 때나 모두 쉽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A: 네, 간편해서 좋군요. 모쪼록 이 의약품 공급 정보망 사업이 확대되어 국내외 의료 취약 계층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진행자 A가 상대방의 대답에서 모순점을 찾아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은 대화에 나타나지 않는다.
A는 B의 설명에 반박하거나 모순을 지적하지 않고, "그렇군요."라며 수용한 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대화는 사업을 소개하고 참여를 이끄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 들었다는 반응: B의 답변 뒤마다 "그렇군요.", "네, 간편해서 좋군요."라고 반응한다.
- 홍보할 수 있는 대답 유도: "끝으로 이 사업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어 홈페이지 가입 방법을 안내하게 한다.
- 말의 해석과 보충: B가 "처방전 발급을 부탁할 수도 없고……."라며 말을 맺지 못하자 "제도 정비나 의료 전문가의 지원이 좀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라고 정리해 보충한다.
용왕의 아들 이목(璃目)은 항상 절 옆의 작은 연못에 있으면서 남몰래 보양(寶壤) 스님의 법화(法化)를 도왔다. 문득 어느 해에 가뭄이 들어 밭의 곡식이 타들어 가자 보양 스님이 이목을 시켜 비를 내리게 하니 고을 사람들이 모두 흡족히 여겼다. 하늘의 옥황상제가 장차 하늘의 뜻을 모르고 비를 내렸다 하여 이목을 죽이려 하였다. 이목이 보양 스님에게 위급함을 아뢰자 보양 스님이 이목을 침상 밑에 숨겨 주었다. 잠시 후에 옥황상제가 보낸 천사(天使)가 뜰에 이르러 이목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보양 스님이 뜰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키자 천사가 배나무에 벼락을 내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바람에 배나무가 꺾어졌는데 용이 쓰다듬자 곧 소생하였다(일설에는 보양 스님이 주문을 외워 살아났다고 한다). 그 나무가 근래에 땅에 쓰러지자 어떤 이가 빗장 막대기로 만들어 선법당(善法堂)과 식당에 두었다. 그 막대기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일연, 『삼국유사』 -
벼락 맞은 배나무로 만든 막대기가 글쓴이의 당대까지 전해졌다는 이해가 적절하다. 글 끝의 "그 막대기에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가 근거이다.
쓰러진 배나무를 "근래에" 누군가 빗장 막대기로 만들어 선법당과 식당에 두었고, 현재형 '새겨져 있다'로 서술하므로 글쓴이 당시에도 막대기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 배나무의 저절로 소생: "용이 쓰다듬자 곧 소생하였다"고 했고, 일설에도 보양 스님이 주문을 외워 살아났다고 하므로 저절로 살아난 것이 아니다.
- 천사의 실수: 보양 스님이 배나무를 가리키자 천사가 그 배나무에 벼락을 내린 것이지, 이목을 노리다 실수한 것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 벌하려던 대상: 옥황상제는 하늘의 뜻을 모르고 비를 내렸다 하여 보양 스님이 아니라 이목을 죽이려 했다.
경상 지역 방언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ㅓ’와 ‘ㅡ’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들은 ‘증표(證票)’나 ‘정표(情表)’를 구별하여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별하여 발음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또 이들은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은 ‘살밥을 많이 먹어서 쌀이 많이 쪘다’고 말하든 ‘쌀밥을 많이 먹어서 살이 많이 쪘다’고 말하든 쉽게 그 차이를 알지 못한다. 한편 평안도 및 전라도와 경상도의 일부에서는 ‘ㅗ’와 ‘ㅓ’를 제대로 분별해서 발음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안도 사람들의 ‘ㅈ’ 발음은 다른 지역의 ‘ㄷ’ 발음과 매우 비슷하다. 이처럼 ( ㉠ )
㉠에는 우리말에는 지역에 따라 구별되지 않는 소리가 있다는 주장이 들어가야 한다.
지문은 경상 방언의 'ㅓ'와 'ㅡ', 'ㅅ'과 'ㅆ'의 미구별, 일부 지역의 'ㅗ'와 'ㅓ' 미분별, 평안도의 'ㅈ'과 'ㄷ' 발음의 유사성을 차례로 든다. 이 사례들은 모두 지역에 따라 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현상이므로 '이처럼' 뒤에 이를 일반화한 주장이 와야 한다.
- 지역마다 다양한 소리: 사례들은 소리의 다양성이 아니라 구별의 부재를 보여 준다.
- 지역별 다양한 표준 발음법: 지문은 표준 발음법을 다루지 않는다.
- 자음보다 모음을 변별하지 못하는 지역이 더 많음: 자음과 모음 사례가 함께 제시될 뿐 지역 수를 비교하지 않는다.
기술 혁신의 상징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 글로벌 아이콘이 됐던 소위 스마트폰이 그 진화의 한계에 봉착한 듯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랜 기간 스마트폰 생산량의 수위를 지켜 왔던 기업들의 호시절도 끝난 분위기다. ( ㉠ )
그렇다면 스마트폰 이후 글로벌 주도 산업은 무엇일까.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뜻하는 ‘팡(FANG)’이다. 모바일 퍼스트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사업에 눈뜬 기업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이 크게 늘었으며 주가도 폭등했다. 하지만 이들이라고 영속 불멸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는 "정보 기술 업계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가 들어가야 한다.
권불십년은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오랜 기간 수위를 지켜 온 스마트폰 기업들의 호시절이 끝난 상황과 맞는다. 뒤 문단의 "이들이라고 영속 불멸하지는 않을 것이다."와도 통일성을 이룬다.
- 절치부심(切齒腐心):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인다는 뜻으로, 국민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은 글의 흐름과 무관하다.
- 아전인수(我田引水): 자기에게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한다는 뜻으로, 다른 나라 기업을 본받자는 맥락에도 맞지 않는다.
- 내우외환(內憂外患): 나라 안팎의 근심으로, 국가 간 협력은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희극의 발생 조건에 대하여 베르그송은 집단, 지성, 한 개인의 존재 등을 꼽았다. 즉 집단으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감성을 침묵하게 하고 지성만을 행사하는 가운데 그들 중 한 개인에게 그들의 모든 주의가 집중되도록 할 때 희극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세 가지 사항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단순한 형태의 직접적인 장치는 대상의 신체적인 결함이나 성격적인 결함을 들 수 있다. 관객은 이러한 결함을 지닌 인물을 통하여 스스로 자기 우월성을 인식하고 즐거워질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한 인물이 우리에게 희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우리 자신과 비교해서 그 인물이 육체의 활동에는 많은 힘을 소비하면서 정신의 활동에는 힘을 쓰지 않는 경우이다. 어느 경우에나 우리의 웃음이 그 인물에 대하여 우리가 지니는 기분 좋은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라는 프로이트의 말은 시사적이다.
베르그송에 의하면 희극이 관객의 감성이 집단적으로 표출된 결과라는 이해는 적절하지 않다. 베르그송은 사람들이 감성을 침묵하게 하고 지성만을 행사할 때 희극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지문은 "집단으로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감성을 침묵하게 하고 지성만을 행사하는 가운데" 한 개인에게 주의가 집중될 때 희극이 발생한다고 설명하므로, 감성의 표출과는 정반대이다.
- 희극 발생의 조건: 베르그송은 집단, 지성, 한 개인의 존재를 희극의 발생 조건으로 꼽았다.
- 신체적·성격적 결함: "웃음을 유발하는 단순한 형태의 직접적인 장치는 대상의 신체적인 결함이나 성격적인 결함"이라고 했다.
- 프로이트의 견해: 육체의 활동에 많은 힘을 쓰고 정신의 활동에는 힘을 쓰지 않는 인물이 희극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시 방수액을 부어 완벽을 기하고 이음새 부분은 손가락으로 몇 번씩 문대어 보고 나서야 임 씨는 허리를 일으켰다. 임 씨가 일에 몰두해 있는 동안 그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일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저 열 손가락에 박힌 공이의 대가가 기껏 지하실 단칸방만큼의 생활뿐이라면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목욕탕 일도 그러했지만 이 사람의 손은 특별한 데가 있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주무르고 있는 일감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되어 날렵하게 움직이고 있는 임 씨의 열 손가락은 손가락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 양귀자,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 -
㉠은 고된 노동을 하는 이웃의 처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므로, 산 밭을 일구느라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걱정하는 시와 정서가 가장 유사하다.
㉠은 임 씨의 숙련된 손에 대한 대가가 "기껏 지하실 단칸방만큼의 생활뿐"인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산 밭을 일구느라 고생을 하며 /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한다네"도 힘겹게 일하는 사람의 고달픈 삶을 안쓰러워하는 정서를 드러낸다.
- "즐거운 지상의 잔치에 …": 아침의 개벽을 노래하는 밝고 희망찬 정서이다.
-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 자연 속 존재의 고독과 자연 친화를 노래한다.
-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 고향의 정겨운 풍경을 떠올리는 그리움의 정서이다.
기존의 의학적 연구는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삼아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농약과 같은 화학 물질이 몸에 들어와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지 검토한 연구에서 생리 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여성 호르몬이 그 물질과 어떤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지는 고려되지 않았다. 자동차 충돌 사고를 인체 공학적으로 시뮬레이션할 때도 특정 연령대 남성의 몸이 연구 대상으로 사용되었고, 여성의 신체 특성이나 다양한 연령대 남성의 신체적 특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특정 연령대 성인 남성의 몸을 표준화된 인체로 여겼던 사고방식은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대사율, 피부와 조직 두께 등을 감안한, 사람이 가장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무실 온도는 21℃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한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 직장인에게 각각 선호하는 사무실 온도를 조사한 결과는 남성은 평균 22℃, 여성은 평균 25℃였다. 남성은 기존의 적정 실내 온도에 가까운 답을 했고, 여성은 더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차이의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적정 사무실 온도로 알려진 21℃는 1960년대 측정된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데, 당시 몸무게 70kg인 40세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측정된 것이다. 이러한 ‘표준화된 신체’를 가진 남성의 대사율은 여성이나 다른 연령대 남성들의 대사율과 다르고, 당연히 체내 열 생산의 양도 차이가 있다.
모든 공공 기관의 사무실 설정 온도를 일률적으로 높이자는 것은 이 글의 시사점으로 적절하지 않다. 글의 요지는 하나의 표준으로 모두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문은 성인 남성을 '표준화된 신체'로 삼은 데서 문제가 생겼고, 남성은 평균 22℃, 여성은 평균 25℃를 선호하는 등 집단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온도를 일률적으로 올리는 것은 또 다른 단일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어서 다양성을 고려하라는 취지와 어긋난다.
- 다양한 대상 선정: 표준 대상이 여성이나 다른 연령대 남성의 특성을 대표하지 못했다는 지적에서 이끌어 낼 수 있다.
- 기존 의학 지식의 연구 대상 확인: 기존 연구가 건장한 성인 남성을 표준으로 이루어졌다는 서술과 맞다.
- 성별·연령대 고려한 근무 환경: 대사율과 체내 열 생산이 집단마다 다르다는 내용에서 도출된다.
나는 ㉠‘연극에서의 관객의 공감’에 대해 강연한 일이 있다. 나는 관객이 공감하는 것을 직접 보여 주려고 시도했다. 먼저 나는 자원자가 있으면 나와서 배우처럼 읽어 주기를 청했다. 그리고 청중에게는 연극의 관객이 되어 들어 달라고 했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그에게 아우슈비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의 한 장면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자원자가 종이를 받아들고 그것을 훑어볼 때 청중들은 어수선했다. 그런데 자원자의 입에서 떨어진 첫 대사는 끔찍한 내용이었다. 아우슈비츠에 관한 적나라한 증언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청중들은 완전히 압도되었다. 자원자는 청중들의 얼어붙은 듯한 침묵 속에서 낭독을 계속했다. 자원자의 낭독은 세련되지도 능숙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관객들의 열렬한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과거 역사가 현재의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공감되었다.
이것이 끝나고 이번에는 강연장에 함께 갔던 전 배우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에서 발췌한 대사를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본은 400년 전 아젱쿠르 전투(백년 전쟁 당시 벌어졌던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한 전투)에서 처참하게 사망한 자들의 명단과 그 숫자를 나열한 것이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임을 알아보자 품위 있고 고풍스럽게 큰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는 유려한 어조로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청중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갈수록 청중들은 낭독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들에게 아젱쿠르 전투는 공감할 수 없는 것으로 분리된 것 같아 보였다. 앞서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과 관련해 가장 적절한 이해는 훌륭한 고전이라고 해서 항상 청중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희곡 「헨리 5세」의 대사를 낭독했지만 "청중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라고 하고, "아젱쿠르 전투는 공감할 수 없는 것으로 분리된 것 같아 보였다."라고 한다.
- 배우의 연기력이 공감을 좌우함: 세련되지도 능숙하지도 않은 자원자의 낭독은 열렬한 공감을 얻고, 전 배우의 품위 있는 낭독은 외면받았다.
- 비참한 죽음을 다룬 소재의 공감: 아젱쿠르 전투에서 처참하게 사망한 자들을 다룬 대사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 현재와 가까운 역사의 극화: 상대적으로 가까운 아우슈비츠를 다룬 장면은 과거 역사를 현재의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공감시켰으므로 지문과 어긋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