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67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67회

울주 검단리 유적에서 나온 환호와 고인돌, 민무늬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구·유물이며, 계급이 출현하였다는 설명도 청동기 시대의 특징이다. 이 시기에는 비파형 동검과 거친무늬 거울 같은 청동기가 만들어져 지배층의 권위를 드러내는 데 쓰였다. 동굴·막집 생활은 구석기, 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모습이고 철제 무기를 앞세운 정복 활동과 우경의 일반화는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여러 나라의 제천 행사>
| 나라 | 내용 |
|---|---|
| 부여 | (가) |
| 고구려 | (나) |
| 동예 | (다) |
| 삼한 | (라) |
<보 기>
- ㄱ. (가) -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에서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다.
- ㄴ. (나) - 10월에 지내는 제천 행사는 국중대회로 동맹이라 하였다.
- ㄷ. (다) -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고 죄수를 풀어주기도 하였다.
- ㄹ. (라) - 씨뿌리기가 끝난 5월과 농사를 마친 10월에 제사를 지냈다.
표는 여러 나라의 제천 행사를 정리한 것으로 (가)는 부여, (나)는 고구려, (다)는 동예, (라)는 삼한이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삼한은 씨뿌리기를 마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부여의 제천 행사는 12월에 열린 영고이고 무천은 동예의 제천 행사이므로, 부여에 무천을 동예에 영고를 연결한 설명은 서로 뒤바뀐 것이다.

백제 제26대 왕 명농으로,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해 중흥을 꾀하다가 관산성 부근에서 신라 복병에게 목숨을 잃은 인물은 성왕이다. 성왕은 사비 천도와 함께 국호를 남부여로 고쳐 부여 계승 의식을 드러냈다. 미륵사 창건은 무왕, 서기 편찬은 근초고왕, 대야성 함락은 의자왕, 마라난타를 통한 불교 수용은 침류왕 때의 일이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고 선덕여왕 3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존하는 신라 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은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다. 정답으로 제시된 사진이 바로 이 탑으로, 안산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 양식과 기단 위의 석사자상이 특징이다. 자료의 가람 배치도에 함께 표시된 금동약사여래입상과 당간지주도 분황사에 남아 있는 유물이다.
[한국사 동영상 제작 계획안]
삼국이 하나 되다
○학년 ○반 ○모둠
■ 제작 의도
삼국 통일 과정을 사건의 발생 순서대로 구성하여 그 의의와 한계를 살펴본다.
■ 장면별 구성 내용
- #1. 김춘추가 당과의 군사 동맹을 성사시키다
- #2. 백제의 결사대 5천 명이 황산벌에서 패하다
- #3. 연개소문이 죽고 내분이 일어나다
- #4. (가)
- #5. 신라 수군이 기벌포에서 승리하다
계획안은 나당 군사 동맹, 황산벌 전투(660), 연개소문 사후의 고구려 내분, 기벌포 전투(676)까지 삼국 통일 과정을 발생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다. 따라서 (가)에는 고구려 멸망(668) 이후이면서 기벌포 전투 이전의 일이 들어가야 하는데, 문무왕이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끌던 안승을 보덕국왕으로 책봉한 것이 674년이다. 살수 대첩, 개로왕의 북위 국서, 백강 전투, 흑치상지의 항복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사건이다.

당에 가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영주 부석사를 창건하였으며 선묘 낭자 설화가 전하는 승려는 의상이다. 의상은 화엄 사상을 정리하는 한편, 현세의 고난에서 구제받기를 비는 관음 신앙을 강조하여 낙산사 등 관음 도량을 열었다. 황룡사 구층 목탑 건립 건의는 자장, 무애가는 원효, 해심밀경소는 원측, 해동고승전은 각훈의 활동이다.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경주 이견대에서 감은사를 완공하고 검은 옥대와 만파식적의 재료가 된 대나무를 얻었다는 설화의 주인공은 신문왕이다. 신문왕은 문무 관료에게 관료전을 지급하고 귀족의 경제 기반이던 녹읍을 폐지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삼대목 편찬은 진성여왕, 위화부 창설은 진평왕, 건원 연호는 법흥왕, 동시전 설치는 지증왕 때의 일이다.
이찬 김지정이 반역하여 무리를 모아 궁궐을 에워싸고 침범하였다. 여름 4월에 상대등 김양상이 이찬 경신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김지정 등을 죽였으나, 왕과 왕비는 반란군에게 살해되었다. 양상 등이 왕의 시호를 혜공왕이라 하였다.
- 『삼국사기』 -
이찬 김지정의 반란과 김양상·김경신의 진압, 혜공왕의 피살을 전하는 자료로 780년의 상황이다. 이후 신라에서는 왕위 쟁탈전이 이어졌고,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는 뒷날 신무왕의 즉위를 돕는 등 왕위 다툼에 직접 가담하였다. 김흠돌의 난, 우산국 복속, 불국사 조성, 거칠부의 국사 편찬은 모두 혜공왕 피살 이전의 일이다.
이 글은 양태사가 지은 ‘밤에 다듬이 소리를 듣고’라는 한시로, 정효 공주 묘지(墓誌) 등과 함께 (가) 의 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시에는 문왕 때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그가 다듬이 소리를 듣고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서리 기운 가득한 하늘에 달빛 비치니 은하수도 밝은데
나그네 돌아갈 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네
홀로 앉아 지새는 긴긴 밤 근심에 젖어 마음 아픈데
홀연히 들리누나 이웃집 아낙네 다듬이질 소리
바람결에 그 소리 끊기는 듯 이어지는 듯
밤 깊어 별빛 기우는데 잠시도 쉬지 않네
나라 떠나온 뒤로 아무 소리 듣지 못하더니
이제 타향에서 고향 소리 듣는구나
⋮
양태사의 한시와 정효 공주 묘지, 문왕 때 일본에 파견된 사신이라는 단서에서 (가)는 발해임을 알 수 있다. 발해는 최고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두어 귀족 자제에게 유학을 가르쳤다. 골품제와 독서삼품과는 신라, 정사암 회의는 백제, 청연각·보문각은 고려 예종 때의 것이다.
파진찬 신덕, 영순 등이 신검에게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사람을 보내 금강을 죽이도록 권하였다. 신검이 대왕을 자칭하고 국내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교서에서 이르기를, “ …… 왕위를 어리석은 아이에게 줄 뻔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제께서 진정한 마음을 내리시니 군자들이 허물을 고쳤고 맏아들인 나에게 명하여 이 한 나라를 다스리게 하셨다는 점이다. …… ”라고 하였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고 왕위에 올라 대사면령을 내린 935년의 상황이다. 금산사를 탈출한 견훤이 고려에 귀부한 뒤, 왕건은 936년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의 후백제군을 격파하고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궁예의 광평성 설치, 장문휴의 등주 공격, 공산 전투, 김헌창의 난은 모두 이보다 앞선 일이다.
[한국사 묻고 답하기 (조회 수: 123)]
질문: 고려 시대 연호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고려는 중국의 연호를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과 다른 연호를 쓴 사례가 있나요?
답변
- 태조가 고려를 건국한 후 천수라는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 (가) 이/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광덕, 준풍이라는 연호를 제정하고, 개경을 황도라 칭하기도 하였습니다.
광덕·준풍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쓰고 개경을 황도라 부른 왕은 고려 광종이다. 광종은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도입하고 노비안검법을 실시하는 등 호족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흑창 설치는 태조, 전시과 시행은 경종, 12목에 지방관 파견은 성종, 삼국사기 편찬 명령은 인종 때의 일이다.
<역사 연극 시나리오 구상>
제목: (가) 의 험난한 피란길
○학년 ○반 ○모둠
- 장면1: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한 거란군이 서경까지 이르자 강감찬이 왕에게 남쪽으로 피란할 것을 권유한다.
- 장면2: 왕이 개경을 떠나 전라도 삼례에 이르는 동안 호위군이 도망가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다.
- 장면3: 나주에 도착한 왕은 강화가 성립되어 거란군이 물러간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한다.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삼은 거란의 2차 침입 때 개경을 떠나 나주까지 피란한 왕은 현종이다. 현종 대에는 거란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초조대장경 조판이 시작되었다. 만부교 사건은 태조, 저고여 피살은 고종, 망이·망소이의 봉기는 명종, 전민변정 사업은 공민왕 때의 일이다.

이의민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았으며 명종의 폐위와 신종의 즉위에 관여한 인물은 최충헌이다.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정별감이 되어 국가의 중요한 사무를 처리하며 권력을 행사하였다. 정방 폐지는 공민왕, 진도에서의 대몽 항쟁은 배중손, 화통도감 설치 건의는 최무선, 훈요 10조는 태조 왕건과 관련된 내용이다.
- (가) 윤관이 포로 346구와 말 96필, 소 300여 마리를 바쳤다. 의주와 통태진·평융진에 성을 쌓고, 함주·영주·웅주·길주·복주, 공험진과 함께 북계 9성이라 하였다.
- (나) 그해 12월 16일에 처인부곡의 작은 성에서 적과 싸우던 중 화살로 적의 괴수인 살리타를 쏘아 죽였습니다. 사로잡은 자들이 많았으며 나머지 무리는 무너져 흩어졌습니다.
(가)는 윤관이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은 1107년, (나)는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살리타를 사살한 몽골의 2차 침입(1232) 때의 일이다. 두 시기 사이인 1135년 묘청 등 서경 세력은 칭제 건원과 금 정벌을 주장하며 서경 천도 운동을 일으켰다. 광군 조직, 강동 6주 획득, 천리장성 축조는 (가) 이전이고 이제현의 만권당 활동은 (나) 이후의 일이다.
시중 김방경과 대장군 인공수를 [상국(上國)에] 파견하여 표문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근래 역적을 소탕하는 대군에 군량을 공급하는 일로 이미 해마다 백성에게서 양식을 거두어들였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벌에 필요한 전함을 건조하는 데 장정들이 모두 징발되었고 노약자들만 겨우 밭 갈고 씨 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방경 등을 보내 표문을 올리며 일본 정벌용 전함 건조와 군량 부담의 고통을 호소한 자료로, 원이 일본 원정을 준비하던 원 간섭기의 상황이다. 원은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하였고 원정이 실패한 뒤에도 이를 존치하여 내정 간섭 기구로 삼았다. 삼전도비는 병자호란, 사심관 제도는 고려 태조, 조위총의 난은 무신 집권기, 권수정혜결사문은 지눌과 관련된 것이다.
이것은 이색의 목은집에 실린 시의 일부입니다. 그는 관촉사에서 열린 법회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보았던 불상을 떠올리며 이 시를 지었습니다.
한산의 동쪽으로 백여 리쯤 되는 곳에
은진현이라 그 안에 관족사*가 있다네
여기엔 크나큰 석상 미륵존이 있으니
내 나간다 나간다며 땅속에서 솟았다네
⋮
*관족사: 현재의 관촉사





이색의 목은집에 실린 시에서 은진현 관촉사에 있는 크나큰 석상 미륵존이라고 한 불상은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정답으로 제시된 사진이 바로 이 불상으로, 은진미륵이라 불리며 커다란 사각형 보개를 얹은 머리와 신체 비례를 무시한 거대한 규모가 특징인 고려 시대의 대표적 석불이다.
(가) 입학 자격 공고
- 1. 국자학생은 문·무관 3품 이상인 자의 아들과 손자 및 훈관 2품으로 현공 이상을 지닌 자의 아들, 아울러 경관 4품으로 3품 이상의 훈봉을 지닌 자의 아들로 한다.
- 2. 태학생은 문·무관 5품 이상인 자의 아들과 손자, 정·종 3품관의 증손자 및 훈관 3품 이상의 봉작이 있는 자의 아들로 한다.
- 3. 사문학생은 훈관 3품 이상으로서 봉작이 없는 자의 아들, 4품으로서 봉작이 있는 자 및 문·무관 7품 이상인 자의 아들로 한다.
국자학·태학·사문학의 입학 자격을 아버지의 관품에 따라 나눈 공고이므로 (가)는 고려의 국립 교육 기관인 국자감이다. 예종은 국자감을 정비하면서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두어 학생들의 학비와 운영 경비를 뒷받침하였다. 문헌공도는 최충이 세운 사학, 교수·훈도 파견과 부·목·군·현 설치는 조선의 향교, 사가독서제는 조선 집현전 학자들과 관련된 설명이다.
[역사 돋보기] 왕실과의 혼인을 통한 이자겸의 출세
음서로 관직에 진출한 이자겸은 1108년 둘째 딸이 예종의 비가 되면서 빠른 속도로 출세하였다.
1109년 ㉠추밀원(중추원) 부사, 1111년 ㉡어사대의 대부가 된다. 1113년에는 ㉢상서성의 좌복야에 임명되었고, 1118년 재신으로서 판이부사를 맡았으며, 1122년 ㉣중서문하성 중서령에 오른다.
<보 기>
- ㄱ. ㉠ -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다.
- ㄴ. ㉡ - 소속 관원이 낭사와 함께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 ㄷ. ㉢ - 화폐·곡식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하였다.
- ㄹ. ㉣ -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
이자겸의 관직 이력에 나오는 ㉠은 중추원(추밀원), ㉡은 어사대, ㉢은 상서성, ㉣은 중서문하성이다. 중추원은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맡았고, 어사대의 관원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함께 대간을 이루어 서경·간쟁·봉박의 권한을 행사하였다. 화폐와 곡식의 출납·회계를 맡은 기구는 삼사이며, 원 간섭기에 도평의사사로 개편된 것은 도병마사이다.
명 황제가 말하기를, “철령을 따라 이어진 북쪽과 동쪽과 서쪽은 원래 개원로(開元路)*가 관할하던 군민(軍民)이 속하던 곳이니, 한인·여진인·달달인·고려인을 그대로 요동에 소속시켜라.”라고 하였다. …… 왕은 최영과 함께 요동을 공격하기로 계책을 결정하였으나, 감히 드러내어 말하지 못하고 사냥 간다는 핑계를 대고 서쪽으로 해주에 행차하였다.
*개원로(開元路): 원이 설치한 행정 구역
| 1351 공민왕 즉위 | (가) | 1359 홍건적 침입 | (나) | 1380 황산 대첩 | (다) | 1391 과전법 실시 | (라) | 1394 한양 천도 | (마) | 1400 태종 즉위 |
명이 철령 이북을 요동에 귀속시키겠다고 통보하자 우왕이 최영과 함께 요동 정벌을 결정한 1388년의 상황이다. 이 시기는 황산 대첩(1380)과 과전법 실시(1391) 사이에 해당한다. 요동 정벌군을 이끌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대개 이미 지나간 나라의 흥망은 장래의 교훈이 되기 때문에 이 역사서를 편찬하여 올리는 바입니다. …… 범례는 사마천의 『사기』를 따르고, 대의(大義)는 모두 왕께 아뢰어 재가를 얻었습니다. 본기(本紀)라는 이름을 피하고 세가(世家)라고 한 것은 명분의 중요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가짜 왕인 신씨들[신우, 신창]을 세가에 넣지 않고 열전으로 내린 것은 그들이 왕위를 도둑질한 사실을 엄히 논죄하려는 것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체제를 따르되 본기 대신 세가를 쓰고 우왕·창왕을 신씨로 보아 열전에 넣었다고 밝힌 진 표문으로, 밑줄 그은 역사서는 조선 초에 완성된 고려사이다. 고려사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려는 입장에서 고려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관찬 사서이다. 발해사를 체계화한 발해고, 서사시 동명왕편, 불교사와 설화를 담은 삼국유사, 편년체 통사인 동국통감은 모두 다른 책이다.
우부승지 김종직이 아뢰기를, “고려 태조는 여러 고을에 영을 내려 공변되고 청렴한 선비를 뽑아서 향리들의 불법을 규찰하게 하였으므로 간사한 향리가 저절로 없어져 5백 년간 풍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정에서는 이시애의 난 이후 (가) 이/가 혁파되자 간악한 향리들이 불의를 자행하여서 건국한 지 1백 년도 못 되어 풍속이 쇠퇴해졌습니다. …… 청컨대 (가) 을/를 다시 설립하여 향풍(鄕風)을 규찰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 『성종실록』 -
김종직이 이시애의 난 이후 혁파된 기구를 다시 세워 향풍을 규찰하게 하자고 건의한 성종실록 기사이므로 (가)는 유향소이다. 유향소는 지방 사족이 조직한 향촌 자치 기구로 좌수와 별감을 뽑아 운영하며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하였다. 조광조의 건의로 폐지된 것은 소격서, 백운동 서원을 처음 세운 이는 주세붕, 대사성 이하의 관직을 둔 곳은 성균관, 매향 활동을 주관한 것은 향도이다.

1383년에 태어나 호가 절재이고 세종 때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지냈으며 고려사절요를 찬술하고 계유정난 때 살해된 인물은 김종서이다. 김종서는 세종의 명을 받아 두만강 방면의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개척하였다. 불씨잡변은 정도전, 위훈 삭제 주장은 조광조, 쓰시마섬 정벌은 이종무, 대동법 확대 실시 건의는 김육의 활동이다.
- 만상 임상옥이 인삼 무역으로 큰 수익을 거두었다고 하네.
- 그러게. 중국 상인들이 연행사를 따라오는 상인들에게 인삼을 대량으로 구매하려고 인삼국을 차렸다는군.
만상 임상옥의 인삼 무역과 연행사를 따라간 상인들의 활동을 소재로 한 대화로 조선 후기의 상황이다. 조선 후기에는 담배 같은 상품 작물 재배, 관청에 물품을 대는 공인, 중인들의 시사 조직, 장시의 판소리 공연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솔빈부는 발해의 지방 행정 구역이자 말의 특산지였으므로 조선 후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역사 신문 제△△호 ○○○○년 ○○월 ○○일
조·명 연합군, 평양성 탈환
평안도 도체찰사 류성룡, 도원수 김명원이 이끄는 관군이 명 제독 이여송 부대에 합세하여 평양성을 되찾았다. 이번 전투에서 아군의 불랑기포를 비롯한 화포가 위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은 크게 패하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 전투의 승리는 향후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된다.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되찾은 사실을 보도한 기사로 1593년 1월의 일이다. 평양성 탈환 이후 조선군은 여세를 몰아 남하하였고, 같은 해 2월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의 대공세를 막아 크게 승리하였다. 동래성 항전, 한산도 대첩, 탄금대 전투는 모두 1592년의 일이고 최윤덕의 올라산성 정벌은 세종 때의 여진 정벌이다.
[홀로그램으로 만나는 역사 인물]
오늘은 실학자 두 분을 모시고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들어 보겠습니다.
- (가): 북학의를 저술한 저는 청의 문물 도입과 소비 촉진을 통한 생산력 증대를 주장하였습니다.
- (나): 저는 경세유표를 저술하여 국가 제도의 개혁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북학의를 지어 청의 문물 도입과 소비를 통한 생산력 증대를 주장한 (가)는 박제가, 경세유표를 지어 국가 제도의 개혁 방향을 제시한 (나)는 정약용이다. 정약용은 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 소유·경작하고 노동량에 따라 분배하자는 여전론을 제시하였다. 100리 척의 동국지도는 정상기, 곽우록의 한전론은 이익, 의산문답은 홍대용, 강화학파 형성은 정제두와 관련된다.
조선 후기 군사 조직의 정비
- (가) 이괄의 난 이후 수도 외곽의 방어를 위해 총융청을 설치하였다.
- (나) 포수, 살수, 사수의 삼수병 체제로 구성된 훈련도감을 조직하였다.
- (다) 국왕의 호위와 도성 수비 강화를 목적으로 금위영을 창설하였다.
(가) 총융청은 이괄의 난 직후 인조 때, (나)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 선조 때, (다) 금위영은 숙종 때 설치되었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훈련도감 조직, 총융청 설치, 금위영 창설이 된다. 이로써 조선 후기의 중앙군은 5군영 체제로 정비되었다.

화성능행도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 다녀오는 행차를 그린 그림이므로 (가)는 정조이다. 정조는 젊은 문신을 재교육하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여 개혁을 뒷받침할 인재를 길렀다. 자의 대비의 복상 예송은 현종, 만동묘 설치는 숙종, 탕평비 건립은 영조, 비변사 혁파는 흥선 대원군 집권기의 일이다.
사학(邪學) 죄인 황사영은 사족으로서 사술(邪術)에 미혹됨이 가장 심한 자였다. [그는] 의금부에서 체포하려는 것을 미리 알고 피신하였는데, 상복을 입고 성명을 바꾸거나 토굴에 숨어서 종적을 감춘 지 반년이 지났다. 포청에서 은밀히 염탐하여 지금에야 제천 땅에서 붙잡았다. 그의 문서를 수색하던 중 백서를 찾았는데, 장차 북경의 천주당에 전하려고 한 것이었다.
| 1728 이인좌의 난 | (가) | 1746 속대전 편찬 | (나) | 1791 신해박해 | (다) | 1811 홍경래의 난 | (라) | 1834 헌종 즉위 | (마) | 1862 임술 농민 봉기 |
황사영이 백서를 북경의 천주당에 보내려다 붙잡힌 사건을 전하는 자료로 신유박해가 일어난 1801년의 상황이다. 이는 신해박해(1791)와 홍경래의 난(1811) 사이에 해당한다. 신유박해로 이승훈·정약종 등이 처형되고 정약용·정약전 등이 유배되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일어났고 이후 전국에 척화비가 세워지는 계기가 된 (가)는 1871년의 신미양요이다. 미군이 강화도를 침략하자 어재연이 이끄는 조선군은 광성보에서 결사 항전하였다. 청군의 개입으로 끝난 것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병인양요, 안핵사 박규수 파견은 임술 농민 봉기와 관련된 사실이다.
- (가) 제4조 …… 조선 상인이 북경에서 규정에 따라 교역하고, 중국 상인이 조선의 양화진과 서울에 들어가 영업소를 개설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종 화물을 내지로 운반하여 상점을 차리고 파는 것을 허가하지 않는다. ……
- (나) 제37관 조선국에서 가뭄과 홍수, 전쟁 등의 일로 국내에 양식이 부족할 것을 우려하여 일시 쌀 수출을 금지하려고 할 때에는 1개월 전에 지방관이 일본 영사관에 통지하고, 미리 그 기간을 항구에 있는 일본 상인들에게 전달하여 일률적으로 준수하는 데 편리하게 한다.
(가)는 청 상인의 서울·양화진 개점과 내지 통상을 규정한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1882), (나)는 방곡령을 시행할 때 1개월 전에 통고하도록 한 조·일 통상 장정(1883)이다. 조·일 통상 장정에는 일본에 최혜국 대우를 인정하는 조항이 들어 있어 다른 나라에 준 특권이 일본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통감부 설치는 을사늑약, 일본 공사관의 경비병 주둔은 제물포 조약에서 정해졌고 두 장정은 임오군란 직후에 맺어진 것이다.

1883년 박문국에서 창간되어 세계 정세를 폭넓게 전하고 정부의 개화 정책을 홍보한 신문은 한성순보이다. 한성순보는 순 한문으로 발행되었고 이름 그대로 열흘에 한 번 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여권통문을 처음 보도한 것은 황성신문이고, 국채 보상 운동의 확산에 기여하며 의병에 우호적인 기사를 싣고 영문판도 낸 것은 대한매일신보이다.
[속보] 전주 화약 체결
지난달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 농민군이 마침내 정부와 화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농민군은 곧 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 개혁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주성을 점령한 동학 농민군이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고 집강소를 중심으로 폐정 개혁에 나서던 1894년의 상황이다. 이후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청·일 전쟁을 일으키자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였고,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논산에서 연합하여 서울로 북상하였다. 황룡촌 전투, 보은 집회, 안핵사 이용태 파견, 고부 관아 습격은 모두 전주 화약 이전의 일이다.
주제: 근대 교육 기관
- 이 학교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관립 교육 기관이야.
- 젊은 관리가 소속된 좌원과 명문가의 지제를 선발한 우원으로 구성되었어.
- 주요 과목으로 영어, 산학, 지리 등이 있었어.
신학문을 가르치는 관립 학교로 현직 관리가 다니는 좌원과 양반 자제가 다니는 우원을 두고 영어·산학·지리 등을 가르친 곳은 1886년에 세워진 육영 공원이다. 육영 공원에는 헐버트, 길모어, 벙커 등 미국인 교사가 초빙되어 영어를 비롯한 근대 학문을 가르쳤다. 7재는 고려 국자감, 대성전과 명륜당은 성균관과 향교, 교육 입국 조서에 근거해 세워진 것은 한성 사범 학교 등이다.

초대 주미 공사로 파견되어 미국 대통령에게 고종의 국서를 전하고 귀국한 뒤 미속습유를 쓴 인물은 박정양이다. 그는 독립 협회가 관민 공동회에서 제시한 건의를 받아들여 중추원을 의회식으로 개편하는 관제 개편을 추진하였다. 흥사단 창립은 안창호, 조선책략 반입은 김홍집, 오산 학교 설립은 이승훈, 국문 연구소 활동은 주시경·지석영 등과 관련된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뒤 구본신참에 입각해 추진한 정책, 곧 광무개혁을 주제로 한 강좌 안내이다. 대한국 국제 반포와 지계 발급이 함께 제시되어 있으므로 (가)에도 광무개혁의 내용이 들어가야 하며, 원수부를 창설해 황제가 군 통수권을 직접 장악한 것이 이에 해당한다. 동문학 설립과 통리기무아문 설치는 개항 직후, 홍범 14조 반포와 23부 개편은 갑오·을미개혁 때의 일이다.
- (가) 두 달 전 체결된 협약에 따라 메가타가 탁지부의 재정 고문으로 온다는군. / 일본이 우리 정부의 재정권을 침해하려는 의도인 것 같네.
- (나) 지난달 군대를 해산한다는 조칙이 발표된 이후 군인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다는군. / 들었네. 일부는 의병에 합류하여 일본에 저항하는 활동을 전개한다고 하네.
(가)는 제1차 한일 협약에 따라 메가타가 재정 고문으로 부임하던 1904년, (나)는 군대 해산 조칙이 내려진 뒤 해산 군인이 의병에 합류하던 1907년 8월 이후의 상황이다. 두 시기 사이인 1907년 6월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기유각서,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 데라우치 총독 부임은 뒤의 일이고 황국 중앙 총상회 조직은 앞선 시기의 일이다.
판결문
피고: 오복영 외 1인
주문: 피고 두 명을 각 징역 7년에 처한다.
이유
제1. 피고 오복영은 이전부터 조선 독립을 희망하고 있었다.
- 1. 대정 11년(1922) 11월 중 김상옥, 안홍한 등이 조선 독립자금 강탈을 목적으로 권총, 불온문서 등을 가지고 조선에 오는 것을 알고 천진에서 여비 40원을 조달함으로써 동인 등으로 하여금 조선으로 들어오게 하고
- 2. 대정 12년(1923) 8월 초순 (가) 단원으로 활약할 목적으로 피고 이영주의 권유에 의해 동 단에 가입하고
- 3. 이어서 피고 이영주와 함께 (가) 단장 김원봉 및 단원 유우근의 지휘 하에 피고 두 명은 조선 내 관리를 암살하고 주요 관아, 공서를 폭파함으로 민심의 동요를 초래하고 ……
단장이 김원봉이고 조선 내 관리 암살과 주요 관아 폭파를 목표로 삼았으며 김상옥이 단원으로 등장하는 판결문이므로 (가)는 의열단이다. 의열단원 나석주는 1926년 식민지 수탈 기관인 동양 척식 주식회사와 조선 식산 은행에 폭탄을 던졌다. 황무지 개간권 요구 저지는 보안회, 105인 사건은 신민회, 국권 반환 요구서는 독립 의군부, 이륭양행의 교통국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관련된다.

1929년 11월 광주에서 한일 학생 간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어 전국의 동맹 휴학으로 번진 이 운동은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다. 학생들은 식민지 차별 교육에 반발하며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 확립 등을 요구하였고, 신간회는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고 민중 대회를 계획하며 이를 지원하였다. 대한매일신보의 후원을 받은 것은 국채 보상 운동이고 이른바 문화 통치의 배경이 된 것은 3·1 운동이다.
대전자령은 태평령이라고도 하는데, 일본군이 서남부의 왕칭현 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지점이었다. 대전자령의 양쪽은 험준한 절벽과 울창한 산림 지대로 되어 있어 적을 공격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이 전투에 (가) 의 주력 부대 500여 명, 차이시잉(柴世榮)이 거느리는 중국 의용군인 길림구국군 2,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 한중 연합군은 계곡 양편 산기슭에 구축되어 있는 참호 속에 미리 매복·대기하여 일본군 습격 준비를 마쳤다.
- 『청천장군의 혁명투쟁사』 -
지청천의 활동을 기록한 『청천장군의 혁명투쟁사』에 실린 대전자령 전투 자료로, 중국 의용군인 길림구국군과 연합해 싸운 (가)는 한국 독립군이다. 한국 독립군은 한국 독립당의 군사 조직으로 북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며 쌍성보·사도하자·대전자령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인도·미얀마 전선 투입은 한국광복군, 자유시 이동은 대한 독립 군단,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 청산리에서 홍범도 부대와 연합한 것은 북로 군정서이다.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사]
“이제 곧 창씨개명이 문제가 아닌 날이 닥칠 겁니다. 그때는 사느냐 죽느냐, 이 문제가 턱에 걸려서 아무것도 뵈지 않을걸요. 아 왜 거년(去年) 칠월에 국가총동원법 제4조라고 허면서, 국민 징용령이 안 떨어졌습니까? 일본 본토는 그렇다 치고, 조선, 대만, 사할린, 남양 군도에까지 그 징용령이 시행되고 있는 판에, 징병령인들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지원병 제도는 장차 징병 문제를 결정하려는 시험으로 해 보는 것이라고 허드구만요.”
이기채는 가슴이 까닭 없이 덜컥, 내려앉는다.
- 『혼불』 -
[해설] 이 작품에는 일제가 국가 총동원법을 제정하고 노동력 수탈을 위해 국민 징용령 등을 시행하던 이 시기 우리 민족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창씨개명과 국가 총동원법, 국민 징용령, 지원병 제도가 언급된 소설 혼불의 한 대목으로, 밑줄 그은 시기는 1930년대 후반 이후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일제는 이 시기 황국 신민 서사를 만들어 학교와 직장에서 암송하도록 강요하였다. 조선 태형령과 헌병 경찰 제도는 1910년대, 경성 제국 대학 설립과 조선 농민 총동맹 조직은 1920년대의 일이다.

동학을 계승한 종교이며 방정환 등이 잡지 『어린이』를 펴냈다는 점에서 (가)는 천도교이다. 천도교는 1906년 기관지 만세보를 발행하여 민중 계몽과 국권 회복에 앞장섰다. 사찰령 폐지 주장은 불교, 새생활 운동은 원불교, 배재 학당 설립은 개신교, 의민단 조직은 천주교와 관련된다.
[○○○ 한국 근대사 강의실 - 과제 제출방]
■ 조별 과제 안내
일제 강점기에 민족 문화를 수호하고자 노력한 인물의 활동을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제목과 함께 게시판에 올려주세요.
| 번호 | 제 목 |
|---|---|
| 1 | 1조 - 이윤재,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에 참여하다 |
| 2 | 2조 - 최현배, 조선어 연구회 회원으로 한글을 연구하다 |
| 3 | 3조 - 신채호, 고대사 연구에 주력하여 조선사를 연재하다 |
| 4 | 4조 - (가) |
일제 강점기에 민족 문화를 지키려 한 인물들의 활동을 정리한 과제 목록이므로 (가)에도 같은 성격의 활동이 들어가야 한다. 정인보는 민족의 얼을 강조하며 안재홍·문일평 등과 함께 여유당전서 간행을 계기로 조선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 유길준의 서유견문, 최익현의 지부복궐척화의소, 신헌의 심행일기는 모두 일제 강점기 이전의 활동이다.

1923년 지진 당시 조선인이 불을 질렀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자경단 등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된 곳은 일본의 간토(관동) 지역이다. 이 지역의 중심인 도쿄에서는 1919년 유학생들이 조선 청년 독립단을 조직하고 2·8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경학사와 서전서숙은 만주, 대조선 국민 군단은 하와이, 대한 광복군 정부는 연해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호가 몽양이고 1918년 중국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하였으며 광복 후 좌우 합작 운동을 추진하다 1947년 세상을 떠난 인물은 여운형이다. 여운형은 1944년 국내에서 비밀리에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여 광복에 대비하였고, 이는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로 이어졌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박은식, 권업회 초대 회장은 최재형, 대한 광복회는 박상진, 백산 상회는 안희제와 관련된다.
[헌법 이야기] 헌법 개정의 역사
제헌헌법 · 제1차개정 · 제2차개정 · 제3차개정 · 제4차개정 · 제5차개정 · 제6차개정 · 제7차개정 · 제8차개정 · 제9차개정
제2차 개정 배경
1954년 실시된 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여당인 자유당은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헌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 국회 표결에서 재적 의원 203명 중 135명이 찬성하여 부결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 자유당은 야당 의원들이 총퇴장한 상황에서 사사오입의 논리를 내세워 부결 선언을 취소하고 의사록을 수정하여 개헌안 가결을 선포하였다.
1954년 자유당이 재적 203명 중 135명 찬성으로 부결된 개헌안을 사사오입 논리로 가결 선포한 제2차 개헌, 곧 사사오입 개헌에 관한 자료이다. 이 개헌으로 개헌 당시의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없애 이승만의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대통령 선출과 대통령의 국회의원 3분의 1 추천은 유신 헌법, 5년 단임 직선제는 1987년의 개헌 내용이다.
스스로 탐구하는 역사 수업
우리 역사에서 사용된 화폐를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한 후 제목과 함께 올려주세요.
× 과제 마감일은 10월 21일입니다.
| 번호 | 제 목 |
|---|---|
| 1 | 1모둠 - 명도전, (가) |
| 2 | 2모둠 - 해동통보, (나) |
| 3 | 3모둠 - 은병, (다) |
| 4 | 4모둠 - 상평통보, (라) |
| 5 | 5모둠 - 백동화, (마) |
명도전은 중국 연과의 교류를, 해동통보는 고려 숙종 때 의천의 건의로 화폐가 주조된 사실을, 상평통보는 조선 후기 법화로서 전국에 유통된 사실을, 백동화는 전환국의 화폐 발행을 각각 보여 준다. 그러나 은병은 고려 숙종 때 만든 고액 은화로 우리나라 지형을 본떠 만든 화폐이며, 경복궁 중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 화폐는 흥선 대원군 때의 당백전이다.
- (가) 만적 등 6명이 북산에서 나무하다가 공사 노비를 불러 모아 모의하기를, "국가에서 경인년·계사년 이후로 높은 벼슬이 천한 노비에게서 많이 나왔으니, 장수와 재상이 어찌 종자가 있으랴. …… 그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워 삼한에서 천인을 없애면 모두 공경 장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나) 왕 7년, 노비를 안검하여 그 시비를 분별하도록 명하자, 노비로 주인을 배반한 자가 매우 많아지고 윗사람을 능멸하는 풍조가 크게 행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고 원망하였다. 대목왕후가 이를 간절히 간언하였으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다) 1. 문벌, 양반과 상인들의 등급을 없애고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한다.
1. 과부가 재가하는 것은 귀천을 막론하고 자신의 의사대로 하게 한다.
1. 공노비와 사노비에 관한 법을 일체 혁파하고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금지한다. - (라) "임금이 백성을 대할 때는 귀천이 없고 내외 없이 고루 균등하게 적자(赤子)로 여겨야 하는데, 노(奴)와 비(婢)라고 하여 구분하는 것이 어찌 똑같이 동포로 여기는 뜻이겠는가. 내노비 36,974명과 시노비 29,093명을 모두 양민으로 삼도록 하라. 그리고 승정원으로 하여금 노비 문서를 거두어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도록 하라."
<보 기>
- ㄱ. (가) - 무신 집권기에 발생한 하층민의 봉기에 대해 알아본다.
- ㄴ. (나) -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킨 제도를 살펴본다.
- ㄷ. (다) - 균역법이 시행되는 배경을 파악한다.
- ㄹ. (라) -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계기를 조사한다.
- (가) 만적 등 6명이 북산에서 나무하다가 공사 노비를 불러 모아 모의하기를, "국가에서 경인년·계사년 이후로 높은 벼슬이 천한 노비에게서 많이 나왔으니, 장수와 재상이 어찌 종자가 있으랴. …… 그 주인을 죽이고 노비 문서를 불태워 삼한에서 천인을 없애면 모두 공경 장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나) 왕 7년, 노비를 안검하여 그 시비를 분별하도록 명하자, 노비로 주인을 배반한 자가 매우 많아지고 윗사람을 능멸하는 풍조가 크게 행해졌다. 사람들이 모두 탄식하고 원망하였다. 대목왕후가 이를 간절히 간언하였으나 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 (다) 1. 문벌, 양반과 상인들의 등급을 없애고 귀천에 관계없이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한다.
1. 과부가 재가하는 것은 귀천을 막론하고 자신의 의사대로 하게 한다.
1. 공노비와 사노비에 관한 법을 일체 혁파하고 사람을 사고파는 일을 금지한다. - (라) "임금이 백성을 대할 때는 귀천이 없고 내외 없이 고루 균등하게 적자(赤子)로 여겨야 하는데, 노(奴)와 비(婢)라고 하여 구분하는 것이 어찌 똑같이 동포로 여기는 뜻이겠는가. 내노비 36,974명과 시노비 29,093명을 모두 양민으로 삼도록 하라. 그리고 승정원으로 하여금 노비 문서를 거두어 돈화문 밖에서 불태우도록 하라."
(가)는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개경 북산에서 노비들을 모아 신분 해방을 도모한 사건으로, 무신 집권기 하층민 봉기를 탐구하는 자료가 된다. (나)는 광종이 시행한 노비안검법으로, 불법으로 노비가 된 이들을 양인으로 되돌려 호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한 제도이다. (다)는 신분 구분과 공사 노비법 혁파, 과부 재가 허용을 담은 갑오개혁의 개혁안이고, (라)는 내노비와 시노비를 양민으로 삼고 노비 문서를 불태우게 한 순조 대의 공노비 해방 조치이다. 따라서 (다)는 균역법의 배경과, (라)는 삼정의 문란을 수습하기 위한 삼정이정청 설치와 시기·성격이 맞지 않는다.

전국 민주 청년 학생 총연맹 사건,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유신 체제 아래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 탄압 사건이므로 (가)는 박정희 정부이다. 1976년에는 재야 인사들이 명동 성당에 모여 유신 철폐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3·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경향신문 폐간은 이승만 정부, 대통령 하야는 4·19 혁명, 강경대의 희생은 노태우 정부, 4·13 호헌 조치는 전두환 정부 때의 일이다.
진작부터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습니다. 참여 정부 와서 첫 삽을 떴기 때문에 …… 지금 개성 공단이 매출액의 증가 속도, 그리고 근로자의 증가 속도 같은 것이 눈부시지요. …… 경제적으로 공단이 성공하고, 그것이 남북 관계에서 평화에 대한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거든요. 또 함께 번영해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선순환 되면 앞으로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연단 표지] 환영 개성 공단 방문
참여 정부에서 첫 삽을 떴다며 개성 공단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연설이므로 노무현 정부 시기의 일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 회담을 열어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 곧 10·4 남북 정상 선언을 발표하였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7·7 선언은 노태우 정부, 이산가족 고향 방문단의 최초 교환은 전두환 정부, 남북 조절 위원회 구성은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