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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52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

제52회

총 5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제52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1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2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들었다.
3거푸집으로 비파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4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 (가) 시대 사람들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빗살무늬 토기이며 식량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썼다고 하고, 배경에 암사동 유적 전시관이 보입니다. 빗살무늬 토기와 서울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므로 (가)는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정착 생활이 이루어졌고, 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을 이용해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는 원시적 수공업이 등장하였습니다.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씨족 단위의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대의 모습입니다. 고인돌거푸집으로 제작한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 철제 농기구를 사용한 농사는 철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문제 2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나라를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은 마가·우가·저가·구가 등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는 점과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다스리는 연맹 체제와 12월의 제천 행사 영고는 모두 부여의 특징입니다.

부여는 만주 쑹화강(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 잡았으므로, 지도에서 가장 북쪽 만주 일대에 표시된 위치가 부여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위치는 다른 나라입니다. 압록강 중류 졸본 일대는 고구려, 함경도 동해안 일대는 옥저, 그 아래 강원도 북부 지역은 동예가 자리한 곳입니다.

문제 3
다음 가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불교가 공인되었다.
2노비안검법이 시행되었다.
3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4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상 인터뷰에서 왕은 즉위 이후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임금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3년에 국호를 '신라'로, 왕호를 '왕'으로 정한 인물은 지증왕입니다.

지증왕은 이 밖에도 순장을 금지하고 우경을 장려하였으며, 512년에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하여 복속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은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불교 공인(이차돈의 순교)은 법흥왕,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선덕 여왕 때의 일이며, 노비안검법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 광종이 시행한 제도입니다.

문제 4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문화유산 카드는 (가)를 보물 제1878호이며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이라고 소개하고, 경주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광개토 대왕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입니다. 그릇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5세기에 고구려가 신라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나머지 유물은 성격이 다릅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고구려의 불상, 철제 판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대표 유물, 산수무늬 벽돌은 백제의 공예품입니다.

문제 5
밑줄 그은 ‘이 왕’으로 옳은 것은? [1점]
1성왕
2고이왕
3무령왕
4근초고왕
정답 및 해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이 무덤은 충청남도 공주에 있고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출토된 묘지석을 통해 주인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이므로 밑줄 그은 '이 왕'은 무령왕입니다.

무령왕은 웅진 천도 이후 흔들리던 백제를 다시 일으킨 왕으로,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벽돌무덤 양식과 함께 출토된 유물들이 이러한 교류를 잘 보여 줍니다.

다른 왕들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고이왕은 관등제와 관복제를 정비하였고,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며,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습니다.

문제 6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설총
2안향
3김부식
4최치원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세 가지 특징 모두 설총을 가리킨다. 원효 대사의 아들이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를 체계화했고, 신문왕에게 향락을 경계하라는 내용의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인물, 의상은 화엄 사상을 정립한 승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승려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문제 7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었다.
2백제가 수도를 사비로 옮겼다.
3대가야가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4고구려가 살수에서 수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정답 및 해설

첫 장면은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과 연개소문 앞에서 "백제가 신라의 여러 성을 빼앗았으니 군대를 파견해 달라"고 청하고, 고구려 측이 "죽령 서북 땅은 본래 우리 것이니 돌려주면 군사를 보내겠다"고 답하는 고구려에 대한 청병 외교(642년)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계백황산벌에서 신라군에 맞서 결사 항전하는 황산벌 전투(660년)입니다.

따라서 (가)에는 642년 이후, 660년 이전에 일어난 일이 들어가야 합니다. 고구려에서 군사 지원을 얻는 데 실패한 김춘추는 이번에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648년)을 성사시켰고, 이 동맹을 발판으로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면서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은 것이 (가) 시기의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백제의 사비 천도는 성왕 때인 538년, 대가야의 가야 연맹 주도는 5세기 후반 이후의 일로 모두 642년보다 앞섭니다. 살수 대첩은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물리친 612년의 사건으로 역시 (가) 이전입니다.

문제 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만적의 난
2홍경래의 난
3망이·망소이의 난
4원종과 애노의 난
정답 및 해설

기획안의 제목이 ‘흔들리는 신라’이고 기획 의도가 신라 하대의 사건을 통해 혼란한 시대 상황을 조명하는 것이므로, (가)에는 신라 하대에 일어난 봉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구성은 제1편 김헌창의 난(822년), 제2편 (가), 제3편 적고적의 난(896년)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822년과 896년 사이의 신라 하대 봉기여야 합니다.

진성 여왕 때인 889년 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과중한 조세 독촉에 반발해 일으킨 봉기가 이 조건에 들어맞습니다. 반면 만적의 난(1198년)과 망이·망소이의 난(1176년)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사건이고, 홍경래의 난(1811년)은 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일어난 봉기여서 신라 하대와는 무관합니다.

문제 9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글과 활쏘기를 가르치는 경당을 두었다.
2정사암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3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45경 15부 62주로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였다.
정답 및 해설

대화 속 단서는 오소도가 당의 빈공과에 수석 합격했다는 것, 축하 잔치가 상경성에서 열린다는 것, 그리고 신라 사람을 제쳤으니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가)가 발해임을 가리킵니다.

발해는 선왕 때 영토를 크게 넓히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여 전성기를 맞았고, 이 무렵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사실입니다. 경당을 두어 글과 활쏘기를 가르친 나라는 고구려, 정사암에서 재상을 뽑고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백제, 청해진을 세워 해상 무역을 장악한 것은 통일 신라의 장보고입니다.

문제 10
밑줄 그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전국을 8도로 나누었다.
2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3화통도감을 설치하였다.
4사심관 제도를 시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지도 위 인물은 "왕으로 즉위해 나라 이름을 고려라 정하였고, 이후 신라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격파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삼국 통일을 이룬 태조 왕건입니다.

태조는 지방 호족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심관 제도입니다. 신라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은 것이 시초로, 중앙의 고위 관리에게 자기 출신 지역을 관리하고 그 지역의 치안과 부호장 이하 향리 임명에 책임을 지게 한 제도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기의 일입니다. 전국을 8도로 나눈 것은 조선 태종 때이고, 천리장성 축조는 고려 덕종~정종 때 거란과 여진에 대비해 이루어졌으며, 화통도감 설치는 최무선의 건의로 고려 우왕 때 화약 무기를 제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 11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녹읍 폐지
2대마도 정벌
3지방에 12목 설치
4북한산 순수비 건립
정답 및 해설

카드 뒷면의 단서는 고려 제6대 왕,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2성 6부의 중앙 통치 조직 정비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인물은 고려 성종입니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았고, 그 연장선에서 지방 통제에도 나서 전국 주요 지역 12곳에 목(牧)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지방에 12목 설치가 들어갑니다.

나머지는 시대가 다릅니다.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 대마도 정벌은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단행한 일이며, 북한산 순수비 건립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세운 것입니다.

문제 12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퀴즈에서 묻는 것은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의 고위 관료들이 모여 국방과 군사 문제를 논의하던 고려의 정치 기구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도병마사입니다.

고려는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이 함께 모여 국가 중대사를 의논하는 회의 기구를 두었는데, 그중 국방과 군사 문제를 다룬 것이 도병마사이고 법과 제도를 논의한 것이 식목도감입니다. 도병마사는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확대되어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 기구가 되었습니다.

보기의 다른 기구는 성격이 다릅니다. 삼사는 고려에서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은 기구였고, 어사대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였으며, 의정부는 조선의 최고 정무 기구입니다.

문제 13
(가)~(다)의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 - (나) - (다)
2(나) - (다) - (가)
3(다) - (가) - (나)
4(다) - (나) - (가)
정답 및 해설

(가)는 배중손이 "항복은 없다, 우리 삼별초는 여기 진도에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개경 환도에 반발해 일어난 삼별초의 항쟁(1270~1273년)입니다.

(나)는 강감찬이 "이곳 귀주에서 거란군을 모두 물리쳐라"라고 지휘하는 장면으로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한 귀주 대첩(1019년)이고, (다)는 윤관이 "우리 별무반은 여진을 정벌할 것"이라며 군대를 이끄는 장면으로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1107년)입니다.

따라서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귀주 대첩(1019년) → 별무반의 여진 정벌(1107년) → 삼별초의 진도 항쟁(1270년), 즉 (나) - (다) - (가) 순서가 됩니다.

문제 14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1고구마, 감자 등이 재배되었다.
2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만상, 내상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4활구라고 불린 은병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청동 거울에는 배가 새겨져 있고, 발표자는 을 비롯한 여러 나라 상인들이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드나들며 무역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시기이므로 (가)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를 주조하였는데, 숙종 때 은 한 근으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만든 고액 화폐인 은병(활구)이 대표적입니다. 이 밖에 건원중보, 해동통보 등도 발행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고구마·감자 등 구황 작물의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의 전국적 확산,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 같은 사상(私商)의 활동은 모두 조선 후기에 나타난 변화입니다.

문제 15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균역법을 시행하였다.
2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3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4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다.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말한 내용은 원에 볼모로 갔다가 고려의 왕이 되었다, 몽골식 풍습을 금지하고 기철을 비롯한 친원 세력을 제거하였다,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노국 대장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네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폈는데, 그 대표적 성과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은 것입니다. 아울러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고 관제를 복구하는 등 원의 잔재를 걷어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균역법 시행은 조선 영조, 독서삼품과 실시는 통일 신라 원성왕, 삼강행실도 편찬은 조선 세종 때의 일입니다.

문제 16
다음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씨름
2택견
3강강술래
4남사당놀이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상세 설명은 "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민속놀이"이며,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를 신청하여 201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진에도 모래판에서 샅바를 맞잡은 두 사람이 겨루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씨름입니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그 모습이 보일 만큼 오래된 놀이이며, 남과 북이 함께 등재를 신청해 공동 등재된 첫 사례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나머지는 종목이 다릅니다. 택견은 발을 이용한 전통 무예,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놀이, 남사당놀이는 유랑 예인 집단이 펼치는 종합 연희로, 모두 샅바를 잡고 겨루는 놀이가 아닙니다.

문제 17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승정원에서 편찬하였다.
2시정기와 사초를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3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4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만들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안내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아래 창의 크기를 서로 다르게 해 건물의 통풍이 잘 되게 하고,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를 넣어 습도를 조절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정교한 보관 시설을 지어 지켜온 대상이 바로 고려 시대에 제작된 팔만대장경판(재조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 버린 뒤,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고려 정부가 16년에 걸쳐 다시 새긴 목판입니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만든 호국 불교의 상징물로,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설명들은 각각 다른 유산의 특징입니다. 승정원에서 편찬한 것은 승정원일기이고, 시정기와 사초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입니다.

문제 1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비변사 혁파
2위화도 회군
3대전회통 편찬
4훈민정음 창제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조선의 건국 과정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계단 모양으로 사건을 배열한 자료입니다. 아래에서부터 (가) → 과전법 실시 → 조선 건국 → 한양 천도 순서로 놓여 있으므로, (가)에는 과전법 실시보다 앞선 사건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반대하다가 1388년 압록강 하류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고, 이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정치·군사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1391년 과전법을 시행해 경제 기반을 확보한 뒤, 1392년 조선을 세우고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제시된 다른 사건들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대전회통 편찬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때의 일이며, 비변사 혁파 역시 흥선 대원군 시기의 개혁으로 모두 조선 건국 이후에 해당합니다.

문제 19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지역을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말한 단서는 온조의 형 비류가 미추홀이라 불린 이 지역에 터를 잡았다는 점,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원산에 이어 개항되었다는 점, 2014년 제17회 아시아 경기 대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지역은 인천입니다.

지도에는 (가) 인천, (나) 군산, (다) 울산, (라) 강릉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이 이야기한 지역은 경기만에 접한 서해안 쪽에 표시된 인천입니다.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되며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가 되었고, 근대에는 강화도와 함께 여러 외세의 침입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문제 20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게시물에는 #국립고궁박물관 #미국에서_귀환 #조선시대_과학기구 #해시계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고, 댓글에는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이며 동지나 하지 같은 절기도 알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앙부일구입니다. 세종 때 장영실 등이 만든 해시계로, 오목한 솥 모양의 반구 안에 시각선과 절기선을 새겨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그림자의 길이로 절기를 함께 읽을 수 있게 만든 기구입니다.

선택지에 함께 제시된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측우기는 강우량을 재는 기구,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는 기구로 모두 그림자를 이용한 시계가 아닙니다.

문제 21
(가)에 들어갈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1설날
2한식
3중양절
4정월 대보름
정답 및 해설

'이달의 세시 풍속' 소개 자료에는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이며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했고,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풍년을 기원하며 성묘를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맞는 세시 풍속은 한식입니다.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에 해당하며,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조상의 묘를 돌보는 개사초와 성묘가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풍속은 시기와 내용이 다릅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부럼 깨기와 쥐불놀이를 하는 날이며,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국화전을 부쳐 먹는 가을 명절입니다.

문제 22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징비록을 저술하였다.
24군 6진을 개척하였다.
3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4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안동에 있는 병산 서원이 (가)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며, 그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는 내용입니다. 두 단서가 함께 가리키는 인물은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전쟁 전반을 총괄했으며, 명의 절강병법을 참고해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으로 편성한 훈련도감을 설치하도록 건의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같은 참화를 겪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에서 징비록을 지어 전란의 원인과 경과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각각 4군 6진을 개척한 최윤덕·김종서,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문제 23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베델
2하멜
3매켄지
4헐버트
정답 및 해설

액자 속 책은 표지에 'JOURNAEL … SPERWER'라고 적힌 서양 서적이고, 설명은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사람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상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의 풍속이 서양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사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멜이 남긴 표류기입니다. 하멜은 1653년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가다 제주도에 표류해 13년 넘게 조선에 억류되었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뒤,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 형식으로 조선에서의 생활과 견문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조선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됩니다.

함께 제시된 인물들은 시기와 활동이 다릅니다.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 헐버트는 육영 공원 교사이자 헤이그 특사 활동을 도운 미국인, 매켄지는 의병의 모습을 취재해 알린 영국 언론인입니다.

문제 24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예송이 발생하였다.
23포 왜란이 일어났다.
3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4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대비의 명으로 인조가 즉위하고 광해군을 폐위해 강화로 내쫓았으며 이이첨 등을 처형했다는 내용으로, 1623년의 인조반정입니다. (나)는 영조가 '두루 원만하고 치우치지 않음이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라는 내용을 담은 탕평비를 성균관 입구에 세우게 한 일로, 1742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인 17세기 중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사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효종 사후와 효종비 사후에 자의 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예송이 현종 때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시기가 벗어납니다. 3포 왜란은 1510년 중종 때,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때의 일로 인조반정보다 앞서며, 정동행성 설치는 원 간섭기인 고려 충렬왕 때의 일입니다.

문제 25
(가)에 들어갈 화폐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폐박물관 소장품 소개 화면에는 이 화폐가 조선 숙종 때 공식 화폐로 주조되어 널리 유통되었고, 당시 사람들이 물품 구입이나 세금 납부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화폐는 상평통보입니다.

상평통보는 인조 때 처음 주조되었다가 중단되었고, 숙종 때인 1678년 허적 등의 건의로 다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키면서 조선의 법정 화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선택지에 함께 나온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주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 해동통보는 고려 숙종 때 만든 화폐이며, 백동화는 개항 이후 전환국에서 발행했다가 화폐 정리 사업으로 정리된 근대 화폐입니다.

문제 26
밑줄 그은 ‘사절단’으로 옳은 것은? [2점]
1보빙사
2연행사
3영선사
4통신사
정답 및 해설

전시된 기록물은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조선이 파견한 공식 외교 사절단에 관한 것으로, 행렬 장면을 그린 그림과 글씨가 함께 전시되어 양국이 우호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절단은 통신사입니다.

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국교가 회복되면서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열두 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습니다. 400~500명 규모의 사절단은 외교 임무뿐 아니라 학문·의학·서화 등에서 일본과 교류하는 문화 통로 역할을 했으며,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다른 사절단은 대상국과 시기가 다릅니다. 연행사는 청에 보낸 사절, 영선사는 청의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러 간 사절, 보빙사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입니다.

문제 27
(가)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장용영을 설치하였다.
2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3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4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답사 계획서의 주제는 (가)의 효심을 만나다이고, 경로는 봉수당 → 융릉 → 용주사입니다. 각 장소에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봉수당", "사도 세자가 묻힌 융릉", "사도 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용주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사도 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겨 융릉을 조성하고 그 곁에 원찰인 용주사를 세웠으며 화성 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연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고, 신해통공을 단행해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으며, 젊은 문신을 규장각에서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습니다.

반면 농사직설은 세종 때 정초·변효문 등이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노농의 경험에서 모아 정리한 농서로, 정조의 업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문제 28
(가)에 들어갈 교육 기관으로 옳은 것은? [1점]
1서당
2태학
3성균관
4주자감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훈장은 "현재의 초등학교와 유사한 조선 시대 (가) 체험"이라고 안내하며, 당시 학생들이 천자문·동몽선습·소학 등을 배웠다고 설명합니다. 벽에는 '天地玄黃 宇宙洪荒'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족자가 걸려 있고, 아이들이 훈장 앞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기초 한자와 초보적인 유학 서적을 가르치던 조선의 초등 교육 기관은 서당입니다. 마을 단위로 세워져 훈장 한 사람이 여러 연령의 아동을 함께 가르쳤고, 조선 후기에는 서민층까지 크게 늘어났습니다.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수도에 세운 교육 기관,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모두 초등 단계의 교육을 담당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29
다음에서 설명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3점]
1경복궁
2경희궁
3덕수궁
4창경궁
정답 및 해설

세 화면의 설명은 각각 "이 궁궐은 조선 시대에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렸습니다", "일제에 의해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되어 한때는 그 원래 모습을 잃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제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궁궐에서 조선 왕실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입니다.

창덕궁 동쪽에 이어져 있어 창덕궁과 묶여 동궐로 불렸고, 일제가 동물원·식물원과 놀이시설을 들여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었던 궁궐은 창경궁입니다. 성종이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었으며, 1980년대에 복원 사업을 거쳐 본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경복궁은 북궐,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고, 덕수궁(경운궁)은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환궁하여 대한 제국을 선포한 곳으로 동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 30
(가)에 들어갈 섬으로 옳은 것은? [1점]
1독도
2완도
3거문도
4흑산도
정답 및 해설

안내판에는 "10월 25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라는 물음과 함께 태극기가 꽂힌 두 개의 바위섬 그림이 있고, 이날은 "(가)가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밝힌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를 기념하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정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1900년 10월 25일 반포된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군수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10월 25일이 '독도의 날'로 정해졌으므로 (가)에 들어갈 섬은 독도입니다.

완도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섬, 거문도는 1885년부터 영국이 불법 점령한 섬, 흑산도는 정약전이 유배 중 자산어보를 저술한 섬으로 칙령 제41호와는 무관합니다.

문제 31
다음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책으로 옳은 것은? [2점]
1소격서를 폐지하였다.
2직전법을 실시하였다.
3척화비를 건립하였다.
4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인물은 유계춘으로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욕과 수탈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라고 외치고, 몽둥이를 든 농민들은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1862년 유계춘을 중심으로 백낙신의 학정에 항거해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이며, 이것이 전국으로 번져 나간 것이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보내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전정·군정·환곡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겠다며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소격서 폐지는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 직전법 실시는 세조, 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직후 흥선 대원군이 한 일입니다.

문제 32
(가)~(다) 학생이 발표한 내용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 - (나) - (다)
2(가) - (다) - (나)
3(나) - (가) - (다)
4(다) - (가) - (나)
정답 및 해설

칠판의 배움 주제는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이고, 세 학생의 발표 내용은 각각 최익현이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일본과의 수교에 반대한 일, 이항로 등이 서양과의 통상을 반대하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한 일,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만인소를 올린 일입니다.

가장 이른 것은 이항로·기정진 등이 서양과의 통상을 배격하며 척화주전론을 편 1860년대의 움직임으로, 병인양요·신미양요를 거치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이어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을 앞두고 최익현이 도끼를 들고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 반대 상소를 올렸고, 1881년에는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따라서 서양과의 통상 반대 → 일본과의 수교 반대 → 조선책략 유포 반발의 차례가 됩니다.

문제 33
밑줄 그은 ‘거사’로 옳은 것은? [1점]
1갑신정변
2을미사변
3임오군란
4아관 파천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인물은 "개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1884년 이곳 우정총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서 거사를 감행하였고, 이후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자리에서 일으켰다가 청군의 출동으로 3일 만에 무너진 사건은 갑신정변입니다. 이들은 14개조 개혁 정강을 내걸어 청에 대한 조공 허례 폐지, 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 지조법 개혁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을미사변은 1895년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사건, 임오군란은 1882년 차별 대우에 반발한 구식 군인들의 봉기, 아관 파천은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일입니다.

문제 34
다음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2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3홍의 장군 곽재우가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4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네 장면은 백산 집결 → 황룡촌 전투 → 전주성 점령 → 우금치 전투의 차례로 이어지며, 백산 집결 그림의 깃발에는 '보국안민', '동도대장'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입니다.

황룡촌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청·일 군대가 들어오자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물러났고,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과 신분제 폐지 등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어 일본의 경복궁 점령에 맞서 다시 봉기하였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화력에 크게 패하며 운동은 좌절되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 홍의 장군 곽재우의 의병 활약은 임진왜란,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된 것은 홍경래의 난입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박은식
2이봉창
3주시경
4최재형
정답 및 해설

뮤지컬 포스터의 제목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가)"이며, 안내 문구에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도운 숨은 공로자, 연해주에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군납 사업 등으로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안중근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1911년 권업회 결성과 권업신문 발행을 이끈 인물은 최재형입니다. 3·1 운동 이후에는 대한 국민 의회 외교부장을 맡았고, 1920년 일본군의 연해주 참변 때 학살당하였습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 이봉창은 1932년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한인 애국단원, 주시경은 국어문법과 말의 소리를 저술한 한글 연구자입니다.

문제 36
(가)에 들어갈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태극 서관을 운영하였다.
2독립문 건립을 주도하였다.
3고종 강제 퇴위를 반대하였다.
4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하였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가)는 "종로에서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 군사 교관 철수를 요구"하였고, 앞선 기사에서는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였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1898년 종로에서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와 군사 교관·재정 고문 파견에 반대하며 이권 수호 운동을 전개한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이후 관민 공동회에서는 헌의 6조를 결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독립 협회는 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고쳐 사용하였습니다.

태극 서관 운영은 신민회,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지원은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활동입니다.

문제 37
밑줄 그은 ‘이 단체’로 옳은 것은? [3점]
1대한 광복회
2조선어 학회
3조선 형평사
4한인 애국단
정답 및 해설

대화 장면에서 이 단체는 1915년 대구에서 박상진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공화정치를 목표로 삼았으며 독립 전쟁 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벌였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1910년대 국내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점도 함께 제시됩니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는 대한 광복회입니다. 대한 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김좌진을 부사령으로 삼아 조직된 비밀 결사로,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세우려 했습니다. 특히 복벽주의가 아닌 공화 정체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걷고, 이에 협조하지 않거나 밀고한 친일 부호를 처단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어 학회는 1930년대 한글 연구 단체, 조선 형평사는 1923년 백정 차별 철폐 운동 단체, 한인 애국단은 1931년 상하이에서 김구가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이므로 결성 시기와 활동 내용이 모두 맞지 않습니다.

문제 38
다음 상황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자료는 선교사 스코필드제암리에 와서, 일본군이 교회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사격한 뒤 불을 질렀다고 전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1919년 3·1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벌어진 만행입니다.

연표는 1875년 운요호 사건, 1897년 대한 제국 수립, 1910년 국권 피탈, 1932년 윤봉길 의거, 1945년 8·15 광복을 기준점으로 네 구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따라서 1919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국권 피탈(1910)과 윤봉길 의거(1932) 사이의 구간에 놓입니다. 3·1 운동은 무단 통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고, 그 결과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로 지배 방식을 바꾸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흐름과 함께 기억해 두면 시기 판단이 쉬워집니다.

문제 39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설문 조사 화면에는 이 인물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항목으로 호는 도산, 대성 학교 설립, 흥사단 조직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안창호는 도산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07년 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 결사 신민회를 조직했고, 1908년에는 민족 교육을 위해 평양에 대성 학교를 세웠습니다. 1913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 운동의 인재를 기르기 위한 단체인 흥사단을 창립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아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에도 힘썼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좌우 합작과 남북 협상에 나선 김규식,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이끈 여운형, 대한 광복군 정부와 한인 사회당에서 활동한 이동휘로, 대성 학교·흥사단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4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동문학
2배재 학당
3신흥 강습소
4한성 사범 학교
정답 및 해설

발표 화면은 안동 임청각을 소개하면서,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고, 그가 이회영 등과 함께 만주 삼원보에 경학사와 (가)를 세워 무장 독립 투쟁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합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이라 하여 철길을 내며 훼손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경학사와 함께 남만주 삼원보에 세워진 독립군 양성 기관은 신흥 강습소입니다. 신흥 강습소는 뒤에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여 수천 명의 독립군 간부를 길러냈고, 그 졸업생들이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동문학은 1883년 정부가 세운 통역관 양성 기관, 배재 학당은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근대식 사립 학교, 한성 사범 학교는 1895년 교육 입국 조서에 따라 세워진 교원 양성 기관으로, 모두 국내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이어서 만주 무장 독립 투쟁과는 무관합니다.

문제 41
(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제목은 ‘사진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 - 1910년대’이고, 이미 제시된 사진은 헌병 경찰칼을 휴대한 교사입니다. 두 사진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의 대표적인 모습이므로, 빈칸에도 같은 시기의 정책을 담은 사진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조건에 맞는 것은 토지 조사 사업 사진입니다. 일제는 1912년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고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조사 사업을 벌여, 신고하지 않은 토지와 문중·마을의 공동 소유지를 총독부 소유로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토지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 등을 통해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넘어갔습니다.

별기군 사진은 1881년 개항기에 만들어진 신식 군대이므로 일제 강점기 이전이고,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에 일본의 식량 부족을 메우려고 실시된 정책이며, 강제 공출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시 수탈 체제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1910년대와는 시기가 어긋납니다.

문제 42
밑줄 그은 ‘이 단체’로 옳은 것은? [1점]
1근우회
2보안회
3의열단
4중광단
정답 및 해설

발표 화면의 검색 결과에는 김원봉, 조선 혁명 선언, 신채호, 김익상·김상옥·박재혁, 종로 경찰서, 폭파·요인 처단 같은 단어가 크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단어들이 함께 가리키는 단체는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은 1919년 만주 지린에서 김원봉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 신채호가 써 준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식민 통치 기관 파괴와 일제 요인 처단이라는 의열 투쟁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박재혁은 부산 경찰서에, 김익상은 조선 총독부에,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나석주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공격했습니다. 근우회는 1927년 결성된 여성 운동 단체, 보안회는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 중광단은 대종교 계열의 북간도 무장 단체로 성격이 다릅니다.

문제 43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통감부가 설치되다.
2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다.
3일제가 치안 유지법을 공포하다.
4신간회 등이 지원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다.
정답 및 해설

화면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웹툰 형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1화는 조선인 학생이 일본인 학생의 희롱에 격분하는 장면, 2화는 민족 차별에 분노한 광주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3화 그림에는 ‘진상 조사단’이라고 적힌 회의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나가는 다음 단계의 내용, 곧 신간회 등이 지원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다가 들어가야 합니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면서 전국적인 항일 운동으로 확대되었으며,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통감부 설치는 1905년 을사늑약의 결과이고, 2·8 독립 선언서 작성은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일이며, 치안 유지법 공포는 1925년으로 모두 이 운동보다 앞선 시기의 사건이므로 마지막 장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44
밑줄 그은 ‘영화’의 제목으로 옳은 것은? [2점]
1미몽
2아리랑
3자유 만세
4시집 가는 날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무성 영화 상영장의 변사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영화 화면의 배역 자막에 나운규(영진 역)가 적혀 있고, 변사는 순사에게 끌려가는 주인공 영진의 모습과 단성사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나운규가 각본·감독·주연을 맡고 주인공 이름이 영진인 이 작품은 아리랑입니다. 1926년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일제의 수탈로 고통받는 농촌 현실과 민족의 울분을 담아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미몽은 1936년 제작된 발성 영화, 자유 만세는 광복 직후인 1946년 작품, 시집 가는 날은 1956년 작품으로 제작 시기와 내용이 모두 다릅니다.

문제 45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2점]
1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지주
2신사 참배를 강요당하는 청년
3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4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교사는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지 못하는 국민학교 학생은 제국 신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학생들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와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모두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의 특징입니다.

일제는 중일 전쟁 이후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궁성 요배, 창씨개명과 함께 신사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신사 참배를 강요당하는 청년입니다.

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지주는 조선 후기,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는 1883년 개항기의 장면입니다. 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년부터 전개된 일이라 이른바 문화 통치 시기에 해당하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6
(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3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필름 형태로 제시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신탁 통치 반대 집회 → (가)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순서로 이어집니다. 신탁 통치 반대 집회는 1945년 말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이 알려진 뒤의 일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므로 그 사이에 들어갈 사진을 골라야 합니다.

두 사건 사이에 놓이는 것은 5·10 총선거 사진입니다.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뒤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넘어갔고, 유엔 소총회의 결정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 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헌법을 제정·공포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4·19 혁명은 1960년, 경부 고속 도로 개통은 1970년, 유신 헌법 공포는 1972년의 일로 모두 정부 수립 이후의 사건이라 이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47
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미국이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2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하였다.
4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이우근의 편지를 새긴 조형물로, 그가 학도의용군으로 포항여중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편지에 동족상잔의 비극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고 설명한다. 학도의용군과 북한군, 포항 전투라는 단서는 밑줄 그은 전쟁이 6·25 전쟁임을 알려 준다.

북한의 남침 직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전투 부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하였고,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것이 전쟁 중에 일어난 사실이다.

미국의 애치슨 선언은 1950년 1월, 즉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표되어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조치였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은 1945년 광복 직후의 일이고,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정미의병 때의 일이므로 이 전쟁과 무관하다.

문제 48
다음 자료로 알 수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3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4전개 과정에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정답 및 해설

자료는 1987년 6월 10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 안내문으로, 주최는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범국민 대회 준비 위원회, 주관은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로 적혀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가 도화선이 된 6월 민주 항쟁이다.

전국으로 번진 시위에 밀려 여당 대표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이 운동이 이끌어낸 직접적 성과이다.

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1960년 4·19 혁명이고,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1964년 6·3 시위이다.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특징이다.

문제 49
다음 신년사를 발표한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소련, 중국과의 국교가 수립되었다.
2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3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4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신년사에는 ‘작년 2월 25일 국민의 정부가 전례 없는 외환 위기 속에서 출발하였다’는 구절과 금 모으기 운동이 언급되어 있다. 1998년 2월 25일 출범한 국민의 정부, 곧 김대중 정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부 시기인 2002년에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최되어 우리 대표팀이 4강에 올랐다. 또한 이 시기에는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도 이루어졌다.

소련·중국과의 국교 수립은 북방 외교를 편 노태우 정부 시기의 일이고,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은 1962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되었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1996년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로, 외환 위기 이전에 해당한다.

문제 5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남북 기본 합의서
27·4 남북 공동 성명
36·15 남북 공동 선언
410·4 남북 정상 선언
정답 및 해설

화면은 ‘기록으로 보는 남북 회담’으로 1972 · 1991 · 2000 · 2007의 연도 탭이 있고, 그중 1972 탭이 선택되어 있다. 개요에는 남북한 당국이 통일 방안 합의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하였고,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상호 방문한 끝에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에 합의하였으며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하였다고 적혀 있다.

1972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고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문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이다. 이 성명의 합의 사항을 실천하기 위한 기구가 바로 남북 조절 위원회였다.

나머지 선택지는 화면의 다른 연도 탭에 해당한다. 남북 기본 합의서는 1991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10·4 남북 정상 선언은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의 결과물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제52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2점]
1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았다.
2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만들었다.
3거푸집으로 비파형 동검을 제작하였다.
4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 (가) 시대 사람들이 처음으로 사용했던 빗살무늬 토기이며 식량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썼다고 하고, 배경에 암사동 유적 전시관이 보입니다. 빗살무늬 토기와 서울 암사동 유적은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므로 (가)는 신석기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정착 생활이 이루어졌고, 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을 이용해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는 원시적 수공업이 등장하였습니다.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씨족 단위의 평등한 공동체 생활을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대의 모습입니다. 고인돌거푸집으로 제작한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 철제 농기구를 사용한 농사는 철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문제 2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나라를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은 마가·우가·저가·구가 등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렸다는 점과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다스리는 연맹 체제와 12월의 제천 행사 영고는 모두 부여의 특징입니다.

부여는 만주 쑹화강(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 지대에 자리 잡았으므로, 지도에서 가장 북쪽 만주 일대에 표시된 위치가 부여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위치는 다른 나라입니다. 압록강 중류 졸본 일대는 고구려, 함경도 동해안 일대는 옥저, 그 아래 강원도 북부 지역은 동예가 자리한 곳입니다.

문제 3
다음 가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불교가 공인되었다.
2노비안검법이 시행되었다.
3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4황룡사 구층 목탑이 건립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상 인터뷰에서 왕은 즉위 이후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임금의 칭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03년에 국호를 '신라'로, 왕호를 '왕'으로 정한 인물은 지증왕입니다.

지증왕은 이 밖에도 순장을 금지하고 우경을 장려하였으며, 512년에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하여 복속시켰습니다. 따라서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은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불교 공인(이차돈의 순교)은 법흥왕,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은 선덕 여왕 때의 일이며, 노비안검법은 신라가 아니라 고려 광종이 시행한 제도입니다.

문제 4
(가)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문화유산 카드는 (가)를 보물 제1878호이며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이라고 소개하고, 경주의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광개토 대왕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호우명 그릇입니다. 그릇 바닥에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5세기에 고구려가 신라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로 활용됩니다.

나머지 유물은 성격이 다릅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고구려의 불상, 철제 판갑옷과 투구는 가야의 대표 유물, 산수무늬 벽돌은 백제의 공예품입니다.

문제 5
밑줄 그은 ‘이 왕’으로 옳은 것은? [1점]
1성왕
2고이왕
3무령왕
4근초고왕
정답 및 해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이 무덤은 충청남도 공주에 있고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출토된 묘지석을 통해 주인공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무령왕릉이므로 밑줄 그은 '이 왕'은 무령왕입니다.

무령왕은 웅진 천도 이후 흔들리던 백제를 다시 일으킨 왕으로,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벽돌무덤 양식과 함께 출토된 유물들이 이러한 교류를 잘 보여 줍니다.

다른 왕들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고이왕은 관등제와 관복제를 정비하였고,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였으며, 성왕은 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습니다.

문제 6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설총
2안향
3김부식
4최치원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세 가지 특징 모두 설총을 가리킨다. 원효 대사의 아들이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는 이두를 체계화했고, 신문왕에게 향락을 경계하라는 내용의 화왕계를 지어 바쳤다.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났던 인물, 의상은 화엄 사상을 정립한 승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승려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문제 7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었다.
2백제가 수도를 사비로 옮겼다.
3대가야가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다.
4고구려가 살수에서 수의 대군을 격파하였다.
정답 및 해설

첫 장면은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과 연개소문 앞에서 "백제가 신라의 여러 성을 빼앗았으니 군대를 파견해 달라"고 청하고, 고구려 측이 "죽령 서북 땅은 본래 우리 것이니 돌려주면 군사를 보내겠다"고 답하는 고구려에 대한 청병 외교(642년)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계백황산벌에서 신라군에 맞서 결사 항전하는 황산벌 전투(660년)입니다.

따라서 (가)에는 642년 이후, 660년 이전에 일어난 일이 들어가야 합니다. 고구려에서 군사 지원을 얻는 데 실패한 김춘추는 이번에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동맹(648년)을 성사시켰고, 이 동맹을 발판으로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면서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신라와 당이 동맹을 맺은 것이 (가) 시기의 사실입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백제의 사비 천도는 성왕 때인 538년, 대가야의 가야 연맹 주도는 5세기 후반 이후의 일로 모두 642년보다 앞섭니다. 살수 대첩은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물리친 612년의 사건으로 역시 (가) 이전입니다.

문제 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만적의 난
2홍경래의 난
3망이·망소이의 난
4원종과 애노의 난
정답 및 해설

기획안의 제목이 ‘흔들리는 신라’이고 기획 의도가 신라 하대의 사건을 통해 혼란한 시대 상황을 조명하는 것이므로, (가)에는 신라 하대에 일어난 봉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구성은 제1편 김헌창의 난(822년), 제2편 (가), 제3편 적고적의 난(896년)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는 822년과 896년 사이의 신라 하대 봉기여야 합니다.

진성 여왕 때인 889년 사벌주(상주)에서 원종과 애노가 과중한 조세 독촉에 반발해 일으킨 봉기가 이 조건에 들어맞습니다. 반면 만적의 난(1198년)과 망이·망소이의 난(1176년)은 고려 무신 집권기의 사건이고, 홍경래의 난(1811년)은 조선 후기 평안도에서 일어난 봉기여서 신라 하대와는 무관합니다.

문제 9
(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글과 활쏘기를 가르치는 경당을 두었다.
2정사암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3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45경 15부 62주로 지방 행정 제도를 정비하였다.
정답 및 해설

대화 속 단서는 오소도가 당의 빈공과에 수석 합격했다는 것, 축하 잔치가 상경성에서 열린다는 것, 그리고 신라 사람을 제쳤으니 해동성국이라 불릴 만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모두 (가)가 발해임을 가리킵니다.

발해는 선왕 때 영토를 크게 넓히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하여 전성기를 맞았고, 이 무렵 중국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나라의 사실입니다. 경당을 두어 글과 활쏘기를 가르친 나라는 고구려, 정사암에서 재상을 뽑고 국가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백제, 청해진을 세워 해상 무역을 장악한 것은 통일 신라의 장보고입니다.

문제 10
밑줄 그은 ‘나’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전국을 8도로 나누었다.
2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3화통도감을 설치하였다.
4사심관 제도를 시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지도 위 인물은 "왕으로 즉위해 나라 이름을 고려라 정하였고, 이후 신라의 항복을 받고 후백제를 격파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삼국 통일을 이룬 태조 왕건입니다.

태조는 지방 호족을 통제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사심관 제도입니다. 신라 경순왕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은 것이 시초로, 중앙의 고위 관리에게 자기 출신 지역을 관리하고 그 지역의 치안과 부호장 이하 향리 임명에 책임을 지게 한 제도입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기의 일입니다. 전국을 8도로 나눈 것은 조선 태종 때이고, 천리장성 축조는 고려 덕종~정종 때 거란과 여진에 대비해 이루어졌으며, 화통도감 설치는 최무선의 건의로 고려 우왕 때 화약 무기를 제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제 11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녹읍 폐지
2대마도 정벌
3지방에 12목 설치
4북한산 순수비 건립
정답 및 해설

카드 뒷면의 단서는 고려 제6대 왕,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2성 6부의 중앙 통치 조직 정비입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인물은 고려 성종입니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았고, 그 연장선에서 지방 통제에도 나서 전국 주요 지역 12곳에 목(牧)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습니다. 따라서 (가)에는 지방에 12목 설치가 들어갑니다.

나머지는 시대가 다릅니다.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 대마도 정벌은 조선 세종 때 이종무가 단행한 일이며, 북한산 순수비 건립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세운 것입니다.

문제 12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퀴즈에서 묻는 것은 중서문하성과 중추원의 고위 관료들이 모여 국방과 군사 문제를 논의하던 고려의 정치 기구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도병마사입니다.

고려는 중서문하성의 재신과 중추원의 추밀이 함께 모여 국가 중대사를 의논하는 회의 기구를 두었는데, 그중 국방과 군사 문제를 다룬 것이 도병마사이고 법과 제도를 논의한 것이 식목도감입니다. 도병마사는 고려 후기에 도평의사사(도당)로 확대되어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 기구가 되었습니다.

보기의 다른 기구는 성격이 다릅니다. 삼사는 고려에서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은 기구였고, 어사대는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기구였으며, 의정부는 조선의 최고 정무 기구입니다.

문제 13
(가)~(다)의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 - (나) - (다)
2(나) - (다) - (가)
3(다) - (가) - (나)
4(다) - (나) - (가)
정답 및 해설

(가)는 배중손이 "항복은 없다, 우리 삼별초는 여기 진도에서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개경 환도에 반발해 일어난 삼별초의 항쟁(1270~1273년)입니다.

(나)는 강감찬이 "이곳 귀주에서 거란군을 모두 물리쳐라"라고 지휘하는 장면으로 거란의 3차 침입을 격퇴한 귀주 대첩(1019년)이고, (다)는 윤관이 "우리 별무반은 여진을 정벌할 것"이라며 군대를 이끄는 장면으로 여진 정벌과 동북 9성 축조(1107년)입니다.

따라서 연대순으로 배열하면 귀주 대첩(1019년) → 별무반의 여진 정벌(1107년) → 삼별초의 진도 항쟁(1270년), 즉 (나) - (다) - (가) 순서가 됩니다.

문제 14
(가) 국가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1고구마, 감자 등이 재배되었다.
2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만상, 내상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4활구라고 불린 은병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청동 거울에는 배가 새겨져 있고, 발표자는 을 비롯한 여러 나라 상인들이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드나들며 무역을 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한 시기이므로 (가)는 고려입니다.

고려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화폐를 주조하였는데, 숙종 때 은 한 근으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만든 고액 화폐인 은병(활구)이 대표적입니다. 이 밖에 건원중보, 해동통보 등도 발행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고구마·감자 등 구황 작물의 재배, 모내기법(이앙법)의 전국적 확산, 의주의 만상과 동래의 내상 같은 사상(私商)의 활동은 모두 조선 후기에 나타난 변화입니다.

문제 15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균역법을 시행하였다.
2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3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4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다.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말한 내용은 원에 볼모로 갔다가 고려의 왕이 되었다, 몽골식 풍습을 금지하고 기철을 비롯한 친원 세력을 제거하였다,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노국 대장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네 가지가 모두 가리키는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폈는데, 그 대표적 성과가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은 것입니다. 아울러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고 관제를 복구하는 등 원의 잔재를 걷어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균역법 시행은 조선 영조, 독서삼품과 실시는 통일 신라 원성왕, 삼강행실도 편찬은 조선 세종 때의 일입니다.

문제 16
다음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씨름
2택견
3강강술래
4남사당놀이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상세 설명은 "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상대를 바닥에 넘어뜨리는 민속놀이"이며,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를 신청하여 201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진에도 모래판에서 샅바를 맞잡은 두 사람이 겨루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씨름입니다. 씨름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그 모습이 보일 만큼 오래된 놀이이며, 남과 북이 함께 등재를 신청해 공동 등재된 첫 사례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나머지는 종목이 다릅니다. 택견은 발을 이용한 전통 무예,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도는 놀이, 남사당놀이는 유랑 예인 집단이 펼치는 종합 연희로, 모두 샅바를 잡고 겨루는 놀이가 아닙니다.

문제 17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승정원에서 편찬하였다.
2시정기와 사초를 바탕으로 제작하였다.
3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4부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고자 만들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안내는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대한 설명입니다. 위아래 창의 크기를 서로 다르게 해 건물의 통풍이 잘 되게 하고,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를 넣어 습도를 조절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정교한 보관 시설을 지어 지켜온 대상이 바로 고려 시대에 제작된 팔만대장경판(재조대장경)입니다.

팔만대장경은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 버린 뒤,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고려 정부가 16년에 걸쳐 다시 새긴 목판입니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겠다는 염원을 담아 만든 호국 불교의 상징물로,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설명들은 각각 다른 유산의 특징입니다. 승정원에서 편찬한 것은 승정원일기이고, 시정기와 사초를 바탕으로 제작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입니다.

문제 1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비변사 혁파
2위화도 회군
3대전회통 편찬
4훈민정음 창제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조선의 건국 과정을 소개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계단 모양으로 사건을 배열한 자료입니다. 아래에서부터 (가) → 과전법 실시 → 조선 건국 → 한양 천도 순서로 놓여 있으므로, (가)에는 과전법 실시보다 앞선 사건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에 반대하다가 1388년 압록강 하류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고, 이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을 제거하고 정치·군사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1391년 과전법을 시행해 경제 기반을 확보한 뒤, 1392년 조선을 세우고 1394년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습니다.

제시된 다른 사건들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대전회통 편찬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 때의 일이며, 비변사 혁파 역시 흥선 대원군 시기의 개혁으로 모두 조선 건국 이후에 해당합니다.

문제 19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지역을 지도에서 옳게 찾은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말한 단서는 온조의 형 비류가 미추홀이라 불린 이 지역에 터를 잡았다는 점,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원산에 이어 개항되었다는 점, 2014년 제17회 아시아 경기 대회가 개최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지역은 인천입니다.

지도에는 (가) 인천, (나) 군산, (다) 울산, (라) 강릉이 표시되어 있으므로, 학생들이 이야기한 지역은 경기만에 접한 서해안 쪽에 표시된 인천입니다.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외국인 거류지가 형성되며 서구 문물이 들어오는 창구가 되었고, 근대에는 강화도와 함께 여러 외세의 침입을 겪은 곳이기도 합니다.

문제 20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게시물에는 #국립고궁박물관 #미국에서_귀환 #조선시대_과학기구 #해시계라는 해시태그가 달려 있고, 댓글에는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이며 동지나 하지 같은 절기도 알 수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앙부일구입니다. 세종 때 장영실 등이 만든 해시계로, 오목한 솥 모양의 반구 안에 시각선과 절기선을 새겨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그림자의 길이로 절기를 함께 읽을 수 있게 만든 기구입니다.

선택지에 함께 제시된 자격루는 물의 흐름을 이용해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 측우기는 강우량을 재는 기구,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는 기구로 모두 그림자를 이용한 시계가 아닙니다.

문제 21
(가)에 들어갈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1설날
2한식
3중양절
4정월 대보름
정답 및 해설

'이달의 세시 풍속' 소개 자료에는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이며 찬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그 이름이 유래했고,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풍년을 기원하며 성묘를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맞는 세시 풍속은 한식입니다. 양력으로는 4월 5일 무렵에 해당하며, 이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고 조상의 묘를 돌보는 개사초와 성묘가 이루어졌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풍속은 시기와 내용이 다릅니다. 설날은 음력 1월 1일, 정월 대보름은 음력 1월 15일로 부럼 깨기와 쥐불놀이를 하는 날이며, 중양절은 음력 9월 9일로 국화전을 부쳐 먹는 가을 명절입니다.

문제 22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징비록을 저술하였다.
24군 6진을 개척하였다.
3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
4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안동에 있는 병산 서원이 (가)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이며, 그가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훈련도감 설치를 건의했다는 내용입니다. 두 단서가 함께 가리키는 인물은 류성룡입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전쟁 전반을 총괄했으며, 명의 절강병법을 참고해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으로 편성한 훈련도감을 설치하도록 건의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같은 참화를 겪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에서 징비록을 지어 전란의 원인과 경과를 기록했습니다.

다른 설명들은 각각 4군 6진을 개척한 최윤덕·김종서,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문제 23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베델
2하멜
3매켄지
4헐버트
정답 및 해설

액자 속 책은 표지에 'JOURNAEL … SPERWER'라고 적힌 서양 서적이고, 설명은 제주도에 표류한 네덜란드 사람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상을 기록한 것으로 조선의 풍속이 서양 사회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사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하멜이 남긴 표류기입니다. 하멜은 1653년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가다 제주도에 표류해 13년 넘게 조선에 억류되었다가 일본으로 탈출한 뒤,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한 보고서 형식으로 조선에서의 생활과 견문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조선을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문헌으로 평가됩니다.

함께 제시된 인물들은 시기와 활동이 다릅니다. 베델은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영국인, 헐버트는 육영 공원 교사이자 헤이그 특사 활동을 도운 미국인, 매켄지는 의병의 모습을 취재해 알린 영국 언론인입니다.

문제 24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예송이 발생하였다.
23포 왜란이 일어났다.
3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4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가)는 대비의 명으로 인조가 즉위하고 광해군을 폐위해 강화로 내쫓았으며 이이첨 등을 처형했다는 내용으로, 1623년의 인조반정입니다. (나)는 영조가 '두루 원만하고 치우치지 않음이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라는 내용을 담은 탕평비를 성균관 입구에 세우게 한 일로, 1742년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두 사건 사이인 17세기 중후반에서 18세기 전반의 사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기에는 효종 사후와 효종비 사후에 자의 대비의 상복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한 예송이 현종 때 두 차례 일어났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시기가 벗어납니다. 3포 왜란은 1510년 중종 때,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때의 일로 인조반정보다 앞서며, 정동행성 설치는 원 간섭기인 고려 충렬왕 때의 일입니다.

문제 25
(가)에 들어갈 화폐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폐박물관 소장품 소개 화면에는 이 화폐가 조선 숙종 때 공식 화폐로 주조되어 널리 유통되었고, 당시 사람들이 물품 구입이나 세금 납부에 사용하기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화폐는 상평통보입니다.

상평통보는 인조 때 처음 주조되었다가 중단되었고, 숙종 때인 1678년 허적 등의 건의로 다시 만들어 전국에 유통시키면서 조선의 법정 화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선택지에 함께 나온 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주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 해동통보는 고려 숙종 때 만든 화폐이며, 백동화는 개항 이후 전환국에서 발행했다가 화폐 정리 사업으로 정리된 근대 화폐입니다.

문제 26
밑줄 그은 ‘사절단’으로 옳은 것은? [2점]
1보빙사
2연행사
3영선사
4통신사
정답 및 해설

전시된 기록물은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조선이 파견한 공식 외교 사절단에 관한 것으로, 행렬 장면을 그린 그림과 글씨가 함께 전시되어 양국이 우호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사절단은 통신사입니다.

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국교가 회복되면서 17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 열두 차례에 걸쳐 파견되었습니다. 400~500명 규모의 사절단은 외교 임무뿐 아니라 학문·의학·서화 등에서 일본과 교류하는 문화 통로 역할을 했으며,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다른 사절단은 대상국과 시기가 다릅니다. 연행사는 청에 보낸 사절, 영선사는 청의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우러 간 사절, 보빙사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후 미국에 파견한 사절단입니다.

문제 27
(가)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장용영을 설치하였다.
2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
3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4초계문신제를 실시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답사 계획서의 주제는 (가)의 효심을 만나다이고, 경로는 봉수당 → 융릉 → 용주사입니다. 각 장소에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봉수당", "사도 세자가 묻힌 융릉", "사도 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용주사"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사도 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겨 융릉을 조성하고 그 곁에 원찰인 용주사를 세웠으며 화성 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의 회갑 잔치를 연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국왕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고, 신해통공을 단행해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으며, 젊은 문신을 규장각에서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습니다.

반면 농사직설은 세종 때 정초·변효문 등이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노농의 경험에서 모아 정리한 농서로, 정조의 업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문제 28
(가)에 들어갈 교육 기관으로 옳은 것은? [1점]
1서당
2태학
3성균관
4주자감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훈장은 "현재의 초등학교와 유사한 조선 시대 (가) 체험"이라고 안내하며, 당시 학생들이 천자문·동몽선습·소학 등을 배웠다고 설명합니다. 벽에는 '天地玄黃 宇宙洪荒'으로 시작하는 천자문 족자가 걸려 있고, 아이들이 훈장 앞에 둘러앉아 있습니다.

기초 한자와 초보적인 유학 서적을 가르치던 조선의 초등 교육 기관은 서당입니다. 마을 단위로 세워져 훈장 한 사람이 여러 연령의 아동을 함께 가르쳤고, 조선 후기에는 서민층까지 크게 늘어났습니다.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수도에 세운 교육 기관,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 기관, 성균관은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으로, 모두 초등 단계의 교육을 담당하지 않았습니다.

문제 29
다음에서 설명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3점]
1경복궁
2경희궁
3덕수궁
4창경궁
정답 및 해설

세 화면의 설명은 각각 "이 궁궐은 조선 시대에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렸습니다", "일제에 의해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되어 한때는 그 원래 모습을 잃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제 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궁궐에서 조선 왕실의 숨결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입니다.

창덕궁 동쪽에 이어져 있어 창덕궁과 묶여 동궐로 불렸고, 일제가 동물원·식물원과 놀이시설을 들여 '창경원'으로 격을 낮추었던 궁궐은 창경궁입니다. 성종이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에 지었으며, 1980년대에 복원 사업을 거쳐 본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경복궁은 북궐, 경희궁은 서궐로 불렸고, 덕수궁(경운궁)은 아관 파천 이후 고종이 환궁하여 대한 제국을 선포한 곳으로 동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문제 30
(가)에 들어갈 섬으로 옳은 것은? [1점]
1독도
2완도
3거문도
4흑산도
정답 및 해설

안내판에는 "10월 25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계시나요?"라는 물음과 함께 태극기가 꽂힌 두 개의 바위섬 그림이 있고, 이날은 "(가)가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밝힌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를 기념하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정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1900년 10월 25일 반포된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군수가 울릉전도와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를 기념하여 10월 25일이 '독도의 날'로 정해졌으므로 (가)에 들어갈 섬은 독도입니다.

완도는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섬, 거문도는 1885년부터 영국이 불법 점령한 섬, 흑산도는 정약전이 유배 중 자산어보를 저술한 섬으로 칙령 제41호와는 무관합니다.

문제 31
다음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책으로 옳은 것은? [2점]
1소격서를 폐지하였다.
2직전법을 실시하였다.
3척화비를 건립하였다.
4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인물은 유계춘으로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탐욕과 수탈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소!"라고 외치고, 몽둥이를 든 농민들은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1862년 유계춘을 중심으로 백낙신의 학정에 항거해 일어난 진주 농민 봉기이며, 이것이 전국으로 번져 나간 것이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정부는 박규수를 안핵사로 보내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전정·군정·환곡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겠다며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다만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습니다.

소격서 폐지는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 직전법 실시는 세조, 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직후 흥선 대원군이 한 일입니다.

문제 32
(가)~(다) 학생이 발표한 내용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 - (나) - (다)
2(가) - (다) - (나)
3(나) - (가) - (다)
4(다) - (가) - (나)
정답 및 해설

칠판의 배움 주제는 위정척사 운동의 전개이고, 세 학생의 발표 내용은 각각 최익현이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며 일본과의 수교에 반대한 일, 이항로 등이 서양과의 통상을 반대하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지지한 일, 이만손을 중심으로 한 영남 유생들이 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해 만인소를 올린 일입니다.

가장 이른 것은 이항로·기정진 등이 서양과의 통상을 배격하며 척화주전론을 편 1860년대의 움직임으로, 병인양요·신미양요를 거치며 흥선 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이어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을 앞두고 최익현이 도끼를 들고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 반대 상소를 올렸고, 1881년에는 김홍집이 들여온 조선책략의 유포에 반발하여 이만손 등이 영남 만인소를 올렸습니다.

따라서 서양과의 통상 반대 → 일본과의 수교 반대 → 조선책략 유포 반발의 차례가 됩니다.

문제 33
밑줄 그은 ‘거사’로 옳은 것은? [1점]
1갑신정변
2을미사변
3임오군란
4아관 파천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인물은 "개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1884년 이곳 우정총국의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서 거사를 감행하였고, 이후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자리에서 일으켰다가 청군의 출동으로 3일 만에 무너진 사건은 갑신정변입니다. 이들은 14개조 개혁 정강을 내걸어 청에 대한 조공 허례 폐지, 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 지조법 개혁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을미사변은 1895년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사건, 임오군란은 1882년 차별 대우에 반발한 구식 군인들의 봉기, 아관 파천은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일입니다.

문제 34
다음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2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3홍의 장군 곽재우가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다.
4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어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네 장면은 백산 집결 → 황룡촌 전투 → 전주성 점령 → 우금치 전투의 차례로 이어지며, 백산 집결 그림의 깃발에는 '보국안민', '동도대장'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입니다.

황룡촌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은 청·일 군대가 들어오자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물러났고,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과 신분제 폐지 등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어 일본의 경복궁 점령에 맞서 다시 봉기하였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화력에 크게 패하며 운동은 좌절되었습니다.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 홍의 장군 곽재우의 의병 활약은 임진왜란,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된 것은 홍경래의 난입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박은식
2이봉창
3주시경
4최재형
정답 및 해설

뮤지컬 포스터의 제목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가)"이며, 안내 문구에는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도운 숨은 공로자, 연해주에서 권업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연해주에서 군납 사업 등으로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 안중근의 의거를 뒷받침하고, 1911년 권업회 결성과 권업신문 발행을 이끈 인물은 최재형입니다. 3·1 운동 이후에는 대한 국민 의회 외교부장을 맡았고, 1920년 일본군의 연해주 참변 때 학살당하였습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저술한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 제2대 대통령, 이봉창은 1932년 도쿄에서 일왕의 행렬에 폭탄을 던진 한인 애국단원, 주시경은 국어문법과 말의 소리를 저술한 한글 연구자입니다.

문제 36
(가)에 들어갈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태극 서관을 운영하였다.
2독립문 건립을 주도하였다.
3고종 강제 퇴위를 반대하였다.
4국채 보상 운동을 지원하였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가)는 "종로에서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 군사 교관 철수를 요구"하였고, 앞선 기사에서는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였다고 언급되고 있습니다.

1898년 종로에서 만민 공동회를 열어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와 군사 교관·재정 고문 파견에 반대하며 이권 수호 운동을 전개한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이후 관민 공동회에서는 헌의 6조를 결의하기도 하였습니다.

독립 협회는 청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리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고,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고쳐 사용하였습니다.

태극 서관 운영은 신민회,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국채 보상 운동 지원은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활동입니다.

문제 37
밑줄 그은 ‘이 단체’로 옳은 것은? [3점]
1대한 광복회
2조선어 학회
3조선 형평사
4한인 애국단
정답 및 해설

대화 장면에서 이 단체는 1915년 대구에서 박상진을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공화정치를 목표로 삼았으며 독립 전쟁 자금 모금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벌였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1910년대 국내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점도 함께 제시됩니다.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단체는 대한 광복회입니다. 대한 광복회는 박상진을 총사령으로, 김좌진을 부사령으로 삼아 조직된 비밀 결사로, 군대식 조직을 갖추고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세우려 했습니다. 특히 복벽주의가 아닌 공화 정체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내걸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단서입니다.

군자금 마련을 위해 부호들에게 의연금을 걷고, 이에 협조하지 않거나 밀고한 친일 부호를 처단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어 학회는 1930년대 한글 연구 단체, 조선 형평사는 1923년 백정 차별 철폐 운동 단체, 한인 애국단은 1931년 상하이에서 김구가 조직한 의열 투쟁 단체이므로 결성 시기와 활동 내용이 모두 맞지 않습니다.

문제 38
다음 상황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2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자료는 선교사 스코필드제암리에 와서, 일본군이 교회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사격한 뒤 불을 질렀다고 전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1919년 3·1 운동을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벌어진 만행입니다.

연표는 1875년 운요호 사건, 1897년 대한 제국 수립, 1910년 국권 피탈, 1932년 윤봉길 의거, 1945년 8·15 광복을 기준점으로 네 구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따라서 1919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국권 피탈(1910)과 윤봉길 의거(1932) 사이의 구간에 놓입니다. 3·1 운동은 무단 통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고, 그 결과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로 지배 방식을 바꾸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흐름과 함께 기억해 두면 시기 판단이 쉬워집니다.

문제 39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설문 조사 화면에는 이 인물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항목으로 호는 도산, 대성 학교 설립, 흥사단 조직 세 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안창호는 도산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907년 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 결사 신민회를 조직했고, 1908년에는 민족 교육을 위해 평양에 대성 학교를 세웠습니다. 1913년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 운동의 인재를 기르기 위한 단체인 흥사단을 창립했습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를 맡아 연통제와 교통국 조직에도 힘썼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좌우 합작과 남북 협상에 나선 김규식,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이끈 여운형, 대한 광복군 정부와 한인 사회당에서 활동한 이동휘로, 대성 학교·흥사단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4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동문학
2배재 학당
3신흥 강습소
4한성 사범 학교
정답 및 해설

발표 화면은 안동 임청각을 소개하면서,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고, 그가 이회영 등과 함께 만주 삼원보에 경학사와 (가)를 세워 무장 독립 투쟁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합니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집이라 하여 철길을 내며 훼손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경학사와 함께 남만주 삼원보에 세워진 독립군 양성 기관은 신흥 강습소입니다. 신흥 강습소는 뒤에 신흥 무관 학교로 발전하여 수천 명의 독립군 간부를 길러냈고, 그 졸업생들이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동문학은 1883년 정부가 세운 통역관 양성 기관, 배재 학당은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가 세운 근대식 사립 학교, 한성 사범 학교는 1895년 교육 입국 조서에 따라 세워진 교원 양성 기관으로, 모두 국내에 설립된 근대 교육 기관이어서 만주 무장 독립 투쟁과는 무관합니다.

문제 41
(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제목은 ‘사진으로 보는 일제 강점기 - 1910년대’이고, 이미 제시된 사진은 헌병 경찰칼을 휴대한 교사입니다. 두 사진 모두 1910년대 무단 통치의 대표적인 모습이므로, 빈칸에도 같은 시기의 정책을 담은 사진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 조건에 맞는 것은 토지 조사 사업 사진입니다. 일제는 1912년 토지 조사령을 공포하고 기한부 신고제로 토지 조사 사업을 벌여, 신고하지 않은 토지와 문중·마을의 공동 소유지를 총독부 소유로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확보한 토지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 등을 통해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넘어갔습니다.

별기군 사진은 1881년 개항기에 만들어진 신식 군대이므로 일제 강점기 이전이고,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에 일본의 식량 부족을 메우려고 실시된 정책이며, 강제 공출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전시 수탈 체제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1910년대와는 시기가 어긋납니다.

문제 42
밑줄 그은 ‘이 단체’로 옳은 것은? [1점]
1근우회
2보안회
3의열단
4중광단
정답 및 해설

발표 화면의 검색 결과에는 김원봉, 조선 혁명 선언, 신채호, 김익상·김상옥·박재혁, 종로 경찰서, 폭파·요인 처단 같은 단어가 크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단어들이 함께 가리키는 단체는 의열단입니다.

의열단은 1919년 만주 지린에서 김원봉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로, 신채호가 써 준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아 식민 통치 기관 파괴와 일제 요인 처단이라는 의열 투쟁을 벌였습니다.

실제로 박재혁은 부산 경찰서에, 김익상은 조선 총독부에, 김상옥은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나석주는 동양 척식 주식회사를 공격했습니다. 근우회는 1927년 결성된 여성 운동 단체, 보안회는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 중광단은 대종교 계열의 북간도 무장 단체로 성격이 다릅니다.

문제 43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통감부가 설치되다.
2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다.
3일제가 치안 유지법을 공포하다.
4신간회 등이 지원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다.
정답 및 해설

화면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웹툰 형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1화는 조선인 학생이 일본인 학생의 희롱에 격분하는 장면, 2화는 민족 차별에 분노한 광주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장면입니다. 3화 그림에는 ‘진상 조사단’이라고 적힌 회의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시위가 전국으로 번져 나가는 다음 단계의 내용, 곧 신간회 등이 지원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다가 들어가야 합니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면서 전국적인 항일 운동으로 확대되었으며, 3·1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으로 평가됩니다.

통감부 설치는 1905년 을사늑약의 결과이고, 2·8 독립 선언서 작성은 1919년 도쿄 유학생들의 일이며, 치안 유지법 공포는 1925년으로 모두 이 운동보다 앞선 시기의 사건이므로 마지막 장면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44
밑줄 그은 ‘영화’의 제목으로 옳은 것은? [2점]
1미몽
2아리랑
3자유 만세
4시집 가는 날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무성 영화 상영장의 변사가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입니다. 영화 화면의 배역 자막에 나운규(영진 역)가 적혀 있고, 변사는 순사에게 끌려가는 주인공 영진의 모습과 단성사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나운규가 각본·감독·주연을 맡고 주인공 이름이 영진인 이 작품은 아리랑입니다. 1926년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영화는 일제의 수탈로 고통받는 농촌 현실과 민족의 울분을 담아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미몽은 1936년 제작된 발성 영화, 자유 만세는 광복 직후인 1946년 작품, 시집 가는 날은 1956년 작품으로 제작 시기와 내용이 모두 다릅니다.

문제 45
다음 상황이 나타난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2점]
1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지주
2신사 참배를 강요당하는 청년
3암태도 소작 쟁의에 참여하는 농민
4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교사는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지 못하는 국민학교 학생은 제국 신민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학생들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와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모두 1930년대 후반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의 특징입니다.

일제는 중일 전쟁 이후 내선일체와 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궁성 요배, 창씨개명과 함께 신사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은 신사 참배를 강요당하는 청년입니다.

대동법 시행에 반대하는 지주는 조선 후기, 박문국에서 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는 1883년 개항기의 장면입니다. 암태도 소작 쟁의는 1923년부터 전개된 일이라 이른바 문화 통치 시기에 해당하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6
(가)에 들어갈 사진으로 옳은 것은? [3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필름 형태로 제시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신탁 통치 반대 집회 → (가)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순서로 이어집니다. 신탁 통치 반대 집회는 1945년 말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이 알려진 뒤의 일이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므로 그 사이에 들어갈 사진을 골라야 합니다.

두 사건 사이에 놓이는 것은 5·10 총선거 사진입니다.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된 뒤 한국 문제가 유엔으로 넘어갔고, 유엔 소총회의 결정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총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이 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가 헌법을 제정·공포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4·19 혁명은 1960년, 경부 고속 도로 개통은 1970년, 유신 헌법 공포는 1972년의 일로 모두 정부 수립 이후의 사건이라 이 자리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47
밑줄 그은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미국이 애치슨 선언을 발표하였다.
2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되었다.
3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하였다.
4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이우근의 편지를 새긴 조형물로, 그가 학도의용군으로 포항여중 전투에서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편지에 동족상잔의 비극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겼다고 설명한다. 학도의용군과 북한군, 포항 전투라는 단서는 밑줄 그은 전쟁이 6·25 전쟁임을 알려 준다.

북한의 남침 직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전투 부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참전하였고,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전세를 뒤집었다. 이것이 전쟁 중에 일어난 사실이다.

미국의 애치슨 선언은 1950년 1월, 즉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발표되어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조치였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결성은 1945년 광복 직후의 일이고,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정미의병 때의 일이므로 이 전쟁과 무관하다.

문제 48
다음 자료로 알 수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였다.
3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4전개 과정에서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정답 및 해설

자료는 1987년 6월 10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열린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 대회’ 안내문으로, 주최는 박종철 고문 살인 은폐 조작 규탄 범국민 대회 준비 위원회, 주관은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로 적혀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가 도화선이 된 6월 민주 항쟁이다.

전국으로 번진 시위에 밀려 여당 대표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이 운동이 이끌어낸 직접적 성과이다.

대통령이 하야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1960년 4·19 혁명이고, 굴욕적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것은 1964년 6·3 시위이다. 시민군이 자발적으로 조직된 것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특징이다.

문제 49
다음 신년사를 발표한 정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소련, 중국과의 국교가 수립되었다.
2한일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3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4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신년사에는 ‘작년 2월 25일 국민의 정부가 전례 없는 외환 위기 속에서 출발하였다’는 구절과 금 모으기 운동이 언급되어 있다. 1998년 2월 25일 출범한 국민의 정부, 곧 김대중 정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부 시기인 2002년에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최되어 우리 대표팀이 4강에 올랐다. 또한 이 시기에는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도 이루어졌다.

소련·중국과의 국교 수립은 북방 외교를 편 노태우 정부 시기의 일이고,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은 1962년 박정희 정부 때 시작되었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1996년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로, 외환 위기 이전에 해당한다.

문제 5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2점]
1남북 기본 합의서
27·4 남북 공동 성명
36·15 남북 공동 선언
410·4 남북 정상 선언
정답 및 해설

화면은 ‘기록으로 보는 남북 회담’으로 1972 · 1991 · 2000 · 2007의 연도 탭이 있고, 그중 1972 탭이 선택되어 있다. 개요에는 남북한 당국이 통일 방안 합의를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하였고, 당국자들이 비밀리에 상호 방문한 끝에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에 합의하였으며 남북 조절 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하였다고 적혀 있다.

1972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고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문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이다. 이 성명의 합의 사항을 실천하기 위한 기구가 바로 남북 조절 위원회였다.

나머지 선택지는 화면의 다른 연도 탭에 해당한다. 남북 기본 합의서는 1991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10·4 남북 정상 선언은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