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54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54회

제시된 자료의 김포 신안리 유적은 빗살무늬 토기와 갈돌·갈판이 함께 출토된 집터 유적으로, 정착 생활과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를 가리킨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옷이나 그물을 지어 사용하였다. 명도전 사용, 청동 방울 같은 의례 도구, 세형 동검 거푸집, 고인돌 축조는 모두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모습이다.
대군장이 없고 관직으로는 후·읍군·삼로가 있다. …… 해마다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니 이를 무천이라 한다. …… 낙랑의 단궁이 그 지방에서 산출되고 무늬 있는 표범이 많다. 과하마가 있으며 바다에서는 반어가 난다.
- 『후한서』 -
제시된 『후한서』 기록은 대군장이 없이 후·읍군·삼로가 다스리고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으며 단궁·과하마·반어피가 특산물인 나라, 곧 동예에 대한 것이다. 동예에는 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나 소·말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의 풍습이 있었다. 소도는 삼한, 민며느리제는 옥저, 제가 회의는 고구려, 사출도는 부여의 제도이다.

이진아시왕이 고령 일대에 세웠고 지산동 고분군이 남아 있는 (가) 나라는 대가야이다. 가야 연맹은 처음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주도하다가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이 되었으므로 연맹 중심지의 이동 과정을 조사하는 활동이 적절하다. 범금 8조는 고조선, 임신서기석은 신라, 안동도호부는 고구려 멸망 이후, 22담로는 백제와 관련된 주제이다.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병부를 설치하고 율령을 반포한 신라 법흥왕 대에 세워진 비석으로, 밑줄 그은 왕은 법흥왕이다. 법흥왕은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하여 사상적 통합을 꾀하였다. 우산국 복속은 지증왕,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 독서삼품과는 원성왕, 국사 편찬은 진흥왕 때의 일이다.






도읍이었던 지안과 평양 일대에 고분 벽화가 남아 있는 이 국가는 고구려이다. 행렬과 접객, 씨름, 사냥 등 일상생활과 풍속을 묘사한 장면들은 모두 고구려 고분 벽화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인들이 붉은 상을 맞들고 음식을 나르는 장면을 그린 벽화는 지안·평양 일대의 고구려 고분 벽화로 볼 수 없다.
- (가) 잔치를 크게 열어 장수와 병사들을 위로하였다. 왕과 [소]정방 및 여러 장수들은 당상(堂上)에 앉고, 의자와 그 아들 융은 당하(堂下)에 앉혔다. 때로 의자에게 술을 따르게 하니 백제의 좌평 등 여러 신하는 모두 목이 메어 울었다.
- (나) 사찬 시득이 수군을 거느리고 설인귀와 소부리주 기벌포에서 싸웠으나 잇달아 패배하였다. [시득은] 다시 진군하여 크고 작은 22번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4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
(가)는 660년 백제가 멸망한 직후 소정방이 의자왕과 그 아들 융을 앉혀 놓고 벌인 승전 잔치이고, (나)는 676년 신라가 기벌포에서 당의 설인귀 군대를 물리친 기벌포 전투이다. 그 사이인 674년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끌던 안승을 보덕왕으로 삼아 당에 맞서는 데 활용하였다. 고국원왕 전사(371), 관산성 전투(554), 나당 군사 동맹(648), 살수 대첩(612)은 모두 (가) 이전의 일이다.

해동성국이라 불렸고 사신 이거정이 일본에 다라니경을 전한 (가) 국가는 발해이다. 발해는 선왕 대에 이르러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었다. 광군은 고려 정종, 9서당 10정과 외사정은 통일 신라, 광덕·준풍 연호는 고려 광종과 관련이 있다.
- (가) 도적들이 나라의 서남쪽에서 일어났는데, 붉은색 바지를 입어 모습을 다르게 하였기 때문에 적고적(赤袴賊)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주와 현을 도륙하고, 수도의 서부 모량리까지 와서 민가를 노략질하고 돌아갔다.
- (나) 웅천주 도독 헌창은 그의 아버지 주원이 임금이 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이라 하고, 연호를 세워 경운 원년이라 하였다.
- (다) 아찬 우징은 청해진에 있으면서 김명이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식을 듣고 청해진 대사 궁복에게 말하였다. “김명은 임금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 장군의 군사를 빌려 임금과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가)는 진성 여왕 때 일어난 적고적의 난, (나)는 헌덕왕 때인 822년의 김헌창의 난, (다)는 우징이 청해진의 장보고에게 군사를 빌려 김명(민애왕)에게 맞서려 한 838년의 상황이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김헌창의 난 → 우징의 거병 → 적고적의 난이다. 세 자료 모두 신라 하대 왕위 쟁탈전과 지방 세력의 성장을 보여 준다.

답사 계획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공주(송산리 고분군·공산성), 부여(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능산리 고분군), 익산(미륵사지·왕궁리 유적) 순으로 돌아보는 일정이다. 익산 미륵사지에서는 서탑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금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어 창건 내력이 밝혀졌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었고, 무령왕과 왕비의 무덤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발굴되었다.
- (가) 은/는 왕의 족제(族弟)인 김부에게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런 후에 왕의 아우 효렴과 재상 영경을 사로잡았다.
- (가) 은/는 넷째 아들 금강이 키가 크고 지혜가 많아 특히 아끼어 왕위를 전하려 하니, [금강의] 형 신검, 양검, 용검 등이 이를 알고 몹시 근심하고 번민하였다.
왕의 족제인 김부(경순왕)를 신라 왕위에 앉히고, 넷째 아들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 신검 등의 반발을 산 (가) 인물은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견훤은 중국의 오월에 사신을 보내 검교태보의 직을 받는 등 독자적인 외교를 펼쳤다. 사림원 설치는 충선왕, 마진 국호와 철원 천도는 궁예, 김흠돌 숙청은 신문왕, 정계와 계백료서는 왕건의 일이다.
왕이 “중앙의 5품 이상 관리들은 각자 봉사를 올려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논하라.”라고 명령하였다. 최승로가 상소하였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이제 앞선 5대 조정의 정치와 교화에 대해서 잘되고 잘못된 행적들을 기록하고, 거울로 삼거나 경계할 만한 것들을 삼가 조목별로 아뢰겠습니다. …… 신이 또 시무(時務) 28조를 기록하여 장계와 함께 따로 봉하여 올립니다.”
- 『고려사절요』 -
5품 이상 관리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고 최승로가 시무 28조를 올린 것은 고려 성종 때의 일이다.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주요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흑창 설치는 태조, 노비안검법은 광종, 청연각·보문각은 예종, 전민변정도감은 공민왕과 관련된다.

신기군·신보군·항마군으로 편성되고 오연총이 부원수로 활약한 (가) 부대는 고려 숙종 때 윤관의 건의로 조직된 별무반이다. 별무반은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 지방에 9성을 쌓았다. 4군 6진 개척은 조선 세종, 일본 원정 참여는 원 간섭기,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것은 김윤후, 최씨 정권의 군사적 기반은 도방과 삼별초이다.
이번에 왕명을 받아 편찬한 역사서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이 책은 묘청의 난을 진압한 뒤, 우리나라의 역사를 좀 더 잘 알아야 한다는 폐하의 말씀에 따라 유교 사관을 바탕으로 삼국의 역사를 충실히 기록하였습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뒤 왕명을 받아 유교 사관에 따라 삼국의 역사를 정리한 이 역사서는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이다. 『삼국사기』는 본기·열전·지·표를 갖춘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남북국이라는 용어는 『발해고』,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는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고구려 시조의 일대기를 노래한 것은 『동명왕편』이다.

순천 송광사를 중심으로 불교계 개혁 운동을 펴고 돈오점수를 주장한 (가) 인물은 보조국사 지눌이다. 지눌은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를 강조하였다. 『해동고승전』은 각훈, 화엄일승법계도는 의상, 교장 편찬은 의천, 보현십원가는 균여의 업적이다.
이번에 개정된 토지 제도에 대해 들었는가?
들었네. 인품을 배제하고 관직과 위계의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다고 하더군.
지급 기준이 점차 정비되어 가는군.
인품을 배제하고 관직과 위계의 높낮이만을 기준으로 전지와 시지를 지급한 이 토지 제도는 고려 목종 때의 개정 전시과이다. 고려에서는 숙종 때 주전도감을 두고 삼한통보·해동통보 등의 화폐를 국가 주도로 발행하였다. 초량 왜관 무역과 도고의 활동, 설점수세제는 조선 후기, 동시전 설치는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다.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찾아낸,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 활자로 간행된 (가)는 『직지심체요절』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었다.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한 것은 『성학십도』, 3년마다 작성된 것은 신라 촌락 문서, 거란 격퇴를 기원한 것은 초조대장경, 충신·효자·열녀를 알린 것은 『삼강행실도』이다.
- (가) 다루가치가 왕을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선지(宣旨)라 칭하고, 짐(朕)이라 칭하고, 사(赦)라 칭하니 어찌 이렇게 참람합니까?”라고 하였다. …… 이에 선지를 왕지(王旨)로, 짐을 고(孤)로, 사를 유(宥)로, 주(奏)를 정(呈)으로 고쳤다.
- (나) 왕이 시해당하자 태후가 종실에서 [후사를] 골라 세우고자 하니, 시중 이인임이 백관을 거느리고 우왕을 세웠다.
(가)는 다루가치의 요구로 선지·짐·사 등의 용어를 왕지·고·유로 낮춘 원 간섭기 초의 관제 격하이고, (나)는 공민왕이 시해된 뒤 이인임이 우왕을 옹립한 1374년의 상황이다. 그 사이인 1356년 공민왕은 유인우·이자춘 등을 보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다. 무신 정변(1170)과 강화 천도(1232)는 이전, 화통도감 설치(1377)와 요동 정벌 추진(1388)은 이후의 일이다.
왕이 말하였다. “장영실은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총명하고 뛰어나 자격루를 만들었다. 이것은 만대에 이어 전할 만한 기물로 그 공이 작지 아니하니 호군의 관직을 더해 주고자 한다.” 황희가 “장영실에게만 안 될 것이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그대로 따랐다.
장영실이 자격루를 만든 공으로 호군에 임명되고 황희가 이를 뒷받침한 것은 조선 세종 때의 일이다. 세종 대에는 정초 등이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한 『농사직설』을 편찬하였다. 계미자 주조는 태종, 무예도보통지 간행은 정조, 훈련도감 설치는 선조, 동의보감 완성은 광해군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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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에 대해 알려 줄래?
- 대제학, 부제학 등의 관직을 두었어.
- 궁중의 서적과 문서를 관리하였어.
- 옥당, 옥서 등의 별칭이 있었어.
대제학·부제학 등의 관직을 두고 궁중의 서적과 문서를 관리하였으며 옥당·옥서로 불린 (가) 기구는 조선의 홍문관이다. 홍문관은 사헌부·사간원과 더불어 3사로 불리며 언론과 간쟁을 담당하였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화된 것은 비변사, 왕명 출납은 승정원, 반역죄·강상죄 처결은 의금부의 일이다.

수원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으로 대성전·명륜당·동재와 서재를 갖춘 (가)는 향교이다. 향교에는 중앙에서 교수나 훈도를 파견하여 지방 유생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7재는 고려 국자감, 주세붕이 처음 세운 것은 백운동 서원, 생원·진사의 입학과 율학·서학·산학 교육은 각각 성균관과 고려 국자감에 해당한다.
- (가) 항과 봉은 정씨의 소생이다. 왕은 어머니 윤씨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 정씨의 참소 때문이라 여기고, 밤에 엄씨, 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항과 봉을 불러 엄씨,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라고 하였다. …… 왕은 대비에게 “어찌하여 내 어머니를 죽였습니까?”라고 하며 불손한 말을 많이 하였다.
- (나) 이덕응이 진술하였다. “윤임과는 항상 대윤, 소윤이라는 말 때문에 화가 미칠까 우려하여 서로 경계하였을 뿐이었고, 모략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 윤임이 신에게 ‘주상이 전혀 소생할 기미가 없으니 만약 대군이 왕위를 계승하여 윤원로가 뜻을 얻게 되면 우리 집안은 멸족당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는 폐비 윤씨 사건에서 비롯되어 연산군이 엄씨·정씨를 죽인 1504년의 갑자사화, (나)는 대윤과 소윤의 대립 속에 윤임 일파가 제거된 1545년의 을사사화이다. 그 사이인 중종 때에는 조광조의 건의로 신진 인사를 등용하기 위한 현량과가 시행되었다. 경신환국(1680)과 기축옥사(1589), 탕평비 건립(영조)은 이후, 무오사화(1498)는 이전의 일이다.

선릉에 잠들어 있고 재위 기간에 예악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국조오례의』와 『악학궤범』이 편찬된 (가) 왕은 조선 성종이다. 성종은 세조 때 시작된 법전 편찬 작업을 마무리하여 『경국대전』을 반포함으로써 조선의 통치 체제를 완성하였다. 상평통보 발행은 숙종, 구황촬요 간행은 명종, 초계문신제는 정조, 동국문헌비고 편찬은 영조 때의 일이다.

진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김시민을 선무 공신으로 책봉한 교서가 나온 이 전쟁은 임진왜란이다. 조명 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권율의 행주 대첩, 조헌의 금산 의병 활동,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은 모두 임진왜란 중의 사실이다. 임경업이 백마산성에서 항전한 것은 병자호란 때의 일이므로 이 전쟁 중의 사실로 볼 수 없다.






온라인 전시는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소개하고 있다. (가)에 들어갈 작품은 비가 갠 뒤의 인왕산을 짙은 먹으로 그려 낸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정선은 이처럼 실제 경치를 직접 보고 그리는 진경산수화를 개척하여 조선 후기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국왕께서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감면하라는 명을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백성들의 군역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입니다. 아울러 감면으로 인한 재정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책도 마련하라고 하셨습니다.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고 그로 인한 재정 부족을 메울 대책을 마련하게 한 것은 조선 영조 때 시행된 균역법이다. 부족분을 채우기 위해 결작을 거두고 어장세·염세·선박세를 국고로 돌렸으며, 일부 부유한 양민에게는 선무군관이라는 칭호를 주고 선무군관포를 징수하였다. 연분 9등법은 세종,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수신전·휼양전 폐지는 세조, 제위보는 고려 광종과 관련된다.
비변사에서 임금에게 아뢰었다. “삼남에서 특산물로 종이를 바치는 공인이 청원하기를 ‘승려들의 숫자가 줄어 종이의 양이 부족한 데도 각 지방의 군영과 관아에서 먼저 가져갑니다. 이로 인해 중앙에 공물로 납부할 종이가 부족해 공인이 처벌되는 일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송상들이 각 사찰에 출입하며 종이를 몰래 사들여 책문에 가서 시장을 만드는 행위를 엄금해 은밀히 국경을 넘는 폐단을 없애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비변사의 보고에 공물을 조달하는 공인과 개성의 송상, 책문 후시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대동법 시행 이후의 조선 후기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중인들의 시사 활동, 여러 장시를 오가는 보부상, 한글 소설을 읽어 주는 전기수, 담배·채소 등 상품 작물 재배가 나타났다. 솔빈부는 발해의 지방 행정 구역이므로 그 특산품인 말을 수입하는 상인은 조선 후기에 볼 수 없다.
시(詩)로 만나는 실학자
육지의 재화는 연경과 통하지 않고바다의 상인은 왜의 물건을 실어 오지 않네
비유컨대 들판의 우물물과 같아
긷지 않으면 저절로 말라 버리네
[해설] 이 시는 연행사의 일원으로 다녀온 그가 청의 발달한 문물을 경험하고 지은 것이다.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된 그는 시의 내용처럼 재화를 우물물에 비유하며 소비 촉진을 통한 생산력의 증대를 주장하였다.
연행사의 일원으로 청에 다녀오고 서얼 출신으로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되었으며 재화를 우물물에 비유한 그는 박제가이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수레와 배를 널리 이용할 것을 권장하였다. 거중기 설계는 정약용, 강화학파 형성은 정제두, 『열하일기』는 박지원, 『우서』는 유수원의 저술이다.

김정호가 조선의 지도 제작 기술을 집대성하여 만들고 10리마다 눈금을 표시하였으며 산줄기 표현에 역점을 둔 (가)는 대동여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전국을 남북 22층으로 나누어 접고 펼 수 있게 만든 목판본 지도이다. 100리 척은 정상기의 동국지도에 처음 적용되었고, 현존 최고의 지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며, 지방의 연혁·산천·풍속을 자세히 담은 것은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지리지이다.
진주의 난민들이 경상 우병사 백낙신을 협박하고 사람을 참혹하게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난민들이 이렇게 극도에 이른 경우는 없었는데, 평소에 잘 위무했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박규수를 경상도 안핵사로 내려보내 사태를 수습토록 하라.
진주에서 난민들이 경상 우병사 백낙신을 몰아세우고 정부가 박규수를 안핵사로 파견한 이 사건은 1862년의 진주 농민 봉기이다. 봉기가 삼남 지방으로 번지자 정부는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 청의 군대에 진압된 것은 갑신정변, 서북인 차별에 반발한 것은 홍경래의 난, 남접과 북접이 연합한 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다.
- 왕이 말하였다. “요즘에 서원마다 사무를 자손들이 주관하고 붕당을 각기 주장하니, 이로 인한 폐해가 백성들에게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 의 분부대로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땅에 묻어 버리는 등의 절차를 거행하도록 전국에 알려라.”
- (가) 에게 군국사무를 처리하라는 명이 내려지자 그는 궐내에서 거처하며 5군영의 군사 제도를 복구하고 군량을 지급하게 하였다. 그리고 난병(亂兵)들을 물러가게 하고 대사면령을 내렸다.
서원 철폐를 분부하고 군국사무를 맡아 5군영을 복구하며 임오군란의 수습에 나선 (가) 인물은 흥선 대원군이다. 흥선 대원군은 신미양요 직후 종로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널리 알렸다. 장용영 설치는 정조, 나선 정벌은 효종, 『속대전』 편찬은 영조, 독립문 건립은 독립 협회의 일이다.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 수비대가 로저스 제독의 미국 함대에 맞서 광성보에서 싸운 이 사건은 1871년의 신미양요이다. 연표에서 오페르트 도굴 사건(1868)과 강화도 조약(1876)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미군은 광성보를 점령하고 어재연의 수자기를 가져갔으나 조선이 통상 요구를 거부하자 결국 물러갔다.
- (가) 수신사 김기수가 나와 엎드리니 왕이 말하였다. “전선, 화륜과 농기계에 관하여 들은 것은 없는가? 저 나라에서 이 세 가지 일을 제일 급하게 힘쓰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하던가?” 김기수가 “과연 그러하였습니다.”라고 아뢰었다.
- (나) 어윤중이 동래부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왕에게서 받은 봉해진 서신을 열어보니, “일본 조정의 논의와 정국의 형세, 풍속·인물·교빙·통상 등의 대략을 염탐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니 너는 일본으로 건너가 크고 작은 일들을 보고 듣되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낱낱이 탐지해서 별도의 문서로 조용히 보고하라.”라는 내용이었다.
(가)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직후 일본에 다녀온 수신사 김기수가 고종에게 보고하는 장면이고, (나)는 1881년 어윤중이 암행어사의 이름으로 일본에 파견되는 조사 시찰단 관련 자료이다. 그 사이인 1880년 정부는 개화 정책을 총괄할 기구로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고 그 아래 12사를 두었다. 보빙사 파견(1883), 한성 사범 학교 설립(1895), 조프 수호 통상 조약 체결(1886)은 이후, 운요호 사건(1875)은 이전의 일이다.
[앞 장면] 오늘 화약을 체결했으니 전주성에서 물러가시오. / 알겠소. 폐정 개혁과 농민군의 신변 보장을 해주시오.
→ (가) →
[뒤 장면] 어제 군국기무처에서 과거제를 폐지했다고 하네. / 앞으로 인재 등용에 큰 변화가 있겠군.
앞 장면은 1894년 5월 동학 농민군과 정부가 맺은 전주 화약이고, 뒤 장면은 군국기무처가 과거제 폐지를 결정한 제1차 갑오개혁의 상황이다. 그 사이에 정부는 자주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교정청을 설치하였다.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과 건양 연호 제정(1895), 독립신문 창간(1896), 한성 전기 회사 설립(1898)은 모두 그 이후의 일이다.
지난 시간에는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이후 추진한 개혁을 배웠습니다. 이 화면에는 여러분이 수업 후 기억에 남는 용어를 입력한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입력 빈도가 높을수록 큰 글씨로 표시됩니다.
[화면에 표시된 용어] 원수부 · 내장원 · 탑골공원 · 구본신참 · 전제군주제 · 양무호 · 상공학교 · 대한천일은행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뒤 원수부와 내장원을 두고 구본신참을 내세우며 추진한 이 개혁은 대한 제국의 광무개혁이다. 광무개혁에서는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토지 소유권을 증명하는 문서인 지계를 발급하였다. 5군영의 2영 개편과 박문국 설치는 개항 직후, 홍범 14조 반포는 제2차 갑오개혁, 육영 공원 설립은 1886년의 일이다.

안창호 등이 1907년에 조직한 비밀 결사로 신흥 무관 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길러 낸 (가) 단체는 신민회이다. 신민회는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은 조선어 학회, 조선 혁명 선언은 의열단,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 독립 공채 발행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관련된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을 갚기 위해 전개되었고 대한매일신보가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보도한 (가)는 1907년의 국채 보상 운동이다. 이 운동은 대구에서 서상돈·김광제 등의 발의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회사령 폐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물산 장려 운동, 색동회가 주도한 것은 소년 운동,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 준비한 것은 6·10 만세 운동이다.
제2조 러시아 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치·군사·경제상의 탁월한 이익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본 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보호·감리의 조처를 함에 있어 이를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정한다.
러시아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치·군사·경제상 이익과 지도·보호·감리 조처를 인정한 이 조약은 러일 전쟁을 매듭지은 1905년의 포츠머스 조약이다. 이후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요하자 고종은 1907년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보내 그 부당함을 알리려 하였다. 거문도 불법 점거(1885), 황국 중앙 총상회 조직(1898), 유인석 의병의 충주성 점령(1896), 두모포 관세 시위(1878)는 모두 이전의 일이다.

『노동야학독본』을 지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처음으로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였으며 『서유견문』을 집필한 (가) 인물은 유길준이다. 유길준은 열강의 각축 속에서 나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조선 중립화론을 주장하였다.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한 인물은 김옥균·박영효, 독립 협회를 창립한 인물은 서재필, 배재 학당을 세운 인물은 아펜젤러, 관민 공동회에서 참정대신으로 연설한 인물은 박정양이다.

기사는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발기 총회가 열려 민립 대학 설립을 제창하는 취지서를 발표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이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이상재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적인 모금 활동을 주도하였으나 일제의 방해와 자연재해로 좌절되었다. 중국의 5·4 운동에 영향을 준 것은 3·1 운동, 여권통문 발표는 1898년 서울 북촌 여성들의 활동이다.

한인 집단 거주지 신한촌이 세워졌고 1937년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로 해체된 이 지역은 러시아 연해주이다. 연해주에서 한인들은 권업회를 창립하고 기관지인 권업신문을 발행하며 항일 운동을 펼쳤다. 숭무 학교는 멕시코, 서전서숙은 북간도, 독립 의군부는 국내,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다.

허위는 단발령에 반대해 의병을 일으키고 평리원 재판장을 지낸 인물로, 정미의병 때 13도 창의군의 군사장이 되어 서울 진공 작전을 이끌었다. 김창숙은 을사늑약 반대 상소와 파리 장서 운동을 주도하였고, 동양 척식 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거를 지원하였다. 관군에게 체포되어 쓰시마섬에서 순국한 인물은 최익현, 일본의 침략 과정을 서술한 『한국통사』를 쓴 인물은 박은식이다.
- (가) 총독은 문무관 어느 쪽이라도 임용될 수 있는 길을 열 것이며, 헌병에 의한 경찰 제도를 고쳐 보통 경찰관에 의한 경찰 제도로 대신할 것이다. 또한 복제를 개정하여 일반 관리와 교원의 제복과 대검(帶劍)을 폐지하고, 조선인의 임용과 대우 등도 고려한다.
- (나) 제1조 경찰서장 또는 그 직무를 취급하는 자는 그 관할 구역 안의 다음 각호의 범죄를 즉결할 수 있다.
……
제2조 즉결은 정식 재판을 하지 않으며 피고인의 진술을 듣고 증빙을 취조한 후 즉시 언도해야 한다. - (다) 제1조 치안 유지법의 죄를 범한 자에 대해 형의 집행 유예 언도가 있었을 경우 또는 소추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공소를 제기하지 않은 경우에는 보호 관찰 심사회의 결의에 따라 보호 관찰에 부칠 수 있다. 형의 집행을 마치거나 또는 가출옥을 허락받았을 경우도 역시 같다.
(가)는 3·1 운동 이후 1919년에 발표된 이른바 문화 통치 방침, (나)는 1910년에 공포되어 경찰서장의 즉결 처분을 규정한 범죄 즉결례, (다)는 1936년에 공포된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이다. 따라서 공포된 순서는 범죄 즉결례 → 문화 통치 방침 → 조선 사상범 보호 관찰령이 된다. 무단 통치기에서 이른바 문화 통치기, 민족 말살 통치기로 이어지는 일제 식민 통치 방식의 변화를 보여 준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침체에 빠지자 독립운동의 새 방향을 찾기 위해 상하이에서 열렸고 창조파와 개조파가 대립한 이 회의는 1923년의 국민대표회의이다. 연표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1919)과 박은식 대통령 취임(1925)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회의가 뚜렷한 성과 없이 끝나면서 임시 정부의 세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최익현 의병 부대 참여, 김상옥 의거 관련자 변호,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진상 조사,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남조선 과도 정부 사법부장을 지낸 이 인물은 김병로이다. 김병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사법권 독립과 사법 제도의 기초를 다졌다. 남북 협상 참석은 김구·김규식, 정읍 발언은 이승만, 건국 강령 작성은 조소앙, 조선 건국 동맹 결성은 여운형과 관련된다.
(가) 의 총사령 양세봉, 참모장 김학규 등은 일부 병력을 이끌고 중국 의용군 부대와 합세하였다. 일본군과 만주군이 신빈현성의 고지대를 거점으로 삼아 먼저 공격했으나 아군이 응전하여 이를 탈취하였다. 아군은 승세를 몰아 적들을 추격한 끝에 당일 오후 3시경 영릉가성을 점령하였다. 5일간의 격렬한 전투에서 한중 연합군은 신빈현 일대 여러 곳을 점령하는 등 커다란 수확을 거두었다.
총사령 양세봉과 참모장 김학규가 중국 의용군과 힘을 합쳐 영릉가성을 점령한 (가) 단체는 조선 혁명군이다. 조선 혁명군은 이어 흥경성 전투에서도 한중 연합 작전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다. 자유시 참변으로 세력이 약화된 것은 대한 독립 군단 계열, 중국 팔로군에 편제된 것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활동한 것은 한국광복군, 한국 독립당 산하 부대는 한국 독립군이다.

송탄유와 목탄의 할당량 공출을 명령한 문서는 일제가 태평양 전쟁으로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1940년대 민족 말살 통치기의 자료이다. 이 시기에는 소학교가 국민학교로 바뀌고 징병제가 실시되었으며, 국민 징용령에 따른 강제 동원과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이 강요되었다. 조선 태형령은 1912년 무단 통치기에 제정되어 1920년에 폐지되었으므로 이 시기에는 볼 수 없다.
- (가) 첫째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둘째는 지난번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 (나) 1. 반공을 국시의 제일 의(義)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2.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춘다.
(가)는 4·19 혁명으로 궁지에 몰린 이승만이 1960년 4월에 발표한 하야 관련 담화이고, (나)는 1961년 5·16 군사 정변 세력이 내놓은 이른바 혁명 공약이다. 그 사이인 1960년 6월 국회는 의원 내각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을 통과시켰고 이어 장면 내각이 들어섰다. 농지 개혁법 제정(1949)과 진보당 창당(1956)은 이전, 3·1 민주 구국 선언(1976)과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1980)는 이후의 일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가 시작되었다는 뉴스는 1995년 김영삼 정부 시기의 보도이다. 김영삼 정부는 이듬해인 199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 체결과 호주제 폐지는 노무현 정부,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1987년, 6·3 시위는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이다.

질병 관리 본부 출범,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 정상 회의 주최, 행정 중심 복합 도시 건설 시작은 모두 (가)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처음으로 출범하여 과거사 진상 규명에 나섰다. 전국 민주 노동조합 총연맹 창립은 김영삼 정부, 경제 정의 실천 시민 연합 창립은 노태우 정부, IMF 채무 조기 상환은 김대중 정부,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는 박정희 정부 시기의 일이다.
주제: 역대 정부의 통일 노력
- (가)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7·7 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 (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 (다) 남북 교류 협력을 위한 개성 공단 조성에 합의하였습니다.
(가)는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 선언(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 (나)는 1985년 전두환 정부 때 처음으로 이루어진 남북 이산가족 고향 방문, (다)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 이후 합의된 개성 공단 조성이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이산가족 상봉 → 7·7 선언 → 개성 공단 조성 합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