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상공업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배경으로 서민의 경제적·신분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이에 서당교육이 보급되고 ( )와 같은 서민 문화가 성장하였다.
괄호에 들어갈 서민 문화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진경산수화이다.
진경산수화는 양반 화가 정선이 우리 자연을 사실적으로 그린 화풍으로, 서민 문화라기보다 양반 문화의 새로운 경향이다.
- 판소리: 서민의 감정을 표현한 조선 후기 서민 문화이다.
- 탈놀이: 양반의 위선을 풍자한 서민 놀이이다.
- 사설시조: 서민의 솔직한 감정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고려 경제 활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귀족들이 화폐 사용을 지지하여 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다는 내용이다.
고려는 건원중보·해동통보·활구(은병) 등을 만들었으나,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와 귀족들의 불만으로 화폐는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다. 일반 거래에는 주로 곡식과 삼베가 쓰였다.
- 관청 수공업과 소 수공업: 고려 전기 수공업의 중심이었다.
- 소금 전매제: 고려 후기 충선왕 때 재정 확보를 위해 시행하였다.
- 개간지 감면: 진전이나 황무지를 개간하면 일정 기간 조세·소작료를 감면하였다.
조선 전기 상업 활동에 대한 옳은 설명은 시전이 도성 내 특정 상품 판매의 독점권을 보장받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조선 전기 시전 상인은 왕실과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신 특정 상품의 독점 판매권을 받았다.
- 공인의 활동: 공인은 대동법 시행 이후 등장한 조선 후기의 어용상인이다.
- 송상·만상의 대외 무역: 조선 후기 사상의 활동이다.
- 경강상인의 매점 활동: 조선 후기 한강을 중심으로 성장한 사상의 모습이다.
조선시대에는 중앙 관서 중 3사의 관원을 우대하였다. 이곳을 거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밑줄 친 3사의 기능에 속하는 것은 관리의 비리를 감찰한 것이다.
3사는 사헌부·사간원·홍문관으로, 그중 사헌부가 관리의 비리를 감찰·탄핵하였다. 사간원은 간쟁, 홍문관은 경연과 자문을 맡았다.
- 외교 문서 작성: 승문원의 기능이다.
- 왕명 출납: 승정원의 기능이다.
- 옥새와 부절 관리: 상서원의 기능이다.
ㄱ. 왕인 - 천자문과 논어 전파
ㄴ. 담징 - 종이와 먹의 제조술 전파
ㄷ. 혜자 - 호류지 금당 벽화 제작
ㄹ. 아직기 - 조선술과 제방 축조술 전파
ㅁ. 노리사치계 - 일본 쇼토쿠 태자 교육
옳은 것은 왕인의 천자문·논어 전파와 담징의 종이·먹 제조술 전파, 곧 ㄱ과 ㄴ이다.
백제의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전하였다. 고구려의 담징은 종이와 먹의 제조 방법을 전하고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고 전한다.
- 혜자: 고구려 승려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금당 벽화는 담징과 관련된다.
- 아직기: 백제 사람으로 일본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으며, 조선술·제방 축조술은 신라가 전하였다.
- 노리사치계: 백제 사람으로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의 시문을 구하여 얻은 자는 귀천현우(貴賤賢愚)를 막론하고 우러러보기를 신선처럼 하고 보배로 여기기를 주옥처럼 하지 않음이 없어, 비록 가마를 메고 말을 모는 천한 사람이라도 조선 사람의 해서(楷書)나 초서(草書)를 두어 글자만 얻으면 모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감사의 성의를 표시한다.
제시된 묘사는 통신사에 관한 것이며, 옳지 않은 설명은 일본의 정한론을 잠재우는 데 기여하였다는 내용이다.
정한론은 통신사 파견이 끝난(1811) 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대두하였으므로 통신사와 관계가 없다. 통신사는 일본에 조선의 선진 문화를 전하는 역할을 하였다.
- 1811년까지 십여 차례 파견: 임진왜란 이후 12차례 파견되었다.
- 막부의 권위 강화: 에도 막부는 통신사 접대로 자신의 권위를 높이려 하였다.
- 국학 운동의 자극: 조선 문화에 대한 경도에 반발하여 일본 고유 문화를 강조하는 국학 운동이 일어나는 자극이 되었다.
서토(西土)에 있는 자 어찌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을 자 있겠는가. 막상 급한 일을 당해서는 …… 과거에는 반드시 서로(西路)의 힘에 의지하고 서토의 문을 빌었으니 400년 동안 서로의 사람이 조정을 버린 일이 있는가. 지금 나이 어린 임금이 위에 있어서 권세 있는 간신배가 날로 치성하니 …… 흉년에 굶어 부황 든 무리가 길에 널려 늙은이와 어린이가 구렁에 빠져 산 사람이 거의 죽음에 다다르게 되었다.
제시된 사건은 홍경래의 난(1811)이며, 당시 세도 집권 세력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의정부와 병조를 권력의 핵심 기구로 삼았다는 내용이다.
'서토', '서로'의 차별과 '나이 어린 임금', '권세 있는 간신배'는 순조 때 세도 정치 아래의 평안도 차별을 말한다. 세도 가문은 비변사를 권력의 핵심 기구로 삼아 정권을 장악하였다.
- 외척의 세도 정치: 안동 김씨 등 왕실 외척이 정권을 잡았다.
- 호조·선혜청 요직 차지: 재정 기구를 장악하여 경제 기반을 확보하였다.
- 과거와 인사의 문란: 과거 합격자를 남발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였다.
ㄱ. 아들이 없을 경우 제사를 지내기 위해 양자를 들였다.
ㄴ. 장례와 제사는 정부 정책에 따라 주로 유교적 규범을 따랐다.
ㄷ. 여러 가지 조세와 잡역 등의 부담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ㄹ. 초기의 신앙적인 향도가 후기에는 점차 마을의 공동체 생활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고려 백성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조세·잡역 부담으로 안정된 생활이 어려웠다는 것과 향도가 마을 공동체 조직으로 바뀌었다는 것, 곧 ㄷ과 ㄹ이다.
향도는 처음에 매향 활동을 하는 불교 신앙 조직이었으나, 고려 후기에는 마을 공동체 생활을 주도하는 농민 조직으로 바뀌었다.
- 양자 입양: 고려에서는 아들이 없으면 딸이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양자 입양이 일반화한 것은 조선 후기이다.
- 유교적 장례·제사: 정부는 유교 의례를 권장하였으나 민간에서는 주로 토착 신앙과 불교 의식을 따랐다.
우리들은 3천만 한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국, 영국, 미국, 소련, 카나다, 호주 및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을 축하한다. 일본을 쳐서 무찌르고 동아시아를 재건하게 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인 까닭이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 전 인민은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여 한 개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樞軸國)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한다. (이하 생략)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 선전포고 -
ㄱ. 징병 ㄷ. 농촌진흥운동
ㄴ. 신사참배 ㄹ. 조선여자정신대 동원
대일 선전 포고(1941.12) 이후 시작된 정책은 징병과 조선 여자 정신대 동원, 곧 ㄱ과 ㄹ이다.
임시정부는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대일 선전 포고를 발표하였다. 일제는 그 뒤 징병제를 공포(1943)해 청년을 전쟁터로 끌고 갔고, 여성을 정신대로 동원하였다.
- 신사 참배: 1930년대 민족 말살 정책으로 강요가 본격화되어 선전 포고보다 앞선다.
- 농촌 진흥 운동: 1932년부터 실시되어 선전 포고보다 앞선다.
조선 전기 경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과전법에서 과전이 토지의 소유권을 지급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과전법은 관리에게 토지에서 조세를 거둘 수 있는 수조권을 지급한 제도로, 소유권을 준 것이 아니다.
- 양반의 농업 관심: 양반은 수리 시설을 만들고 중국의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 16세기 몰락 농민 증가: 수취 제도의 폐단과 지주전호제 확대로 농민 몰락이 늘었다.
- 평안도·함경도의 조세: 경창으로 옮기지 않고 현지의 군사비·사신 접대비로 쓰는 잉류 지역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 가 )(으)로 건립된 ( 나 )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 다 )을(를)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 (이하 생략)
ㄱ. 동학농민운동 ㄴ. 광무개혁
ㄷ. 3·1운동 ㄹ. 대한민국임시정부
ㅁ. 4·19민주이념 ㅂ. 5·18광주민주화운동
(가)~(다)에는 차례로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4·19 민주 이념이 들어간다.
현행 헌법(1987)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다.
- 동학 농민 운동·광무개혁: 헌법 전문에 언급되지 않는다.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현행 헌법 전문에 들어 있지 않다.
<1945년 말 현재 남한의 토지 소유 상황>
| 구 분 | 답 | 전 | 계 |
|---|---|---|---|
| 농 경 지 | 128 (100%) | 104 (100%) | 232 (100%) |
| 소 작 지 | 89 (70%) | 58 (56%) | 147 (63%) |
| 전(前) 일본인 소유 | 18 | 5 | 23 |
| 조선인 지주 소유 | 71 | 53 | 124 |
| 자 작 지 | 39 (30%) | 46 (44%) | 85 (37%) |
소작지 비율이 높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한 정책은 농지 개혁이며, 임야 등 비경지는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표에서 남한 농경지 가운데 소작지가 자작지보다 훨씬 많다. 이승만 정부는 1949년 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여 농지를 대상으로 개혁을 추진하였고, 산림·임야 등은 대상에 넣지 않았다.
- 유상 몰수·무상 분배: 남한의 농지 개혁은 유상 매수·유상 분배 방식이었다.
- 신한공사 중심 추진: 신한공사는 미군정이 옛 일본인 소유 토지를 관리하던 기구이다.
- 북한 토지 개혁에 영향: 북한의 토지 개혁(1946)이 먼저 무상 몰수·무상 분배로 실시되었다.
서도(西道)로써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겠는가 하니 아니다. …… 영부의 모양은 태극의 그림과 같고 혹은 활 궁(弓)자를 겹쳐 놓은 것과 같다. 이 부적을 받아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또 내 주문을 받아가지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위하게 하라. 그러면 너도 역시 오래 살아서 온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이다.
제시된 내용을 주창한 종교는 동학이며, 동학은 수덕문·안심가·논학문 등을 전파하였다.
'서도'로 가르칠 수 없다며 '영부'와 '주문'을 받으라 한 것은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할 때의 내용이다. 최시형은 교리를 정리하여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펴냈다.
- 전라도 중심 포교: 동학은 경상도 경주에서 창시되어 포교가 시작되었다.
- 나철의 창시: 나철이 창시한 종교는 대종교이다.
- 신채호의 민족주의 역사학: 단군 신앙을 내세운 대종교와 관련이 깊다.
ㄱ. 선사시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순으로 발전하였다.
ㄴ. 고대사회의 불교는 현세구복적이고 호국적인 성향이 있었다.
ㄷ. 조선시대 농촌사회에서는 두레, 계와 같은 공동체 조직이 발달하였다.
ㄹ. 전근대사회에서 신분제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보여 주는 것은 호국적 불교와 두레·계 같은 공동체 조직, 곧 ㄴ과 ㄷ이다.
불교의 현세 구복적·호국적 성격과 두레·계 같은 공동체 문화는 우리 역사에서 두드러진 고유한 모습이다.
-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순의 발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이다.
- 전근대의 신분제 사회: 여러 문명에 공통된 보편적 현상이다.
새로 만든 국기를 묵고 있는 누각에 달았다. 기는 흰 바탕으로 네모졌는데 세로는 가로의 5분의 2에 미치지 못하였다. 중앙에는 태극을 그려 청색과 홍색으로 색칠을 하고 네 모서리에는 건(乾)·곤(坤)·감(坎)·이(離)의 4괘(四卦)를 그렸다.
제시된 자료는 1882년 박영효가 이끈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서 태극기를 게양한 기록이며, 가장 밀접한 사건은 김옥균 등의 차관 교섭과 구미 외교 사절 접촉이다.
임오군란 뒤 제물포 조약에 따라 파견된 박영효 일행은 일본으로 가는 길에 '태극'과 '4괘'를 그린 국기를 만들어 숙소에 달았다. 함께 간 김옥균은 일본에서 차관 도입을 교섭하였다.
- 근대식 무기 제조 기술 학습: 김윤식이 이끈 영선사(1881)의 활동이다.
- 『조선책략』 도입: 1880년 2차 수신사 김홍집의 활동이다.
- 일본 정부 기관 시찰: 1881년 조사 시찰단(박정양 등)의 활동이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원과 연못이 없어서 계곡을 따라 살며 골짜기 물을 식수로 마셨다. 좋은 밭이 없어서 힘들여 일구어도 배를 채우기는 부족하였다.
- 삼국지 동이전 -
제시된 나라는 고구려이며, 국동대혈에서 제사를 지내는 의례가 있었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 '좋은 밭이 없어서' 배를 채우기 부족하였다는 기록은 『삼국지』 동이전의 고구려 조이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고 국동대혈에서 수신에게 제사하였다.
- 목곽에 쌀 부장: 가족 공동 무덤(골장제)을 쓴 옥저의 풍습이다.
- 단궁·과하마·반어피: 동예의 특산물이다.
- 도둑질의 50만 전 배상: 고조선 범금 8조의 내용이다.
역사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을 사관(史觀)이라고 한다. 역사가가 어떤 사관을 가지고 책을 저술 또는 편찬하는가에 따라서 역사서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제시된 주장을 고려할 때 가장 적절한 태도는 역사서를 읽을 때 저자의 사관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어떤 사관을 가지고' 저술하느냐에 따라 '역사서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독자는 그 책이 어떤 관점에서 쓰였는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 과거 사실 규명을 지상 과제로 삼는 태도: 사관의 차이보다 객관적 사실만을 강조하는 실증주의적 태도이다.
- 대중을 위한 윤색: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 현재의 요구를 반드시 반영: 제시된 주장은 사관이 다양하다는 것일 뿐, 특정 관점을 반드시 따르라는 것이 아니다.
이(理)와 기(氣)는 논리적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모든 사물에 있어 이는 기의 주재 역할을 하고 기는 이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서 양자는 불리(不離)의 관계에 있다. …… 일물(一物)이 아닌 까닭에 일이면서 이요, 이물(二物)이 아닌 까닭에 이이면서 일이다.
제시된 사상적 태도는 이이를 중심으로 한 학파의 것으로, 이들은 관념적 도덕 세계와 경험적 현실 세계를 함께 존중하는 철학 체계를 세웠다.
이와 기가 '불리(不離)의 관계'이며 '일이면서 이요', '이이면서 일'이라는 주장은 이이의 이기론이다. 이이는 기의 역할을 중시하여 현실 개혁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 동인 주도: 이이의 학통은 서인으로 이어졌고, 동인은 이황·조식 계열이다.
- 일본 유학 형성에 영향: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전해져 영향을 준 것은 이황의 학문이다.
- 지행합일: 양명학의 특징이다.
근래 아전의 풍속이 나날이 변하여 하찮은 아전이 길에서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전의 아들, 손자로서 아전의 역을 맡지 않은 자는 고을 안의 양반을 대할 때, 맞먹듯이 너나하며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
- 목민심서 -
제시된 현상을 촉발한 원인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소수 가문의 권력 독점으로 벼슬길이 좁아진 것이다.
'아전'이 '양반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목민심서』의 기록은 양반의 권위가 떨어진 모습이다. 붕당 정치가 무너지고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면서 관직에 오르지 못한 몰락 양반이 늘어났다.
- 북벌론 대두: 17세기 효종 때의 일로 양반 권위 하락과 관계가 없다.
- 이양선 출몰: 민심 동요의 원인일 뿐 아전과 양반의 관계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 수해와 전염병: 농민 생활을 어렵게 한 요인이지만 양반 권위 하락의 직접 원인이 아니다.
(영락) 9년 기해에 백제가 서약을 어기고 왜와 화통하므로, 왕은 평양으로 순수해 내려갔다. 신라가 사신을 보내 왕에게 말하기를, "왜인이 그 국경에 가득 차 성을 부수었으니, 노객은 백성된 자로서 왕에게 귀의하여 분부를 청한다."고 하였다. …… 10년 경자에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 관군이 이르자 왜적이 물러가므로,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에 이르렀다. 성이 곧 귀순하여 복종하므로, 순라병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신라의 □농성을 공략하니 왜구는 위축되어 궤멸되었다.
사료에 나타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유물은 호우명 그릇이다.
'영락' 10년 고구려가 '보병과 기병 5만'을 보내 신라를 구원한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의 기록이다.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에는 광개토대왕을 뜻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당시 고구려가 신라에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 준다.
- 칠지도: 백제가 왜에 보낸 칼로 백제와 왜의 관계를 보여 준다.
- 진흥왕 순수비: 신라의 영토 확장을 보여 주는 비석이다.
- 배리 석불 입상: 신라의 불상으로 고구려와의 관계를 보여 주는 유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