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바로 쓰기 원칙>
- 생소한 외래어나 외국어는 우리말로 다듬을 것.
-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를 명확하게 표현할 것.
- 문맥에 맞는 정확한 어휘를 사용할 것.
- 지나친 명사 나열을 피하고 적절한 조사와 어미를 활용하여 문장을 구성할 것.
<공문서>
□□개발연구원
수신 수신처 참조
제목 종합 성과 조사 협조 요청
1. 귀 기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원은 디지털 교육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해 종합 성과 조사를 실시합니다. 본 조사의 대상은 지난 3년간 □□개발연구원의 주요 사업을 수행한 ㉡기업을 대상으로 합니다.
3. 별도의 전문 평가 기관에 조사를 ㉢위탁하며,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 현장 교수 학습 환경 개선 정책 개발 및 디지털 교육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귀 기관의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마스터플랜'은 생소한 외래어이므로 '기본 계획'으로 다듬는 것이 적절하고, ㉡ '기업을'은 서술어와의 호응을 위해 '기업입니다'로 바로잡는 것이 적절하며, ㉣은 '개발 및'이라는 명사 나열 구조를 피하고 조사와 어미를 살려 '환경을 개선하는 정책을 개발하고'로 고친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 '수행한'은 '지난 3년간 □□개발연구원이 주요 사업을 수행한 기업'이라는 의미로 이미 명확한 표현이며, 이를 '수주하며'로 바꾸면 '수주하다'는 사업을 발주받는다는 뜻이어서 문맥상 의미가 달라지고 문장도 어색해지므로 적절하지 않은 수정이다.
<개 요>
○ 제목: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실태와 노동 문제 개선 방안
Ⅰ.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실태
1. 열악한 노동 환경 및 복지 혜택 부족
2. 임금 체불 및 최저 임금제 위반
3. 사업장 내의 빈번한 폭언 및 폭행 발생
Ⅱ.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노동 문제 발생 원인
1. 청소년의 노동 환경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도 부족
2. 노동 관계법에 관한 청소년 고용 업주의 인식 부족
3. 청소년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통념
Ⅲ.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노동 문제 개선 방안
[ ]
'청소년 고용 업체 규모 축소를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감독과 단속'은 Ⅱ의 어떤 원인과도 대응하지 않아 빈칸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다.
Ⅲ의 개선 방안은 Ⅱ의 세 원인인 실효성 있는 제도 부족, 고용 업주의 노동 관계법 인식 부족,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통념을 해소하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업체 규모를 줄이는 것은 노동 문제의 원인 해소와 관련이 없다.
-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 정비는 '실효성 있는 제도 부족'에 대응하므로 적절하다.
- 고용 업주에 대한 노동 관계법 교육과 지도 확대는 '고용 업주의 인식 부족'에 대응하므로 적절하다.
- 인권 보호를 위한 사회적 교육 기관 설립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통념'에 대응하므로 적절하다.
두 개 이상의 형태소로 이루어진 단어를 복합어라 한다. 복합어를 처음 두 개로 쪼갰을 때의 구성 요소를 직접구성요소라고 한다. 이 직접구성요소를 분석한 결과, 둘 중 어느 하나가 접사이면 파생어이고, 둘 다 어근이면 합성어이다. 즉 합성어는 ‘어근 + 어근’의 구성인데, 이는 합성어를 구성하는 두 구성 요소 중 어느 것도 접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쓴웃음’과 같은 단어에는 접사 ‘-음’이 있으니까 [ (가) ]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복합어 구분의 기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복합어가 파생어인지 합성어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처음 두 개로 쪼갰을 때 두 구성 요소의 성격이며, 2차, 3차로 쪼갠 결과는 복합어 구분에 관여하지 않는다. 즉 ‘쓴웃음’의 두 구성 요소 중의 하나인 ‘웃음’은 파생어이지만 이 ‘웃음’이 또 다른 단어 형성에 참여할 때는 [ (나) ](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 (가) | (나) | |
|---|---|---|
| ① | 합성어 | 접사 |
| ② | 합성어 | 어근 |
| ③ | 파생어 | 접사 |
| ④ | 파생어 | 어근 |
(가)에는 파생어, (나)에는 어근이 들어가는 짝이 적절하다.
(가)는 '쓴웃음'에 접사 '-음'이 있으니 파생어가 아니냐는 반문이다. 그러나 처음 두 개로 쪼갠 직접구성요소는 '쓴'과 '웃음'이고, 지문은 "2차, 3차로 쪼갠 결과는 복합어 구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에 대해서는, '웃음' 자체는 파생어이지만 '쓴웃음'을 만들 때에는 하나의 어근으로 참여하므로 '쓴웃음'은 '어근 + 어근'의 합성어가 된다.
- (가) 합성어·(나) 접사는 둘 다 맞지 않다. 반문의 근거가 접사 '-음'이므로 (가)는 파생어여야 하고, '웃음'은 접사가 아니라 어근으로 참여한다.
- (가) 합성어·(나) 어근은 (나)는 맞지만, 접사가 있으니 합성어가 아니냐는 반문은 문맥상 성립하지 않는다.
- (가) 파생어·(나) 접사는 (가)는 맞지만, '웃음'이 접사로 참여한다면 '쓴웃음'이 파생어가 되어 지문의 결론과 어긋난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다양한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문학 영역도 마찬가지였다. 이전과 뚜렷이 구별되는 유형과 성격의 문학작품이 등장하였고, 이에 따라 다양한 독자층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문학 독자층은 흔히 두 가지로 구분되었다. 하나는 구활자본 고전소설과 일부 신소설의 독자인 ‘전통적 독자층’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기 새롭게 등장하여 유행하기 시작한 대중소설, 번안소설, 신문 연재 통속소설을 즐겨 봤던 ‘근대적 대중 독자층’이다. 전통적 독자층에는 노동자와 농민, 양반, 부녀자 등이 속하고, 근대적 대중 독자층에는 도시 노동자, 학생, 신여성 등이 속했다.
그런데 20세기 초 문학 독자층 중에는 전통과 근대의 두 범주에 귀속시키기 어려운 독자층도 존재했다. 이 시기 신문학의 순수문학 작품,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순수문학 소설 등을 향유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문자를 익숙하게 다루고 외국어를 지속적으로 습득한 지식인층은 근대적 대중 독자층과는 다른 문학적 향유 양상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이들은 ‘엘리트 독자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엘리트 독자층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나라 문학작품 외에 외국 소설도 읽었다는 이해가 가장 적절하다.
지문은 이들을 "이 시기 신문학의 순수문학 작품, 일본을 비롯한 외국의 순수문학 소설 등을 향유했던 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 엘리트 독자층은 근대적 대중 독자층에서 분화된 것이 아니라 "전통과 근대의 두 범주에 귀속시키기 어려운 독자층"으로 제시된다.
- 독자층은 신분과 학력이 아니라 즐겨 읽은 문학작품의 유형에 따라 구분되었고, 전통적 독자층에도 노동자·농민·양반·부녀자가 함께 속해 있다.
- 근대적 대중 독자층이 전통적 독자층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다는 비교는 지문에 나오지 않는다.
소리는 보통 귀로 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앰프에서 강력한 저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몸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소리를 몸으로 느낀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가청 주파수 대역의 하한인 20Hz보다 낮은 주파수의 진동이 발생하면 ㉠우리의 몸은 흔들리지만 귀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우리는 이 들리지 않는 진동을 ‘초저주파음’이라고 부른다. ㉡귀에 들리지 않는 진동도 소리로 간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높은 주파수의 영역에서도 귀에 들리지 않는 진동이 있다. ㉢사람은 보통 20,000Hz 이상의 진동이 귀에 도달하면 소리로 인식한다. 가청 주파수 대역의 상한을 넘겨서 더 높은 주파수의 진동이 발생하면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이때의 음파를 ‘초음파’라고 부른다.
사람과 동물은 가청 주파수 대역이 다르다. 그래서 동물은 사람에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예컨대 우리와 가까이 지내는 개의 경우, 가청 주파수 대역의 하한은 사람과 비슷하지만 50,000Hz의 진동까지 소리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개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기척을 알아차리기도 한다. 이는 개의 가청 주파수 대역이 ㉣사람의 가청 주파수 대역보다 넓기 때문이다.
㉢을 '소리로 인식하지 못한다'로 고친 것이 가장 적절하다.
㉢이 있는 문단은 "높은 주파수의 영역에서도 귀에 들리지 않는 진동이 있다"로 시작해 가청 주파수 대역의 상한을 넘는 진동을 '초음파'라고 설명하므로, 20,000Hz 이상의 진동을 소리로 인식한다고 한 ㉢은 문단의 흐름과 모순된다.
- ㉠은 20Hz보다 낮은 진동에 몸은 흔들리지만 귀로는 듣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이를 '들리지 않는 진동'이라 부르는 다음 문장과 맞으므로 저음을 들을 수 있다고 고치면 오히려 어색해진다.
- ㉡은 들리지 않는 진동에 '초저주파음'이라는 소리의 이름을 붙이는 까닭이므로 소리로 간주할 수 있다가 맞고, 간주할 수 없다고 고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은 개가 사람이 듣지 못하는 50,000Hz의 진동까지 듣는다는 내용의 근거이므로 사람보다 넓다가 맞고, 좁다고 고치면 틀린다.
(가) 그 원리를 알려면 LCD와 OLED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LCD는 다른 조명 장치의 도움을 받아 시각적 효과를 낸다. 다시 말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LCD는 화면 뒤에 빛을 공급하는 백라이트가 필요하다는 특성을 갖는다.
(나) 자유롭게 말았다 펼 수 있는 ‘롤러블 TV’가 개발되었다. 평소에는 말거나 작게 접어서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펴서 사용하는 태블릿이나 노트북이 상용화될 날도 머지않았다.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는 텔레비전 화면이나 모니터는 평평하고 딱딱한 것인데, 어떻게 접거나 말 수 있을까?
(다) OLED 기술은 모양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모니터 개발을 가능하게 하였다. 딱딱한 유리 대신에 쉽게 휘어지는 특수 유리나 플라스틱을 이용함으로써 둥글게 말았다가 펼 수 있는 화면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라) 반면 OLED는 화소 단위로 빛의 삼원색을 내는 유기 반도체로 구성되어 있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 OLED 제품은 화면 뒤에 백라이트를 설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얇게 만들 수도 있고 특수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제작할 수도 있다.
(나) - (가) - (라) - (다)의 순서가 가장 자연스럽다.
(나)가 '롤러블 TV'를 소개하며 "어떻게 접거나 말 수 있을까?"라고 묻고, (가)가 "그 원리를 알려면"으로 받아 LCD는 백라이트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라)는 "반면 OLED는"으로 대조해 특수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제작할 수 있다고 하고, (다)가 이를 바탕으로 둥글게 말았다가 펼 수 있는 화면이 가능해졌다고 마무리한다.
- (나)-(가)-(다)-(라)는 OLED의 특성을 설명하는 (라)보다 그 활용인 (다)가 앞서고, '반면'이 대조 대상인 LCD 설명과 떨어져 어색하다.
- (다)-(가)-(라)-(나)는 (가)의 '그 원리'가 가리킬 (나)의 물음이 맨 뒤에 놓여 지시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 (다)-(나)-(라)-(가)는 '반면 OLED는'으로 시작하는 (라)가 대조 대상인 LCD 설명 (가)보다 앞에 놓여 어색하다.
언어에는 중요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언어의 형식인 말소리와 언어의 내용인 의미 간에는 필연적 관계가 없다. 이를 언어의 ‘자의성’이라 한다. 즉 어떤 내용을 나타내는 형식은 약속으로 정할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언어에서 형식과 내용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약속은 한번 정해지면 개인이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이를 언어의 ‘사회성’이라 한다. 셋째,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 구성원이 바뀌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를 언어의 ‘역사성’이라 한다. 넷째, 하나의 언어 형식은 수많은 구체적 대상이 가진 공통적인 속성을 개념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책상들의 공통적 속성을 추출하여 하나의 언어 형식인 ‘책상’으로 표현한다. 이를 언어의 ‘추상성’이라 한다.
같은 언어 안에 다양한 방언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은 언어의 자의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 적절하다.
지문은 자의성을 "언어의 형식인 말소리와 언어의 내용인 의미 간에는 필연적 관계가 없다"라고 설명하는데, 같은 의미를 지역마다 다른 말소리로 나타내는 방언은 이를 그대로 보여 준다.
- 가족과 직장 동료에게 다른 표현을 쓰는 것은 상황에 따른 표현 선택일 뿐, 사회적 약속을 개인이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사회성의 사례가 아니다.
- 개인이 쓴 유행어가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개인이 사회적 약속을 바꿀 수 없다는 사회성의 사례이지 역사성의 사례가 아니다.
- 새로운 줄임말이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하는 역사성의 사례이지 추상성의 사례가 아니다.
국어의 표준 발음법 규정에서는 이중모음의 발음과 관련한 여러 조항들을 찾을 수 있다. 이중모음은 기본적으로 글자 그대로 발음해야 하지만, 글자와 다르게 발음하는 원칙이 덧붙은 경우도 있다. 이중모음 ‘ㅢ’의 발음에는 세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 첫째, 초성이 자음인 음절의 ‘ㅢ’는 단모음 [ㅣ]로 발음해야 한다. 둘째, 첫음절 이외의 음절에서 ‘ㅢ’는 이중모음 [ㅢ]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나 단모음 [ㅣ]로도 발음할 수 있다. 셋째, 조사 ‘의’는 이중모음 [ㅢ]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이나 단모음 [ㅔ]로도 발음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칙을 적용하여 발음하려 할 때 원칙 간에 충돌이 발생할 때가 있다. ‘무늬’의 경우, 첫째 원칙에 따르면 [무니]로 발음해야 하는데 둘째 원칙에 따르면 [무늬]도 가능하고 [무니]도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첫째와 둘째가 충돌할 때에는 첫째 원칙을 따른다. 하지만 물어본다는 뜻의 명사 ‘문의(問議)’처럼 앞 음절의 받침이 뒤 음절의 초성으로 오게 되는 경우에는 첫째 원칙이 적용되지 않고 둘째 원칙이 적용된다. ‘문의 손잡이’에서의 ‘문의’ 역시 받침이 이동하여 발음되기는 하지만 조사 ‘의’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둘째와 셋째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셋째 원칙을 따른다.
'거의'의 '의'는 첫음절 이외의 음절에 있으므로 둘째 원칙에 따라 [거의]와 [거이]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 따라서 한 가지 발음만 가능하다는 추론은 적절하지 않다.
지문의 원칙은 초성이 자음인 음절의 'ㅢ'는 [ㅣ]로만, 첫음절 이외의 'ㅢ'는 [ㅢ]와 [ㅣ] 모두로, 조사 '의'는 [ㅢ]와 [ㅔ] 모두로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꽃의'는 받침이 이동하지만 조사 '의'가 포함되어 있어, 둘째와 셋째가 충돌할 때 셋째 원칙을 따르므로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
- '편의점'은 '문의(問議)'처럼 앞 음절 받침이 뒤 음절 초성으로 오는 경우라 첫째 원칙이 아닌 둘째 원칙이 적용되어 두 가지 발음이 가능하다.
- '띄고'는 초성이 자음 'ㄸ'인 음절의 'ㅢ'이므로 첫째 원칙에 따라 [띠고] 한 가지로만 발음한다.
갑: 설명회는 다음 달 셋째 주 목요일이나 넷째 주 목요일에 개최해야 합니다.
을: 설명회를 [ ].
병: 설명회를 다음 달 셋째 주 목요일에 개최하면, 홍보 포스터 제작을 이번 주 안에 완료해야 합니다.
정: 여러분의 의견대로 하자면, 반드시 이번 주 안에 홍보 포스터 제작을 완료해야 하겠군요.
을의 빈칸에는 '다음 달 넷째 주 목요일에 개최할 수 없습니다'가 들어가야 한다.
갑의 말에 따라 설명회는 셋째 주나 넷째 주 목요일 중 하나에 열린다. 병의 말에 따르면 셋째 주에 개최할 때 포스터를 이번 주 안에 완료해야 하므로, 정의 결론처럼 '반드시' 완료해야 하려면 을이 넷째 주를 배제해 셋째 주 개최가 확정되어야 한다.
- 넷째 주 목요일에 개최해야 한다면 병의 조건이 적용되지 않아 포스터 제작을 이번 주 안에 마칠 필요가 도출되지 않는다.
- 셋째 주 목요일에 개최할 수 없다면 넷째 주에 개최하게 되어 병의 조건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포스터 제작을 이번 주 안에 반드시 완료해야 한다는 정의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 넷째 주에 개최하면 이번 주 안에 완료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술은 개최일을 정해 주지 못하므로 정의 결론을 이끌어 내지 못한다.
(가) 인공일반지능이 만들어지거나 인공지능 산업이 쇠퇴한다.
(나) 인공일반지능이 만들어지면, 인간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동시에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다.
(다) 인공지능 산업이 쇠퇴하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 동시에 세계 경제가 침체된다.
따라서 [ ].
빈칸에 들어갈 결론은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는다'이다.
(가)에 따라 인공일반지능이 만들어지거나 인공지능 산업이 쇠퇴하는 일 중 적어도 하나가 일어난다. 전자이면 (나)에 따라, 후자이면 (다)에 따라 어느 경우에도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으므로 이 결론은 반드시 도출된다.
- 세계 경제가 침체된다는 것은 인공지능 산업이 쇠퇴하는 경우에만 따라 나오므로 반드시 참이라 할 수 없다.
- 인간의 생활이 편리해진다는 것은 인공일반지능이 만들어지는 경우에만 따라 나오므로 반드시 참이라 할 수 없다.
- 생활이 편리해지고 세계 경제도 침체된다는 것은 두 경우가 모두 일어나야 성립하는데, (가)는 적어도 하나가 일어난다는 것만 보장한다.
- 갑이 제주도 출장을 가면, 을은 제주도 출장을 가지 않는다.
- 을이 제주도 출장을 가지 않으면, 병은 휴가를 내지 않는다.
- 병이 휴가를 낸다.
반드시 참인 것은 '갑이 제주도 출장을 가지 않는다'이다.
병이 휴가를 내므로, 을이 출장을 가지 않으면 병은 휴가를 내지 않는다는 둘째 진술의 대우에 따라 을은 제주도 출장을 간다. 다시 갑이 가면 을은 가지 않는다는 첫째 진술의 대우(을이 가면 갑은 가지 않는다)에 따라 갑은 출장을 가지 않는다.
- 을이 출장을 가지 않는다는 진술은 위에서 도출된 '을은 출장을 간다'와 모순된다.
- 갑이 출장을 가고 병이 휴가를 낸다는 진술은 갑이 출장을 가지 않는다는 결론과 모순된다.
- 을이 출장을 가고 병은 휴가를 내지 않는다는 진술은 병이 휴가를 낸다는 전제와 모순된다.
A국은 도시 이외 지역의 초중고 교사가 부족하다.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A국 정부는 도시 이외 지역의 교사 충원율을 높이기 위해, 도시 이외 지역의 교사 연봉을 10% 인상하고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교사의 수를 늘리거나 교사의 연봉을 인상하기보다는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는 충분한 교육 환경과 사회 기반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직 교사들뿐 아니라 교사를 지망하는 대학 졸업 예정자들 다수는 교육 환경과 사회 기반 시설이 열악한 도시 이외의 지역에서 일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도시 이외 지역의 사회 초년생들이 연봉을 낮추어서라도 교통 시설의 부족 때문에 도시로 이직했다는 사실이 논지를 가장 잘 강화한다.
글은 연봉 인상이나 교사 수 확대보다 "충분한 교육 환경과 사회 기반 시설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하므로, 연봉보다 사회 기반 시설이 근무지 선택에 더 크게 작용한다는 사례는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 도시 이외 지역과 도시의 교육 환경에 별 차이가 없다면 교육 환경이 교사 부족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약해진다.
- 교사 연봉 인상 뒤 도시 이외 지역의 학생 1인당 교사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사례는 글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 연봉 인상의 효과를 보여 주므로 논지를 약화한다.
- 교사 양성 프로그램 확대 뒤 도시 이외 지역의 교사 수가 크게 늘었다는 사례도 글이 비판한 정책의 효과를 보여 주므로 논지를 약화한다.
쿤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모두를 포함하는 과학의 발전 단계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패러다임을 한 번도 정립하지 못한 전정상과학 시기, 하나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정상과학 시기, 기존 패러다임이 새 패러다임으로 교체되는 과학혁명 시기가 그것이다. 패러다임은 모든 과학자에게 동일한 연구 방향 및 평가 기준을 따르게 하여,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고 과학의 발전 단계를 성숙한 수준으로 올려놓는다. 한 번도 패러다임을 정립하지 못해 전정상과학 시기에 머물러 있는 과학 분야는 과학자 모두가 제각기 연구 활동을 한다. 과학의 발전 단계상 성숙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어떤 과학 분야라도 패러다임을 정립하면 정상과학 시기에 들어서게 되는데, 그 뒤에 다시 전정상과학 시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정상과학 시기는 언제나 과학혁명 시기로 이어지고, 과학혁명 시기는 언제나 정상과학 시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상과학 시기의 과학자는 동일한 패러다임에 따라, 과학혁명 시기의 과학자는 기존 패러다임 혹은 새 패러다임에 따라 과학 활동을 하기에 그 두 시기에 있는 과학 분야는 모두 성숙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이 구분에 따를 때, (가)일부 사회과학 분야는 과학의 발전 단계상 아직도 성숙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 쿤의 진단이다.
패러다임이 정립된 적이 없고 연구 방향 및 평가 기준이 서로 다른 사회과학 분야가 있다는 사실이 (가)를 가장 잘 강화한다.
지문에 따르면 패러다임을 한 번도 정립하지 못한 분야는 "과학자 모두가 제각기 연구 활동을" 하는 전정상과학 시기에 머물러 성숙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사회과학 분야가 있다면 일부 사회과학 분야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가)가 직접 뒷받침된다.
- 패러다임이 교체된 적이 있는 분야는 정상과학과 과학혁명 시기를 거친 성숙한 분야이므로 (가)를 강화하지 못한다.
- 패러다임이 교체되는 중인 분야는 과학혁명 시기에 있어 성숙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므로 (가)를 강화하지 못한다.
- 패러다임이 정립된 적이 있는 분야는 다시 전정상과학 시기로 되돌아갈 수 없어 성숙한 수준에 있으므로 (가)를 강화하지 못한다.
보은: 기차가 달리고 있는 선로에 다섯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고, 그들에게 그 기차를 피할 시간적 여유는 없어. 그런데 스위치를 눌러서 선로를 변경하면 다섯 명의 인부 대신 다른 선로에 있는 한 사람이 죽게 돼. 이 선택의 딜레마 상황에서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소현: 이런 경우엔 행위에 따른 결과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스위치를 눌러서 한 명이 죽더라도 다섯 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거야. 그건 결과적으로 봤을 때 불가피한 조치 아니겠어?
은주: 글쎄, 행위에 따른 결과보다 행위 자체의 도덕성을 기준에 두어야 하는 거 아니야? 행위 자체의 도덕성을 따진다면, 스위치를 눌러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두는 것’ 중에 당연히 살인에 해당하는 전자가 더 나쁘지.
보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스위치를 누르면 살인이고, 누르지 않으면 방관일 텐데, 법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전자는 후자보다 무겁게 처벌되잖아. 게다가 생명의 가치는 수량화할 수 없으니 한 사람보다 다섯 사람이 가지는 생명의 가치가 더 크다고 말할 수 없어.
영민: 생명의 가치를 수량화할 수 없다는 데 원론적으로는 나도 동의해. 하지만 지금처럼 불가피한 선택의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야.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죽는 사람의 수를 최소화하는가가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영민은 죽는 사람의 수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는데 소현도 같은 선택을 하므로, 소현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적절하지 않다.
소현은 "스위치를 눌러서 한 명이 죽더라도 다섯 명을 살리는 선택을 할 거야"라고 하여 사망자 수를 줄이는 쪽을 택한다.
- 은주는 스위치를 눌러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고, 보은도 "스위치를 누르면 살인"이라고 하므로 두 사람의 견해가 같다는 분석은 옳다.
- 영민은 "생명의 가치를 수량화할 수 없다는 데 원론적으로는 나도 동의해"라고 하므로 원론적으로 보은과 견해를 같이한다는 분석은 옳다.
- 소현은 "행위에 따른 결과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고 하고, 은주는 "행위 자체의 도덕성을 기준에" 두어야 한다고 하므로 두 사람의 기준에 대한 분석은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