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제75회 시험지 PDF 다운로드
제75회

제시된 초대의 글은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소개하고 있다. 송국리형 토기와 비파형 동검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청동기 시대에는 계급이 발생하면서 지배층이 죽으면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과 같은 거대한 무덤을 축조하였다. 주먹도끼 제작이나 동굴·막집 거주는 구석기 시대, 가락바퀴 사용은 신석기 시대, 우경의 보급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 (가) 진승과 항우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가 혼란해지자, 연(燕)·제(齊)·조(趙)의 백성이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점차 준왕에게 망명해 왔다. 준왕은 이들을 서쪽 지역에 거주하게 하였다.
- (나) 좌장군이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왕검성에 이르러 그 성의 서북 방면을 포위하였다. 누선장군도 좌장군과 합세하여 성의 남쪽에 주둔하였다. 우거왕이 끝까지 성을 굳게 지키니, 수개월이 지나도 함락시킬 수 없었다.
(가)는 진승·항우의 난으로 중국이 혼란해지자 연·제·조의 유이민이 고조선 준왕에게 망명해 온 상황이고, (나)는 한 무제가 보낸 좌장군·누선장군이 왕검성을 포위한 고조선 멸망 직전의 상황이다. 중국에서 망명해 온 무리의 우두머리였던 위만은 서쪽 변경 수비를 맡아 세력을 키운 뒤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였는데, 이는 두 자료 사이의 시기에 해당한다. 우산국 복속과 위례성 도읍, 관구검의 침입, 미천왕의 서안평 공격은 모두 고조선 멸망 이후의 일이다.






제시된 신문 기사에서 경주에 있는 금관총 금관과 황남대총 금관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가) 국가는 신라이다. 신라는 경주 일대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금속 공예품이 다량 출토되었다. 정답 자료는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천마도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에 하늘을 나는 말을 그린 신라의 대표적인 회화 유물이다.

경상북도 고령군을 중심지로 삼고 궁성지, 지산동 고분군, 주산성 등의 문화유산을 남긴 (가) 나라는 대가야이다. 대가야는 5세기 후반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하였으나 562년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를 보내 정벌하면서 멸망하였다. 광평성은 후고구려, 화백 회의와 박·석·김의 왕위 계승은 신라, 사자·조의·선인은 고구려에 해당한다.
그 나라는 관(官)을 세움에 9등이 있다. 첫 번째는 토졸이라 하며, 1품에 비견된다. 옛 이름은 대대로이며, 국정을 모두 맡는다. 3년마다 교대하는데, 직에 걸맞은 자가 있으면 연한에 구애받지 않는다. …… 또 여러 큰 성에는 녹살(욕살)을 두는데, 도독에 비견된다. 여러 성에는 처려근지를 두는데, 자사에 비견된다. 또한 도사라 이르기도 한다.
-『한원』-
제시된 『한원』의 기록에서 대대로가 국정을 총괄하고 큰 성에 욕살, 여러 성에 처려근지를 두었다고 하였으므로 밑줄 그은 나라는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산악 지대가 많아 농경지가 부족하였고,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작은 창고를 두어 약탈이나 공납으로 얻은 곡식 등을 저장하였다. 동시전은 신라, 건원중보는 고려, 솔빈부의 말은 발해, 좌관대식기는 백제와 관련된다.
[교사] 혜공왕이 피살되어 무열왕계 직계 자손의 왕위 계승이 끊긴 이후,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에 일어났던 일을 말해 볼까요?
[학생 1] (가)
[학생 2] 양길 등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는 호족 세력이 성장하였어요.
혜공왕이 피살되어 무열왕계 직계 왕위 계승이 끊긴 780년 이후 신라는 진골 귀족들의 왕위 다툼이 이어지는 하대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인 822년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데 불만을 품은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국호를 장안이라 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김흠돌의 난과 관료전 지급·녹읍 폐지는 신문왕 대, 이차돈의 순교는 법흥왕 대, 만적의 봉기는 고려 무신 집권기의 일이다.
당(唐)이 광주사마 장손사를 보내 수(隋) 병사의 해골을 묻은 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당시에 [고구려가] 세운 경관(京觀)*을 허물었다. 봄 2월에 왕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동북의 부여성에서 동남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 리 남짓에 걸쳐 장성을 쌓았다.
-『삼국사기』-
*경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적의 유해를 한곳에 모아 만든 무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은 당이 수와의 전쟁 전사자를 기려 고구려가 세운 경관을 헐고, 이에 고구려가 부여성에서 발해만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쌓기 시작한 영류왕 대(631년)의 상황이다. 이후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며 세력을 키운 연개소문이 642년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시해하고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다. 살수 대첩과 광개토 대왕의 왜 격퇴, 관산성 전투, 고국원왕 전사는 모두 이 자료 이전의 일이다.
- 조영이 죽으니, 시호를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무예가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었다. 또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
- 무예가 죽자, 시호를 무왕이라 하였다. 아들 흠무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대흥(大興)으로 고쳤다.
- 인수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니, 그의 4대조 야발은 조영의 아우이다. 인수는 바다 북쪽의 여러 부(部)를 토벌하고 영역을 크게 넓힌 공이 있다.
대조영(고왕)과 그 아들 무예(무왕), 인안·대흥·건흥 등의 독자적 연호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제시된 자료의 국가는 발해이다. 발해는 문왕 때 당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 교육 기관인 주자감을 설치하고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였다. 골품제와 상수리 제도는 신라, 6좌평은 백제, 양계와 병마사는 고려의 제도이다.

웅진 천도 이후의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백제 역사 유적 지구 가운데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 나성이 있는 (가) 지역은 부여이다. 부여는 백제 성왕이 538년 웅진에서 옮겨 온 새 도읍 사비에 해당한다. 자산어보는 흑산도, 비담과 염종의 난은 경주, 대야성 함락은 합천, 탄금대 전투는 충주와 관련된 지역이다.
- (가) 견훤이 신라의 수도로 들어갔다. 포석정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던 신라 왕은 적의 병사들이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달아나 성의 남쪽에 있는 별궁에 숨었다. 견훤은 신라 왕을 찾아내고 핍박하여 자결하게 하였다.
- (나) 견훤이 고창군을 포위하자 유금필이 왕에게 아뢰기를, “싸워 보지도 않고 먼저 패배를 걱정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신은 군대를 진격해 서둘러 공격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가)는 927년 견훤이 신라 수도를 습격하여 경애왕을 자결하게 한 사건이고, (나)는 930년 고창(안동) 전투 직전의 상황이다. 그 사이인 927년, 신라를 구원하러 나선 왕건이 대구 공산에서 견훤에게 크게 패하였고 이때 신숭겸과 김락이 왕건을 대신하여 전사하였다. 안승의 보덕국 책봉과 흑치상지의 임존성 봉기는 삼국 통일기, 최치원의 시무책은 진성 여왕 대, 일리천 전투는 936년의 일이다.
[사료로 만나는 한국사]
교서를 내려 말하기를, “태학조교 송승연과 나주목(羅州牧)의 경학박사 전보인이 [학생들을] 이끌어 잘 도와서, 학문을 널리 닦으라는 공자의 뜻에 합치된다.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아서 내가 학문을 권장하는 뜻에 들어맞으니 마땅히 그들을 발탁하여 특별하고 두터운 총애를 보이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해설] 위 사료는 (가) 이/가 유학 교육에 공이 있는 태학조교와 나주목의 경학박사를 치하하는 『고려사』의 기록이다. 중앙뿐 아니라 지방의 교육도 장려했던 (가) 은/는 처음으로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에 이어 경학박사와 의학박사를 파견하였다.
제시된 『고려사』 기록은 지방의 유학 교육에 힘쓴 왕이 태학조교와 나주목 경학박사를 치하한 내용으로, 12목을 설치하고 경학박사·의학박사를 파견한 (가) 왕은 고려 성종이다. 성종은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 정치 이념에 입각한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광덕·준풍 연호는 광종, 전민변정 사업은 공민왕, 청연각·보문각은 예종, 정계와 계백료서는 태조 왕건과 관련된다.

진도 용장성은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발한 삼별초가 승화후 온을 왕으로 삼고 내려와 항전한 곳이다. 따라서 (가)는 몽골이다. 고려는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였다. 동북 9성은 여진,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쓰시마섬 정벌은 왜구, 서희의 담판은 거란과 관련된다.

초상화 속 인물은 해동공자로 불린 고려의 학자 문헌공 최충이다. 최충은 과거를 주관하는 지공거를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9재 학당(문헌공도)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였고, 이것이 사학 12도의 융성으로 이어졌다. 불씨잡변은 정도전, 만권당 교유는 이제현, 입학도설은 권근,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정몽주를 천거한 인물은 이색이다.
서경 반란군이 검교첨사 최경을 개경으로 보내 표문을 올려 이르기를, “폐하께서 음양의 지극한 말을 믿으시고 도참의 비설을 고찰하시어 대화궁을 창건하시니 천제(天帝)의 도읍을 본떠 만드신 것입니다. …… 인심은 두려운 것이며 군중의 분노는 막기 어려우니 만약 폐하께서 수레를 타고 임하신다면 병란은 그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표문이 도착하니 모두 말하기를, “신하가 감히 군주를 부르다니 그 사자(使者)를 베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 918 고려 건국 | (가) | 1009 강조의 정변 | (나) | 1126 이자겸의 난 | (다) | 1170 무신 정변 | (라) | 1356 쌍성총관부 탈환 | (마) | 1392 고려 멸망 |
제시된 자료는 대화궁 창건과 서경 반란군의 표문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1135년에 일어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서경 반란)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1126년 이자겸의 난과 1170년 무신 정변 사이에 일어났으므로 연표의 (다) 시기에 해당한다.
[교사] 자료는 ‘이생규장전’의 일부입니다. 이 작품은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피란하고 백성이 고통을 겪는 등 전란의 참혹했던 상황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 이후에 전개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말해 볼까요?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사]
신축년에 홍건적이 개경을 점거하자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란하였다. 적들은 집을 불태워 없애버렸으며, 사람을 죽이고 가축을 잡아먹었다. 부부와 친척끼리도 서로 보호하지 못했고 동서로 달아나 숨어서 제각기 살길을 찾았다. 이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외진 산골로 숨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뒤를 쫓아왔다. 이생은 달아나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아내 최랑은 도적에게 사로잡혔다.
‘이생규장전’의 배경이 된 신축년의 홍건적 침입은 1361년 제2차 침입으로, 공민왕이 복주(안동)까지 피란하였다. 이후 고려에서는 1388년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김사미의 봉기와 최충헌의 교정도감은 무신 집권기, 강감찬의 흥화진 전투는 거란의 침입기, 쌍기의 과거제 건의는 광종 대의 일로 모두 홍건적 침입 이전이다.
- 동소(銅所)·철소(鐵所)·자기소(瓷器所)·지소(紙所)·묵소(墨所) 등 여러 소에서 별공으로 바치는 물건들을 너무 과중하게 징수하여 장인들이 고통스러워 도망하고 있다.
- 왕이 명령하기를, “이제 처음으로 화폐를 주조하는 법을 제정하였으니, 주조한 돈 1만 5천 관(貫)을 여러 관리와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이를 통용의 시초로 삼고 전문(錢文)은 해동통보라 하여라.”라고 하였다.
동소·철소·자기소 등 특수 행정 구역인 소(所)의 별공 부담과 해동통보 주조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제시된 자료의 국가는 고려이다. 고려 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하여 송·일본은 물론 아라비아 상인까지 드나들었다. 청해진은 통일 신라, 당백전·금난전권 폐지는 조선 후기, 계해약조는 조선 전기의 사실이다.
2025년 한국사 교양 강좌
고려의 과학 기술
우리 학회에서는 고려의 과학 기술에 대해 알아보는 교양 강좌를 마련하였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강의 주제
- [제1강] 수시력의 도입과 최성지의 활동
- [제2강] (가)
- [제3강] 화통도감의 설치와 화약 무기의 개발
- [제4강] 고려 청자의 발달과 상감 기법의 활용
- 일시: 2025년 8월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 장소: □□ 대학교 인문대학 대강의실
- 주최: △△ 학회
강좌의 주제가 수시력 도입, 화통도감 설치, 고려 청자와 상감 기법인 것으로 보아 (가)에는 고려의 과학 기술에 해당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고려는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달하여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하였는데,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향약집성방과 동국지도, 임원경제지는 조선, 석굴암은 통일 신라의 문화유산이다.






은진 미륵이라 불리는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거대 석불로, 지방 세력의 힘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불상이다. 따라서 (가) 국가는 고려이다. 정답 자료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 석탑으로,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든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석탑이다.
처음에 공신 배극렴·조준·정도전이 세자를 세울 것을 청하면서, 나이와 공로를 고려하여 정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강씨를 중히 여겨 이방번에게 뜻이 있었으나, 공신들은 방번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사적으로 서로 이야기하기를, “만일 강씨 소생이어야 한다면 막내가 조금 낫겠다.”라고 하였다. 이후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가?”라고 물으니, 맏아들 혹은 공로가 있는 사람을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극렴이 말하기를, “막내아들이 좋습니다.”라고 하니, 임금이 마침내 뜻을 결정하여 어린 이방석을 왕세자로 삼았다.
제시된 자료는 태조 이성계가 배극렴·조준·정도전 등 공신들의 의견에 따라 신덕 왕후 강씨 소생의 막내 이방석을 왕세자로 삼은 상황을 보여 준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방원이 1398년 정도전과 세자 방석 등을 제거한 것이 제1차 왕자의 난이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과 사림의 동서 분당, 인조반정, 경신환국은 모두 그 이후 시기의 사건이다.

이십삼상대회도는 감찰 23인의 계회를 기념하여 그린 그림이며, 백관에 대한 규찰과 탄핵을 관장하고 ‘상대’로도 불린 (가) 기구는 사헌부이다. 사헌부는 종2품 대사헌을 수장으로 집의, 장령, 지평, 감찰 등의 관직을 두었고 사간원·홍문관과 함께 삼사를 이루었다. 수도의 행정과 치안은 한성부,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화된 기구는 비변사, 검서관은 규장각, 사고 관리는 춘추관의 일이다.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1588년 북병사 이일이 두만강 유역의 여진 부락을 정벌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고, 조선 초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두어 회유한 대상 역시 여진이다. 조선은 세종 때 김종서를 보내 두만강 일대를 개척하고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6진을 설치하였다. 동평관은 일본 사신 접대, 강화 천도와 별무반은 고려, 요동 정벌 추진은 고려 말의 일이다.
- (가) 대신 등에게 전교하기를, “조광조 등의 일은 내가 늘 마음속에서 잊지 않았으나 선왕(先王)께서 전에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감히 가벼이 고치지 못하였다. 이제는 내 병이 위독하여 비로소 유언하니 조광조 등의 벼슬을 모두 회복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현량과도 회복하여 거두어 등용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 (나) 부제학 정언각이 아뢰기를, “소신이 양재역에 이르러서 벽에 써 붙인 주서(朱書)를 보았는데 국가에 관계된 내용이었으므로 지극히 놀랐습니다. …… 또 반역의 잔당들은 이미 죄를 물었습니다만, 심영은 대왕대비를 가리켜 신하로서 할 수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하가 그와 같은 말을 하고서 어떻게 천지 사이에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가)는 조광조의 관작 회복과 현량과 복설을 유언으로 남긴 인종 대(1545)의 기록이고, (나)는 1547년 명종 대에 일어난 양재역 벽서 사건이다. 그 사이인 1545년 명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소윤 윤원형 일파가 문정 왕후를 등에 업고 대윤의 윤임 등을 제거한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예송과 기사환국은 조선 후기, 정철의 유배는 선조 대, 갑자사화는 연산군 대의 일이다.
[문학으로 보는 한국사]
남한산성 무너진 날 죽었어야 할 몸인데
초수(楚囚)*되어 아직도 못 돌아간 신하라네
서쪽으로 오며 형 생각에 몇 번이나
눈물 뿌렸던고
동녘을 바라보니 아우 그린 형이 가련하네
……
부부 은정(恩情) 중하기도 한데
만난지 두 돌도 못 되었네그려
이제는 만 리 밖에 이별하여
백년 가약이 헛되구나
길이 멀어 편지도 못 부치고
산이 높아 꿈조차 더디 넘네
나의 살 길 기약할 수 없으니
뱃속의 아이나 잘 보살펴주오
*초수: 포로를 뜻함
[해설] 이 작품은 송시열이 펴낸 『삼학사전』에 수록된 시로, 오달제가 형과 아내에게 보낸 것입니다. 삼학사는 (가) 때 척화론을 주장하다가 이듬해 심양으로 잡혀가 순절한 홍익한, 윤집, 오달제를 말합니다.
『삼학사전』에는 삼학사의 절개와 비극적 최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효종은 (가) 의 치욕을 씻기 위해 북벌을 추진하는 한편 순절한 인물을 기리고 그 후손을 등용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남한산성이 무너진 뒤 척화론을 주장하다 심양으로 끌려가 순절한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가 언급되었으므로 (가) 전쟁은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이다. 병자호란 중인 1637년 김준룡은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를 구원하기 위해 북상하다가 광교산에서 청군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송상현의 동래성 항전은 임진왜란, 이괄의 난과 강홍립의 사르후 참전은 병자호란 이전, 신류의 흑룡강 전투는 효종 대 나선 정벌에 해당한다.

감란록은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직후 왕명으로 송인명 등이 편찬한 책이며, 그 원인을 붕당에서 찾은 (가) 왕은 영조이다. 영조는 즉위 직후 탕평 교서를 반포하여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였고,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탕평의 뜻을 널리 알렸다. 경기도 대동법은 광해군, 금위영은 숙종, 초계문신제는 정조, 대전회통은 흥선 대원군 집권기와 관련된다.

장용영은 정조가 1793년에 완성한 국왕 친위 부대로 순조 초인 1802년에 혁파되었으므로, 밑줄 그은 시기는 조선 후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혀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세책가가 성행하였고 춘향전과 같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 동국정운 편찬과 계미자 제작은 조선 전기, 경시서는 고려와 조선 전기, 형평사 창립은 일제 강점기의 일이다.
비가 내리자 왕이 특별히 화성부에 이르기를, “흉년이 들었을 때 기근을 구제하는 데 서쪽 지방의 토란이나 남쪽 지방의 고구마보다 월등히 나은 것은 메밀이다. 내가 이 때문에 모내기의 시기를 놓치게 되면 반드시 메밀을 대신 파종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화성부에 내린 왕의 하교와 흉년 대비 메밀 파종 권장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제시된 상황은 조선 후기 정조 대에 해당한다. 조선 후기에는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고 대동법 시행으로 공인이 활동하였으며, 송상·만상의 대청 무역과 덕대가 경영하는 광산이 발달하였다. 반면 염포 등 삼포의 왜관을 통한 일본과의 교역은 조선 전기의 모습이므로 이 시기의 경제 모습으로 옳지 않다.

옥호정도는 세도 정치의 주요 인물이자 왕의 장인이었던 김조순의 별저를 그린 그림이며, 안동 김씨의 세도가 시작된 (가) 왕은 순조이다. 순조 재위 중인 1811년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과 세도 정치의 폐단에 반발하여 홍경래 등이 봉기하였고, 한때 청천강 이북을 장악한 뒤 정주성을 점령하여 항전하였다. 오페르트 도굴과 영남 만인소는 고종 대, 이시애의 난은 세조 대, 곽재우·고경명의 의병 활동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김옥균 등은 청이 우리 자주권을 침해하는 데 분노하여 일본 공사와 (가) 을/를 일으켜 ‘일본당’으로 지목되었다. (가) 이/가 실패하자 온 나라가 그를 역적이라 하였다. 나는 조정에 몸을 담고 있어 그를 토벌하여 죽여야 한다는 것 외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러나 김옥균과 나의 마음은 그 뜻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
-『속음청사』-
김옥균 등이 일본 공사와 함께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일본당’으로 지목되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가) 사건은 1884년의 갑신정변이다. 갑신정변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끝났고, 이듬해 조선에서 청과 일본이 함께 군대를 철수하고 이후 파병 시 서로 통보하도록 한 톈진 조약이 체결되었다. 교정청 설치와 홍범 14조는 갑오개혁기, 통리기무아문 설치와 김기수의 수신사 파견은 갑신정변 이전의 일이다.

제2대 교주 최시형, 교조 신원 운동, 1894년 전봉준·김개남의 농민군과의 합세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가) 종교는 동학이다. 동학은 포와 접이라는 조직을 두고 접주가 신도를 관리하는 포접제를 통해 삼남 지방을 중심으로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배재 학당은 개신교, 새생활 운동은 원불교, 사찰령 폐지 운동은 불교, 의민단은 천주교와 관련된다.

일제가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여 끝낸 전쟁은 1904년에 시작된 러일 전쟁이다. 일본은 이 전쟁 중인 1905년 2월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불법 편입하였다. 아관 파천과 절영도 조차 요구는 1896~1898년,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은 1882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1866년의 일로 모두 러일 전쟁 이전이다.

「지부복궐척화의소」를 올려 강화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고 왜양일체론을 주장한 위정척사 운동의 대표적 인물은 최익현이며, 문집 『면암집』도 그의 것이다. 최익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듬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이후 쓰시마섬에 끌려가 순국하였다. 독립 의군부는 임병찬, 도쿄 의거는 이봉창, 이완용 습격은 이재명, 서울 진공 작전 지휘는 이인영·허위와 관련된다.

제시된 연보는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다가 순국한 이준의 생애를 정리한 것이다. 이 가운데 1904년에 조직된 보안회는 일제가 요구한 황무지 개간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여 결국 그 요구를 철회시켰다.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은 대한 자강회, 105인 사건으로 와해되고 대성 학교를 세운 단체는 신민회, 삼균주의에 기초한 건국 강령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관련된다.
‘동양 평화’와 ‘한국 독립’에 대한 문제는 이미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며 당연한 일로 굳게 믿었고, 한국과 청국 사람들의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 만일 일본이 지금의 정책을 바꾸지 않고 이웃 나라들을 나날이 억누른다면, 차라리 다른 인종에게 망할지언정 같은 인종에게 욕을 당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한국과 청국 사람들의 마음에서 용솟음칠 것이다. ……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하얼빈에서 시작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는 뤼순으로 정하였다.
제시된 자료는 동양 평화를 위한 의로운 싸움을 하얼빈에서 시작하고 재판은 뤼순에서 받았다고 하였으므로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이다. 안중근은 1909년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체포되어 이듬해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흥사단은 안창호, 조선책략 반입은 김홍집, 부민관 폭파 의거는 조문기, 한국통사는 박은식과 관련된다.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를 담당하던 시기에 일제는 범죄 즉결례를 제정하여 재판 없이 체포 또는 구금하고 벌금을 물리거나 태형에 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시행 이듬해 일제는 범죄 즉결례에 있는 태형 규정을 삭제하고, 조선 태형령을 제정하여 태형은 오직 조선인에게만 적용하였습니다.
[법령으로 만나는 일제 강점기]
제1조 경찰서장 또는 그 직무를 취급하는 자는 그 관할 구역 안의 다음 각호의 범죄를 즉결할 수 있다.
- 1. 구류·태형 또는 과료형에 해당하는 죄
- 3. 3월 이하의 징역·금고·금옥이나 구류·태형 또는 100원 이하의 벌금이나 과료형에 처하여야 하는 행정 법규 위반의 죄
- 범죄 즉결례 -
제1조 3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구류에 처해야 하는 자는 그 상황에 따라 태형에 처할 수 있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해 적용한다.
- 조선 태형령 -
헌병이 일반 경찰 업무를 담당하고 범죄 즉결례와 조선 태형령이 시행된 밑줄 그은 시기는 1910년대 무단 통치기이다. 일제는 1910년 회사령을 제정하여 회사를 설립할 때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도록 함으로써 한국인의 기업 활동을 억제하였다. 미쓰야 협정은 1925년,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은 1941년, 박문국 설치와 황국 중앙 총상회는 개항기의 일이다.

관동 대지진이 재작년에 일어났다고 하였으므로 제시된 기사는 1923년으로부터 2년 뒤인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보도한 것이다. 일제는 1924년 경성 제국 대학을 설립하였으므로 이 시기에는 경성 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볼 수 있었다. 영선사와 국채 보상 운동, 육영 공원, 전차 개통식은 모두 개항기와 대한 제국 시기의 모습이다.

파리 강화 회의가 진행되던 1919년 프랑스 신문이 ‘혁명’이라 표현하며 보도한, 일제 강점기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인 (가)는 3·1 운동이다. 3·1 운동은 미국 대통령 윌슨이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처리 원칙으로 제창한 민족 자결주의와 도쿄 유학생들의 2·8 독립 선언 등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간도 참변은 1920년, 순종 서거는 1926년, 브나로드 운동은 1930년대의 일로 모두 3·1 운동 이후이다.

1915년 대구에서 박상진 등이 국권 회복을 위해 조직하였고 김한종이 충청도 지부장을 맡은 (가) 단체는 대한 광복회이다. 대한 광복회는 총사령 박상진, 부사령 김좌진을 두는 등 군대식 조직을 갖춘 비밀 결사로, 군자금을 모아 독립군을 기르고 친일 부호를 처단하였다. 정우회 선언의 영향을 받은 단체는 신간회, 조선 혁명 선언을 지침으로 삼은 단체는 의열단, 영릉가 전투는 조선 혁명군, 만민 공동회는 독립 협회와 관련된다.
- (가) 제1조 대한국은 세계 만국에 공인된 자주독립 제국이다.
제2조 대한 제국의 정치는 만세에 걸쳐 불변할 전제 정치이다.
제3조 대한국 대황제는 무한한 군권(君權)을 누린다. - (나) 중추원은 아래에 열거한 사항을 심사하고 회의하여 결정하는 곳으로 할 것이다.
1. 법률, 칙령의 제정, 폐지, 개정에 관한 사항
6. …… 중추원 의관의 절반은 정부에서 나라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추천하고, 그 절반은 인민 협회 중에서 27세 이상으로 정치·법률·학식에 통달한 자를 투표해서 선거할 것이다. - (다)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02조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이 헌법에 의한 국회로서의 권한을 행하며 그 의원의 임기는 국회 개회일로부터 2년으로 한다. - (라) 융희 황제가 삼보(三寶)를 포기한 8월 29일은 즉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 사이 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이니 저 황제권이 소멸한 시점은 즉 민권이 발생한 시점이오, 옛 한국의 마지막 1일은 즉 신한국 최초의 1일이다.
(가)는 1899년 대한국 국제, (나)는 1898년 관민 공동회 이후 마련된 중추원 관제 개편안, (다)는 1948년 제헌 헌법, (라)는 1917년 대동단결 선언이다. 따라서 발표된 순서대로 배열하면 (나) - (가) - (라) - (다)가 된다.

1905년 유카탄반도에 도착하여 에네켄 농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린 한인 이민자들이 정착한 (가) 지역은 멕시코이다. 멕시코의 한인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1910년 메리다에 숭무 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경학사와 중광단은 서간도·북간도, 권업회와 권업신문은 연해주, 2·8 독립 선언은 일본 도쿄와 관련된다.
[교사] 이 자료는 전라남도 신안군(당시 무안군)의 한 섬에서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 소작인회 대표와 지주 문재철 사이에 맺어진 화해 조건입니다. 소작인들은 고율의 소작료를 징수하는 지주에게 1년여에 걸쳐 저항하여 소작료를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의 사실에 대해 말해 볼까요?
- 1. 소작료를 4할로 하고, 1할은 농업 장려금으로 할 것
- 2. 농업 장려금은 소작인회에서 관리할 것
- 3. 소작인회에 지주도 참여할 것
- 4. 미납한 소작료는 3개년을 기한으로 분납할 것
- 5. 파괴하여 철거한 문태현의 비석을 복구할 것
- 6. 현재 조사 중인 형사 피고 사건은 양방에서 취하할 것
- 7. 지주가 소작인회에 기본금 2천 원을 기증할 것
전라남도 신안군의 섬에서 소작인들이 지주 문재철에게 1년여간 저항하여 소작료를 낮춘 이 사건은 1923년부터 이어진 암태도 소작 쟁의이다. 이 쟁의의 성공은 각지의 농민 운동을 자극하여 1927년에는 전국 단위 조직인 조선 농민 총동맹이 결성되었다. 지계 발급과 방곡령, 농광 회사, 토지 조사령은 모두 이 사건 이전의 일이다.
[갑] 자네 (가) 에서 발행한 잡지 ‘한글’ 이번 호 보았는가?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개정 신판이 발매되었다는 소식이 실렸더군.
[을] 읽었네. 최근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으로 한글 창제일이 명확해졌다는군. 이제 (가) 에서는 한글날을 창제일에 맞춰 10월 9일로 시정한다고 하네.
잡지 ‘한글’을 발행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 개정판을 낸 (가) 단체는 조선어 학회이다. 조선어 학회는 표준어를 제정하고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을 마련하는 한편 조선말(우리말) 큰 사전 편찬을 추진하였으나, 1942년 조선어 학회 사건으로 강제 해산되어 사전은 광복 이후에야 완간되었다. 띄어쓰기 도입은 독립신문, 대한문전은 유길준, 태극 서관은 신민회, 국문 연구소는 대한 제국 시기의 일이다.

잡지 별건곤에 실린 모던 걸·모던 보이 풍자 삽화와 백화점 등장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가)에는 1920년대 대중문화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이 시기에는 나운규가 제작·주연한 영화 아리랑이 1926년 단성사에서 상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제국신문은 대한 제국 시기, 자유부인과 사상계는 1950년대 이후, 아침 이슬 금지곡 지정은 1970년대의 일이다.
[사료로 만나는 여성 독립운동사]
이중 삼중의 억압에 눌려 신음하던 자매들이여! 어서 빨리 일어나 이 민족 해방 운동의 뜨거운 용광로로 뛰어오라. …… 어둠 속에서 비추는 새벽빛 같은 (가) 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봉화는 붉고 맑게 빛난다. 이미 모인 혁명 동지들은 뜨거운 손길을 내밀고 열정에 넘쳐 속히 달려옴을 기다리고 있다. 오라!
[해설] 이 사료는 『광복』에 실린 지복영의 글 중 일부이다. 그녀는 1940년 9월, 충칭에서 자신의 아버지 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는 (가) 이/가 창설될 때 오광심, 김정숙, 조순옥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녀는 대원 모집, 선전 활동 등을 이어오다 광복을 맞이하였다.
지복영이 1940년 9월 충칭에서 아버지 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여 창설될 때 참여한 (가) 부대는 한국광복군이다. 한국광복군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연합군과 함께 인도·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었고, 미국 전략 정보국(OSS)과 연계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으나 일제의 항복으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청산리 대첩은 북로 군정서군 등, 동북 항일 연군 개편은 만주의 항일 유격대, 쌍성보·대전자령 전투는 한국 독립군,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는 조선 의용대에 해당한다.

금속류 회수령으로 놋그릇과 사찰의 종까지 공출한 밑줄 그은 시기는 중일 전쟁 이후 일제가 침략 전쟁을 확대하던 민족 말살 통치기이다. 일제는 이 시기에 국민 총력 조선 연맹 아래 최말단 조직으로 애국반을 두어 한국인의 일상생활까지 통제하고 전쟁에 동원하였다. 신문지법과 화폐 정리 사업은 1910년 이전, 조선 물산 공진회와 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0년대의 일이다.
지금 이때 나의 단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을 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달성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요구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 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나는 내 생전에 38선 이북에 가고 싶다. 그쪽 동포들도 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서 죽고 싶다. 궂은 날을 당할 때마다 38선을 싸고 도는 원귀의 곡성이 내 귀에 들리는 것도 같았다. 고요한 밤에 홀로 앉으면 남북에서 헐벗고 굶주리는 동포들의 원망스런 용모가 내 앞에 나타나는 것도 같았다.
제시된 성명은 통일된 조국을 세우려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 정부 수립에는 협력하지 않겠다고 한 김구의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1948년 2월)이다. 이후 김구·김규식은 남북 협상에 나섰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1948년 5월 10일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아래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 선거인 5·10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와 한국 민주당 창당, 좌우 합작 7원칙,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모두 이 성명 이전의 일이다.

6·25 전쟁 중 부산 임시 국회에서 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기립 표결로 통과시킨 개헌안은 1952년의 발췌 개헌이므로, 밑줄 그은 정부는 이승만 정부이다.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53년에는 휴전 이후 미국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여 한미 동맹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경부 고속 도로 개통과 함평 고구마 사건은 박정희 정부, 삼청 교육대는 전두환 정부, 금융 실명제는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이다.

노동조합 대의원 선거를 방해하며 인분을 뒤집어씌운 동일방직 사건(1978)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YH 무역 여성 노동자 강제 진압(1979)이 일어난 (가) 정부는 박정희 정부이다. 박정희 정부의 유신 체제하인 1976년에는 재야인사들이 명동 성당에서 긴급 조치 철폐와 유신 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3·1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하였다. 부천 경찰서 성 고문 사건은 전두환 정부, 경향신문 폐간은 이승만 정부, 최저 임금 위원회는 노태우 정부, 지방 자치제 전면 시행은 김영삼 정부 시기의 일이다.

대학교 정문 앞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된 이한열 사건은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호헌 철폐와 독재 타도를 외친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여당 대표가 6·29 민주화 선언을 발표하였고,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제9차 개헌이 이루어졌다. 유신 체제 붕괴의 배경은 부마 민주 항쟁, 대통령 하야는 4·19 혁명, 시민군 조직은 5·18 민주화 운동, 한일 국교 정상화 반대는 6·3 시위와 관련된다.
□□신문 제△△호 ○○○○년 ○○월 ○○일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 청산 매듭
어제 단행된 군 장성 정기 인사를 통해 하나회 회원으로 알려진 중장급 이상 장성 전원이 보직 해임되었다. 이번 인사는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3월 8일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전격적으로 예편 조치함으로써 시작된 군대 내 사조직 청산 작업을 마무리한 것이다. 군 내부에서도 이번 하나회 완전 제거가 군이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안정과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 직후 육군 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예편시키고 하나회 소속 장성을 모두 보직 해임하였다는 기사이므로 보도된 시기의 정부는 김영삼 정부이다. 김영삼 정부는 과거사 청산에 힘써 1996년 거창 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하였다. 칠레와의 자유 무역 협정은 노무현 정부,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정부, 소련과의 수교는 노태우 정부 시기의 일이다.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일제가 태평양 전쟁 시기에 건설한 알뜨르 비행장이 있는 (가) 지역은 제주도이다. 제주도에서는 조선 후기의 상인 김만덕이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재산을 내놓아 곡식을 나누어 준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원종과 애노의 봉기는 사벌주(상주), 외규장각 도서 약탈은 강화도, 강주룡의 고공 시위는 평양, 영국군이 점령한 곳은 거문도이다.