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잡는 사람, 호랑이, 사슴, 물을 뿜고 있는 고래, 작살이 꽂혀 있는 고래 등이 바위에 묘사되어 있다.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 모습과 신앙,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고래사냥 장면이 새겨진 바위그림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이다.
자료의 '물을 뿜고 있는 고래', '작살이 꽂혀 있는 고래', '고래 잡는 사람'은 반구대 암각화의 대표적 장면으로, 선사 시대 사람들의 고래잡이와 수렵 생활·신앙을 보여 주는 국보이다.
-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동심원 같은 기하학적 무늬가 중심인 바위그림이다.
- 황해 안악 3호분 행렬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로, 바위에 새긴 그림이 아니다.
-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말다래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그림이다.
[ (가) ]은/는 원래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임시회의 기구였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전·현직 정승을 비롯한 주요 관원이 참여하였고, 군사 문제뿐 아니라 외교, 재정, 인사 등 국정 전반을 다루었다. 이로 인해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이 축소되었다.
(가)는 조선의 비변사이다.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임시회의 기구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전반을 다루게 되어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이 축소'되었다는 설명은 비변사가 최고 정무 기구로 커진 과정을 가리킨다.
- 삼군부는 흥선 대원군이 다시 세워 군사 업무를 맡긴 기구이다.
- 상서성은 고려 3성 6부 체제에서 6부를 거느리고 정책을 집행한 기구이다.
- 집사부는 신라에서 왕명을 받들고 행정을 총괄한 최고 관청이다.
이 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이다. …(중략)… 곳곳에 촌락이 있는데 모두 말갈의 부락이다. 그 백성은 말갈이 많고 토인(土人)이 적은데, 모두 토인을 촌장으로 삼는다.
- 『유취국사』 -
'이 나라'는 발해로, 지방 행정 구역을 5경 15부 62주로 나누었다.
'고구려의 옛 땅'이며 백성 중 '말갈'이 많고 고구려계 '토인(土人)'이 촌장을 맡았다는 기록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으로 구성된 발해의 주민 구성을 보여 준다.
- 골품제는 신라의 신분 제도이다.
- 9서당 10정은 통일 신라의 군사 조직이다.
- 영락이라는 독자 연호는 고구려 광개토 대왕이 사용하였다.
- 우리 풍토에 맞는 농서인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 최윤덕과 김종서를 파견하여 4군 6진을 개척하였다.
업적의 주인공은 세종이며, 이 시기에는 전분6등법 시행을 앞두고 찬반 의견을 묻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농사직설』' 편찬과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낸 4군 6진 개척은 세종의 업적이고, 세종은 전분6등법·연분9등법의 공법을 마련하면서 관리와 백성에게 찬반 의견을 물었다.
- 송파장에서 담배를 사는 농민은 담배가 전래되고 장시가 크게 발달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 금난전권 폐지는 정조 때 신해통공으로 이루어졌다.
- 천주교 신자가 어머니 제사를 거부한 일은 정조 때 진산 사건(신해박해)의 배경이다.
왕이 신돈에게 국정을 맡겼다. 신돈은 힘있는 자들이 나라의 토지와 약한 자들의 토지를 모두 빼앗고 양민을 자신들의 노비로 삼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관청을 만들어 그 문제를 개혁하려고 했다.
밑줄 친 '왕'은 고려 공민왕으로, 반원 개혁의 하나로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
'신돈에게 국정을 맡겼다'와 권세가가 빼앗은 토지와 억지로 노비로 삼은 양민 문제를 바로잡는 '관청'(전민변정도감)이 공민왕을 가리키는 단서이다.
- 사심관 제도는 고려 태조 때 실시되었다.
- 광덕, 준풍 연호는 광종이 사용하였다.
- 최승로의 시무 28조는 성종이 수용하였다.
- 이곳의 고인돌 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고려 정부는 이곳으로 천도하여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였다.
'이곳'은 강화도로, 정묘호란 때 인조가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고인돌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고려 정부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여 도읍을 옮긴 곳은 강화도이다. 정묘호란 때 인조는 강화도로 몸을 피하였다.
-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곳은 완도이다.
- 원이 탐라총관부를 둔 곳은 제주도이다.
- 영국군이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점령한 곳은 거문도이다.
개항 이후 정세 변화에 대응하여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로 외교, 군사 등 개화와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였다. 또한 그 아래 12사를 두어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설명에 해당하는 기구는 통리기무아문이다.
'개항 이후' 외교·군사 등 '개화와 관련된 정책을 총괄'하고 그 아래 12사를 두어 실무를 맡긴 기구는 고종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이다.
- 교정청은 동학 농민 운동 이후 조선 정부가 자주적 개혁을 위해 설치한 기구이다.
- 삼정이정청은 임술 농민 봉기 이후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으려 설치한 기구이다.
- 군국기무처는 제1차 갑오개혁을 추진한 기구이다.
노비 만적 등 6인이 개경의 북산에서 나무하다가 공노비와 사노비들을 불러 모의하기를, “정중부의 반란과 김보당의 반란 이후로 고관이 천민과 노비에서 많이 나왔다. 장상(將相)의 씨가 따로 있으랴!”라고 하였다.
자료는 최충헌 집권기의 만적의 난(1198)이며, 그 이후의 사실은 정방 설치이다.
'노비 만적'이 '장상(將相)의 씨가 따로 있으랴!'라며 봉기를 모의한 사건 이후,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가 자기 집에 정방을 두어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 동북 9성 축조는 예종 때 윤관의 여진 정벌로 이루어진 일로, 만적의 난보다 앞선다.
- 노비안검법은 고려 광종 때 실시되었다.
- 상수리 제도는 신라에서 시행된 제도이다.
그는 『양반전』을 지어 양반 사회의 허위의식을 고발하였다. 그는 상공업 진흥에도 관심을 기울여 수레와 선박의 이용 등에 대해서도 주목하였다.
밑줄 친 '그'는 박지원으로, 『과농소초』에서 한전제를 주장하였다.
'『양반전』'으로 양반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수레와 선박의 이용'을 강조한 인물은 북학파 실학자 박지원이다.
- 효종의 북벌 운동을 지지한 것은 송시열 등 서인 세력이다.
- 화성 건설을 위해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정약용이다.
- 「동사강목」을 저술한 인물은 안정복이다.
-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진골 귀족 세력 등을 숙청하였다.
-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하고자 하였다.
자료의 왕은 통일 신라 신문왕이며, 이 왕대에 국학을 설립하였다.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진골 귀족을 숙청하고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한 것은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책이다.
- 불교 공인은 법흥왕 때 이루어졌다.
- 독서삼품과는 원성왕 때 시행되었다.
-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벌한 것은 지증왕 때이다.
(가) 왕이 보병과 기병 5만 명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게 하였고, 이에 왜군이 퇴각하였다.
(나) 백제 왕이 가야와 함께 관산성을 공격하였다. 신주군주 김무력이 나아가 교전을 벌였고, 비장인 도도가 백제 왕을 죽였다.
두 사건 사이의 사실은 신라의 금관가야 병합(532)이다.
(가)는 광개토 대왕이 군사 5만으로 신라를 구원한 일(400)이고, (나)는 백제 성왕이 '관산성'을 공격하다 전사한 관산성 전투(554)이다. 금관가야 병합은 법흥왕 때로 이 사이에 해당한다.
- 고구려가 낙랑군을 몰아낸 것은 미천왕 때(313)로 (가) 이전이다.
-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군을 물리친 것은 645년으로 (나) 이후이다.
- 백제가 평양성에서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은 근초고왕 때(371)로 (가) 이전이다.
남만주로 집단 이주하려고 기도하고, 조선에서 상당한 재력이 있는 사람들을 그곳에 이주시켜 토지를 사들이고 촌락을 세워, …(중략)…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고, 무관학교를 설립하여 문무를 겸하는 교육을 실시하면서, 기회를 엿보아 독립 전쟁을 일으켜 구한국의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 「105인 사건 판결문」 -
자료의 단체는 신민회로, 비밀결사 형태로 활동하였다.
'남만주로 집단 이주'하여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 전쟁을 준비하려 한 계획과 '105인 사건 판결문'은 신민회를 가리킨다. 신민회는 105인 사건으로 조직이 드러나 와해되었다.
- 만민공동회를 개최한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조선 교육회 등이 중심이 되어 전개하였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단체는 신간회이다.
영의정 이원익은 공물 제도가 방납인에 의한 폐단이 크며, 경기도가 특히 심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별도의 관청을 만들어 경기 지역 백성들에게 봄과 가을에 토지 1결마다 8두씩 쌀로 거두고, 이것을 방납인에게 주어 수시로 물품을 구입하여 납부하게 하자고 왕에게 건의하였다. 왕은 그 의견을 받아들였다.
밑줄 친 '왕'은 광해군이며, 이 시기에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었다.
'영의정 이원익'의 건의로 '경기 지역'에서 토지 결수에 따라 쌀을 거두어 방납의 폐단을 줄이려 한 것은 광해군 때 경기도에 처음 시행된 대동법이다.
-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은 선조 때 임진왜란 중에 설치되었다.
- 조광조 등 사림을 등용한 왕은 중종이다.
- 초계문신 제도를 시행한 왕은 정조이다.
이 개혁에 따라 의정부를 내각으로, 8아문을 7부로 고쳤다. 또한 지방 8도는 23부로 개편하였다.
'이 개혁'은 제2차 갑오개혁으로, 교원 양성을 위해 한성사범학교 관제를 발표하였다.
'의정부를 내각으로', '8아문을 7부로' 바꾸고 '지방 8도'를 23부로 개편한 것은 제2차 갑오개혁의 내용이며, 교육 입국 조서 반포 이후 한성사범학교가 세워졌다.
- 동문학은 개항 이후 갑오개혁 이전에 정부가 통역관 양성을 위해 세운 학교이다.
- 육영공원은 갑오개혁 이전에 미국인 교사를 초빙해 세운 근대식 관립 학교이다.
- 상공학교와 광무학교는 대한 제국 시기 광무개혁 때 세워진 실업 학교이다.
백제는 5세기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면서 수도가 함락되어 이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 지역'은 백제의 웅진(공주)으로, 이곳에 있는 문화유산은 무령왕릉이다.
5세기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수도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겼다.
- 몽촌토성은 한성 도읍기의 유적으로 서울에 있다.
- 미륵사지 석탑은 익산에 있다.
-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서산에 있다.
이 지역에서 권업회라는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되었고, 권업회는 국외 무장 독립 단체들을 모아 대한 광복군 정부라는 독립군 조직을 만들었다.
'이 지역'은 연해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인촌인 신한촌이 형성되었다.
'권업회'가 조직되고 권업회가 '대한 광복군 정부'를 세운 곳은 연해주이다.
- 동제사는 상하이에서 창립되었다.
- 경학사는 서간도 삼원보에서 조직되었다.
- 대조선 국민 군단은 하와이에서 창설되었다.
그는 문종의 넷째 아들인데,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송나라로 유학을 가서 화엄학과 천태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천태학을 부흥시켜 천태종을 창립하였다.
밑줄 친 '그'는 대각국사 의천으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하였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출가하여 '송나라'에서 공부한 뒤 천태종을 창립한 승려는 의천이며, 그는 교장 간행을 위한 목록을 만들었다.
- 유·불 일치설을 주장한 승려는 혜심이다.
- 백련사에서 결사를 조직한 승려는 요세이다.
- 정혜쌍수의 수행법을 제시한 승려는 지눌이다.
대저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하는 큰 기틀이 될 것이고, 또 아시아의 여러 대국이 서로 보전하는 정략도 될 것이다. …(중략)…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이익도 될 것이고, 여러 나라가 서로 보전하는 계책도 될 것이니 무엇이 괴로워서 하지 않겠는가.
글을 쓴 인물은 유길준으로,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의 일원이었다.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되면 '러시아를 방어'하고 여러 나라가 '서로 보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유길준의 「중립론」 내용이다.
- 영남 만인소 사건은 이만손 등이 주도하였다.
- 제2차 수신사로 「조선책략」을 가져온 인물은 김홍집이다.
-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한 인물은 최익현이다.
- 1. 부호의 의연금 및 일본인이 불법 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무장을 준비한다.
- 6. 일본인 고관 및 한국인 반역자를 수시 수처에서 처단하는 행형부를 둔다.
- 7. 무력이 완비되는 대로 일본인 섬멸전을 단행하여 최후 목적의 달성을 기한다.
강령을 발표한 단체는 대한 광복회로,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하여 공화정체를 지향하였다.
'부호의 의연금'으로 무장을 준비하고, 반역자를 처단하는 '행형부'를 두며, '일본인 섬멸전'을 목표로 한 강령은 대한 광복회의 것이다.
-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은 단체는 의열단이다.
- 일본에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려 한 단체는 독립 의군부이다.
- 김구가 중심이 되어 창설한 단체는 한인 애국단이다.
제헌 국회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명시한 이 헌법을 공포하였다.
'이 헌법'은 1948년 7월 공포된 제헌 헌법이며, 그 이후의 사실은 반민족 행위 처벌법 공포이다.
'제헌 국회'가 '기미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의 독립정신 계승을 명시하여 공포한 헌법은 제헌 헌법이고, 반민족 행위 처벌법은 같은 해 9월 제헌 국회가 제정·공포하였다.
- 미군정청은 1945년 광복 직후 설치되었다.
- 5·10 총선거는 제헌 국회를 구성하기 위해 헌법 공포 이전인 1948년 5월에 실시되었다.
- 카이로 회담은 1943년에 개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