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3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63회

자료의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이 시대'가 구석기 시대임을 알려 준다. 구석기인들은 뗀석기로 사냥과 채집을 하며 먹을거리를 찾아 옮겨 다녔기 때문에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서 살았다.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는 신라 지증왕 이후 널리 퍼진 우경,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고인돌은 청동기, 거푸집을 이용한 세형동검 제작은 철기 시대의 모습이다.
[역사 수업 게시판 화면]
스스로 탐구하는 역사 수업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한 여러 나라 중 함경남도와 강원도의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였던 이 나라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올려 주세요.
- 정치: 읍군, 삼로라고 불린 지배자가 있었어요.
- 경제: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이 특산물로 유명하였어요.
- 사회: 다른 읍락을 침범하면 소, 말 등으로 변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풍습이 있었어요.
함경남도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성장하였고 읍군·삼로라는 지배자를 두었으며, 단궁·과하마·반어피를 특산물로 하고 책화 풍습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 나라'는 동예이다. 동예는 해마다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과 노래를 즐겼다. 소도는 삼한, 포상 8국의 난은 가야, 김알지 신화는 신라, 마가·우가·저가·구가의 사출도는 부여와 관련된 내용이다.
(가) 왕의 성은 부여씨이고, [왕을] '어라하'라고 하며 백성들은 '건길지'라고 부른다. 모두 중국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 도성에는 1만 가(家)가 거주하며 5부로 나뉘는데 상부·전부·중부·하부·후부라고 하며, 각각 5백 명의 군사를 거느린다. [지방의] 5방에는 각기 방령 1인을 두는데 달솔로 임명하고, 군에는 군장(郡將) 3인이 있으니 덕솔로 임명한다.
- 『주서』 -
(나) 60개의 주현이 있으며, 큰 성에는 녹살 1인을 두는데 도독과 비슷하다. 나머지 성에는 처려근지를 두는데 도사라고도 하며, 자사와 비슷하다. …… [수도는] 5부로 나뉘어 있다.
- 『신당서』 -
(가)는 왕의 성이 부여씨이고 왕을 '어라하'라 불렀으며 도성을 5부로, 지방을 5방으로 나누어 방령을 두었다고 하였으므로 백제이고, (나)는 큰 성에 욕살을 두고 나머지 성에 처려근지를 두었다고 하였으므로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수도에 태학을 세워 유학을 가르치고 지방에는 경당을 두어 청소년에게 학문과 무예를 익히게 하였다. 범금 8조는 고조선, 거란도·일본도는 발해, 정사암 회의는 백제, 골품제는 신라의 것이다.
[당의] 고종이 소정방을 신구도대총관(神丘道大摠管)으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신라와 함께 백제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계백은 장군이 되어 죽음을 각오한 군사 5천 명을 뽑아 이들을 막고자 하였다. …… 황산의 벌판에 이르러 세 개의 군영을 설치하였다. 신라군을 만나 전투를 시작하려고 하자, [계백은] 여러 사람 앞에서 맹세하며 "지난날 구천(句踐)은 5천 명으로 오(吳)의 70만 무리를 격파하였다. 오늘 마땅히 힘써 싸워 승리함으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자."라고 하였다. 드디어 격렬히 싸우니, 일당천(一當千)이 아닌 자가 없었다.
- 『삼국사기』 -
| 612 | 642 | 660 | 668 | 676 | 698 | |||||
| (가) | (나) | (다) | (라) | (마) | ||||||
| 살수 대첩 | 대야성 전투 | 사비성 함락 | 안동도호부 설치 | 기벌포 전투 | 발해 건국 |
자료는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과 신라군의 협공에 맞서 계백이 결사대 5천 명으로 황산벌에서 싸운 상황으로, 660년 황산벌 전투이다. 연표에서 642년 대야성 전투와 660년 사비성 함락 사이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가 패한 직후 나당 연합군은 사비성을 함락하였다.

일본 도다이사 쇼소인에 소장된 이 문서는 서원경 부근 4개 촌락의 인구·토지·소와 말·나무 수 등을 3년마다 조사해 기록한 신라 촌락 문서이므로 (가)는 통일 신라이다. 통일 신라는 당·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울산항과 남양만의 당항성이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였다. 낙랑군과 왜에 철 수출은 가야, 부경은 고구려, 활구는 고려, 솔빈부의 말은 발해와 관련된 내용이다.
〈다큐멘터리 기획안〉
○○○, 새로운 시대를 바라다
◈ 기획 의도
6두품 출신 학자인 ○○○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혼란한 당시 상황과 그의 활동을 살펴본다.
◈ 구성
- 1부 당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하다
- 2부 격황소서를 써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다
- 3부 (가)
- 4부 관직에서 물러나 해인사에 은거하다
6두품 출신으로 당에 유학해 빈공과에 급제하고 황소의 난 때 격황소서를 지어 이름을 떨쳤으며 말년에 해인사에 은거한 인물은 최치원이다. 그는 귀국 후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려 개혁을 건의하였으나 진골 귀족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화왕계는 설총, 청방인문표는 강수, 청해진은 장보고, 왕오천축국전은 혜초와 관련된 내용이다.
- 담당 관청에 명하여 월성의 동쪽에 새 궁궐을 짓게 하였는데, 그곳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왕이 이것을 기이하게 여기고는 [계획을] 바꾸어 사찰을 짓고, '황룡'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
- [거칠부가] 왕의 명령을 받들어 여러 문사(文士)를 모아 국사를 편찬하였다.
- 『삼국사기』 -
월성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황룡사를 창건한 일과 거칠부에게 국사를 편찬하게 한 일에서 밑줄 그은 '왕'은 신라 진흥왕임을 알 수 있다. 진흥왕은 청소년 집단이던 화랑도를 국가적인 조직으로 개편하여 인재를 기르고 정복 활동의 기반으로 삼았다. 우산국 복속은 지증왕, 패강진 설치는 선덕왕,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신문왕, 불교 공인은 법흥왕 때의 일이다.
[한국사 역대 연호 소개 애플리케이션 화면]
연호 목록: 건원 … 대흥(선택됨) … 천수
발해의 (가) 이/가 사용한 연호이다. (가) 의 딸인 정효 공주의 묘지석에 기록된 이 연호와 '황상(皇上)'이라는 칭호는 발해의 자주성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발해의 연호 '대흥'을 사용하였고 정효 공주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가)는 발해 문왕이다. 문왕은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를 정비하고 중경 현덕부에서 상경 용천부로 수도를 옮겨 지배 체제를 다졌다. 북연 왕을 신하로 봉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 동모산에서 건국한 것은 대조영, 5경 15부 62주 정비는 선왕 때의 일이다.
청교역(靑郊驛) 서리 3인이 최충헌 부자를 죽일 것을 모의하면서, 거짓 공첩(公牒)을 만들어 여러 사원의 승려들을 불러 모았다. 공첩을 받은 귀법사 승려들은 그 공첩을 가져온 사람을 잡아서 최충헌에게 고해바쳤다. [최충헌은] 즉시 영은관에 교정별감을 둔 후 성문을 폐쇄하고 대대적으로 그 무리를 색출하였다.
자료는 청교역 서리들이 최충헌 부자를 제거하려다 발각되자 최충헌이 영은관에 교정별감을 두고 반대 세력을 색출한 사건으로, 교정도감이 설치된 1209년의 상황이다. 이후 최충헌을 이은 최우는 인사 행정을 처리하기 위해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문무 관리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원종과 애노의 난, 이자겸의 금 사대 수용, 묘청의 난 진압, 정중부의 정변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자료의 금동제 사리 외함은 경주 불국사 삼층 석탑(석가탑)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2층 탑신부에서 발견된 유물로, 그 안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도 함께 나왔다. 따라서 밑줄 그은 '이 탑'은 통일 신라의 대표적 석탑인 경주 불국사 삼층 석탑이며, 정답 사진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단정한 형태의 이 석탑이다.
[수업 중 대화]
- 완산주를 도읍으로 삼아 나라를 세운 (가) 에 대해 말해 볼까요?
- 신라의 금성을 습격하여 경애왕을 죽게 하였어요.
-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고려에 귀부하였어요.
완산주를 도읍으로 나라를 세우고 신라 금성을 습격해 경애왕을 죽게 하였으며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해 고려에 귀부한 (가)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다. 견훤은 중국의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내 외교 관계를 맺으며 국제적 지위를 인정받으려 하였다. 공산 전투에서 전사한 인물은 신숭겸, 미륵사 창건은 백제 무왕, 김흠돌 세력 숙청은 신문왕,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철원 천도를 한 인물은 궁예이다.

충주 유씨 세력 등 호족의 도움으로 즉위한 뒤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을 견제하였고 어머니 신명 순성 왕후를 위해 숭선사를 세운 (가)는 고려 광종이다. 광종은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해 왕권의 위상을 높였다. 시무 28조는 성종 때 최승로, 계백료서는 태조, 쌍성총관부 공격은 공민왕, 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다.
[한국사 교실 온라인 강의 화면]
최충의 9재 학당을 비롯한 사학이 융성하였던 시기에 위축된 관학을 진흥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정책을 대화창에 올려 주세요.
[대화창]
- 서적포를 두어 출판을 담당하게 하였어요.
- 국자감에 전문 강좌인 7재를 개설하였어요.
- (가)
최충의 9재 학당 등 사학이 융성해 관학이 위축되자 고려 정부는 서적포 설치, 국자감 7재 개설 등 관학 진흥책을 폈다. 이와 함께 예종은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두어 국자감 학생들의 학비와 운영 경비를 지원하였다. 독서삼품과는 통일 신라 원성왕, 사액 서원과 4부 학당은 조선, 초계문신제는 조선 정조 때의 제도이다.
- (가) 의 임금이 개경으로 침입하여 궁궐을 불사르고 퇴각하였다. …… 양규는 (가) 의 군대를 무로대에서 습격하여 2,000여 급을 베고, 포로가 되었던 남녀 3,000여 명을 되찾았다. 다시 이수에서 전투를 벌이고 추격하여 석령까지 가서 2,500여 급을 베고, 포로가 되었던 1,000여 명을 되찾았다.
- (가) 의 병사들이 귀주를 지나가자 강감찬 등이 동쪽 교외에서 전투를 벌였다. …… 적병이 북쪽으로 달아나자 아군이 그 뒤를 쫓아가서 공격하였는데, 석천을 건너 반령에 이르기까지 시신이 들에 가득하였다.
임금이 개경까지 쳐들어와 궁궐을 불태웠고 양규가 무로대에서 습격하였으며 강감찬이 귀주에서 크게 이겼다는 내용에서 (가)는 거란이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정종 때 광군을 조직하고 광군사를 두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강화도 천도는 몽골, 박위의 쓰시마 정벌과 4군 설치는 왜구·여진, 별무반 편성은 여진에 대한 대응이다.






직지심체요절과 천산대렵도가 함께 소개된 것으로 보아 사진전의 주제는 고려 시대이다. 따라서 (가)에는 고려의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하며, 정답은 상감 기법으로 모란 무늬를 새긴 청자 상감 모란문 표주박 모양 주전자이다. 상감 청자는 12세기 중엽 이후 고려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한 대표적 공예품이다.
[한국사 인물 탐구 Q&A - 고려]
불교계 개혁에 앞장선 (가)
Q. 그는 어떤 인물인가요?
A. 8세에 승려가 되어 25세에 승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선종의 승려였음에도 교종을 포용하였으며, 당시 불교계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개혁에 앞장섰습니다. 시호는 '불일보조국사'입니다.
Q. 불교계 개혁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나요?
A. 전라남도 순천에 있는 송광사에서 신앙 결사 운동을 펼치며 승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수행에 힘쓸 것을 주창하였습니다.
8세에 출가해 25세에 승과에 급제하였고 시호가 불일보조국사이며 순천 송광사에서 신앙 결사 운동을 이끈 (가)는 지눌이다. 지눌은 단번에 깨친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돈오점수와 정혜쌍수를 내세워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용하려 하였다. 해동 천태종 개창은 의천, 유불 일치설은 혜심, 해동고승전은 각훈, 보현십원가는 균여의 활동이다.
(가) 우왕이 요동을 공격하는 일을 최영과 은밀하게 의논하였다. …… 마침내 8도의 군사를 징발하고 최영이 동교에서 군사를 사열하였다.
(나)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위화도에 머물렀다. …… 이성계가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앞다투어 모여든 사람이 천여 명이나 되었다.
(다) 도평의사사에서 글을 올려 과전을 지급하는 법을 정할 것을 청하니, 그 의견을 따랐다. …… 경기는 사방의 근본이므로 마땅히 과전을 설치하여 사대부를 우대하여야 한다. 무릇 수도에 거주하며 왕실을 지키는 자는 현직, 산직(散職)을 불문하고 각각 과(科)에 따라 받게 한다.
(가)는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준비한 일, (나)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다)는 도평의사사의 건의로 과전법이 제정된 일이다. 요동 정벌군이 출병한 뒤 위화도에서 회군이 일어났고, 이후 신진 사대부가 권력을 잡아 1391년 과전법을 실시하였으므로 (가) - (나) - (다) 순이다.
도병마사가 아뢰기를, "안서도호부에서 바친 철은 예전에는 무기용으로 충당하였습니다. 근래에 흥왕사를 창건하면서 또다시 철을 더 바치라고 명령하셨으니 백성들이 고통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컨대 염주, 해주, 안주 세 곳에서 2년 동안 바치는 철을 흥왕사 창건에 쓰게 하여 수고로운 폐단을 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니, 이를 따랐다.
도병마사가 흥왕사 창건에 쓸 철 문제를 아뢴 자료로, 흥왕사를 세운 고려 문종 때의 상황이다. 고려는 경종 때 시작된 전시과 제도를 통해 관리에게 곡물을 거둘 수 있는 전지와 땔감을 얻을 수 있는 시지를 등급에 따라 지급하였다. 동시전은 신라 지증왕, 상평통보 발행과 계해약조는 조선, 황국 중앙 총상회는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다.

『어전준천제명첩』에 실린 어제사언시로 홍봉한 등의 청계천 준설 공로를 치하하였고 탕평과 균역을 자신의 치적으로 꼽았다는 점에서 (가)는 영조이다. 영조는 경국대전 이후의 법령을 정리하여 통치 제도를 재정비한 속대전을 편찬하였다. 나선 정벌은 효종, 경기도 대동법은 광해군, 훈련도감 창설은 선조, 칠정산은 세종 때의 일이다.
왕이 전지하기를, "김종직은 보잘것없는 시골의 미천한 선비였는데, 선왕께서 발탁하여 경연에 두었으니 은혜와 총애가 더없이 컸다고 하겠다. 그런데 지금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부도덕한 말로써 선왕 대의 일을 거짓으로 기록하고, 또 스승인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싣고서 그 글을 찬양하였으니, 형명(刑名)을 의논하여 아뢰어라."라고 하였다.
| 1468 | 1494 | 1506 | 1518 | 1545 | 1589 | |||||
| (가) | (나) | (다) | (라) | (마) | ||||||
| 남이의 옥사 | 연산군 즉위 | 중종반정 | 소격서 폐지 | 명종 즉위 | 기축옥사 |
자료는 김일손이 사초에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실은 일을 문제 삼아 처벌을 논하게 한 것으로,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1498)이다. 연표에서 1494년 연산군 즉위와 1506년 중종반정 사이가 이 시기에 해당한다.

한명회·권람 등의 도움으로 김종서와 황보인을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으며 간경도감을 두고 원각사를 창건한 (가)는 세조이다. 세조는 과전이 부족해지자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는 직전법을 시행하였다. 계미자 주조는 태종, 국조오례의 완성은 성종, 농사직설 편찬과 관련된 왕은 세종, 동의보감 간행은 광해군 때의 일이다.
[학생들의 대화]
- 해주향약을 시행하여 향촌 교화에 힘썼던 이 인물에 대해 말해 보자.
- 동호문답에서 수취 제도 개편 등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어.
- 격몽요결을 저술하여 체계적인 성리학 교육에 힘썼어.
해주향약을 시행하고 동호문답과 격몽요결을 저술한 '이 인물'은 이이이다. 이이는 군주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학문의 요체를 정리한 성학집요를 지어 선조에게 올렸다. 기축봉사는 송시열, 시헌력 도입 건의는 김육, 양반전은 박지원, 가례집람은 김장생의 저술이다.
(가) 처음에 심의겸이 외척으로 권세를 부리니 당시 명망 있는 사람들이 섬겨 따랐다. 그런데 김효원이 전랑(銓郎)이 되어 그들을 배척하자 심의겸의 무리가 그를 미워하니, 점차 사림이 나뉘어 동인과 서인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나) 기해년에 왕이 승하하자 재신 송시열이 사종(四種)의 설을 인용하여 "대행 대왕은 왕대비에게 서자가 된다. 왕통을 이었으나 장자가 아닌 경우이니 기년복(朞年服)*을 입어야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허목 등 신하들은 전거를 들어 다투기를, "대행 대왕은 왕대비에게 서자가 아니라 장자가 된 둘째이니, 삼년복을 입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기년복(朞年服): 1년 동안 입는 상복
(가)는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1575년의 일이고, (나)는 효종이 승하한 뒤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맞선 기해예송(1659)이다. 두 시기 사이인 1623년에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 일어나 광해군과 함께 북인 세력이 몰락하였다. 목호룡의 고변과 이인좌의 난은 18세기, 양재역 벽서 사건은 1547년, 인현 왕후 폐위는 1689년의 일이다.

남한산성 현절사에 모셔진 삼학사가 화의를 반대하다 압송되어 처형된 것에서 (가)는 청이며 그 전쟁은 병자호란이다. 삼전도의 굴욕을 겪은 뒤 즉위한 효종은 어영청을 중심으로 군비를 확충하며 청을 정벌하겠다는 북벌을 추진하였다. 만권당은 고려 충선왕, 화통도감은 고려 우왕, 동평관과 회답 겸 쇄환사는 일본과 관련된 정책이다.
[시(詩)로 만나는 한국사]
이현과 종루 그리고 칠패는
도성의 3대 시장이라네
온갖 장인들이 살고 일하니
사람들이 많아서 어깨를 부딪히네
온갖 재화가 이익을 좇아
수레가 끊임없네
봉성의 털모자, 연경의 비단실
함경도의 삼베, 한산의 모시
쌀, 콩, 벼, 기장, 조, 피, 보리
……
[해설] 이것은 한양의 모습을 그린 『성시전도』를 보고 박제가가 지은 시의 일부이다. 시의 내용을 통해 이 시기 생동감 있는 시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자료는 한양의 모습을 그린 성시전도를 보고 박제가가 지은 시로, 이현·종루·칠패가 도성의 3대 시장으로 번성한 조선 후기의 상황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인삼, 담배, 채소 등이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한 상품 작물로 널리 재배되었다. 정전 지급은 통일 신라, 서경의 관영 상점과 건원중보, 벽란도의 번성은 고려 시대의 모습이다.
오늘에 와서는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지 않는 것이 없어, 의정부는 한갓 헛이름만 지니고 6조는 모두 그 직임을 상실하였습니다. 명칭은 '변방의 방비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과거 시험에 대한 판하(判下)*나 비빈 간택 등의 일까지도 모두 (가) 을/를 경유하여 나옵니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음이 이보다 심할 수가 없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가) 을/를 고쳐 정당(政堂)으로 칭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합니다.
*판하(判下): 안건을 임금이 허가하는 것
본래 변방의 방비를 담당하는 기구였으나 과거 시험의 판하와 비빈 간택까지 처리하여 의정부와 6조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는 비변사이다. 세도 정치기에 최고 권력 기구가 된 비변사는 왕권 강화를 꾀한 흥선 대원군 집권기에 사실상 혁파되어 기능이 의정부와 삼군부로 넘어갔다. 3사는 홍문관, 검서관은 규장각, 국왕 호위는 장용영, 대사성이 수장인 곳은 성균관이다.

제주도 유배 중에 책을 구해 준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 준 세한도의 작가이며 호가 완당인 (가)는 김정희이다. 김정희는 금석문을 연구하여 북한산에 있던 비석이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하고 그 성과를 금석과안록에 담았다. 남북국이라는 용어는 유득공, 거중기는 정약용, 강화학파는 정제두, 몽유도원도는 안견과 관련된 내용이다.
(가) 전라도 관찰사 정민시가 [진산의] 죄인 윤지충과 권상연에 대한 조사 결과를 아뢰었다. "…… 근래에 그들은 평소 살아 계신 부모나 조부모처럼 섬겨야 할 신주를 태워 없애면서도 이마에 진땀 하나 흘리지 않았으니 정말 흉악한 일입니다. 제사를 폐지한 일은 오히려 부차적입니다."
(나) 의금부에서 아뢰었다. "얼마 전 죄인 남종삼은 명백한 근거도 없이 러시아에 변란이 있을 것이고, 프랑스와 조약을 맺을 계책이 있다는 요망한 말로 여러 사람을 현혹하였습니다. 감히 나라를 팔아먹고자 몰래 외적을 끌어들일 음모를 꾸몄으니, 즉시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 [베르뇌를 비롯한] 서양인 4명을 군영에 넘겨 효수하여 본보기로 삼도록 하였습니다."
(가)는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사르고 제사를 폐지한 일을 다룬 진산 사건, 곧 신해박해(1791)이고, (나)는 남종삼과 베르뇌 등 프랑스 신부가 처형된 병인박해(1866)이다. 두 시기 사이인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하는 백서를 작성하려다 발각되었다. 중광단 결성과 조선불교유신론은 일제 강점기, 보은 집회는 1893년, 지봉유설은 17세기의 일이다.

박지원의 손자로 진주 농민 봉기 때 안핵사로 파견되었고 사랑방에서 양반 자제들에게 세계 정세를 전하며 개화사상 형성에 앞장선 (가)는 박규수이다. 그는 평안도 관찰사로 있을 때 대동강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린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켰다. 조선 중립화론은 유길준·부들러, 대한매일신보 창간은 양기탁, 지구전요는 최한기, 심행일기는 신헌과 관련된 내용이다.
[토론 장면]
- 이번 시간에는 근대 국가 수립을 위해 김옥균 등이 일으켰던 이 사건에 대한 의견을 들어 보고자 합니다.
- 그들이 개혁안에서 내세운 인민 평등권 확립 등은 이후의 근대적 개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 하지만 일부 급진 개화파를 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였고, 청과의 사대 관계 청산을 주장하면서도 일본의 힘에 의존하였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근대 국가 수립을 내걸고 일으켰으며 인민 평등권 확립을 개혁안에 담았다는 점에서 밑줄 그은 '이 사건'은 갑신정변(1884)이다. 정변이 삼일천하로 끝난 뒤 조선은 일본과 배상금 지불과 공사관 신축비 부담을 규정한 한성 조약을 맺었다. 보국안민·제폭구민은 동학 농민 운동, 교정청은 1894년, 보빙사 파견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후의 일이다.

광복 73주년을 맞아 포상된 배화 여학교 학생들이 1주년에 만세 운동을 벌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의 계기가 된 일제 강점기 최대의 민족 운동이라는 점에서 (가)는 3·1 운동이다. 일제는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경기도 화성 제암리에서 주민들을 교회에 몰아넣고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국채 보상 운동,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모두 다른 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총재 김홍집을 중심으로 수개월 동안 200여 건의 안건을 의결한 기구는 군국기무처이므로 밑줄 그은 '개혁'은 제1차 갑오개혁이다. 이때 재정을 탁지아문으로 일원화하고 조세의 금납화와 함께 은본위 화폐 제도를 채택하였다. 원수부 설치는 대한 제국, 재판소 설치와 태양력 채택은 제2차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5군영의 2영 통합은 개항 직후의 조치이다.
[한국사 동영상 제작 계획안]
○○○○, 공론의 장을 열다
△학년 △반 △모둠
■ 제작 의도
지식인뿐 아니라 농민, 상인,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한 집회 등을 통해 공론의 장을 마련한 ○○○○의 활동을 살펴본다.
■ 장면별 구성 내용
- #1. 독립문 건립을 위해 성금을 모으다
- #2.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다
- #3. (가)
- #4. 황국 협회의 습격으로 사망한 구두 수선공의 장례를 치르다
독립문 건립 성금 모금,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 규탄 집회, 황국 협회의 습격 등에서 자료의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1898년 정부 대신들과 함께 관민 공동회를 열어 헌의 6조를 결의하고 고종의 재가를 받아 자주 국권과 의회 설립을 추진하였다. 대성 학교는 신민회,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집강소는 동학 농민군, 홍범 14조는 제2차 갑오개혁과 관련된다.

자료는 대한 제국의 외교 고문 스티븐스가 저격당한 사건을 보도한 미국 신문 기사와 의거를 일으킨 인물의 진술로, 1908년 장인환·전명운의 스티븐스 저격 사건이다. 스티븐스는 1904년 제1차 한일 협약으로 대한 제국이 일본이 추천한 외교 고문을 두게 되면서 임명된 인물이므로 그 협약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적절하다. 삼국 간섭, 거문도 사건, 아관 파천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사건이다.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가 쓰시마섬으로 끌려갔고 뒤에 조선 총독에게 국권 반환 요구서를 보내려다 체포되어 순국한 (가)는 임병찬이다. 그는 1912년 고종의 밀지를 받아 복벽주의를 내세운 비밀 결사인 독립 의군부를 조직하였다. 이완용 습격은 이재명, 한국통사는 박은식, 13도 창의군 총대장은 이인영, 단연보국채 논설은 국채 보상 운동 관련 인물의 활동이다.
주제: (가) 의 무장 독립 투쟁
- 국민부 산하 군사 조직으로 편성되었다가 이후 여러 부대를 통합하며 재편되었습니다.
- 총사령에 양세봉, 참모장에 김학규가 임명되어 부대를 이끌었습니다.
- 만주 사변 이후 중국 의용군과 함께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 투쟁을 벌였습니다.
국민부 산하의 군사 조직으로 편성되었고 총사령 양세봉, 참모장 김학규가 이끌었다는 점에서 (가)는 조선 혁명군이다. 조선 혁명군은 만주 사변 이후 중국 의용군과 연합하여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물리쳤다. 자유시 이동은 대한 독립 군단, 조선 독립 동맹 산하 개편은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인도·미얀마 전선 투입은 한국광복군, 우한 창설은 조선 의용대이다.

진주에서 시작되었고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을 구호로 삼았다는 점에서 (가)는 형평 운동이다. 1923년 조선 형평사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 운동은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호적상의 차별 표기를 없앨 것을 주장하였다. 국채 보상 운동, 3·1 운동, 대한 자강회, 여권통문은 모두 다른 운동과 단체에 관한 내용이다.

일장기가 내걸린 근정전 사진과 조선 물산 공진회(1915), 토지 조사 사업이 언급된 것에서 밑줄 그은 '이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다. 이 시기 일제는 헌병 경찰 제도를 두고 조선 태형령을 만들어 한국인에게만 태형을 집행하였다. 황국 신민 서사는 1930년대 후반, 경성 제국 대학은 1924년, 원산 총파업은 1929년, 영화 아리랑 상영은 1926년의 일이다.

학생들을 통해 시골말과 속담을 모으고 최현배·이극로 등이 검거되었으며 조선말 큰사전 원고가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자료의 단체는 조선어 학회이다. 조선어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 사정안을 제정하여 우리말 표기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제국신문은 이종일 등, 태극 서관은 신민회, 파리 강화 회의 독립 청원서는 신한 청년당, 국문 연구소는 대한 제국 시기와 관련된다.

호가 백범이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을 지냈으며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가 경교장에서 피살된 (가)는 김구, 호가 몽양이고 신한 청년당을 결성하였으며 좌우 합작 위원회를 조직한 (나)는 여운형이다. 김구는 1931년 상하이에서 한인 애국단을 조직하여 이봉창·윤봉길의 의거를 이끌었고, 여운형은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해 활동을 주도하였다. 조선 혁명 간부 학교는 김원봉,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는 이승만과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총선거인 5·10 총선거로 구성되었고 의원 임기가 2년이었다는 점에서 밑줄 그은 '국회'는 제헌 국회이다. 제헌 국회는 단원제로 운영되었으며,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나뉜 양원제는 4·19 혁명 이후 제2공화국에서 시행되었으므로 옳지 않다. 제헌 국회는 반민족 행위 처벌법과 귀속 재산 처리법을 제정하였고, 국회에서 대통령을 뽑았으며, 제주 지역 일부 선거구가 선출을 마치지 못한 채 출범하였다.
[역사 뮤지컬 홍보 포스터]
기적의 항해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대피시킨 메러디스 빅토리호!
(가) 전쟁 중의 흥남 철수 당시 배에 실린 군수 물자를 내리고 14,000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일시: 2023년 ○○월 ○○일 19:00
- 장소: △△ 문화회관 대극장
흥남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피난민 1만 4천여 명을 구출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는 6·25 전쟁이다.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7년에 열려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므로 전쟁 중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다. 국민 방위군 소집, 원조 물자 배급, 농지 개혁으로 받은 지가 증권의 헐값 매각,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반공 포로 석방은 모두 전쟁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들이 민주당 부통령 후보 유세를 막으려는 등교 지시에 맞서 일어난 2·28 민주 운동을 다룬 자료이므로 (가)는 이승만 정부이다. 이승만 정부는 1958년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구속하고 이듬해 사형에 처하였다. 프로 야구 출범과 삼청 교육대는 전두환 정부, YH 무역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다.
(가)
-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제64조 ①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 제69조 ① 대통령의 임기는 4년으로 한다.
③ 대통령의 계속 재임은 3기에 한한다.
(나)
-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 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 제39조 ①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 제47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 제59조 ①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가)는 대통령을 직선제로 뽑되 계속 재임을 3기까지 허용한 1969년 3선 개헌 헌법이고, (나)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임기를 6년으로 하며 국회 해산권을 준 1972년 유신 헌법이다. 두 헌법 사이인 1972년 7월 서울과 평양에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을 담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동시에 발표되었다. 여수·순천 사건(1948), 5·16 군사 정변(1961), 6·3 시위(1964), 지방 자치제 전면 시행(1995)은 모두 이 시기 밖의 일이다.
[뉴스 보도]
오늘 오후 2시경 서울 평화시장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시위 도중 재단사 전태일 씨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전 씨는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였습니다.
서울 평화시장에서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사건은 1970년의 일이므로 뉴스의 시기는 박정희 정부이다. 이 시기인 1976년부터 전라남도 함평에서 농협의 고구마 수매 약속 불이행에 항의하는 함평 고구마 피해 보상 운동이 전개되었다. 3저 호황은 전두환 정부,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노무현 정부, OECD 가입은 김영삼 정부, 최저 임금 위원회 설치는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유산 검색 화면 - 종목별: 국보]
(가)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는 소조불상으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되어 그 가치가 높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며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옷 주름의 형태 등을 통해 고려 시대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에 있는 소조불상으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설명에 해당하는 문화유산은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이다. 정답 사진은 화려한 광배를 등지고 결가부좌한 금빛 소조 불상으로, 풍만한 얼굴과 두꺼운 입술 등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 (가) 살리타이가 처인성을 공격하였다. 적을 피해 성에 와 있던 한 승려가 살리타이를 쏘아 죽였다. 국가에서 그 전공을 칭찬하여 상장군 벼슬을 주었다. 승려가 전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말하기를, "전투할 때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으니, 어찌 감히 공 없이 무거운 상을 받겠습니까."라고 하고,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 (나) [우리 부대가] 대군(大軍)과 연합하여 평양을 포위하였다. 보장왕이 먼저 연남산 등을 보내 영공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이에 영공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덕남 및 대신 등 20여만 명을 끌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는 영공을 따라 돌아갔다.
- (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적병이 두 차례나 용골산성을 공격해 왔지만 정봉수는 홀로 고립된 성을 지키면서 충성과 용맹을 더욱 떨쳤습니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를 더 모집하여 육로로 혹은 배편으로 달려가서 기세(氣勢)를 돕게 하소서. 용골산성이 비록 포위에서 풀렸으나 이 일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따랐다.
- (라) 부사 송상현은 왜적이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과 군사 그리고 이웃 고을의 군사를 모두 불러 모아 성에 들어가 지켰다. …… 성이 포위당하자 상현이 성의 남문에 올라가 전투를 독려하였으나 한나절 만에 성이 함락되었다. 상현은 갑옷 위에 조복(朝服)*을 입고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 적이 모여들어 생포하려고 하자 상현이 발로 걷어차면서 항거하다가 마침내 해를 입었다.
- (가) 살리타이가 처인성을 공격하였다. 적을 피해 성에 와 있던 한 승려가 살리타이를 쏘아 죽였다. 국가에서 그 전공을 칭찬하여 상장군 벼슬을 주었다. 승려가 전공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말하기를, "전투할 때 나는 활과 화살이 없었으니, 어찌 감히 공 없이 무거운 상을 받겠습니까."라고 하고, 굳게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 (나) [우리 부대가] 대군(大軍)과 연합하여 평양을 포위하였다. 보장왕이 먼저 연남산 등을 보내 영공에게 항복을 청하였다. 이에 영공은 보장왕과 왕자 복남·덕남 및 대신 등 20여만 명을 끌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각간 김인문과 대아찬 조주는 영공을 따라 돌아갔다.
- (다)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적병이 두 차례나 용골산성을 공격해 왔지만 정봉수는 홀로 고립된 성을 지키면서 충성과 용맹을 더욱 떨쳤습니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사를 더 모집하여 육로로 혹은 배편으로 달려가서 기세(氣勢)를 돕게 하소서. 용골산성이 비록 포위에서 풀렸으나 이 일은 그만둘 수 없을 듯합니다."라고 하니, 왕이 따랐다.
- (라) 부사 송상현은 왜적이 바다를 건넜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과 군사 그리고 이웃 고을의 군사를 모두 불러 모아 성에 들어가 지켰다. …… 성이 포위당하자 상현이 성의 남문에 올라가 전투를 독려하였으나 한나절 만에 성이 함락되었다. 상현은 갑옷 위에 조복(朝服)*을 입고 의자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 적이 모여들어 생포하려고 하자 상현이 발로 걷어차면서 항거하다가 마침내 해를 입었다.
*조복(朝服): 관원이 조정에 나아가 하례할 때 입던 예복
(라)는 임진왜란 초기에 부사 송상현이 갑옷 위에 조복을 갖추어 입고 끝까지 항전하다 순절한 동래성 전투이므로,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동래 곧 오늘날의 부산이다. 조선 후기 동래에는 일본과의 교역 창구인 왜관이 설치되어 이곳을 근거지로 한 상인인 내상이 대일 무역을 주도하였다. 보덕국이 세워져 안승이 왕으로 봉해진 곳은 금마저(익산), 홍경래가 봉기한 곳은 평안도, 만적이 신분 해방을 도모한 곳은 개경, 지주 문재철에 맞선 소작 쟁의가 일어난 곳은 암태도이므로 동래에서 있었던 일이 아니다. 참고로 (가)는 몽골의 침입 때의 처인성 전투, (나)는 고구려 멸망, (다)는 정묘호란 때의 용골산성 항전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 규탄과 4·13 호헌 조치 철폐를 내걸고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 본부가 주도한 (가)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다. 전국적인 시위가 이어지자 여당 대표가 6·29 선언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허정 과도 정부 구성과 이승만 하야는 4·19 혁명, 야당 총재 제명은 부마 민주 항쟁, 세계 기록 유산 등재는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내용이다.
나는 오늘 온 겨레의 염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새 공화국의 정책을 밝히려 합니다. 우리 민족이 남북 분단의 고통을 겪어온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옵니다. ……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갈 것임을 약속하면서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을 내외에 선언합니다.
……
셋째, 남북 간 교역의 문호를 개방하고 남북 간 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간주한다.
……
여섯째,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북한이 미국, 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으며 또한 우리는 소련,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한다.
자료는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 선언(7·7 선언, 1988)으로, 남북 교역을 민족 내부 교역으로 보고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밝힌 노태우 정부의 선언이다. 노태우 정부는 북방 외교를 추진하는 한편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도록 하였고 남북 기본 합의서도 채택하였다. 남북 조절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 개성 공업 지구 합의와 이산가족 고향 방문 최초 실현은 각각 김대중 정부와 전두환 정부, 10·4 남북 정상 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