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 국가직 한국사] 23년 1회차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

23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3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유물이 사용된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미송리식 토기, 팽이형 토기, 붉은 간 토기

1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다.
2오수전 등의 화폐가 사용되었다.
3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사용되었다.
4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유물이 사용된 시대는 청동기 시대이며, 이 시대에는 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다.

‘미송리식 토기’, ‘팽이형 토기’, ‘붉은 간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고, 비파형 동검은 고인돌·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 주는 청동기 유물이다.

  • 오수전 등 중국 화폐가 출토되는 것은 철기 시대로, 중국과의 교류를 보여 준다.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연천 전곡리 등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뗀석기이다.
  • 철을 많이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한 것은 철기 시대의 변한(가야)이다.
문제 2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6년 겨울 10월, 왕이 질양(質陽)으로 사냥을 갔다가 길에 앉아 우는 자를 보았다. 왕이 말하기를 “아!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의 죄로다.” …(중략)… 그리고 관리들에게 명하여 매년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내어 백성들의 식구 수에 따라 차등 있게 빌려주었다가, 10월에 이르러 상환하게 하는 것을 법규로 정하였다.

- 『삼국사기』 -

1낙랑군을 축출하였다.
2「진대법」을 시행하였다.
3백제의 침입으로 전사하였다.
4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고구려 고국천왕이며, 그는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이르러 상환’하게 한 법규는 을파소의 건의로 마련된 빈민 구제 제도인 진대법이다.

  • 낙랑군을 축출한 것은 고구려 미천왕이다.
  • 백제의 침입으로 평양성에서 전사한 왕은 고국원왕이다.
  • ‘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쓴 왕은 광개토대왕이다.
문제 3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신돈이 [ (가) ]을/를 설치하자고 요청하자, …(중략)… 이제 도감이 설치되었다. …(중략)… 명령이 나가자 권세가 중에 전민을 빼앗은 자들이 그 주인에게 많이 돌려주었으며, 전국에서 기뻐하였다.

- 『고려사』 -

1시전의 물가를 감독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2국가재정의 출납과 회계 업무를 총괄하였다.
3불법적으로 점유된 토지와 노비를 조사하였다.
4부족한 녹봉을 보충하고자 관료에게 녹과전을 지급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공민왕 때 신돈의 건의로 설치된 전민변정도감으로, 권세가가 불법적으로 점유한 토지와 노비를 조사해 되돌렸다.

사료의 ‘신돈’, ‘도감’, ‘권세가 중에 전민을 빼앗은 자들이 그 주인에게 많이 돌려주었’다는 구절이 단서이다.

  • 시전의 물가를 감독한 기구는 경시서이다.
  • 고려에서 국가 재정의 출납과 회계를 총괄한 기구는 삼사이다.
  • 부족한 녹봉을 보충하려 관료에게 녹과전을 지급한 것은 토지 지급 제도의 변화로, 전민변정도감의 임무가 아니다.
문제 4
다음과 같이 말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옛 땅이다. 그리고 압록강의 안팎 또한 우리의 지역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에 몰래 점거하여 저항하고 교활하게 대처하고 있어서 …(중략)… 만일 여진을 내쫓고 우리 옛 땅을 되찾아서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를 통하도록 하면 우리가 어찌 사신을 보내지 않겠는가?

- 『고려사』 -

1목종을 폐위하였다.
2귀주에서 거란군을 물리쳤다.
3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다.
4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정답 및 해설

말한 인물은 거란의 1차 침입 때 외교 담판에 나선 서희로,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옛 땅’이라며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고, ‘여진을 내쫓고’ 옛 땅을 되찾으면 거란과 통교하겠다고 한 것이 서희 담판의 핵심이다.

  • 목종을 폐위한 인물은 정변을 일으킨 강조이다.
  •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인물은 강감찬이다.
  •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인물은 윤관이다.
문제 5
밑줄 친 '이곳'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장수왕은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 묘청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주장하였다.
1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2망이ㆍ망소이가 반란을 일으켰다.
3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41923년 조선 형평사가 결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이곳’은 평양이며, 이곳에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위해 평양으로 천도했고, 묘청은 서경(평양) 천도를 주장했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다 불태워졌다.

  • 쌍성총관부는 원이 화주(영흥)에 설치한 기구이다.
  • 망이·망소이의 난은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났다.
  • 1923년 조선 형평사는 진주에서 결성되었다.
문제 6
다음 전투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매소성(買肖城)에 머물렀다.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달아나게 하고 전마 30,380필을 얻었는데, 남겨놓은 병장기도 그 정도 되었다.

- 『삼국사기』 -

  • ㄱ.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다.
  • ㄴ.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다.
  • ㄷ. 교육 기관인 국학이 설립되었다.
  • ㄹ.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과 함께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1ㄱ, ㄴ
2ㄱ, ㄹ
3ㄴ, ㄷ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전투는 675년 신라가 당군을 물리친 매소성 전투이며, 그 이후의 사건은 김흠돌의 반란과 국학 설립이다.

‘이근행’, ‘매소성’이 단서로, 이 전투는 나당 전쟁 시기(문무왕)에 해당한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김흠돌의 반란(681)을 진압하고 이듬해 국학(682)을 세웠다.

  • 웅진도독부는 백제 멸망(660) 직후 당이 설치한 것이므로 전투 이전이다.
  •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세워 벌인 백제 부흥 운동도 660년대 초의 일로 전투 이전이다.
문제 7
다음 사건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 (가) 신라의 우산국 복속
  • (나) 고구려의 서안평 점령
  • (다) 백제의 대야성 점령
  • (라)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
1(가)→(나)→(다)→(라)
2(가)→(라)→(나)→(다)
3(나)→(가)→(라)→(다)
4(나)→(다)→(가)→(라)
정답 및 해설

시기순은 (나)→(가)→(라)→(다)이다.

고구려 미천왕의 서안평 점령(311) →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512) → 신라 법흥왕의 금관가야 병합(532) → 백제 의자왕의 대야성 점령(642) 순이다.

  • (가)→(나)→(다)→(라) 배열은 6세기의 우산국 복속을 4세기 초의 서안평 점령보다 앞세워 틀렸다.
  • (가)→(라)→(나)→(다) 배열도 우산국 복속과 금관가야 병합을 서안평 점령보다 앞세워 틀렸다.
  • (나)→(다)→(가)→(라) 배열은 7세기의 대야성 점령을 6세기 신라의 두 사건보다 앞세워 틀렸다.
문제 8
고려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황해도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은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2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모방하여 제작하였다.
3여주 고달사지 승탑은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하였다.
4「직지심체요절」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원의 석탑을 모방했다는 설명이다. 이 탑은 고려 전기 송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탑이다.

원 석탑의 영향을 받은 고려 탑은 고려 후기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며, 대리석으로 만든 이 탑은 뒤에 조선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 황해도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이 고려 후기에 등장한 다포 양식 건물이라는 설명은 옳다.
  • 여주 고달사지 승탑이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했다는 설명은 옳다.
  • 「직지심체요절」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설명은 옳다.
문제 9
조선시대 지도와 천문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대동여지도는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였다.
2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곤여만국전도를 참고하였다.
3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별자리를 표시한 그림이다.
4동국지도는 정상기가 실제 거리 100리를 1척으로 줄인 백리척을 적용하여 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것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곤여만국전도를 참고했다는 설명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402년(태종) 원의 세계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이다.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 마테오 리치가 만든 서양식 세계 지도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보다 200년 뒤에 제작되어 참고할 수 없었다.

  • 대동여지도가 10리마다 눈금을 찍어 거리를 알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은 옳다.
  •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별자리를 표시한 천문도라는 설명은 옳다.
  •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100리를 1척으로 줄인 백리척을 적용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0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우의정 유성룡도 역시 미곡을 거두는 것이 편리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일이 성취되지 못하였다. 1608년에 이르러 좌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 (가) ]을/를 비로소 시행하여, 민결(民結)에서 미곡을 거두어 서울로 옮기게 하였다.

- 『만기요람』 -

1장시의 확대에 기여하였다.
2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하였다.
3공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실시하였다.
4공인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필요 물품을 조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대동법이며,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한 것은 균역법의 내용이므로 옳지 않다.

‘1608년’, ‘이원익의 건의’, ‘민결에서 미곡을 거두어’가 단서로,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대동법이다. 결작은 영조 때 균역법으로 줄어든 군포 수입을 보충하려 토지 1결당 부과한 세이다.

  • 대동법이 공인의 활동을 통해 장시의 확대에 기여했다는 설명은 옳다.
  • 대동법이 방납 등 공납의 폐단을 막으려 실시되었다는 설명은 옳다.
  • 대동법 시행으로 공인에게 비용을 지급해 필요 물품을 조달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1
(가) 인물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선비들 수만 명이 대궐 앞에 모여 만동묘와 서원을 다시 설립할 것을 청하니, [ (가) ]이/가 크게 노하여 한성부의 조례(皂隷)와 병졸로 하여금 한강 밖으로 몰아내게 하고 드디어 천여 곳의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하여 관에 속하게 하였다.

- 『대한계년사』 -

1사창제를 실시하였다.
2「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3비변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4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흥선 대원군이며, 그는 비변사의 기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축소·폐지하였다.

‘만동묘와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한 사료가 단서이다.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를 사실상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렸다.

  • 흥선 대원군이 환곡의 폐단을 고치려 사창제를 실시했다는 설명은 옳다.
  •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법전인 「대전회통」을 편찬했다는 설명은 옳다.
  •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2
다음과 같은 선포문을 발표하면서 성립한 정부의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중략)…

민국 원년 3월 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을 선언한 뒤 …(중략)… 이제 본 정부가 전 국민의 위임을 받아 조직되었으니 전 국민과 더불어 전심(專心)으로 힘을 모아 국토 광복의 대사명을 이룰 것을 선서한다.

1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2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3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부를 설치하였다.
4재정 확보를 위하여 전환국을 설립하였다.
정답 및 해설

선포문으로 성립한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며, 전환국 설립은 개항기 조선 정부가 화폐 주조를 위해 추진한 것이므로 옳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민국 원년 3월 1일’이 단서로, 3·1 운동 이후 수립된 임시 정부의 선포문이다. 전환국은 1883년 설치된 상설 조폐 기관이다.

  • 임시 정부가 군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했다는 설명은 옳다.
  • 임시 정부가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간했다는 설명은 옳다.
  • 임시 정부가 국내와 연락하는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부를 설치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3
밑줄 친 '나'가 집권하여 추진한 사실로 옳은 것은?

나는 우리 국민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질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다각적인 생산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중략)… 공산품 수출을 진흥시키는 데 가일층 노력할 것을 요망합니다. 끝으로 나는 오늘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 즈음하여 …(중략)… 이 뜻깊은 날이 자립경제를 앞당기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기원합니다.

1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였다.
23ㆍ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3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4베트남 파병에 필요한 조건을 명시한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며, 그가 집권하여 추진한 사실은 브라운 각서 체결이다.

‘제1회 「수출의 날」’과 ‘공산품 수출’ 진흥, ‘자립경제’가 단서로,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을 추진한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박정희 정부는 1966년 베트남 추가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약속받은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였다.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이승만 정부의 발췌 개헌(1952)이나 6월 민주 항쟁 이후의 1987년 개헌으로 대표되는 사실이다.
  • 3·1 민주 구국 선언(1976)은 재야 인사들이 유신 체제에 반대하여 발표한 것으로, 정부가 추진한 일이 아니다.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는 이승만 정부 수립 직후 제헌 국회가 구성하였다.
문제 14
다음과 같이 상소한 인물이 속한 붕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상소하여 아뢰기를, “신이 좌참찬 송준길이 올린 차자를 보았는데, 상복(喪服) 절차에 대하여 논한 것이 신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장자를 위하여 3년을 입는 까닭은 위로 ‘정체(正體)’가 되기 때문이고 또 전중(傳重: 조상의 제사나 가문의 법통을 전함)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정체’이지, 꼭 첫째이기 때문에 참최 3년복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 『현종실록』 -

  • ㄱ.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 ㄴ.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집권세력이 되었다.
  • ㄷ. 정조 시기에 탕평정치의 한 축을 이루었다.
  • ㄹ.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상소한 인물은 기해예송에서 서인 송준길에 맞서 3년복을 주장한 남인(허목)이며, 옳은 것은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과 정조 시기 탕평 정치의 한 축을 이룬 것이다.

‘송준길’의 주장과 다르게 효종이 ‘정체’로서 왕위를 이었으므로 3년복이 옳다고 한 것이 남인의 논리이다. 남인은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집권했고, 정조 때는 채제공 등이 중용되었다.

  •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집권 세력이 된 것은 서인이다.
  •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서인이다.
문제 15
(나) 시기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삼포왜란이 발발하였다.
↓
(나)
↓
(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1을사사화가 일어났다.
2「경국대전」이 반포되었다.
3「향약집성방」이 편찬되었다.
4금속활자인 갑인자가 주조되었다.
정답 및 해설

(나) 시기에 일어난 사실은 을사사화이다.

(나)는 중종 때 삼포왜란(1510)과 선조 때 임진왜란(1592) 사이이며, 을사사화는 명종 즉위 직후인 1545년 외척 간 대립으로 일어났다.

  • 「경국대전」은 성종 때(1485) 반포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 「향약집성방」은 세종 때(1433) 편찬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 금속활자 갑인자는 세종 때(1434) 주조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문제 16
다음 법령이 시행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5조 회사가 본령이나 본령에 따라 나오는 명령과 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 조선 총독은 사업의 정지, 지점의 폐쇄, 또는 회사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1산미 증식 계획이 폐지되었다.
2「국가 총동원법」이 제정되었다.
3원료 확보를 위한 남면북양 정책이 추진되었다.
4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정한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법령은 회사령이며, 이 법령이 시행된 시기에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정한 제1차 조선 교육령이 공포되었다.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허가제 조항이 단서로, 회사령은 1910년 제정되어 1920년 신고제로 바뀌며 폐지되었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에 공포되었다.

  •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 시작되어 1930년대 중반에 중단되었으므로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 「국가 총동원법」은 1938년 제정되어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 남면북양 정책은 1930년대 병참 기지화 정책의 하나로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문제 17
다음과 같은 결의문에 근거하여 시행된 조치로 옳은 것은?

소총회는 …(중략)… 한국 인민의 대표가 국회를 구성하여 중앙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선거를 시행함이 긴요하다고 여기며, 총회의 의결에 따라 국제연합 한국 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결의문 제2호에 기술된 계획을 시행함이 동 위원단에 부과된 임무임을 결의한다.

1미 군정청이 설치되었다.
25ㆍ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3좌우 합작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4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결의문은 1948년 2월 유엔 소총회의 결의이며, 이에 근거해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소총회’가 ‘국제연합 한국 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선거를 시행하도록 결의한 것은, 소련의 거부로 북한 지역 입국이 막히자 남한만의 선거를 결정한 것이다.

  • 미 군정청은 1945년 광복 직후 설치되어 결의 이전이다.
  • 좌우 합작 위원회는 1946년 구성되어 결의 이전이다.
  •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과 1947년에 개최되어 결의 이전이다.
문제 18
(가), (나) 조약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제10관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지정의 각 항구에 머무는 동안에 죄를 범한 것이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 사건일 때에는 일본국 관원이 재판한다.

(나) 제4관중국 상인이 조선의 양화진 및 한성에 영업소를 개설할 경우를 제외하고, 각종 화물을 내륙으로 운반하여 상점을 차리고 파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단, 내륙행상이 필요한 경우 지방관의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1개항장에서는 일본 화폐가 통용되었다.
2러시아가 압록강 유역의 산림 채벌권을 획득하였다.
3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어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4함경도의 방곡령에 불복하여 일본 상인이 손해 배상을 요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나)는 1882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며, 그 사이에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가 통용되었다.

(가)의 ‘일본국 관원이 재판’은 영사 재판권 조항, (나)의 ‘양화진 및 한성에 영업소’, ‘내륙행상’은 청 상인의 내지 진출 조항이다. 1876년 조일 수호 조규 부록으로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 사용이 허용되었다.

  • 러시아가 압록강 유역 산림 채벌권을 획득한 것은 아관 파천(1896) 이후로 (나) 이후이다.
  • 황국 중앙 총상회가 상권 수호 운동을 벌인 것은 1898년으로 (나) 이후이다.
  • 함경도 방곡령(1889)에 따른 일본 상인의 배상 요구는 (나) 이후이다.
문제 19
밑줄 친 '14개 조목'에 해당하는 것만을 모두 고르면?

이제부터는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않으며 융성하도록 나라의 발걸음을 넓히고 백성의 복리를 증진하여 자주독립의 터전을 공고하게 할 것입니다. …(중략)… 이에 저 소자는 14개 조목의 홍범(洪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조종의 신령 앞에 맹세하노니, 우러러 조종이 남긴 업적을 잘 이어서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 ㄱ. 탁지아문에서 조세 부과
  • ㄴ. 왕실과 국정 사무의 분리
  • ㄷ. 지계 발급을 위한 지계아문 설치
  • ㄹ. 대한 천일 은행 등 금융기관 설립
1ㄱ, ㄴ
2ㄱ, ㄹ
3ㄴ, ㄷ
4ㄷ, ㄹ
정답 및 해설

‘14개 조목’은 제2차 갑오개혁 때 반포된 홍범 14조이며, 이에 해당하는 것은 탁지아문의 조세 관할과 왕실과 국정 사무의 분리이다.

홍범 14조는 청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시작으로,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고 조세의 부과·징수와 경비 지출을 모두 탁지아문이 관할하도록 하였다.

  • 지계 발급을 위한 지계아문 설치는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때의 일이다.
  • 대한 천일 은행 등 금융 기관 설립은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다.
문제 20
(가) 시기에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만주사변 발생(가)태평양전쟁 발발
1소학교에 등교하는 조선인 학생
2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청년
3「제국신문」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4쌍성보에서 항전하는 한국독립당 군인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은 「제국신문」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이다. 「제국신문」은 대한 제국 시기에 발행되다가 국권 피탈 무렵 폐간되었다.

(가)는 만주사변(1931)부터 태평양 전쟁(1941) 발발 전까지로, 일제가 대륙 침략과 민족 말살 통치를 강화하던 시기이다.

  • 1938년 제3차 조선 교육령으로 보통학교가 소학교로 바뀌었으므로 소학교에 등교하는 조선인 학생을 볼 수 있었다.
  • 1937년부터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으므로 이를 암송하는 청년을 볼 수 있었다.
  • 1932년 한국독립당 산하 한국 독립군이 쌍성보에서 항전하였으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9급 국가직 한국사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23년 1회차
총 2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유물이 사용된 시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미송리식 토기, 팽이형 토기, 붉은 간 토기

1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다.
2오수전 등의 화폐가 사용되었다.
3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사용되었다.
4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유물이 사용된 시대는 청동기 시대이며, 이 시대에는 비파형 동검이 사용되었다.

‘미송리식 토기’, ‘팽이형 토기’, ‘붉은 간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고, 비파형 동검은 고인돌·미송리식 토기와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 주는 청동기 유물이다.

  • 오수전 등 중국 화폐가 출토되는 것은 철기 시대로, 중국과의 교류를 보여 준다.
  •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연천 전곡리 등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 뗀석기이다.
  • 철을 많이 생산해 낙랑과 왜에 수출한 것은 철기 시대의 변한(가야)이다.
문제 2
밑줄 친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16년 겨울 10월, 왕이 질양(質陽)으로 사냥을 갔다가 길에 앉아 우는 자를 보았다. 왕이 말하기를 “아!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나의 죄로다.” …(중략)… 그리고 관리들에게 명하여 매년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내어 백성들의 식구 수에 따라 차등 있게 빌려주었다가, 10월에 이르러 상환하게 하는 것을 법규로 정하였다.

- 『삼국사기』 -

1낙랑군을 축출하였다.
2「진대법」을 시행하였다.
3백제의 침입으로 전사하였다.
4영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왕’은 고구려 고국천왕이며, 그는 진대법을 시행하였다.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이르러 상환’하게 한 법규는 을파소의 건의로 마련된 빈민 구제 제도인 진대법이다.

  • 낙랑군을 축출한 것은 고구려 미천왕이다.
  • 백제의 침입으로 평양성에서 전사한 왕은 고국원왕이다.
  • ‘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쓴 왕은 광개토대왕이다.
문제 3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신돈이 [ (가) ]을/를 설치하자고 요청하자, …(중략)… 이제 도감이 설치되었다. …(중략)… 명령이 나가자 권세가 중에 전민을 빼앗은 자들이 그 주인에게 많이 돌려주었으며, 전국에서 기뻐하였다.

- 『고려사』 -

1시전의 물가를 감독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2국가재정의 출납과 회계 업무를 총괄하였다.
3불법적으로 점유된 토지와 노비를 조사하였다.
4부족한 녹봉을 보충하고자 관료에게 녹과전을 지급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공민왕 때 신돈의 건의로 설치된 전민변정도감으로, 권세가가 불법적으로 점유한 토지와 노비를 조사해 되돌렸다.

사료의 ‘신돈’, ‘도감’, ‘권세가 중에 전민을 빼앗은 자들이 그 주인에게 많이 돌려주었’다는 구절이 단서이다.

  • 시전의 물가를 감독한 기구는 경시서이다.
  • 고려에서 국가 재정의 출납과 회계를 총괄한 기구는 삼사이다.
  • 부족한 녹봉을 보충하려 관료에게 녹과전을 지급한 것은 토지 지급 제도의 변화로, 전민변정도감의 임무가 아니다.
문제 4
다음과 같이 말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옛 땅이다. 그리고 압록강의 안팎 또한 우리의 지역인데 지금 여진이 그 사이에 몰래 점거하여 저항하고 교활하게 대처하고 있어서 …(중략)… 만일 여진을 내쫓고 우리 옛 땅을 되찾아서 성보(城堡)를 쌓고 도로를 통하도록 하면 우리가 어찌 사신을 보내지 않겠는가?

- 『고려사』 -

1목종을 폐위하였다.
2귀주에서 거란군을 물리쳤다.
3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다.
4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정답 및 해설

말한 인물은 거란의 1차 침입 때 외교 담판에 나선 서희로,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우리나라가 곧 고구려의 옛 땅’이라며 고려의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고, ‘여진을 내쫓고’ 옛 땅을 되찾으면 거란과 통교하겠다고 한 것이 서희 담판의 핵심이다.

  • 목종을 폐위한 인물은 정변을 일으킨 강조이다.
  •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인물은 강감찬이다.
  •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인물은 윤관이다.
문제 5
밑줄 친 '이곳'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 장수왕은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 묘청은 이곳으로 수도를 옮길 것을 주장하였다.
1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2망이ㆍ망소이가 반란을 일으켰다.
3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41923년 조선 형평사가 결성되었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이곳’은 평양이며, 이곳에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장수왕은 남진 정책을 위해 평양으로 천도했고, 묘청은 서경(평양) 천도를 주장했다.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까지 와서 통상을 요구하다 불태워졌다.

  • 쌍성총관부는 원이 화주(영흥)에 설치한 기구이다.
  • 망이·망소이의 난은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났다.
  • 1923년 조선 형평사는 진주에서 결성되었다.
문제 6
다음 전투 이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매소성(買肖城)에 머물렀다. 우리 군사가 공격하여 달아나게 하고 전마 30,380필을 얻었는데, 남겨놓은 병장기도 그 정도 되었다.

- 『삼국사기』 -

  • ㄱ.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다.
  • ㄴ. 김흠돌이 반란을 일으켰다.
  • ㄷ. 교육 기관인 국학이 설립되었다.
  • ㄹ.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과 함께 백제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1ㄱ, ㄴ
2ㄱ, ㄹ
3ㄴ, ㄷ
4ㄷ, ㄹ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전투는 675년 신라가 당군을 물리친 매소성 전투이며, 그 이후의 사건은 김흠돌의 반란과 국학 설립이다.

‘이근행’, ‘매소성’이 단서로, 이 전투는 나당 전쟁 시기(문무왕)에 해당한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김흠돌의 반란(681)을 진압하고 이듬해 국학(682)을 세웠다.

  • 웅진도독부는 백제 멸망(660) 직후 당이 설치한 것이므로 전투 이전이다.
  •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세워 벌인 백제 부흥 운동도 660년대 초의 일로 전투 이전이다.
문제 7
다음 사건을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 (가) 신라의 우산국 복속
  • (나) 고구려의 서안평 점령
  • (다) 백제의 대야성 점령
  • (라)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
1(가)→(나)→(다)→(라)
2(가)→(라)→(나)→(다)
3(나)→(가)→(라)→(다)
4(나)→(다)→(가)→(라)
정답 및 해설

시기순은 (나)→(가)→(라)→(다)이다.

고구려 미천왕의 서안평 점령(311) →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512) → 신라 법흥왕의 금관가야 병합(532) → 백제 의자왕의 대야성 점령(642) 순이다.

  • (가)→(나)→(다)→(라) 배열은 6세기의 우산국 복속을 4세기 초의 서안평 점령보다 앞세워 틀렸다.
  • (가)→(라)→(나)→(다) 배열도 우산국 복속과 금관가야 병합을 서안평 점령보다 앞세워 틀렸다.
  • (나)→(다)→(가)→(라) 배열은 7세기의 대야성 점령을 6세기 신라의 두 사건보다 앞세워 틀렸다.
문제 8
고려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황해도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은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2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원의 석탑을 모방하여 제작하였다.
3여주 고달사지 승탑은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하였다.
4「직지심체요절」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것은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원의 석탑을 모방했다는 설명이다. 이 탑은 고려 전기 송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탑이다.

원 석탑의 영향을 받은 고려 탑은 고려 후기의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며, 대리석으로 만든 이 탑은 뒤에 조선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다.

  • 황해도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이 고려 후기에 등장한 다포 양식 건물이라는 설명은 옳다.
  • 여주 고달사지 승탑이 통일 신라의 팔각원당형 양식을 계승했다는 설명은 옳다.
  • 「직지심체요절」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설명은 옳다.
문제 9
조선시대 지도와 천문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1대동여지도는 거리를 알 수 있도록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였다.
2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중국에서 들여온 곤여만국전도를 참고하였다.
3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별자리를 표시한 그림이다.
4동국지도는 정상기가 실제 거리 100리를 1척으로 줄인 백리척을 적용하여 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옳지 않은 것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곤여만국전도를 참고했다는 설명이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1402년(태종) 원의 세계 지도를 바탕으로 만든 지도이다.

곤여만국전도는 1602년 마테오 리치가 만든 서양식 세계 지도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보다 200년 뒤에 제작되어 참고할 수 없었다.

  • 대동여지도가 10리마다 눈금을 찍어 거리를 알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은 옳다.
  • 천상열차분야지도가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별자리를 표시한 천문도라는 설명은 옳다.
  •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100리를 1척으로 줄인 백리척을 적용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0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우의정 유성룡도 역시 미곡을 거두는 것이 편리하다고 주장하였으나, 일이 성취되지 못하였다. 1608년에 이르러 좌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 (가) ]을/를 비로소 시행하여, 민결(民結)에서 미곡을 거두어 서울로 옮기게 하였다.

- 『만기요람』 -

1장시의 확대에 기여하였다.
2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하였다.
3공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실시하였다.
4공인에게 비용을 지급하고 필요 물품을 조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대동법이며,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한 것은 균역법의 내용이므로 옳지 않다.

‘1608년’, ‘이원익의 건의’, ‘민결에서 미곡을 거두어’가 단서로,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대동법이다. 결작은 영조 때 균역법으로 줄어든 군포 수입을 보충하려 토지 1결당 부과한 세이다.

  • 대동법이 공인의 활동을 통해 장시의 확대에 기여했다는 설명은 옳다.
  • 대동법이 방납 등 공납의 폐단을 막으려 실시되었다는 설명은 옳다.
  • 대동법 시행으로 공인에게 비용을 지급해 필요 물품을 조달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1
(가) 인물이 추진한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선비들 수만 명이 대궐 앞에 모여 만동묘와 서원을 다시 설립할 것을 청하니, [ (가) ]이/가 크게 노하여 한성부의 조례(皂隷)와 병졸로 하여금 한강 밖으로 몰아내게 하고 드디어 천여 곳의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하여 관에 속하게 하였다.

- 『대한계년사』 -

1사창제를 실시하였다.
2「대전회통」을 편찬하였다.
3비변사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4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흥선 대원군이며, 그는 비변사의 기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축소·폐지하였다.

‘만동묘와 서원’을 철폐하고 그 토지를 몰수한 사료가 단서이다.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를 사실상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렸다.

  • 흥선 대원군이 환곡의 폐단을 고치려 사창제를 실시했다는 설명은 옳다.
  •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법전인 「대전회통」을 편찬했다는 설명은 옳다.
  • 흥선 대원군이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추진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2
다음과 같은 선포문을 발표하면서 성립한 정부의 정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중략)…

민국 원년 3월 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을 선언한 뒤 …(중략)… 이제 본 정부가 전 국민의 위임을 받아 조직되었으니 전 국민과 더불어 전심(專心)으로 힘을 모아 국토 광복의 대사명을 이룰 것을 선서한다.

1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2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3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부를 설치하였다.
4재정 확보를 위하여 전환국을 설립하였다.
정답 및 해설

선포문으로 성립한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며, 전환국 설립은 개항기 조선 정부가 화폐 주조를 위해 추진한 것이므로 옳지 않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민국 원년 3월 1일’이 단서로, 3·1 운동 이후 수립된 임시 정부의 선포문이다. 전환국은 1883년 설치된 상설 조폐 기관이다.

  • 임시 정부가 군자금 마련을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했다는 설명은 옳다.
  • 임시 정부가 기관지로 「독립신문」을 발간했다는 설명은 옳다.
  • 임시 정부가 국내와 연락하는 비밀 행정 조직인 연통부를 설치했다는 설명은 옳다.
문제 13
밑줄 친 '나'가 집권하여 추진한 사실로 옳은 것은?

나는 우리 국민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질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다각적인 생산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하고, …(중략)… 공산품 수출을 진흥시키는 데 가일층 노력할 것을 요망합니다. 끝으로 나는 오늘 제1회 「수출의 날」 기념식에 즈음하여 …(중략)… 이 뜻깊은 날이 자립경제를 앞당기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을 기원합니다.

1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였다.
23ㆍ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3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4베트남 파병에 필요한 조건을 명시한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밑줄 친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며, 그가 집권하여 추진한 사실은 브라운 각서 체결이다.

‘제1회 「수출의 날」’과 ‘공산품 수출’ 진흥, ‘자립경제’가 단서로, 수출 주도형 경제 개발을 추진한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박정희 정부는 1966년 베트남 추가 파병의 대가로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약속받은 브라운 각서를 체결하였다.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이승만 정부의 발췌 개헌(1952)이나 6월 민주 항쟁 이후의 1987년 개헌으로 대표되는 사실이다.
  • 3·1 민주 구국 선언(1976)은 재야 인사들이 유신 체제에 반대하여 발표한 것으로, 정부가 추진한 일이 아니다.
  •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는 이승만 정부 수립 직후 제헌 국회가 구성하였다.
문제 14
다음과 같이 상소한 인물이 속한 붕당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만을 모두 고르면?

상소하여 아뢰기를, “신이 좌참찬 송준길이 올린 차자를 보았는데, 상복(喪服) 절차에 대하여 논한 것이 신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장자를 위하여 3년을 입는 까닭은 위로 ‘정체(正體)’가 되기 때문이고 또 전중(傳重: 조상의 제사나 가문의 법통을 전함)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은 ‘정체’이지, 꼭 첫째이기 때문에 참최 3년복을 입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 『현종실록』 -

  • ㄱ.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 ㄴ.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집권세력이 되었다.
  • ㄷ. 정조 시기에 탕평정치의 한 축을 이루었다.
  • ㄹ.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ㄱ, ㄴ
2ㄱ, ㄷ
3ㄴ, ㄹ
4ㄷ, ㄹ
정답 및 해설

상소한 인물은 기해예송에서 서인 송준길에 맞서 3년복을 주장한 남인(허목)이며, 옳은 것은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한 것과 정조 시기 탕평 정치의 한 축을 이룬 것이다.

‘송준길’의 주장과 다르게 효종이 ‘정체’로서 왕위를 이었으므로 3년복이 옳다고 한 것이 남인의 논리이다. 남인은 숙종 때 기사환국으로 집권했고, 정조 때는 채제공 등이 중용되었다.

  • 인조반정을 주도하여 집권 세력이 된 것은 서인이다.
  •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서인이다.
문제 15
(나) 시기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삼포왜란이 발발하였다.
↓
(나)
↓
(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였다.

1을사사화가 일어났다.
2「경국대전」이 반포되었다.
3「향약집성방」이 편찬되었다.
4금속활자인 갑인자가 주조되었다.
정답 및 해설

(나) 시기에 일어난 사실은 을사사화이다.

(나)는 중종 때 삼포왜란(1510)과 선조 때 임진왜란(1592) 사이이며, 을사사화는 명종 즉위 직후인 1545년 외척 간 대립으로 일어났다.

  • 「경국대전」은 성종 때(1485) 반포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 「향약집성방」은 세종 때(1433) 편찬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 금속활자 갑인자는 세종 때(1434) 주조되어 삼포왜란 이전이다.
문제 16
다음 법령이 시행된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제1조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5조 회사가 본령이나 본령에 따라 나오는 명령과 허가 조건을 위반하거나 공공질서와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 조선 총독은 사업의 정지, 지점의 폐쇄, 또는 회사의 해산을 명할 수 있다.

1산미 증식 계획이 폐지되었다.
2「국가 총동원법」이 제정되었다.
3원료 확보를 위한 남면북양 정책이 추진되었다.
4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정한 「조선교육령」이 공포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법령은 회사령이며, 이 법령이 시행된 시기에 보통학교 수업 연한을 4년으로 정한 제1차 조선 교육령이 공포되었다.

‘회사의 설립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허가제 조항이 단서로, 회사령은 1910년 제정되어 1920년 신고제로 바뀌며 폐지되었다. 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에 공포되었다.

  •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 시작되어 1930년대 중반에 중단되었으므로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 「국가 총동원법」은 1938년 제정되어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 남면북양 정책은 1930년대 병참 기지화 정책의 하나로 회사령 폐지 이후이다.
문제 17
다음과 같은 결의문에 근거하여 시행된 조치로 옳은 것은?

소총회는 …(중략)… 한국 인민의 대표가 국회를 구성하여 중앙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선거를 시행함이 긴요하다고 여기며, 총회의 의결에 따라 국제연합 한국 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결의문 제2호에 기술된 계획을 시행함이 동 위원단에 부과된 임무임을 결의한다.

1미 군정청이 설치되었다.
25ㆍ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3좌우 합작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4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결의문은 1948년 2월 유엔 소총회의 결의이며, 이에 근거해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소총회’가 ‘국제연합 한국 임시위원단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서’ 선거를 시행하도록 결의한 것은, 소련의 거부로 북한 지역 입국이 막히자 남한만의 선거를 결정한 것이다.

  • 미 군정청은 1945년 광복 직후 설치되어 결의 이전이다.
  • 좌우 합작 위원회는 1946년 구성되어 결의 이전이다.
  •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6년과 1947년에 개최되어 결의 이전이다.
문제 18
(가), (나) 조약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가) 제10관일본국 인민이 조선국 지정의 각 항구에 머무는 동안에 죄를 범한 것이 조선국 인민에 관계되는 사건일 때에는 일본국 관원이 재판한다.

(나) 제4관중국 상인이 조선의 양화진 및 한성에 영업소를 개설할 경우를 제외하고, 각종 화물을 내륙으로 운반하여 상점을 차리고 파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단, 내륙행상이 필요한 경우 지방관의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1개항장에서는 일본 화폐가 통용되었다.
2러시아가 압록강 유역의 산림 채벌권을 획득하였다.
3황국 중앙 총상회가 조직되어 상권 수호 운동을 전개하였다.
4함경도의 방곡령에 불복하여 일본 상인이 손해 배상을 요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는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나)는 1882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이며, 그 사이에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가 통용되었다.

(가)의 ‘일본국 관원이 재판’은 영사 재판권 조항, (나)의 ‘양화진 및 한성에 영업소’, ‘내륙행상’은 청 상인의 내지 진출 조항이다. 1876년 조일 수호 조규 부록으로 개항장에서 일본 화폐 사용이 허용되었다.

  • 러시아가 압록강 유역 산림 채벌권을 획득한 것은 아관 파천(1896) 이후로 (나) 이후이다.
  • 황국 중앙 총상회가 상권 수호 운동을 벌인 것은 1898년으로 (나) 이후이다.
  • 함경도 방곡령(1889)에 따른 일본 상인의 배상 요구는 (나) 이후이다.
문제 19
밑줄 친 '14개 조목'에 해당하는 것만을 모두 고르면?

이제부터는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않으며 융성하도록 나라의 발걸음을 넓히고 백성의 복리를 증진하여 자주독립의 터전을 공고하게 할 것입니다. …(중략)… 이에 저 소자는 14개 조목의 홍범(洪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조종의 신령 앞에 맹세하노니, 우러러 조종이 남긴 업적을 잘 이어서 감히 어기지 않을 것입니다.

  • ㄱ. 탁지아문에서 조세 부과
  • ㄴ. 왕실과 국정 사무의 분리
  • ㄷ. 지계 발급을 위한 지계아문 설치
  • ㄹ. 대한 천일 은행 등 금융기관 설립
1ㄱ, ㄴ
2ㄱ, ㄹ
3ㄴ, ㄷ
4ㄷ, ㄹ
정답 및 해설

‘14개 조목’은 제2차 갑오개혁 때 반포된 홍범 14조이며, 이에 해당하는 것은 탁지아문의 조세 관할과 왕실과 국정 사무의 분리이다.

홍범 14조는 청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시작으로, 왕실 사무와 국정 사무를 나누고 조세의 부과·징수와 경비 지출을 모두 탁지아문이 관할하도록 하였다.

  • 지계 발급을 위한 지계아문 설치는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 때의 일이다.
  • 대한 천일 은행 등 금융 기관 설립은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다.
문제 20
(가) 시기에 볼 수 있었던 모습으로 옳지 않은 것은?
만주사변 발생(가)태평양전쟁 발발
1소학교에 등교하는 조선인 학생
2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청년
3「제국신문」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
4쌍성보에서 항전하는 한국독립당 군인
정답 및 해설

(가) 시기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은 「제국신문」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이다. 「제국신문」은 대한 제국 시기에 발행되다가 국권 피탈 무렵 폐간되었다.

(가)는 만주사변(1931)부터 태평양 전쟁(1941) 발발 전까지로, 일제가 대륙 침략과 민족 말살 통치를 강화하던 시기이다.

  • 1938년 제3차 조선 교육령으로 보통학교가 소학교로 바뀌었으므로 소학교에 등교하는 조선인 학생을 볼 수 있었다.
  • 1937년부터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으므로 이를 암송하는 청년을 볼 수 있었다.
  • 1932년 한국독립당 산하 한국 독립군이 쌍성보에서 항전하였으므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