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4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64회

갈돌과 갈판, 빗살무늬 토기를 대표 유물로 들고 농경과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이 시대'는 신석기 시대이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가락바퀴로 실을 뽑고 뼈바늘로 꿰매어 옷을 지어 입었으며, 토기를 만들어 곡식을 저장하고 음식을 조리하였다.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는 신라 지증왕 무렵부터 확산되었고, 반량전·명도전, 청동 방울, 거푸집으로 만든 세형 동검은 모두 청동기·철기 시대의 것이다.
- (가) 의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 『삼국지』 동이전 - - (가) 사람들은 …… 활·화살·칼·창으로 무기를 삼았다. 가축의 이름으로 관직명을 지으니 마가·우가·구가 등이 있었다. 그 나라의 읍락은 모두 여러 가(加)에 소속되었다.
- 『후한서』 동이열전 -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우가·구가 등의 관직을 두고 읍락이 여러 가(加)에 소속되었으며, 흉년이 들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물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부여이다. 부여는 매년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를 풀어 주었다. 한 무제의 공격으로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 정사암 회의는 백제, 책화는 동예, 천군과 소도는 삼한의 특징이다.

안악 3호분 벽화를 남긴 나라이고 경당을 설치하였으며 제가 회의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대화 속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고국천왕 때 재상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봄에 곡식을 빌려 주고 가을에 갚게 하는 진대법을 실시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 연의 진개에게 공격받은 것은 고조선, 골품제는 신라, 범금 8조는 고조선, 부여씨와 8성 귀족은 백제의 지배층이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국보이며 백제의 공예 기술 수준을 보여 주고 불교와 도교 사상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백제 금동 대향로이다. 정답 자료는 봉황이 앉은 뚜껑 아래 산봉우리와 인물·동물을 새기고 용이 받치고 있는 향로로, 백제 금동 대향로의 모습이다. 1993년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되어 199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금관가야 마지막 왕의 후손이며 진평왕부터 문무왕까지 다섯 임금을 섬기고 사후 흥무대왕에 봉해졌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김유신이다. 김유신은 선덕 여왕 말년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이 '여자 임금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며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여 진덕 여왕의 즉위를 뒷받침하였다. 안승을 왕으로 추대한 인물은 검모잠, 등주를 선제 공격한 인물은 발해 무왕 때의 장문휴, 일리천에서 신검을 물리친 인물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무령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 왕은 국호를 고치고 중앙 관청을 22부로 정비하였어.
신라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되찾았지만, 신라에 다시 빼앗겼지.
결국 신라와 전쟁을 벌이다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어.
무령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여 국호를 고치고 중앙 관청을 22부로 정비하였으며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왕'은 백제 성왕이다. 성왕은 즉위 후 대외 진출에 유리한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쳐 중흥을 꾀하였다. 미륵사 창건은 무왕, 대야성 함락은 의자왕, 서기 편찬은 근초고왕, 북위에 국서를 보낸 것은 개로왕 때의 일이다.
며칠 전 우리 고구려군이 안시성 전투에서 당군을 격퇴했다는 소식을 들었는가?
요동성, 백암성이 함락되는 위기를 맞았지만 안시성에서 끝내 물리쳤다네.
↓
(가)
↓
고구려 집권층 내부에 분열이 생겨 연남건이 자신의 형 연남생을 몰아냈다고 하네.
결국 연남생은 고구려의 여러 성을 당에 바치며 투항했다더군.
앞 장면은 고구려가 안시성에서 당군을 격퇴한 일(645), 뒤 장면은 연개소문 사후 연남건이 형 연남생을 몰아내고 연남생이 당에 투항한 일(666)이므로 (가)는 그 사이 시기이다. 이 사이인 648년 김춘추가 당으로 건너가 태종과 군사 동맹을 성사시켜 나당 연합군 결성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소수림왕의 율령 반포(373),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371), 진흥왕의 대가야 병합(562), 살수 대첩(612)은 모두 안시성 전투보다 앞선 일이다.

솔빈부의 말이 당에 수출될 정도로 유명하였고 산둥반도를 장악한 이정기 세력에게 말을 수출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발해이다. 발해는 거란도, 영주도, 조공도, 신라도, 일본도 등의 교통로를 통해 주변국과 교류하였다. 벽란도와 해동통보는 고려, 감자·고구마 재배는 조선 후기, 동시전 설치는 신라 지증왕 때의 일이다.
청해진의 궁복은 왕이 딸을 [왕비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조정에서는 장차 그를 토벌하자니 예측하지 못할 환난이 생길까 두렵고, 그대로 두자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어서, 우려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무주 사람 염장이란 자는 용맹하고 씩씩하기로 당시에 소문이 났는데, 와서 아뢰기를 “조정에서 다행히 신의 말을 들어주신다면 신은 한 명의 병졸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맨주먹으로 궁복의 목을 베어 바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의 말을 따랐다.
- 『삼국사기』 -
청해진의 궁복, 곧 장보고가 딸을 왕비로 들이지 못한 데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염장에게 죽임을 당한 상황이므로 문성왕 때인 846년 무렵이다. 그 이후인 진성 여왕 때 당에서 돌아온 최치원이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시무책 10여 조를 올렸다. 혜공왕 피살(780), 김흠돌의 난(681),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선덕 여왕), 세속 5계 제시(진평왕)는 모두 장보고의 난보다 앞선 일이다.
[『삼국사기』 데이터베이스 - 열전 검색 결과, 목록 개수 42]
- 송악을 근거지로 삼아 나라를 세우다
- 국호를 마진으로 정하고, 연호를 무태라고 하다
-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다
송악을 근거지로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마진, 연호를 무태라 하였으며 수도를 철원으로 옮겼다고 하였으므로 검색창에 들어갈 인물은 궁예이다. 궁예는 국정을 총괄하는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후당과 오월에 사신을 보낸 인물은 견훤, 우산국 복속은 신라 지증왕, 정치도감 설치는 고려 충목왕, 정계와 계백료서 저술은 고려 태조의 일이다.
(가) 거란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낙타 50필을 보냈다. 왕은 거란이 일찍이 발해와 지속적으로 화목하다가 갑자기 의심하여 맹약을 어기고 멸망시켰으니, 이는 매우 무도하여 친선 관계를 맺어 이웃으로 삼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드디어 교빙을 끊고 사신 30인을 섬으로 유배 보냈으며, 낙타는 만부교 아래에 매어두니 모두 굶어 죽었다.
(나) 양규가 흥화진으로부터 군사 7백여 명을 이끌고 통주까지 와서 군사 1천여 명을 수습하였다. 밤중에 곽주로 들어가서 지키고 있던 적들을 급습하여 모조리 죽인 후 성 안에 있던 남녀 7천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가)는 거란이 보낸 낙타를 만부교에서 굶겨 죽인 만부교 사건(942, 태조)이고, (나)는 양규가 흥화진에서 곽주를 되찾은 거란의 2차 침입(1010~1011) 때의 일이다. 그 사이인 정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광군을 조직하고 광군사를 두어 통솔하게 하였다. 강감찬의 귀주 대첩(1019), 화통도감 설치(1377), 김윤후의 처인성 승리(1232), 철령위 설치에 따른 요동 정벌(1388)은 모두 (나) 이후의 일이다.

경원 이씨 가문의 이자연 묘지명을 소개하면서 그 손자가 딸들을 왕비로 보내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인종이 제거하려 하자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반란'은 1126년의 이자겸의 난이다. 연표에서 1126년은 별무반 조직(1104)과 묘청의 난(1135) 사이에 놓인다. 이자겸의 난은 척준경이 이자겸을 배신하면서 진압되었고, 이후 문벌 사회의 동요가 본격화되었다.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쌓은 윤관과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의천이 함께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인물들이 활동한 국가는 고려이다. 고려는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기 위해 경시서를 두어 물가를 조절하고 상거래 질서를 관리하였다. 부경은 고구려, 관료전 폐지와 녹읍 부활 및 당항성·영암의 번성은 통일 신라, 상평통보의 법화 사용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몽골 침략 당시 실권자로서 항전을 위해 강화 천도를 강행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최우이다. 최우는 자기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인사 행정을 장악하고 문무 관리의 인사권을 독점하였으며, 서방을 두어 문신을 우대하기도 하였다. 봉사 10조를 올린 인물은 최충헌, 진도 용장성 항전은 배중손, 정중부 제거를 도모한 인물은 김보당·조위총 계열,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는 신돈이다.
원의 공주와 혼인한 태자께서 돌아와 왕이 되신 건 알고 있는가? 이전에 변발과 호복 차림으로 돌아오신 걸 보고 눈물을 흘렸다네.
나도 그랬다네. 그나저나 며칠 앞으로 다가온 일본 원정이 더 큰 걱정이군.
원의 공주와 혼인한 태자가 돌아와 왕이 되었고 일본 원정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고 하였으므로 충렬왕이 즉위한 1274년의 상황이다. 그 이후인 공민왕 때 유인우, 이자춘 등이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영토를 되찾았다(1356). 흑창 설치(태조), 망이·망소이의 봉기(1176), 삼국사기 편찬(1145), 김보당의 난(1173)은 모두 충렬왕 즉위보다 앞선 일이다.






고려 시대의 불교 문화유산을 보여 주는 사진전이라고 하였으므로 (가)에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 수월관음도와 같은 고려의 불교 문화유산이 들어가야 한다. 적절하지 않은 것은 보은 법주사 팔상전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후기에 다시 세운 현존 유일의 조선 시대 목탑이다. 따라서 고려의 불교 문화유산을 모은 이 사진전의 자료로는 알맞지 않다.

집현전 학사인 신숙주, 최항, 박팽년 등이 왕명을 받아 우리나라 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동국정운을 편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왕'은 세종이다. 세종 재위 시기에는 이전의 활자를 개량한 금속 활자 갑인자가 만들어져 인쇄술이 크게 발전하였다. 금위영 설치는 숙종, 무예도보통지 편찬은 정조,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현량과 시행은 중종 때의 일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의 궁궐이고 관람 동선이 돈화문에서 시작해 인정전, 낙선재, 부용지, 연경당, 후원 숲길로 이어진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태종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다시 옮기면서 이궁으로 건립한 궁궐이다. 동물원이 설치된 곳은 창경궁, 서궐로 불린 곳은 경희궁, 인목 대비가 유폐된 곳은 덕수궁(경운궁), 전각 이름을 정도전이 지은 곳은 경복궁이다.
1. 처음 (가) 을/를 정할 때 약문(約文)을 동지에게 두루 보이고 그 마음을 바로잡고, 몸가짐을 단속하고, 착하게 살고, 허물을 고치기 위해 약계(約契)에 참례하기를 원하는 자 몇 사람을 가려 서원에 모아 놓고 약법(約法)을 의논하여 정한 다음 도약정(都約正), 부약정 및 직월(直月)·사화(司貨)를 선출한다. ……
1. 물건으로 부조할 때는 약원이 사망하였다면 초상 치를 때 사화가 약정에게 고하여 삼베 세 필을 보내고, 같은 약원들은 각각 쌀 다섯 되와 빈 거적때기 세 닢씩 내어서 상을 치르는 것을 돕는다.
- 『율곡전서』 -
약문과 약계를 정하고 도약정·부약정·직월·사화를 선출하며 상을 당한 약원을 돕는다는 내용의 율곡전서 기록이므로 (가)는 향약이다. 향약은 좋은 일은 서로 권하고 잘못은 서로 바로잡는 향촌의 자치 규약으로, 풍속을 교화하고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며 어려운 일을 서로 돕는 역할을 하였다. 7재는 고려 국자감, 옥당은 홍문관, 교수·훈도 파견은 향교, 매향 활동은 향도와 관련된 것이다.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 우리나라는 물력(物力)이 부족하여 요역이 매우 무겁습니다. 매번 나라의 힘으로 채굴한다면, 노동과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채은관(採銀官)에게 명해 광산을 개발한 이후 백성을 모집하여 [채굴할 것을] 허락하고 그로 하여금 세를 거두도록 하되 그 세금의 많고 적음은 [채은관이] 적당히 헤아려 정하게 한다면 관에서 힘을 들이지 않아도 세입이 저절로 많아질 것입니다. ……”라고 하니, 왕이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비변사의 건의에 따라 채은관을 두어 광산을 개발한 뒤 백성에게 채굴을 허락하고 세금을 거두게 한 것이므로 설점수세제가 시행된 조선 후기의 상황이다. 조선 후기에는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고추, 담배, 인삼, 면화 등을 상품 작물로 재배하여 시장에 내다 파는 농민이 늘어났다. 주자감 학생, 초조대장경, 빈공과 준비 유학생, 과전법에 따른 수조권 지급은 각각 발해, 고려, 통일 신라, 고려 말의 모습이다.
며칠 전 안핵사로 파견된 박규수가 전하께 특별 기구 설치를 상소하였다고 하네.
그렇다네. 전하께서 이를 받아들여 삼정이정청을 설치하고, 각 고을마다 대책을 모아 올려 보내라고 명하셨지.
안핵사로 파견된 박규수의 건의로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1862년의 상황이다. 이 조치는 그해 경상 우병사 백낙신의 수탈과 횡포에 반발하여 진주에서 농민들이 봉기하고 그것이 전국으로 번진 임술 농민 봉기를 수습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남 만인소(1881), 운요호 사건(1875), 삼례 집회(1892), 황사영 백서(1801)는 모두 시기가 맞지 않는다.
무술년 봄에 양성지가 팔도지리지를 바치고, 서거정 등이 동문선을 바쳤더니, 전하께서 드디어 노사신, 양성지, 서거정 등에게 명하여 시문을 팔도지리지에 넣게 하셨습니다. …… 연혁을 앞에 둔 것은 한 고을의 흥함과 망함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며 …… 경도(京都)의 첫머리에 팔도총도를 기록하고, 각 도의 앞에 도별 지도를 붙여서 양경(兩京) 8도로 50권을 편찬하여 바치나이다.
양성지가 팔도지리지를, 서거정 등이 동문선을 바치고 이를 합쳐 양경 8도 50권으로 엮었다고 하였으므로 동국여지승람 편찬이 이루어진 성종 재위 시기이다. 성종 때에는 국가와 왕실의 다섯 가지 의례를 정비한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고, 경국대전도 이때 반포되었다. 가례집람은 김장생, 동문휘고와 동국문헌비고는 영·정조 대, 동의보감은 광해군 때 간행되었다.
[역사 다큐멘터리 기획안]
○○, 정쟁과 혼란의 한가운데에 서다
■ 기획 의도
○○의 즉위와 집권 시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훈구와 사림의 대립 등 나라 안팎으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살펴본다.
■ 구성 내용
- #1. 반정(反正)으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이/가 즉위하다
- #2. 삼포에서 왜인들이 난을 일으키다
- #3. (가)
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된 뒤 즉위하였고 삼포왜란이 일어났으며 훈구와 사림이 대립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은 중종이다. 중종은 조광조를 등용해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조광조가 중종반정 공신의 거짓 공훈을 삭제하자고 주장하자 훈구 세력의 반발 속에 그 일파를 제거하였는데 이것이 기묘사화(1519)이다. 이괄의 난은 인조, 경신환국은 숙종, 기축옥사는 선조, 무오사화는 연산군 때의 일이다.

조헌이 금산에서 7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였고 김천일·정문부·사명 대사 등이 함께 소개되었으므로 (가)는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 초기 부산에 상륙한 왜군이 밀려오자 동래 부사 송상현은 동래성에서 끝까지 항전하다 순절하였다. 대마도 정벌은 세종 때 이종무, 김상용의 순절은 병자호란, 홍산 대첩은 고려 말 최영, 사르후 전투 파병은 광해군 때의 일이다.

조영석과 김홍도가 인부들의 편자 박기와 기와 잇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이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조선 후기에는 정선의 금강전도 같은 진경 산수화, 양반을 풍자한 탈춤, 판소리, 한글 소설이 널리 유행하였다. 옳지 않은 것은 수시력 도입으로, 원의 역법인 수시력은 고려 충선왕 때 들어와 사용되었으므로 조선 후기의 문화로 볼 수 없다.
대전통편이 완성되었는데, 나라의 제도 및 법식에 관한 책이다. …… 왕이 말하기를, “속전(續典)은 갑자년에 이루어졌는데, 선왕의 명령으로서 갑자년 이후에 이루어진 것도 많으니 어찌 감히 지금과 가까운 것만을 내세우고 먼 것은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김치인 등에게 명하여 원전(原典)과 속전 및 지금까지의 왕명을 모아 한 책으로 편찬한 것이었다.
경국대전과 속대전 등을 하나로 합친 대전통편이 완성되었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왕'은 정조이다. 정조는 젊고 재능 있는 문신을 규장각에서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여 개혁을 뒷받침할 인재를 길렀다. 홍경래의 난(1811)은 순조, 예송은 현종, 이인좌의 난(1728)은 영조, 나선 정벌은 효종 때의 일이다.

강진 유배지에서 보은산방과 사의재에 머물고 다산초당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표를 집필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서양 서적인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를 설계해 공사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였다. 해동제국기는 신숙주, 백운동 서원은 주세붕, 북한산비 고증은 김정희, 강화학파 형성은 정제두와 관련된다.
[사료로 보는 한국사]
온 성의 군민이 모두 울분을 품고, …… 총환과 화살을 어지러이 발사하였으며 사생을 잊고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자가 없었으니, 반드시 오랑캐를 도륙하고야 말 태세였습니다. 강 아래 위의 요해처에서 막고, 마침내 화선(火船)으로 불길이 옮겨붙게 함으로써 모조리 죽여 살아남은 종자가 없게 된 것은 모두 이들이 …… 용감하게 싸운 것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해설] 자료는 『환재집』의 일부로, 평양 군민들이 대동강에서 이양선을 격침한 이 사건의 전말을 서술한 것이다. 평안 감사가 여러 차례 조정에 올린 장계를 통해 당시의 생생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평양 군민이 대동강에서 이양선을 불태워 격침하였고 그 전말을 박규수의 문집인 환재집이 전한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이 사건'은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미국은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871년 강화도를 침략하였는데 이것이 신미양요이다.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전주 화약, 외규장각 도서 약탈(병인양요), 오페르트 도굴 사건은 모두 다른 사건에 대한 설명이다.
[월간 역사 2023년 4월호]
특집 - (가) 의 상소, 조선의 정치를 뒤흔들다!
- 흥선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다
-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왜양일체론을 주장하다
- 단발령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흥선 대원군의 하야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지부복궐척화의소로 왜양일체론을 주장하였으며 단발령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최익현이다. 최익현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체포된 뒤 쓰시마섬으로 끌려가 순국하였다. 대한 광복회 조직은 박상진, 한국통사 집필은 박은식, 서울 진공 작전은 이인영·허위, 우금치 전투는 전봉준과 관련된다.
심히 급박한 상황 중에 나는 적의 활동과 청국 군대의 내습을 우려하여 주상을 모시고 지키기 편리한 경우궁으로 옮기시게 한 후 일본 병사로 하여금 호위할 방침을 세웠다. 곧이어 주상께 일본군의 지원을 구하도록 요청하니, 주상은 곧 영숙문 앞 노상에서 연필로 “일본 공사는 와서 나를 보호하라.”라는 글을 친히 쓰시어 주시는지라. …… 졸지에 변란을 만난 사대당의 거두들은 주상께서 경우궁에 계심을 듣고 입궐하다가 …… 민영목, 민태호 등은 용감한 우리 집행원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당하였다.
| 1866 | 1873 | 1882 | 1885 | 1894 | 1899 | |||||
| (가) | (나) | (다) | (라) | (마) | ||||||
| 병인박해 | 고종 친정 | 임오군란 | 톈진 조약 | 청일 전쟁 발발 | 대한국 국제 반포 |
주상을 경우궁으로 옮기고 일본군의 호위를 요청하였으며 민영목·민태호 등이 살해되었다고 하였으므로 1884년에 일어난 갑신정변이다. 연표에서 1884년은 임오군란(1882)과 톈진 조약(1885) 사이에 놓인다. 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하였고, 그 뒷수습으로 조선과 일본은 한성 조약을, 청과 일본은 톈진 조약을 맺었다.
파리의 외무부 장관 아노토 각하께
전임 일본 공사는 국왕에게서 사실상 거의 모든 권력을 빼앗고, 개혁 위원회[군국기무처]가 내린 결정을 확인하는 권한만 남겨 놓았습니다. …… 이후 개혁 위원회[군국기무처]는 매우 혁신적인 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일부 위원들이 몇몇 조치에 대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더니 이에 대해 동의하기를 거부했습니다. …… 게다가 조선인들은 이 기구가 왕권을 빼앗고 일본에 매수되었다고 비난하면서, …… 어떤 지방에서는 왕권 수호를 위해 봉기했다고 합니다.
주 조선 공사 르페브르 올림
<보 기>
- ㄱ. 건양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다.
- ㄴ. 탁지아문으로 재정을 일원화하였다.
- ㄷ.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 ㄹ. 조혼을 금지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였다.
프랑스 공사 르페브르가 군국기무처가 왕권을 대신해 혁신적인 개혁안을 발표했다고 보고한 서한이므로 밑줄 그은 '개혁안'은 제1차 갑오개혁의 내용이다. 제1차 갑오개혁에서는 국가 재정을 탁지아문으로 일원화하고, 조혼을 금지하며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 등 사회 폐습을 개혁하였다. 건양 연호 제정은 을미개혁, 양전 사업과 지계 발급은 광무개혁의 내용이다.
(가) 은/는 독립관에서 경축 모임을 열었다. 회장은 모임을 여는 큰 뜻을 설명하였다. “오늘은 황제 폐하께서 대황제라는 존귀한 칭호를 갖게 되신 계천(繼天) 경축일이니, 대한의 신민은 이를 크게 경축드립니다. 우리는 관민 공동회에서 황실을 공고히 하고 인민을 문명 개화시키며 영토를 보존하고자 여섯 개 조항의 의견안을 바쳤습니다.”라고 말하였다. …… 이어 회원들은 조칙 5조와 헌의 6조 10만 장을 인쇄하여 온 나라에 널리 배포하고 학생들에게 그것을 배우고 익히도록 하였다. 경축연을 마친 회원들은 울긋불긋한 종이꽃을 머리에 꽂은 채 국기와 (가) 의 깃발을 세우고 경축가를 부르며 인화문 앞으로 가서 만세를 외치고 종로의 만민 공동회로 갔다.
독립관에서 경축 모임을 열고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올렸으며 만민 공동회로 이어졌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위해 절영도 조차를 요구하자 만민 공동회를 열어 이를 반대하고 끝내 요구를 철회시켰다.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 태극 서관은 신민회,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은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건국 강령 발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일이다.
한성 사범 학교 규칙
제1조 한성 사범 학교는 칙령 제79호에 의해 교원에 활용할 학생을 양성함
제2조 한성 사범 학교의 졸업생은 소학교 교원이 되는 자격이 있음
제3조 한성 사범 학교의 본과 학생이 수학할 학과목은 수신·교육·국문·한문·역사·지리·수학·물리·화학·박물·습자·작문·체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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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령 제79호에 따라 소학교 교원을 양성한다는 한성 사범 학교 규칙이므로 제2차 갑오개혁 시기인 1895년에 발표된 것이다. 그 이후인 1907년 이승훈은 민족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평안북도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세웠다. 육영 공원(1886), 동문학(1883), 원산 학사(1883), 교육 입국 조서(1895년 2월)는 모두 이 규칙보다 앞선 일이다.
경천사지 십층 석탑에 대한 일본인의 약탈 행위에 관해 보도한 (가) 기사를 읽어 보았는가? 보도 내용을 접한 헐버트가 사건 현장을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목격자 의견을 청취했다더군.
일본인의 이런 행위가 알려진 것은 양기탁과 베델이 창간한 (가) 의 노력 덕분이라고 하네.
양기탁과 베델이 창간하였고 경천사지 십층 석탑 약탈을 보도하여 헐버트의 현장 조사로 이어졌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대한매일신보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이 발행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비교적 덜 받았고, 국채 보상 운동을 적극 보도하여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상업 광고를 처음 실은 것은 한성주보, 천도교 기관지는 만세보, 일장기 삭제 사건은 동아일보, 순 한문 열흘 간격 발행은 한성순보이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했는가?
일본은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포츠머스 조약으로 전쟁이 종결되자, 이토는 우리 군신을 위협해 주권을 뺏으려 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를 묻는 재판 장면이고 포츠머스 조약으로 종결되었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전쟁'은 러일 전쟁(1904~1905)이다. 옳지 않은 것은 기유각서로, 대한 제국이 사법권을 빼앗긴 기유각서는 전쟁이 끝난 뒤인 1909년에 체결되었다. 독도 불법 편입, 가쓰라·태프트 밀약, 메가타의 재정 고문 부임, 한일 의정서 강요는 모두 러일 전쟁 중에 있었던 일이다.
임시 토지 조사국 조사 규정
제1장 면과 동의 명칭 및 강계(疆界) 조사와 토지 신고서의 접수
제2장 지주 지목(地目) 및 강계 조사
제3장 분쟁지와 소유권에 부의(付疑)* 있는 토지 및 신고하지 않은 토지에 대한 재조사
제4장 지위(地位) 등급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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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총독부 관보 -
*부의(付疑): 이의를 제기함
임시 토지 조사국을 두고 토지 신고서 접수와 강계·지목 조사를 규정하였으므로 1910년대에 시행된 토지 조사 사업 관련 규정이다. 같은 시기인 1910년 일제는 회사를 세울 때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회사령을 공포하여 민족 자본의 성장을 억눌렀다. 원산 총파업(1929), 국가 총동원법(1938), 조선 노동 공제회(1920),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1941)은 모두 이후의 일이다.
[역사 신문] 제△△호 ○○○○년 ○○월 ○○일
민중 대회 개최 모의로 지도부 대거 체포
허헌, 홍명희 등 (가) 의 지도부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전국적 시위 운동으로 확산시키기 위한 민중 대회 개최를 추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단체는 사건 진상 조사 보고를 위한 유인물 배포 및 연설회 개최를 계획하고, 각 지회에 행동 지침을 내리는 등 시위 확산을 도모하였다.
허헌, 홍명희 등이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민중 대회를 준비하다 체포되었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신간회이다. 신간회는 1927년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 만든 민족 협동 전선 단체로, 국내 최대 규모의 합법적 사회단체였다. 암태도 소작 쟁의 지원은 조선 노농 총동맹, 부민관 폭파는 대한 애국 청년당, 조선 혁명 선언은 의열단, 어린이날 제정은 천도교 소년회와 관련된다.

평양에서 조만식 등의 주도로 시작되었고 '조선 사람 조선 것'을 구호로 내세웠으나 자본가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도 받았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이 운동'은 물산 장려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일제가 조선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려 하자 국내 산업을 지키자는 여론이 커지면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통감부의 탄압으로 중단된 것은 국채 보상 운동, 황국 중앙 총상회 설립과 은행 설립은 개항기 상권 수호 운동과 관련된다.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전시 동원 체제가 강화된 시기의 판결문으로, 징용과 근로 보국대 관련 발언이 처벌 대상이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민족 말살 통치기인 1940년대이다. 이 시기 일제는 애국반을 통해 주민을 통제하면서 여성에게 일본식 작업복인 몸뻬 착용을 강요하였다. 국가 보안법 철폐 요구는 광복 이후, 경부선 개통(1905)과 형평사 창립(1923), 헌병 경찰의 태형(1910년대)은 모두 시기가 다르다.

1888년에 태어나 김해 출신으로 영변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고 조선어 연구회에 가입해 한글 연구와 보급에 힘쓰다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1943년 옥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이 인물은 이윤재이다. 이윤재는 조선어 학회에서 활동하며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참여하였고 표준어 사정 작업에도 힘썼다. 서유견문은 유길준, 사민필지는 헐버트, 독사신론은 신채호가 남겼다.
이것은 (가) 편련 계획 대강의 일부로 병력 모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충칭에서 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는 (가) 총사령부를 창설하였습니다.
1. 연내에 동북 방면에서 중국 관내로 들어와 화북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독립군 중에서 모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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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 국내와 동북 지방 각지에 있는 장정들에게 비밀리에 군령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응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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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로로 잡힌 한인을 거두어 편성한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충칭에서 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여 창설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한국광복군이다. 한국광복군은 태평양 전쟁이 벌어지자 연합군과 함께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고,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지원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는 한국 독립군,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의 무장 조직은 조선 의용대, 영릉가 전투는 조선 혁명군, 자유시 이동은 대한 독립 군단과 관련된다.
신문을 보니 며칠 전 정읍에서 이승만이 단독 정부 수립을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네.
한국 독립당에서는 단독 정부 수립은 안 된다고 했다더군.
↓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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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련의 주장은 작년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 때와 같습니다.
우리 미국은 신탁 통치에 반대하는 단체를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앞 장면은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 알려진 1946년 6월 무렵이고, 뒤 장면은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열린 1947년의 상황이므로 (가)는 그 사이 시기이다. 이 시기인 1946년 7월 여운형과 김규식을 중심으로 좌우 합작 위원회가 발족하여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여수·순천 10·19 사건(1948),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도착(1948), 한국 민주당 창당(1945), 조선 인민 공화국 선포(1945)는 모두 시기가 맞지 않는다.
(가) 완산주를 다시 설치하고 용원을 총관으로 삼았다. 거열주를 빼서 청주(菁州)를 두니 처음으로 9주가 되었다. 대아찬 복세를 총관으로 삼았다.
(나) 현종 초에 절도사를 폐지하고, 5도호와 75도 안무사를 두었으나, 얼마 후 안무사를 폐지하고, 4도호와 8목을 두었다. 그 이후로 5도·양계를 정하니, 양광·경상·전라·교주·서해·동계·북계가 그것이다.
(다) 각 도 각 고을의 이름을 고쳤다. …… 드디어 완산을 다시 ‘전주’라고 칭하고, 계림을 다시 ‘경주’라고 칭하고, 서북면을 ‘평안도’로 하고, 동북면을 ‘영길도’로 하였으니, 평양·안주·영흥·길주가 계수관이기 때문이다.
(라) 전국을 23부의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 아래에 열거하는 각 부를 둔다. …… 앞 조항 외에는 종래의 목, 부, 군, 현의 명칭과 부윤, 목사, 부사, 군수, 서윤, 판관, 현령, 현감의 관명을 다 없애고 읍의 명칭을 군이라고 하며 읍 장관의 관명을 군수라고 한다.
<보 기>
- ㄱ. (가) - 신문왕 재위 시기에 정비되었다.
- ㄴ. (나) - 지방 장관으로 욕살, 처려근지 등이 있었다.
- ㄷ. (다) - 도에는 관찰사가 임명되어 수령을 감독하였다.
- ㄹ. (라) -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가)는 9주가 완성된 신라, (나)는 5도 양계를 둔 고려, (다)는 도 이름을 정비한 조선 초기, (라)는 전국을 23부로 나눈 제2차 갑오개혁 때의 지방 제도이다. 신라의 9주는 신문왕 때 완비되었고, 조선은 8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여 수령을 감독하게 하였다. 욕살과 처려근지는 고구려의 지방 장관이고, 23부제는 광무개혁이 아니라 제2차 갑오개혁의 결과이므로 옳지 않다.
유엔군과 국군은 서울에서 퇴각하고 한강 이북의 부대를 철수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한강에 설치된 임시 교량을 이용해 철수하였고, 오후 1시경에 마지막 부대가 통과한 후 임시 교량을 폭파시켰다. 이에 앞서 정부는 서울 시민들에게 피란을 지시하였고, 많은 서울 시민들이 보따리를 싸서 피란길에 나섰다.
유엔군과 국군이 서울에서 물러나며 한강 임시 교량을 폭파하고 시민들이 피란길에 나섰다고 하였으므로 6·25 전쟁 중 중국군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내준 1·4 후퇴(1951) 무렵이다. 그 이후인 1953년 정전 협정 체결 뒤 한국과 미국은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맺어 동맹 관계를 제도화하였다. 장진호 전투(1950년 11~12월), 반민특위 습격(1949), 애치슨 라인 발표(1950년 1월), 5·10 총선거(1948)는 모두 앞선 일이다.

서울시가 도심 정비를 명목으로 주민 10만여 명을 경기도 광주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자 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발하였다고 하였으므로 1971년의 광주 대단지 사건이며, 당시는 박정희 정부 시기이다. 박정희 정부 때에는 1970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 도로가 개통되어 전국 일일 생활권이 형성되었다. OECD 가입(1996)과 노사정 위원회(1998)는 김영삼·김대중 정부, 삼백 산업은 이승만 정부, 3저 호황은 전두환 정부 시기의 일이다.

(가)는 대학 교수들이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 4·19 혁명(1960), (나)는 명동 성당에서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6월 민주 항쟁(1987)이다. 6월 민주 항쟁은 전국적인 시위 끝에 6·29 선언을 이끌어 내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성사시켰다.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는 6·3 시위, 시민군 조직은 5·18 민주화 운동이며, 대통령이 하야한 것은 4·19 혁명뿐이다.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1. 다음 각 호의 행위를 금한다.
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
나. 집회·시위 또는 신문·방송·통신 등 공중 전파 수단이나 문서·도서·음반 등 표현물에 의하여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청원·선동 또는 선전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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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이 조치 또는 이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조치에 위반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구금·압수 또는 수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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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이 조치에 의한 주무부 장관의 명령이나 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헌법을 부정·비방하거나 개정을 주장하는 행위를 금하고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게 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이므로 유신 체제하의 박정희 정부 시기(1975)이다. 이듬해인 1976년 명동 성당에서 재야인사들이 유신 체제의 장기 독재에 저항하며 3·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국민 방위군 설치법(1950)과 진보당 사건(1958)은 이승만 정부, 내각 책임제 개헌(1960)은 4·19 혁명 직후, 신한 공사 설립(1946)은 미군정기의 일이다.
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분단 55년 만에 처음 정상 회담을 가졌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우리 두 사람은 민족의 장래와 통일을 생각하는 마음과 열정에 큰 차이가 없으며, 이를 추진하는 방법에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 남북이 열과 성을 모아, 이번의 정상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쳐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을 향한 새 출발에 온 세계가 축복해 주고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남북 정상 회담을 이뤄냈듯이 남과 북이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면 통일의 날도 반드시 오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정상 회담을 가졌다고 하였으므로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 회담을 마친 김대중 정부의 연설문이다. 김대중 정부는 6·15 남북 공동 선언 이후 남북 교류 협력의 상징 사업으로 개성 공업 지구 조성에 합의하였다. 6·23 특별 성명과 남북 조절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 남북 기본 합의서는 노태우 정부, 10·4 남북 정상 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일이다.
[○○고 한국사 교실]
■ 모둠별 주제 탐구 과제 안내
인물로 보는 역사 속 외교 활동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제목과 함께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 과제 마감일은 4월 15일입니다.
| 번호 | 제 목 |
|---|---|
| 1 | 1모둠 - 강수, (가) |
| 2 | 2모둠 - 서희, (나) |
| 3 | 3모둠 - 이예, (다) |
| 4 | 4모둠 - 김홍집, (라) |
| 5 | 5모둠 - 김규식, (마) |
인물로 보는 역사 속 외교 활동이 주제이므로 각 인물의 외교 활동이 제목에 들어가야 한다. 강수는 외교 문서 작성에 뛰어나 청방인문표를 지었고, 서희는 거란과의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으며, 이예는 일본에 여러 차례 다녀와 계해약조 체결에 기여하였고, 김규식은 파리 강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옳지 않은 것은 김홍집으로, 보빙사의 전권대신으로 미국에 파견된 인물은 민영익이며 김홍집은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와 조선책략을 들여왔다.
우리 모둠에서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의 생가인 임청각과 그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발표하려고 합니다.
[지역사 모둠 발표] (가) 지역의 역사와 문화
- 1모둠 - 고창 전투와 후삼국 통일 과정
- 2모둠 - 봉정사 극락전과 고려 후기 불교 건축물
- 3모둠 - 도산 서원과 퇴계 이황의 성리학
- 4모둠 - 임청각과 이상룡의 독립운동
고창 전투, 봉정사 극락전, 도산 서원과 이황, 임청각과 이상룡이 모두 한 지역의 역사로 묶였으므로 (가)는 안동이다. 안동은 고려 말 홍건적이 개경까지 밀고 들어오자 공민왕이 피란하였던 곳으로, 이때의 행차에서 놋다리밟기가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김헌창의 난은 웅천주(공주), 강주룡의 고공 시위는 평양, 신립의 배수진은 충주 탄금대, 김사미의 봉기는 운문(청도)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