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5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65회

자료는 사유 재산과 계급이 출현한 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인 부여 송국리 유적을 소개하는 축제 안내문으로, 비파형 동검과 민무늬 토기가 함께 제시된 청동기 시대를 가리킨다. 청동기 시대에는 지배층이 등장하면서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의 일반화와 철제 농기구 사용은 각각 고려 시대와 철기 시대의 모습이고, 가락바퀴가 처음 쓰인 것은 신석기 시대이다.
니계상 참이 사람을 시켜 (가) 의 왕 우거를 죽이고 와서 항복하였다. 그러나 왕검성은 끝내 함락되지 않았기에 우거왕의 대신(大臣) 성기가 한(漢)에 반기를 들고 공격하였다. 좌장군은 우거왕의 아들 장과 항복한 상 노인의 아들 최로 하여금 그 백성을 달래고 성기를 주살하도록 하였다. 드디어 (가) 을/를 평정하고 진번·임둔·낙랑·현도군을 설치하였다.
-『한서』-
제시된 『한서』의 기록은 한 무제의 침입으로 우거왕이 살해되고 왕검성이 함락되어 고조선이 멸망한 상황을 전한다. 따라서 (가)는 고조선이며, 고조선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두었다. 동맹은 고구려, 소도는 삼한, 책화는 동예, 사출도는 부여의 사실이다.
[이달의 역사 인물]
(가) 에 백제의 새로운 터전을 잡다
문주왕 미상~477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의 수도 한성이 파괴되고 개로왕이 전사하였다. 그에 이어 즉위한 문주왕은 위기를 수습하고자 (가) (으)로 도읍을 옮겼다.
자료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한 뒤 즉위한 문주왕이 도읍을 옮긴 사실을 소개하고 있으므로, (가)는 문주왕이 475년에 천도한 웅진, 곧 오늘날의 공주이다. 공주에서는 무령왕과 왕비가 함께 묻힌 무령왕릉이 발굴되었다. 미륵사가 창건된 곳은 익산, 성왕이 전사한 곳은 관산성, 윤충이 함락시킨 곳은 대야성, 계백이 싸운 곳은 황산벌이다.
[○○ 박물관 누리집 소장품 검색 화면]
- 종목: 보물
- 지정(등록)일: 2015년 9월 2일
- 소개
-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됨
-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명문이 있음
- 의의
- 신라와 고구려 사이의 정치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됨
(가)





1946년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되었고 광개토 대왕을 기리는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명문이 있어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보여 주는 유물은 호우명 그릇이다. 정답은 볼록한 뚜껑이 덮인 청동 그릇 사진으로, 바닥에 새겨진 명문 덕분에 제작 시기와 성격이 확인된다.
10월에 백제왕이 병력 3만 명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대를 출정시켜 백제군을 막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이달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자료는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한 371년의 상황이다. 뒤를 이은 소수림왕은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국내성 천도와 낙랑군 축출, 진대법 실시, 관구검의 환도성 함락은 모두 고국원왕 이전의 일이다.
- (가) 당의 손인사, 유인원과 신라왕 김법민은 육군을 거느려 나아가고, 유인궤 등은 수군과 군량을 실은 배를 거느리고 백강으로 가서 육군과 합세하여 주류성으로 갔다. 백강 어귀에서 왜의 군사를 만나 …… 그들의 배 4백 척을 불살랐다.
- (나)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매소성에 머물렀다. 신라군이 공격하여 달아나게 하고 말 3만여 필을 얻었는데, 노획한 병장기의 수도 그 정도 되었다.
(가)는 나당 연합군이 백제 부흥군과 왜의 지원군을 격파한 백강 전투(663), (나)는 나당 전쟁 중의 매소성 전투(675)이다. 두 시기 사이인 670년에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장문휴의 등주 공격은 발해 무왕 때의 일이고, 걸사표 작성과 살수 대첩, 나당 군사 동맹은 모두 백강 전투 이전의 사실이다.
- 조영이 죽으니, 이 나라에서는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무예가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다.
- 처음에 이 나라의 왕이 자주 학생들을 경사의 태학에 보내어 고금의 제도를 배우고 익혀 가더니, 드디어 해동성국이 되었다. 그 땅에는 5경 15부 62주가 있다.
-『신당서』-
대조영을 고왕이라 하고 아들 무예가 영토를 넓혔으며 해동성국으로 불리고 5경 15부 62주를 두었다는 기록에서 밑줄 그은 나라가 발해임을 알 수 있다. 발해는 인안, 대흥과 같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여 중국과 대등하다는 의식을 드러냈다. 정사암 회의는 백제, 9서당 10정은 통일 신라, 욕살·처려근지는 고구려, 광평성은 후고구려의 제도이다.

경주의 서악 서원에서 제사하는 인물이고 이두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으며 원효의 아들이라는 설명에서 밑줄 그은 인물이 설총임을 알 수 있다. 설총은 꽃에 빗대어 임금에게 조언하는 내용의 화왕계를 지었다. 『삼대목』은 위홍과 대구화상, 시무책 10여 조는 최치원, 세속 5계는 원광, 청방인문표는 강수와 관련된다.

혜공왕이 피살된 뒤 왕위 쟁탈전이 치열했던 시기, 곧 신라 하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인 흥덕왕 때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이를 거점으로 해적을 소탕하며 해상 무역을 장악하였다. 의창과 혜민국, 만권당은 고려 시대의 일이고, 화엄일승법계도를 지은 의상은 신라 중대의 승려이다.
<탐구 활동 보고서>
○학년 ○반 이름: △△△
1. 주제: (가) , 안정과 통합을 꾀하다
2. 방법: 『고려사』 사료 검색 및 분석
3. 사료 내용과 분석
| 사료 내용 | 분석 |
|---|---|
| 명주의 순식이 투항하자 왕씨 성을 내리다. | 지방 호족 포섭 |
|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반포하다. | 관리의 규범 제시 |
| 흑창을 두어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다. | 민생 안정 |
명주의 순식에게 왕씨 성을 내리고 『정계』와 『계백료서』를 반포했으며 흑창을 설치한 왕은 고려 태조 왕건이다. 태조는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개국 공신들에게 인품과 공로를 기준으로 역분전을 지급하였다. 광군 조직은 정종, 광덕·준풍 연호는 광종, 양현고는 예종, 해동통보는 숙종 때의 일이다.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하고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면서 매번 신하들의 충고를 구하고 있다. 낮은 곳의 이야기를 듣고 멀리 보고자 어질고 현명한 이들의 힘을 빌리려고 한다. 이에 수령들의 공로에 의지해 백성들의 바람에 부합하고자 한다. 『우서(虞書)』의 12목 제도를 본받아 시행하니, 주나라가 8백 년간 지속하였듯이 우리의 국운도 길이 이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 918 고려 건국 | (가) | 945 왕규의 난 | (나) | 1009 강조의 정변 | (다) | 1196 최충헌 집권 | (라) | 1270 개경 환도 | (마) | 1351 공민왕 즉위 |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것은 고려 성종 2년(983)의 일이다. 연표에서 945년 왕규의 난과 1009년 강조의 정변 사이에 해당하므로 (나) 시기에 들어간다.

고려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고 부처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고자 초조대장경 조성을 시작한 계기는 거란의 침입이므로 (가)는 거란이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여 개경 주위에 나성을 쌓아 방어를 강화하였다. 박위의 쓰시마 토벌은 왜구에 대한 대응이고, 나선 정벌과 4군 설치, 비변사 신설은 모두 조선 시대의 일이다.

문종의 아들로 송에 유학하고 흥왕사에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간행한 인물은 대각국사 의천이다. 의천은 귀국 후 국청사의 주지가 되어 해동 천태종을 개창하고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수선사 결사는 지눌, 유불 일치설은 혜심, 『삼국유사』는 일연, 『왕오천축국전』은 혜초와 관련된다.
- (가) 왕이 보현원 문에 들어서자 …… 이고 등이 왕을 모시던 문관 및 대소 신료, 환관들을 모두 살해하였다. …… 정중부 등이 왕을 모시고 환궁하였다.
- (나) 이자겸과 척준경이 왕을 위협하여 남궁(南宮)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고 안보린, 최탁 등 17인을 죽였다. 이 외에도 죽인 군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 (다) 묘청이 서경을 근거지로 삼고 반란을 일으켰다. ……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그 군대를 천견충의군이라 불렀다.
(가)는 보현원에서 일어난 무신 정변(1170), (나)는 이자겸과 척준경이 왕을 위협한 이자겸의 난(1126), (다)는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이다. 시간 순으로 배열하면 이자겸의 난 → 묘청의 난 → 무신 정변이 된다.
기철의 친척 기삼만이 권세를 믿고 불법으로 남의 토지를 빼앗았기에 정치도감에서 그를 잡아 장(杖)을 치고 하옥하였는데 20여 일 만에 죽었다. …… 그러자 정동행성 이문소에서 정치도감 관리들을 잡아 가두었다.
기철 일가의 불법을 처벌한 정치도감과 이를 방해한 정동행성 이문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원의 간섭을 받던 14세기 중엽 고려의 상황이다. 이 무렵에는 원 간섭기에 도병마사가 개편된 도평의사사가 국정을 논의하는 최고 기구로 기능하였다. 『농사직설』 편찬과 초량 왜관, 규장각 검서관은 조선의 사실이고, 빈공과에 응시한 6두품 유학생은 통일 신라의 모습이다.
명주의 정해현에서 순풍을 만나 3일이면 큰 바다 가운데로 들어가고, 다시 5일이면 흑산도에 도달하여 그 경계에 들어간다. 흑산도에서 섬들을 지나 7일이면 예성강에 이른다. …… 거기서 3일이면 연안에 닿는데, 벽란정(碧瀾亭)이라는 객관이 있다. 사신은 여기에서부터 육지에 올라 험한 산길을 40여 리쯤 가면 (가) 의 수도에 도달한다.
-『송사』-
『송사』에 실린 사행 노정으로, 흑산도와 예성강을 거쳐 벽란정에 이른 뒤 수도에 도달한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개경을 수도로 삼은 고려이다. 고려 숙종 때에는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만든 은병이 주조되어 활구라 불리며 고액 화폐로 쓰였다. 부경은 고구려, 동시전은 신라, 계해약조와 덕대는 조선의 사실이다.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이 건물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입니다. 건물 보수 중 묵서명이 발견되어 충렬왕 34년이라는 정확한 건립 연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사 교실 온라인 강의 화면]
국보로 지정된 불교 건축물
(가)





충청남도 예산에 있고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며 묵서명으로 충렬왕 34년(1308)이라는 건립 연도가 확인된 국보 건축물은 수덕사 대웅전이다. 정답은 낮은 석축 기단 위에 정면 세 칸으로 서 있는 수덕사 대웅전 사진이다.
이번에 왕이 최영에게 명하여 요동을 정벌한다고 하네.
명 황제가 철령 이북을 일방적으로 명의 영토로 귀속시키려 한 것이 원인이라더군.
명이 철령 이북 땅을 차지하려 하자 우왕과 최영이 요동 정벌을 추진한 1388년의 상황이다.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별무반과 동북 9성, 서희의 외교 담판, 삼별초의 용장산성 항전, 최우의 강화 천도는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메신저 대화 화면]
경국대전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알려 줄래?
이·호·예·병·형·공전의 육전 체제로 구성되었어.
경제육전과 수교, 조례 등에서 영구히 준수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여 엮었대.
세조 때 편찬이 시작되어 이 왕 때 완성하여 반포했지.
세조 때 편찬이 시작된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반포한 왕은 조선 성종이다. 성종은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의 직제를 개편하여 경연을 주관하게 함으로써 학문 정치를 뒷받침하였다. 사간원의 독립은 태종, 이시애의 난은 세조, 사가독서제는 세종, 탕평비는 영조 때의 일이다.
㉠왕이 어려서 즉위하여 모후(母后)가 수렴청정을 하고, 사림 간에 큰 옥사가 연달아 일어난 데다가 ㉡요승(妖僧)을 높이고 사랑하여 불교를 숭상했으나 모두 왕의 뜻은 아니었다. …… ㉢부세는 무겁고 부역은 번거로웠으며 흉년으로 백성들이 고달프고 도적이 성행하여 국내의 재력이 고갈되었다. 그래서 왕이 비록 성덕(盛德)을 품었어도 끝내 하나도 펴지 못했으니 참으로 애석하다. 그러다가 ㉣문정왕후가 돌아가신 후에 국정을 주관하게 되자 …… ㉤을사사화 때 화를 당한 사람들을 풀어 주고 먼 곳으로 쫓겨난 사람들을 모두 내지로 옮겼다.
왕이 어려서 즉위해 모후가 수렴청정하고 문정왕후가 죽은 뒤 왕이 국정을 주관했다는 서술에서 조선 명종 대의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명종 즉위 직후 일어난 을사사화에서는 소윤 윤원형 일파가 대윤 윤임 일파를 축출하였으므로, 을사사화를 가리키는 부분은 윤임 일파가 축출되는 과정을 조사하는 활동과 연결된다. 1차 왕자의 난은 태조, 황사영 백서 사건은 순조, 예송은 현종, 갑술환국은 숙종 때의 일이다.
교지를 내려 이르기를, "전날 성삼문 등이 상왕(上王)도 그 모의에 참여하였다고 인정하자, 백관들이 상왕도 종사(宗社)에 죄를 지었으니 편안히 도성에 거주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하였다. …… 상왕을 노산군(魯山君)으로 낮추고, 궁에서 내보내 영월에 거주시키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성삼문 등의 단종 복위 시도가 발각되어 상왕을 노산군으로 낮추고 영월로 내보내게 한 1457년의 교지이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조카인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은 일이 있다. 인조반정과 기사환국, 이인좌의 난, 갑자사화는 모두 이후 시기의 사건이다.
[조선의 예술, 메타버스 회화 전시관]
해설사: 이 그림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것입니다.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가 대비를 이루면서도 전체적으로 통일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가)
[전시관 안에 학생 1, 학생 2, 학생 3과 해설사가 있다.]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은 몽유도원도이다. 정답은 험준한 기암괴석이 솟은 이상 세계와 완만한 현실 세계가 대비를 이루도록 그린 수묵 산수화이다.

김창협이 편찬한 『충렬록』으로, 김상용이 세자빈과 봉림대군 등을 호종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강화성이 함락되자 순절한 사실을 담고 있으므로 밑줄 그은 전쟁은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중 김준룡은 광교산 전투에서 청군을 물리치는 승리를 거두었다. 평양성 탈환과 곽재우·김천일의 의병 활동은 임진왜란, 사르후 전투 참전은 광해군 대, 6진 개척은 세종 때의 일이다.
이 시는 (가) 이/가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 행궁에 머물다가 환궁하는 길에 지은 것입니다. 아버지인 사도세자에 대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혼정신성*의 그리움 다할 길 없어
오늘 또 화성에 와 보니
궂은 비는 침원에 부슬부슬 내리고
이 마음은 재전**을 끝없이 배회하누나
어찌하여 사흘 밤을 잤던고
아버님 영정을 모셨기 때문일세
더디고 더딘 걸음에 고개 들어 바라보니
오운이 저 멀리서 일어나누나
*혼정신성: 부모님께 효도하는 도리
**재전: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 행궁에 머물렀다는 설명에서 (가)가 정조임을 알 수 있다. 정조는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을 단행하여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넓혔다. 백두산정계비는 숙종, 『속대전』은 영조, 경복궁 중건은 고종 대 흥선 대원군, 삼정이정청은 철종 때의 일이다.
광해군 때 이원익이 방납의 폐단을 혁파하고자 선혜청을 두고 (가) 을/를 실시할 것을 청하였다. …… 맨 먼저 경기도 내에 시범적으로 실시하니 백성들은 대부분 편리하게 여겼다. 다만 권세가와 부호들은 방납의 이익을 잃기 때문에 온갖 방법으로 반대하였다.
-『국조보감』-
광해군 때 이원익의 건의로 선혜청을 두고 경기도에서 먼저 실시한 제도는 대동법이다.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여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는 배경이 되었다. 양반에게 군포를 부과한 것은 흥선 대원군의 호포제, 수신전·휼양전 폐지는 직전법, 지계 발급은 광무개혁, 풍흉에 따른 9등급 과세는 세종 대 연분 9등법과 관련된다.
- (가) 좌의정 박은이 상왕(上王)에게 아뢰기를, "이제 왜구가 중국에 들어가 도적질하고 본도로 돌아오는 것이 곧 이때이므로 마땅히 이종무 등으로 대마도에 나가 적이 섬에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맞아서 치게 되면 적을 파함에 틀림없을 것이니, 진멸(殄滅)시킬 기회를 잃지 마소서."라고 하니, 상왕이 옳게 여겼다.
- (나) 김방경이 중군을 거느리게 하고 홀돈과 홍다구와 더불어 일본을 정벌하게 하였다. 일기도(一岐島)에 이르러 천여 명을 죽이고 길을 나누어 진격하였다. 왜인들이 달아나는데 쓰러진 시체가 마치 삼대와 같았다. 날이 저물어 이내 공격을 늦추었는데 마침 밤에 태풍이 크게 불어서 전함들이 많이 부서졌다.
- (다) 왜구가 배 5백 척을 이끌고 진포 입구에 들어와서는 큰 밧줄로 배를 서로 잡아매고 병사를 나누어 지키다가, 해안에 상륙하여 여러 고을로 흩어져 들어가 불을 지르고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 나세, 심덕부, 최무선 등이 진포에 이르러,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그 배들을 불태웠다.
- (라) 왜장이 군사 수만 명을 모두 동원하여 진주성을 포위하였는데 성 안의 군사는 3천여 명이었다. 진주 목사 김시민이 여러 성첩을 나누어 지키게 하였다. …… 10여 일 동안 4~5차례 큰 전투를 벌이면서 안팎에서 힘껏 싸웠으므로 적이 먼저 도망하였다.
(가)는 세종 때 이종무가 나선 쓰시마 정벌(1419), (나)는 고려 충렬왕 때 여몽 연합군의 1차 일본 원정(1274), (다)는 최무선의 화포가 처음 쓰인 진포 대첩(1380), (라)는 임진왜란 중의 진주 대첩(1592)이다. 시간 순으로 배열하면 일본 원정 → 진포 대첩 → 쓰시마 정벌 → 진주 대첩이 된다.
성호사설에서 6가지 좀의 하나로 과업을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문제인가요?
요즈음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들은 부모 형제와 생업도 팽개치고 종일토록 글공부만 하고 있으니, 이는 인간의 본성을 망치는 재주일 뿐입니다. 다행히 급제라도 하면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져, 끝없이 백성의 것을 빼앗아 그 욕심을 채웁니다. 때문에 나라를 좀먹는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성호사설』에서 나라를 좀먹는 여섯 가지 폐단 가운데 하나로 과업을 든 인물은 성호 이익이다. 이익은 『곽우록』에서 생계 유지에 필요한 영업전을 정하고 그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하였다. 『마과회통』은 정약용, 『의산문답』은 홍대용, 『발해고』는 유득공, 『금석과안록』은 김정희의 저술이다.
내가 준비한 것은 판소리 수궁가에서 호랑이가 내려오는 장면이야.
범 나려온다 ♪ 범이 나려온다 ♪ 송림 깊은 골로 한 김생이 내려온다 ♪ ♬
판소리는 신재효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었어.
한글 소설과 함께 판소리는 이 시기에 유행했지.
판소리와 한글 소설이 유행하고 신재효가 판소리를 정리한 시기이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계미자는 조선 전기인 태종 때 주자소에서 만든 금속 활자이므로 조선 후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송파장의 산대놀이, 도고의 성장, 중인의 시사 조직, 인삼·담배 등 상품 작물 재배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 (가) 대왕대비전이 전교하기를, "익성군이 이제 입궁하였으니, 흥선 대원군과 부대부인의 봉작을 내리는 것을 오늘 중으로 거행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나) 종로에 비석을 세웠다. 그 비에서 이르기를,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즉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고 하였다.
(가)는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 대원군에게 봉작을 내린 1863년의 기록이고, (나)는 신미양요 직후 종로 등에 척화비를 세운 1871년의 기록이다. 그 사이인 1868년에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 거문도 점령과 용암포 조차 요구, 푸트 공사 파견은 모두 이후의 일이고 운요호의 영종도 공격은 1875년이다.

훈련도감에 속한 하도감이 1881년부터 이듬해 구식 군인에 대한 차별 대우로 일어난 사건 때까지 교련병대의 훈련 장소로 쓰였다고 하였으므로 (가)는 임오군란이다. 임오군란의 결과 체결된 제물포 조약에 따라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이 주둔하게 되었다. 입헌 군주제 수립 목표와 우정총국 축하연은 갑신정변, 홍범 14조는 제2차 갑오개혁과 관련되고 조선 총독부는 국권 피탈 이후에 설치되었다.
- (가) 복합 상소 이후에도 "물러나면 원하는 바를 시행할 것이다."라던 국왕의 약속과 달리 관리들의 침학이 날로 심해졌다. …… 최시형은 도탄에 빠진 교도들을 구하고 최제우의 억울함을 씻기 위해 보은 집회를 개최하였다.
- (나) 동학 농민군은 거짓으로 패한 것처럼 꾸며 황토현에 진을 쳤다. 관군은 밀고 들어가 그 아래에 진을 쳤다. …… 농민군이 삼면을 포위한 채 한쪽 모퉁이만 빼고 크게 함성을 지르며 압박하자 관군은 일시에 무너졌다.
(가)는 최시형이 최제우의 신원을 요구하며 연 보은 집회(1893), (나)는 동학 농민군이 관군을 격파한 황토현 전투(1894)이다. 그 사이인 1894년 초에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맞서 농민들이 만석보를 무너뜨린 고부 봉기가 일어났다. 논산 집결과 우금치 전투는 제2차 봉기 때의 일이고, 교정청 설치와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은 황토현 전투 이후의 사실이다.
전보 제 ○○○호
발신인: 외무대신 하야시
수신인: 통감 이토
네덜란드에 파견된 전권 대사 쓰즈키가 보낸 전보 내용임.
한국인 3명이 이곳에 머물면서 평화 회의의 위원 대우를 받고자 진력하고 있다고 함. 그들은 오늘 아침 러시아 수석 위원 넬리도프를 방문하려 했는데, 넬리도프는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평화 회의 위원으로 확인되지 않는 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함. 이들은 일본이 한국에 시행한 정책에 대해 항의서를 인쇄하여 각국 수석 위원(단, 영국 위원은 제외한 것으로 보임)에게도 보냈다고 함.
| 1866 병인양요 | (가) | 1876 강화도 조약 | (나) | 1884 한성 조약 | (다) | 1894 청일 전쟁 | (라) | 1904 러일 전쟁 | (마) | 1910 국권 피탈 |
일본 외무대신이 통감에게 보낸 전보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간 한국인 3명이 만국 평화 회의의 위원 대우를 받고자 했다는 내용이므로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에 해당한다. 연표에서 1904년 러일 전쟁과 1910년 국권 피탈 사이인 (마) 시기에 들어간다.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 각 도에 격문을 전하니 전국에서 불철주야 달려온 지원자들이 만여 명이더라. 이에 서울로 진군하여 국권을 회복하고자 …… 먼저 이인영은 심복을 보내 각국 영사에게 진군의 이유를 상세히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고, 각 도의 의병으로 하여금 일제히 진군하게 하였다.
이인영을 총대장, 허위를 군사장으로 삼아 서울 진공 작전을 계획한 부대는 정미의병 때 결성된 13도 창의군이다. 정미의병은 고종의 강제 퇴위와 대한 제국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났으며, 해산 군인이 합류하면서 전투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조선 혁명 선언은 의열단, 영남 만인소는 위정척사 운동, 상덕태상회는 대한 광복회, 국권 반환 요구서는 독립 의군부와 관련된다.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해가 바뀌었습니다. 그곳 유리창과 분칠한 담장은 화려하지만 그을음 나는 석탄을 때는 전돌(甎堗)은 옥체를 보호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 온 나라 신하들의 심정을 염두에 두시어 간하는 말을 따라 바로 환궁하여 끓어오르는 여론에 부응하시고 영원히 누릴 태평의 터전을 공고히 만드소서.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고 해가 바뀐 상황에서 환궁을 요청하는 상소이므로, 아관파천(1896) 이듬해 무렵에 작성되었다. 고종은 환궁 후 대한 제국을 선포하고 1899년에 대한국 국제를 반포하여 황제권을 규정하였다. 영선사 파견과 제너럴 셔먼호 사건, 군국기무처 설치,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 체결은 모두 이전의 일이다.
주제: 일본의 경제 침탈에 대한 저항
(가) 상권을 수호하기 위해 황국 중앙 총상회가 창립되었어요.
(나)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하기 위해 보안회가 조직되었어요.
(다) 대구에서 서상돈을 중심으로 금주, 금연 등을 통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어요.
(가)는 시전 상인들이 상권 수호를 위해 만든 황국 중앙 총상회(1898), (나)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맞선 보안회(1904), (다)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1907)이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황국 중앙 총상회 → 보안회 → 국채 보상 운동이다.

이상재, 정교 등이 주요 간부였고 러시아의 절영도 조차 요구에 항의한 단체는 독립 협회이다. 독립 협회는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결의하고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를 설립하려 하였다. 정우회 선언의 영향으로 결성된 것은 신간회, 만세보는 천도교, 어린이날 제정은 천도교 소년회, 태극 서관은 신민회와 관련된다.

답사 계획서에 표시된 다섯 장소 가운데 (라) 중명전은 덕수궁에 딸린 건물로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된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는 박문국에서 간행되었고, 고종의 황제 즉위식은 환구단에서 거행되었으며, 백동화는 전환국에서 주조되었다. 나운규의 아리랑이 처음 상영된 곳은 단성사이다.
판결문
피고인: 박○○
주문: 피고인을 태 90에 처한다.
이유
피고 박○○은 이○○가 '구한국의 국권 회복을 도모한다.'고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세한 것에 찬동하였다. …… 법률에 비추어 보니 피고의 소행은 …… 태형에 처함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여 조선 태형령 제1조, 제4조에 준하여 처단해야 한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조선 태형령에 근거하여 태형을 선고한 판결문이므로 이 법령이 시행된 1910년대 무단 통치 시기의 일이다. 이 시기에는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담당하는 헌병 경찰제가 실시되어 강압적인 통치가 이루어졌다. 원수부 설치는 대한 제국, 신간회 창립과 치안 유지법 적용은 1920년대, 동양 척식 주식회사 설립은 1908년의 일이다.
[역사 돋보기] 한국 교육의 역사
삼국 시대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을 통해 제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때 교재는 유학 경전과 역사서가 중심이었다.
고려 시대에 와서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조상의 음덕을 입은 관직 진출도 있었지만,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영예롭게 여기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관학인 국자감 못지않게 ㉡사학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 시대의 교육 기관은 ㉢관학으로 성균관·향교 등이 있었고, 사학으로 서원 등이 있었다. 국가는 교육을 통해 성리학의 이념을 확산시키고, 통치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19세기 말 서구 문물을 접하면서 교육에도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정부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고 행정의 실무를 담당할 필요에서 학교를 설치하였다.
갑오개혁 때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된 이후에는 각종 관립 학교가 세워져 교육을 담당하였다. 한편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전파하고 서양 문화를 보급하려고 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은 갑오개혁 때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된 이후 세워진 각종 관립 학교를 가리킨다. 배재 학당과 이화 학당은 개신교 선교사가 세운 사립 학교이므로 관립 학교를 살펴보는 탐구 활동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태학과 9재 학당, 성균관의 명륜당·대성전, 동문학과 육영 공원은 각각 밑줄 그은 부분에 알맞게 대응한다.
제1조 조선에서의 교육은 본령에 의한다.
제2조 국어[일본어]를 상용(常用)하는 자의 보통 교육은 소학교령, 중학교령 및 고등 여학교령에 의한다.
제3조 국어[일본어]를 상용하지 않는 자에게 보통 교육을 하는 학교는 보통학교, 고등 보통학교 및 여자 고등 보통학교로 한다.
제5조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은 6년으로 한다. …… 보통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는 연령 6세 이상으로 한다.
국어를 상용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나누고 보통학교의 수업 연한을 6년으로 규정한 것으로 보아 1922년에 공포된 제2차 조선 교육령이다. 이 법령이 발표된 이후인 1923년에 조선 민립 대학 설립 기성회가 창립되어 민립 대학 설립 운동이 전개되었다. 서당 규칙 제정과 2·8 독립 선언, 조선어 연구회 결성, 조선 여자 교육회 조직은 모두 그 이전의 일이다.
도내 관공서의 조선인 관리·기타 조선인 부호 등에게 빈번하게 불온 문서를 배부하는 자가 있어서 수사한 결과 이○○의 소행으로 판명되어 그의 체포에 노력하고 있다. …… 그는 (가) 의 교통부 차장과 재무부 총장 등으로부터 여러 가지 명령을 받았다. 조선에 돌아가서 인쇄물을 뿌리는 등 인심을 교란하는 동시에 (가) 이/가 발행한 독립 공채를 판매하는 한편, 조선 내부와의 연락 및 기타 기관을 충분히 갖추게 하는 것 등이었다.
-『고등 경찰 요사』-
교통부 차장과 재무부 총장을 두고 독립 공채를 발행하였다는 서술에서 (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임을 알 수 있다. 임시 정부는 미국 워싱턴에 구미 위원부를 두어 외교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광단은 대종교, 서전서숙은 이상설, 신흥 강습소는 신민회 인사들, 브나로드 운동은 동아일보와 관련된다.
이곳 사할린에 있는 탄광으로 강제 동원되기 전 고향 생활 중 기억나는 것이 있으신가요?
그때는 중일 전쟁이 시작된 뒤여서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지 못하면 기차표 사기도 어렵던 시기였어요. 기차표를 사려고 하면 일본 사람들이 나보고 황국 신민 서사를 외워 보라고 시켰었지요.
중일 전쟁이 시작된 뒤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을 강요받았다는 증언이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30년대 후반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일제는 1938년 국가 총동원법을 시행하여 인력과 물자를 전쟁에 동원하였다. 원산 총파업과 미쓰야 협정, 조선 형평사 결성은 1920년대, 임시 토지 조사국 설립은 1910년의 일이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김원봉 등을 중심으로 창설된,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이다. 조선 의용대는 이후 일부가 화북으로 이동하였고, 김원봉이 이끌던 나머지 대원들은 한국광복군에 합류하였다. 자유시 참변은 대한 독립 군단, 쌍성보 전투는 한국 독립군, 한인 소년병 학교는 박용만, 청산리 전투는 북로 군정서 등과 관련된다.

주시경의 영향을 받아 국어 운동에 나섰고 광복 이후 국어 교재 편찬과 한글 교과서 편찬에 힘쓴 인물은 최현배이다. 최현배는 조선어 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과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참여하다가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파리 강화 회의 청원서 제출은 김규식, 독립 의군부는 임병찬, 『한국통사』는 박은식, 105인 사건은 신민회와 관련된다.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아래 치러진 우리나라 첫 번째 총선거는 1948년 5·10 총선거이다. 이 선거는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실시되었으며, 제주 4·3 사건의 여파로 제주도 일부 선거구는 투표가 이루어지지 못해 무효 처리되었다. 좌우 합작 위원회가 주도한 선거가 아니며, 장면 내각은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수립되었다.
[사료로 보는 한국사]
피하는 것은 죽는 것이요, 다 같이 일어나는 것은 사는 길이니 비록 중국군 2백만 명이 들어오기로서니 우리 2천만 명이 일어나면 한 놈도 살아나갈 수 없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각 도시나 촌락에서 모든 인민들은 쌀을 타다가 밥을 지어 주먹밥이라도 만들면 실어다가 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먹여야 하며, 또 장년들은 참호라도 파며 한편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의 진지를 뚫고 적군 속에 들어가 백방으로 싸워야만 될 것이다.
[해설] 중국군의 개입으로 이 전쟁의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국민의 항전 의지를 독려하는 대통령의 담화문이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상황에서 국민의 항전을 독려한 대통령 담화문이므로 밑줄 그은 전쟁은 6·25 전쟁이다. 전쟁 중 서울이 위협받자 정부는 부산을 임시 수도로 정하고 피란 정부를 운영하였다. 애치슨 라인 발표는 개전 이전,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정전 이후의 일이고,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과 국가 보위 비상 대책 위원회 설치는 훨씬 뒤의 일이다.
□□ 신문 제△△호 ○○○○년 ○○월 ○○일
희망에 찬 전진을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은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진실로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나라가 새롭고 희망에 찬 생활을 향하여 전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더욱 높아가고 미래에 대한 자신이 날로 굳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올해는 제2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착수하여 이미 도약 단계에 들어선 조국의 발전에 일대 박차를 가해야 할 중대한 새 출발의 해인 것이다. 앞으로 4~5년 후에는 아시아에 빛나는 공업 국가를 건설해 보자는 것이 이 계획의 목표인 것이다.
| 1949 농지 개혁법 제정 | (가) | 1965 한일 협정 체결 | (나) | 1977 100억 달러 수출 달성 | (다) | 1988 서울 올림픽 개최 | (라) | 1996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가입 | (마) | 2007 한미 자유 무역 협정(FTA) 체결 |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하고 제2차 계획에 착수하는 해라고 하였으므로 1967년에 실린 글이다. 연표에서 1965년 한일 협정 체결과 1977년 100억 달러 수출 달성 사이인 (나) 시기에 해당한다.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보도 지침과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조작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밑줄 그은 정부는 전두환 정부이다. 이 시기에 일어난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6·29 민주화 선언이 발표되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다. 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은 박정희 정부, 국가 재건 최고 회의는 5·16 군사 정변 직후, 조봉암 처형은 이승만 정부, 3·1 민주 구국 선언은 유신 체제 시기의 일이다.

전라도를 총괄하는 전라 감영과 객사 풍패지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 후백제의 왕성으로 알려진 동고산성이 표시된 것으로 보아 제시된 지역은 전주이다. 전주에서는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설치하였다. 『반계수록』이 저술된 곳은 부안, 견훤이 유폐된 곳은 김제 금산사, 조광조가 사사된 곳은 화순 능주, 무성 서원은 정읍에 있다.

일본 오부치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 합의하고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을 약속한 것은 1998년 김대중 정부 때의 일이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평양에서 최초의 남북 정상 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하였다. 남북 조절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 한반도 비핵화 공동 선언은 노태우 정부,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은 문재인 정부, 이산가족 고향 방문 최초 실현은 전두환 정부 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