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53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53회

찍개·찌르개 등 뗀석기를 처음 사용하였고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가 전시되는 시대는 구석기 시대이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구하며 이동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주로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 머물렀다. 가락바퀴는 신석기, 반달 돌칼과 고인돌은 청동기, 거푸집으로 만든 세형 동검은 철기 시대의 것이다.
[학생들의 대화]
- 이 나라에는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존재했어.
- 5월과 10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습도 있었어.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고 5월과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낸 나라는 삼한이다. 삼한은 여러 소국의 연맹체로, 세력의 크기에 따라 신지·읍차 등으로 불린 정치적 지배자가 있었다. 서옥제는 고구려, 사출도는 부여, 남의 물건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한 법은 부여, 책화는 동예의 풍속이다.
(가) 온달이 왕에게 아뢰기를, “신라가 한강 이북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습니다. …… 저에게 군사를 주신다면 단번에 우리 땅을 반드시 되찾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 10월에 백제 왕이 병력 3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이달 23일에 서거하였다.
(다) 9월에 왕이 병력 3만 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여 도읍 한성을 함락하였다. 백제 왕 부여경을 죽이고 남녀 8천 명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나)는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한 371년의 일이고, (다)는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하고 백제 개로왕(부여경)을 죽인 475년의 일이며, (가)는 온달이 한강 이북 회복을 자청한 6세기 말의 일이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나) → (다) → (가)이다.

백제 제25대 왕으로 백가의 난을 평정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였으며, 피장자와 축조 연대가 확인된 유일한 백제 왕릉인 공주 무령왕릉의 주인은 무령왕이다. 무령왕은 중국 남조의 양에 사신을 보내 활발히 교류하였고, 그 영향은 벽돌무덤 양식과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서 확인된다. 미륵사 창건은 무왕, 서기 편찬은 근초고왕, 마라난타를 통한 불교 수용은 침류왕, 사비 천도는 성왕 때의 일이다.
(가) 고구려 왕이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돌려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라고 말하였다. 김춘추가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었다.
(나) 관창이 “아까 내가 적진에 들어가서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지 못한 것이 심히 한스럽다. 다시 들어가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라고 말하였다. 관창은 적진에 돌입하여 용감히 싸웠으나, 계백이 그를 사로잡아 머리를 베어 말 안장에 매달아서 돌려보냈다. 이를 본 신라군이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니 백제 군사가 대패하였다.
(가)는 김춘추가 고구려에 군사를 요청하러 갔다가 억류된 642년의 일이고, (나)는 관창이 전사한 660년 황산벌 전투의 상황이다. 그 사이인 648년 김춘추가 당에 건너가 군사 동맹을 맺어 나당 연합군 결성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안승의 보덕국 왕 임명, 흑치상지의 임존성 봉기, 백강 전투는 모두 백제 멸망 이후의 일이고, 관산성 전투는 6세기 성왕 때의 일이다.
[가상 대화]
- 며칠 전 붉은 바지를 입은 도적들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봉기하였다고 하네.
- 적고적 말이지? 7년 전에는 원종과 애노가 세금 독촉 때문에 봉기하더니, 요즘 들어 나라에 변란이 자주 일어나 걱정이구만.
세금 독촉 때문에 일어난 원종과 애노의 봉기, 붉은 바지를 입은 적고적의 출현은 신라 하대 진성 여왕 때의 혼란을 보여 준다. 이후 후삼국이 성립되어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운 뒤 국호를 마진에 이어 태봉으로 바꾸었다. 독서삼품과 실시, 김흠돌의 난, 무열왕 직계의 왕위 세습, 혜공왕 피살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산둥반도의 적산 법화원을 창건한 인물은 장보고이다. 그는 당에서 군인으로 활동하다 돌아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면서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 무역을 장악하였다. 활구라 불린 은병과 경시서, 농상집요는 고려, 면화·고추 등 상품 작물 재배는 조선 후기의 경제 모습이다.

일본에 보낸 외교 문서의 역사의식, 정혜 공주 무덤의 고분 양식, 장문휴의 등주 공격, 인안·대흥 연호는 모두 발해에 관한 것이다. 발해는 솔빈부의 말이 특산물로 이름났고, 거란도·영주도 등 여러 교통로를 통해 주변국과 교류하였다. 철전인 건원중보 발행은 고려 성종 때, 지방관 감찰을 위한 외사정 파견은 통일 신라 문무왕 때의 일이다.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온라인 강의 화면 - 발표 자료 제목: 한국의 마애불]
국보로 지정된 이 마애불은 둥근 얼굴 윤곽에 자비로운 인상을 지녀 ‘백제의 미소’라고 불립니다.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 중국을 오가던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교통로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발표 화면] (가)





‘백제의 미소’로 불리며 중국을 오가던 교통로에 조성된 국보 마애불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이다. 정답 자료는 바위 면에 본존 여래 입상을 가운데 두고 좌우에 보살 입상과 반가 사유상을 새긴 삼존 부조로, 둥글고 온화한 얼굴 표정이 특징이다.
[고려시대 DATABASE - 『고려사』 왕대별 보기]
| 시기 | 내용 |
|---|---|
| 1년 | 연호를 광덕으로 정하다 |
| 3년 | 후주에 토산물을 보내다 |
| 11년 | 백관의 공복을 정하다 |
| 19년 | 혜거와 탄문을 국사와 왕사로 삼다 |
즉위 첫해 연호를 광덕으로 정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였으며 혜거와 탄문을 국사·왕사로 삼은 왕은 고려 광종이다. 광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12목 설치는 성종, 해동통보 발행과 서적포 설치는 숙종, 개경 나성 축조는 현종 때의 일이다.
시정(時政)을 논박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규찰과 탄핵 업무를 담당하였다. 국초에는 사헌대(司憲臺)라 불렸다. 성종 14년에 (가) (으)로 고쳤으며 [관원으로] 대부, 중승, 시어사, 전중(殿中)시어사, 감찰어사가 있었다.
-『고려사』-
시정을 논박하고 풍속을 교정하며 규찰과 탄핵을 담당하였고 국초에 사헌대라 불리다가 성종 때 이름이 바뀐 고려의 기구는 어사대이다.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으로 불리며 서경·간쟁·봉박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국정을 총괄한 곳은 중서문하성, 무신 집권기 최고 권력 기구는 교정도감, 도평의사사로 이름이 바뀐 기구는 도병마사이며, 삼사의 하나로 불린 것은 조선의 사헌부이다.

왕비인 노국 대장 공주와 함께 종묘에 신당이 마련되었고 기철 등 친원 세력을 숙청하였으며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한 왕은 공민왕이다.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운영하면서 권문세족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만권당 설치는 충선왕, 과거제 실시는 광종, 정계와 계백료서 편찬은 태조, 시무 28조 수용은 성종 때의 일이다.
(가) 임금이 강조를 토벌한다는 구실로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흥화진을 포위하였다. 양규는 도순검사가 되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 (가) 이/가 강조의 편지를 위조하여 흥화진에 보내어 항복하라고 설득하였다. 양규가 말하기를, “나는 왕명을 받고 온 것이지 강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항복하지 않았다.
강조를 토벌한다는 구실로 임금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와서 흥화진을 포위한 것은 거란의 2차 침입이므로 (가)는 거란이다. 고려는 앞서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고 광군사를 두어 지방군을 편성하였다. 동북 9성 개척은 여진, 화통도감 설치는 왜구, 강화 천도는 몽골에 대한 대응이며, 쌍성총관부 공격은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였다.
- 11월에 팔관회가 열렸다. 왕이 신봉루에 들러 모든 관료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다. …… 송의 상인과 탐라국도 특산물을 바쳤으므로 자리를 내주어 음악을 관람하게 하였는데, 이후 상례(常例)가 되었다.
- 대식국의 객상(客商) 보나합 등이 와서 …… 물품을 바쳤다. 관리에게 명하여 객관에서 우대하며 대접하게 하고, 돌아갈 때에는 황금과 명주를 넉넉하게 하사하였다.
팔관회에 송의 상인과 탐라, 대식국(아라비아) 상인이 참여하여 특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은 고려의 활발한 대외 교류를 보여 준다. 고려 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송방을 둔 송상과 금난전권 폐지는 조선 후기, 동시전과 신라방은 신라 때의 모습이다.
- 명학소의 백성 망이·망소이 등이 무리를 모아서 산행병마사라고 자칭하고는 공주를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 망이의 고향인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키고 양수탁을 현령으로, 김윤실을 현위로 임명하여 그들을 달래었다.
| 1104 별무반 조직 | (가) | 1126 이자겸의 난 | (나) | 1135 묘청의 난 | (다) | 1170 무신 정변 | (라) | 1231 몽골의 침입 | (마) | 1270 개경 환도 |
명학소의 망이·망소이가 봉기하여 공주를 함락하자 정부가 명학소를 충순현으로 승격시켜 회유한 것은 1176년의 일이다. 이는 무신 정변(1170)과 몽골의 침입(1231) 사이에 해당하므로 연표에서 (라) 시기에 들어간다.

개경 흥왕사 터에서 나온 대각국사 묘지명의 주인공으로, 문종의 넷째 아들이며 송에 유학한 뒤 국청사를 중심으로 천태종을 개창한 인물은 의천이다. 의천은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송·요·일본에서 모은 불교 경전의 주석서를 정리하여 교장을 간행하였다.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는 지눌, 무애가는 원효,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 건의는 자장, 백련사 결사는 요세의 활동이다.
[주제: 우리나라 불교 문화유산 - 학생들의 대화]
- 이 탑은 개성에 있었는데 지금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어.
- 원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의 대리석 탑이야.
-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지.





개성에 있다가 지금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원의 영향을 받은 다각 다층의 대리석 탑이며 조선 세조 때 세운 원각사지 십층 석탑에 영향을 준 문화유산은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이다. 정답 자료는 기단과 탑신의 모서리가 여러 번 꺾인 대리석 십층 탑으로, 목조 건축의 지붕과 공포를 세밀하게 새긴 것이 특징이다.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 기획안]
15세기 조선, 과학을 꽃 피우다
1. 기획 의도: 조선 초, 부국강병과 민생 안정을 위해 과학 기술 분야에서 노력한 모습을 살펴본다.
2. 구성
- 1부 태양의 그림자로 시간을 보는 앙부일구
- 2부 (가)
- 3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신무기, 신기전과 화차
앙부일구와 신기전·화차가 구성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기획안의 주제는 15세기 조선 세종 무렵의 과학 기술이다.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설계한 거중기는 18세기 말 정조 때 정약용이 만들어 수원 화성 축조에 사용한 것이므로 15세기를 다루는 이 기획안의 내용으로 알맞지 않다. 향약집성방, 칠정산 내편, 계미자와 갑인자, 농사직설은 모두 15세기의 성과이다.
#3. 궁궐 안
성종이 경연에서 신하들과 토지 제도 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성종: 그대들의 의견을 말해 보도록 하라.
김유: 우리나라의 수신전, 휼양전 등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이지만 오히려 일이 없는 자가 앉아서 그 이익을 누린다고 하여 세조께서 과전을 없애고 이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수신전·휼양전의 폐단 때문에 세조가 과전을 없애고 새로 만들었다는 ‘이 제도’는 직전법이다. 직전법은 나누어 줄 토지가 부족해지자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고 수신전·휼양전을 폐지한 제도이다. 전지와 시지를 등급에 따라 준 것은 고려의 전시과, 전세를 고정한 것은 영정법, 수조권을 없애고 녹봉만 지급한 것은 명종 때의 직전법 폐지, 개국 공신에게 인성과 공로를 기준으로 준 토지는 고려 태조의 역분전이다.
[가상 대화]
- 얼마 전 노산군이 이곳 영월에 유배를 왔다고 하네.
- 성삼문 등이 주도한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이곳으로 보내졌다더군.
노산군은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며, 대화의 배경은 성삼문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된 사건이다. 그 뿌리에는 수양 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왕위에 오른 과정이 있으므로 이를 정리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예송과 호락논쟁, 정여립 모반 사건, 인현 왕후 폐위는 모두 이보다 뒤인 조선 후기의 일이다.
[휴대 기기 메신저 대화]
- (가) 에 대해 알려 줄래?
- 조선 전기에 많이 제작된 도자기야.
- 회색의 태토 위에 맑게 거른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 유약을 씌워 구운 도자기야.
-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덜 만들어지게 되었어.





조선 전기에 많이 만들어졌고 회색 태토 위에 맑게 거른 백토로 표면을 분장한 뒤 유약을 씌워 구웠으며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쇠퇴한 도자기는 분청사기이다. 정답 자료는 둥근 몸체 가득 물고기 무늬를 새겨 넣은 분청사기 편병으로, 백토로 분장한 표면에 선을 그어 무늬를 나타낸 기법을 보여 준다.
[가상 장면 1]
- 지난달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의 죄를 물어야 합니다.
- 알아서 처분할 것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 (가) →
[가상 장면 2]
- 항복을 받기 위한 단을 삼전도에 이미 쌓았으니, 내일 황제 폐하 앞에서 의식을 거행할 것이오.
후금에 투항한 강홍립의 죄를 묻자는 장면은 광해군 대 중립 외교 시기의 상황이고, 삼전도에 항복 의식을 위한 단을 쌓았다는 장면은 1637년 병자호란의 결말이다. 그 사이인 1627년 정묘호란 때 정봉수와 이립이 용골산성에서 의병을 이끌고 후금군에 맞서 싸웠다. 나선 정벌과 소현 세자의 볼모살이는 병자호란 이후, 행주 대첩과 비변사의 최초 설치는 그 이전의 일이다.

조선의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고 돈화문·인정전·연경당과 부용정이 있는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궁궐은 창덕궁이다. 정조는 즉위 직후 창덕궁 후원에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을 세워 학문 연구와 정책 자문을 맡겼다. 서궐로 불린 곳은 경희궁,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와 인목 대비 유폐가 있었던 곳은 덕수궁, 조선 물산 공진회가 열린 곳은 경복궁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최근 여자들이 서로 다투어 즐겨하는 것이 오직 패설(稗說)*을 숭상하는 일이다. 패설은 날로 달로 증가하여 그 종류가 이미 엄청나게 되었다. 세책가에서는 패설을 깨끗이 필사하여, 빌려 보는 자가 있으면 그 값을 받아서 이익으로 삼는다. 부녀들은 …… [패설을] 서로 다투어 빌려다가 온종일 허비하니 음식이나 술을 어떻게 만드는지, 베를 어떻게 짜는지에 대해서도 모르게 되었다.
-『번암집』-
*패설(稗說): 민간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
세책가가 패설을 필사해 빌려주고 삯을 받았으며 부녀자들이 앞다투어 이를 빌려 보았다는 『번암집』의 기록은 조선 후기의 상황이다. 부산포·제포와 함께 염포를 열어 왜관에서 교역한 것은 조선 전기 세종 때의 일이므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다. 담배 재배, 장시의 탈춤 공연, 중인의 시사 조직, 덕대의 광산 경영은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김세렴이 부사로 참여하여 『해사록』을 남겼고 쓰시마와 교토를 거쳐 에도까지 가서 쇼군을 만난 사절단은 조선 통신사이다. 통신사는 일본 에도 막부의 요청으로 파견되어 국서를 전하고 조선의 문물을 전해 주는 문화 교류의 통로가 되었다. 암행어사처럼 비밀리에 보낸 것은 조사 시찰단, 해국도지·영환지략을 들여온 것은 청에 다녀온 사행, 하정사·성절사·천추사는 명·청에 보낸 사절이며, 기기국에서 무기 제조 기술을 배운 것은 영선사이다.

주합루, 문체반정, 탕평책, 무예도보통지, 신해통공, 사도세자, 호 홍재, 수원 화성이 연관어로 제시된 왕은 정조이다. 정조는 국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여 군사적 기반을 강화하고 왕권을 뒷받침하였다. 어영청을 중심으로 한 북벌 추진은 효종,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백두산정계비 건립은 숙종, 균역법 제정은 영조 때의 일이다.

지도의 (가)는 의주, (나)는 평양, (다)는 개성, (라)는 전주, (마)는 부산이다. 나석주가 조선 식산 은행과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곳은 평양이 아니라 경성이므로 옳지 않다. 만상의 대청 무역은 의주, 만적의 신분 해방 도모는 개성, 동학 농민군과 정부의 화약 체결은 전주, 송상현과 정발의 순절은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 평안 감사가 “이달 19일에 관군이 정주성을 수복하고 두목 홍경래 등을 죽이거나 사로잡았습니다.”라고 임금께 보고하였다.
(나) 경상도 안핵사 박규수는 “이번 진주의 백성들이 난을 일으킨 것은 오로지 전 우병사 백낙신이 탐욕을 부려 포학스럽게 행동한 까닭에서 연유한 것이었습니다.”라고 임금께 보고하였다.
(가)는 관군이 정주성을 되찾고 홍경래 등을 붙잡은 1812년의 일이고, (나)는 안핵사 박규수가 진주 농민 봉기의 원인을 보고한 1862년 임술 농민 봉기이다. 그 사이인 1860년 최제우가 서학에 맞서 동학을 창시하였다. 신유박해는 1801년, 이괄의 난과 이인좌의 난은 그보다 앞선 일이며,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시도는 1868년으로 (나) 이후의 일이다.

대전통편 이후 80여 년 만에 편찬된 조선 시대 마지막 통일 법전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인 1865년의 대전회통이다. 이 무렵 흥선 대원군이 서원을 정리하면서 만동묘를 철폐하자 유생들이 크게 반발하며 복구를 건의하였다. 동의보감 집필은 광해군 때, 훈민정음 연구와 계해약조 체결은 세종 때, 성균관 탕평비 건립은 영조 때의 일이다.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프랑스 선교사 베르뇌 주교가 새남터에서 처형되는 등 천주교 신자들이 크게 탄압받은 사건은 1866년의 병인박해이다. 이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희생된 것은 같은 해 로즈 제독의 함대가 강화도를 침입한 병인양요의 빌미가 되었다. 황사영 백서 사건은 신유박해,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강화도 조약, 청군 출병 요청과 이용태의 안핵사 파견은 동학 농민 운동과 관련된다.
[사료로 보는 한국사]
제1조
이하응을 보정성성(保定省城)으로 이송하여 청하도의 옛 관서에 거주시키도록 한다. …… 이하응에게 오가는 서신 일체는 밀봉할 수 없으며 간수 위원의 검열을 거쳐야 보낼 수 있다. 밀봉되었거나 한글로 된 서신은 위원이 반송한다.
[해설] 청으로 끌려간 흥선 대원군(이하응)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의 일부이다. 개화 정책에 대한 불만과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로 일어난 이 사건을 진압한 청은 그 책임을 물어 흥선 대원군을 납치해 갔다.
개화 정책에 대한 불만과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로 일어났고, 이를 진압한 청이 흥선 대원군을 납치해 간 사건은 1882년의 임오군란이다. 임오군란 이후 청은 내정 간섭을 강화하면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맺어 청 상인의 내지 통상권을 확보하였다. 삼정이정청 설치는 임술 농민 봉기, 어재연 부대의 광성보 항전과 척화비 건립은 신미양요, 운요호의 영종도 공격은 그 이전의 일이다.

알렌이 초기 운영을 주도하고 헤론이 진료를 전담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은 1885년에 세워진 광혜원(뒤에 제중원)이다. 같은 해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 학당을 세워 근대 교육을 시작하였으므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영선사 파견(1881),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1884), 연무당에서의 강화도 조약 체결(1876),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은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가상 대화]
- 군국기무처 의안에서 공노비와 사노비에 대한 법을 폐지한다는 내용을 보았다. 그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보 기>
- ㄱ.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 ㄴ. 한성순보가 발행되었다.
- ㄷ.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되었다.
- ㄹ. 재판소를 설치하여 사법권을 독립시켰다.
군국기무처의 의안으로 공노비와 사노비에 대한 법을 폐지한 것은 1894년 제1차 갑오개혁이다. 이후 제2차 갑오개혁 과정에서 근대 교육의 방향을 밝힌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되었고, 재판소를 설치하여 행정권에서 사법권을 분리하였다. 별기군 창설(1881)과 한성순보 발행(1883)은 그 이전의 일이다.
발신: 고무래(일본국 변리공사)
수신: 사이온지(일본국 외무대신)
지난 11일 새벽, 대군주는 급히 외국 공사관에 피신해야 한다는 거짓 밀고를 받았음. 대군주는 몹시 두려워하여 마침내 왕태자와 함께 궁녀들이 타는 가마를 타고 경계의 허술함을 틈타 밖으로 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하였으나, 조금도 이를 저지하는 사람이 없었음.
대군주가 왕태자와 함께 궁녀들의 가마를 타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갔다는 일본 공사의 보고는 1896년의 아관 파천을 전한 것이다. 고종이 궁궐을 벗어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배경에는 일본이 명성 황후를 시해한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사정이 있었다. 원수부 설치, 러일 전쟁, 한일 신협약, 용암포 사건은 모두 아관 파천 이후의 일이다.
[가상 대화]
- 이번 장정의 체결로 우리의 관세권을 일정 부분 회복했다고 하네.
- 그렇지만 이 장정으로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해 주었다더군.
관세권을 일정 부분 회복하는 대신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해 준 조약은 1883년에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이다. 이 장정에는 흉년 등으로 곡물 수출을 금지할 때 1개월 전에 지방관이 미리 알리도록 한 방곡령 시행 규정이 들어 있었다. 갑신정변의 결과로 맺어진 것은 한성 조약,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은 제물포 조약, 일본인 재정 고문 파견은 제1차 한일 협약, 부산 외 2개 항구 개항은 강화도 조약의 내용이다.

남궁억이 1896년 서재필 등과 함께 창립하였고, 의회 설립 운동이 공화제를 세우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 이상재 등과 함께 체포되면서 해산된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청의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던 자리 부근에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독립문을 세웠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105인 사건으로 와해된 것은 신민회,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진상 조사단 파견은 신간회,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일이다.
(가) 제2조 일본국 정부는 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는 책임을 지며 한국 정부는 금후 일본국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서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을 맺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제3조 일본국 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한국 황제 폐하의 아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서울에 주재하고 직접 한국 황제 폐하를 궁중에서 알현할 권리를 가진다.
(나) 제2조 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친다.
제4조 한국 고등 관리를 임명하고 해임시키는 것은 통감의 동의에 의하여 집행한다.
제5조 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한 일본인을 한국 관리로 임명한다.
(가)는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을 두도록 한 1905년의 을사늑약이고, (나)는 법령 제정과 관리 임명에 통감의 승인·동의를 받도록 한 1907년의 한일 신협약이다. 그 사이인 1907년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은 1908년, 관민 공동회는 1898년, 우금치 전투는 1894년, 거문도 사건은 1885년의 일이다.

1905년 일포드호를 타고 유카탄반도의 에네켄 농장으로 향한 계약 노동 이민자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이다. 멕시코의 한인들은 독립군 간부를 기르기 위해 메리다에 숭무 학교를 세웠다. 권업회와 권업신문, 대동 단결 선언은 연해주, 북로 군정서는 북간도,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와 관련된다.

1910년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을 저술하였고 국내에서 삼흥 학교를 세웠으며 연해주 의병의 우영장으로 국내 진공 작전을 펴다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인물은 안중근이다. 그는 1909년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 대한매일신보 발간은 양기탁, 서전서숙 설립은 이상설, 독립 의군부 조직은 임병찬의 활동이다.
[역사 신문 제△△호 ○○○○년 ○○월 ○○일]
조선 관세령 폐지되다
오늘 총독부가 조선 관세령 폐지를 발표하였다. 당국은 일선융화를 위해 내린 조처라 말하지만, 앞으로 조선인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일본산 상품이 조선에 물밀듯 밀려와 시장을 독점하여 자본과 기술에서 열세에 놓여 있는 조선의 공업을 흔적도 없게 만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인해 조선의 제조업자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총독부가 조선 관세령을 폐지하여 일본 상품이 사실상 무관세로 밀려들게 된 것은 1923년의 일이다. 관세 철폐로 국내 산업이 위협받자 조선 물산 장려회를 중심으로 국산품 애용을 내건 물산 장려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1908), 화폐 정리 사업(1905), 회사령 공포(1910), 황국 중앙 총상회의 상권 수호 운동(1898)은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가상 대화]
- 얼마 전 종로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소식을 들었는가? 이날 체포된 학생들에 대한 공판이 곧 열린다더군.
- 융희 황제의 인산일에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고 만세를 외친 그 사건 말씀이시죠? 사전에 권오설 선생 등이 경찰에게 체포되어서 걱정이었는데, 학생들 덕분에 시위가 가능했지요.
융희 황제(순종)의 인산일에 학생들이 격문을 뿌리고 만세를 외쳤으며 사전에 권오설 등이 체포된 사건은 1926년의 6·10 만세 운동이다. 이 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이 힘을 모은 경험은 이듬해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 결성에 영향을 주었다. 원산 총파업은 1929년, 치안 유지법 제정은 1925년, 국민 대표 회의 개최는 1923년의 일이며, 한일 학생 간 충돌로 일어난 것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시기는 1930년대 후반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황국 신민 서사를 만들어 학교와 직장에서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미쓰야 협정(1925), 조선 태형령(1912), 헌병 경찰 제도(1910년대), 만보산 사건(1931)은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의열단 단장으로 난징 천녕사 옛터에 조선 혁명 군사 정치 간부 학교를 세워 1932년부터 독립군 간부를 길러 낸 인물은 김원봉이다. 그는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우한에서 조선 의용대를 창설하였다. 대한 광복군 정부 수립은 이상설·이동휘, 대한 광복회 총사령은 박상진, 대전자령 전투는 지청천, 조선 혁명 선언 집필은 신채호의 활동이다.

보고서의 지도에서 (가)는 종로 쪽에 표시된 단성사에 대한 설명이 들어갈 자리이다. 단성사는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이 처음 상영된 극장이다. 기미 독립 선언서가 인쇄된 곳은 보성사, 조선 형평사 창립 대회가 열린 곳은 진주, 전형필이 수집한 문화재가 전시된 곳은 보화각, 강우규가 폭탄을 던진 곳은 남대문역이다.
우리는 삼천만의 한국인 및 정부를 대표하여 중국, 영국, 미국, …… 기타 국가들이 일본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을 삼가 축하한다. 이것은 일본을 격패(擊敗)시키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이에 특별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 1. 한국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여한 상태이며 하나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에 전쟁을 선포한다.
- 2. 1910년의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이 무효임을 재차 선포한다. 아울러 반침략 국가가 한국에 지닌 합리적 기득 권익을 존중한다.
- 3. 왜구를 한국, 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축출하기 위하여 혈전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둔다.
연합국의 대일 선전을 축하하며 한국이 하나의 전투 단위로 추축국에 전쟁을 선포한다고 밝힌 이 문서는 1941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발표한 대일 선전 성명서이다. 이후 임시 정부의 한국 광복군은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함께 특수 훈련을 받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한국 광복군 창설(1940), 연통제 운영, 파리 강화 회의 청원서 제출(1919), 한인 애국단 조직(1931)은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뉴스 화면 - 자막: (가) 옥살이 335명, 70여 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제주도에서 발생한 (가) 당시 토벌대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법원은 오늘 이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 335명에 대해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제주도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토벌대가 초토화 작전을 벌여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은 제주 4·3 사건이다. 2000년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 조사와 재심이 이루어졌다. 허정 과도 내각의 성립은 4·19 혁명, 3·1 민주 구국 선언은 유신 체제 시기, 신한 공사 설립은 미군정기,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 등재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다.
[라디오 뉴스를 듣는 사람들]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 선생이 오늘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회견에서 선생은 자유당이 강도적으로 통과시킨 보안법은 무효이며, 과거 부산 정치 파동 때와 같이 반독재 구국 범국민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며 여생을 민주주의를 위하여 바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습니다.
자유당이 강행 처리한 보안법 파동과 앞서 있었던 부산 정치 파동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 뉴스는 이승만 정부 시기에 보도된 것이다. 인민 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하여 관련자를 탄압한 것은 1974년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므로 이 시기의 사실로 옳지 않다. 진보당의 조봉암 제거, 경향신문 폐간, 3·15 부정 선거, 반민 특위 국회 의원 체포는 모두 이승만 정부 시기의 일이다.
[교사] 이 노래는 새마을 운동을 처음 시작한 정부에서 보급한 것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도시와 농촌의 균형있는 발전을 목표로 근면, 자조, 협동을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이 정부 시기의 경제 상황에 대해 말해 볼까요?
[새마을 노래]
1.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새마을 운동을 처음 시작한 정부는 박정희 정부로, 1970년부터 근면·자조·협동을 구호로 내걸고 농촌 환경 개선 사업을 벌였다. 이 시기 중화학 공업 육성의 발판으로 1973년 포항 종합 제철 1기 설비가 준공되었다.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노무현 정부, 3저 호황은 전두환 정부, 금융 실명제 실시는 김영삼 정부, 노사정 위원회 구성은 김대중 정부 시기의 일이다.
[학급 온라인 게시판 화면]
■ 주제: 현행 헌법 체제를 가져온 (가) 자료집 만들기
- 수행 과제: (가) 중 인상적인 장면을 그려 설명과 함께 올려 주세요.
- 게시자: 김○○ - 박종철 열사 추모 시위
- 게시자: 윤○○ -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민들
- 게시자: 박○○ - 6⋅29 선언에 기뻐하는 시민들
- 게시자: 이○○ - 이한열 열사 장례식 행렬
박종철 열사 추모 시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 이한열 열사의 죽음, 6·29 선언으로 이어져 현행 헌법 체제를 가져온 민주화 운동은 1987년의 6월 민주 항쟁이다. 시민들은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내걸고 전두환 정부의 호헌 조치에 맞섰고,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유신 체제 붕괴의 계기가 된 것은 부마 민주 항쟁,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는 6·3 시위, 양원제 국회 출현은 4·19 혁명, 신군부의 비상 계엄 확대가 원인이 된 것은 5·18 민주화 운동이다.
[○○○ 정부의 정책 마인드맵]
- 대북 화해 협력
- (가)
- 복지 제도 확대
-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제정
- 국민 인권 보호
- 국가 인권 위원회 설립
- 외환 위기 극복
- 국제 통화 기금 지원금 조기 상환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제정, 국가 인권 위원회 설립, 국제 통화 기금 지원금 조기 상환을 정책으로 내세운 정부는 김대중 정부이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하여 2000년 남북 정상 회담과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이끌어 냈고, 남북한 교류 협력을 위한 개성 공단 조성에 합의하였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노태우 정부,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은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