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약품이다. 우리 주변에는 약물이 오남용되는 경우가 있다.
(가) 더구나 약물은 내성이 있어 이전보다 더 많은 양을 사용하기 마련이므로 피해는 점점 커지게 된다.
(나) 오남용은 오용과 남용을 합친 말로서 오용은 본래 용도와 다르게 사용하는 일, 남용은 함부로 지나치게 사용하는 일을 가리킨다.
(다) 그러므로 약물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고 설명서를 확인하여 목적에 맞게 적정량을 사용해야 한다.
(라) 약물을 오남용하면 신체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배열은 (나)-(라)-(가)-(다)이다.
첫머리의 '오남용'을 (나)가 '오용'과 '남용'으로 풀이하고, (라)가 오남용의 '신체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를 제시한다. (가)는 '더구나'로 내성 때문에 '피해는 점점 커지게 된다'고 피해를 덧붙이고, (다)는 '그러므로'로 '적정량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맺는다.
- (나)-(다)-(라)-(가):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결론 (다)가 피해 서술인 (라)·(가)보다 앞서 논리 흐름이 어긋난다.
- (라)-(가)-(나)-(다): 용어의 뜻을 밝히는 (나)가 피해 서술 뒤에 와서 첫머리의 '오남용'과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 (라)-(다)-(나)-(가): 결론 (다) 뒤에 용어 정의 (나)와 피해의 첨가 (가)가 이어져 흐름이 끊긴다.
갑 : 고대 노예제 사회나 중세 봉건 사회는 타고난 신분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계급사회였지만, 현대 사회는 계급사회가 아니라고 많이들 말해. 그런데 과연 그런지 의문이야.
을 : 현대 사회는 고대나 중세만큼은 아니지만 귀속지위가 성취지위를 결정하는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어. 빈부 격차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그에 따른 불평등이 엄연히 존재하잖아. ‘금수저’, ‘흙수저’라는 유행어에서 볼 수 있듯 빈부 격차가 대물림되면서 개인의 계급이 결정되고 있어.
병 : 현대 사회가 빈부 격차로 인해 계급이 나누어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계급사회라고 단정할 수는 없어. 계급사회라고 말하려면 계급 체계 자체가 인간의 생활을 전적으로 규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늘날 각종 문화나 생활 방식 전체를 특정한 계급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따라서 현대 사회를 계급사회로 보기는 어려워.
갑 : 현대 사회의 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은 맞아. 하지만 인간 생활의 근간은 결국 경제 활동이고, 경제적 계급 논리로 현대 사회의 문화를 충분히 설명하고 규정할 수 있어. 또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사회적 지위는 부모의 경제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계급사회라고 말할 수 있어.
을은 빈부 격차의 대물림으로 '개인의 계급이 결정되고 있'다며 현대 사회를 계급사회로 보므로, 을의 주장은 갑의 주장과 대립하지 않는다.
갑은 현대 사회가 계급사회가 아니라는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마지막에 '계급사회라고 말할 수 있어'라고 결론짓는다. 반면 병은 '현대 사회를 계급사회로 보기는 어려워'라며 갑·을과 반대 입장에 선다.
- 갑이 을의 주장 중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반박한다는 진술: 갑은 을의 주장을 반박하지 않으며, 일부 수용('문화가 다양하다는 것은 맞아')하는 대상은 병의 주장이다.
- 갑과 병이 상이한 전제에서 유사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진술: 두 사람의 결론은 계급사회 여부에 대해 정반대이다.
- 병의 주장이 갑과는 대립하지 않고 을과만 대립한다는 진술: 병은 갑과 을 모두와 대립한다.
밑줄 친 부분이 표준어로 쓰인 것은 '통째로'이다.
'나누지 아니한 덩어리 전부'를 뜻하는 말은 '통째'가 표준어이며, '통채'는 비표준어이다.
- 허구헌: '날, 세월 따위가 매우 오래다'라는 뜻의 표준어는 '허구하다'이므로 '허구한 날'로 써야 한다.
- 하마트면: '조금만 잘못하였더라면'의 뜻을 가진 표준어는 '하마터면'이다.
- 잘룩하게: 기다란 물건의 한 군데가 패어 들어가 오목한 모양을 나타내는 표준어는 '잘록하다'이다.
- ㉠ 어떤 일을 할 능력이나 소양이 있다.
- ㉡ 다른 사람과 사귐이 있거나 인연이 있다.
- ㉢ 어떤 일에 대하여 관여하거나 관심을 가지다.
- ㉣ 어떤 일을 어떻게 할지 스스로 정하거나 판단하다.
'질 줄 알았다'의 '알다'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여겼다는 뜻이므로, ㉣ '스스로 정하거나 판단하다'의 예로 적절하지 않다.
㉣의 예로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처럼 자기 뜻대로 결정하는 쓰임이 알맞다. 경기 결과를 미리 예상한 것은 짐작·믿음에 해당한다.
- ㉠ '능력이나 소양이 있다': '7개 국어를 할 줄 안다'는 외국어를 구사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므로 적절하다.
- ㉡ '사귐이 있거나 인연이 있다': '서로 알고 지낸 지'는 사귐이 있다는 뜻이므로 적절하다.
- ㉢ '관여하거나 관심을 가지다': '내가 알 바 아니다'는 그 일에 관여하거나 관심을 둘 일이 아니라는 뜻이므로 적절하다.
진행자 : 우리 시에서도 다음 달부터 시내 도심부에서의 제한 속도를 조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강□□ 교수님 모시고 말씀 듣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강교수 : 네, 안녕하세요?
진행자 : 바뀌는 제도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강교수 : 네, 시내 도심부 간선도로에서의 제한 속도를 기존의 70km/h에서 60km/h로 낮추는 정책입니다.
진행자 : 시의회에서 이 정책 도입에 중요한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주장하셨나요?
강교수 : 차량 간 교통사고 발생 가능성을 줄이고 보행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진행자 :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런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교통체증을 유발하여 대기오염이 심화될 것이라며 이 정책에 반대합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강교수 : 그렇지 않습니다. ○○시가 작년에 7개 구간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시험 적용해 보니, 차가 막히는 시간은 2분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상 이상의 인명 사고는 26.2% 감소했습니다. 또 이산화질소와 미세먼지 같은 오염물질도 각각 28%, 21%가량 오히려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진행자 : 아, 그러니까 속도를 10km/h 낮출 때 2분 정도 늦어지는 것이라면 인명 사고의 예방과 오염물질의 감소를 위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시간이라는 말씀이시군요.
강교수 : 네, 맞습니다.
진행자 : 교통사고를 줄이고 보행자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 교통체증 유발은 미미할 것이라는 점, 오염물질 배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의 제한 속도 조정 정책은 훌륭한 정책이라는 것이군요. 맞습니까?
강교수 : 네,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진행자는 자신의 경험을 말한 적이 없으므로, 상대방의 설명을 뒷받침할 자신의 경험을 예시한다는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진행자의 발언은 질문, 반대 의견 소개, 수치의 의미 풀이, 요약 확인으로 이루어질 뿐 개인 경험은 등장하지 않는다.
- 통계 수치를 제시한 의도를 풀어 설명함: '2분 정도 늦어지는 것이라면 … 충분히 감수할 만한 시간이라는 말씀이시군요'에서 확인되므로 옳다.
- 견해를 요약하며 이해한 바를 확인함: 마지막 발언에서 세 가지 점을 정리하고 '맞습니까?'라고 물으므로 옳다.
- 이견을 소개하고 의견을 요청함: '일각에서는 … 이 정책에 반대합니다.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에서 확인되므로 옳다.
어떤 구성을 두 요소로만 쪼개었을 때, 그 두 요소를 직접구성요소라 한다. 직접구성요소가 어근과 어근인 단어는 합성어라 하고 어근과 접사인 단어는 파생어라 한다.
'지우개'와 '새파랗다'는 둘 다 파생어이므로 단어의 종류가 같다.
'지우개'는 어근 '지우-'에 접미사 '-개'가, '새파랗다'는 접두사 '새-'에 어근 '파랗-'이 결합하여 직접구성요소가 모두 어근과 접사이다.
- 조각배-드높이다: '조각배'는 '조각'+'배'의 합성어, '드높이다'는 접두사 '드-'+'높이다'의 파생어이다.
- 짓밟다-저녁노을: '짓밟다'는 접두사 '짓-'+'밟다'의 파생어, '저녁노을'은 '저녁'+'노을'의 합성어이다.
- 풋사과-돌아가다: '풋사과'는 접두사 '풋-'+'사과'의 파생어, '돌아가다'는 '돌다'+'가다'의 합성어이다.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 박용래, 「울타리 밖」 -
이 시에는 화자가 '나'로 드러나지 않고 마을과 들길을 정겹게 그릴 뿐이므로, 화자를 표면에 나타내어 고향에 대한 상실감을 표출한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시는 '사랑스러운 들길', '별이 뜨는 마을'처럼 평화로운 고향 풍경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상실의 정서는 찾을 수 없다.
- 향토적 소재로 공간 풍경을 묘사함: '마늘쪽', '들길', '울타리', '화초' 등으로 마을 풍경을 그리므로 적절하다.
- 유사한 문장 구조의 반복으로 리듬감 조성: '~ 마을이 있다'와 '~듯'의 반복이 나타나므로 적절하다.
- 하나의 시어를 독립된 연으로 구성함: '천연히'를 한 연으로 떼어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을 강조하므로 적절하다.
진화 개념에 대해 흔히 오해되는 측면이 있다. 첫째, 인간의 행동은 철저하게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진화 이론이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인 적응 성향과 이러한 적응 성향을 발달시키고 활성화되게 하는 환경으로부터의 입력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둘째, 현재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 체계는 오랜 진화 과정에 의한 최적의 적응 방식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다. 가령 구석기시대의 적응 방식을 오늘날 인간이 지니고 있어 생기는 문제점이 있다. 원시시대에 사용하던 인지적 전략 등이 현재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복잡한 상황에 적응하는 데는 원시시대의 적응 방식이 부적절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 적응 성향과 환경의 입력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므로,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도 환경에서 얻은 정보가 다르면 행동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지문은 진화 이론이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행동은 '환경으로부터의 입력이 상호작용한 결과'라고 밝힌다. 유전적 성향이 같아도 환경의 입력이 다르면 결과가 달라진다.
- 행동은 환경, 마음은 유전으로 결정된다는 진술: 지문은 행동을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며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 상황이 복잡할수록 인지적 전략이 최적화된다는 진술: 지문은 복잡한 상황에서 원시시대의 적응 방식이 '부적절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 과거 환경이 유전적 성향보다 진화 방향을 우선 결정한다는 진술: 둘 사이의 우선순위는 지문에서 다루지 않는다.
- 현실을 [ (가) ]한 그 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 그는 [ (나) ]이 잦아 친구들 사이에서 신의를 잃었다.
- 이 소설은 당대의 구조적 [ (다) ]을 예리하게 비판했다.
| (가) | (나) | (다) | |
|---|---|---|---|
| ① | 度外視 | 食言 | 矛盾 |
| ② | 度外視 | 添言 | 腹案 |
| ③ | 白眼視 | 食言 | 矛盾 |
| ④ | 白眼視 | 添言 | 腹案 |
문맥에 맞는 한자어는 (가) 度外視(도외시), (나) 食言(식언), (다) 矛盾(모순)의 조합이다.
현실을 상관하지 않고 무시한 정책이므로 '도외시', 한 말을 지키지 않아 신의를 잃었으므로 '식언', 사회 구조 속에서 서로 어긋나 맞지 않는 문제를 비판했으므로 '모순'이 알맞다. 白眼視(백안시)는 업신여기거나 냉대하여 흘겨본다는 뜻이라 '현실을 ~한 정책'에 어울리지 않는다.
- 度外視-添言-腹案: 添言(첨언)은 덧붙여 말함, 腹案(복안)은 마음속에 품은 계획이라 (나)·(다)의 문맥에 맞지 않는다.
- 白眼視-食言-矛盾: (가)의 백안시가 문맥에 맞지 않는다.
- 白眼視-添言-腹案: 세 자리 모두 문맥에 맞지 않는다.
오늘날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비대면’ 접촉에 의한 상호 관계가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오프라인’이나 ‘대면’이라는 용어는 물리적 실체감이 있는 아날로그적 접촉을 가리킨다. 그런데 우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경험할 수도 있고, 이러한 이분법적인 용어로 명료하게 분리되지 않는 활동들도 많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문자를 주고받음으로써 대면 상호작용과 온라인 상호작용을 동시에 할 수 있다.
한편 오프라인 대면 상호작용에서보다 온라인 비대면 상호작용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때 아날로그 상호작용 수단과 디지털 상호작용 수단을 동시에 활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 사회에서 우리의 경험은 비대면 혹은 대면, 온라인 혹은 오프라인 같은 이분법적 범주로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상호작용 양식들이 서로 겹치거나 교차하는 현상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이분법적인 범주는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
지문은 '온라인 비대면 상호작용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더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으므로, 비대면 온라인 상호작용으로는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추론은 적절하지 않다.
글의 핵심은 우리의 경험이 대면·비대면, 온라인·오프라인의 이분법적 범주로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상호작용 양식의 교차 양상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진술: '이분법적인 범주는 심각한 한계를 지닌다'와 일치한다.
- 온라인 비대면 활동과 오프라인 대면 활동이 온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진술: '명료하게 분리되지 않는 활동들도 많다'와 일치한다.
- 대면 상호작용 중에도 디지털 수단에 의한 상호 관계가 가능하다는 진술: 만나서 대화하는 중에 '문자를 주고받음으로써' 두 상호작용을 동시에 한다는 예와 일치한다.
부사는 장화와 홍련이 꿈에 나타나 자신들의 원통한 사정에 대해 고한 말을 듣고 배 좌수를 관아로 불러들였다. 부사가 물었다. “딸들이 무슨 병으로 죽었소?” 배 좌수는 머뭇거리며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후처가 엿보고 있다가 남편이 사실을 누설할까 싶어 곧장 들어와 답했다. “제 친정은 이곳의 양반 가문입니다. 장녀 장화는 음행을 저질러 낙태한 뒤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밤을 틈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차녀 홍련은 언니의 일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렇게 낙태한 증거물을 바치니 부디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부사는 그것을 보고 미심쩍어하며 모두 물러가게 했다.
이날 밤 운무가 뜰에 가득한데 장화와 홍련이 다시 나타났다. “계모가 바친 것은 실제로 제가 낙태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계모가 죽은 쥐의 가죽을 벗겨 제 이불 안에 몰래 넣어 둔 것입니다. 다시 그것을 가져다 배를 갈라 보시면 분명 허실을 알게 되실 겁니다.” 이에 부사가 그 말대로 했더니 과연 쥐가 분명했다.
- 「장화홍련전」에서 -
꿈에 다시 나타난 장화가 증거물은 '죽은 쥐의 가죽'이니 '배를 갈라 보시면 분명 허실을 알게 되실' 것이라 했으므로, 장화는 후처가 제시한 증거가 거짓임을 확인할 계책을 부사에게 알려 주었다.
'제가 낙태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라는 말에서 말하는 이가 낙태 누명을 쓴 장화임을 알 수 있고, 부사가 그 말대로 하자 '과연 쥐가 분명했다'.
- 부사가 증거를 보고 장화와 홍련의 말이 거짓이라 확신했다는 진술: 부사는 증거를 보고 '미심쩍어하며' 모두 물러가게 했다.
- 후처가 음행을 저지른 홍련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는 진술: 후처는 음행 후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을 장화라 했고, 홍련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 배 좌수가 자결 이유를 묻는 부사에게 대답하지 못했다는 진술: 부사는 '무슨 병으로 죽었소?'라고 물었을 뿐 자결 이유를 묻지 않았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제 몸을 희생해 가며 나라 지키기에 나섰으되 역사책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이들이 이순신의 일기에는 뚜렷하게 기록된 것이다.
『난중일기』의 진면목은 7년 동안 전란을 치렀던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가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는 데 있다. [ (가) ] 왜군이라는 외부의 적은 물론이고 임금과 조정의 끊임없는 경계와 의심이라는 내부의 적과도 싸우며, 영웅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느낀 극심한 심리적 고통이 잘 나타나 있다. [ (나) ] 전란 중 겪은 원균과의 갈등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그가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는 보통의 인간이었음을 보여 준다. [ (다) ] 그뿐만 아니라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과 함께 휘하 장수에서부터 병졸들과 하인, 백성들의 이름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 (라) ] 『난중일기』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시된 문장은 (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라) 바로 앞에서 이순신이 '휘하 장수에서부터 병졸들과 하인, 백성들의 이름까지도 언급'한다고 했으므로, '역사책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이들이 … 기록된 것이다'가 이를 받아 정리한다. 이어지는 '바로 여기에'는 이 기록 사실을 가리켜 『난중일기』의 위대함을 밝힌다.
- (가):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이순신의 인간적 고뇌와 심리적 고통이어서 이름 없는 이들의 기록과 무관하다.
- (나): 앞뒤가 심리적 고통과 원균과의 갈등을 다루므로 제시문이 들어갈 자리가 아니다.
- (다): 이름을 언급했다는 내용이 아직 나오기 전이라 '기록된 것이다'가 받을 대상이 없다.
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 그의 허리에 찬 조그만 가방 속에 어떠한 인생이 압축되어 있을 것인고, 불안과, 초조와, 기대와…… 그 조그만 종이 위의, 그 짧은 문면(文面)은 그렇게도 용이하게, 또 확실하게, 사람의 감정을 지배한다. 사람은 제게 온 전보를 받아 들 때 그 손이 가만히 떨림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구보는 갑자기 자기에게 온 한 장의 전보를 그 봉함(封緘)을 떼지 않은 채 손에 들고 감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전보가 못 되면, 보통우편물이라도 좋았다. 이제 한 장의 엽서에라도, 구보는 거의 감격을 가질 수 있을 게다.
흥, 하고 구보는 코웃음쳐 보았다. 그 사상은 역시 성욕의, 어느 형태로서의, 한 발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물론 결코 부자연하지 않은 생리적 현상을 무턱대고 업신여길 의사는 구보에게 없었다. 사실 서울에 있지 않은 모든 벗을 구보는 잊은 지 오래였고 또 그 벗들도 이미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여 오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지금, 무엇들을 하고 있을꼬, 한 해에 단 한 번 연하장을 보내 줄 따름의 벗에까지, 문득 구보는 그리움을 가지려 한다. 이제 수천 매의 엽서를 사서, 그 다방 구석진 탁자 위에서…… 어느 틈엔가 구보는 가장 열정을 가져, 벗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보았다. 한 장, 또 한 장, 구보는 재떨이 위에 생담배가 타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가 기억하고 있는 온갖 벗의 이름과 또 주소를 엽서 위에 흘려 썼다…… 구보는 거의 만족한 웃음조차 입가에 띠며, 이것은 한 개 단편소설의 결말로는 결코 비속하지 않다, 생각하였다. 어떠한 단편소설의―물론, 구보는, 아직 그 내용을 생각하지 않았다.
- 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
구보의 생각이 전보 배달의 자전거에서 전보·엽서, 오래 소식이 끊긴 벗들, 엽서에 편지를 쓰는 자신의 모습, 단편소설의 결말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므로, 연상 작용에 의해 인물의 생각이 연속되고 있다.
'문득, 제비와 같이 경쾌하게 전보 배달의 자전거가 지나간다'는 외부 자극에서 출발해 '전보가 못 되면, 보통우편물이라도 좋았다', '문득 구보는 그리움을 가지려 한다'처럼 의식의 흐름이 이어진다.
- 벗들과의 추억을 시간순으로 회상한다는 진술: 벗들과의 지난 일을 시간 순서대로 떠올리는 대목은 없다.
- 주인공인 서술자가 주변 거리를 재현한다는 진술: '구보는'처럼 3인칭으로 서술되어 주인공이 서술자가 아니다.
- 전보가 이동된 경로를 따라 사건이 전개된다는 진술: 전보는 생각의 계기일 뿐 그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서술은 없다.
'무진장(無盡藏)하다'는 다함이 없을 만큼 매우 많다는 뜻이므로, '여러 가지가 있다'로 바꾸어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無(없을 무)·盡(다할 진)·藏(감출 장)으로 이루어져 양이 끝없이 많음을 나타내며, 종류가 다양하다는 뜻과는 다르다. '매우 많다' 정도로 바꾸는 것이 알맞다.
- 배회(徘徊)하였다 → 돌아다녔다: 아무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는 뜻이므로 적절하다.
- 경청(傾聽)할 → 귀를 기울여 들을: 傾(기울 경)·聽(들을 청)의 뜻 그대로이므로 적절하다.
- 명기(明記)하지 → 밝혀 적지: 明(밝을 명)·記(기록할 기)의 뜻 그대로이므로 적절하다.

'천만(千萬)'은 '과(過)도 … 천만(千萬) 업소이다'에서 허물이 전혀 없다는 결백을 강조하는 데 쓰였으므로, 큰 숫자로 임을 향한 그리움을 강조한다는 감상은 적절하지 않다.
이 작품은 임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하는 노래로, 그리움은 울며 지내는 처지와 '산(山) 접동새'에 기대어 드러난다.
- 자연물로 화자의 처지를 드러냄: 임을 그리며 우는 자신이 '산(山) 접동새'와 비슷하다고 하므로 적절하다.
- 천상의 존재로 결백함을 나타냄: '잔월효성(殘月曉星)'이 진실을 아실 것이라 하여 결백을 증언하게 하므로 적절하다.
- 설의적 표현으로 정서 부각: 임이 벌써 나를 잊으셨느냐고 묻는 대목 등이 서러움을 부각하므로 적절하다.
새의 몸에서 나오는 테스토스테론은 구애 행위나 짝짓기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따라서 번식기가 아닌 시기에는 거의 분비되지 않는데, 번식기에 나타나는 테스토스테론의 수치 변화 양상은 새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노래참새 수컷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짝짓기에 성공하여 암컷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전후하여 달라진다. 번식기가 되면 수컷은 암컷의 마음을 얻는 데 필요한 영역을 차지하려고 다른 수컷과 싸워야 한다. 이 시기 수컷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암컷의 수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 높아진다. 그러다가 수정이 이루어지면 수컷은 곧바로 새끼를 돌볼 준비를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 수치는 떨어진다. 새끼가 커서 둥지를 떠나게 되면 수컷은 더 이상 영역을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번식기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좀 더 떨어지고, 번식기가 끝나면 테스토스테론은 거의 분비되지 않는다.
검정깃찌르레기 수컷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번식기가 되면 올라갔다가 암컷이 수정한 이후부터 번식기가 끝날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수컷은 자신의 둥지를 지키면서 암컷과 새끼를 돌보는 대신 다른 암컷과의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둥지를 떠나 버린다.
노래참새 수컷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수정 후 떨어지고, 새끼가 둥지를 떠나면 '좀 더 떨어지'므로, 양육이 끝난 후에 더 높게 나타난다는 추론은 적절하지 않다.
노래참새 수컷의 수치는 수정 전까지 상승 → 수정 후 양육기에 하락 → 새끼가 떠난 뒤 추가 하락 → 번식기가 끝나면 거의 분비되지 않음의 순서로 변한다.
- 노래참새 수컷의 수치가 수정 전보다 수정 후에 낮다는 진술: '이때부터 그 수치는 떨어진다'와 일치한다.
- 검정깃찌르레기 수컷은 암컷의 수정 이후 번식기 끝까지 수치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진술: 지문 내용 그대로이다.
- 두 종 모두 번식기 수치가 비번식기보다 높다는 진술: 번식기가 아닌 시기에는 '거의 분비되지 않'으므로 옳다.
A가 주장한 다중지능이론은 기존 지능이론의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기존 지능이론이 언어지능이나 논리수학지능 등 인간의 인지 능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뿐 아니라 신체와 정서, 대인 관계의 능력까지 포괄한 총체적 지능 개념을 창안해 냈다. 다중지능이론은 뇌과학 연구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는데,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좌뇌는 분석적, 논리적 능력을 담당하고, 우뇌는 창조적, 감성적 능력을 담당한다. 다중지능이론에서는 좌뇌의 능력에만 초점을 둔 기존의 지능 검사에 대해 반쪽짜리 검사라고 혹평한다.
그런데 다중지능이론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한다. 우선, 다중지능이론에서 주장하는 새로운 지능의 종류들이 기존 지능이론에서 주목했던 지능의 종류들과 상호 독립적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에 따르면, 전자는 후자의 하위 영역에 속해 있고,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서로 독립적일 수 없으며, 따라서 ‘다중’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다중지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지능이라는 말이 측정 가능한 인지 능력을 전제하는 것인데, 다중지능이론이 설정한 새로운 종류의 지능들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주장한다.
비판적 연구자들은 다중지능이론의 새로운 지능들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주장하므로, 대인 관계 능력과 관련된 지능의 측정 도구 개발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있다.
대인 관계의 능력은 A가 기존의 인지 능력에 더해 포괄한 새로운 종류의 지능에 속하므로, 그 측정 도구에 대한 회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 논리수학지능이 다중지능이론의 지능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진술: A는 인지 능력에 '이뿐 아니라' 신체·정서·대인 관계 능력까지 포괄했으므로 논리수학지능도 포함된다.
- 다중지능이론이 좌뇌 담당 능력의 지능에 더 주목한다는 진술: 오히려 좌뇌의 능력에만 초점을 둔 기존 검사를 '반쪽짜리 검사'라고 혹평한다.
- 비판자들이 모든 지능 영역이 상호 독립적이라는 이유로 '다중' 개념을 부정한다는 진술: 비판자들은 지능들이 서로 독립적일 수 없다는 이유로 '다중'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다.
주지하듯이 ㉠기후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유럽에는 사상 최악의 폭염과 가뭄이 발생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폭우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이러한 기상 재해 앞에서 기후학자로서 자괴감이 든다. 무엇이 문제인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구의 위기를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아직 희망이 있다. 크게는 신재생 에너지와 관련하여 ㉢국가 정책 수립과 국제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힘을 기울여야 한다. 작게는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에너지 절약을 습관화해야 한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일 수는 있겠으나, ㉣지구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지구의 위기를 극복하여야 한다.
㉢ '국가 정책 수립과 국제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는 명사 '수립'과 명사절 '국제 협약을 체결하기'가 '과'로 이어져 대등한 구조가 맞지 않으므로 어법상 수정이 필요하다.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국제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처럼 접속되는 두 성분의 구조를 일치시켜야 한다.
- ㉠ '기후 위기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자연스럽다.
- ㉡ '우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이러한 기상 재해 앞에서': 관형절이 '기상 재해'를 바르게 꾸민다.
- ㉣ '지구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주어 '기회는'과 서술어 '남아 있다'가 호응한다.
독자는 글을 읽을 때 생소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에 주시하는데, 이때 특정 단어에 눈동자를 멈추는 ‘고정’이 나타나며, 고정과 고정 사이에는 ‘이동’, 단어를 건너뛸 때는 ‘도약’이 나타난다. 고정이 관찰될 때는 의미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지만, 이동이나 도약이 관찰될 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K연구진은 동일한 텍스트를 활용하여 읽기 능력 하위 집단(A)과 읽기 능력 평균 집단(B)의 읽기 특성을 탐색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독서 횟수는 1회로 제한하되 독서 시간은 제한하지 않았다.
그 결과, 눈동자의 평균 고정 빈도에서 A집단은 B집단에 비해 약 2배 많은 수치를 보였다. 그런데 총 고정 시간을 총 고정 빈도로 나눈 평균 고정 시간은 B집단이 A집단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다. 읽기 후 독해 검사에서 B집단은 A집단보다 평균 점수가 높았고, 독서 과정에서 눈동자가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이전으로 건너뛰는 현상은 모두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를 종합하여 읽기 능력이 부족한 독자는 읽기 능력이 평균인 독자에 비해 난해하다고 느끼는 단어들이 [ ]는 결론을 내렸다.
빈칸에는 더 많지만 난해하다고 느끼는 각각의 단어를 이해하는 과정에 들이는 평균 시간은 더 적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고정은 '생소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에서 나타나므로, 평균 고정 빈도가 B집단의 약 2배인 A집단은 난해한 단어가 더 많다. 한편 '평균 고정 시간은 B집단이 A집단에 비해 더 높게' 나타났으므로 A집단은 단어 하나에 들이는 평균 시간이 더 적다.
- 더 많고 평균 시간도 더 많다는 내용: 평균 고정 시간이 B집단에서 더 길다는 결과와 어긋난다.
- 더 적지만 평균 시간은 더 많다는 내용: 고정 빈도가 A집단에서 더 많다는 결과와 어긋나고 평균 시간도 반대이다.
- 더 적고 평균 시간도 더 적다는 내용: 난해한 단어의 수가 고정 빈도 결과와 어긋난다.
채식주의자는 고기, 생선, 유제품, 달걀 섭취 여부에 따라 다섯 가지로 나뉜다. 완전 채식주의자는 이들 모두를 섭취하지 않으며, 페스코 채식주의자는 고기는 섭취하지 않지만 생선은 먹으며, 유제품과 달걀은 개인적 선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섭취한다. 남은 세 가지 채식주의자는 고기와 생선 모두를 먹지 않되 유제품과 달걀 중 어떤 것을 먹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이들의 명칭은 라틴어의 ‘우유’를 의미하는 ‘락토(lacto)’와 ‘달걀’을 의미하는 ‘오보(ovo)’를 사용해 정해졌는데, 예를 들어,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는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으나 유제품과 달걀은 먹는다. 락토 채식주의자는 [ (가) ] 먹지 않으며, 오보 채식주의자는 [ (나) ] 먹지 않는다.
(나) : 고기와 생선과 달걀은 먹지만 유제품은
(나) : 유제품은 먹지만 고기와 생선과 달걀은
(나) : 고기와 생선과 유제품은 먹지만 달걀은
(나) : 달걀은 먹지만 고기와 생선과 유제품은
(가)에는 '유제품은 먹지만 고기와 생선과 달걀은', (나)에는 '달걀은 먹지만 고기와 생선과 유제품은'이 들어가야 한다.
'락토'는 '우유', '오보'는 '달걀'을 뜻하고, 남은 세 채식주의자는 모두 '고기와 생선 모두를 먹지 않'는다. 따라서 락토 채식주의자는 유제품만, 오보 채식주의자는 달걀만 먹는다.
- (가) '달걀은 먹지만 …', (나) '고기와 생선과 달걀은 먹지만 유제품은'의 조합: 락토의 뜻이 뒤바뀌고, (나)는 고기·생선을 먹는다고 해 정의와 어긋난다.
- (가) '달걀은 먹지만 …', (나) '유제품은 먹지만 …'의 조합: 락토와 오보의 뜻이 서로 뒤바뀌었다.
- (가) '유제품은 먹지만 …', (나) '고기와 생선과 유제품은 먹지만 달걀은'의 조합: 오보 채식주의자가 고기·생선을 먹고 달걀을 먹지 않는다고 해 정의와 정반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