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0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70회

자료의 (가)는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이며, 퀴즈에서 정답으로 표시된 유물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비파형 동검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동굴이나 막집 생활은 구석기, 가락바퀴와 뼈바늘은 신석기, 철제 무기를 앞세운 정복 활동과 오수전·화천 같은 중국 화폐 사용은 철기 시대의 모습이다.
[학습 내용 정리]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한 여러 나라〉
1. 경제 활동
| 나라 | 사료에 나타난 특징 |
| 부여 | 관직명에 가축 이름 사용, 명마·담비 가죽 생산 |
| (가) | 삼베·명주 생산, 특산물: 단궁·과하마·반어피 |
| 삼한 | 벼농사 발달, 철이 많아 낙랑·왜에 수출 |
(가)는 삼베와 명주를 생산하고 단궁·과하마·반어피를 특산물로 삼았던 동예이다. 동예는 해마다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족외혼과 책화의 풍습이 있었다. 민며느리제는 옥저, 신지·읍차는 삼한, 사출도는 부여, 제가 회의는 고구려의 특징이다.
왕이 문주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어리석고 밝지 못하여 간사한 사람[도림]의 말을 믿어 이 지경이 되었다. …… 나는 마땅히 사직에서 죽겠지만, 네가 이곳에서 함께 죽는 것은 이로울 게 없다. 어찌 난을 피하여 나라의 계통을 잇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 고구려의 대로 제우·재증걸루·고이만년 등이 북성을 공격하여 7일 만에 빼앗았다. 이동하여 남성을 공격하니 성 안 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왕이 성을 나와 도망하자, 고구려 장수 재증걸루 등이 왕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한 다음에 그 얼굴을 향해 세 번 침을 뱉고는 죄를 나열한 다음 포박하여 아차성 아래로 보내 죽였다.
제시된 자료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백제 개로왕이 아차성 아래에서 죽임을 당한 475년의 사건이다. 이 패전으로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였고, 이후 동성왕은 신라와 혼인 동맹을 맺어 나제 동맹을 강화하며 고구려에 맞섰다. 고구려의 평양 천도와 백제의 북위 국서 발송, 고국원왕의 전사, 신라의 고구려 청병은 모두 이 사건 이전의 일이다.
[인터넷 게시판 화면]
스스로 탐구하는 역사 수업
고구려 제17대 왕으로 즉위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한 (가) 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올려 주세요.
| 정치 | 외교 | 사회 |
| 율령을 반포하였어요. | 전진에 사신을 파견하여 교류하였어요. |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였어요. |
(가)는 율령을 반포하고 태학을 설립하였으며 전진에 사신을 보낸 고구려 제17대 소수림왕이다. 소수림왕은 전진에서 온 승려 순도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여 사상적 통합을 꾀하였다. 낙랑군 축출은 미천왕, 영락 연호는 광개토 대왕, 살수 대첩은 영양왕, 신집 5권 편찬 역시 영양왕 때의 일이다.

강연자가 제시한 강서대묘의 사신도와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은 신선 사상을 바탕으로 불로장생을 추구한 도교가 표현된 문화유산이다. 도교와 관련된 사실로는 고구려 말 연개소문이 불교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당에 도사 파견을 요청한 일을 들 수 있다. 간경도감의 경전 간행과 9산 선문 개창은 불교, 사서집주 채택과 임신서기석은 유학과 관련된 사실이다.
[투표 홍보 포스터]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우리 역사상 불교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승려를 가리는 이번 투표에서 여러분들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립니다.
■ 주요 활동
-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등 저술
-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 주장
기호 ○번 (가)
(가)는 『금강삼매경론』과 『대승기신론소』를 저술하고 일심 사상과 화쟁 사상을 주장한 원효이다. 원효는 무애가를 지어 부르며 어려운 교리를 모르는 백성에게도 염불을 권하여 불교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 황룡사 구층 목탑 건의는 자장, 세속 5계는 원광, 화엄일승법계도는 의상의 업적이다.
『신라고기(新羅古記)』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옛 장수 조영의 성은 대씨(大氏)니 남은 군사를 모아 태백산 남쪽에서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가) (이)라고 하였다.” …… 『지장도(指掌圖)』에 보면 “ (가) 은/는 만리장성 동북쪽 모서리 밖에 있다.”라고 하였다.
(가)는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세운 발해이다. 발해는 선왕 때 전성기를 맞아 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제도를 갖추고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9서당 10정과 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 정사암 회의는 백제, 광평성은 후고구려의 제도이다.
[역사 다큐멘터리 기획안]
도당 유학생, 서로 다른 길을 걷다
■ 기획 의도
당에 건너가 유학했던 6두품들이 신라로 돌아온 이후의 행보를 알아본다.
■ 구성 내용
- 1. (가) ,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리다
- 2. 최승우, 견훤의 신하로 왕건에게 보내는 격문을 짓다
- 3. 최언위, 고려에 투항하여 문한관으로 문명을 떨치다
(가)는 당에 유학한 뒤 귀국하여 진성 여왕에게 시무책 10여 조를 올린 6두품 출신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당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격황소서(토황소격문)를 지어 문장가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삼대목은 위홍과 대구화상, 청방인문표는 강수, 해심밀경소는 원측, 화왕계는 설총의 저술이다.
각간 김경신이 해몽을 청하자 아찬 여삼은 “복두를 벗은 것은 위에 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이요, 소립을 쓴 것은 면류관을 쓸 징조이며, 12현금(絃琴)을 든 것은 12대손까지 왕위를 전한다는 조짐이며, 천관사 우물로 들어간 것은 궁궐로 들어갈 상서로운 조짐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에 주원이 있는데 어찌 내가 왕위에 오를 수 있겠소?”라고 경신이 묻자, 아찬이 대답하기를 “청컨대 은밀히 북천신에게 제사 지내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덕왕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김주원을 왕으로 받들어 궁중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주원의 집은 북천 북쪽에 있었는데 홀연히 냇물이 불어나 건널 수가 없었다. 이에 경신이 먼저 궁궐로 들어가 왕위에 올랐다.
| 654 무열왕 즉위 | (가) | 681 김흠돌의 난 | (나) | 722 정전 지급 | (다) | 780 혜공왕 피살 | (라) | 828 청해진 설치 | (마) | 889 원종과 애노의 난 |
제시된 자료는 김주원을 제치고 각간 김경신이 왕위에 오른 신라 원성왕의 즉위 과정(785)을 전하는 기록이다. 연표에서 785년은 혜공왕이 피살된 780년과 청해진이 설치된 828년 사이에 해당한다. 원성왕은 즉위 후 유교 경전의 이해 수준으로 관리를 뽑는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였다.
[한국사 동영상 제작 계획안]
다시 하나로, 민족의 재통일을 이루다
○학년 ○반 ○모둠
■ 제작 의도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주요 인물과 관련된 사건의 발생 순서에 따라 살펴본다.
■ 장면별 구성 내용
- #1. 신숭겸,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다
- #2. 왕건, 고창 전투에서 후백제군을 물리치다
- #3. 견훤, 금산사에서 탈출하여 고려에 귀순하다
- #4. (가)
- #5. 왕건,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에 승리하다
계획안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을 순서대로 배열한 것으로, (가)는 견훤이 고려에 귀순한 935년 6월과 일리천 전투가 벌어진 936년 사이에 들어갈 내용이다. 이 시기에 신라 경순왕 김부가 고려에 나라를 넘겼고, 왕건은 그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아 지방 세력을 통제하였다. 안승의 보덕국왕 책봉, 궁예의 태봉 국호 변경, 윤충의 대야성 함락, 흑치상지의 임존성 부흥 운동은 모두 이보다 앞선 시기의 일이다.

충주 다인철소의 유물과 공주 명학소의 봉기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가)는 특수 행정 구역인 소가 운영되던 고려이다. 고려에서는 경시서의 관리들이 개경 시전의 상행위를 감독하였다. 솔빈부의 말은 발해,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거두는 연분 9등법과 감자·고구마 재배, 설점수세제는 조선의 경제 상황이다.
〈한국사 학술 강좌〉
인물로 보는 고려 불교사
우리 학회에서는 고려 승려들의 활동을 통해 불교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강좌 주제 ■
- 제1강 균여, (가)
- 제2강 의천, (나)
- 제3강 지눌, (다)
- 제4강 요세, (라)
- 제5강 혜심, (마)
- 일시: 2024년 ○○월 ○○일 09:00~17:00
- 장소: □□ 박물관 대강당
- 주최: △△ 학회
강좌는 고려 승려들을 시대순으로 다루고 있으며, (다)는 제3강의 주제이므로 지눌의 활동이 들어가야 한다. 지눌은 권수정혜결사문을 작성하여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쌍수를 강조하였다. 보현십원가는 균여, 교관겸수는 의천, 백련 결사는 요세, 유불 일치설은 혜심의 활동이다.

(가)는 조카 헌종을 몰아내고 즉위하여 남경에 궁궐을 짓고 주전도감을 설치해 해동통보를 발행한 고려 숙종이다. 숙종은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진 정벌을 위한 별무반을 창설하였다. 12목 설치는 성종, 광덕·준풍 연호는 광종, 개경 나성 축조는 현종, 정계와 계백료서는 태조의 일이다.

(가)는 정중부 등이 일으켜 의종을 폐위한 무신 정변(1170)이다. 무신 정권이 들어선 뒤 김보당의 난에 이어 서경유수 조위총이 무신 정권 타도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이 적절한 탐구 활동이다. 정동행성 설치는 원 간섭기, 철령위와 최영의 대응 및 이성계의 성장은 고려 말, 칭제 건원과 금국 정벌 주장은 묘청 세력과 관련된 주제이다.
- (가) 최우가 녹전거(祿轉車) 100여 대를 빼앗아 집안의 재물을 강화도로 옮기니, 수도가 흉흉하였다. …… 또 사자(使者)를 여러 도에 나누어 보내어, 백성을 산성과 섬으로 옮겼다.
- (나) 김방경과 흔도(忻都), 홍차구, 왕희, 왕옹 등이 3군을 거느리고 진도를 토벌하여 크게 격파하고, 승화후 왕온을 죽였다. 김통정이 남은 무리를 이끌고 탐라로 도망하여 들어갔다.
(가)는 최우가 재물을 옮기고 백성을 산성과 섬으로 들여보낸 1232년의 강화 천도이고, (나)는 1271년 여몽 연합군이 진도의 삼별초를 격파한 사실이다. 그 사이인 1232년 몽골의 2차 침입 때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곽주성 탈환과 강조의 정변은 거란 침입기, 이자겸의 난은 그보다 앞선 12세기 초, 진포 대첩은 고려 말의 일이다.
- 당시 응방·겁령구 및 내수(內竪) 등의 천한 자들이 모두 사전(賜田)을 받았는데, 많은 경우는 수백 결에 이르렀다. 일반 백성을 유인하여 전호로 삼고, 가까운 곳에 있는 민전에서는 모두 수조하였으므로 주와 현에서는 부세가 들어올 바가 없게 되었다.
- 공주가 장차 입조(入朝)할 예정이었으므로, 인후와 염승익에게 명하여 양가의 자녀로서 나이가 14~15세인 자들을 선발하였고, 순군(巡軍)과 홀적(忽赤) 등으로 하여금 인가를 수색하게 하였다. 혹 밤중에 침실에 돌입하거나 노비를 포박하여 심문하기도 하였으니, 비록 자녀가 없는 자라 할지라도 깜짝 놀라 동요하게 되었다. 원망하며 우는 소리가 온 거리에 가득하였다.
응방과 겁령구, 원 공주의 입조, 순군과 홀적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자료는 원 간섭기의 상황이다. 이 시기에는 지배층을 중심으로 몽골식 풍습인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 최충의 9재 학당과 초조대장경 조판은 그 이전의 고려, 만적의 봉기는 무신 집권기, 구황촬요 간행은 조선 명종 때의 일이다.

(가)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거쳐 즉위하고 개국·정사·좌명 삼공신과 회맹한 조선 태종이다. 태종은 문하부를 폐지하면서 그 낭사를 사간원으로 독립시켜 대신을 견제하게 하였다.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 초계문신제는 정조, 이시애의 난 진압은 세조, 탕평비 건립은 영조 때의 일이다.

(가)는 야연사준도의 고사로 유명하고 세종 대 함길도 병마도절제사를 지냈으며 계유정난 때 살해된 김종서이다. 김종서는 세종의 명을 받아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여 국경을 넓혔다. 탄금대 전투는 신립, 나선 정벌은 조선 후기 조총 부대, 쓰시마섬 정벌은 이종무, 강동 6주 획득은 서희의 일이다.
- 며칠 전 전하께서 예문관에서 옛 집현전의 직제를 분리하여 홍문관으로 이관하는 것을 명하셨다고 하네. 이제 홍문관이 옛 집현전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것이지.
- 홍문관원들이 경연관을 겸한다고 하니 앞으로 경연이 더욱 활성화되겠군.
예문관에서 집현전의 직제를 분리하여 홍문관으로 이관하고 홍문관원이 경연관을 겸하게 한 것은 조선 성종 때의 일이므로, 밑줄 그은 '전하'는 성종이다. 성종 때에는 국가의 여러 의례를 정리한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고 경국대전도 반포되었다. 장용영 설치는 정조, 소수 서원 사액은 명종, 속대전 편찬은 영조, 수신전·휼양전 폐지는 세조 때의 일이다.
- 조광조 등이 아뢰기를, “소격서가 요사하고 허탄함은 이미 경연에서 다 아뢰었고 전하께서도 그것이 허탄함을 환히 아시니 지금 다시 말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 신광한이 아뢰기를, “지난번에 조광조가 아뢰었던 천거로 인재를 뽑는 일은 여럿이 의논한 일입니다. 각별히 천거하는 것은 한(漢)에서 시행한 현량과와 효렴과를 따르는 것이 가합니다. 이것은 자주 할 수는 없으나 지금은 이를 시행할 만한 기회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료는 조광조가 소격서 폐지를 주장하고 신광한이 천거제인 현량과 시행을 건의하는 내용으로, 사림이 대거 등용된 조선 중종 대의 상황이다. 따라서 중종 때 사림파 언관들이 제기한 주장을 검색하는 것이 적절한 탐구 활동이다. 호포제는 흥선 대원군, 기해 예송과 인현 왕후 폐위 사건은 현종·숙종 대, 정여립 모반 사건은 선조 대의 일이다.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사]
홍계남이 당초 의병을 일으켜 흉적을 쳐서 활을 쏘아 맞히고 벤 수급이 매우 많았고 가는 곳마다 공을 세우니, 적들이 홍장군이라고 부르며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호서(충청도) 내지가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홍계남의 공이라고 한다. 가상한 일이다. 의병이 곳곳에서 봉기하였지만, …… 고경명과 조헌은 모두 나랏일에 몸을 바쳐 죽을 자리에서 죽었으니 가히 그 명성에 걸맞는다고 말할 수 있다.
- 『쇄미록』 -
[해설] 이 작품은 오희문이 (가) 중에 있었던 일을 적은 일기이다. 적군의 침입과 약탈, 의병장의 활동, 피란민의 참혹한 생활 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오희문의 『쇄미록』과 홍계남·고경명·조헌의 의병 활동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가)는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조선은 포수·살수·사수의 삼수병으로 편성된 훈련도감을 설치하였다. 남한산성 피란은 병자호란, 북벌 추진은 효종 대, 비변사 신설은 삼포왜란 이후, 계해약조는 세종 대의 일이다.

답사 경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에 오른 사찰들로 (가) 보은 법주사, (나) 영주 부석사, (다) 안동 봉정사, (라) 합천 해인사, (마) 순천 선암사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삼층 석탑은 경주 불국사의 삼층 석탑(석가탑)이므로 선암사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다. 법주사의 팔상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 해인사 장경판전은 모두 옳은 설명이다.
- 이원익의 건의로 경기도에서 시행되는 수취 제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 이번에 시행되는 제도는 지방의 특산물을 징수하면서 나타난 방납의 폐단을 막아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공물을 현물 대신 토지의 결 수에 따라 쌀로 납부합니다.
<보 기>
- ㄱ. 선혜청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다.
- ㄴ.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하였다.
- ㄷ. 관청에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 ㄹ. 어장세, 선박세 등이 국가 재정으로 귀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원익의 건의로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되었고 공물을 토지 결 수에 따라 쌀로 내게 한 제도는 광해군 때 시작된 대동법이다. 대동법의 관련 업무는 선혜청이 담당하였고, 관청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지주에게 결작을 부과하고 어장세·선박세를 국가 재정으로 돌린 것은 영조 대 균역법의 내용이다.
#5. 궁궐 안
왕과 신하들이 대화하는 장면
신하1: 전하, 우리나라의 습속은 예로부터 신분에 따라 등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서얼들을 적자와 똑같이 대우한다면, 서얼이 적자를 능멸하는 폐단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왕: 수많은 서얼들도 나의 신하인데 그들이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포부도 펴지 못한다면 이 또한 과인의 허물일 것이오. 규장각에 검서관을 두어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서이수를 등용하려는 내 결심은 변함이 없을 것이니 그리 알고 물러들 가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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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검서관에 이덕무·박제가·유득공·서이수 등 서얼 출신을 등용하겠다는 대목에서 시나리오의 왕이 정조임을 알 수 있다. 정조 재위 시기에는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 등을 활용하여 수원 화성이 축조되었다. 6조 직계제는 태종과 세조, 백두산정계비는 숙종, 대전회통은 고종 대 흥선 대원군 집권기, 삼정이정청은 철종 때의 일이다.
김화진 등이 아뢰기를, “…… 만상과 송상이 함께 수많은 가죽을 마음대로 밀무역을 합니다. 수달 가죽은 금지 품목 가운데 하나인데 변경을 지키는 관리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 1년, 2년이 되면 곧 일상적인 물건과 같아지니 …… 이후로는 한결같이 법전에 의거하여 금지 조항을 거듭 자세히 밝혀서 송상과 만상에게 법을 범해서는 안 되며, 범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일이 적발하여 법에 따라 엄격하게 처벌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합니다. 아울러 살피지 못한 변방의 관리들도 드러나는 대로 무겁게 다스린다는 뜻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합니다. ……”라고 하니, 임금이 그리하라 하였다.
만상과 송상이 국경에서 밀무역을 벌이는 상황은 사상이 크게 성장한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벽란도에서 송의 상인과 교역하는 모습은 고려 시대의 장면이므로 이 시기에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적절하지 않다. 덕대의 광산 경영, 상평통보의 유통, 포구의 여각, 담배·인삼 등 상품 작물 재배는 모두 조선 후기의 모습이다.
우리 모둠은 열하일기에서 상공업 진흥과 청의 문물 수용을 주장한 (가) 에 대해 발표하려고 합니다.
[칠판] 모둠별 주제 탐구 - 조선 후기 실학자의 활동
- 1모둠: 지전설과 무한우주론을 주장한 홍대용
- 2모둠: 성호사설에서 개혁안을 제시한 이익
- 3모둠: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한 (가)
(가)는 『열하일기』에서 상공업 진흥과 청의 문물 수용, 수레와 화폐 유통의 필요성을 주장한 박지원이다. 박지원은 「양반전」을 지어 양반의 허례와 무능을 신랄하게 풍자하였다. 북한산비 고증은 김정희, 시헌력 도입 건의는 김육, 『우서』는 유수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의 업적이다.






(가)는 강세황을 스승으로 두고 행려풍속도병을 남긴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 화가 단원 김홍도이다. 정답으로 제시된 작품은 삼현육각의 반주에 맞추어 춤추는 아이를 그린 김홍도의 「무동」으로, 서민의 생활을 생동감 있게 담은 그의 화풍이 잘 드러난다.
- (가) 순무영에서 정족산성 수성장 양헌수가 보내온 보고에 의하면, “…… 우리 군사가 잠입한 사실을 적들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저들은 우리가 지키고 있는 성을 점령할 계책으로 그 우두머리가 말을 타고 나귀를 끌고 짐바리와 술과 음식을 가지고 동문과 남문으로 나누어 들어왔습니다. 이때 우리 군사들이 좌우에 매복하였다가 일제히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나) 4월 24일에 계속해서 올린 강화 진무사 정기원의 치계에, “미국 배가 다시 항구로 들어와서 광성진을 습격하여 함락하였는데, 중군 어재연이 힘껏 싸우다가 목숨을 바쳤고, 사망한 군사가 매우 많습니다. 적병은 초지포 부근에 주둔하였습니다. 장수 이렴이 밤을 이용하여 습격해서야 그들을 퇴각시켰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는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 병인양요(1866), (나)는 어재연이 광성보에서 미군에 맞서 싸운 신미양요(1871)이다. 두 사건 사이인 1868년에는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의 도굴을 시도하여 서양에 대한 반감이 더욱 커졌다. 운요호 사건은 1875년, 마젠창·묄렌도르프 파견은 임오군란 이후, 거문도 사건은 1885년, 황사영 백서는 1801년의 일이다.

민영익과 홍영식 등으로 구성된 보빙사가 미국 공사 부임에 대한 답례로 파견되었으므로 (가)는 1882년에 체결된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다. 이 조약은 우리나라가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조약으로, 최혜국 대우를 처음으로 규정하고 거중 조정 조항을 두었다. 통감부 설치는 을사늑약, 천주교 포교 허용은 조프 수호 통상 조약, 재정 고문 규정은 제1차 한일 협약, 부산·원산·인천 개항은 강화도 조약의 결과이다.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급진 개화파가 일으켰고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한 (가)는 갑신정변(1884)이다. 갑신정변의 결과 조선은 일본과 배상금 지불 등을 담은 한성 조약을 체결하였다. 집강소 설치는 동학 농민 운동, 수신사 파견은 강화도 조약 이후, 박규수의 안핵사 파견은 임술 농민 봉기, 구식 군인 차별은 임오군란과 관련된 사실이다.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지은 돈덕전이 있고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거처를 옮긴 (가)는 경운궁(덕수궁)이다. 광복 후 이곳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서궐로 불린 곳은 경희궁, 창경원으로 격하된 곳은 창경궁, 정도전이 전각 이름을 정한 곳은 경복궁, 태종이 한양 재천도와 함께 세운 곳은 창덕궁이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일어난 (가)는 1907년의 정미의병이다. 해산 군인이 합류해 전투력이 강해진 의병 부대들은 13도 창의군을 결성하여 서울 진공 작전을 전개하였다. 최익현의 태인 궐기와 민종식의 홍주성 점령은 을사의병,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에 따른 해산은 을미의병, 국권 반환 요구서 제출은 독립 의군부의 활동이다.

㉠은 경인선이 완공된 뒤 서대문 정거장에서 철도 개통식이 열린 1900년 무렵이다. 이 시기에는 1895년 교육입국 조서에 따라 세워진 한성 사범 학교에서 근대 학문을 가르치는 교사를 볼 수 있었다. 학도 지원병 독려는 일제 강점기 말, 금난전권 폐지는 정조 대, 근우회 강연은 1927년 이후, 두모포의 무력시위는 1878년의 일이다.
□□신문 제△△호 ○○○○년 ○○월 ○○일
『원병상 회고록』으로 본 국외 민족 운동
한국 독립운동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발간되었다. 이 책은 신흥 무관 학교 졸업생이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에 헌신한 원병상의 회고록이다. 책에는 이 지역에 세워진 신흥 무관 학교의 변화 과정과 학생들의 생활상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국권 피탈 이후 망명해 온 독립지사들이 힘겹게 정착해 나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어 독립운동사와 생활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신흥 무관 학교가 세워지고 국권 피탈 이후 독립지사들이 망명해 정착한 밑줄 그은 '이 지역'은 서간도(남만주) 삼원보 일대이다. 이곳에서는 이회영 형제 등이 한인 자치 기구인 경학사를 설립하여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였다. 권업회는 연해주,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 대조선 국민 군단과 흥사단은 미주 지역에서 이루어진 활동이다.

고종의 인산일을 계기로 시작되어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전국과 해외로 확산된 밑줄 그은 '운동'은 3·1 운동(1919)이다. 3·1 운동은 일제가 무단 통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른바 문화 통치로 지배 방식을 바꾸는 배경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으로도 이어졌다. 국채 보상 운동은 통감부의 탄압으로 중단되었고, 소년 운동은 천도교 소년회,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은 성진회와 독서회, 6·10 만세 운동은 사회주의자 검거와 관련된다.

조선 총독부 임시 토지 조사국이 문서를 작성하고 토지 조사 사업이 실시되던 밑줄 그은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조선인에게만 태형을 적용하는 조선 태형령을 시행하였다. 애국반 조직과 황국 신민 서사 암송 강요는 민족 말살 통치기, 신문지법 제정은 대한 제국 시기,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의 정책이다.

나철이 만주에서 단군 신앙을 기반으로 창시하고 개천절을 기려 민족의식을 고취한 (가)는 대종교이다. 대종교는 만주에서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이는 뒤에 북로 군정서로 이어져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개벽·신여성 발간은 천도교, 사찰령 폐지 주장은 불교, 박중빈의 새생활 운동은 원불교, 파리 장서 운동은 유교계의 활동이다.
주제: 1920년대 국외 민족 운동의 시련
- (가) 일본군이 독립군에 대한 보복으로 간도 지역의 한인을 학살한 간도 참변이 발생하였어요.
- (나) 독립군의 통합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어요.
- (다) 만주에서 활동하는 독립군 색출을 위해 조선 총독부가 만주 군벌과 미쓰야 협정을 체결하였어요.
(가)는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간도 참변, (나)는 1921년 독립군 통합 과정에서 벌어진 자유시 참변, (다)는 1925년 조선 총독부와 만주 군벌이 맺은 미쓰야 협정이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는 간도 참변 → 자유시 참변 → 미쓰야 협정이다.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아리랑'이 처음 제작·발표된 밑줄 그은 '시기'는 1926년 무렵이다. 이 무렵에는 1925년 결성된 카프(KAPF)를 중심으로 신경향파 작가들이 활동하였다. 관민 공동회 연설과 교육 입국 조서 발표, 원각사의 은세계 공연, 전차 개통식은 모두 대한 제국 시기 이전의 모습이다.

중일 전쟁 이후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며 '대동아 전쟁'을 정당화하는 교육을 강요한 밑줄 그은 '이 시기'는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이 시기에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재판 없이 가둘 수 있는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을 시행하였다. 회사령 공포와 헌병 경찰제는 1910년대, 치안 유지법 제정과 경성 제국 대학 설립은 1920년대의 일이다.

1917년 대동단결 선언을 작성하고 1930년 안창호 등과 한국 독립당을 창당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강령 초안을 쓴 밑줄 그은 '나'는 조소앙이다. 조소앙은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내세운 삼균주의를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이념으로 주장하였다. 조선 혁명 선언은 신채호, 한국독립운동지혈사는 박은식, 극동 인민 대표 대회 의장단은 여운형, 만국 평화 회의 특사는 이상설·이준·이위종과 관련된다.
친애하는 메논 박사
남북 지도자 회담에 관하여 귀하와 귀 위원단에게 우리의 의견과 각서를 이미 제출한 바이어니와 우리는 가급적 우리 양인의 명의로 남에서 이에 찬동하는 제 정당의 대표 회담을 소집하여 이미 제출한 바에 제1차 보조를 하겠습니다. 이 회의에서 남쪽이 대표를 선출하면 북쪽에 연락할 인원과 방법에 대한 것을 결정하겠습니다. 귀 위원단이 이에 대하여 원만하고 적극적인 협조를 직접 간접으로 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으며 우리 양방의 노력으로 하여금 우리가 공동으로 목적하는 바를 이루어지기를 믿습니다. 끝으로 우리의 심각한 경의를 표합니다.
김구, 김규식
| 8·15 광복 | (가) |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 (나) | 이승만 정읍 발언 | (다) | 좌우 합작 7원칙 발표 | (라) | 유엔 총회 남북한 총선거 결정 | (마) | 제헌 국회 구성 |
편지는 김구와 김규식이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메논 의장에게 남북 지도자 회담 추진을 알린 1948년 초의 글이다. 이는 유엔 총회가 남북한 총선거를 결정한 1947년 11월 이후이고 제헌 국회가 구성된 1948년 5월 이전이므로 (마) 시기에 해당한다. 실제로 두 사람은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협상에 참여하였다.
제5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서명된 합의서는 남과 북이 오랜 단절과 대립을 청산하여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이 땅에, 평화의 질서를 구축하고 교류 협력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공동 번영을 이루어가기 위해 필요한 조처들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 석 달 전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과 이에 이은 이번 합의서의 서명은 한반도 문제 해결과 민족 통일을 향한 여정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 …… 나는 올해 안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는 합의를 이루고 밝아오는 새해와 함께 남과 북이 평화와 협력, 평화와 공동 번영의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열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석 달 뒤 제5차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서명된 합의서는 1991년 12월의 남북 기본 합의서이므로, 연설문을 발표한 정부는 노태우 정부이다. 노태우 정부는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7·7 선언을 발표하고 북방 외교를 추진하였다. 판문점 남북 정상 회담은 문재인 정부, 최초의 이산가족 고향 방문은 전두환 정부, 남북 조절 위원회는 박정희 정부, 10·4 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일이다.

덜레스 미국 국무 장관과 변영태 외무 장관이 서명한 상호 방위 조약은 1953년 10월에 체결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다. 이후 1959년에는 평화 통일론을 주장한 진보당의 조봉암이 간첩 혐의로 처형되었다.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 설치와 농지 개혁법 제정은 1948~1949년, 애치슨 라인 발표는 1950년, 발췌 개헌은 1952년의 일로 모두 이 조약 이전이다.
| (가) | 제39조 ① 대통령은 통일 주체 국민 회의에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제47조 대통령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제59조 ①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있다. |
| (나) | 제39조 ①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인단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거한다. ③ 대통령 선거인단에서 재적 대통령 선거인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자를 대통령 당선자로 한다. 제45조 대통령의 임기는 7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 |
(가)는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대통령 선출과 6년 임기, 국회 해산권을 규정한 1972년의 유신 헌법이고, (나)는 대통령 선거인단이 7년 단임의 대통령을 뽑도록 한 1980년의 제8차 개정 헌법이다. 유신 헌법에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추천하는 조항이 있어 국회까지 장악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 공포된 것은 1952년 발췌 개헌, 호헌 동지회 결성의 배경은 1954년 사사오입 개헌, 3·1 민주 구국 선언에 영향을 준 것은 유신 체제이다.
오늘 내린 긴급 재정 경제 명령은 명실상부한 금융 실명제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가) ⇨
정부는 금융 외환 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 통화 기금에 유동성 조절 자금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가)는 금융 실명제를 시행한 긴급 재정 경제 명령(1993)과 국제 통화 기금에 유동성 지원을 요청한 외환 위기(1997) 사이의 시기로, 모두 김영삼 정부 때의 일이다. 이 시기인 1996년에 우리나라는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은 1977년, 3저 호황은 1980년대 중후반, 한미 자유 무역 협정 체결은 2007년, 삼백 산업 발달은 1950년대의 일이다.
[시사 토크]
- 지난 3월 정부는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법률을 공포하였습니다.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요?
- 여성 가족부와 여성 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지만, 유림의 반대도 있어 갈등이 심화될 것 같습니다.
- 그럼에도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반영하여 사회적 차별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제 폐지를 담은 법률이 공포된 것은 2005년이므로 밑줄 그은 '정부'는 노무현 정부이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과거사 규명을 위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이 제정되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문재인 정부, 민주노총 창립과 헝가리 상주 대표부 설치 협정은 각각 김영삼·노태우 정부, 중학교 무시험 추첨제는 박정희 정부 때의 일이다.
[인터넷 아카이브 화면] 기록으로 만나는 사회 보장 제도 - 개요 / 일반문서류 / 사진기록물 / 동영상기록물
[좌측 메뉴]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 / 주요 경과 / 관련 기록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다
1999년 제정된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은 국민 생활 보호 제도를 대체하여 2000년 10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었다. 이는 저소득층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사회 보장 제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오늘날 사회 보장 제도는 민생 안정을 위한 역사 속 사회 시책에서도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삼국 시대 고구려에서 실시한 ㉠진대법, 고려 시대 ㉡의창과 ㉢제위보의 설치, 조선 시대 ㉣환곡제와 ㉤사창제의 운영은 오늘날 사회 보장 제도의 범주에 해당한다.
자료는 역사 속 빈민 구제 시책을 나열한 것으로 ㉠ 진대법, ㉡ 의창, ㉢ 제위보, ㉣ 환곡제, ㉤ 사창제이다. 사창제는 조선에서 향촌 사회가 자율적으로 운영한 구휼 제도인데, 구제도감을 두어 백성을 구호한 것은 고려의 일이므로 사창제에 대한 설명으로 적절하지 않다. 진대법을 시행한 고구려 고국천왕, 흑창을 확대 개편한 고려 성종, 기금의 이자로 빈민을 구제한 제위보, 세도 정치기에 수탈 수단으로 변질된 환곡은 모두 옳은 설명이다.

제17회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린 것은 2002년이므로 기사가 보도된 시기는 김대중 정부 때이다. 김대중 정부 시기인 2001년에는 국가 인권 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중앙정보부 창설은 박정희 정부, 세계 무역 기구 가입은 김영삼 정부, 서울 G20 정상 회의는 이명박 정부, 야간 통행 금지 해제는 전두환 정부 때의 일이다.

달구벌은 대구, 빛고을은 광주를 가리키므로 (가)는 대구, (나)는 광주이다. 대구에서는 김광제·서상돈 등을 중심으로 국채 보상 운동이 시작되었고, 광주에서는 한일 학생 간의 충돌을 계기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났다. YH 무역 노동자들의 농성은 서울,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다 희생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마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