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혁명 시기와 가장 관련 깊은 것은 간석기와 토기를 처음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고,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곡식을 저장·조리하는 토기(빗살무늬 토기 등)를 사용하였다.
- 청동기 사용: 청동기 시대의 특징이다.
- 계급 형성: 잉여 생산물과 사유 재산이 늘어난 청동기 시대에 뚜렷해졌다.
- 문자 사용: 신석기 시대의 특징이 아니다.
- 고려 후기의 집권세력으로서 고관 요직을 장악하고 거대한 농장을 소유하였다.
- 주로 음서에 힘입어 관인으로서의 신분을 세습시켜 나갔다.
- 주로 원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 도평의사사를 독점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제시된 세력은 권문세족이며, 이들이 집권할 때 토지 겸병이 성행하여 국가 재정과 민생에 끼치는 폐해가 심했다.
'원의 세력을 배경', '도평의사사를 독점', '거대한 농장'은 원 간섭기 권문세족의 특징이다. 이들의 농장 확대로 국가의 조세 수입이 줄고 많은 농민이 노비로 전락하였다.
- 천민의 신분 해방 운동: 망이·망소이의 난, 만적의 난 등은 무신 집권기의 일이다.
- 모범적인 유교 정치: 성종 때 관료 체제를 정비한 고려 전기의 모습이다.
- 북진 정책과 영토 확장: 원 간섭기에는 오히려 영토 일부를 원에 빼앗겼다.
조선 전기 정책에 대한 옳은 설명은 중앙군은 5위, 지방군은 진관 체제로 정비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 중앙군은 5위로 편성되었고, 지방은 세조 때 각 도에 거진을 두고 주변 고을을 묶는 진관 체제로 방어하였다.
- 수령의 출신지 임명: 상피제에 따라 수령은 자기 출신지에 임명되지 않았다.
- 유향소의 향리: 유향소는 지방 양반(재지 사족)으로 구성되어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규찰하였다.
- 향교의 양반 자제 한정: 향교에는 원칙적으로 양인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가야 연맹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처음에는 대가야, 후에는 금관가야가 맹주국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순서가 반대이다. 전기 가야 연맹은 김해의 금관가야가 주도하였고, 5세기 이후 후기 가야 연맹은 고령의 대가야가 주도하였다.
- 철 생산과 중계 무역: 가야는 풍부한 철을 바탕으로 낙랑·왜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발전하였다.
- 5세기경의 타격: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이 신라를 도와 왜를 쫓으면서 금관가야 중심의 전기 가야 연맹이 큰 타격을 입었다.
- 중앙집권 국가 미달성: 가야는 연맹 왕국 단계에서 신라에 병합되었다.
일제 강점기 민족 문화 수호 단체가 아닌 것은 조선사편수회이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 총독부가 설치한 기구로, 『조선사』를 편찬하며 식민 사관을 퍼뜨렸다.
- 진단학회: 이병도·손진태 등이 실증 사학 연구를 위해 조직하였다.
- 조선어연구회: 한글 연구와 보급을 위해 조직되어 가갸날을 제정하였다.
- 조선어학회: 조선어연구회를 개편한 단체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서원경 부근의 4개 촌락의 남녀별, 연령별의 정확한 인구수와 노비의 수, 논과 밭의 면적, 소, 말, 뽕나무, 호두나무, 잣나무 등의 수를 3년마다 한 번씩 촌주가 통계를 낸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민정문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중앙에서 촌주를 파견하였다는 내용이다.
'촌주'는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가 아니라 그 지역의 토착 유력자로, 몇 개 촌락을 관할하며 '3년마다' 호구·토지·가축 등의 변동을 조사하였다.
- 생산 자원의 철저한 편제: 인구·토지·가축·나무 수까지 기록하여 국가가 자원을 관리하였다.
- 남녀별·연령별 인구 기록: 여성도 노동력 자원으로 파악하였음을 보여 준다.
- 3년 단위 통계와 매년 수취: 문서는 3년마다 작성하였으나 조세·공물·역은 해마다 거두었다.
이자겸의 난 -> (가) -> 무신정변 -> 몽고침입 -> 위화도 회군
ㄱ.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ㄴ.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천도 운동이 일어났다.
ㄷ. 최고 집정부로 교정도감이 설치되었다.
ㄹ. 황제를 칭할 것과 금국정벌론이 제기되었다.
ㅁ. 고구려 계승 이념에 대한 이견과 갈등이 일어났다.
(가) 시기에 해당하는 것은 ㄴ, ㄹ, ㅁ으로, 모두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과 관련된다.
'이자겸의 난'(1126) 뒤 묘청 등 서경파는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 천도, 칭제 건원, 금국 정벌을 주장하였다.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한 서경파와 신라 계승 의식의 김부식 등 개경파가 대립하였다.
-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고려 초 광종 때 시행되어 (가) 시기보다 앞선다.
- 교정도감 설치: 최충헌이 설치한 것으로 무신정변 이후의 일이다.

제시된 계보는 정제두에서 시작된 강화학파로, 이들은 지행합일의 실천성을 중시하는 양명학을 추구하였다.
정제두는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연구하여 학파를 형성하였고, 그 학문은 이광사·이충익 등 가학을 통해 이어져 한말 이건창 등에까지 계승되었다.
- 18세기 정국 주도와 영남 서원 설립: 양명학은 이단으로 배척되어 정국을 주도하지 못하였고, 영남 지방 서원은 주로 남인 계열과 관련된다.
- 임진왜란 의병장 정인홍·곽재우 배출: 조식 문하의 남명학파에 대한 설명이다.
- 이황 학통 계승과 이기론 논쟁: 이황의 학통은 영남학파(남인)로 이어졌다.
문: 너의 성명은 무엇인가?
답: ㉠ 이다.
문: 작년 3월 ㉡ 등지에서 백성들을 크게 모았다고 하니 무슨 사연으로 그러하였는가?
답: ㉡ 군수가 정액 외의 가렴(苛斂:가혹하게 징수함)이 수만 냥이므로 민심이 억울하고 원통하여 이 의거가 있었다.
문: ㉡ 에서 기포할 적에 동학이 많았느냐 원통한 사람이 많았느냐?
답: ㉢ .
문: 다시 난을 일으킨 것은 무슨 이유인가?
답: 일본이 개화라 칭하고 처음부터 민간에게 일언반구의 말도 공포함이 없이 군대를 거느리고 밤중에 왕궁을 공격하여 임금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므로 초야의 사민(士民)들이 충군 애국하는 마음으로 분개함을 이기지 못하여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인과 접전하여 이 사실을 묻고자 함이다.
빈칸에는 차례로 전봉준, 고부, 원통한 사람이 많았다가 들어간다.
'군수가 정액 외의 가렴'이 수만 냥이라는 진술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일어난 고부 민란을 가리키며, 이를 이끈 인물은 전봉준이다. 전봉준은 공초에서 봉기한 이들이 동학교도보다 원통한 사람이 많았다고 진술하였다.
'다시 난을 일으킨' 이유로 든 일본군의 '왕궁을 공격'은 경복궁 점령을 가리키며, 이에 맞선 것이 동학 농민군의 2차 봉기이다.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에 합의하였다는 설명이 옳다.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통일 원칙에 합의한 문서이다.
- 고려 민주 연방 공화국 방안: 북한의 이 방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연방제를 내세웠다.
- 1997년 남북 기본 합의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채택되었다.
- 6·15 남북 공동 선언의 유엔 감시 통일: 6·15 공동 선언은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과 남측 연합제안·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한 것이다.
신라의 한강 하류 확보 결과로 옳지 않은 것은 고구려가 북진해 오는 신라를 막기 위해 남하 정책을 추진하였다는 내용이다.
고구려의 남하 정책은 5세기 장수왕 때 본격화한 것으로, 신라의 한강 하류 확보(진흥왕, 6세기)보다 앞선다. 오히려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고구려는 이 지역을 잃었다.
- 당항성 축조: 신라는 남양만의 당항성을 통해 중국과 직접 교류하였다.
- 외교적 공세: 황해를 통해 중국과 연결되어 삼국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 현량과를 실시하여 인물 중심으로 관리를 등용하였다.
- 불교나 도교와 관련된 종교 행사를 폐지하고 공납제도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하였다.
-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소학 교육을 장려하여 향촌자치와 성리학적인 윤리를 강화하려 하였다.
ㄱ. 3사에서 언론과 문한(文翰)직을 담당하였다.
ㄴ.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한 왕도정치를 추구하였다.
ㄷ. 조선 초기 문물제도의 정비에 기여하였다.
ㄹ. 관학파의 학풍을 계승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조하였다.
제시된 정치 세력은 사림(조광조 일파)이며, 옳은 설명은 ㄱ, ㄴ이다.
'현량과',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 '소학 교육' 장려는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이다. 사림은 주로 3사의 언관직을 맡아 훈구 세력을 비판하였고, 도덕과 의리에 바탕을 둔 왕도 정치를 내세웠다.
- 조선 초기 문물제도 정비: 훈구파(관학파)의 공로이다.
- 관학파 학풍 계승과 중앙집권 강조: 훈구파의 성격이며, 사림은 향촌 자치를 중시하였다.
6조는 각기 모든 직무를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고, 의정부는 가부를 헤아린 뒤에 왕에게 아뢰어 (왕의) 전지를 받아 6조에 내려 보내어 시행한다. 다만, 이조, 병조의 제수, 병조의 군사업무,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판결 등은 종래와 같이 각조에서 직접 아뢰어 시행하고 곧바로 의정부에 보고한다. 만약 타당하지 않으면 의정부가 맡아 심의 논박하고 다시 아뢰어 시행토록 한다.
<세종실록>
ㄱ. 세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6조 직계제를 부활하였다.
ㄴ. 인사와 군사에 관한 일을 왕이 직접 처리하고자 하였다.
ㄷ. 의정부에서 정책을 심의하는 의정부 서사제를 실시하였다.
ㄹ. 의정부 기능의 강화로 6조 중심의 행정 체제가 유명무실 해졌다.
자료는 세종 때의 의정부 서사제이며, 옳은 추론은 ㄴ, ㄷ이다.
6조의 일을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게 한 것은 의정부 서사제이다. 다만 '이조, 병조의 제수', '병조의 군사업무' 등은 각 조가 '직접 아뢰어 시행'하게 하여 인사·군사권은 왕이 직접 장악하였다.
- 6조 직계제 부활: 자료는 의정부 서사제 실시를 보여 주며, 6조 직계제를 부활한 왕은 세조이다.
- 6조 중심 행정 체제의 유명무실화: 6조는 여전히 행정을 집행하였고 일부 업무는 직접 왕에게 아뢰었다.
1920년대에 대한 옳은 설명은 도·부·면에 협의회를 설치하여 친일 세력을 포섭하였다는 것이다.
3·1 운동 이후 일제는 이른바 문화 통치로 전환하여 지방 행정 기관에 자문 기구인 협의회 등을 두고 친일 세력을 키웠다.
- 보통 교육과 고등 교육 강화: 일제는 식민지 교육에서 초급 실업 교육 중심을 유지하고 고등 교육 기회를 제한하였다.
- 헌병 경찰 제도: 1910년대 무단 통치의 특징이다.
- 윤봉길 의거: 1932년의 일이다.
광복 이후 정치 변화에 대한 옳은 설명은 이승만 정권 붕괴 후 허정 과도 정부 아래에서 헌법이 내각 책임제와 양원제로 개정되었다는 것이다.
4·19 혁명(1960)으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뒤 허정 과도 정부 시기에 내각 책임제·양원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이에 따라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 발췌 개헌: 1952년 발췌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었다.
- 유신 체제: 대통령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의회주의와 삼권 분립을 무력화하였다.
- 10·26 사태 직후 직선제: 10·26 이후에도 간선제가 유지되었고, 직선제 개헌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이다.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
|---|---|---|
| ① | 불교사상사 관계 자료는 물론 많은 민간전승과 신화, 설화 수집 | 논찬을 따로 두어 주관적 서술을 제한, 구별하고 삼국을 '우리'로 서술하는 등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입장표명 |
| ② | 기전체로서 본기·열전·지·연표로써 다양한 역사 체험 포괄 | 고승전 체제를 바탕으로 기이편을 앞부분에 넣고 효선편을 마지막에 붙여서 유사체로 편집 |
| ③ | 중국 측 사료를 더 신뢰한 결과, 민족 시조를 제시했으면서도 체계화에 대한 노력 미흡 | 고조선 등의 존재를 알면서도 이를 삭제하고 삼국시대만의 단대사 편찬 |
| ④ | 기층민의 생활상에서 드러나는 반 귀족적 사회의식도 일정한 정도 반영 | 부족 설화, 불교 설화같이 전통적 생활 체험이 담긴 기층 공동체의 체험을 유교적 사관에 맞게 고치거나 탈락시킴 |
옳은 짝은 『삼국사기』는 기전체로 본기·열전·지·연표를 갖추고, 『삼국유사』는 기이편·효선편 등을 둔 유사체라는 행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현존 최고(最古)의 기전체 정사이고, 일연의 『삼국유사』는 고승전 체제를 바탕으로 불교사와 민간 설화를 수록하였다. 나머지 행은 두 책의 특징이 서로 뒤바뀌어 있다.
- 민간전승·설화 수집 / 논찬을 둔 합리적 입장: 앞은 『삼국유사』, 뒤는 『삼국사기』의 특징이다.
- 고조선을 삭제한 삼국시대 단대사: 『삼국사기』의 특징이며, 『삼국유사』는 고조선(단군)을 수록하였다.
- 설화를 유교적 사관에 맞게 고치거나 탈락: 『삼국사기』의 특징이며, 기층민의 의식을 반영한 쪽은 『삼국유사』이다.
조선 후기 붕당 정치에 대한 옳은 설명은 장희빈 소생을 세자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남인이 집권하였다는 것이다.
숙종 때 장희빈 소생(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에 반대한 서인이 몰락하고 남인이 집권한 사건이 기사환국이다.
- 예송 논쟁: 현종 때 서인과 남인 사이에 벌어졌다.
- 인조반정: 서인이 광해군과 북인 정권을 몰아내고 집권하였다.
- 노론·소론 분열: 경신환국 이후 남인 처벌 문제를 둘러싸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다.
- 대원군을 가까운 시일 안으로 나라에 돌아오도록 할 것
- 각 도의 환상(還上) 제도를 영원히 없앨 것
- 재정은 모두 호조에 관할케 할 것
제시된 주장은 갑신정변(1884) 때의 14개조 정강이며, 그 주역들은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 평등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대원군을' 돌아오도록 할 것, '환상' 제도 폐지, '재정은 모두 호조에' 관할하게 할 것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발표한 정강의 내용이다.
- 구식 군인의 차별 대우 불만: 1882년 임오군란의 발단이다.
- 서울 상인과 빈민의 적극 지지: 갑신정변은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 실패 원인의 하나였다.
- 조선과 청의 톈진 조약: 갑신정변 뒤 톈진 조약은 청과 일본 사이에 맺어졌다.
ㄱ. 대개 국교(國敎)· 국학 국어·국문·국사는 혼(魂)에 속하는 것이요, 전곡·군대·성지(城池) ·함선 · 기계 등은 백(魄)에 속하는 것이므로 혼의 됨됨은 백에 따라 죽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교와 국사가 망하지 않으면 그 나라도 망하지 않는 것이다.
ㄴ. 누구나 어릿어릿하는 사람을 보면 '얼' 빠졌다고 하고, '멍'하니 앉은 사람을 보면 '얼'하나 없다고 한다. '얼'이란 이같이 쉬운 것이다. 그런데 '얼'하나의 있고 없음으로써 그 광대·웅맹함이 혹 저렇기도 하고 그 잔루(孱陋) 구차함이 이렇기도 하니, '얼'에 대하여 명찰통조(明察通眺)함은 실로 거론하기 어렵다 할 수도 있다.
ㄷ. 나는 신민족주의 입지에서 이 글을 썼다. 왕장 1인만이 국가의 주권은 전유하였던 귀족정치기에 있어서도 민족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또한 민족주의란 것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민족사상은 모두 진정한 의의의 민족주의는 아니었다.
ㄹ.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정신적 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역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인 것이다.
글과 사학자를 옳게 연결하면 박은식, 정인보, 손진태, 신채호 순이다.
'혼(魂)'과 '백(魄)'으로 국혼을 강조한 것은 박은식, '얼'을 강조한 것은 정인보이다. '신민족주의' 입지를 밝힌 것은 손진태, 역사를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정의한 것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이다.
- 문일평: '조선심'을 강조한 민족주의 사학자이다.
- 안재홍: 정인보와 함께 조선학 운동을 펼쳤으나 제시된 글의 단서와 맞지 않는다.
- 백남운: 유물 사관에 입각한 사회 경제 사학자이다.
단군, 기자, 삼한, 후조선(위만)을 본기로 하고 세가, 열전, 연표, 지를 두어 사대적 명분을 뒤집는 본격적인 기전체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체계적인 정리는 아니고 고조선사를 중심으로 삼국시대를 연결시키는 국사의 맥을 추적하는 입장의 서술이다. 고대사체계에는 정통론이 도입되어 있어서, 단군-기자-마한-고구려의 삼한정통론적 입장을 취했으면서도 단군-부여-고구려의 연결성도 존중하여서, 고구려는 단군의 혈통, 세력과 기자의 문화를 동시에 계승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제시된 설명과 부합하는 역사책은 이종휘의 『동사』이다.
'단군, 기자, 삼한, 후조선'을 본기로 둔 기전체 서술과 고구려가 '단군의 혈통'과 '기자의 문화'를 함께 계승하였다는 주장은 『동사』의 특징이다. 이종휘는 고대사 인식의 폭을 만주까지 넓혔다.
- 일연의 『삼국유사』: 불교사 중심의 유사체 역사서로 기전체가 아니다.
- 이이의 『기자실기』: 기자를 중심으로 존화 의식을 드러낸 16세기 사림의 저술이다.
- 유득공의 『발해고』: 발해를 우리 역사로 다루어 남북국 시대론을 제시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