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4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64회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물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계급이 분화되면서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탁자식·바위그늘식 등)을 만들었다. 우경 보급과 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 이후의 모습이며, 동굴이나 막집 생활은 구석기 시대의 특징이다.

제시된 마인드맵의 특징은 모두 동예에 해당한다. 동예는 지배자를 읍군, 삼로라고 불렀으며,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고, 책화와 족외혼의 풍습이 있었으며, 특산물로 단궁, 반어피, 과하마가 있었다.

근초고왕은 4세기 중반 마한 세력을 복속시킨 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는 마한 복속(1부)과 동진·왜와의 교류(3부) 사이 시기에 해당하는 대외 활동이므로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하다. 사비 천도는 성왕, 22담로 설치는 무령왕, 독서삼품과는 통일신라 원성왕 때의 일이다.

왼쪽 그림은 살수 대첩(612)으로 고구려가 수의 군대를 크게 물리친 사건이고, 오른쪽 그림은 안시성 싸움(645)으로 당 태종의 군대를 물리친 사건이다. 따라서 (가) 시기는 살수 대첩 이후~안시성 싸움 이전인데, 이 시기에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642) 정권을 장악하고 대당 강경책을 펼쳤다. 김흠돌의 반란(681)과 검모잠의 고구려 부흥 운동(670년대)은 고구려 멸망 이후의 일이며, 장문휴의 산둥 반도 공격(732)은 발해 때의 사건이다.





골품제는 신라의 신분 제도로, 관직 진출의 상한선을 정했을 뿐만 아니라 가옥의 규모, 복색, 수레 등 일상생활 전반까지 규제하였다. 이는 개인의 능력보다 혈통에 따라 신분과 특권이 세습되는 폐쇄적 신분제였다는 점에서 퀴즈의 설명과 일치한다.





제시된 카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에 대한 설명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벽돌 모양으로 돌을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며, 기단 위 네 모퉁이에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놓여 있는 것이 특징으로, 이는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특징에 해당하는 사진은 1번이다.

제시문은 진성왕 3년(889) 원종과 애노의 난에 대한 『삼국사기』기록이다. 이는 신라 하대 혜공왕 피살(780) 이후, 고려 건국(918) 이전 시기에 해당하므로 연표의 (라) 시기에 해당한다.

대화 속 인물은 견훤이다. 후백제를 세웠고 아들 신검에 의해 금산사에 유폐되었다는 내용으로 알 수 있다. 견훤은 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고려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청해진 설치는 장보고, 국호를 마진으로 한 것은 궁예,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된 것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김부)에 대한 설명이다.





제시문은 대조영이 동모산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이후 대인수(선왕) 때 연호를 건흥으로 하고 해동성국이라 불렸다는 내용으로 발해에 대한 자료이다. 발해의 대표 문화유산으로는 이불병좌상, 영광탑, 석등 등이 있으며, 이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 특징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보기 중 발해의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것은 1번이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에 새겨진 준풍은 고려 광종이 사용한 연호이다. 광종은 노비안검법 시행, 관리의 공복(복색) 제정과 함께 과거제를 처음으로 시행하여 신진 인사를 등용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강화도 천도는 고종(몽골 침입기), 쌍성총관부 수복은 공민왕, 12목 설치는 성종의 업적이다.

제시된 자료는 현종 때 여진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치며 사대하던 상황에서 인종 때 금(여진)이 강성해져 이자겸이 사대를 주장하는 상황으로 변화하는 시기, 즉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가던 고려 중기를 보여준다. 이 시기에 여진의 기병에 대응하기 위해 윤관이 별무반 설치를 건의하였고, 이후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박위의 대마도 정벌(고려 말 우왕 때)과 김윤후의 처인성 전투(몽골 침입, 고종 때)는 그보다 후대의 일이며, 김춘추의 나당 동맹(신라 삼국 통일 이전)은 훨씬 이전 시기의 사실이다.





주전도감은 고려 숙종 때 화폐 주조를 위해 설치된 기관으로, 이곳에서 해동통보, 삼한통보, 동국통보 등의 동전과 활구(은병)가 주조되었다. 제시된 보기 중 이러한 고려 시대 화폐에 해당하는 것은 해동통보이며, 이는 4번에 해당한다. 나머지 보기의 화폐들은 조선 시대에 주조된 상평통보 등으로, 고려 주전도감과는 관련이 없다.

합천 해인사 정대불사에서 머리에 이고 옮기는 행사의 대상은 팔만대장경판이다. 이는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어졌으며, 강화도에서 조판된 뒤 훗날 합천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날까지 보관되고 있다. 초조대장경은 몽골 침입 때 소실되었고, 직지심체요절은 금속활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시대 목판 인쇄물로 정대불사와 관련이 없다.





(가) 시기는 1135년 묘청의 난 이후부터 1198년 만적의 난 이전까지, 즉 무신 정권 초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정중부·경대승·이의민 등이 집권한 무신 정변(1170)과 그에 따른 하극상, 무신들의 권력 다툼, 중방을 통한 권력 행사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1번이 정답이며, 만적의 난 이후 최씨 무신 정권기의 교정도감 설치나 삼별초 활동 등을 보여주는 장면은 (가) 시기 이후에 해당하므로 오답이다.

제시된 그림은 후삼국을 통일하고 발해 유민까지 포용한 왕을 나타내므로 고려 태조 왕건이다. 태조는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다. 천리장성 축조는 고려 덕종~정종 때, 전민변정도감 설치는 공민왕 때, 전시과는 경종 때 처음 시행되었으므로 태조의 업적이 아니다.

변발과 호복, 발립 등은 원 간섭기 고려 지배층 사이에서 유행한 몽골풍 복식이다. 이 시기에는 응방을 두어 매 조련을 담당하게 했고, 공녀가 원에 끌려갔으며, 권문세족의 대농장 확대로 농민이 토지를 빼앗기는 모습이 나타났다. 반면 황룡사 구층 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건립되었다가 고려 시대 몽골(원)의 침입으로 소실되었으므로, 원 간섭기에 목탑을 세우는 모습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가)는 요동 정벌이 무리라며 4불가론을 주장한 인물로, 이성계이다. 이성계는 고려 말 황산 전투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강동 6주 획득은 서희, 비격진천뢰 제작은 이장손, 매소성 전투 승리는 신라 김유신 등의 활약이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제시된 대화는 여진의 침입에 대응해 최윤덕과 김종서를 파견하여 4군 6진을 개척한 내용으로, 이는 조선 세종의 업적이다. 세종은 이순지 등에게 명하여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역법서인 칠정산을 편찬하게 하였다. 비변사 폐지는 흥선대원군, 동의보감 간행은 광해군,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때의 일이다.

6조 직계제, 호패법, 사간원 설치는 모두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이며, 창덕궁 건립과 신문고 설치도 태종 대의 대표적 업적이다. 계미자 주조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제작 역시 태종 재위 시기의 문화적 성과에 해당한다. 따라서 (가)는 태종이다.

제시문에서 방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별도의 관청(선혜청)을 설치하고, 토산물로 납부하던 공납을 토지 결 수 기준으로 쌀·옷감·동전 등으로 대신 납부하게 했다는 내용은 대동법의 시행 내용과 일치한다. 균역법은 군포 부담을 줄인 제도, 영정법은 전세를 고정한 제도, 직전법은 관리에게 수조지를 지급한 토지 제도로 공납 개혁과는 무관하다.

제시된 진주성 전투, 한산도 대첩(학익진), 동래성 전투는 모두 임진왜란의 격전지이다. 조헌의 금산 전투, 곽재우의 정암진 전투, 신립의 탄금대 전투는 모두 임진왜란 당시의 사건으로 옳은 설명이다. 반면 임경업의 백마산성 항전은 병자호란 당시의 사건이므로 임진왜란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다.

(가) 강홍립 부대의 사르후 전투 참전(1619)은 광해군 때 명의 요청으로 후금과 싸운 사건이고, (다) 병자호란과 인조의 삼전도 항복(1637)이 그 다음이며, (나) 나선 정벌(1654, 1658)은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파견한 효종 때 사건으로 가장 나중이다. 따라서 시간 순서는 (가)-(다)-(나)이다.

제시된 인물 김인후는 필암 서원에 배향된 인물로, 명종 즉위 후 외척 간 권력 다툼(윤원형 등 소윤과 윤임 등 대윤의 대립)으로 사림이 크게 화를 입은 사건은 을사사화이다. 김인후는 이 사화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장성으로 내려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경신환국과 기해예송은 조선 후기 붕당 정치와 관련된 사건이고, 병인박해는 19세기 천주교 탄압 사건으로 시기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





전시 화면의 특별전 제목은 "겸재 정선,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다"입니다. 겸재 정선은 조선 후기에 우리 산천을 직접 답사하고 그 실제 모습을 그린 진경 산수화를 개척한 화가입니다.
제시된 네 작품 가운데 정선의 그림은 비 갠 뒤 인왕산의 바위 봉우리를 짙은 먹으로 웅장하게 표현한 인왕제색도입니다. 정선의 대표작으로는 이 밖에 금강산 전경을 담은 금강전도가 있습니다.
나머지 작품은 다른 화가의 것입니다. 개성 영통동 어귀의 거대한 바위들을 서양화의 명암법을 활용해 입체감 있게 그린 영통동구도는 강세황, 세한의 소나무와 잣나무로 제자 이상적에 대한 마음을 담은 세한도는 조선 후기 김정희, 안평 대군의 꿈 이야기를 그린 몽유도원도는 조선 전기 안견의 작품입니다.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17세기 후반 이후) 전국적으로 유통된 화폐로, 이 시기에는 장시(정기 시장)의 전국적 확대, 공인의 관수품 조달 활동, 송상의 송방 설치 등 상업 발달이 두드러졌다. 반면 벽란도의 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시기는 고려 시대로, 상평통보가 유통된 조선 후기와는 시기가 맞지 않아 옳지 않은 대답이다.

초계문신제와 규장각은 정조의 정책이다.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국왕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하였다. 경복궁 중건은 흥선대원군, 영선사 파견은 고종,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의 업적이다.

제시된 사건은 홍경래의 난(1811)으로, 정주성을 근거지로 관군에 맞서 싸운 봉기이다. 홍경래의 난은 세도 정치기 서북(평안도) 지역민에 대한 차별과 수탈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보국안민·제폭구민은 동학 농민 운동의 구호이며, 한성 조약 체결은 갑신정변의 결과이고, 선혜청과 일본 공사관 공격은 임오군란의 전개 과정이므로 나머지 보기는 모두 다른 사건에 해당한다.

강화도와 영종도 일대에서 일본 군함이 무력 시위를 벌인 사건은 운요호 사건(1875)이다. 이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고, 이듬해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이 체결되었다. 105인 사건은 일제 강점기 신민회 탄압 사건,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과 관련된 사건으로 시기와 성격이 다르다.

제시문에서 흥선 대원군은 구식 군인들이 변란을 일으키자 사태 수습을 위해 궁으로 들어갔으나, 청군이 그를 변란의 책임자로 지목해 톈진으로 납치했다고 말한다. 이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에 반발한 구식 군인들이 봉기한 임오군란(1882)에 대한 설명이며, 실제로 이 사건 직후 청군이 흥선 대원군을 톈진으로 압송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그림 속 인물은 대한의군 참모중장 자격으로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고 말하고 있어 안중근임을 알 수 있다. 안중근은 뤼순 감옥에 수감된 중 동양의 평화를 위한 방안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였다. 중광단 결성은 대종교 계열 인사들, 독립 의군부 조직은 임병찬, 시일야방성대곡 발표는 장지연과 관련된 사실이다.

이회영 일가는 국권 피탈 직후 전 재산을 처분하여 서간도로 망명하였고, 이곳에서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의 전신)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이은숙의 「서간도 시종기」는 바로 이 서간도 망명 생활과 신흥강습소 설립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지도에서 서간도는 ㉡에 해당한다.

공고의 임시 토지 조사국과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 무단 통치기에 조선 총독부가 시행한 것으로, 이 시기 헌병 경찰제와 함께 조선인에게만 적용된 조선 태형령이 시행되었다. 농광 회사 설립(1904)은 러일전쟁 전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대응한 것이고, 산미 증식 계획(1920년대)과 화폐 정리 사업(1905)은 각각 1910년대 이전·이후 시기의 정책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는다.

제시된 인물은 양기탁(1871~1938)이다. 영국인 베델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여 항일 언론 활동을 펼쳤고, 안창호 등과 함께 비밀 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으며,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였다. 김원봉은 의열단·조선의용대 조직,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 신익희는 임시정부 및 광복 이후 정치 활동으로 각각 구별되므로 해당하지 않는다.

대화 속 상황은 한성 전기 회사가 전차를 운행(1899년)한 시기를 가리킨다. 한성순보(1883)와 동문학(1883)은 이보다 앞선 사실이고, 만민 공동회(1898)도 전차 운행 이전의 일이다. 반면 경부선 철도는 1905년에 개통되어 전차 운행 이후의 모습에 해당하므로 정답은 3번이다.

제시된 웹툰은 1920년대 국외 독립운동 순서를 보여준다. 1화 봉오동 전투(1920.6) 이후 2화에서 김좌진·홍범도 등 독립군 연합 부대가 백운평·어랑촌 등에서 일본군을 대파했다고 했는데, 이는 청산리 전투(1920.10)의 백운평·완루구·어랑촌 전투를 가리킨다. 이후 3화 간도 참변(1920.10~)이 그 보복으로 이어진 것도 시대 순서와 일치한다. 영릉가 전투·흥경성 전투·대전자령 전투는 1930년대 한중 연합 작전에 해당하므로 (가)와 무관하다.

제시된 자료의 (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3·1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임시정부는 충칭에 정착한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이끌었으며, 그 산하 정규군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무장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독립문 건립은 독립협회, 서전서숙 설립은 이상설 등 만주 지역 민족교육 운동, 대한국 국제 반포는 대한제국(고종)의 활동으로 임시정부와 무관하다.

이봉창은 한인 애국단 소속으로 1932년 도쿄에서 일왕(히로히토)의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홍커우 공원 의거는 같은 한인 애국단 소속의 윤봉길의 활동이고, 명동 성당 앞 이완용 습격은 이재명, 스티븐스 사살은 장인환·전명운의 의거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한 이후, 광무개혁이 추진되었다. 이 시기 근대적 토지 소유권 제도 확립을 위해 지계아문을 설치하고 지계(地契)를 발급하였다. 척화비 건립은 1871년 신미양요 직후, 육영 공원 설립은 1886년, 군국기무처 설치는 1894년 갑오개혁 때로 모두 대한제국 수립 이전의 일이다.

회사령(1910)은 무단 통치기(1910년대)에 공포·시행되어 회사 설립을 총독 허가제로 규제한 것으로, 중일 전쟁 이후 민족 말살 통치기(창씨개명 시행 시기)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반면 애국반을 통한 공출 독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국민 징용령에 의한 강제 동원은 모두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전시 동원 체제기에 나타난 모습으로 이 시기와 부합한다.

1927년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협동하여 결성된 여성 운동 단체는 근우회이며, 신간회의 자매 단체로 전국에 지회를 두고 여성 계몽·차별 철폐 운동을 전개하였다. 보안회는 1904년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한 단체, 송죽회는 1913년 평양에서 조직된 비밀 여성 독립운동 단체, 색동회는 방정환 등이 조직한 어린이 운동 단체이므로 힌트와 맞지 않는다.

제시된 만화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다룬 것으로,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사건이다. 이 운동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 사망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6·29 민주화 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유신 체제 붕괴(1979년 10·26 사태)와 양원제 국회 출현(4·19 혁명 이후)은 이전 사건들에 해당하며, 시민군 조직은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의 특징이므로 옳지 않다.

인물 카드의 호 우사, 생몰년 1881~1950년, 파리 강화 회의 신한청년당 대표 파견, 대한민국 임시 정부 부주석, 남북 협상 참여 등은 모두 김규식의 활동이다. 김규식은 광복 이후 좌우 이념 대립을 극복하고자 여운형 등과 함께 좌우 합작 위원회를 결성하여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하였다. 대성 학교 설립은 안창호, 조선 혁명 선언 작성은 신채호,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저술은 박은식의 활동이다.

반민족 행위 처벌법(반민특위법)은 1948년 제헌 국회에서 친일파 처벌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 6·25 전쟁(1950~1953) 이전의 일이다. (가)는 압록강·두만강까지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국군의 개입으로 서울 이남까지 철수한 1·4 후퇴를 가리키는 6·25 전쟁 관련 사건이며, 흥남 철수(1950.12), 인천 상륙 작전(1950.9), 발췌 개헌안 통과(1952.7)는 모두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이다.

새마을 운동, 광주 대단지 사건(1971), 100억 달러 수출 달성(1977)은 모두 박정희 정부 시기의 사실이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며 경부 고속도로를 준공(1970)하여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금융 실명제 전면 실시와 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이다.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1998)과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 개최(2002)는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이며, IMF 구제 금융을 조기 상환한 것도 김대중 정부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하여 남북 정상 회담을 최초로 성사시켰다.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은 전두환 정부 때의 일이다.

제시된 자료의 '이 섬'은 독도이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1900)는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독도(석도)를 관할 구역으로 명시하여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한 문서이다. 안용복은 조선 숙종 때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은 인물로, 이 섬과 직접 관련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흑산도, 하멜 일행은 제주도, 이종무의 왜구 정벌은 쓰시마(대마도)와 관련된 사실이므로 옳지 않다.

조선 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중대한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은 의궤이다. 정조가 혜경궁 홍씨와 함께 수원 화성으로 행차한 것을 기록한 대표적 의궤가 화성능행도(원행을묘정리의궤)로, 이는 당시 행사의 모습을 그림과 글로 상세히 남긴 자료이다. 경국대전은 법전, 삼강행실도는 윤리서, 조선왕조실록은 국가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이므로 행사 장면을 그림으로 구현한 자료와는 성격이 다르다.

제시된 답사 보고서의 미추홀은 인천의 옛 지명이며, 자료에 나온 개항 박물관(일본 제일은행 지점·한국은행 지점)과 제물포 구락부는 모두 인천의 대표적인 개항기 유적이다. 따라서 (가)에 들어갈 지역은 인천이다.

원효는 『십문화쟁론』을 저술하여 여러 종파의 대립을 화합·조화시키려 하였으므로 (가)에 해당한다. 혜초는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순례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썼을 뿐 해동 천태종은 의천이 창시하였으므로 (나)는 틀렸다. 세속 5계는 원광이 지은 것이며 지눌은 돈오점수·정혜쌍수를 주장한 인물이므로 (다)는 틀렸다. 수선사 결사는 지눌이 제창한 것이고 유정(사명대사)은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승려이므로 (라)도 틀렸다.

(다)의 태학과 경당은 고구려의 교육 기관으로 가장 이른 시기에 설립되었고, (나)의 국자감과 서적포는 고려 시대에 설치되었으며, (가)의 성균관과 4부 학당은 조선 한양에 세워진 교육 기관이다. 따라서 시대 순으로 나열하면 (다)-(나)-(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