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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

제66회

총 5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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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정답 포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제66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가상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청동 방울 흔들기
2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3철제 농기구로 밭 갈기
4거친무늬 거울 목에 걸기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안내는 이곳이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마을을 체험하는 가상 공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림에도 움집갈돌·갈판으로 곡식을 가는 모습,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 땅을 일구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를 사용하고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지어 정착 생활을 하였으며, 조·피 등을 재배하는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밑이 뾰족하고 겉면에 빗살 모양을 새긴 빗살무늬 토기로, 곡식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쓰였습니다. 신석기 마을 체험 활동으로 알맞습니다.

청동 방울과 거친무늬 거울은 청동기 시대 제사장의 의례 도구이고, 철제 농기구로 밭을 가는 것은 철기 시대 이후의 모습이어서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2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3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4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정답 및 해설

수업 장면에서 교사는 화면의 유물이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린 이 나라의 금제 허리띠 장식이라고 설명하고, 학생은 날개 달린 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들이 각각 사출도를 다스린 나라는 부여입니다. 왕이 있었으나 가들의 세력이 강해 왕권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부여에서는 수확에 감사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 행사인 영고를 음력 12월에 열었습니다. 이때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신성 지역인 소도는 삼한, 혼인 풍습인 민며느리제는 옥저,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어서 이 나라와 맞지 않습니다.

문제 3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왕으로 옳은 것은? [2점]
1미천왕
2장수왕
3고국천왕
4소수림왕
정답 및 해설

검색창에는 재위 기간 413년~491년이라는 정보와 함께 광개토 대왕릉비를 건립함, 도읍을 평양으로 옮김, 백제를 공격하여 한성을 함락함이라는 업적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인물은 고구려의 장수왕입니다.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 국내성에 능비를 세웠고, 427년에는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였습니다. 475년에는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켜 한강 유역을 장악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왕들과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미천왕은 낙랑군을 몰아냈고, 고국천왕은 진대법을 실시하였으며, 소수림왕은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세워 율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문제 4
밑줄 그은 '그날'에 해당하는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1단오
2동지
3추석
4칠석
정답 및 해설

화면에는 견우성직녀성이 각각 별 위에 서 있고, 무리 지어 날아드는 새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 인물은 "일 년 중 한 번 직녀님을 만나는 그날", "까치와 까마귀가 많이 모여 오작교를 놓아야 저희가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가 까치와 까마귀가 놓아 준 오작교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설화가 전하는 세시 풍속은 음력 7월 7일의 칠석입니다. 이날에는 여인들이 직녀성에게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걸교 풍습과 책과 옷을 볕에 말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다른 세시 풍속과 혼동하지 않도록 합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씨름과 그네뛰기를 즐겼고, 동지는 팥죽을 쑤어 먹는 날이며, 추석은 음력 8월 15일에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빚는 명절입니다.

문제 5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왜에 칠지도를 보냈다.
2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3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점령하였다.
4진흥왕과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다.
정답 및 해설

안내문은 "(가)이/가 도읍으로 정한 부여에서 열리는" 행사를 소개하며, 행사로 정림사지 오층 석탑 탑돌이와 궁남지 연꽃 유등 띄우기를 들고 있습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로, 이곳으로 천도한 왕은 성왕입니다.

성왕은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으며, 중앙 관청을 정비해 중흥을 꾀했습니다. 551년에는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진흥왕이 이 지역을 독차지하자 이에 맞서다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나머지 사실은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왜에 칠지도를 보낸 것은 근초고왕, 동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침류왕, 신라를 공격해 대야성을 점령한 것은 의자왕 때의 일입니다.

문제 6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만화는 삼국 통일 과정의 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는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된 장면, (나)는 왜군이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장면, (다)는 신라군이 기벌포에서 당군에 승리한 장면입니다.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온 왜군이 백강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크게 패한 것이 663년이고,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668년입니다. 이후 나당 전쟁이 벌어져 675년 매소성 전투에 이어 676년 기벌포에서 신라가 당의 수군을 격파하면서 삼국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왜군이 백강에서 패한 일 → 고구려 평양성이 함락된 일 → 신라군이 기벌포에서 당군을 물리친 일이 됩니다.

문제 7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국학을 설립하였다.
2우산국을 정벌하였다.
3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4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정답 및 해설

선생님은 밑줄 그은 '이 왕'을 문무왕의 아들이라 소개하며, 동해에 작은 산이 떠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견대로 가 보니 용이 나타나 "산에 있는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라 말했고, 그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며 나라의 보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신문왕입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682년에는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하였고, 관료전을 지급하는 대신 녹읍을 폐지하였으며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 조직을 정비하였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우산국 정벌은 지증왕 때 이사부가 수행했고, 천리장성 축조는 고구려에서 당의 침입에 대비해 이루어졌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한 것은 진흥왕입니다.

문제 8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은 "백제 무왕이 건립한 사찰의 터에는 목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 남아 있으며, 이 석탑의 복원 공사 중에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내용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으로, 기둥과 지붕돌을 돌로 다듬어 목탑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2009년 해체·복원 과정에서 나온 금제 사리봉영기를 통해 639년에 탑이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보기로 함께 제시된 다른 탑은 시대와 나라가 다릅니다.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 후기 석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의 이형 석탑, 분황사 모전 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 선덕 여왕 때의 탑입니다.

문제 9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분청사기를 만드는 도공
2녹읍을 지급받는 진골 귀족
3장시에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
4상평통보로 물건값을 치르는 농민
정답 및 해설

학습지에는 장소가 청해진 유적으로 적혀 있고, "완도에 청해진이 설치된 이 시기에는 장보고가 당,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주도하였다"는 설명과 함께 장보고 기념관, 장도의 목책열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청해진은 828년 흥덕왕 때 설치되었으므로 이 시기는 통일 신라, 그중에서도 신라 하대에 해당합니다.

이 무렵 녹읍은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신문왕 때 관료전을 주며 폐지했던 녹읍이 757년 경덕왕 때 부활하여, 진골 귀족들이 다시 토지와 노동력을 함께 지배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모습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자기이고, 장시에서 소설을 읽어 주던 전기수와 화폐로 널리 쓰인 상평통보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문제 10
다음 특별전에 전시될 문화유산으로 적절지 않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특별전 안내 벽면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옆의 지도에는 동모산과 함께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춘 나라는 발해입니다.

발해의 문화유산으로는 고구려 양식을 이은 궁궐 지붕 장식인 치미, 굵고 힘찬 선이 특징인 연꽃무늬 수막새,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 등이 있습니다. 특히 수막새와 온돌 유적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 주는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반면 성덕 대왕 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려 만들기 시작해 혜공왕 때 완성한 통일 신라의 범종으로,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립니다. 발해를 주제로 한 이 특별전에는 전시될 수 없는 유물입니다.

문제 11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신하는 "견훤이 나주로 도망쳐 와 귀부하기를 청한다"고 아뢰고, 왕은 "장군 유금필 등을 보내 정중히 맞아오도록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유폐되었던 견훤이 탈출해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한 935년의 일입니다.

연표는 887년 진성 여왕 즉위 - 896년 적고적의 난 - 918년 고려 건국 - 927년 공산 전투 - 936년 후삼국 통일로 이어집니다. 935년은 공산 전투와 후삼국 통일 사이, 즉 연표의 마지막 구간에 놓입니다.

견훤의 귀순과 같은 해 신라 경순왕의 항복이 이어졌고, 이듬해인 936년 왕건은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무너뜨리며 후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문제 12
밑줄 그은 '전쟁'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귀주 대첩의 의의를 파악한다.
2위화도 회군의 결과를 조사한다.
3안시성 전투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4진포 전투에서 새롭게 사용된 무기를 찾아본다.
정답 및 해설

기자는 눈앞의 성벽을 두고 "북방 세력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감찬의 건의개경 외곽에 쌓은 나성의 일부이며,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끝난 후 현종 20년에 완공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전쟁'은 거란의 침입입니다.

거란은 세 차례 고려를 침입했는데, 1차 때는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3차 침입 때인 1019년 강감찬이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이 귀주 대첩으로 거란의 침입은 끝나고 고려·송·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탐구 주제는 상대가 다릅니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 요동 정벌 과정에서 이성계가 일으킨 사건이고, 안시성 전투는 당의 침입에 맞선 고구려의 항쟁이며, 진포 전투에서 최무선이 화포를 사용한 상대는 왜구였습니다.

문제 13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1점]
1광종
2문종
3성종
4예종
정답 및 해설

퀴즈에 제시된 세 단계 힌트는 국자감 정비, 건원중보 발행,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입니다.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고려의 왕은 성종입니다.

성종은 즉위 직후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2성 6부의 중앙 관제와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또한 개경에 국립 교육 기관인 국자감을 정비해 유학 교육을 진흥하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를 만들어 유통을 시도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왕들과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시행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왕은 광종, 전시과를 정비해 경정 전시과를 마련한 왕은 문종,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를 두고 여진 정벌 이후 동북 9성을 쌓은 왕은 예종입니다.

문제 14
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공인이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였다.
2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하였다.
4고추와 담배가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두 사람은 " 사신단이 곧 수도 개경에 도착한다", "사신단의 규모가 엄청나고 가져온 물품도 상당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도가 개경이고 송과 사신 왕래가 활발한 시기이므로 고려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통해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드는 국제 무역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고 전해집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대동법 시행으로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던 공인의 활동, 전국으로 퍼진 모내기법, 상품 작물로 재배된 고추와 담배는 모두 고려 시대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1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다
2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하다
3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적군을 물리치다
4서희가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 6주 지역을 확보하다
정답 및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고려, 몽골에 맞서 싸우다'이고, 기획 의도는 약 30년간 전개된 고려의 대몽 항쟁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구성은 1부 '사신 저고여의 피살을 구실로 몽골이 침입하다', 2부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다'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3부에는 강화 천도 이후 전개된 대몽 항쟁의 사건이 들어가야 합니다. 몽골의 2차 침입 때 승려 김윤후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고 물리친 일이 이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상대가 다르거나 시기가 앞선 사건입니다. 별무반 편성을 건의한 윤관은 여진,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와 살수에서 크게 이긴 을지문덕은 각각 거란, 를 상대한 인물이며, 을지문덕의 활약은 고구려 때의 일입니다.

문제 16
(가)에 들어갈 가상 우표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학생이 "태조 왕건이 세운 국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우표 도안을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빈칸에는 고려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붙어 있는 우표는 수월관음도, 팔만대장경판,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모두 고려의 것입니다.

남은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입니다. 학과 구름 무늬를 상감 기법으로 새겨 넣은 이 매병은 12세기 이후 발달한 고려 상감 청자의 대표작입니다.

나머지 도안은 시대가 다릅니다. 산수무늬 벽돌은 백제, 도기 바퀴장식 뿔잔은 가야, 황남대총 금관은 신라의 문화유산입니다.

문제 17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2독서삼품과가 실시되었다.
3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4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무덤에 대해 "기철 등 친원파를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한 왕의 무덤", "왕비 노국 대장 공주의 무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두 무덤이 나란히 있는 이 유적은 공민왕릉(현릉·정릉)이며, 밑줄 그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폈습니다.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내정 간섭 기구를 없앴으며, 유인우 등을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았습니다. 아울러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신돈을 등용해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으려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기의 사실입니다. 동북 9성 축조는 고려 예종 때 윤관의 여진 정벌 결과이고,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때,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조선 숙종 때의 일입니다.

문제 18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설명에 따르면 (가) 인물은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을 지었고, 그 이름에는 "국왕과 백성이 만년토록 태평하며 큰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새 왕조의 통치 방향을 제시한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한 대표적인 개국 공신으로, 한양 천도와 궁궐·성문의 이름 짓기 등 새 수도 설계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고자 하였고, 재상 중심의 정치 운영을 주장하다가 제1차 왕자의 난 때 제거되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시기가 다릅니다. 북벌론을 내세운 서인의 영수 송시열, 신해통공을 건의한 정조 대의 채제공, 고려 말 온건 개혁파로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죽임을 당한 정몽주입니다.

문제 19
(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1사헌부
2의금부
3춘추관
4홍문관
정답 및 해설

용어 해설의 개요는 "조선 시대에 왕명을 받아 반역 사건강상죄에 대한 처결을 담당한 사법 기구"이고, 주요 관원으로 죄인 심문 및 문서 작성을 맡은 도사, 죄인 체포·압송과 형 집행을 맡은 나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 사법 기관으로, 일반 범죄를 다루는 형조와 달리 왕권에 도전하는 대역·모반 사건이나 유교 윤리를 저버린 강상죄 같은 중대 범죄를 국왕의 명을 받아 직접 다스렸습니다.

나머지 기구는 역할이 다릅니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리 감찰과 언론을 맡았고, 춘추관은 실록 등 역사서 편찬을 담당했으며, 홍문관은 경연을 주관하며 국왕의 학문·정책 자문에 응하였습니다.

문제 2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1직전법을 시행함
2탕평비를 건립함
3교정도감을 설치함
4금난전권을 폐지함
정답 및 해설

카드 뒷면에 '조선 제7대 왕'이라 적혀 있고, 업적으로 단종을 몰아냄, 경연을 폐지함, 진관 체제를 실시함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이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현전과 경연을 없애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였으며, 지방 방어를 위해 진관 체제를 정비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경제 면에서는 세습되며 부족해진 과전을 정리하기 위해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들의 일입니다. 탕평비 건립은 영조, 금난전권 폐지(신해통공)는 정조 때이며, 교정도감 설치는 고려 무신 집권기 최충헌이 한 일입니다.

문제 21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병자호란이 일어났다.
2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훈련도감이 창설되었다.
4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정답 및 해설

왼쪽 그림은 "광해군이 유배 가는 모습"을 그린 장면이므로 인조반정(1623)을 가리키고, 오른쪽 그림은 '북벌' 깃발과 함께 "청을 쳐서 삼전도의 치욕을 씻자"라고 외치는 장면이므로 효종의 북벌 추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가)에는 인조 즉위 이후부터 효종의 북벌 추진 이전 사이의 사실이 들어가야 합니다. 인조 대에 청이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침입한 병자호란(1636)이 일어났고, 그 결과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면서 북벌론이 대두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4군 6진 개척은 세종 때, 훈련도감 창설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때로 모두 앞선 시기이며,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로 훨씬 뒤의 사건입니다.

문제 22
(가)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1신문고를 설치하였다.
2계미자를 주조하였다.
3칠정산을 편찬하였다.
4호패법을 마련하였다.
정답 및 해설

웹툰 화면의 제목은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한 (가)'이고, 1화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다', 2화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다', 3화 '6조 직계제를 실시하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 왕은 태종입니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시행해 의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국왕이 직접 정무를 챙겼으며, 사병을 혁파하고 호패법을 마련해 인구와 조세·군역 대상을 파악하였습니다. 또한 백성의 억울함을 살핀다는 명분으로 신문고를 설치하고, 금속 활자인 계미자를 주조하였습니다.

업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칠정산 편찬입니다. 칠정산은 세종 때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해 만든 역법서로, 태종의 업적이 아닙니다.

문제 23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자격루
2측우기
3혼천의
4앙부일구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안내 문구는 종묘 앞에 처음 설치된 기기이며, 영침(그림자를 만드는 바늘)의 그림자로 시각을 표시하고 동지·하지 같은 절기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 자막도 "종묘 앞에 새 기기 설치"입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세종 때 만들어진 앙부일구입니다. 솥이 하늘을 보고 있는 듯한 오목한 반구 모양의 해시계로, 안쪽 면에 시각선과 절기선이 함께 새겨져 있어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길이·높낮이로 절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백성이 볼 수 있도록 종묘 앞과 혜정교에 설치한 공중 시계였다는 점이 결정적 단서입니다.

물시계인 자격루는 그림자가 아니라 물의 흐름으로 시각을 알리는 자동 시보 장치이고, 측우기는 시각이 아니라 강우량을 재는 기구이며,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을 관측·재현하는 기기여서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를 함께 나타낸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문제 24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발해고를 저술하였다.
2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3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였다.
4소격서 폐지를 건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된 책의 이름표는 기묘유적이고, 설명에는 기묘사화의 전말을 다루었으며 현량과 실시와 위훈 삭제를 주장한 (가)가 관직에서 쫓겨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종 때 등용되어 현량과 실시와 중종반정 공신의 위훈 삭제를 밀어붙이다 훈구 세력의 반발로 기묘사화(1519)에 희생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그는 도학 정치를 내세우며 도교 제사를 주관하던 관청인 소격서를 폐지하자고 강력히 건의하여 관철시켰습니다.

발해고를 지은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 대동여지도를 만든 이는 김정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이는 주세붕으로 모두 기묘사화와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5
다음 답사가 이루어진 장소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1탄금대
2행주산성
3수원 화성
4울산 왜성
정답 및 해설

답사 안내문의 제목은 "임진왜란의 격전지를 가다"이고, 답사 개요에도 임진왜란 중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유적을 답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전투와 무관한 장소를 골라야 합니다.

탄금대는 1592년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패한 곳, 행주산성은 권율이 관군과 백성이 함께 왜군의 대군을 물리친 행주 대첩의 현장, 울산 왜성은 왜군이 쌓은 성으로 조·명 연합군과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어서 모두 임진왜란 격전지에 해당합니다.

반면 수원 화성은 임진왜란과 200년의 시차가 있는 정조 때 축조된 계획도시의 성곽으로, 정약용의 설계와 거중기 등 새 기술이 동원된 유산입니다. 임진왜란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니므로 이 답사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제 26
(가)에 들어갈 제도로 옳은 것은? [1점]
1과전법
2균역법
3대동법
4영정법
정답 및 해설

게시판 답변 세 줄이 그대로 단서입니다. 영조 때 제정되었고, 군포 납부액을 2필에서 1필로 줄였으며, 어장세·소금세 등으로 줄어든 수입을 보충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군포 부담을 절반으로 낮춘 이 제도는 1750년 영조가 시행한 균역법입니다. 줄어든 재정은 어장세·염세·선박세와 지주에게 부과한 결작(토지 1결당 쌀 2두), 선무군관포 등으로 메웠습니다.

과전법은 고려 말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누어 준 토지 제도, 대동법은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돈으로 바꾸어 걷은 제도, 영정법은 전세를 풍흉과 관계없이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로 모두 군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7
(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해설사는 두 그림이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작품이며, 그는 양반의 풍류와 여성의 생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제시된 한 점은 단옷날 여인들이 냇가에서 몸을 씻고 그네를 타는 장면인 단오풍정입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신윤복의 또 다른 작품이 들어가야 합니다. 달빛 아래 담장 옆에서 등불을 든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월하정인이 이에 해당하며, 남녀 간의 애정과 양반가의 풍류를 은근하게 담아낸 신윤복 화풍의 대표작입니다.

제시된 다른 그림 가운데 씨름하는 사람과 구경꾼을 둥글게 배치한 씨름도는 김홍도, 길에서 만난 양반에게 신분이 낮은 사람이 갓을 벗고 예를 표하는 장면인 노상알현도는 김득신의 풍속화이며, 바위에 기대어 물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고사관수도는 조선 전기 문인화가 강희안의 작품이라 신윤복과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8
밑줄 그은 '봉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진압되었다.
2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3서북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4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지도는 1862년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의 주요 지점을 표시한 것으로, 유계춘을 중심으로 모인 농민들이 축곡에서 모의하고 수곡에서 읍회를 연 뒤 덕산 장시를 출발해 진주성으로 진격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도에도 수곡·축곡·시천(덕산 장시)·진주성이 차례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진주 농민 봉기는 삼정의 문란, 특히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의 출발점입니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정·군정·환곡의 폐단을 바로잡을 임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습니다.

김부식의 관군에게 진압된 것은 고려 시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고, 서북인 차별에 반발한 것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며, 흥선 대원군의 재집권을 불러온 것은 1882년 임오군란이어서 진주에서 일어난 이 봉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29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거중기를 설계하였다.
2몽유도원도를 그렸다.
3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4열하일기를 저술하였다.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답사 장소는 남양주에 있는 (가)의 유적지이며, 가옥의 이름이 여유당이고 (가)는 목민심서 등 많은 책을 저술한 실학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진 속 건물에도 '여유당(與猶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여유당은 정약용의 생가이자 그의 호를 딴 당호로, 그는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된 18년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을 지었습니다.

정약용은 정조의 명으로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는 거중기를 설계하여 공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이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 동의보감을 완성한 이는 광해군 때 허준, 열하일기를 지은 이는 청에 다녀온 박지원으로 모두 다른 인물입니다.

문제 30
다음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병인박해가 일어났다.
2장용영이 창설되었다.
3척화비가 건립되었다.
4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두 관리는 미군이 포를 쏘며 손돌목을 지나갔다고 걱정하면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이 광성보에서 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돌목과 광성보, 어재연이라는 단서는 1871년 신미양요를 가리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입하자 어재연 부대는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했고, 미군은 결국 통상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채 물러갔습니다.

따라서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은 척화비 건립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신미양요 직후 종로와 전국 각지에 비석을 세워 서양과의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병인박해(1866)는 신미양요보다 앞선 일이고, 장용영 창설은 정조 때, 화통도감 설치는 고려 말 최무선의 건의에 따른 일이라 시기가 훨씬 이릅니다.

문제 31
밑줄 그은 '사절단'으로 옳은 것은? [2점]
1보빙사
2수신사
3영선사
4조사 시찰단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삽화는 1883년 미국 신문에 실린 것으로, 푸트 미국 공사의 조선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된 민영익 등 사절단이 미국에 가서 아서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뒤 미국에 파견된 이 사절단이 보빙사입니다.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서광범·유길준 등이 참여했고, 아서 대통령을 접견한 뒤 미국의 산업 시설과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와 우정총국 설치 등 근대 문물 도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수신사와 조사 시찰단은 일본에 보낸 사절이고, 영선사는 김윤식을 중심으로 청의 톈진에 가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워 온 유학생단이므로 미국에 파견되었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문제 32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신문 기사의 제목은 "(가), 쓰시마섬에서 순국하다"이고, 본문은 을사늑약에 저항하여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이 관군이 진압하러 오자 같은 동포끼리는 서로 죽일 수 없다며 전투를 중단하고 체포되었으며, 서울로 압송된 뒤 쓰시마섬에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태인 거병, 관군 앞에서의 전투 중단, 쓰시마섬 순국이라는 세 단서가 모두 가리키는 인물은 최익현입니다. 그는 흥선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하고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한 대표적 위정척사 계열 유생으로, 을사늑약 이후 임병찬 등과 함께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제시된 다른 인물 가운데 신돌석은 을사의병 때 활약한 평민 출신 의병장,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 홍범도는 봉오동·청산리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독립군 지휘관으로, 쓰시마섬 순국이라는 기사 내용과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33
밑줄 그은 '비상 수단'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갑신정변
2을미사변
3삼국 간섭
4아관 파천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자료는 박영효의 회고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를 살해하고 국왕을 보호하기 위해 비상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명단에는 홍영식(모의를 총괄한 제1인자), 박영효(실행 총지휘), 서광범(거사 계획 수립), 김옥균(일본 공사관과의 교섭 및 통역), 서재필(병사 통솔)이 역할과 함께 적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급진 개화파의 핵심 인물로, 이 명단 자체가 사건을 특정하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변을 일으키고 새 정부를 세우려 한 사건이 갑신정변(1884)입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왕비가 일본 낭인에게 시해된 을미사변(1895), 일본의 랴오둥반도 반환을 강요한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 간섭(1895),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 파천(1896)은 모두 급진 개화파의 거사와 무관합니다.

문제 34
다음 문서가 작성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문서는 영국 공관에 보낸 항의 문건으로, 귀국(영국)이 거문도에 뜻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섬은 우리나라의 땅이므로 다른 나라가 점유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거문도 사건(1885~1887) 당시 조선 정부가 영국에 보낸 문서입니다.

거문도 사건은 갑신정변 뒤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일입니다.

연표는 1863년 고종 즉위 — (가) — 1876년 강화도 조약 — (나) — 1882년 임오군란 — (다) — 1894년 갑오개혁 — (라) —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어집니다.

1885년은 임오군란(1882)과 갑오개혁(1894) 사이에 놓이므로, 이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임오군란과 갑오개혁 사이의 구간에 해당합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학교로 옳은 것은? [2점]
1대성 학교
2원산 학사
3육영 공원
4이화 학당
정답 및 해설

역사 인물 카드에는 생몰 1878년~1938년, 호는 도산, 주요 활동으로 신민회 결성, (가) 설립,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 조직, 흥사단 창설이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안창호는 신민회의 실력 양성 노선에 따라 인재를 길러낼 학교를 세웠는데, 평양에 설립한 학교가 대성 학교(1908)입니다. 신민회는 평양의 이 학교와 정주의 오산 학교를 통해 민족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원산 학사는 1883년 원산 주민들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이고, 육영 공원은 1886년 정부가 세워 헐버트 등 외국인 교사를 초빙한 관립 학교이며, 이화 학당은 1886년 선교사 스크랜턴이 세운 여성 교육 기관으로 모두 안창호와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36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체결된 조약으로 옳은 것은? [2점]
1톈진 조약
2정미 7조약
3제물포 조약
4시모노세키 조약
정답 및 해설

두 신문 기사의 표제를 보면 (가)는 국외 중립 선언 무효화되다라는 제목 아래 한일 의정서를, (나)는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다라는 제목 아래 한일 병합 조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일 의정서는 러일 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에 강요된 것으로, 대한 제국이 선언한 국외 중립을 무력화하고 일본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반도의 요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조약입니다. 한일 병합 조약은 1910년에 체결되어 국권이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따라서 1904년과 1910년 사이에 체결된 조약을 찾아야 하며,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뒤 1907년에 강요된 정미 7조약(한일 신협약)이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조약의 부수 각서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되었습니다.

톈진 조약은 갑신정변 뒤 1885년 청과 일본이 맺은 것이고, 제물포 조약은 임오군란 직후 1882년,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 전쟁의 결과인 1895년의 조약이므로 모두 두 시점 사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제 37
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처형되었다.
2동학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였다.
3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삼례 집회가 열렸다.
4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고부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시나리오는 전주성 안 선화당에서 농민군 대장 전봉준과 전라 감사 김학진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김학진이 일본군이 궁궐을 점령하여 국가에 큰 위기가 닥쳤다고 말하고, 전봉준은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와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추진하던 1894년 여름의 상황으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계기로 농민군이 다시 봉기하는 제2차 봉기 직전 시점입니다.

이후 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합류해 서울로 북상했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크게 패하면서 동학 농민 운동은 좌절되었습니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처형(1864), 교조 신원을 요구한 삼례 집회(1892), 조병갑의 탐학에 맞선 고부 농민 봉기(1894년 초)는 모두 이 대화 장면보다 앞선 일입니다.

문제 38
다음 장면에 나타난 운동으로 옳은 것은? [1점]
1국채 보상 운동
2문자 보급 운동
3물산 장려 운동
4민립 대학 설립 운동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인물은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의연금을 모으고 있으며, 모은 돈을 기성회에 보내 국권 수호에 힘을 보태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이 20전을 내겠다, 은가락지를 내겠다며 호응합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 국채 보상 운동(1907)입니다. 대구에서 서상돈 등의 발의로 시작되어 국채 보상 기성회가 조직되고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후원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남성은 금연으로, 여성은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는 방식으로 참여한 것이 이 운동의 특징이며, 통감부의 방해와 모금액 횡령 누명 사건으로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문자 보급 운동은 1930년대 문맹 퇴치 운동,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대 국산품 애용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1920년대 고등 교육 기관 설립 운동으로,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와는 다릅니다.

문제 39
밑줄 그은 ㉠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1극장인 원각사에 세워졌다.
2덕수궁에 중명전이 건립되었다.
3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되었다.
4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 장면의 사진은 동대문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에 참석한 대한 제국의 고위 관리들을 찍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고, 밑줄 그은 부분은 대한 제국 시기에 도입된 근대 문물을 가리킵니다. 대한 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했으므로 이 기간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면 됩니다.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된 것은 1883년의 일로,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파괴되기 전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입니다. 대한 제국 수립보다 10여 년 앞서므로 이 시기의 사례로 볼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대한 제국 시기에 해당합니다.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는 1908년에 세워졌고, 덕수궁의 중명전은 1900년 무렵 황실 도서관 겸 서양식 건물로 지어졌으며,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는 1905년에 개통되었습니다.

문제 40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2헤이그 특사가 파견되었다.
3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었다.
4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호외를 뿌리며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께서 승하하셨다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순종이므로, 이 장면은 순종이 세상을 떠난 1926년 4월의 상황입니다.

순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학생과 사회주의 계열이 준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1926년 6월 10일6·10 만세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협력한 경험은 이후 신간회 창립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1907)과 토지 조사 사업 실시(1910년대 초),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은 모두 순종 승하 이전의 일이므로 이 장면 이후의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1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경성 제국 대학에 다니는 학생
2제복을 입고 칼을 찬 헌병 경찰
3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는 유생
4국민 징용령에 의해 끌려가는 청년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문학 작품은 김동인의 소설 「태형」으로, 감옥에서 태형 구십 대를 언도받은 노인이 매를 맞으며 부르짖는 장면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해설 부분에는 이 소설이 일제에 의해 조선 태형령이 시행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 태형령은 1912년에 제정되어 1920년에 폐지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는 헌병이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제가 시행되어, 제복을 입고 칼을 찬 헌병 경찰이 재판 없이 처벌하는 즉결 처분권을 행사했습니다. 교원과 관리까지 제복에 칼을 차고 다닌 것도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에 설립되었고, 국민 징용령은 1939년 민족 말살 통치기의 인력 수탈 조치이며, 조선책략 유포에 대한 유생들의 반발은 1880년대 개항기의 일이므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2
(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2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3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4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였다.
정답 및 해설

할머니가 보여 주는 육아 일기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수립된 (가)가 창사로 옮겼을 때 합류해 독립운동을 했고, 김구·이시영 선생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되었고 김구·이시영이 활동했으며 중일 전쟁 이후 창사 등지로 근거지를 옮긴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했고, 국내와의 비밀 연락을 위해 연통제와 교통국을 운영했습니다.

만민 공동회 개최는 독립 협회, 신흥 강습소 설립은 신민회 인사들이 서간도에 세운 것이며, 잡지 어린이 발간은 방정환이 이끈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이므로 임시 정부의 활동과는 구분됩니다.

문제 43
(가)에 들어갈 군사 조직으로 옳은 것은? [2점]
1대한 독립군
2북로 군정서
3조선 의용대
4조선 혁명군
정답 및 해설

홀로그램 전시 장면에서 왼쪽 인물은 김원봉으로 "의열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인 (가)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오른쪽 인물은 박차정으로 "근우회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고 (가)의 부녀 복무 단장으로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실제 부부 사이의 독립운동가입니다.

김원봉이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조직한 조선 의용대가 바로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입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보 수집, 포로 심문, 후방 교란 등 항일 선전과 지원 활동을 맡았고, 박차정은 이 부대의 부녀 복무 단장을 맡았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부대입니다. 홍범도가 이끌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대, 김좌진이 이끌며 청산리 대첩을 이끈 북간도의 부대, 양세봉이 이끌며 남만주에서 조선 혁명당 산하로 활동한 부대는 모두 만주 무장 투쟁 계열로 중국 관내 부대가 아닙니다.

문제 44
(가) 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운요호 사건의 과정을 검색한다.
2삼별초의 최후 항쟁지를 조사한다.
3고려 왕릉이 조성된 지역을 찾아본다.
4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의 내용을 파악한다.
정답 및 해설

화면에 제시된 단어들은 삼성혈, 관덕정, 탐라총관부, 탐라국, 해녀 항쟁, 4·3 사건, 이재수의 난, 고산리, 알뜨르 비행장, 송악산 동굴 진지, 추사 유배지, 하멜, 이중섭, 김만덕입니다. 이 단어들을 섬 모양으로 배치했다는 설명까지 더하면 (가)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제주도는 삼성혈 건국 설화와 탐라국, 원 간섭기의 탐라총관부, 조선 후기 하멜 표류와 김만덕, 대한 제국기의 이재수의 난, 일제의 알뜨르 비행장·송악산 동굴 진지, 해방 후 4·3 사건까지 시대별 유적과 사건이 두루 남아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탐구 활동은 삼별초의 최후 항쟁지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 용장성으로 옮겼다가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 항파두리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마지막까지 대몽 항쟁을 벌였습니다.

운요호 사건은 강화도, 고려 왕릉이 집중 조성된 곳은 강화도와 개성,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것이므로 제주도 탐구 활동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45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가) - 고려 시대에 공음전을 지급받았다.
2(나) - 일부가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
3(다) -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의 제한을 받았다.
4(가), (나), (다) -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탐구 보고서의 주제는 "사회적 차별에 맞선 사람들"이고, 표에는 세 시대의 사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장군과 재상에 어찌 씨가 있겠는가?"라며 만적을 비롯한 많은 (가)가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직을 제한하는 법을 풀어주십시오."라는 상소를 올려 (나)에 대한 차별 폐지를 요청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형평사를 조직해 (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였습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였으므로 (가)는 노비, 적서 차별로 관직 진출이 막혔던 (나)는 서얼, 형평 운동의 주체인 (다)는 백정입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나) 서얼 일부가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조는 서얼 출신인 박제가·유득공·이덕무·서이수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하였습니다.

공음전은 고려의 5품 이상 고위 관료에게 지급된 토지이므로 노비와 무관하고, 골품에 따른 승진 제한은 신라의 골품제로 백정과 관계가 없습니다.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것은 재산으로 취급된 노비에 해당할 뿐 서얼과 백정은 양인 신분이었습니다.

문제 46
밑줄 그은 '국회'의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1제헌 헌법을 제정하였다.
2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가결하였다.
3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비준하였다.
4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태블릿에 담긴 자료는 조선화보(朝鮮畵報)의 화보 기사로, 제목은 "신생 국회 개회식의 역사적 광경"이고 설명에 따르면 유엔 결의에 따라 치러진 총선거로 출범한 국회의 개회식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입니다.

제헌 국회는 1948년 7월 제헌 헌법을 제정·공포하고, 그 헌법에 따른 간접 선거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같은 해 9월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가결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반면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비준은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에 이루어진 일로, 임기가 1950년에 끝난 제헌 국회의 활동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7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4·19 혁명
2부마 민주 항쟁
36월 민주 항쟁
45·18 민주화 운동
정답 및 해설

게시물 사진은 옛 전남도청 건물 모형이고, 본문에는 이 건물이 "(가) 당시 시민군의 항쟁 중심지"였으며 도청 앞 시계탑에서 매일 같은 시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린다고 적혀 있습니다.

광주 전남도청, 시민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모두 5·18 민주화 운동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19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맞서 광주에서 일어난 이 운동에서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시민군을 조직하고 전남도청을 거점으로 항쟁하였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한 1960년의 시위, 유신 체제 말기인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항쟁,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항쟁은 모두 전남도청·시민군과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48
다음 뉴스가 보도된 정부 시기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3점]
1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하였다.
2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3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4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텔레비전 뉴스의 자막은 "남북 직통 전화 개설"이고, 앵커는 분단 26년 만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을 잇는 직통 전화가 개설되어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열기 위한 대화의 통로가 마련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분단 26년째면 1971년으로,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과 직통 전화 개설이 이루어진 박정희 정부 시기입니다. 이 대화의 성과로 이듬해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사업 시작과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개최는 김대중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의 일이므로 이 시기의 통일 노력으로 볼 수 없습니다.

문제 49
다음 연설이 있었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1경부 고속도로를 준공하였다.
23저 호황으로 수출이 증가하였다.
3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4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연설에서 대통령은 "금융 실명제 실시를 위한 대통령 긴급 명령"을 두고 지하 경제와 검은 돈을 없애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 개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금융 실명제는 1993년 긴급 재정 경제 명령으로 전격 시행되었으므로 이 연설은 김영삼 정부 시기의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와 함께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를 추진하였고, 1996년에는 선진국 협의체인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습니다. 다만 임기 말인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부 고속 국도 준공(1970)과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1962~1966)은 박정희 정부,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에 힘입은 수출 증가는 전두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문제 50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가) - 삼강행실도 언해본을 편찬하였다.
2(나) - 한글 신문인 독립신물을 간행하였다.
3(다) -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4(가), (나), (다) - 창덕궁 후원에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전시 패널 "한글을 빛낸 인물을 만나다"에는 세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숙주는 1420년 세종이 설치한 학문 연구 기관인 (가)의 학사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국정운 저술에 참여해 새 문자의 반포와 보급에 기여하였고, 주시경은 1907년 국문 연구를 위해 학부에 설치한 (나)에 참여하여 문자 체계와 표기법을 연구하였으며, 정세권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던 (다)를 후원하다가 1942년 (다) 사건으로 한글 학자들과 함께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가)는 집현전, (나)는 국문 연구소, (다)는 조선어 학회입니다. 옳은 설명은 조선어 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는 것으로, 조선어 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1936년 표준어 사정안을 마련하고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다가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삼강행실도 언해본은 집현전이 폐지된 뒤인 성종 때 간행되었고,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은 서재필 등이 창간한 것으로 국문 연구소와 무관하며, 창덕궁 후원에 설치된 기구는 정조가 세운 규장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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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다음 가상 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청동 방울 흔들기
2빗살무늬 토기 만들기
3철제 농기구로 밭 갈기
4거친무늬 거울 목에 걸기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안내는 이곳이 농경과 목축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마을을 체험하는 가상 공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림에도 움집갈돌·갈판으로 곡식을 가는 모습, 그물을 손질하는 모습, 땅을 일구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를 사용하고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지어 정착 생활을 하였으며, 조·피 등을 재배하는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 밑이 뾰족하고 겉면에 빗살 모양을 새긴 빗살무늬 토기로, 곡식을 저장하거나 조리하는 데 쓰였습니다. 신석기 마을 체험 활동으로 알맞습니다.

청동 방울과 거친무늬 거울은 청동기 시대 제사장의 의례 도구이고, 철제 농기구로 밭을 가는 것은 철기 시대 이후의 모습이어서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2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다.
2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하였다.
3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다.
4읍락 간의 경계를 중시하는 책화가 있었다.
정답 및 해설

수업 장면에서 교사는 화면의 유물이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린 이 나라의 금제 허리띠 장식이라고 설명하고, 학생은 날개 달린 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들이 각각 사출도를 다스린 나라는 부여입니다. 왕이 있었으나 가들의 세력이 강해 왕권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부여에서는 수확에 감사하고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 행사인 영고를 음력 12월에 열었습니다. 이때 죄수를 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신성 지역인 소도는 삼한, 혼인 풍습인 민며느리제는 옥저,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이어서 이 나라와 맞지 않습니다.

문제 3
다음 검색창에 들어갈 왕으로 옳은 것은? [2점]
1미천왕
2장수왕
3고국천왕
4소수림왕
정답 및 해설

검색창에는 재위 기간 413년~491년이라는 정보와 함께 광개토 대왕릉비를 건립함, 도읍을 평양으로 옮김, 백제를 공격하여 한성을 함락함이라는 업적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인물은 고구려의 장수왕입니다.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414년 국내성에 능비를 세웠고, 427년에는 평양으로 천도하여 남진 정책을 본격화하였습니다. 475년에는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전사시켜 한강 유역을 장악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왕들과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미천왕은 낙랑군을 몰아냈고, 고국천왕은 진대법을 실시하였으며, 소수림왕은 불교를 수용하고 태학을 세워 율령을 반포하였습니다.

문제 4
밑줄 그은 '그날'에 해당하는 세시 풍속으로 옳은 것은? [1점]
1단오
2동지
3추석
4칠석
정답 및 해설

화면에는 견우성직녀성이 각각 별 위에 서 있고, 무리 지어 날아드는 새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 인물은 "일 년 중 한 번 직녀님을 만나는 그날", "까치와 까마귀가 많이 모여 오작교를 놓아야 저희가 만날 수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가 까치와 까마귀가 놓아 준 오작교에서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설화가 전하는 세시 풍속은 음력 7월 7일의 칠석입니다. 이날에는 여인들이 직녀성에게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비는 걸교 풍습과 책과 옷을 볕에 말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다른 세시 풍속과 혼동하지 않도록 합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씨름과 그네뛰기를 즐겼고, 동지는 팥죽을 쑤어 먹는 날이며, 추석은 음력 8월 15일에 햇곡식으로 차례를 지내고 송편을 빚는 명절입니다.

문제 5
(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왜에 칠지도를 보냈다.
2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다.
3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을 점령하였다.
4진흥왕과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다.
정답 및 해설

안내문은 "(가)이/가 도읍으로 정한 부여에서 열리는" 행사를 소개하며, 행사로 정림사지 오층 석탑 탑돌이와 궁남지 연꽃 유등 띄우기를 들고 있습니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로, 이곳으로 천도한 왕은 성왕입니다.

성왕은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으며, 중앙 관청을 정비해 중흥을 꾀했습니다. 551년에는 신라 진흥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곧 진흥왕이 이 지역을 독차지하자 이에 맞서다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나머지 사실은 다른 왕의 업적입니다. 왜에 칠지도를 보낸 것은 근초고왕, 동진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침류왕, 신라를 공격해 대야성을 점령한 것은 의자왕 때의 일입니다.

문제 6
(가)~(다)를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만화는 삼국 통일 과정의 세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가)는 고구려의 평양성이 함락된 장면, (나)는 왜군이 백강 전투에서 패배한 장면, (다)는 신라군이 기벌포에서 당군에 승리한 장면입니다.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군을 돕기 위해 온 왜군이 백강에서 나당 연합군에게 크게 패한 것이 663년이고, 나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668년입니다. 이후 나당 전쟁이 벌어져 675년 매소성 전투에 이어 676년 기벌포에서 신라가 당의 수군을 격파하면서 삼국 통일이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왜군이 백강에서 패한 일 → 고구려 평양성이 함락된 일 → 신라군이 기벌포에서 당군을 물리친 일이 됩니다.

문제 7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국학을 설립하였다.
2우산국을 정벌하였다.
3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4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하였다.
정답 및 해설

선생님은 밑줄 그은 '이 왕'을 문무왕의 아들이라 소개하며, 동해에 작은 산이 떠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견대로 가 보니 용이 나타나 "산에 있는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면 천하가 평온해질 것"이라 말했고, 그 피리를 만파식적이라 부르며 나라의 보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설화의 주인공은 신문왕입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 김흠돌의 난을 진압하며 진골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682년에는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립하였고, 관료전을 지급하는 대신 녹읍을 폐지하였으며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 조직을 정비하였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시기가 다릅니다. 우산국 정벌은 지증왕 때 이사부가 수행했고, 천리장성 축조는 고구려에서 당의 침입에 대비해 이루어졌으며,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한 것은 진흥왕입니다.

문제 8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은 "백제 무왕이 건립한 사찰의 터에는 목탑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 남아 있으며, 이 석탑의 복원 공사 중에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에 대한 내용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탑으로, 기둥과 지붕돌을 돌로 다듬어 목탑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2009년 해체·복원 과정에서 나온 금제 사리봉영기를 통해 639년에 탑이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보기로 함께 제시된 다른 탑은 시대와 나라가 다릅니다. 경천사지 십층 석탑은 원의 영향을 받은 고려 후기 석탑, 화엄사 사사자 삼층 석탑은 통일 신라의 이형 석탑, 분황사 모전 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신라 선덕 여왕 때의 탑입니다.

문제 9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분청사기를 만드는 도공
2녹읍을 지급받는 진골 귀족
3장시에서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
4상평통보로 물건값을 치르는 농민
정답 및 해설

학습지에는 장소가 청해진 유적으로 적혀 있고, "완도에 청해진이 설치된 이 시기에는 장보고가 당,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주도하였다"는 설명과 함께 장보고 기념관, 장도의 목책열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청해진은 828년 흥덕왕 때 설치되었으므로 이 시기는 통일 신라, 그중에서도 신라 하대에 해당합니다.

이 무렵 녹읍은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신문왕 때 관료전을 주며 폐지했던 녹읍이 757년 경덕왕 때 부활하여, 진골 귀족들이 다시 토지와 노동력을 함께 지배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모습은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에 유행한 자기이고, 장시에서 소설을 읽어 주던 전기수와 화폐로 널리 쓰인 상평통보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입니다.

문제 10
다음 특별전에 전시될 문화유산으로 적절지 않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특별전 안내 벽면에는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옆의 지도에는 동모산과 함께 상경·중경·동경·서경·남경의 5경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5경 15부 62주의 지방 제도를 갖춘 나라는 발해입니다.

발해의 문화유산으로는 고구려 양식을 이은 궁궐 지붕 장식인 치미, 굵고 힘찬 선이 특징인 연꽃무늬 수막새,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이불병좌상 등이 있습니다. 특히 수막새와 온돌 유적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보여 주는 근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반면 성덕 대왕 신종은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려 만들기 시작해 혜공왕 때 완성한 통일 신라의 범종으로,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립니다. 발해를 주제로 한 이 특별전에는 전시될 수 없는 유물입니다.

문제 11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신하는 "견훤이 나주로 도망쳐 와 귀부하기를 청한다"고 아뢰고, 왕은 "장군 유금필 등을 보내 정중히 맞아오도록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들 신검에게 금산사에 유폐되었던 견훤이 탈출해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순한 935년의 일입니다.

연표는 887년 진성 여왕 즉위 - 896년 적고적의 난 - 918년 고려 건국 - 927년 공산 전투 - 936년 후삼국 통일로 이어집니다. 935년은 공산 전투와 후삼국 통일 사이, 즉 연표의 마지막 구간에 놓입니다.

견훤의 귀순과 같은 해 신라 경순왕의 항복이 이어졌고, 이듬해인 936년 왕건은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무너뜨리며 후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문제 12
밑줄 그은 '전쟁'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귀주 대첩의 의의를 파악한다.
2위화도 회군의 결과를 조사한다.
3안시성 전투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
4진포 전투에서 새롭게 사용된 무기를 찾아본다.
정답 및 해설

기자는 눈앞의 성벽을 두고 "북방 세력의 침입에 대비하여 강감찬의 건의개경 외곽에 쌓은 나성의 일부이며, 고려와 거란의 전쟁이 끝난 후 현종 20년에 완공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전쟁'은 거란의 침입입니다.

거란은 세 차례 고려를 침입했는데, 1차 때는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3차 침입 때인 1019년 강감찬이 소배압의 10만 대군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였습니다. 이 귀주 대첩으로 거란의 침입은 끝나고 고려·송·거란 사이에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탐구 주제는 상대가 다릅니다.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 요동 정벌 과정에서 이성계가 일으킨 사건이고, 안시성 전투는 당의 침입에 맞선 고구려의 항쟁이며, 진포 전투에서 최무선이 화포를 사용한 상대는 왜구였습니다.

문제 13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1점]
1광종
2문종
3성종
4예종
정답 및 해설

퀴즈에 제시된 세 단계 힌트는 국자감 정비, 건원중보 발행,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입니다. 세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고려의 왕은 성종입니다.

성종은 즉위 직후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을 통치의 기준으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2성 6부의 중앙 관제와 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또한 개경에 국립 교육 기관인 국자감을 정비해 유학 교육을 진흥하였고,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를 만들어 유통을 시도하였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왕들과 구분해 두면 좋습니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를 시행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한 왕은 광종, 전시과를 정비해 경정 전시과를 마련한 왕은 문종,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를 두고 여진 정벌 이후 동북 9성을 쌓은 왕은 예종입니다.

문제 14
다음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공인이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였다.
2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3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기능하였다.
4고추와 담배가 상품 작물로 재배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두 사람은 " 사신단이 곧 수도 개경에 도착한다", "사신단의 규모가 엄청나고 가져온 물품도 상당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수도가 개경이고 송과 사신 왕래가 활발한 시기이므로 고려 시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를 통해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드는 국제 무역을 전개하였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코리아'라는 이름이 서방에 알려졌다고 전해집니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대동법 시행으로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던 공인의 활동, 전국으로 퍼진 모내기법, 상품 작물로 재배된 고추와 담배는 모두 고려 시대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1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윤관이 별무반 편성을 건의하다
2김윤후가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하다
3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적군을 물리치다
4서희가 외교 담판을 통해 강동 6주 지역을 확보하다
정답 및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고려, 몽골에 맞서 싸우다'이고, 기획 의도는 약 30년간 전개된 고려의 대몽 항쟁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구성은 1부 '사신 저고여의 피살을 구실로 몽골이 침입하다', 2부 '고려 조정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다'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3부에는 강화 천도 이후 전개된 대몽 항쟁의 사건이 들어가야 합니다. 몽골의 2차 침입 때 승려 김윤후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고 물리친 일이 이에 해당합니다.

나머지는 상대가 다르거나 시기가 앞선 사건입니다. 별무반 편성을 건의한 윤관은 여진, 강동 6주를 확보한 서희와 살수에서 크게 이긴 을지문덕은 각각 거란, 를 상대한 인물이며, 을지문덕의 활약은 고구려 때의 일입니다.

문제 16
(가)에 들어갈 가상 우표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학생이 "태조 왕건이 세운 국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우표 도안을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빈칸에는 고려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미 붙어 있는 우표는 수월관음도, 팔만대장경판,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모두 고려의 것입니다.

남은 자리에 어울리는 것은 청자 상감 운학문 매병입니다. 학과 구름 무늬를 상감 기법으로 새겨 넣은 이 매병은 12세기 이후 발달한 고려 상감 청자의 대표작입니다.

나머지 도안은 시대가 다릅니다. 산수무늬 벽돌은 백제, 도기 바퀴장식 뿔잔은 가야, 황남대총 금관은 신라의 문화유산입니다.

문제 17
밑줄 그은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
2독서삼품과가 실시되었다.
3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4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무덤에 대해 "기철 등 친원파를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한 왕의 무덤", "왕비 노국 대장 공주의 무덤"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두 무덤이 나란히 있는 이 유적은 공민왕릉(현릉·정릉)이며, 밑줄 그은 왕은 공민왕입니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 자주 정책을 폈습니다.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 내정 간섭 기구를 없앴으며, 유인우 등을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았습니다. 아울러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신돈을 등용해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으려 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시기의 사실입니다. 동북 9성 축조는 고려 예종 때 윤관의 여진 정벌 결과이고,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때,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조선 숙종 때의 일입니다.

문제 18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설명에 따르면 (가) 인물은 경복궁이라는 궁궐 이름을 지었고, 그 이름에는 "국왕과 백성이 만년토록 태평하며 큰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새 왕조의 통치 방향을 제시한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습니다. 이에 해당하는 인물은 정도전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한 대표적인 개국 공신으로, 한양 천도와 궁궐·성문의 이름 짓기 등 새 수도 설계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며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확립하고자 하였고, 재상 중심의 정치 운영을 주장하다가 제1차 왕자의 난 때 제거되었습니다.

함께 제시된 다른 인물들은 시기가 다릅니다. 북벌론을 내세운 서인의 영수 송시열, 신해통공을 건의한 정조 대의 채제공, 고려 말 온건 개혁파로 조선 건국에 반대하다 죽임을 당한 정몽주입니다.

문제 19
(가)에 들어갈 기구로 옳은 것은? [2점]
1사헌부
2의금부
3춘추관
4홍문관
정답 및 해설

용어 해설의 개요는 "조선 시대에 왕명을 받아 반역 사건강상죄에 대한 처결을 담당한 사법 기구"이고, 주요 관원으로 죄인 심문 및 문서 작성을 맡은 도사, 죄인 체포·압송과 형 집행을 맡은 나장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기구는 의금부입니다.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 사법 기관으로, 일반 범죄를 다루는 형조와 달리 왕권에 도전하는 대역·모반 사건이나 유교 윤리를 저버린 강상죄 같은 중대 범죄를 국왕의 명을 받아 직접 다스렸습니다.

나머지 기구는 역할이 다릅니다. 사헌부는 관리의 비리 감찰과 언론을 맡았고, 춘추관은 실록 등 역사서 편찬을 담당했으며, 홍문관은 경연을 주관하며 국왕의 학문·정책 자문에 응하였습니다.

문제 2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1직전법을 시행함
2탕평비를 건립함
3교정도감을 설치함
4금난전권을 폐지함
정답 및 해설

카드 뒷면에 '조선 제7대 왕'이라 적혀 있고, 업적으로 단종을 몰아냄, 경연을 폐지함, 진관 체제를 실시함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계유정난으로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이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집현전과 경연을 없애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였으며, 지방 방어를 위해 진관 체제를 정비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경제 면에서는 세습되며 부족해진 과전을 정리하기 위해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들의 일입니다. 탕평비 건립은 영조, 금난전권 폐지(신해통공)는 정조 때이며, 교정도감 설치는 고려 무신 집권기 최충헌이 한 일입니다.

문제 21
(가) 시기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병자호란이 일어났다.
2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훈련도감이 창설되었다.
4외규장각 도서가 약탈되었다.
정답 및 해설

왼쪽 그림은 "광해군이 유배 가는 모습"을 그린 장면이므로 인조반정(1623)을 가리키고, 오른쪽 그림은 '북벌' 깃발과 함께 "청을 쳐서 삼전도의 치욕을 씻자"라고 외치는 장면이므로 효종의 북벌 추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가)에는 인조 즉위 이후부터 효종의 북벌 추진 이전 사이의 사실이 들어가야 합니다. 인조 대에 청이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침입한 병자호란(1636)이 일어났고, 그 결과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면서 북벌론이 대두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4군 6진 개척은 세종 때, 훈련도감 창설은 임진왜란 중인 선조 때로 모두 앞선 시기이며,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1866년 병인양요 때의 일로 훨씬 뒤의 사건입니다.

문제 22
(가)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3점]
1신문고를 설치하였다.
2계미자를 주조하였다.
3칠정산을 편찬하였다.
4호패법을 마련하였다.
정답 및 해설

웹툰 화면의 제목은 '국왕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한 (가)'이고, 1화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하다', 2화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하다', 3화 '6조 직계제를 실시하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 왕은 태종입니다.

태종은 6조 직계제를 시행해 의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국왕이 직접 정무를 챙겼으며, 사병을 혁파하고 호패법을 마련해 인구와 조세·군역 대상을 파악하였습니다. 또한 백성의 억울함을 살핀다는 명분으로 신문고를 설치하고, 금속 활자인 계미자를 주조하였습니다.

업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칠정산 편찬입니다. 칠정산은 세종 때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행을 계산해 만든 역법서로, 태종의 업적이 아닙니다.

문제 23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자격루
2측우기
3혼천의
4앙부일구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안내 문구는 종묘 앞에 처음 설치된 기기이며, 영침(그림자를 만드는 바늘)의 그림자로 시각을 표시하고 동지·하지 같은 절기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 자막도 "종묘 앞에 새 기기 설치"입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세종 때 만들어진 앙부일구입니다. 솥이 하늘을 보고 있는 듯한 오목한 반구 모양의 해시계로, 안쪽 면에 시각선과 절기선이 함께 새겨져 있어 그림자의 위치로 시각을, 길이·높낮이로 절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백성이 볼 수 있도록 종묘 앞과 혜정교에 설치한 공중 시계였다는 점이 결정적 단서입니다.

물시계인 자격루는 그림자가 아니라 물의 흐름으로 시각을 알리는 자동 시보 장치이고, 측우기는 시각이 아니라 강우량을 재는 기구이며, 혼천의는 천체의 운행을 관측·재현하는 기기여서 그림자로 시각과 절기를 함께 나타낸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문제 24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발해고를 저술하였다.
2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3백운동 서원을 건립하였다.
4소격서 폐지를 건의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된 책의 이름표는 기묘유적이고, 설명에는 기묘사화의 전말을 다루었으며 현량과 실시와 위훈 삭제를 주장한 (가)가 관직에서 쫓겨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중종 때 등용되어 현량과 실시와 중종반정 공신의 위훈 삭제를 밀어붙이다 훈구 세력의 반발로 기묘사화(1519)에 희생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그는 도학 정치를 내세우며 도교 제사를 주관하던 관청인 소격서를 폐지하자고 강력히 건의하여 관철시켰습니다.

발해고를 지은 이는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 대동여지도를 만든 이는 김정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이는 주세붕으로 모두 기묘사화와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5
다음 답사가 이루어진 장소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1탄금대
2행주산성
3수원 화성
4울산 왜성
정답 및 해설

답사 안내문의 제목은 "임진왜란의 격전지를 가다"이고, 답사 개요에도 임진왜란 중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유적을 답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전투와 무관한 장소를 골라야 합니다.

탄금대는 1592년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패한 곳, 행주산성은 권율이 관군과 백성이 함께 왜군의 대군을 물리친 행주 대첩의 현장, 울산 왜성은 왜군이 쌓은 성으로 조·명 연합군과 공방전이 벌어진 곳이어서 모두 임진왜란 격전지에 해당합니다.

반면 수원 화성은 임진왜란과 200년의 시차가 있는 정조 때 축조된 계획도시의 성곽으로, 정약용의 설계와 거중기 등 새 기술이 동원된 유산입니다. 임진왜란 전투가 벌어진 곳이 아니므로 이 답사 장소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제 26
(가)에 들어갈 제도로 옳은 것은? [1점]
1과전법
2균역법
3대동법
4영정법
정답 및 해설

게시판 답변 세 줄이 그대로 단서입니다. 영조 때 제정되었고, 군포 납부액을 2필에서 1필로 줄였으며, 어장세·소금세 등으로 줄어든 수입을 보충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군포 부담을 절반으로 낮춘 이 제도는 1750년 영조가 시행한 균역법입니다. 줄어든 재정은 어장세·염세·선박세와 지주에게 부과한 결작(토지 1결당 쌀 2두), 선무군관포 등으로 메웠습니다.

과전법은 고려 말 관리에게 수조권을 나누어 준 토지 제도, 대동법은 공납을 토지 결수에 따라 쌀·베·돈으로 바꾸어 걷은 제도, 영정법은 전세를 풍흉과 관계없이 토지 1결당 4~6두로 고정한 제도로 모두 군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7
(가)에 들어갈 그림으로 옳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해설사는 두 그림이 조선 후기 풍속화가 신윤복의 작품이며, 그는 양반의 풍류와 여성의 생활 등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제시된 한 점은 단옷날 여인들이 냇가에서 몸을 씻고 그네를 타는 장면인 단오풍정입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신윤복의 또 다른 작품이 들어가야 합니다. 달빛 아래 담장 옆에서 등불을 든 남녀가 만나는 장면을 그린 월하정인이 이에 해당하며, 남녀 간의 애정과 양반가의 풍류를 은근하게 담아낸 신윤복 화풍의 대표작입니다.

제시된 다른 그림 가운데 씨름하는 사람과 구경꾼을 둥글게 배치한 씨름도는 김홍도, 길에서 만난 양반에게 신분이 낮은 사람이 갓을 벗고 예를 표하는 장면인 노상알현도는 김득신의 풍속화이며, 바위에 기대어 물을 바라보는 선비를 그린 고사관수도는 조선 전기 문인화가 강희안의 작품이라 신윤복과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28
밑줄 그은 '봉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진압되었다.
2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
3서북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4흥선 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지도는 1862년 진주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의 주요 지점을 표시한 것으로, 유계춘을 중심으로 모인 농민들이 축곡에서 모의하고 수곡에서 읍회를 연 뒤 덕산 장시를 출발해 진주성으로 진격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도에도 수곡·축곡·시천(덕산 장시)·진주성이 차례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진주 농민 봉기는 삼정의 문란, 특히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의 출발점입니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정·군정·환곡의 폐단을 바로잡을 임시 기구인 삼정이정청을 설치했습니다.

김부식의 관군에게 진압된 것은 고려 시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고, 서북인 차별에 반발한 것은 1811년 홍경래의 난이며, 흥선 대원군의 재집권을 불러온 것은 1882년 임오군란이어서 진주에서 일어난 이 봉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29
(가) 인물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거중기를 설계하였다.
2몽유도원도를 그렸다.
3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4열하일기를 저술하였다.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답사 장소는 남양주에 있는 (가)의 유적지이며, 가옥의 이름이 여유당이고 (가)는 목민심서 등 많은 책을 저술한 실학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사진 속 건물에도 '여유당(與猶堂)'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여유당은 정약용의 생가이자 그의 호를 딴 당호로, 그는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된 18년 동안 목민심서·경세유표·흠흠신서 등을 지었습니다.

정약용은 정조의 명으로 수원 화성을 쌓을 때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는 거중기를 설계하여 공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였습니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이는 조선 전기 화가 안견, 동의보감을 완성한 이는 광해군 때 허준, 열하일기를 지은 이는 청에 다녀온 박지원으로 모두 다른 인물입니다.

문제 30
다음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병인박해가 일어났다.
2장용영이 창설되었다.
3척화비가 건립되었다.
4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에서 두 관리는 미군이 포를 쏘며 손돌목을 지나갔다고 걱정하면서,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이 광성보에서 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손돌목과 광성보, 어재연이라는 단서는 1871년 신미양요를 가리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미군이 강화도를 침입하자 어재연 부대는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했고, 미군은 결국 통상 요구를 관철하지 못한 채 물러갔습니다.

따라서 대화 이후에 있었던 사실은 척화비 건립입니다. 흥선 대원군은 신미양요 직후 종로와 전국 각지에 비석을 세워 서양과의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병인박해(1866)는 신미양요보다 앞선 일이고, 장용영 창설은 정조 때, 화통도감 설치는 고려 말 최무선의 건의에 따른 일이라 시기가 훨씬 이릅니다.

문제 31
밑줄 그은 '사절단'으로 옳은 것은? [2점]
1보빙사
2수신사
3영선사
4조사 시찰단
정답 및 해설

화면의 삽화는 1883년 미국 신문에 실린 것으로, 푸트 미국 공사의 조선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된 민영익 등 사절단이 미국에 가서 아서 대통령을 만나는 장면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뒤 미국에 파견된 이 사절단이 보빙사입니다.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서광범·유길준 등이 참여했고, 아서 대통령을 접견한 뒤 미국의 산업 시설과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와 우정총국 설치 등 근대 문물 도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수신사와 조사 시찰단은 일본에 보낸 사절이고, 영선사는 김윤식을 중심으로 청의 톈진에 가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워 온 유학생단이므로 미국에 파견되었다는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문제 32
(가)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신문 기사의 제목은 "(가), 쓰시마섬에서 순국하다"이고, 본문은 을사늑약에 저항하여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인물이 관군이 진압하러 오자 같은 동포끼리는 서로 죽일 수 없다며 전투를 중단하고 체포되었으며, 서울로 압송된 뒤 쓰시마섬에 끌려가 최후를 맞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태인 거병, 관군 앞에서의 전투 중단, 쓰시마섬 순국이라는 세 단서가 모두 가리키는 인물은 최익현입니다. 그는 흥선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하고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한 대표적 위정척사 계열 유생으로, 을사늑약 이후 임병찬 등과 함께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제시된 다른 인물 가운데 신돌석은 을사의병 때 활약한 평민 출신 의병장,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 홍범도는 봉오동·청산리에서 일본군을 격파한 독립군 지휘관으로, 쓰시마섬 순국이라는 기사 내용과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33
밑줄 그은 '비상 수단'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갑신정변
2을미사변
3삼국 간섭
4아관 파천
정답 및 해설

제시된 자료는 박영효의 회고로,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를 살해하고 국왕을 보호하기 위해 비상 수단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명단에는 홍영식(모의를 총괄한 제1인자), 박영효(실행 총지휘), 서광범(거사 계획 수립), 김옥균(일본 공사관과의 교섭 및 통역), 서재필(병사 통솔)이 역할과 함께 적혀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급진 개화파의 핵심 인물로, 이 명단 자체가 사건을 특정하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변을 일으키고 새 정부를 세우려 한 사건이 갑신정변(1884)입니다. 그러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끝났습니다.

왕비가 일본 낭인에게 시해된 을미사변(1895), 일본의 랴오둥반도 반환을 강요한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 간섭(1895),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 파천(1896)은 모두 급진 개화파의 거사와 무관합니다.

문제 34
다음 문서가 작성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문서는 영국 공관에 보낸 항의 문건으로, 귀국(영국)이 거문도에 뜻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 섬은 우리나라의 땅이므로 다른 나라가 점유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거문도 사건(1885~1887) 당시 조선 정부가 영국에 보낸 문서입니다.

거문도 사건은 갑신정변 뒤 조선을 둘러싼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영국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일입니다.

연표는 1863년 고종 즉위 — (가) — 1876년 강화도 조약 — (나) — 1882년 임오군란 — (다) — 1894년 갑오개혁 — (라) —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어집니다.

1885년은 임오군란(1882)과 갑오개혁(1894) 사이에 놓이므로, 이 문서가 작성된 시기는 임오군란과 갑오개혁 사이의 구간에 해당합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학교로 옳은 것은? [2점]
1대성 학교
2원산 학사
3육영 공원
4이화 학당
정답 및 해설

역사 인물 카드에는 생몰 1878년~1938년, 호는 도산, 주요 활동으로 신민회 결성, (가) 설립,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 조직, 흥사단 창설이 적혀 있습니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안창호는 신민회의 실력 양성 노선에 따라 인재를 길러낼 학교를 세웠는데, 평양에 설립한 학교가 대성 학교(1908)입니다. 신민회는 평양의 이 학교와 정주의 오산 학교를 통해 민족 교육을 실시했습니다.

원산 학사는 1883년 원산 주민들이 세운 최초의 근대식 사립 학교이고, 육영 공원은 1886년 정부가 세워 헐버트 등 외국인 교사를 초빙한 관립 학교이며, 이화 학당은 1886년 선교사 스크랜턴이 세운 여성 교육 기관으로 모두 안창호와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36
(가), (나) 사이의 시기에 체결된 조약으로 옳은 것은? [2점]
1톈진 조약
2정미 7조약
3제물포 조약
4시모노세키 조약
정답 및 해설

두 신문 기사의 표제를 보면 (가)는 국외 중립 선언 무효화되다라는 제목 아래 한일 의정서를, (나)는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다라는 제목 아래 한일 병합 조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일 의정서는 러일 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에 강요된 것으로, 대한 제국이 선언한 국외 중립을 무력화하고 일본이 군사적 필요에 따라 한반도의 요지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조약입니다. 한일 병합 조약은 1910년에 체결되어 국권이 완전히 상실되었습니다.

따라서 1904년과 1910년 사이에 체결된 조약을 찾아야 하며,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뒤 1907년에 강요된 정미 7조약(한일 신협약)이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이 조약의 부수 각서로 대한 제국 군대가 해산되었습니다.

톈진 조약은 갑신정변 뒤 1885년 청과 일본이 맺은 것이고, 제물포 조약은 임오군란 직후 1882년, 시모노세키 조약은 청일 전쟁의 결과인 1895년의 조약이므로 모두 두 시점 사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문제 37
다음 시나리오의 상황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동학을 창시한 최제우가 처형되었다.
2동학 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였다.
3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삼례 집회가 열렸다.
4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고부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시나리오는 전주성 안 선화당에서 농민군 대장 전봉준과 전라 감사 김학진이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김학진이 일본군이 궁궐을 점령하여 국가에 큰 위기가 닥쳤다고 말하고, 전봉준은 청군과 일본군이 들어와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이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추진하던 1894년 여름의 상황으로,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을 계기로 농민군이 다시 봉기하는 제2차 봉기 직전 시점입니다.

이후 남접과 북접이 논산에서 합류해 서울로 북상했으나,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과 관군의 우세한 화력에 크게 패하면서 동학 농민 운동은 좌절되었습니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의 처형(1864), 교조 신원을 요구한 삼례 집회(1892), 조병갑의 탐학에 맞선 고부 농민 봉기(1894년 초)는 모두 이 대화 장면보다 앞선 일입니다.

문제 38
다음 장면에 나타난 운동으로 옳은 것은? [1점]
1국채 보상 운동
2문자 보급 운동
3물산 장려 운동
4민립 대학 설립 운동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인물은 일본에 진 빚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의연금을 모으고 있으며, 모은 돈을 기성회에 보내 국권 수호에 힘을 보태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에 주변 사람들이 20전을 내겠다, 은가락지를 내겠다며 호응합니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아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자는 운동이 국채 보상 운동(1907)입니다. 대구에서 서상돈 등의 발의로 시작되어 국채 보상 기성회가 조직되고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후원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남성은 금연으로, 여성은 비녀와 가락지를 내놓는 방식으로 참여한 것이 이 운동의 특징이며, 통감부의 방해와 모금액 횡령 누명 사건으로 결국 중단되었습니다.

문자 보급 운동은 1930년대 문맹 퇴치 운동,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대 국산품 애용 운동,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1920년대 고등 교육 기관 설립 운동으로,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와는 다릅니다.

문제 39
밑줄 그은 ㉠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1극장인 원각사에 세워졌다.
2덕수궁에 중명전이 건립되었다.
3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되었다.
4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었다.
정답 및 해설

대화 장면의 사진은 동대문에서 열린 전차 개통식에 참석한 대한 제국의 고위 관리들을 찍은 것으로 설명되어 있고, 밑줄 그은 부분은 대한 제국 시기에 도입된 근대 문물을 가리킵니다. 대한 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존속했으므로 이 기간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면 됩니다.

박문국에서 한성순보가 발행된 것은 1883년의 일로, 갑신정변으로 박문국이 파괴되기 전 개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입니다. 대한 제국 수립보다 10여 년 앞서므로 이 시기의 사례로 볼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대한 제국 시기에 해당합니다.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는 1908년에 세워졌고, 덕수궁의 중명전은 1900년 무렵 황실 도서관 겸 서양식 건물로 지어졌으며,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 철도는 1905년에 개통되었습니다.

문제 40
다음 상황 이후에 일어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6·10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2헤이그 특사가 파견되었다.
3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었다.
4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호외를 뿌리며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께서 승하하셨다고 외치는 장면입니다.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순종이므로, 이 장면은 순종이 세상을 떠난 1926년 4월의 상황입니다.

순종의 인산일에 맞추어 학생과 사회주의 계열이 준비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1926년 6월 10일6·10 만세 운동입니다. 이 운동의 준비 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이 협력한 경험은 이후 신간회 창립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1907)과 토지 조사 사업 실시(1910년대 초),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은 모두 순종 승하 이전의 일이므로 이 장면 이후의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1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경성 제국 대학에 다니는 학생
2제복을 입고 칼을 찬 헌병 경찰
3조선책략 유포에 반발하는 유생
4국민 징용령에 의해 끌려가는 청년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문학 작품은 김동인의 소설 「태형」으로, 감옥에서 태형 구십 대를 언도받은 노인이 매를 맞으며 부르짖는 장면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해설 부분에는 이 소설이 일제에 의해 조선 태형령이 시행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조선 태형령은 1912년에 제정되어 1920년에 폐지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10년대의 무단 통치기에 해당합니다.

이 시기에는 헌병이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제가 시행되어, 제복을 입고 칼을 찬 헌병 경찰이 재판 없이 처벌하는 즉결 처분권을 행사했습니다. 교원과 관리까지 제복에 칼을 차고 다닌 것도 이 시기의 모습입니다.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에 설립되었고, 국민 징용령은 1939년 민족 말살 통치기의 인력 수탈 조치이며, 조선책략 유포에 대한 유생들의 반발은 1880년대 개항기의 일이므로 모두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2
(가)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
2만민 공동회를 개최하였다.
3신흥 강습소를 설립하였다.
4잡지 어린이를 발간하였다.
정답 및 해설

할머니가 보여 주는 육아 일기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3·1 운동을 계기로 상하이에 수립된 (가)가 창사로 옮겼을 때 합류해 독립운동을 했고, 김구·이시영 선생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1919년 상하이에서 수립되었고 김구·이시영이 활동했으며 중일 전쟁 이후 창사 등지로 근거지를 옮긴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입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 공채를 발행했고, 국내와의 비밀 연락을 위해 연통제와 교통국을 운영했습니다.

만민 공동회 개최는 독립 협회, 신흥 강습소 설립은 신민회 인사들이 서간도에 세운 것이며, 잡지 어린이 발간은 방정환이 이끈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이므로 임시 정부의 활동과는 구분됩니다.

문제 43
(가)에 들어갈 군사 조직으로 옳은 것은? [2점]
1대한 독립군
2북로 군정서
3조선 의용대
4조선 혁명군
정답 및 해설

홀로그램 전시 장면에서 왼쪽 인물은 김원봉으로 "의열단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인 (가)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오른쪽 인물은 박차정으로 "근우회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하고 (가)의 부녀 복무 단장으로 무장 투쟁에 참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실제 부부 사이의 독립운동가입니다.

김원봉이 1938년 중국 우한에서 조직한 조선 의용대가 바로 중국 관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입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보 수집, 포로 심문, 후방 교란 등 항일 선전과 지원 활동을 맡았고, 박차정은 이 부대의 부녀 복무 단장을 맡았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만주 지역에서 활동한 부대입니다. 홍범도가 이끌며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부대, 김좌진이 이끌며 청산리 대첩을 이끈 북간도의 부대, 양세봉이 이끌며 남만주에서 조선 혁명당 산하로 활동한 부대는 모두 만주 무장 투쟁 계열로 중국 관내 부대가 아닙니다.

문제 44
(가) 지역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운요호 사건의 과정을 검색한다.
2삼별초의 최후 항쟁지를 조사한다.
3고려 왕릉이 조성된 지역을 찾아본다.
4대한 제국 칙령 제41호의 내용을 파악한다.
정답 및 해설

화면에 제시된 단어들은 삼성혈, 관덕정, 탐라총관부, 탐라국, 해녀 항쟁, 4·3 사건, 이재수의 난, 고산리, 알뜨르 비행장, 송악산 동굴 진지, 추사 유배지, 하멜, 이중섭, 김만덕입니다. 이 단어들을 섬 모양으로 배치했다는 설명까지 더하면 (가) 지역은 제주도입니다.

제주도는 삼성혈 건국 설화와 탐라국, 원 간섭기의 탐라총관부, 조선 후기 하멜 표류와 김만덕, 대한 제국기의 이재수의 난, 일제의 알뜨르 비행장·송악산 동굴 진지, 해방 후 4·3 사건까지 시대별 유적과 사건이 두루 남아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탐구 활동은 삼별초의 최후 항쟁지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 용장성으로 옮겼다가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 항파두리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마지막까지 대몽 항쟁을 벌였습니다.

운요호 사건은 강화도, 고려 왕릉이 집중 조성된 곳은 강화도와 개성, 대한 제국 칙령 제41호는 울릉도와 독도에 관한 것이므로 제주도 탐구 활동으로는 맞지 않습니다.

문제 45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가) - 고려 시대에 공음전을 지급받았다.
2(나) - 일부가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
3(다) - 골품에 따라 관직 승진의 제한을 받았다.
4(가), (나), (다) - 매매, 상속,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탐구 보고서의 주제는 "사회적 차별에 맞선 사람들"이고, 표에는 세 시대의 사례가 정리되어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장군과 재상에 어찌 씨가 있겠는가?"라며 만적을 비롯한 많은 (가)가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관직을 제한하는 법을 풀어주십시오."라는 상소를 올려 (나)에 대한 차별 폐지를 요청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형평사를 조직해 (다)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하였습니다.

만적은 최충헌의 사노비였으므로 (가)는 노비, 적서 차별로 관직 진출이 막혔던 (나)는 서얼, 형평 운동의 주체인 (다)는 백정입니다.

따라서 옳은 설명은 (나) 서얼 일부가 규장각 검서관에 기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정조는 서얼 출신인 박제가·유득공·이덕무·서이수를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하였습니다.

공음전은 고려의 5품 이상 고위 관료에게 지급된 토지이므로 노비와 무관하고, 골품에 따른 승진 제한은 신라의 골품제로 백정과 관계가 없습니다. 매매·상속·증여의 대상이 된 것은 재산으로 취급된 노비에 해당할 뿐 서얼과 백정은 양인 신분이었습니다.

문제 46
밑줄 그은 '국회'의 활동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3점]
1제헌 헌법을 제정하였다.
2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가결하였다.
3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비준하였다.
4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태블릿에 담긴 자료는 조선화보(朝鮮畵報)의 화보 기사로, 제목은 "신생 국회 개회식의 역사적 광경"이고 설명에 따르면 유엔 결의에 따라 치러진 총선거로 출범한 국회의 개회식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1948년 5·10 총선거로 구성된 제헌 국회입니다.

제헌 국회는 1948년 7월 제헌 헌법을 제정·공포하고, 그 헌법에 따른 간접 선거로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같은 해 9월 반민족 행위 처벌법을 가결해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반면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비준은 6·25 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조약이 체결되고 이듬해에 이루어진 일로, 임기가 1950년에 끝난 제헌 국회의 활동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7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4·19 혁명
2부마 민주 항쟁
36월 민주 항쟁
45·18 민주화 운동
정답 및 해설

게시물 사진은 옛 전남도청 건물 모형이고, 본문에는 이 건물이 "(가) 당시 시민군의 항쟁 중심지"였으며 도청 앞 시계탑에서 매일 같은 시각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린다고 적혀 있습니다.

광주 전남도청, 시민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모두 5·18 민주화 운동을 가리키는 표지입니다. 1980년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에 맞서 광주에서 일어난 이 운동에서 시민들은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시민군을 조직하고 전남도청을 거점으로 항쟁하였습니다.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 선거에 항거한 1960년의 시위, 유신 체제 말기인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항쟁,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항쟁은 모두 전남도청·시민군과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48
다음 뉴스가 보도된 정부 시기의 통일 노력으로 옳은 것은? [3점]
1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하였다.
2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다.
3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4최초로 남북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텔레비전 뉴스의 자막은 "남북 직통 전화 개설"이고, 앵커는 분단 26년 만에 남측 자유의 집과 북측 판문각을 잇는 직통 전화가 개설되어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열기 위한 대화의 통로가 마련되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분단 26년째면 1971년으로, 남북 적십자 예비회담과 직통 전화 개설이 이루어진 박정희 정부 시기입니다. 이 대화의 성과로 이듬해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3대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되었습니다.

금강산 관광 사업 시작과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 개최는 김대중 정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노태우 정부의 일이므로 이 시기의 통일 노력으로 볼 수 없습니다.

문제 49
다음 연설이 있었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으로 옳은 것은? [2점]
1경부 고속도로를 준공하였다.
23저 호황으로 수출이 증가하였다.
3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4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정답 및 해설

연설에서 대통령은 "금융 실명제 실시를 위한 대통령 긴급 명령"을 두고 지하 경제와 검은 돈을 없애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 개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금융 실명제는 1993년 긴급 재정 경제 명령으로 전격 시행되었으므로 이 연설은 김영삼 정부 시기의 것입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융 실명제와 함께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 지방 자치제 전면 실시를 추진하였고, 1996년에는 선진국 협의체인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습니다. 다만 임기 말인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국제 통화 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경부 고속 국도 준공(1970)과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추진(1962~1966)은 박정희 정부, 저유가·저금리·저달러의 3저 호황에 힘입은 수출 증가는 전두환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입니다.

문제 50
(가)~(다)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가) - 삼강행실도 언해본을 편찬하였다.
2(나) - 한글 신문인 독립신물을 간행하였다.
3(다) -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
4(가), (나), (다) - 창덕궁 후원에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전시 패널 "한글을 빛낸 인물을 만나다"에는 세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숙주는 1420년 세종이 설치한 학문 연구 기관인 (가)의 학사로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국정운 저술에 참여해 새 문자의 반포와 보급에 기여하였고, 주시경은 1907년 국문 연구를 위해 학부에 설치한 (나)에 참여하여 문자 체계와 표기법을 연구하였으며, 정세권은 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던 (다)를 후원하다가 1942년 (다) 사건으로 한글 학자들과 함께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가)는 집현전, (나)는 국문 연구소, (다)는 조선어 학회입니다. 옳은 설명은 조선어 학회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였다는 것으로, 조선어 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1936년 표준어 사정안을 마련하고 우리말 큰사전 편찬을 추진하다가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강제 해산되었습니다.

삼강행실도 언해본은 집현전이 폐지된 뒤인 성종 때 간행되었고,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은 서재필 등이 창간한 것으로 국문 연구소와 무관하며, 창덕궁 후원에 설치된 기구는 정조가 세운 규장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