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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제6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

제67회

총 50문항 · 객관식 · A4 약 1장

1 / 1
A4정답 포함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제67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철제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다.
2주로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다.
3반달 돌칼로 벼 이삭을 수확하였다.
4빗살무늬 토기에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안내도는 고인돌의 고장 화순을 소개하면서 괴바위 고인돌·마당바위 고인돌·관청바위 고인돌·핑매바위 고인돌과 감태바위 채석장이 있는 답사 경로를 보여 줍니다. 설명문은 화순에 처음으로 금속 도구를 사용한 (가) 시대의 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이 있고, 덮개돌을 떼어 낸 채석장이 남아 있다고 밝힙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금속 도구는 청동기이므로 (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고인돌은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무덤으로, 이 시대에 지배자와 계급이 등장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유적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본격화되어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거두었습니다. 청동은 귀하고 다루기 어려워 무기와 제사용 도구에 주로 쓰였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었습니다.

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 이후의 일이고, 동굴이나 막집 생활과 빗살무늬 토기 사용은 각각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문제 2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1부여
2옥저
3동예
4마한
정답 및 해설

퀴즈의 힌트는 세 단계로 제시됩니다. 1단계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동해안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 2단계는 여자아이를 데려와 기르다 성인이 되면 며느리로 삼는 풍속, 3단계는 왕이 따로 없고 읍군이나 삼로라 불리는 군장이 자기 영역을 다스렸다는 내용입니다.

2단계의 풍속은 민며느리제로, 함경도 동해안에 자리했던 옥저의 혼인 풍습입니다. 옥저는 왕이 없이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각 지역을 다스렸고, 가족의 뼈를 한 목곽에 모아 두는 가족 공동 무덤 풍습도 있었습니다.

부여는 만주 쑹화강 유역에 있으면서 사출도와 영고로 알려져 있고, 동예는 같은 동해안이지만 책화와 무천이 특징이며, 마한은 한반도 남서부의 삼한 중 하나입니다. 민며느리제를 갖춘 동해안의 나라라는 조건에는 옥저만 들어맞습니다.

문제 3
밑줄 그은 '나'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태학을 설립하였다.
2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3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겼다.
4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관 화면 속 인물은 고구려 제19대 왕임을 밝히며 "거란, 숙신, 후연, 동부여 등을 정벌하고 영토를 크게 넓혔소"라고 말하고 있다. 뒤편 지도에도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팽창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이 왕은 광개토 대왕이다.

광개토 대왕은 즉위 후 요동과 만주 일대로 영역을 넓혔고, 남쪽으로는 백제를 압박하였다. 특히 400년에 신라 내물왕의 구원 요청을 받아 5만의 군대를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고 가야 지역까지 추격하였다. 이 사실은 광개토 대왕릉비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유학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한 왕은 소수림왕이다. 당의 침입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영류왕 때로 보장왕 때 완성되었고,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긴 왕은 광개토 대왕의 아들 장수왕이다.

문제 4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적절한 것은? [3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제시된 과제 학습 조사 보고서는 주제가 "백제의 문화유산 알아보기"이고, 알게 된 점으로 "백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조사한 문화유산 칸에는 무령왕릉 사진이 함께 실려 있으므로, (가)에도 백제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한다.

보기 가운데 백제의 것은 몽촌 토성이다. 몽촌 토성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성 도읍기 백제의 토성으로, 풍납 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의 도성을 이루었던 유적이다.

나머지는 백제의 것이 아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과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장군총은 고구려의 문화유산이고, 말다래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신라의 문화유산이다.

문제 5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국학을 설치하였다.
2화랑도를 정비하였다.
3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4김헌창의 난을 진압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단양 신라 적성비에 관한 것으로, 이 비가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점령하고 세워졌으며 이사부 등 공을 세운 인물과 신라에 충성을 다한 적성 사람 야이차에게 상을 내린 내용이 담겨 있다고 되어 있다. 이는 한강 상류 지역까지 진출한 진흥왕 때의 일이다.

진흥왕은 청소년 수련 조직이던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정비하여 인재를 길러 냈고, 이를 바탕으로 한강 유역 전체와 대가야를 차지하며 영토를 크게 넓혔다. 정복한 지역에는 단양 적성비와 여러 순수비를 세웠다.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한 왕은 신문왕이고,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시행한 왕은 원성왕이다. 김헌창의 난이 일어나 이를 진압한 것은 신라 하대 헌덕왕 때이다.

문제 6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지방에 22담로를 두었다.
2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
3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4화백 회의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에서 '이 나라'의 유물이 나온 곳으로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 제시되어 있고, 전시된 유물은 금동 허리띠, 금동관, 봉황장식 금동관이다. 이 지역 고분군을 남긴 나라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이다.

가야는 철이 풍부하게 나는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여 덩이쇠를 화폐처럼 쓸 만큼 철 생산이 활발하였고, 해상 교통로를 이용해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뛰어난 세공 기술을 보여 주는 금동관과 장신구도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한 나라는 백제이며, 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이다. 귀족들이 모인 화백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신라이다.

문제 7
(가)~(다)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삼국 통일 과정"이라는 제목 아래 세 인물이 나온다. 김춘추는 "고구려에 가서 군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소", 문무왕은 "기벌포 앞바다에서 당의 수군을 몰아냈소", 김유신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싸워 승리하였소"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김춘추의 고구려 청병이다. 642년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된 뒤 김춘추가 고구려에 건너가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았다.

다음은 황산벌 전투로, 660년 김유신이 계백의 결사대를 물리치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마지막은 기벌포 전투로, 676년 문무왕 때 당의 수군을 격파하여 나당 전쟁을 끝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에 군대를 요청한 일 → 황산벌 전투 → 기벌포 전투 순이다.

문제 8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가)가 "여러 번 도읍을 옮겼지만 이곳 상경성을 가장 오랫동안 도읍으로 삼았고, 문왕당의 도읍 장안성의 구조를 본떠 상경성을 만들었다"라고 하고 있다. 화면의 그림도 중앙에 넓은 주작대로가 뻗은 계획도시의 모습이다. 따라서 (가)는 발해이다.

보기 중 이불병좌상은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발해의 대표적 불상이고, 영광탑은 발해의 벽돌탑이며, 정효 공주 무덤 벽화는 문왕의 딸 무덤에서 나온 발해의 벽화이다. 모두 발해의 문화유산이다.

반면 칠지도는 일곱 개의 가지가 뻗은 모양의 철제 칼로, 백제가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유물이다. 발해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문제 9
밑줄 그은 '불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영상 속 진행자는 "오늘 소개할 한국의 문화유산은 석굴암"이라며, 석굴암이 화강암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사원이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석굴암 내부에 있는 아름다운 불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밑줄 그은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통일 신라 경덕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밝은 회백색 화강암으로 조각한 결가부좌한 여래 좌상이다. 둥근 돔 천장의 주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뒤쪽 벽면을 감실과 조각상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흰 돌의 앉은 부처가 벽감을 배경으로 놓인 사진이 이에 해당한다.

바위 절벽에 세 부처를 돋을새김한 마애 삼존상은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상은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다. 어두운 금속 빛을 띠는 좌상은 고려 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철조 여래 좌상으로, 흰 화강암으로 조각한 석굴암 본존불과는 재질이 다르다.

문제 1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1점]
1성골
2호족
3권문세족
4신진 사대부
정답 및 해설

학습 정리 노트에 적힌 (가)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신라 말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성장하였고, 일정한 지역에서 정치·군사·경제적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호족에 대한 설명이다.

신라 말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지방의 촌주나 군진 세력, 해상 세력 등이 자기 근거지에서 군사력과 조세 수취권을 쥐고 성주·장군을 자처하였다. 이들이 후삼국 성립과 고려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성골은 신라 골품제의 최고 신분으로 지방 세력과는 관계가 없고, 권문세족신진 사대부는 모두 고려 후기에 등장한 지배 세력이므로 신라 말의 상황과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1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흑창을 두었다.
2강화도로 천도하였다.
3과거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4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방송 화면의 대화에서 고려 (가)가 민족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면서,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오랜 기간 적대 관계였던 견훤까지 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발해 세자 대광현을 받아들이고 견훤을 우대한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태조는 민생 안정에도 힘써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하는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을 두었다. 또한 조세를 1/10로 낮추고 호족을 포섭하는 혼인 정책과 사성 정책을 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것은 무신 집권기 고종 때이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처음 실시한 왕은 광종이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으려 한 왕은 공민왕이다.

문제 12
(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광산 개발을 감독하는 덕대
2신해통공 실시를 알리는 관리
3청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는 만상
4활구라고도 불린 은병을 제작하는 장인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에 따르면 이 문화유산은 태안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청자 매병과 죽찰이며, 죽찰에는 개경의 중방 도장교 오문부에게 좋은 꿀을 단지에 담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도읍이 개경이고 무신들의 최고 회의 기구인 중방이 등장하므로 (가)는 고려이다.

고려 숙종 때에는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해동통보 등의 동전을 발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은 한 근으로 만든 고액 화폐 은병도 주조하였다. 이 은병은 입구가 넓다 하여 활구라고도 불렸으므로, 활구를 만드는 장인은 고려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광산 경영을 전문으로 맡던 덕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정조), 청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의주 상인 만상은 고려 시대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3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대화는 거란 장수 소손녕이 "거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을 섬긴다"며 군사를 일으킨 까닭을 따지자, 고려 사신이 "여진이 압록강 안팎을 막고 있어 거란과 통하지 못하니, 여진을 내쫓고 옛 땅을 돌려준다면 교류하겠다"고 응수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거란의 1차 침입(993)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고려는 이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했습니다.

연표는 936년 후삼국 통일1019년 귀주 대첩1104년 별무반 설치1232년 처인성 전투1359년 홍건적 침입의 다섯 시점으로 네 구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993년은 936년 이후이면서 1019년 이전이므로, 후삼국 통일과 귀주 대첩 사이의 첫 번째 구간인 (가)에 해당합니다.

거란과의 전쟁은 서희의 담판(993, 1차) → 양규의 활약과 현종의 나주 피란(1010, 2차) →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3차) 순으로 이어졌음을 기억하면, 서희 담판이 귀주 대첩보다 앞선다는 점을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 1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이괄, 도성을 점령하다
2김흠돌, 반란을 도모하다
3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
4이성계, 위화도에서 회군하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웹툰 고려사 3부. 고려 문벌 사회의 동요'라는 목차 화면으로, 1화가 "이자겸, 난을 일으키다", 3화가 "정중부, 정변을 일으키다"이고 그 사이의 2화 제목이 (가)로 비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자겸의 난(1126)과 무신 정변(1170)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찾아야 합니다.

두 사건 사이에 놓이는 대표적 사건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입니다. 묘청 등 서경 세력은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 금 정벌을 주장하다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되었으며, 이는 문벌 사회의 동요를 보여 주는 사건으로 무신 정변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김흠돌의 난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681),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 때(1624),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1388)의 일로 모두 이 목차의 흐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15
밑줄 그은 '나'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안향
2김부식
3이규보
4정몽주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소수 서원의 문성공묘 앞에서 한 인물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고려 후기 문신으로 성리학 도입과 후학 양성에 힘썼고, 후대 사람들이 그 공로를 기려 소수 서원을 지어 매년 이곳에서 제향을 올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수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에서 비롯되었고, 뒤에 이황의 건의로 사액 서원이 되면서 소수 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문성공은 안향의 시호이므로 문성공묘에 모셔진 인물은 안향입니다. 안향은 원에 다녀오며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소개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다른 인물들은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문벌 귀족,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은 무신 집권기 문인, 정몽주는 고려 말 성리학자이지만 소수 서원에 제향된 인물은 아닙니다.

문제 16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2백강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3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다.
4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진도 용장성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강화도에서 옮겨간 (가)이/가 쌓은 성"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개경 환도(1270)에 반발해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세력은 삼별초입니다.

삼별초는 최우가 설치한 야별초가 좌별초·우별초로 나뉘고 여기에 몽골에서 도망쳐 온 병사들로 구성된 신의군이 더해져 이루어진 부대로,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하였습니다. 개경 환도 뒤에는 배중손·김통정의 지휘 아래 진도 용장성제주 항파두리로 옮겨 가며 대몽 항쟁을 이어 갔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조직의 활동입니다. 쌍성총관부 공격은 공민왕 때의 일이고, 백강 전투는 백제 부흥 운동 세력과 왜의 연합군이 치른 싸움이며,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은 윤관의 건의로 편성된 별무반의 구성입니다.

문제 17
다음 학생들의 표현하고 있는 사건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명량 대첩
2살수 대첩
3진포 대첩
4행주 대첩
정답 및 해설

그림은 학생들이 '역사의 한 장면 그리기' 화면에서 바다 위 전투를 그리는 장면입니다. 한 학생은 "왜구에 맞서 군대를 지휘하는 최무선을 그렸다"고 하고, 다른 학생은 "전투에서 사용한 화포도 그려 넣자"고 말하며 무기 선택 창에서 화포를 고르고 있습니다.

최무선이 화포를 앞세워 왜구의 함선을 격파한 싸움은 진포 대첩(1380)입니다. 최무선은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해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고, 금강 하구 진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수백 척을 불태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화포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해전으로 꼽힙니다.

나머지 전투는 인물과 시기가 다릅니다. 명량 대첩행주 대첩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권율의 승리이고, 살수 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물리친 싸움입니다.

문제 18
다음 가상 대화에 등장하는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자격루를 제작하였다.
2농사직설을 간행하였다.
3악학궤범을 완성하였다.
4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박연이 "명하신 대로 편경을 만들었다"고 아뢰자, 왕이 "우리가 만든 편경의 소리도 음이 잘 맞는구나. 이제 그대가 아악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가상 대화입니다. 박연에게 아악 정비를 맡긴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장영실 등에게 명해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게 하였고,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간행하였으며,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밖에 훈민정음 창제, 4군 6진 개척, 칠정산 편찬 등도 세종의 업적입니다.

반면 음악 이론과 악기·악보를 집대성한 악학궤범성종 때 성현 등이 완성한 책이므로, 세종의 업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세종 대의 음악 정비는 박연의 아악 정리와 정간보 창안으로 기억해 두면 구분이 쉽습니다.

문제 19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경국대전
2동의보감
3목민심서
4조선왕조실록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가)를 검색한 결과 화면으로,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는 470여 년간의 역사역대 왕별로 기록하였고, 방대한 규모와 내용의 정확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왕대별 편년체로 정리된 조선의 공식 역사 기록물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실록은 왕이 세상을 떠난 뒤 춘추관에 실록청을 두고 사관이 작성한 사초와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하였으며, 여러 부를 만들어 사고에 나누어 보관해 전란 속에서도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 동의보감은 허준이 정리한 의학서,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지은 지방관의 지침서로, 모두 역대 왕의 통치 기록을 연대순으로 담은 책이 아닙니다.

문제 20
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시헌력을 도입하였다.
2탕평책을 실시하였다.
3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4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두 자료는 왕이 "집현전을 파하고 경연을 정지하며 그 서책은 예문관에서 관장하게 하라"고 명한 일과, "성삼문 등이 상왕도 모의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으니 상왕을 노산군으로 낮추고 영월에 거주시키라"고 명령한 일을 담고 있습니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해 영월로 보내고 사육신을 처형한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여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자신을 견제하던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였으며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일입니다. 시헌력 도입은 효종 때, 탕평책은 영조·정조 때의 정책이며, 한양 천도는 조선을 세운 태조의 업적입니다.

문제 21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경신환국
2기해예송
3무오사화
4신유박해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밀양 추원재 앞에서 해설사가 설명하는 장면으로, "조선 시대 문신 김종직이 살던 집터에 후손들이 지은 집이며, 그가 쓴 조의제문연산군 때 일어난 (가)의 빌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사건은 무오사화(1498)입니다.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훈구 세력이 이를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사림 세력이 큰 화를 입었습니다. 사초가 발단이 되었다 하여 사화(史禍)라고도 부릅니다.

나머지는 성격과 시기가 다릅니다. 기해예송은 현종 때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싼 논쟁, 경신환국은 숙종 때 남인이 축출된 정국 변동, 신유박해는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으로 연산군 대의 사건이 아닙니다.

문제 22
(가)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었다.
2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였다.
3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하였다.
4특산물 대신 쌀, 베 등으로 납부하게 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김육은 "(가)은/는 실로 백성을 구제하는 데 절실하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으므로 우리 충청도에서도 시행하면 좋겠다"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뒤 김육의 노력으로 충청도·전라도로 확대된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은 각 지역의 특산물(공물)을 현물로 거두던 방식을 바꾸어,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 등을 내게 한 제도입니다.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 토지가 적은 농민의 부담을 덜어 주었으며,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해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제도의 내용입니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것은 균역법,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한 것은 영정법이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한 것은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에 해당합니다.

문제 23
다음 가상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북벌론이 전개되었다.
2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삼포왜란이 진압되었다.
4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두 사람은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임금이 삼전도에 나아가 청에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소식과, 세자와 봉림 대군이 청에 볼모로 잡혀간다는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는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의 결말을 그린 장면입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버텼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고,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청에 끌려갔습니다.

볼모 생활을 하고 돌아온 봉림 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한 뒤, 청에 당한 치욕을 씻자며 군사를 길러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었습니다. 송시열·이완 등이 중심이 되어 어영청을 강화하고 성곽을 정비한 것이 그 대표적 움직임입니다.

한편 4군 6진 개척은 세종 때 여진을 몰아내며 이루어진 일이고, 삼포왜란 진압은 중종 때의 일이며, 정동행성 설치는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던 시기의 일이므로 모두 병자호란보다 앞선 시기에 해당합니다.

문제 24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1점]
1장용영을 설치하였다.
2당백전을 발행하였다.
3속대전을 편찬하였다.
4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강 위에 배를 잇대어 만든 배다리(주교)를 왕의 행렬이 건너는 장면입니다. 대화에서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가신다는 점, 그리고 그 배다리를 정약용이 설계했다는 점이 드러나므로, 밑줄 그은 왕은 정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고 자주 참배하였으며, 이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 정약용이 고안한 배다리를 이용하였습니다. 수원에는 화성을 축조하여 개혁 정치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정조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국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한 것입니다. 이 밖에 규장각을 정비하고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으며 대전통편을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백전 발행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 한 것이고, 속대전 편찬은 영조, 훈민정음 반포는 세종의 일입니다.

문제 25
(가)~(다)를 실시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세 학생이 말한 토지 제도는 각각 (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 (나) 과전을 혁파하고 직전을 설치, (다) 전·현직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차등 있게 지급입니다.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이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행한 정책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일입니다.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한 제도는 고려의 전시과로, 관직에 따라 토지에서 조세를 거둘 권리와 땔감을 얻을 임야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과전을 없애고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주는 직전법은 조선 세조 때 시행되어 가장 나중의 일이므로, 시행 순서는 관료전과 녹읍 폐지 → 전시과 → 직전법이 됩니다.

문제 26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잇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1상평통보로 거래하는 상인
2판소리 공연을 구경하는 농민
3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
4황룡사 구층 목탑을 만드는 목수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조엄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며 가져온 고구마를 농민들에게 재배하게 하자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것은 영조 때인 18세기 중엽의 일로,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여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고, 서민 문화가 성장하면서 판소리 공연이 성행하였습니다. 또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혀 이를 직업적으로 낭독해 주는 전기수가 등장하였습니다.

반면 황룡사 구층 목탑은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의 건의로 세워진 탑으로, 몽골의 침입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이를 만드는 목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문제 27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2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3조선 형평상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4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학생들은 세도 정치기에 일어난 농민 봉기이며,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저항하여 몰락 양반인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하였고,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게 하였고, 그의 건의에 따라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된 것은 갑신정변이고, 조선 형평사가 주도한 것은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한 형평 운동이며,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된 것은 1811년의 홍경래의 난입니다.

문제 28
다음 가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김정희
2박지원
3송시열
4유득공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인터뷰에서 이 인물은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고, 금석학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서체를 만들었으며,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세한도를 그렸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업적을 모두 갖춘 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정희입니다. 그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의 정체를 밝혔고, 굳세고 개성 있는 추사체를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제주도 유배 중 변함없이 자신을 도와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아 세한도를 그려 주었는데,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문제 29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9서당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2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3집강소를 통해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4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방송 화면은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했던 사건의 기록물인 전봉준 공초,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전하며, 자막에 백성이 주체가 된 역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봉준의 이름이 등장하므로 (가)는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1894년 고부 농민 봉기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군은 황토현·황룡촌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 노비 문서 소각 등의 폐정 개혁을 스스로 추진하였습니다.

9서당 창설은 통일 신라 신문왕, 청산리 전투는 1920년 북로 군정서 등 독립군의 활동, 제물포 조약 체결은 임오군란의 결과이므로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30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신돌석
2유인석
3최익현
4홍범도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카드 뒷면에는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알려졌고,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영해에서 의병으로 활동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진·평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뛰어난 전술을 펼쳐 태백산 호랑이라 불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설명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신돌석입니다. 그는 양반이 아닌 평민 출신으로 의병장이 되어 경상도와 강원도의 산악 지대에서 유격전을 펼쳤습니다.

유인석과 최익현은 모두 양반 유생 출신 의병장이며, 홍범도는 만주와 연해주를 무대로 활동한 독립군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문제 31
(가)~(라)에 들어갈 인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가) - 최치원
2(나) - 최승로
3(다) - 정도전
4(라) - 김옥균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시대의 개혁가들을 정리한 마인드맵으로, 각 갈래에는 (가)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다, (나) 시무 28조를 올리다, (다) 현량과 실시를 주장하다, (라) 갑신정변을 일으키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신라 말의 폐단을 극복하려 시무 10여 조를 진성 여왕에게 올린 인물은 최치원이고, 유교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시무 28조를 고려 성종에게 건의한 인물은 최승로이며, 근대 국가 수립을 지향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킨 인물은 김옥균입니다.

그러나 현량과 실시를 주장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그는 중종 때 등용되어 천거로 인재를 뽑는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등을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로 희생되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주도하며 조선경국전을 지어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인물이므로, 현량과 주장과 짝지은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 32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배경이 되었다.
2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3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4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활약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회 안내문에는 1866년 (가)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한 사건은 병인양요입니다.

흥선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고, 이때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 등 많은 문화유산이 약탈되었습니다. 이 의궤는 2011년에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침입에 맞서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쳐 결국 철수시켰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평양에서 일어나 뒷날 신미양요의 배경이 되었고, 강화도 조약은 1875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인 1876년에 체결되었으며,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의 별개 사건입니다.

문제 33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광혜원을 설립하였다.
2태극 서관을 운영하였다.
3독립문 건설을 주도하였다.
4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종로에서 열린 관민 공동회 장면으로, 연단 위 정부 관료와 그 앞에 모인 학생·시민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헌의 6조를 올리기로 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헌의 6조를 결의한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고, 청의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습니다. 이후 만민 공동회와 관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광혜원은 1885년 정부가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세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고, 태극 서관 운영은 신민회의 활동입니다.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한 것은 1919년 신한청년당입니다.

문제 34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
2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
3단발령 시행에 반발하는 유생
4경인선 철도 개통식을 구경하는 청년
정답 및 해설

대화 속 사진에는 경무부와 헌병대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고, 이를 두고 일제가 군사 경찰인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헌병 경찰제가 시행된 때는 국권 피탈 직후인 1910년대 무단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 태형령을 만들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가하였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관리는 물론 교원까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하였습니다.

한성순보는 1883년 박문국에서 발간한 신문이고, 단발령은 1895년 을미개혁 때 시행되어 유생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경인선 개통은 1899년의 일로, 모두 국권 피탈 이전에 해당합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1의열단을 조직하다
2서전서숙을 설립하다
3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4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다
정답 및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국권 회복을 위한 머나먼 여정'이고, 기획 의도에 북간도, 헤이그, 연해주로 이어지는 이상설의 생애를 다룬다고 적혀 있습니다. 구성 내용은 (가)에 이어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다', '대한 광복군 정부를 조직하다'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 연해주에서의 대한 광복군 정부 조직은 1914년의 일이므로, 그보다 앞선 북간도 시기의 활동이 첫 항목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상설은 1906년 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이 만주 지린에서 조직하였고, 동양 평화론은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이 집필한 글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한 장지연의 논설입니다.

문제 36
밑줄 그은 '만세 시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순종의 인산일에 전개되었다.
2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았다.
3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4신간회에서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지원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자료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들' 특집으로 프랭크 스코필드가 제암리 학살 사건을 폭로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 1919년 학생과 시민들의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일제가 경찰과 군인을 동원해 탄압하였고, 화성 제암리에서는 주민을 교회에 몰아넣은 뒤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세 시위는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은 전 민족적 항쟁으로 확산되면서 독립운동을 하나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그 결과 같은 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순종의 인산일에 전개된 것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이고,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문제 37
(가)에 들어갈 민족 운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브나로드 운동
2물산 장려 운동
3국채 보상 운동
4민립 대학 설립 운동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행렬에는 '조선 사람 조선 것', '내 살림 내 것으로'라고 쓴 깃발이 등장하고, 대화에서 조만식 등이 주도하는 운동을 홍보하는 행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산 장려 운동의 대표적인 구호입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하며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회사령 폐지와 관세 철폐 움직임으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거세지자, 국산품 애용과 자급자족을 통해 민족 산업을 지키려 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이었습니다.

브나로드 운동은 1930년대 초 동아일보가 벌인 문맹 퇴치 운동이고,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상환 운동입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1920년대 초 이상재 등이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위해 모금한 운동입니다.

문제 38
다음 공연의 소재가 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2조선 의용군을 창설하였다.
3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4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공연 안내에는 창작 뮤지컬 '단재, 그의 삶과 투쟁을 노래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독사신론」「조선상고사」를 지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호가 단재이고 이 저술들을 남긴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신채호는 1923년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요청을 받아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외교론과 준비론을 비판하고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한 독립 쟁취를 주장하여 의열단의 활동 지침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대한 광복회는 1915년 박상진이 조직하였고, 조선 의용군은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입니다. 조선말 큰사전 편찬은 조선어 학회가 주도하였습니다.

문제 39
(가)에 들어갈 인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김원봉
2나석주
3윤봉길
4이동휘
정답 및 해설

사진전에 걸린 세 장의 자료는 각각 한인 애국단에 가입함, 훙커우 공원 의거를 일으킴, 김구에게 시계를 남김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독립운동가는 윤봉길입니다.

윤봉길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에 들어가,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성과 고관을 처단하였습니다. 거사 직전 김구와 시계를 바꿔 찬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한인 애국단원이라도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인물은 나석주이며, 의열단을 이끈 인물은 김원봉, 임시 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은 이동휘입니다.

문제 40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근우회에 가입하는 학생
26·10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청년
3토지 조사령을 공포하는 일본인 관리
4미얀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한국 광복군 대원
정답 및 해설

강연자는 태평양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한국인의 유해가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화면 지도에도 타라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시기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태평양 전쟁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국가 총동원 체제 아래 징용과 징병으로 한국인을 전쟁터와 군수 시설에 끌고 갔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은 1943년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어 포로 심문과 선전 활동을 맡았습니다.

근우회 결성은 1927년, 6·10 만세 운동은 1926년의 일이고, 토지 조사령 공포는 1912년으로 모두 태평양 전쟁 이전에 해당합니다.

문제 41
(가)에 들어갈 단체로 옳은 것은? [2점]
1권업회
2대한인 국민화
3좌우 합작 위원회
4남북 조절 위원회
정답 및 해설

제시된 퀴즈는 1946년 7월 미군정의 지원 아래 여운형, 김규식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로, 정치 세력의 대립을 넘어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좌우 합작 위원회입니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의 정읍 발언으로 단독 정부 수립 주장이 나오자, 중도 우파 김규식과 중도 좌파 여운형이 손을 잡고 결성하였습니다. 1946년 10월에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리 등을 담은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좌우 양측 모두의 외면과 1947년 여운형 암살, 미군정의 지원 철회로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권업회는 1911년 연해주에서, 대한인 국민회는 미주 지역에서 조직된 단체이며, 남북 조절 위원회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에 따라 설치된 기구입니다.

문제 42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6·3 시위
2제주 4·3 사건
32·28 민주 운동
45·16 군사 정변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은 동백꽃을 표지에 내세운 '동백꽃을 따라서'이고, 배경이 된 사건은 미군정기에 시작되어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까지 지속되었으며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 및 그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제주 4·3 사건입니다.

1947년 3·1절 기념 행사 중 발생한 경찰 발포 사건이 발단이 되었고, 1948년 4월 3일 단독 선거 반대를 내걸고 무장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파로 5·10 총선거 때 제주도 세 개 선거구 가운데 두 곳에서 선거가 무효 처리되었습니다.

진압은 1954년까지 이어져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동백꽃은 이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에 반대한 6·3 시위는 1964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 운동은 1960년, 박정희 등이 일으킨 5·16 군사 정변은 1961년의 일입니다.

문제 43
(가)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유엔군이 참전하였다.
2흥남 철수 작전이 펼쳐졌다.
3거제도에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4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상단에 기록으로 만나는 (가)라는 제목이 있고, '개요-전개 과정' 탭에 흐름도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인천 상륙 작전 전개중국군 참전정전 협정 체결 순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6·25 전쟁의 전형적인 전개 순서입니다.

이 전쟁 중에는 북한의 남침 직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따라 유엔군이 참전하였고, 중국군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이 펼쳐져 많은 피란민이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또한 전선이 교착되고 포로가 크게 늘면서 거제도에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어 이념 대립에 따른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이 전쟁 기간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입니다.

반면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정미의병이 이인영·허위를 중심으로 결성한 연합 부대가 벌인 항일 무장 투쟁으로, 대한 제국 말기의 사건입니다. 6·25 전쟁과는 시기가 40여 년이나 떨어져 있어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4
다음 가상 일기에 나타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저항하였다.
2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3유신 체제가 붕괴하는 계기가 되었다.
4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가상 일기의 왼쪽 면에는 대학 교수단이 시국 선언을 한 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가두시위에 나섰다는 내용이, 오른쪽 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교수단 시국 선언과 이승만 하야는 4·19 혁명(1960)의 결정적 장면입니다. 1960년 4월 25일 대학 교수단이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서자 이튿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혁명의 직접적 계기는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 선거였습니다. 마산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 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저항한 것은 5·18 민주화 운동,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것은 6월 민주 항쟁, 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가 된 것은 부·마 민주 항쟁으로 각각 다른 사건입니다.

문제 4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1개성 공단 조성
2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
3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46·15 남북 공동 선언 합의
정답 및 해설

도표 가운데에 노태우 정부가 놓여 있고 주변에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한·중 국교 수립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모두 1988년부터 1992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넓히는 북방 외교를 추진하여 소련·중국과 국교를 맺었고,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남북 관계에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1991년 말 남북은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 교류·협력을 규정한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빈칸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습니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6·15 남북 공동 선언과 개성 공단 조성 합의는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6
다음 가상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정부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2경부 고속 도로를 개통하였다.
3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4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상 뉴스는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한·일 협정 조인식이 열려 양국 대표가 협정문에 서명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 자막도 한·일 협정 조인식 열려입니다.

한·일 협정(한일 기본 조약)은 1965년 박정희 정부 때 체결되었습니다. 앞서 김종필·오히라 비밀 회담 내용이 알려지자 굴욕적 회담이라며 6·3 시위가 일어났지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였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1970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 도로를 개통하였습니다. 같은 정부 시기의 사실로 알맞습니다.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문제 47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윤동주
2이한열
3장준하
4전태일
정답 및 해설

칠판의 그림 속 인물은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학생의 설명에도 서울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고, 바보회를 조직했으며, 1970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나옵니다.

이 인물은 전태일입니다. 그는 평화 시장 봉제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기 위해 동료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요구하였습니다.

1970년 11월 그는 근로 기준법 책을 안고 분신하며 항거하였고, 이 사건은 이후 노동 운동과 지식인·학생 사회의 노동 문제 인식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 이한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중 최루탄에 맞아 희생된 대학생,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하고 유신 반대 운동을 이끈 인물로 각각 다릅니다.

문제 4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다
2여성 비행사로 활약하다
3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농성을 벌이다
4재산을 기부하여 제주도민을 구제하다
정답 및 해설

특강 안내문 '한국사 속 여성, 세상 밖으로 나오다'의 강의 목록은 1강 선덕여왕, 2강 허난설헌, 3강 이빙허각, 4강 윤희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빈칸은 허난설헌의 소개 문구 자리입니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여성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한시를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였습니다. 사후 동생 허균이 시를 모아 난설헌집을 엮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여성 비행사로 활약한 인물은 권기옥, 평양 을밀대에서 임금 삭감에 저항해 고공 농성을 벌인 인물은 강주룡, 재산을 기부해 굶주린 제주도민을 구제한 인물은 김만덕으로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문제 49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이봉창이 의거를 일으켰다.
2망이·망소이가 봉기하였다.
3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4송상현이 동래성에서 순절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답사 안내문의 경로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 → 초량 왜관 → 임시 수도 기념관 → 민주 공원이고, 지도에도 이 네 곳이 한 도시 안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동삼동 패총은 신석기 시대 유적, 초량 왜관은 조선 후기 일본과의 무역 창구, 임시 수도 기념관은 6·25 전쟁 때 정부가 옮겨 온 흔적, 민주 공원은 부마 민주 항쟁 등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네 곳을 모두 품은 이 지역은 부산입니다.

부산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 부사 송상현이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며 맞서다 동래성에서 순절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알맞습니다.

이봉창의 의거는 일본 도쿄,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공주 명학소,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는 완도에서 있었던 일로 지역이 다릅니다.

문제 5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단오
2동지
3칠석
4한식
정답 및 해설

세시 풍속 자료의 왼쪽에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라는 설명과 팥죽 그림이, 오른쪽에는 24절기의 하나로 '작은 설'이라고도 불렸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어 먹고 대문이나 담장 벽에 팥죽을 뿌렸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절기이자 팥죽을 먹는 명절은 동지입니다. 양력 12월 22일 무렵으로, 이날부터 낮이 다시 길어지기에 새해의 시작으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불렀습니다.

붉은 팥의 색이 잡귀를 쫓는다고 믿어 팥죽을 쑤어 먹고 집 안 곳곳에 뿌리는 풍습이 이어졌습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와 씨름·그네뛰기를, 칠석은 음력 7월 7일로 견우와 직녀 설화를,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찬 음식 먹기와 성묘를 하는 날이어서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기출문제모두CBT · moducbt.com

제67회

50문항 · 객관식 · 정답·해설 포함
문제 1
(가)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철제 농기구로 농사를 지었다.
2주로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다.
3반달 돌칼로 벼 이삭을 수확하였다.
4빗살무늬 토기에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하였다.
정답 및 해설

안내도는 고인돌의 고장 화순을 소개하면서 괴바위 고인돌·마당바위 고인돌·관청바위 고인돌·핑매바위 고인돌과 감태바위 채석장이 있는 답사 경로를 보여 줍니다. 설명문은 화순에 처음으로 금속 도구를 사용한 (가) 시대의 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이 있고, 덮개돌을 떼어 낸 채석장이 남아 있다고 밝힙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금속 도구는 청동기이므로 (가)는 청동기 시대입니다. 고인돌은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만들 수 있는 무덤으로, 이 시대에 지배자와 계급이 등장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유적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본격화되어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거두었습니다. 청동은 귀하고 다루기 어려워 무기와 제사용 도구에 주로 쓰였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로 만들었습니다.

철제 농기구 사용은 철기 시대 이후의 일이고, 동굴이나 막집 생활과 빗살무늬 토기 사용은 각각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문제 2
다음 퀴즈의 정답으로 옳은 것은? [2점]
1부여
2옥저
3동예
4마한
정답 및 해설

퀴즈의 힌트는 세 단계로 제시됩니다. 1단계는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동해안 지역에서 일어난 나라, 2단계는 여자아이를 데려와 기르다 성인이 되면 며느리로 삼는 풍속, 3단계는 왕이 따로 없고 읍군이나 삼로라 불리는 군장이 자기 영역을 다스렸다는 내용입니다.

2단계의 풍속은 민며느리제로, 함경도 동해안에 자리했던 옥저의 혼인 풍습입니다. 옥저는 왕이 없이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각 지역을 다스렸고, 가족의 뼈를 한 목곽에 모아 두는 가족 공동 무덤 풍습도 있었습니다.

부여는 만주 쑹화강 유역에 있으면서 사출도와 영고로 알려져 있고, 동예는 같은 동해안이지만 책화와 무천이 특징이며, 마한은 한반도 남서부의 삼한 중 하나입니다. 민며느리제를 갖춘 동해안의 나라라는 조건에는 옥저만 들어맞습니다.

문제 3
밑줄 그은 '나'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태학을 설립하였다.
2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3도읍을 평양성으로 옮겼다.
4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관 화면 속 인물은 고구려 제19대 왕임을 밝히며 "거란, 숙신, 후연, 동부여 등을 정벌하고 영토를 크게 넓혔소"라고 말하고 있다. 뒤편 지도에도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팽창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이 왕은 광개토 대왕이다.

광개토 대왕은 즉위 후 요동과 만주 일대로 영역을 넓혔고, 남쪽으로는 백제를 압박하였다. 특히 400년에 신라 내물왕의 구원 요청을 받아 5만의 군대를 보내 신라에 침입한 왜를 격퇴하고 가야 지역까지 추격하였다. 이 사실은 광개토 대왕릉비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유학 교육 기관인 태학을 설립한 왕은 소수림왕이다. 당의 침입에 대비해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영류왕 때로 보장왕 때 완성되었고,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긴 왕은 광개토 대왕의 아들 장수왕이다.

문제 4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적절한 것은? [3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제시된 과제 학습 조사 보고서는 주제가 "백제의 문화유산 알아보기"이고, 알게 된 점으로 "백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조사한 문화유산 칸에는 무령왕릉 사진이 함께 실려 있으므로, (가)에도 백제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한다.

보기 가운데 백제의 것은 몽촌 토성이다. 몽촌 토성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성 도읍기 백제의 토성으로, 풍납 토성과 함께 초기 백제의 도성을 이루었던 유적이다.

나머지는 백제의 것이 아니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과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장군총은 고구려의 문화유산이고, 말다래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신라의 문화유산이다.

문제 5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국학을 설치하였다.
2화랑도를 정비하였다.
3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4김헌창의 난을 진압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단양 신라 적성비에 관한 것으로, 이 비가 고구려 영토인 적성을 점령하고 세워졌으며 이사부 등 공을 세운 인물과 신라에 충성을 다한 적성 사람 야이차에게 상을 내린 내용이 담겨 있다고 되어 있다. 이는 한강 상류 지역까지 진출한 진흥왕 때의 일이다.

진흥왕은 청소년 수련 조직이던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정비하여 인재를 길러 냈고, 이를 바탕으로 한강 유역 전체와 대가야를 차지하며 영토를 크게 넓혔다. 정복한 지역에는 단양 적성비와 여러 순수비를 세웠다.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한 왕은 신문왕이고,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시행한 왕은 원성왕이다. 김헌창의 난이 일어나 이를 진압한 것은 신라 하대 헌덕왕 때이다.

문제 6
밑줄 그은 '이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지방에 22담로를 두었다.
2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
3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4화백 회의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에서 '이 나라'의 유물이 나온 곳으로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이 제시되어 있고, 전시된 유물은 금동 허리띠, 금동관, 봉황장식 금동관이다. 이 지역 고분군을 남긴 나라는 낙동강 유역의 가야이다.

가야는 철이 풍부하게 나는 변한 지역에서 성장하여 덩이쇠를 화폐처럼 쓸 만큼 철 생산이 활발하였고, 해상 교통로를 이용해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하였다. 뛰어난 세공 기술을 보여 주는 금동관과 장신구도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파견한 나라는 백제이며, 한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이다. 귀족들이 모인 화백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 나라는 신라이다.

문제 7
(가)~(다)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삼국 통일 과정"이라는 제목 아래 세 인물이 나온다. 김춘추는 "고구려에 가서 군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소", 문무왕은 "기벌포 앞바다에서 당의 수군을 몰아냈소", 김유신은 "황산벌에서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싸워 승리하였소"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김춘추의 고구려 청병이다. 642년 대야성이 백제에 함락된 뒤 김춘추가 고구려에 건너가 도움을 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았다.

다음은 황산벌 전투로, 660년 김유신이 계백의 결사대를 물리치고 백제를 멸망시켰다. 마지막은 기벌포 전투로, 676년 문무왕 때 당의 수군을 격파하여 나당 전쟁을 끝내고 삼국 통일을 완성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에 군대를 요청한 일 → 황산벌 전투 → 기벌포 전투 순이다.

문제 8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화면 속 설명은 (가)가 "여러 번 도읍을 옮겼지만 이곳 상경성을 가장 오랫동안 도읍으로 삼았고, 문왕당의 도읍 장안성의 구조를 본떠 상경성을 만들었다"라고 하고 있다. 화면의 그림도 중앙에 넓은 주작대로가 뻗은 계획도시의 모습이다. 따라서 (가)는 발해이다.

보기 중 이불병좌상은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발해의 대표적 불상이고, 영광탑은 발해의 벽돌탑이며, 정효 공주 무덤 벽화는 문왕의 딸 무덤에서 나온 발해의 벽화이다. 모두 발해의 문화유산이다.

반면 칠지도는 일곱 개의 가지가 뻗은 모양의 철제 칼로, 백제가 왜왕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유물이다. 발해의 문화유산이 아니다.

문제 9
밑줄 그은 '불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옳은 것은? [1점]
1
2
3
4
정답 및 해설

영상 속 진행자는 "오늘 소개할 한국의 문화유산은 석굴암"이라며, 석굴암이 화강암을 이용해 인공적으로 만든 사원이고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이 "석굴암 내부에 있는 아름다운 불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밑줄 그은 '불상'은 석굴암 본존불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통일 신라 경덕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밝은 회백색 화강암으로 조각한 결가부좌한 여래 좌상이다. 둥근 돔 천장의 주실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뒤쪽 벽면을 감실과 조각상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흰 돌의 앉은 부처가 벽감을 배경으로 놓인 사진이 이에 해당한다.

바위 절벽에 세 부처를 돋을새김한 마애 삼존상은 백제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고, 한쪽 다리를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상은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이다. 어두운 금속 빛을 띠는 좌상은 고려 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철조 여래 좌상으로, 흰 화강암으로 조각한 석굴암 본존불과는 재질이 다르다.

문제 1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1점]
1성골
2호족
3권문세족
4신진 사대부
정답 및 해설

학습 정리 노트에 적힌 (가)의 특징은 세 가지이다. 신라 말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성장하였고, 일정한 지역에서 정치·군사·경제적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호족에 대한 설명이다.

신라 말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지방의 촌주나 군진 세력, 해상 세력 등이 자기 근거지에서 군사력과 조세 수취권을 쥐고 성주·장군을 자처하였다. 이들이 후삼국 성립과 고려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성골은 신라 골품제의 최고 신분으로 지방 세력과는 관계가 없고, 권문세족신진 사대부는 모두 고려 후기에 등장한 지배 세력이므로 신라 말의 상황과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1
(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2점]
1흑창을 두었다.
2강화도로 천도하였다.
3과거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4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정답 및 해설

방송 화면의 대화에서 고려 (가)가 민족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면서,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고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오랜 기간 적대 관계였던 견훤까지 포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발해 세자 대광현을 받아들이고 견훤을 우대한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태조는 민생 안정에도 힘써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 하는 빈민 구제 기구인 흑창을 두었다. 또한 조세를 1/10로 낮추고 호족을 포섭하는 혼인 정책과 사성 정책을 폈다.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한 것은 무신 집권기 고종 때이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처음 실시한 왕은 광종이다.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바로잡으려 한 왕은 공민왕이다.

문제 12
(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광산 개발을 감독하는 덕대
2신해통공 실시를 알리는 관리
3청과의 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는 만상
4활구라고도 불린 은병을 제작하는 장인
정답 및 해설

전시 해설에 따르면 이 문화유산은 태안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청자 매병과 죽찰이며, 죽찰에는 개경의 중방 도장교 오문부에게 좋은 꿀을 단지에 담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도읍이 개경이고 무신들의 최고 회의 기구인 중방이 등장하므로 (가)는 고려이다.

고려 숙종 때에는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설치하고 해동통보 등의 동전을 발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은 한 근으로 만든 고액 화폐 은병도 주조하였다. 이 은병은 입구가 넓다 하여 활구라고도 불렸으므로, 활구를 만드는 장인은 고려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머지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광산 경영을 전문으로 맡던 덕대,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정조), 청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은 의주 상인 만상은 고려 시대와는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문제 13
다음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연표에서 옳게 고른 것은? [3점]
1(가)
2(나)
3(다)
4(라)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대화는 거란 장수 소손녕이 "거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도 바다 건너 송을 섬긴다"며 군사를 일으킨 까닭을 따지자, 고려 사신이 "여진이 압록강 안팎을 막고 있어 거란과 통하지 못하니, 여진을 내쫓고 옛 땅을 돌려준다면 교류하겠다"고 응수하는 장면입니다. 이는 거란의 1차 침입(993)서희의 외교 담판으로, 고려는 이 담판으로 강동 6주를 확보했습니다.

연표는 936년 후삼국 통일1019년 귀주 대첩1104년 별무반 설치1232년 처인성 전투1359년 홍건적 침입의 다섯 시점으로 네 구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993년은 936년 이후이면서 1019년 이전이므로, 후삼국 통일과 귀주 대첩 사이의 첫 번째 구간인 (가)에 해당합니다.

거란과의 전쟁은 서희의 담판(993, 1차) → 양규의 활약과 현종의 나주 피란(1010, 2차) →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3차) 순으로 이어졌음을 기억하면, 서희 담판이 귀주 대첩보다 앞선다는 점을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 14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이괄, 도성을 점령하다
2김흠돌, 반란을 도모하다
3묘청, 서경 천도를 주장하다
4이성계, 위화도에서 회군하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웹툰 고려사 3부. 고려 문벌 사회의 동요'라는 목차 화면으로, 1화가 "이자겸, 난을 일으키다", 3화가 "정중부, 정변을 일으키다"이고 그 사이의 2화 제목이 (가)로 비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자겸의 난(1126)과 무신 정변(1170)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찾아야 합니다.

두 사건 사이에 놓이는 대표적 사건은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입니다. 묘청 등 서경 세력은 서경 천도와 칭제건원, 금 정벌을 주장하다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되었으며, 이는 문벌 사회의 동요를 보여 주는 사건으로 무신 정변의 전조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김흠돌의 난은 통일 신라 신문왕 때(681), 이괄의 난은 조선 인조 때(1624),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고려 말(1388)의 일로 모두 이 목차의 흐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문제 15
밑줄 그은 '나'에 해당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안향
2김부식
3이규보
4정몽주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소수 서원의 문성공묘 앞에서 한 인물이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입니다. "고려 후기 문신으로 성리학 도입과 후학 양성에 힘썼고, 후대 사람들이 그 공로를 기려 소수 서원을 지어 매년 이곳에서 제향을 올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수 서원은 풍기 군수 주세붕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백운동 서원에서 비롯되었고, 뒤에 이황의 건의로 사액 서원이 되면서 소수 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문성공은 안향의 시호이므로 문성공묘에 모셔진 인물은 안향입니다. 안향은 원에 다녀오며 성리학을 고려에 처음 소개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다른 인물들은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문벌 귀족,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은 무신 집권기 문인, 정몽주는 고려 말 성리학자이지만 소수 서원에 제향된 인물은 아닙니다.

문제 16
(가) 군사 조직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쌍성총관부를 공격하였다.
2백강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3신기군, 신보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다.
4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진도 용장성을 촬영하는 장면으로,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강화도에서 옮겨간 (가)이/가 쌓은 성"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개경 환도(1270)에 반발해 강화도를 떠나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세력은 삼별초입니다.

삼별초는 최우가 설치한 야별초가 좌별초·우별초로 나뉘고 여기에 몽골에서 도망쳐 온 병사들로 구성된 신의군이 더해져 이루어진 부대로,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하였습니다. 개경 환도 뒤에는 배중손·김통정의 지휘 아래 진도 용장성제주 항파두리로 옮겨 가며 대몽 항쟁을 이어 갔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조직의 활동입니다. 쌍성총관부 공격은 공민왕 때의 일이고, 백강 전투는 백제 부흥 운동 세력과 왜의 연합군이 치른 싸움이며, 신기군·신보군·항마군은 윤관의 건의로 편성된 별무반의 구성입니다.

문제 17
다음 학생들의 표현하고 있는 사건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명량 대첩
2살수 대첩
3진포 대첩
4행주 대첩
정답 및 해설

그림은 학생들이 '역사의 한 장면 그리기' 화면에서 바다 위 전투를 그리는 장면입니다. 한 학생은 "왜구에 맞서 군대를 지휘하는 최무선을 그렸다"고 하고, 다른 학생은 "전투에서 사용한 화포도 그려 넣자"고 말하며 무기 선택 창에서 화포를 고르고 있습니다.

최무선이 화포를 앞세워 왜구의 함선을 격파한 싸움은 진포 대첩(1380)입니다. 최무선은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해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고, 금강 하구 진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수백 척을 불태워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화포를 본격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해전으로 꼽힙니다.

나머지 전투는 인물과 시기가 다릅니다. 명량 대첩행주 대첩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권율의 승리이고, 살수 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이 수의 군대를 물리친 싸움입니다.

문제 18
다음 가상 대화에 등장하는 왕의 업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자격루를 제작하였다.
2농사직설을 간행하였다.
3악학궤범을 완성하였다.
4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박연이 "명하신 대로 편경을 만들었다"고 아뢰자, 왕이 "우리가 만든 편경의 소리도 음이 잘 맞는구나. 이제 그대가 아악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가상 대화입니다. 박연에게 아악 정비를 맡긴 왕은 세종입니다.

세종은 장영실 등에게 명해 물시계인 자격루를 만들게 하였고,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간행하였으며, 충신·효자·열녀의 행적을 글과 그림으로 엮은 삼강행실도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밖에 훈민정음 창제, 4군 6진 개척, 칠정산 편찬 등도 세종의 업적입니다.

반면 음악 이론과 악기·악보를 집대성한 악학궤범성종 때 성현 등이 완성한 책이므로, 세종의 업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세종 대의 음악 정비는 박연의 아악 정리와 정간보 창안으로 기억해 두면 구분이 쉽습니다.

문제 19
(가)에 들어갈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1점]
1경국대전
2동의보감
3목민심서
4조선왕조실록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가)를 검색한 결과 화면으로,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는 470여 년간의 역사역대 왕별로 기록하였고, 방대한 규모와 내용의 정확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왕대별 편년체로 정리된 조선의 공식 역사 기록물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실록은 왕이 세상을 떠난 뒤 춘추관에 실록청을 두고 사관이 작성한 사초와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하였으며, 여러 부를 만들어 사고에 나누어 보관해 전란 속에서도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경국대전은 조선의 기본 법전, 동의보감은 허준이 정리한 의학서,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지은 지방관의 지침서로, 모두 역대 왕의 통치 기록을 연대순으로 담은 책이 아닙니다.

문제 20
밑줄 그은 '왕'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시헌력을 도입하였다.
2탕평책을 실시하였다.
3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46조 직계제를 시행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제시된 두 자료는 왕이 "집현전을 파하고 경연을 정지하며 그 서책은 예문관에서 관장하게 하라"고 명한 일과, "성삼문 등이 상왕도 모의에 참여하였다고 하였으니 상왕을 노산군으로 낮추고 영월에 거주시키라"고 명령한 일을 담고 있습니다.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해 영월로 보내고 사육신을 처형한 왕은 세조입니다.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은 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6조 직계제를 다시 시행하여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자신을 견제하던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실시하였으며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였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왕의 일입니다. 시헌력 도입은 효종 때, 탕평책은 영조·정조 때의 정책이며, 한양 천도는 조선을 세운 태조의 업적입니다.

문제 21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경신환국
2기해예송
3무오사화
4신유박해
정답 및 해설

그림은 밀양 추원재 앞에서 해설사가 설명하는 장면으로, "조선 시대 문신 김종직이 살던 집터에 후손들이 지은 집이며, 그가 쓴 조의제문연산군 때 일어난 (가)의 빌미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발단이 된 사건은 무오사화(1498)입니다.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문제가 되어, 훈구 세력이 이를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한 글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사림 세력이 큰 화를 입었습니다. 사초가 발단이 되었다 하여 사화(史禍)라고도 부릅니다.

나머지는 성격과 시기가 다릅니다. 기해예송은 현종 때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둘러싼 논쟁, 경신환국은 숙종 때 남인이 축출된 정국 변동, 신유박해는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으로 연산군 대의 사건이 아닙니다.

문제 22
(가) 제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3점]
1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었다.
2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하였다.
3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하였다.
4특산물 대신 쌀, 베 등으로 납부하게 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김육은 "(가)은/는 실로 백성을 구제하는 데 절실하니, 경기도와 강원도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으므로 우리 충청도에서도 시행하면 좋겠다"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뒤 김육의 노력으로 충청도·전라도로 확대된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대동법은 각 지역의 특산물(공물)을 현물로 거두던 방식을 바꾸어,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베·동전 등을 내게 한 제도입니다.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 토지가 적은 농민의 부담을 덜어 주었으며,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해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머지는 다른 제도의 내용입니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인 것은 균역법,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한 것은 영정법이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부과한 것은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에 해당합니다.

문제 23
다음 가상 대화 이후에 전개된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북벌론이 전개되었다.
24군 6진이 개척되었다.
3삼포왜란이 진압되었다.
4정동행성이 설치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두 사람은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던 임금이 삼전도에 나아가 청에 굴욕적인 항복을 했다는 소식과, 세자와 봉림 대군이 청에 볼모로 잡혀간다는 소식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는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의 결말을 그린 장면입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버텼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였고,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인질로 청에 끌려갔습니다.

볼모 생활을 하고 돌아온 봉림 대군이 효종으로 즉위한 뒤, 청에 당한 치욕을 씻자며 군사를 길러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전개되었습니다. 송시열·이완 등이 중심이 되어 어영청을 강화하고 성곽을 정비한 것이 그 대표적 움직임입니다.

한편 4군 6진 개척은 세종 때 여진을 몰아내며 이루어진 일이고, 삼포왜란 진압은 중종 때의 일이며, 정동행성 설치는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던 시기의 일이므로 모두 병자호란보다 앞선 시기에 해당합니다.

문제 24
밑줄 그은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1점]
1장용영을 설치하였다.
2당백전을 발행하였다.
3속대전을 편찬하였다.
4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강 위에 배를 잇대어 만든 배다리(주교)를 왕의 행렬이 건너는 장면입니다. 대화에서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에 참배하러 가신다는 점, 그리고 그 배다리를 정약용이 설계했다는 점이 드러나므로, 밑줄 그은 왕은 정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고 자주 참배하였으며, 이때 한강을 건너기 위해 정약용이 고안한 배다리를 이용하였습니다. 수원에는 화성을 축조하여 개혁 정치의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정조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국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한 것입니다. 이 밖에 규장각을 정비하고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으며 대전통편을 편찬하기도 하였습니다.

당백전 발행은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려 한 것이고, 속대전 편찬은 영조, 훈민정음 반포는 세종의 일입니다.

문제 25
(가)~(다)를 실시한 순서대로 옳게 나열한 것은? [3점]
1(가)-(나)-(다)
2(가)-(다)-(나)
3(나)-(가)-(다)
4(다)-(가)-(나)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세 학생이 말한 토지 제도는 각각 (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 (나) 과전을 혁파하고 직전을 설치, (다) 전·현직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차등 있게 지급입니다.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통일 신라 신문왕이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시행한 정책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일입니다.

전지와 시지를 차등 지급한 제도는 고려의 전시과로, 관직에 따라 토지에서 조세를 거둘 권리와 땔감을 얻을 임야를 나누어 준 것입니다.

과전을 없애고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주는 직전법은 조선 세조 때 시행되어 가장 나중의 일이므로, 시행 순서는 관료전과 녹읍 폐지 → 전시과 → 직전법이 됩니다.

문제 26
다음 가상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에 볼 수 잇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2점]
1상평통보로 거래하는 상인
2판소리 공연을 구경하는 농민
3한글 소설을 읽어주는 전기수
4황룡사 구층 목탑을 만드는 목수
정답 및 해설

그림에서 조엄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오며 가져온 고구마를 농민들에게 재배하게 하자고 건의하고 있습니다.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들여온 것은 영조 때인 18세기 중엽의 일로, 이 대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조선 후기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여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었고, 서민 문화가 성장하면서 판소리 공연이 성행하였습니다. 또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혀 이를 직업적으로 낭독해 주는 전기수가 등장하였습니다.

반면 황룡사 구층 목탑은 신라 선덕 여왕 때 자장의 건의로 세워진 탑으로, 몽골의 침입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따라서 조선 후기에는 이를 만드는 목수의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문제 27
학생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다.
2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3조선 형평상의 주도로 전개되었다.
4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었다.
정답 및 해설

그림 속 학생들은 세도 정치기에 일어난 농민 봉기이며,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에 저항하여 몰락 양반인 유계춘을 중심으로 봉기하였고, 삼정이정청이 설치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정부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하여 진상을 조사하게 하였고, 그의 건의에 따라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습니다.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된 것은 갑신정변이고, 조선 형평사가 주도한 것은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요구한 형평 운동이며, 서북 지역민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된 것은 1811년의 홍경래의 난입니다.

문제 28
다음 가상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로 옳은 것은? [2점]
1김정희
2박지원
3송시열
4유득공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인터뷰에서 이 인물은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였고, 금석학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서체를 만들었으며,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세한도를 그렸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업적을 모두 갖춘 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예술가인 김정희입니다. 그는 금석과안록을 지어 북한산비의 정체를 밝혔고, 굳세고 개성 있는 추사체를 완성하였습니다.

또한 제주도 유배 중 변함없이 자신을 도와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을 담아 세한도를 그려 주었는데, 이 그림은 조선 후기 문인화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문제 29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9서당을 창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2청산리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3집강소를 통해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4제물포 조약이 체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의 방송 화면은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의 침략에 저항했던 사건의 기록물인 전봉준 공초, 개인 일기와 문집, 각종 임명장 등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전하며, 자막에 백성이 주체가 된 역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전봉준의 이름이 등장하므로 (가)는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1894년 고부 농민 봉기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군은 황토현·황룡촌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탐관오리 처벌, 노비 문서 소각 등의 폐정 개혁을 스스로 추진하였습니다.

9서당 창설은 통일 신라 신문왕, 청산리 전투는 1920년 북로 군정서 등 독립군의 활동, 제물포 조약 체결은 임오군란의 결과이므로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문제 30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신돌석
2유인석
3최익현
4홍범도
정답 및 해설

그림의 카드 뒷면에는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 알려졌고,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영해에서 의병으로 활동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울진·평해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뛰어난 전술을 펼쳐 태백산 호랑이라 불렸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설명에 모두 들어맞는 인물은 신돌석입니다. 그는 양반이 아닌 평민 출신으로 의병장이 되어 경상도와 강원도의 산악 지대에서 유격전을 펼쳤습니다.

유인석과 최익현은 모두 양반 유생 출신 의병장이며, 홍범도는 만주와 연해주를 무대로 활동한 독립군 지도자로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습니다.

문제 31
(가)~(라)에 들어갈 인물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가) - 최치원
2(나) - 최승로
3(다) - 정도전
4(라) - 김옥균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시대의 개혁가들을 정리한 마인드맵으로, 각 갈래에는 (가)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다, (나) 시무 28조를 올리다, (다) 현량과 실시를 주장하다, (라) 갑신정변을 일으키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신라 말의 폐단을 극복하려 시무 10여 조를 진성 여왕에게 올린 인물은 최치원이고, 유교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시무 28조를 고려 성종에게 건의한 인물은 최승로이며, 근대 국가 수립을 지향하며 갑신정변을 일으킨 인물은 김옥균입니다.

그러나 현량과 실시를 주장한 인물은 조광조입니다. 그는 중종 때 등용되어 천거로 인재를 뽑는 현량과 실시, 소격서 폐지, 위훈 삭제 등을 추진하다가 기묘사화로 희생되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을 주도하며 조선경국전을 지어 재상 중심의 정치를 강조한 인물이므로, 현량과 주장과 짝지은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 32
(가) 사건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제너럴 셔먼호 사건의 배경이 되었다.
2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3오페르트가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하였다.
4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활약하였다.
정답 및 해설

전시회 안내문에는 1866년 (가)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왔다고 적혀 있습니다. 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입한 사건은 병인양요입니다.

흥선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인 병인박해를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고, 이때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 등 많은 문화유산이 약탈되었습니다. 이 의궤는 2011년에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침입에 맞서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한성근 부대가 문수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쳐 결국 철수시켰습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 평양에서 일어나 뒷날 신미양요의 배경이 되었고, 강화도 조약은 1875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이듬해인 1876년에 체결되었으며,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의 별개 사건입니다.

문제 33
(가) 단체의 활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광혜원을 설립하였다.
2태극 서관을 운영하였다.
3독립문 건설을 주도하였다.
4파리 강화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였다.
정답 및 해설

그림은 종로에서 열린 관민 공동회 장면으로, 연단 위 정부 관료와 그 앞에 모인 학생·시민이 함께 참여한 가운데 헌의 6조를 올리기로 했다는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관민 공동회를 개최하고 헌의 6조를 결의한 단체는 독립 협회입니다.

독립 협회는 1896년 서재필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하였고, 청의 사신을 맞던 영은문 자리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우는 일을 주도하였습니다. 이후 만민 공동회와 관민 공동회를 열어 자주 국권·자유 민권 운동을 펼쳤습니다.

광혜원은 1885년 정부가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세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고, 태극 서관 운영은 신민회의 활동입니다.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대표로 파견한 것은 1919년 신한청년당입니다.

문제 34
밑줄 그은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제복을 입고 칼을 찬 교사
2한성순보를 발간하는 관리
3단발령 시행에 반발하는 유생
4경인선 철도 개통식을 구경하는 청년
정답 및 해설

대화 속 사진에는 경무부와 헌병대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고, 이를 두고 일제가 군사 경찰인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는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헌병 경찰제가 시행된 때는 국권 피탈 직후인 1910년대 무단 통치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조선 태형령을 만들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가하였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관리는 물론 교원까지 제복을 입고 칼을 차게 하였습니다.

한성순보는 1883년 박문국에서 발간한 신문이고, 단발령은 1895년 을미개혁 때 시행되어 유생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경인선 개통은 1899년의 일로, 모두 국권 피탈 이전에 해당합니다.

문제 3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3점]
1의열단을 조직하다
2서전서숙을 설립하다
3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4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다
정답 및 해설

다큐멘터리 기획안의 제목은 '국권 회복을 위한 머나먼 여정'이고, 기획 의도에 북간도, 헤이그, 연해주로 이어지는 이상설의 생애를 다룬다고 적혀 있습니다. 구성 내용은 (가)에 이어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로 파견되다', '대한 광복군 정부를 조직하다'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헤이그 특사 파견은 1907년, 연해주에서의 대한 광복군 정부 조직은 1914년의 일이므로, 그보다 앞선 북간도 시기의 활동이 첫 항목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상설은 1906년 북간도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이 만주 지린에서 조직하였고, 동양 평화론은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이 집필한 글입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고발한 장지연의 논설입니다.

문제 36
밑줄 그은 '만세 시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순종의 인산일에 전개되었다.
2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았다.
3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4신간회에서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여 지원하였다.
정답 및 해설

자료는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들' 특집으로 프랭크 스코필드가 제암리 학살 사건을 폭로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본문에 1919년 학생과 시민들의 만세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자 일제가 경찰과 군인을 동원해 탄압하였고, 화성 제암리에서는 주민을 교회에 몰아넣은 뒤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만세 시위는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은 전 민족적 항쟁으로 확산되면서 독립운동을 하나로 이끌 지도부의 필요성을 일깨웠고, 그 결과 같은 해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순종의 인산일에 전개된 것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이고,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1907년 국채 보상 운동입니다.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한 것은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입니다.

문제 37
(가)에 들어갈 민족 운동으로 옳은 것은? [2점]
1브나로드 운동
2물산 장려 운동
3국채 보상 운동
4민립 대학 설립 운동
정답 및 해설

사진 속 행렬에는 '조선 사람 조선 것', '내 살림 내 것으로'라고 쓴 깃발이 등장하고, 대화에서 조만식 등이 주도하는 운동을 홍보하는 행렬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물산 장려 운동의 대표적인 구호입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 평양에서 조만식을 중심으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하며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회사령 폐지와 관세 철폐 움직임으로 일본 자본의 침투가 거세지자, 국산품 애용과 자급자족을 통해 민족 산업을 지키려 한 경제적 실력 양성 운동이었습니다.

브나로드 운동은 1930년대 초 동아일보가 벌인 문맹 퇴치 운동이고, 국채 보상 운동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상환 운동입니다.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1920년대 초 이상재 등이 고등 교육 기관 설립을 위해 모금한 운동입니다.

문제 38
다음 공연의 소재가 된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대한 광복회를 조직하였다.
2조선 의용군을 창설하였다.
3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다.
4조선말 큰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정답 및 해설

공연 안내에는 창작 뮤지컬 '단재, 그의 삶과 투쟁을 노래하다'라는 제목과 함께, 「독사신론」「조선상고사」를 지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호가 단재이고 이 저술들을 남긴 인물은 신채호입니다.

신채호는 1923년 의열단 단장 김원봉의 요청을 받아 조선 혁명 선언을 작성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외교론과 준비론을 비판하고 민중의 직접 혁명을 통한 독립 쟁취를 주장하여 의열단의 활동 지침으로 삼게 하였습니다.

대한 광복회는 1915년 박상진이 조직하였고, 조선 의용군은 조선 독립 동맹의 군사 조직입니다. 조선말 큰사전 편찬은 조선어 학회가 주도하였습니다.

문제 39
(가)에 들어갈 인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점]
1김원봉
2나석주
3윤봉길
4이동휘
정답 및 해설

사진전에 걸린 세 장의 자료는 각각 한인 애국단에 가입함, 훙커우 공원 의거를 일으킴, 김구에게 시계를 남김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하는 독립운동가는 윤봉길입니다.

윤봉길은 김구가 조직한 한인 애국단에 들어가,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겸 전승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성과 고관을 처단하였습니다. 거사 직전 김구와 시계를 바꿔 찬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적극 지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한인 애국단원이라도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인물은 나석주이며, 의열단을 이끈 인물은 김원봉, 임시 정부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은 이동휘입니다.

문제 40
밑줄 그은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2점]
1근우회에 가입하는 학생
26·10 만세 운동에 참여하는 청년
3토지 조사령을 공포하는 일본인 관리
4미얀마 전선에서 활동하는 한국 광복군 대원
정답 및 해설

강연자는 태평양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에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되었다가 희생된 한국인의 유해가 태평양의 작은 섬 타라와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화면 지도에도 타라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밑줄 그은 시기는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태평양 전쟁기입니다.

이 시기 일제는 국가 총동원 체제 아래 징용과 징병으로 한국인을 전쟁터와 군수 시설에 끌고 갔습니다. 한편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은 1943년 영국군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어 포로 심문과 선전 활동을 맡았습니다.

근우회 결성은 1927년, 6·10 만세 운동은 1926년의 일이고, 토지 조사령 공포는 1912년으로 모두 태평양 전쟁 이전에 해당합니다.

문제 41
(가)에 들어갈 단체로 옳은 것은? [2점]
1권업회
2대한인 국민화
3좌우 합작 위원회
4남북 조절 위원회
정답 및 해설

제시된 퀴즈는 1946년 7월 미군정의 지원 아래 여운형, 김규식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단체로, 정치 세력의 대립을 넘어 민주주의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고 설명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것은 좌우 합작 위원회입니다.

좌우 합작 위원회는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결렬되고 이승만의 정읍 발언으로 단독 정부 수립 주장이 나오자, 중도 우파 김규식과 중도 좌파 여운형이 손을 잡고 결성하였습니다. 1946년 10월에는 토지 개혁과 친일파 처리 등을 담은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좌우 양측 모두의 외면과 1947년 여운형 암살, 미군정의 지원 철회로 활동이 중단되었습니다. 권업회는 1911년 연해주에서, 대한인 국민회는 미주 지역에서 조직된 단체이며, 남북 조절 위원회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에 따라 설치된 기구입니다.

문제 42
(가)에 들어갈 사건으로 옳은 것은? [2점]
16·3 시위
2제주 4·3 사건
32·28 민주 운동
45·16 군사 정변
정답 및 해설

학생들이 제작한 영상은 동백꽃을 표지에 내세운 '동백꽃을 따라서'이고, 배경이 된 사건은 미군정기에 시작되어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까지 지속되었으며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대와 토벌대의 무력 충돌 및 그 진압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제주 4·3 사건입니다.

1947년 3·1절 기념 행사 중 발생한 경찰 발포 사건이 발단이 되었고, 1948년 4월 3일 단독 선거 반대를 내걸고 무장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파로 5·10 총선거 때 제주도 세 개 선거구 가운데 두 곳에서 선거가 무효 처리되었습니다.

진압은 1954년까지 이어져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동백꽃은 이 사건 희생자를 기리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에 반대한 6·3 시위는 1964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 운동은 1960년, 박정희 등이 일으킨 5·16 군사 정변은 1961년의 일입니다.

문제 43
(가)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로 옳지 않은 것은? [2점]
1유엔군이 참전하였다.
2흥남 철수 작전이 펼쳐졌다.
3거제도에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었다.
413도 창의군이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정답 및 해설

화면 상단에 기록으로 만나는 (가)라는 제목이 있고, '개요-전개 과정' 탭에 흐름도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인천 상륙 작전 전개중국군 참전정전 협정 체결 순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6·25 전쟁의 전형적인 전개 순서입니다.

이 전쟁 중에는 북한의 남침 직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따라 유엔군이 참전하였고, 중국군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이 펼쳐져 많은 피란민이 남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또한 전선이 교착되고 포로가 크게 늘면서 거제도에 포로 수용소가 설치되어 이념 대립에 따른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세 가지 모두 이 전쟁 기간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입니다.

반면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정미의병이 이인영·허위를 중심으로 결성한 연합 부대가 벌인 항일 무장 투쟁으로, 대한 제국 말기의 사건입니다. 6·25 전쟁과는 시기가 40여 년이나 떨어져 있어 이 전쟁 중에 있었던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 44
다음 가상 일기에 나타난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점]
1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저항하였다.
2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3유신 체제가 붕괴하는 계기가 되었다.
43·15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일어났다.
정답 및 해설

가상 일기의 왼쪽 면에는 대학 교수단이 시국 선언을 한 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가두시위에 나섰다는 내용이, 오른쪽 면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교수단 시국 선언과 이승만 하야는 4·19 혁명(1960)의 결정적 장면입니다. 1960년 4월 25일 대학 교수단이 시국 선언문을 발표하고 시위에 나서자 이튿날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혁명의 직접적 계기는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 선거였습니다. 마산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 중 실종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위가 전국으로 번졌고,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참고로 신군부의 무력 진압에 저항한 것은 5·18 민주화 운동,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것은 6월 민주 항쟁, 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가 된 것은 부·마 민주 항쟁으로 각각 다른 사건입니다.

문제 45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3점]
1개성 공단 조성
2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
37·4 남북 공동 성명 발표
46·15 남북 공동 선언 합의
정답 및 해설

도표 가운데에 노태우 정부가 놓여 있고 주변에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 개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한·중 국교 수립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모두 1988년부터 1992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사회주의 국가들과 관계를 넓히는 북방 외교를 추진하여 소련·중국과 국교를 맺었고,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남북 관계에도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1991년 말 남북은 상호 체제 인정과 불가침, 교류·협력을 규정한 남북 기본 합의서를 채택하였습니다. 빈칸에 들어갈 내용으로 알맞습니다.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6·15 남북 공동 선언과 개성 공단 조성 합의는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이어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문제 46
다음 가상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건이 일어난 정부의 시기의 사실로 옳은 것은? [2점]
1농지 개혁법을 제정하였다.
2경부 고속 도로를 개통하였다.
3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4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FTA)을 체결하였다.
정답 및 해설

가상 뉴스는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한·일 협정 조인식이 열려 양국 대표가 협정문에 서명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화면 아래 자막도 한·일 협정 조인식 열려입니다.

한·일 협정(한일 기본 조약)은 1965년 박정희 정부 때 체결되었습니다. 앞서 김종필·오히라 비밀 회담 내용이 알려지자 굴욕적 회담이라며 6·3 시위가 일어났지만,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협정 체결을 강행하였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1970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 도로를 개통하였습니다. 같은 정부 시기의 사실로 알맞습니다.

농지 개혁법 제정은 이승만 정부,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입니다.

문제 47
(가)에 들어갈 인물로 옳은 것은? [1점]
1윤동주
2이한열
3장준하
4전태일
정답 및 해설

칠판의 그림 속 인물은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습니다. 학생의 설명에도 서울 평화 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했고, 바보회를 조직했으며, 1970년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고 나옵니다.

이 인물은 전태일입니다. 그는 평화 시장 봉제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기 위해 동료들과 바보회를 만들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요구하였습니다.

1970년 11월 그는 근로 기준법 책을 안고 분신하며 항거하였고, 이 사건은 이후 노동 운동과 지식인·학생 사회의 노동 문제 인식이 크게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윤동주는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 이한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 중 최루탄에 맞아 희생된 대학생, 장준하는 사상계를 창간하고 유신 반대 운동을 이끈 인물로 각각 다릅니다.

문제 48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적절한 것은? [2점]
1시인으로 이름을 떨치다
2여성 비행사로 활약하다
3임금 삭감에 저항하여 농성을 벌이다
4재산을 기부하여 제주도민을 구제하다
정답 및 해설

특강 안내문 '한국사 속 여성, 세상 밖으로 나오다'의 강의 목록은 1강 선덕여왕, 2강 허난설헌, 3강 이빙허각, 4강 윤희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빈칸은 허난설헌의 소개 문구 자리입니다.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의 여성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한시를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였습니다. 사후 동생 허균이 시를 모아 난설헌집을 엮어 중국과 일본에까지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빈칸에는 시인으로 이름을 떨쳤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여성 비행사로 활약한 인물은 권기옥, 평양 을밀대에서 임금 삭감에 저항해 고공 농성을 벌인 인물은 강주룡, 재산을 기부해 굶주린 제주도민을 구제한 인물은 김만덕으로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문제 49
(가)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3점]
1이봉창이 의거를 일으켰다.
2망이·망소이가 봉기하였다.
3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하였다.
4송상현이 동래성에서 순절하였다.
정답 및 해설

답사 안내문의 경로는 동삼동 패총 전시관 → 초량 왜관 → 임시 수도 기념관 → 민주 공원이고, 지도에도 이 네 곳이 한 도시 안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동삼동 패총은 신석기 시대 유적, 초량 왜관은 조선 후기 일본과의 무역 창구, 임시 수도 기념관은 6·25 전쟁 때 정부가 옮겨 온 흔적, 민주 공원은 부마 민주 항쟁 등을 기리는 공간입니다. 네 곳을 모두 품은 이 지역은 부산입니다.

부산에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 부사 송상현이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리기는 어렵다'며 맞서다 동래성에서 순절하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있었던 사실로 알맞습니다.

이봉창의 의거는 일본 도쿄,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공주 명학소,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는 완도에서 있었던 일로 지역이 다릅니다.

문제 50
(가)에 들어갈 내용으로 옳은 것은? [1점]
1단오
2동지
3칠석
4한식
정답 및 해설

세시 풍속 자료의 왼쪽에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라는 설명과 팥죽 그림이, 오른쪽에는 24절기의 하나로 '작은 설'이라고도 불렸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기 위해 팥죽을 쑤어 먹고 대문이나 담장 벽에 팥죽을 뿌렸다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절기이자 팥죽을 먹는 명절은 동지입니다. 양력 12월 22일 무렵으로, 이날부터 낮이 다시 길어지기에 새해의 시작으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불렀습니다.

붉은 팥의 색이 잡귀를 쫓는다고 믿어 팥죽을 쑤어 먹고 집 안 곳곳에 뿌리는 풍습이 이어졌습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창포물에 머리 감기와 씨름·그네뛰기를, 칠석은 음력 7월 7일로 견우와 직녀 설화를,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찬 음식 먹기와 성묘를 하는 날이어서 설명과 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